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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귀로 귀로의 뱃길은 30시간이 아니라 50시간도 넘게 걸린 것 같다. 하늘이 돌아가는 길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7년5월18일
8시, 스루가항을 떠날 채비를 갖춘 배는 사다리를 걷고
배는 전진해 나갔다. 짧은 인연이었지만 일본이여, 스루가여 잘 있으라고 손을 흔들며 항구를 벗어 나간다. 입항할 때의 풍경들이 다시 펼쳐진다. 산이 보이고, 그 산자락 아래 조그만 마을이 보이면서 스루가항은 점점 멀어져 간다. 바람이
많이 분다. 물결이 일고 있다. 너울이 거세게 밀려오고
있다. 선장이 와서 이 기상 상태에서는 운항을 하기 어려워 배를 돌렸다며 내일 아침에 출항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포항에 연락해 보니 동해 항로상에 지금 주의보가 내려져 있고 어제부터 여객선도 못 뜨고 있는 상태라고 한다. 물을 아껴 써야겠다고 한다. 조타실에 올라가니 8마일 정도를 나왔다가 돌아가고 있는 중이라 한다. 배가 왔던 길을 되돌아가고 있는 모습이 전자해도에 그려지고 있다. 배는 다시 스루가항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맞바람이 거세게 분다. 걷기가 힘들 정도였다. 배는
서서히 스루가항으로 들고 있었다. 아침까지 머물렀던 그
자리를 다시 갈 수가 없다고 한다. 부두를 비워주어야 하기
때문이란다. 그 맞은편의 화물 부두로 전안을 한다. 부두에
연락이 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관리인이 나와 던지는 밧줄을
받아 준다. 선수와 선미의 밧줄이 풀리고 감기기를 거듭한
끝에 배는 부두에 몸을 붙였다. 10시에 부두로 들어 접안을
격랑의 시간 2007년 5월19일, 간절한 기도를 하늘이 들어주신 건지, 스루가항의 아침은 밝고 환했다. 바다는 물결 하나 일지 않는 그야말로 장판 바다였다. 9시 부두에 매여진 밧줄을 풀었다. 뱃머리가 돌려지기 시작했다. 스루가항이 조금씩 멀어져 갔다. 한 시간 여를 달리자 산이 보이고 마을이 보이는 뭍의 풍경들은 지워졌다. 조타실로 졸라가니 시속은 12노트, 어제 회항한 흔적이 해도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순항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더니 지금 아무리 좋아도 가다가보면 날씨도 달라질 수 있고 파도도 일기 마련이라 말했다. 바다 지형도 곳곳이 다 다르기 때문에 한 곳을 보고는 알 수 없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11시 무렵부터 배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너울이 배를 향하여 밀려오고 파도가 뱃전에서 부서지고 있었다. 속이 틀어지려 했다. 침상에 누웠다. 선창을 통해 비쳐지는 바다를 볼 수 있을 뿐이었다. 비몽사몽의 시간들이 흘러갔다. 12시에 점심으로 국수가 나왔다. 많이도 담은 것을 틀어지려는 속을 생각하여 조금만 먹었다. 간혹
섬들이 선창을 지나갔다. 독도처럼 바위하나가 오도카니
솟아있는 2시반경 여권 통합 작업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뉴스가 나온다. 서로 비난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 바다, 이 파도 위에 서 보라. 누구를 나쁘다 할 수 있단 말인가. 정치는 지금 격동을 하고 있고, 우리는 지금 격랑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노 대통령이 '대의도 중요하지만 대세를 거역하지 않겠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무슨 수로 이렇게 밀려오는 파도의 대세를 거역할 수 있단 말인가. 3시 반경, 창 밖의 바다에 먼 육지가 보인다. 10시간은 넘게 달려야 일본 수역을 벗어날 수 있다고 하니, 아직은 일본 영해일 것 같다. 파도는 여전히 거세다. 배는 쉼 없이 요동을 친다.
바다에 누워 5시가 넘어간다. 선창에는 하늘만 보였다가 바다만 보였다가 하기를 거듭한다. 천당과 지옥을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는 것이다. 박해수의 '바다에 누워'라는 시가 생각난다. 그는 바다에 누워 봤을까. 이 격랑의 바다에 몸을 눕혀 봤을까.
