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로 향하다 원양실습의 일정 중에서 오늘은 정박하고 있는 스루가항을 떠나 일본의 몇 고적지를 둘러볼 예정이다. 배 안에서 맞이한 일본에서의 첫날 아침 8시30분, 아이들과 함께 부두에 들어온 전세버스를 타고 여정에 나섰다. 스루가IC를 지나 고속도로를 달린다. 메이신 고속도로라 한다. 차창 밖으로 한적한 시골 풍경이 펼쳐진다. 산에는 숲이 자욱하게 우거져 있다. 일본은 해양성 기후에 의해 고온 다습한 곳이라 나무들이 잘 자라는 모양이다. 삼나무와 대나무들이 죽죽 뻗어 있다. 농촌의 풍경, 모내기를 해 놓은 논이며, 맞배지붕의 이층집이 촌락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집 주위에 자그만 정원이 있을 뿐, 마당은 보이지 않는다. 땅을 아껴 쓰는 일본의 모습이 보인다.  들판은 우리의 시골 풍경이나 다를 바 없다. 산세도 아주 부드럽다. 나가하마(長浜), 마이하라(米原)라는 곳을 연이어 지나더니 히코네(彦根)터널을 통과하고, 타가(多賀), 히타치오(泰莊)라는 곳을 지난다. 역시 우리네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시골 풍경이다. 모내기를 한 곳도 있고 하지 않은 논도 보인다. 류오(龍王), 리토(栗東)라는 곳을 지나 쿠사스(草津)에 이르러 교토와 오사카로 갈라지는 이정표가 나타난다. 쿠사스 휴게소에 이르러 잠시 쉰다. 우리나라 고속도로 휴게소에 비하면 간이 휴게소 같다. 음료수와 과자만을 팔고 있다. 다시 출발하여 오스(大津)터널을 지나더니 교토히고시(京都東) IC를 통과한다. 자동 인식 장치에 의해 통행료 정산 과정을 거치지 않고 그대로 통과한다. 교토 시가지가 펼쳐진다. 도로에는 차선의 색이 모두 흰색인데, 소형차들이 많이 다닌다. 신간선이 교각 위를 달리고 있고, 거리는 빛 바랜 아파트며 건물들이 많이 보인다. 교토는 일본의 에도시대(江戶時代:1603∼1867) 전까지 정치적 중심지가 되었던 곳으로 우리나라의 경주와 같은 고도라고 한다. 지금은 140만 명 정도가 살고 있으며 옛 왕궁인 교토고쇼(京都御所)와 도쿠가와가(德川家)의 재경거관(在京居館)인 니조성(二條城), 가쓰라이궁(桂離宮:別宮) 등의 사적지가 있고, 이 밖에 히가시혼간사(東本願寺), 니시혼간사(西本願寺), 긴카쿠사(金閣寺), 긴카쿠사(銀閣寺), 난젠사(南禪寺), 도지사(東寺), 고류사(廣隆寺), 류안사(龍安寺), 기요미즈사(淸水寺), 헤이안신궁(平安神宮) 등 10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사찰, 신사가 2,000여 개 남아 있다고 한다. 그 중에서 니조성(二條城)과 은각사(銀閣寺), 청수사(淸水寺)를 둘러보기로 했다. 교토 거리를 달리다 보니 지역 안내판에 숫자 뒤에 '條'자를 붙인 이름이 많다. 우리가 둘러보려는 '니조성(二條城)'도 마찬가지다. 나중에 알고 보니 1조에서 10조까지 있는데, 1조는 왕이, 2∼3조는 귀족이, 4∼5조는 상인이, 6∼10조는 평민이 사는 지역이라 한다. 그러나 계층별 주거 지역을 표시하고 있는 것이다. 전제 권력 시대의 한 역사를 본 셈이다.   니조성(二條城)에서 2시간 넘게 달려 온 끝에 첫 목적지인 니조성에 당도했다. 성 앞 광장에 차를 세우고 성 안으로 들어간다. 옛날 우리 아이들이 입었던 검정 교복을 입은 일본 아이들이 견학을 마치고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가 버린 일제(日帝)의 잔재를 그들은 전통으로 지키고 있는 것이다. 니조성은 우리나라가 임진란 중일 때인 게이쵸(慶長) 8년 1603년, 토구카와 계의 초대장군인 이에야스(德川家康)가 쿄토 궁궐을 지키고, 장군들의 쿄토 방문시 숙소로 쓰기 위해 짓기 시작하여 1623년에 완성시킨 것으로, 지금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고 한다. 