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양 실습선 승선기Ⅰ

-포항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2008년 4월28일. 이틀 간의 멀고먼 뱃길이 시작된다, 포항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모두가 설렌다. 이틀 간이나 바다를 달려야 하는 생애 처음의 뱃길에 대한 호기심도 가슴을 설레게 하는 것이지만, 기항지의 풍경에 대한 상상도 기나긴 뱃길 못잖은 설렘을 우리에게 안긴다.

모든 점검이 완료되고 출항 수속도 끝났다. 계류선을 거두어 배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10시 30분, 반. 고물부터 안벽과 떨어지더니 이물의 계류선도 거두어 올리고 부두를 떠나기 시작했다. 안개 속의 포스코가 조금씩 선명한 모습을 드러내는가 싶더니 배는 뭍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면서 바다에서 육지의 풍경은 점점 지워져 갔다.

조타실로 올라갔다. 11노트의 속력으로 북북동으로 방향을 잡아 달리고 있었다. 울릉도 쪽이라 한다. 블라디보스토크까지는 460마일, 모레 아침이면 닿을 것이라 한다. 12시10분. 선실에서 점심을 먹었다. 배에서는 항상 밥을 많이 준다. 배가 흔들리기 때문에 사람도 따라 흔들려 소화가 빨리 되기 때문에 많이 먹어야 한다고 했다.

하늘과 바다뿐인 망망대해다. 시간과 공간을 가늠할 수 없다. 이 배에서는 어차피 시간은 잊어야 하고, 공간으로 보이는 것은 물, 바다, 파도뿐이다. 포항에서 울릉도까지 세 시간 뱃길도 쉽사리 견디지를 못해 끙끙거려야 했던 이 배에서는 가소로울 뿐이다. 이틀쯤을 두고 달려야 뱃길이라 초조며 조급은 달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미움도 사랑도 잊어야 한다. 가랑잎 하나만도 못한 이 배 안에서는 누굴 미워해도 사랑해도 어찌해 볼 수 없다. 저 광막하고 늠름한 바다 같은 평상심을 가져야 하리라.

반주 한 잔의 취기에 겨워 선실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나니 3시경, 배가 흔들리고 있다. 조타실로 올라가니 파도가 3미터 정도는 될 것이라 했다. 그래도 배는 꿋꿋이 잘 간다. 울릉도 근해를 다 와 가느냐 하니 아직 멀었다고 한다. 밤이 되어야 울릉도 근해를 지날 것이라 한다. 4시가 되어 갈 무렵의 자일로컴퍼스에서는 깜빡이는 항해 위치점 부근에 죽변을 보여주고 있다.

6시 저녁 식사. 배 안에서의 밥은 단조로운 시간을 깨뜨려 주는 유일한 것이다. 식사 후 소화도 도울 겸 갑판으로 나갔다. 해가 지고 있다. 아무 것도 걸리는 것이 없이 수평선으로 떨어지는 장엄한 낙조를 보고 싶었는데, 해는 수평선을 멀찍이 남겨 둔 채 구름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수평선에는 하늘이 아니라 구름이 얹혀 있다. 바다에 어둠이 내렸다. 선실의 불빛이 밝게 빛났다.

8시30분경, 조타실은 온통 어둠이었다. 밤엔 다른 배들의 항로를 방해할까 봐 불빛을 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도로스가 파이프담배를 피우는 것도 불빛을 막기 위해서라고 한다. 울릉도에서 21.9마일, 약 40키로가 떨어져 있는 지점을 통과하고 있는 중이라 했다. 달이 없어 바다도 하늘도 칠흑이었지만, 별은 총총했다. 온갖 별들이 막힘 없이 걸림 없이 다 떠 있다. 바다에서 보는 별-. 별을 가리는 빌딩이 없어 좋고, 공해가 없어 시원하다.