……마음은 시퍼렇게 흘러간다/ 바다에 누워/ 외로운 물새가 될까/ 물살이 퍼져 감은/ 만상을 안고 가듯 아물거린다./ 마음도,/ 바다에 누워/ 달을 보고, 달을 안고/ 목숨의 맥이 실려간다/ 나는 무심한 바다에 누웠다/ 어쩌면 꽃처럼 흘러가고/ 바람처럼 사라진다/ 외로이 바다에 누워/ 이승의 끝이랴 싶다
6시에 저녁상이 차려졌다. 당번 아이들이 모두 정신을 차리지 못해 선원들이 직접 밥을 들고 왔다. 식탁에 차려진 그릇들이 배의 요동을 따라 이리 미끄러지고 저리 쏠리고 하는 바람에 밥을 먹기가 어려웠다. 속이 거북해서도 먹을 수가 없다. 점심부터 아무 것도 먹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끼니는 때워야 할 것 같아 두어 술을 먹었다. 다시 자리에 누웠다. 7시가 가까워지자 날이 어두워진다. 바다에도 밤이 내리고 있다. 물빛이 점점 검어지더니 창 밖은 암흑의 커튼이 쳐진다. 밤이 깊어가도 파도는 잠들 줄 모른다. 배는 요동을 거듭한다. 나날을 이렇게 살라고 한다면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다. 선원들이 참 존경스러워 보인다. 어떻게 늘 계속되는 이런 생활을 견뎌 낼 수 있을까. 직업 정신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9시가 넘어섰다. 바다를 달린 지 12시간을 넘어서는 것이다. 배의 요동은 잠시도 그치지 않는다. 조금 진정되는가 싶다가도 다시 격동을 한다. 침상에 누워 있는 몸의 움직임은 내 의지와는 전혀 관계없다. 파도 따라 배의 요동을 따라 움직여야 한다.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텔레비전에서는 연개소문이 방영되고 있다. 당태종 이세민이 연개소문에게 패하여 항복하는 장면이 나오고 있다. 이 바다의 싸움은 승자도 패자도 없다. 바다도, 배도, 사람도 하늘이 하는 대로 맡겨 둘 수밖에 없다. 가랑잎보다도 못한 조그만 배 하나가 이 광막한 바다를 무엇을 믿고 달려가고 있는가. 기관의 힘을 믿고 있는가, 연료의 힘을 믿고 있는가. 아니다. 하늘을 믿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나마 달려 갈 수 있는 것도 하늘의 허여(許與)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리라. 10시 반이 넘어서자 파도도 지쳤는지 조금씩 진정되어 가고 있는 듯했다. 비몽사몽의 잠 속으로 빠져든다.
물길 일천오백오십 리 2007년 5월20일, 배가 다시 요동을 친다. 어둠 속에서 시간을 보니 2시45분. 파도는 사람보다 먼저 이른 잠을 깬 모양이다. 요동에 몸을 맡겨버렸다. 몸을 맡기지 않을 도리도 없다. 다시 깬 듯 만 듯한 잠 속에 빠진다. 다시 눈이 뜨여진 것은 5시 반경이지만 배의 요동은 그칠 줄 모른다.
속이 다시 뒤틀어지려 했다. 선실로 내려와 침상에 다시 누웠다. 6시40분 아침상이 차려졌다. 쉽게 먹을 수가 없다. 속이 거북해서이기도 하지만, 그릇들도 파도를 따라 요동을 치는 바람에 숟가락질을 옳게 할 수가 없다. 그래도 일행 중의 한 사람은 밥그릇을 너끈히 비우고 소주까지 두어 잔 곁들인다. 그가 놀랍게 보인다. . 9시,
만 24시간 꼭 하루를 달린 셈이다. 사람들은 조금씩 생기를
찾아갔다. 배의 요동은 있었지만, 지난밤 같지는 않았다.
