블라디보스토크 사람 갈리나

-2008 원양 승선 실습 길에서·3



갈리나는 블라디보스토크에 머무는 사흘 동안 줄곧 함께 다니며 우리를 안내해 주었던 사람이다. 그녀는 결혼한 지 2년 되었다는 24세의 부인으로 네벨스코이 해양 국립대학 국제교류센터 직원이라고 한다. 그녀는 극동공업기술대학교 동양학부를 졸업하고 한국과 한국 문화에 대해 관심이 많아 우리나라의 한림대학에서 6개월간 한국어 어학연수를 받고 왔다고 한다. 춘천에서 생활하면서 춘천닭갈비를 즐겨 먹기도 했다고 한다. 그 때 배운 한국어 실력으로 대학에서 국제 관계 일을 보면서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원양 실습선을 타고 포항에서 이틀을 항해하여 블라디보스토크로 왔다. 블라디보스토크는 75만 명의 인구에 150년 역사의 항구도시이지만 여행업이 별로 발달하지 못한 곳인 것 같았다. 안내인을 찾기가 쉽지 않다가, 에이전트를 통해 국립 해양대학의 국제교류센터와 인연이 닿아 그곳 직원의 도움을 받게 되어 갈리나를 만날 수 있었다.

갈리나와 함께 세 사람이서 우리를 안내하러 나왔다. 나이가 많은 머스귀나라는 부인은 안내 책임자로서 안내에 필요한 행정적인 처리를 담당하고 또 한 사람은 코스를 안내하고, 갈리나는 통역만 맡고 있었다. 우리는 갈리나와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갈리나는 한국어가 그리 유창하지를 못했다. 어휘와 어휘 사이를 잘 잇지 못해 어맥(語脈)을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그녀가 안내해 주는 말이나 통역하는 말을 들으면서 말의 앞뒤를 다시 맞추어 이해해야 했지만, 우리는 그녀의 말에서 불편을 느끼기보다는 오히려 정감에 젖어 들었다.

그녀는 우리를 안내할 여행지에 대하여 많은 자료들을 준비했다. 우리말로 된 많은 양의 안내서들을 찾아 준비했고, 그것을 하나하나 러시아말로 번역을 했다. 또한 러시아말로 된 안내서들을 찾아 우리말로 번역을 하여 많은 자료들을 준비했다. 문화와 언어 체계가 다른 말을 번역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번역에 많은 힘이 들었을 것이다. 따는 밤을 새워가며 준비를 했다고 한다.

외국을 여행하다가 보면 어느 나라에서든 우리나라 가이드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그들은 대개 현지에 사는 교포이거나 유학생들이다. 그들은 그 나라의 풍속과 문화 그리고 여러 가지 자료며 현황들을 유창한 한국어로 안내한다. 그들의 안내를 들으며 이국의 여러 가지 모습을 이해하고, 감동도 느끼게 된다. 그런데 나중에 여행지에 대한 다른 자료를 접하다가 보면 가이드들의 말과 다른 것을 볼 경우가 있다. 어느 쪽의 것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고, 가이드라고 해서 모든 사실을 다 알고 있을 수도 없지만, 혹 여행지의 사정을 잘 모르는 여행객들에게 적당히 둘러대어 안내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때가 있다.

그러나 갈리나에게는 일단 그런 의심을 가질 수가 없다. 준비한 자료들을 다 들고 다니며 설명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이해를 못하는 듯하면 자료를 직접 보여주기도 하고, 노한사전, 한로사전을 들고 다니며 단어를 찾아 보여주기도 했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준비한 자료를 빠짐없이 남김없이 전해 주려고 애썼다. 우리가 설명을 듣지 않고 딴 것을 보거나 다른 데로 가고 있으면 ‘여러분!’하고 외쳐 부르며 주의를 환기시키기도 하고,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단 한 사람이라도 붙잡고 준비한 내용을 안내하기에 애쓴다.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가다가도 그의 정성을 져버릴 수 없어 다시 와서 그의 설명에 귀를 기울인다. 한 가지라도 우리에게 더 전해 주려고 애썼다. 그녀는 여행지가 주는 감동보다 더 진한 감동을 우리에게 주는 듯했다.

우리가 블라디보스토크 시내를 구경하고 있던 날이 5월1일, 노동절이었다. 갈리나에게 기념행사가 성대하게 벌어지고 있는 중앙광장에 가보자고 했더니, 가지 않는 게 좋겠다고 했다. 북경올림픽 성화 봉송 문제 때문에 러시아인들과 중국인 사이에 충돌이 벌어져 분위기 아주 험악하다며, 우리도 중국들로 오해를 받아 피해를 볼 수 있다고 했다. 러시아들은 외국인들 특히 유색인종들에 대해서는 배타적인 편이라고 한다. 길가는 유색인에게 까닭 없이 시비를 걸어 테러를 가하기도 하는데, 실습선의 승무원 중에는 이들에게 봉변을 당한 사람도 있다고 한다. 불안하여 마음대로 러시아의 거리를 걸어볼 수가 없을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갈리나를 보면 그런 불안감을 느낄 수 없다. 정성 다해 우리를 안내하려고 애쓰는 모습에서 러시아인들도 다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과 함께 인정을 느낄 수 있다. 지금 러시아는 폐쇄된 사회주의 체제로부터 개방 사회를 지향하면서 연 7%의 성장을 거듭하며 선진국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지만, 경제 성장만이 아니라 시민의식도 이에 걸맞게 성숙해가야 한다. 갈리나 같은 사람이 많아질 때, 러시아는 더욱 발전해 갈 수 있을 것이다.

러시아만의 일이 아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자기 일에 성실하고 남에게 친절한 사람들이 많아질 때 진정한 선진국으로 발전해 갈 수 있을 것이다. 성숙한 시민이 될 수 있을 것이다.♣(2008.5.3 해맞이호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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