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는
항구를 서서히 벗어나고 있었다. 울릉도로 가는 썬플라워호도
출항의 고동을 울린 있다. 높고 낮은 굴뚝들이 버티고 선
포스코도 그림 되어 멀어져 간다. 영일만도 아득한 풍경이
되어 가물가물해져 간다. 오직 보이는 것은 바다, 바다,
바다…….
해양과
원양실습을 위하여 아이들과 함께 어제 섬에서 나왔다.
실습선 '해맞이호'를 타고 포항항을 떠나 일본을 향하여
달려 나아간다. 일주일은 족히 걸려야 할 뱃길이다. 배는
어느덧 항구를 떠나 먼바다를 향하여 항진을 계속하고 있다.
이제 며칠 동안은 세상의 모든 일을 바다와 하늘에 주어
버려도 좋겠다고 생각할 무렵 옆구리에 차고 있던 전화기에서
신호음이 울린다. 학교의 교감선생님이다. 큰일이 생겼다고
한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아이들끼리 다툰 일이며,
급식소의 무슨 일, 학부모회와의 무슨 일이 S일보에 보도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도교육청의 담당 장학사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어떻게 된 일이냐며 경위를 보고하라 한다는 것이다. 진상을
알아보고, 필요한 내용을 다듬어 보고하라고 했다.
희미하게
보이던 뭍의 모습도 깨끗하게 지워지고 배는 그야말로 창해일속(滄海一粟)이
되어 푸른 바다 위를 달려나가고 있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아직은 뭍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다툰 일이라……,
그래, 그것이다. 지난 달 초에 직원회의를 하고 있는 사이에
1학년 아이들이 다투어 한 아이가 조금 다쳤었다. 병원에
가서 치료를 하고 왔는데, 서로 친한 사이인 피해자와 가해자의
부모들이 나서 두 아이의 일을 원만하게 처리하고, 학교에서도
진상을 조사하여 가해한 아이에게 벌로 봉사활동을 시켰다.
한 달도 넘은 그 일이 어찌하여 지금에 와서 문제가 된
것일까. 급식소와 학부모회에 관계된 일이라…….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무슨 일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나 모르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도교육청에서
그 기사를 볼 때는 학교에 무슨 큰일이 일어난 줄 알 것이다.
경영자가 학교 경영을 잘못하고 학교의 일이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을 것으로 알 것이다. 맞아, 학교 일이 잘못되어
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의 판단이 적절하지 못하여, 나의
경영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많아 나도 모르게 학교의
일이 잘못되어 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당연히 내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다.
혹
대수롭지 않은 일을 기자가 잘못 알고 사실과는 거리가
있는 일을 말한 것이라 할지도, 그래서 학교에 별 큰 잘못이
없는 일이라고 가정하더라도, 지역 사회의 여러 사람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잘 이루어놓지 못한 잘못이 나에게 있다.
이 또한 한 기관의 책임을 맡은 사람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못해 놓은 게 아닌가. 그 기자가 야속하다고 원망은
할 수 있을지언정 내 잘못에서 나는 자유로울 수 없다.
이래저래 나의 잘못은 크기만 하다.
세상에
하고많은 학교가 있고, 그 학교에 하고많은 경영자가 있다.
그 중에는 학교를 잘 경영하여 '좋은 뉴스'의 대상이 되고
있는 사람도 간혹 있고, 그리고 오늘의 나처럼 '나쁜 뉴스'의
대상이 되고 있는 사람도 더러는 있다. 그러나 그 많은
학교와 경영자들이 뉴스의 대상이 되는 일이 흔하지는 않다.
단위 학교가 뉴스원이 될만한 커다란 사회적인 이슈를 제공하는
일은 드물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책임을 맡고 있는 학교가
뉴스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은 73㎢의 이 좁은 섬을 살다
보니 그런 것은 아닐까. 섬에 오직 하나뿐인 고등학교의
경영자이기 때문에 섬사람들의 시선을 많이 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이 또한 내가 다스려가야 할 일이다. 그런 만큼 더욱 큰
사회적인 책임을 인식해야 할 일이다. 내 아무리 섬이 좋아
다시 찾아와서 하는 섬 살이라 할지언정, 그것을 잘 다스릴
수 없다면, 누가 나의 섬 사랑의 마음을 이해해 줄 것인가.
사랑은 누구의 이해를 바라면서 하는 것은 아니지만, 섬사람들의
이해를 얻지 못하는 섬 사랑이란, 본래 고적한 섬 살이를
더욱 쓸쓸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이제는
뭍과의 통화거리도 벗어나 버렸다. 배는 점점 멀고 아득한
바다 한 가운데로 들고 있다. 물빛이 점점 짙푸른 빛깔로
변해가며 배의 고물에서 갈라지는 물보라가 더욱 하얗다.
파도가 점점 높아간다. 갈바람에 높아지는 파도라고 한다.
배가 요동을 한다, 몸이 기우뚱거린다. 중심잡기가 어렵다.
아직은 서너 시간 정도 밖에 달리지 못했는데 앞으로 스물
대여섯 시간은 더 달려야 우리의 목적지인 일본 스루가항에
닿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이 파도를, 이 요동을 견뎌
나갈 일이 아득하기만 하다. 그러나 이겨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목적지에는 반드시 가야할 뿐만 아니라 이 배에는
나 혼자만이 아닌 많은 아이들이 있고, 선생님들이 있다.
함께 이겨 나가야 할 파도다.
내가
이겨나가야 하는 것은 이 바다의 파도만이 아니다. 섬 살이의
파도를 이겨나가야 하리라. 이 바다의 파도는 며칠만 견뎌내면
될 것이지만, 아직은 수많은 날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섬 살이가 아닌가. 내 섬 사랑이 쓸쓸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것이 더욱 따뜻한 빛을 내기 위해서라도 섬 살이의 파도를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된다.
배는
멈춤 없이 달려나가고 있다. 파도가 치고 있다.
내가
이겨나가야 할 파도들이 뱃전에 부서지고 있다.(2007.5.15.10:10)♣
*덧붙이기
나중에
학교로 돌아와 보도 내용을 살펴보니, 아이들의 폭행 사건과
함께 학교 급식 관련 납품 업체에게 낙찰가보다 더 싼값으로
납품할 것을 요구했다는 것, 전입학 희망자를 모두 수용하지
않고 선별적으로 허용했다는 것, 어머니회와 특정 교사간에
학교 운영 협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 등이다. 그 내용에
'ㅇ ㅇ 종합고 총체적 위기'라는 표제를 달았다. 억장이
무너지는 듯했다. 섬 살이의 고단함이 새삼스레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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