견딜만했다. 갑판으로 나갔다. 수평선 위로 구름은 떠 있었지만,
하늘은 높고 푸르렀다. 바닷물도 청옥빛을 내고 있었다.
가끔씩 너울을 지어 배를 일렁거리게 했지만, 푸르게 트인
바다가 눈과 가슴을 시원하게 했다. 11시 반 갑판으로 올라가니 조그만 고깃배가 멀리서 지나간다. 육지가 가까워지고 있는 모양이다. 드디어 뿌연 이내 속에 먼 그림자가 비친다. 대보항이라 했다. 망원경으로 보니 산의 모습이 뚜렷했다. 1시간 반 후면 대보에 이르고, 다시 40분 정도를 더 가면 포항항에 다다르고 접안을 마치면 2시쯤이 될 것이라 한다. 한 시간에 평균 시속 11.5노트로 달렸다 하니, 포항항에 닿으면 총 620km, 일천오백오십리를 달리는 셈이다. 까마득한 거리다.
체험은 파도를 넘어 오후 1시 대보항의 모습이 선수 쪽에서 희미하게 드러난다. 드디어 내 나라 땅에 당도하는 것인가. 멀고도 험한 뱃길이었다. 배가 속력을 늦춘다. 이대로 가면 2시가 못 되어 포항항에 도착할 수 있지만 2시 반에 세관 검사를 받기로 연락이 되어 그 시간을 맞추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2시20분
입항의 뱃고동 소리가 울리고 선원들이 선수로 나가 윈치를
돌려 밧줄을 풀기 시작한다. 배는 서서히 내항으로 들고
있다. 여객선터미널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아치형의
유리창 위에 햇빛이 내려앉아 있다. 2시 30분에 배는 부두에
몸을 붙였다. 밧줄을 던져 몸을 묶었다. 곧이어 관세청의
배가 오고 세관원들이 승선했다. 통관 검사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4시가 되어서야 겨우 배 밖을 나설 수가 있었다.
이제 6박 7일의 멀고 험했던 원양 실습 승선 체험이 끝나는 것인가. 30시간 배를 타고 가서 스루가항에서 나흘 밤을 기항하다가 다시 30시간 배를 타고 오는 사이에 아이들은 무엇을 실습하고 무엇을 겪고 무엇을 느꼈을까. 밀어닥치는 험한 파도를 따라 요동치는 배 위에서 지독한 멀미에 시달리면서 고통도 느껴보고 호기심도 가져 보는 사이에 교실에서는 배울 수 없었던 많은 것을 보고 느꼈을 것이다. 그 승선 적응 실습을 통해 배에 대한 생각들을 새롭고도 풍부하게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 아이들의 승선 실습 덕분에 내가 많은 것을 보고 겪었다. 30시간의 승선도 생애의 처음이지만, 그 배의 그런 요동을 인내해 보기도 처음이다. 60년을 살아오면서도 해 보지 못한 참 많은 것 중에 한 가지를 겪어 봤다는 것은 또 하나의 신선한 기억을 보탠 셈이다. 늘 타고 다니는 뭍과 섬을 오가는 배, 불과 3시간 남짓한 그 배에도 요동이 있고 멀미가 있다. 그러나 이제 그 요동, 그 멀미쯤이야 즐거운 위락으로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얻은 것이 이 번 승선 실습의 한 보람이라 할까. 이렇듯 체험이라는 것은 사람을 힘들게도 하지만, 삶에 대한 단련과 자신감을 선물해 준다. 지금의 내 삶이란 숱한 체험의 바탕 위에 서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삶이란 체험의 연속이다. 나이를 먹어 가는 것은 곧 체험을 먹어 가는 것이요, 세월을 쌓아 가는 것은 체험을 쌓아 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제 또 어떤 체험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내일은 어떤 체험 위에 내가 서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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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메어 놓은 밧줄을 거두었다. 선수를 돌려 전진을 시작하려는데,
바다 속으로 내려가 배를 고정시켜 주었던 앵커가 올라오지
않는다. 앵커를 끌어올리는 모터가 고장이 났다고 한다.