니조성은 성곽으로서의 기능보다는 도쿠가와 쇼군 일가의 숙관(宿館)이나 의전장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며, 이곳에서 쇼군 취임 행사가 열렸고 1867년에는 15대 쇼군인 도쿠가와 요시노부(德川慶喜)가 에도 바쿠후(江戶幕府)가 쥐고 있던 국가 통치권을 덴노(天皇)에게 되돌려 준 다이세이 봉환(大政 奉還:왕정복고) 의식이 열렸다고도 한다. 그리고 일본의 다른 성들이 웅장한 성채를 자랑하는데 비해 니조성은 화려한 실내 장식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모모야마(挑山)시대 후기의 대표적인 성곽으로 건축, 회화, 조각, 정원 등이 종합적으로 존재하는 일본 유일의 성이다. 이 가운데서도 국보로 지정된 니노마루고텐(二の丸御殿:접견실)은 무가(武家)풍 건축 양식으로 모모야마 시대 미술의 결정체로 불린다고 한다. 이곳의 입구를 통해 많은 관광객들과 함께 내부로 들어갔다. 의전을 위한 수많은 방들이 그 용도에 따라 다양한 크기와 모습을 갖추고 있었고, 많은 회화, 서예 작품으로 내부가 장식되어 있었으며 쇼군과 관련한 의식이 실물 크기의 인형으로 만들어져 관람용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이에야스의 손자면서 에도 바쿠후의 3대 쇼군인 이에미쓰(家光)는 덴노의 방문에 대비해 당대 최고라던 가노(狩野)파 화가들의 그림으로 접견실을 꾸며놨는데 아이러니하게도 1867년 바로 그 자리에서 마지막 쇼군인 요시노부가 메이지 덴노에게 무릎을 꿇고 통치권을 넘겨주는 비운을 겪게 된다. 걷는 발자국을 따라 소리를 내는 마루가 있었다. '나이팅게일 마루'라는 것으로 닌자(忍者) 등 침입자를 경계하기 위해 발자국에 눌릴 때마다 마루판 밑의 꺽쇠와 못이 살짝 부딪쳐 새 소리 같은 소리를 내도록 고안되었다고 한다. 복도를 따라 니노마루고텐을 한 바퀴 둘러 나오니 발목이 시릴 정도로 넓고도 큰 실내 공간이 보는 이를 놀랍게 했다. 더욱 사람들을 놀랍게 하는 것은 정원이었다. 넓이조차 가늠할 수 없는 광활한 공간에 매우 짜임새 있는 공간 배치로 갖가지 크고 작은 나무로 조경해 놓은 것이 보는 이를 감탄케 했다. 곳곳에 설치해 놓은 연못과 해자에 고인 물이 마치 분재처럼 아기자기하게 다듬어 놓은 수목들과 어울려 여러 폭의 아름다운 풍경화를 연출해 내고 있었다. 일본의 발달한 정원 문화의 결정체를 이곳에서 한 눈에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일본에 이런 아름다운 건축물과 정원들이 창연한 역사 속에서도 유지될 수 있는 것은 외침을 받은 적이 없는 그들의 역사와도 무관하지 않은 것 같았다. 자기네들끼의 세력 다툼 때문에 내란이 일어나 시설물들이 파괴되고 소실되기는 했지만, 외적의 침입으로 인해 파괴된 일은 없는 것이 교토가 고도로서 역사를 간직할 수 있는 연유의 하나가 된 것이 아닐까. 그것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문화재는 그의 대부분이 외침에 의해 파괴되거나 소실되었다. 일본이 바로 그 파괴와 소실의 주범이라 생각하니, 니조성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에 감탄만은 하고 있을 수 없다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수많은 관광객 사이를 비집듯이 하며 문을 나서면서 돌아보는 니조성의 웅장하고 화려한 모습, 저것이 바로 우리 민족에게 고난을 준 힘이 아니었을까 하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섬뜩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은각사(銀閣寺)와 청수사(淸水寺) 지세끼(智積院)회관 일휴암(一休庵)이라는 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지세끼(智積院)은 일본 불교의 한 종파인 진언종 지산파의 총본산이라고 하는데, '일휴암'이라는 회관을 운영하면서 여행객들에게 식사와 기념품을 판매하여 수익을 얻고 있는 것 같았다. 