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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윤아. 하부지다'하면서 부르니, 손녀가 한번 고개를 돌려 내 모습을 보고는 다시 보려 하지 않고 제 어미의 품만 파고든다. 조금 서운하긴 했지만, 옥같이 맑고 고울 어린것의 마음에 생채기를 지게 할 것 같아 손녀의 이름을 다시 부를 수 없었다. 아들 내외는 손녀와 더불어 서울에서 살고 있다. 제 아비가 뜻밖의 사고를 당하여 얼굴의 모습이 일그러지고, 병원에 입원하여 수술을 하고 치료를 받고 있는 사이에 저들은 걱정과 불안으로 마음을 크게 졸였을 것이다. 당장 달려오려 했다. 그러나 제 어미는 며칠 뒤에 내려와 아버지를 뵈라 했다. 설이 며칠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손녀의 모습이 하루 빨리 보고 싶었다. 두어 주일 전 서울의 저희들 집에 갔을 때 본 열일곱 달 박이 손녀의 모습에 눈에 선했다. '하부지, 하부지'하면서 갖은 재롱을 다 부렸다. 저 먹을 것을 나누어주기도 하고, 심지어는 서랍을 열고 저의 옷을 꺼내어 하부지 입으라며 주기도 했다. 동화책을 들고 와 읽어달라는 모습도 귀엽기 짝이 없었다. 3시간에 걸친 수술이 끝나고 저승으로부터 돌아왔다. 정신이 들었을 때는 수술 부위가 너무 아팠다. 터져 나오는 비명을 참기가 아픔보다 더 고통스럽기도 했다. 그 아픔 속에서 고 귀여운 어린것의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잠시 통증이 잠시 멎는 듯했다. 비명으로 찌든 입가에 잠시 미소가 번져났다. 진통제며 항생제 주사를 맞으면서 낮과 밤이 바뀌는 시간이 흘러가는 사이에 통증이 진정되어 갔다. 내 모습이 보고 싶었다. 얼굴의 반쪽 부분을 수술했기 때문에 한쪽 눈이 뜨이지 않았다. 남은 한쪽의 눈을 겨우 떠서 거울을 보는 순간 까무러치게 놀랐다. 도저히 사람의 몰골이 아니었다. 생존경쟁의 치열한 싸움을 막 끝낸 야수의 처참한 얼굴이라 할까. 입 속의 살과 눈 밑의 살을 갈라 얼굴뼈를 바로 잡는 수술이라 얼굴의 살은 그대로 두었지만 눈자위가 시커먼 멍과 함께 크게 상해 있었고, 얼굴은 엄청난 부피로 부어 올라 있었다. 그 부기 때문에 도저히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손녀 올 날이 사흘 남았다. 사흘만에 제 모습을 찾을 수 있을까. 저 부기와 멍이 씻은 듯이 지워질 수 있을까. 내 아픔에 대한 걱정보다 손녀를 맞이할 걱정이 더 커지는 것 같았다. 부기를 빼고 멍을 지우는 데는 주사도 맞고 약도 발라야 하지만 얼음찜질이 좋다고 했다. 수시로 약을 바르고, 얼음주머니를 늘 손에 쥐고 환부에 정성을 들여 찜질을 했다. 치유를 간절히 기도하는 주술사의 심정에 젖기도 했다. 병상의 시간이 병처럼 흘러갔다. 손녀가 오는 날이다. 부기도 제법 빠지고 수술 부위도 조금씩 아물어 갔다. 그러나 눈자위를 둘러싸고 있는 멍 자국은 검기만 했다. 충혈 되어 붉은 눈동자와 눈시울 아래위의 시커먼 멍이 내가 봐도 혐오감이 느껴질 지경이었다. 아직도 처절한 싸움을 끝낸 야수의 눈자위 모습 그대로다. 모레면 설날, 드디어 손녀가 제 아비, 어미와 함께 왔다. 기차를 내려 바로 병실로 찾아왔다. 아들과 며느리는 놀람과 걱정이 함께 어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위로하기에 애썼다. 제 어미의 품에서 자고 있던 어린것이 눈을 떴다. '승윤아!' 하고 팔을 벌리면 조르르 달려와 냉큼 안기던 손녀였다. '하부지야, 하부지. 안녕하세요, 인사해야지" 제 어미가 어린것을 채근했다. 내가 이름을 부르며 팔을 벌렸지만 손녀는 나에게로 오려 하지 않았다. 어미의 품으로 더욱 깊이 파고들었다. 제 어미는 나에게로 향하게 하려 했지만, 어미 품을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그만 두어라!, 제 눈에도 얼마나 끔찍하게 보이겠냐?" 저 어린것이 나의 흉악한 몰골을 보고 무엇을 느꼈을까 싶어, 오히려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어린것의 눈에도 미추가 보이고, 선악이 느껴질까? 아름다운 것이 어떤 것이고 아름답지 못한 것이 어떤 것인지를 분별할 수 있을까. 아름다운 것을 보면 즐거워지고, 아름답지 못한 것을 보면 마음이 흐려지게 되는 것일까? 물론 고운 모습도, 곱지 않는 모습도 모두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분별' 이전의 눈에 보이는 모습일 것이다. 분별의 결과로 미추며 선악을 의식하는 것이 아니라, 본능적인 감각으로 느끼고, 느낌대로 행동이 드러나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그 행동이야말로 얼마나 순수한 것인가. 세상과 문명의 때가 전혀 묻지 않은 본능적이고 동물적인 감각 그대로의 그 느낌-. 아들과 며느리가 나의 모습을 걱정과 비감으로 바라보는 것은, 아비의 고통에 대한 금할 수 없는 연민의 정에서 나온 감정이겠지만, 윤리적 혈연 의식이 다분히 작용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손녀에게는 그런 후천적인 의식이나 관념이 있을 수 없다. 할아비의 끔찍한 모습을 보고는 쉽게 다가오지 못하는 것은 어린것의 티 없이 맑은 마음 때문이리라. 손녀의 그 순진 무구가 더욱 귀하게 보인다. 불법에서는 마음을 닦아 본성을 찾아가는 길은 분별심을 버리는 길이요, 분별이 생기기 전의 마음이 곧 부처의 마음이라고 했다. 지금 손녀의 마음이 곧 본성이요, 부처의 마음이리라. 분별 이전의 그 티 없는 마음이-.♣(20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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