선원들이 모두 나와 끌어올리기에 애를 쓰지만 좀처럼 잘
올라오지 않는다. 우리와의 이별을 아쉬워하여 스루가항이
옷자락이라도 잡는 것인가. 배는 조금씩 부두를 벗어나고
있는데 앵커는 그대로 물 안에 있다. 응급조치를 취하느라
모두들 분주하다. 전기 밧줄을 이용하여 조금씩 끌어당긴다.
당겨 올리며 보니 물 속에 있던 앵커에 폐밧줄이 걸려 잘
올라오지 않자 모터에 과부하가 걸린 것이다. 
밀려온
물결은 뱃전에 닿아 부서지기를 거듭한다. 배가 너울을
따라 요동을 한다. 그래도 배는 달렸다. 한 시간 정도를
달려 나왔을까. 선실로 내려와 잠시 앉아 있었다. 누가
선실로 뛰어 내려오더니 배가 회항했다고 한다. 물결을
이기기도 힘들지만,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밖을 나가보니 뱃머리가 돌려져 있었다.
다시 항구를 향하여 가고 있다. 스쳐 왔던 풍경들이 다시
살아나 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마친
것은 10시 45분. 그런데 밖으로는 나갈 수가 없단다. 이제
내일까지는 배 안에서 지내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우리의
이웃 일본이, 스루가항이 우리가 떠나는 것이 아쉬워하며
잡는 손길일까. 하늘이 우리 귀로의 안전을 생각하여 떠나는
길을 말리는 것일까. 무료하다 싶은 시간일지언정, 온 하루를
스루가항에 주어버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바람아
불지 마라, 불지를 마라!' 내일 뱃길만은 무사하기 빌고
또 빌며 묶인 하루를 스루가항에서 보내야했다. 
것도 보였다. 무슨 섬이냐고 선장한테 물었지만 섬이 곳곳에
있어 이름을 알 수 없다고 했다. 일본의 무슨 섬인 모양이다.
다시 침상에 누었다. 멀미를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은 누워서
가는 길밖에 없다. 오후 1시가 조금 넘자 텔레비전이 나왔다.
우리나라 방송을 위성으로 받는 것이다. 야구시합이 벌어지고
있었다. 2시를 지나자 더욱 거센 파도가 밀려왔다. 배가
엄청나게 요동을 쳤다. 파도는 바다에만 치는 것이 아니었다.
침상도 파도를 따라 요동을 쳤다. 침상에 누워있는 것이
아니라 물 위에 누워있는 것 같았다.
시퍼렇게
흘러가는 것은 마음이 아니라 바닷물일 뿐이다. 그 물에
마음이 섞일 여유가 없다. 외로운 물새가 될 겨를도 없다.
아물거리는 만상으로도 눈을 줄 여유가 없다. 좌우로 기우뚱거리기를,
아래위로 오르고 내리기를 거듭하며 만상을 뒤집어 놓는
선실에 누워 보는 바다에는 뒤틀어지는 속만 있을 뿐, 꽃처럼
흘러가는 것도 없었고, 바람처럼 사라지는 것도 없고, 오직
이승의 끝이랴만 싶었다.
6시
갑판 위로 올라갔다. 몸은 중심을 잡을 수가 없었지만 해는
수평선 높이 솟아올라 찬란한 햇살을 뿌려대고 있다. 바다는
금빛 은빛을 엇바꾸어 가며 눈부신 빛을 내고 있다. 햇살이
익자 바다는 점점 짙푸른 빛을 띠어 간다.
조타실에
올라가니 8,8노트의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포스코가 안개
속에서 희미하게 나타난다. 흐려져 있던 하늘이 개이면서
햇빛이 다시 비쳤다. 먼 뱃길의 귀로를 축복해 주는 듯했다.
물빛이 더욱 파랬다. 출렁이는 물결 따라 배도 따라 일렁거렸지만,
이제는 무슨 춤을 추고 있는 것 같았다. 항구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아이들은 뱃머리에 나가 휴대폰을 꺼내든다.
육지와 어서 통화를 하고 싶은 모양이다. 아이들 뿐 아니다.
어른들도 일제히 휴대폰을 꺼내어 집으로 전화를 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