어둠이 바다를 더 깊게 한다. 배는 끝 모를 바다와 어둠의 깊이를 가르며 달려가고 있다. 어둠의 깊이만큼 밤도 깊어가고 있었다. 목욕탕에 가서 바가지로 물을 떠서 샤워를 했다. 물이 귀한 배 안에서 많을 물을 쓰는 것 같아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시간의 어둠을 헤치려 하는 것일까. 김 부장이 선원실에 가서 물회를 마련해 왔다. 며칠간 생사와 희로애락을 함께 하고 있는 일행들과 술잔을 기울였다. 세상은 마음먹기 달린 것, 이 멀고 아득한 이 뱃길을 지루하다 하지 않는 마음 탓이라 하니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마시는 술이 기분 좋다고 누가 2차를 내고 싶어도 낼 수 없고, 오직 가지고 온 모든 것으로 해결하고 기분도 내야 한다. 가요무대가 방송되고 있는 10시35분. 방송은 위성을 타고 나오는 것이라고 한다. 배는 줄기차게 달리고 있다. 오직 바다에 달린 운명을 끌고 배가 달리고 있다. 기관이 돌아가는 소리만이 가득한 배 안의 밤이 깊어 가고 있다.

요람처럼 흔들리는 침상에 누웠다. 그리고 날이 바뀌었다.


2008년4월29일. 배는 밤새도록 흔들렸다. 침대에 누워있는 것이 마치 물 위에 누워 있는 것처럼 물결의 요동이 그대로 침대로 전해져 왔다. 해먹을 탄 것 같은 호사가 느껴지기도 했다. 아침 식사가 들어와 눈을 떴다. 6시경이었다. 갑판으로 나와 체조를 했다. 해가 하얀빛을 뿌리며 수평선을 벗어나고 있고, 바다가 밝게 빛났다. 배는 여전히 물결 따라 너울 따라 흔들리고 있다.

바다 한가운데서의 텔레비전 뉴스. 흠결 많은 청와대 모 수석 비서관의 사표가 오늘 수리될 것이라 한다. 그렇게도 인물이 없었던가. 이 푸르고 환한 바다처럼 푸른 세상, 밝은 세상 그래서 희망과 보람을 가지고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선창 밖으로 보이는 것은 오직 바다뿐인 선실에서는 어디쯤 가고 있는지를 알 수가 없다.  7시 반, 조타실에 올라가니 컴퍼스는 어로한계선을 넘어 흥남 앞 바다쯤을 지나가는 항해 위치점을 표시하고 있었다. 바다는 비교적 잔잔했다. 파고는 0.5에서 1미터 정도라고 한다.  보이는 것은 바다, 바다, 바다, 그리고 하늘뿐이었다. 배는 하얀 물보라를 꼬리처럼 끌며 전진을 계속하고 있었다. 시간은 오직 일렁이는 물결 속에서, 부서지는 물거품 속에서 흘러가고 있을 뿐이다.

배가 요동을 치고 있다. 운동을 하겠다고 갑판 위를 몇 바퀴 돌았더니 어지러움이 느껴졌다. 선실로 들어와 침상에 누웠다. 물침대에 누운 기분이다. 눈을 뜨니 10시가 넘었다. 배의 방향이 달리진 모양이다. 10시 반, 출발한 지 만 24시간이 되는 시각이다. 조타실로 올라갔다. 북한의 미사일 기지가 있는 성진이 위치한 위도쯤을 지나고 있었다. 방향은 9도. 정북으로부터 9도가 비켜 나 있다는 것이다. 10도에 맞추어서 달려나가는데 바람이나 물결의 영향으로 9~12도 사이를 넘나들며 달린다는 것이다. 성진에서 60마일쯤 떨어진 거리, 270마일 정도를 달려 왔다고 한다. 파일럿 스테이션(pilot station, 검역 요박지)까지는 120여 마일이 남았단다. 기항지까지 60마일 정도를 앞두고 검역 대기를 해야 하는 모양이다. 거기서부터는 도선사가 배를 운항한단다. 이물 꼭대기에 새가 한 마리 날아와 앉았다. 포항서부터 따라온 새라고 했다. 바다에는 앉을 수 없어 배 안만 계속 날아다니고 있다는 것이다. 블라디보스토크에 가면 그 새도 기항하게 될까.