회관 3층으로 올라가니 다다미가 깔린 커다란 방에 부처님을 모셔놓고 긴 탁자에 고기 튀김 종류로 찬을 채운 도시락을 준비해 놓았다. 부처님을 모신 방에서 고기 반찬의 밥을 먹는 일이 생경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입맛에 잘 맞지는 않았지만 이국의 맛이라 생각하며 끼를 때우고 회관을 나왔다. 회관 뒤쪽으로는 커다란 절집이 서 있고, 우리네 건축 양식과도 닮은 명왕전이란 건물도 보이고 도열해 선 부도들도 보였다. 지세끼를 출발하여 창연한 고색의 일본 전통가옥이며 빛 바랜 아파트들이 즐비한 거리를 지나 두 번째 목적지인 킨카구지(銀閣寺)에 도착한 것은 오후2시가 되어 갈 무렵이었다. 절로 들어가는 길목에 기념품들로 관광객을 부르고 있는 가게들의 풍경은 관광지에서 볼 수 있는 우리네 모습과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인파 속을 헤집으며 절을 들어서려는데 무성한 동백나무를 깎아지른 절벽처럼 다듬어 놓은 것이 사람을 압도했다. 안으로 들어서자 사원이라기보다는 넓고도 크게 잘 꾸며진 별장 같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이 은각사의 정식 명칭은 히가시야마 지쇼사(東山慈照寺)로 무로마치 막부시대 8대 장군 아시카가 요시마사(足利義政)가 은거 생활을 보내기 위해서 조부인 3대 장군 아시카가 요시미쓰(足利義滿)가 축조한 킨가꾸지(金閣寺)를 모방하여 1482년에 히가시야마 지쇼사를 건립한 것이 그 기원이라고 하며, 1994년 세계 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절집에 익은 눈으로 보면 절 분위기가 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단조로운 구조를 하고 있고, 스케일도 웅장하지 못했으나 니조성처럼 오밀조밀한 조경으로 정원을 잘 꾸며 놓았다. 커다란 분재와도 같은 소나무를 비롯한 갖가지 나무들과 죽죽 뻗은 대나무 숲, 적절하게 배치한 연못들로 구성된 정원이 보는 이의 눈과 가슴을 정감에 젖게 했다. 관음전과 도구도(東求堂)라는 곳이 일본의 국보로 되어 있고, 도구도 안에 있는 다실 도진사이(同仁齊)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원 건조물이라 한다. 정원에는 모래를 쌓아 올려 원통형을 만들거나 평평하게 밭처럼 꾸며 놓은 것이 보였다. 바람이 불고 비가 와서 씻기면 또 그렇게 쌓아올린다고 한다. 이것은 가레산스이식 정원으로 물을 쓰지 않고 자연을 표현한다는 불교 선종에 기반을 둔 형식으로 모래는 바다를 상징하고 돌은 섬을 뜻한다고 한다. 조물주가 만들어낸 자연을 사람의 손으로 다시 한번 꾸며내는 일본 사람들의 재주를 놀라워하며, 잘 다듬은 정원을 산책하는 기분으로 경내를 한 바퀴 돌아 나왔다. 청수사(淸水寺, 기요미즈테라)는 은각사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있었다. 자전거가 활개를 치는 거리를 지나 청수사에 도착한 것은 3시경이었다. 은각사보다 더 많은 관광객들이 보였다. 서양인들도 많이 보이고, 우리나라의 어느 여고 수학여행단을 태운 버스도 보인다. 청수사로 올라가는 언덕바지 길 양쪽에는 기념품 가게가 빽빽이 들어차 있는데, 인산인해를 이룬 사람에 싸여 걷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맑은 물이 나는 곳이라 하여 청수사라 했다는 이곳의 물을 마시면 장수를 할 수 있고, 전쟁에 나가기 전에 마시면 승리하는 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나라 시대 말 778년 지금 절이 위치하고 있는 오토와 산의 황금 폭포수를 발견한 승려 엔친 대사가 폭포 위에 관음상을 모시고, 이후 헤이안(平安) 시대의 무관 사카노우에노 다무라마크가 본존으로 십일면천수관음을 안치한 것이 시초가 되었으며, 798년 당(堂)이 세워져 북관음사로 칭해지다가, 807년 가람이 건립되면서 청수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입구를 들어서자 붉은 색 단청이 찬란한 정문이 우뚝 솟아 있다. 