11시에 점심이 들어왔다. 배에는 모두 17명의 승무원이 있는데, 선장, 통신국장 등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일들을 돌아가며 한다고 했다. 따라서 모두가 항해사요, 기관사요, 조리사인 셈이다. 당번이 되어 수시로 교대한다는 것이다. 오늘 주방을 맡은 사람은 식사를 들여오기 전에 식탁에 보를 먼저 깔아 주었다. 일하는 사람에 따라 하는 일도 다르다.

배는 바다뿐인 풍경 속을 줄기차게 달려나간다. 1시 반경, 조타실에 가보니 배는 성진을 넘어서 청진 근해를 향해 가고 있었다. 청진과의 거리는 60마일 정도라고 했다. 현재 수심은 3,100미터. 점심이 11시에 나온 이유를 조타실에서야 알았다. 조타실 시계는 2시 반이 훨씬 넘었다. 시계가 왜 이리 다르냐 했더니 지난 밤 자정을 기하여 1시간을 당기고 오늘 밤 자정을 기하여 또 한 시간을 당긴다는 것이다. 그래야 블라디보스토크에 이르렀을 때 그곳과의 시차를 맞출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11시의 점심시간은 배 안의 시계로는 12시가 되는 것이다. 조타실에서는 두 사람이 한 조가 되어 4시간씩 워치 키핑(whatch keeping)한다고 했다.

점심 때 무렵만 해도 파고가 높던 바다가 조용해 졌다. 배가 마치 땅 위에라도 오른 듯, 별 요동이 느껴지지 않는다. 갑판으로 나갔다. 바다는 모두가 길이면서 어느 곳도 길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배는 그 망망한 곳에 길을 잘도 알고 달리고 있다. 시속 1~2키로의 쿠로시오 해류를 타고 순항하고 있다고 했다. 운동이 될까 하여 갑판 주위를 몇 바퀴 돌았다.

배 안의 시간으로는 6시, 저녁을 먹었다. 해는 아직 중천에 있는 듯했다. 7시 반이 지나가면서 해는 기울어져 갔다. 붉은 빛을 드러내는가 싶더니 구름 속으로 희미하게 사라졌다. 오늘도 낙조의 장관을 볼 수 없었다.

위성으로 중계되는 텔레비전에서는 우리나라의 시간대로 7시 뉴스를 방송하고 있다. 미국의 소고기 수입 자유화를 앞두고, 광우병 문제 때문에 야당과 국민들의 거센 반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촛불 시위를 벌인다고도 한다. 중국 올림픽 성화 봉송을 반대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시위에 중국 대사관이 개입하여 우리나라 사람들을 다치게 했다는 보도를 하고 있다. 외교 문제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도 했다. 우리가 광막한 바다를 달리고 있는 사이에도 세상은 참 시끄럽게 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

바다의 밤이 되었다. 칠흑의 어둠이 바다를 덮고 있다. 하늘도 없고 물결도 없다. 파도도 없는 듯 배는 동력 소리만 살아 있을 뿐 별 요동이 없다. 김 부장이 오늘밤도 모주(謀酒)를 했다. 나를 생각해서일 것이다. 주방에서 고등어 통조림과 두부를 얻어 찌개를 끓여 안주를 장만했다. 소주잔을 나누며 내일 아침이면 당도할 블라디보스토크를 상상했다. 해외여행을 화제 삼으며, 어느 곳을 가 봐도 우리나라가 제일 좋은 곳이더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배의 시계로는 11시20분, 자정이 지나면 또 한 시간을 당긴다고 했다. 내일 6시 경에 블라디보스토크 항구에 도착한다는데, 우리 시간으로는 4시가 되는 셈이다.

내일은 우리에게 또 어떻게 다가 올 것인가.