일본의 다른 절에서는 볼 수 없는 단청이 입혀져 있는 것이 이 절의 특색이라 한다. 언덕 앞으로 돌출되어 있는 본전은 139개의 나무 기둥이 높다랗게 받치고 있다. 한눈에 펼쳐지는 지는 교토를 보며 이곳에서 몸을 던지는 사람도 가끔씩 있다고 한다. 자진(自盡)으로 자비(慈悲)에 안기려 함인가, 이 절집에도 죽살이의 풍파가 있음에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청수사'라는 이름답게 곳곳에 맑은 물이 흐르고 있는 곳이 보였는데, 높다란 지붕 같은 곳에서 세 줄기의 물이 떨어지고 있는 곳이 있었다. 그 세 줄기는 각각 지혜, 사랑, 장수를 의미한다고 하며 선택하여 물을 받아 마시는데 세 가지를 다 마시면 효과가 없다고 한다. 재미 삼아 들을 이야기로 생각하기로 했다. 이상한 경험을 했다. 100엔씩을 내고 들어가 보라는 곳이 있기에 호기심을 가지며  들어갔는데 칠흑 같은 어둠뿐이었다. 손잡이로 길을 더듬으며 들어가다 보니 조그만 빛이 보이는데 돌 위에 이상한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무슨 뜻인지도 모를 그 글자를 보고 어둠 속을 헤쳐 나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淸水寺(きよみてら)隨求堂(ずいぐどう) 胎內めぐり' 즉, '청수사 수구당 태내 돌기'라는 것으로 안내 팜플렛을 보니 그 어둠은 대비모(大悲母)의 뱃속이고, 어둠 속에서 한 점의 광명(光明)을 발견했을 때, 느껴지는 심신의 신생(新生)을 체험해 보라는 것이다. 별 것 다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뿐 신생을 체험하는 느낌을 가질 수 없는 것은 일본인과의 정서적 차이일까. 종교적 신심이 없어서일까. 청수사를 한바퀴 돌아 나오는 느낌도 그랬다. 일본의 전통적인 사찰로 한 해 300만이 넘은 사람들이 찾아올 정도로 명성이 높은 절이라지만, 나에게는 우리나라 산사의 고즈넉한 암자보다 깊은 감동을 주지는 못했다. 언어의 차이로 인해 안내판 하나도 잘 이해할 수 없는 어려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와는 다른 정서의 차이가 감동의 정도를 달라지게 하는 것 같았다. 저들이 명찰(名刹)이라 생각하는 그 절집의 모습도 우리나라의 범상한 절집보다 감동을 주지 못하는 것도 바로 정서의 차이 때문일 것이다. 원양 실습을 나온 아이들을 데리고 일본의 고적지를 구경하는 것은 실습에서 덤으로 얻은 것이지만, 그 '덤'도 정서의 폭을 넓히고 또 다른 견문을 얻는 하나의 학습이라 생각하며 메이신 고속도로를 달릴 때 해는 조국 대한민국이 있는 서쪽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교토, 그 고적지는 우리의 나라 그 햇빛과 바람 속에서 익숙해진 정겨운 정서를 다시 한번 가슴에 새기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까. 내일은 지난 해 와 본적이 있는 오사카 성으로 간다고 한다. 그것은 또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 것인가. ♣   ** 이어지는 글 보기 섬사람 되어  살다 보니 실습선 승선기Ⅰ 교토의 고적지를 가다 다시 간 오사카성 바람아 불지 마라 실습선 승선기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