2008년 4월 30일. 눈을 뜨니 블라디보스토크 시각 7시경, 이내 아침밥이 들어왔다. 배가 서행을 하고 있었다. 창 밖을 보니 육지가 보인다. 드디어  블라디보스토크에 당도하게 되는 모양이다. 배가 멈추었다. 파일럿 스테이션(pilot station). 파일럿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8시 반경에 온다고 한다. 배가 좌우로 요동하고 있다. 8시20분경, 배가 움직인다. 파일럿선이 다가오고 있었다. 무작스럽게 생긴 낡고 작은 배였다. 우리가 탄 배 쪽으로 서서히 다가와 우리 배에 선체를 붙였다. 나이가 제법 들어 보이면서 건장한 체격을 가진 파일럿이 우리 배 쪽으로 옮겨 탔다. 도선을 위해서다. 8시40분경이었다.

드디어 우리의 기항지 블라디보스토크로 들고 있다. 배가 항구로 다가가자 크고 작은 빌딩들이 우람한 모습을 드러냈다. 그 중에는 20층쯤은 될 듯한 연해주 청사가 높다랗게 서 있고 고색 짙은 블라디보스토크역도 보였다. 역 앞에는 기차가 서 있었고, 육교를 통하여 사람들이 넘나들고 있었다. 건물 위에 러시아어로 ‘ВЛАДИВОСТОК’이라는 커다란 이름을 새겨 얹은 건물은 해양역이라고 한다. 부두 한 쪽에 수많은 승용차들이 줄을 지어 서 있고, 거대한 철골구조의 주차 빌딩이 보인다.-나중에 알고 보니 일본의 자동차상사였다. 블라디보스토크의 자동차 시장은 일본이 지배를 하고 있다고 한다.- 언덕바지와 언덕 위에 낮고 높게 도열해 있는 건물 중에는 고색이 창연한 것도 있고, 지은 지 오래지 않은 것도 보였다. 지금도 계속 개발되어 가고 있는 듯했다. 높다란 주 청사 옆에 무슨 박물관일 듯한 건물도 보이고, 그 옆 언덕바지에 우리나라 현대호텔도 보였다. 부두에는 막 하역한 듯한 많은 중장비들이 도열해 있는데, 모두가 현대, 두산 등 우리나라 제품들이었다. 출입국관리소 직원인 듯한 사람들이 군복 차림으로 부두를 오가고 있는데, 그 중에는 금발의 여성도 보였다. 이곳은 이제 겨우 봄이 온 듯 나무는 막 움이 트려 하고 언덕바지에 파란 기운이 겨우 보였다.

9시 반 배와 부두를 잇는 다리가 설치되었다. 10시 반경 블라디보스토크의 출입국관리소 직원과 세관원이 올라와 인원 점검을 하면서 여권과 실물을 대조하고 물품을 검열하는데,  모두 여성들이 와서 점검을 했다. 입국 심사가 끝난 것은 11시40분 경이었다. 배에서 부두로 내리는 다리 앞에 이동 초소를 설치했다. 우리가 이곳에 머무는 동안 우리의 출입을 통제하기 위해서인 모양이다.

장장 이틀 간을 달려온 뱃길 끝에 이제야 우리의 기항지 비로소 블라디보스토크에 완전히 당도한 것 같다. 사실 우리의 여정의 제일 목표는 뱃길 그 자체다. 기나긴, 멀고먼 항해를 통해서 승선의 고락을 체험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해양의 꿈을 키우게 하는 것이다. 이틀의 뱃길 동안 우리는 순항하였다. 다행이라 할까. 역경에 대한 체험을 할 수 없었던 것이 아쉬움이라 할까. 휘몰아치는 파도와도 싸워가며 서로 지혜를 모아 그 험난을 헤쳐 나가는 체험도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나 선원들도, 선생님들도, 아이들도 우리의 지나온 길이 하늘로부터 축복 받은 항로였다는 데는 모두들 별 이의가 없었다.

이제 블라디보스토크에 오르기는 제2의 목표다. 이 기항지에 어떤 정을 남기고, 무슨 의미를 담아 갈까 하는 것은 온전한 우리의 몫이다. 우리가 체험해야 할 또 하나의 학습이다. 아름다운 꿈을 남기는 것도, 부푼 이상을 얻는 것도 모두 우리의 몫이다.

블라디보스토크의 하늘이 푸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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