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이 고맙다

 

수필이 고맙다. 수필로 인연한 사람들이 고맙다.

내가 사랑하는 수필로 좋은 글을 남기지도 못하고, 빛나는 이름도 얻지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내 속에 흐르고 있는 문학의 피는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학창 시절에는 시에 관심을 가지고 교과서 읽기보다는 시집 읽기를 좋아하고, 시를 좋아하는 마음이 시를 쓰게 만들었다. 시를 열심히 쓰면서 문예반장으로 활동도 하고, 문학 동아리 활동도 관심을 빠뜨리지 않았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로 나왔다. 바쁘게 사회생활을 하는 사이에 나도 모르게 시는 나에게서 시들해져 갔다. 모든 걸 비유와 상징으로 응축해야 하는 시에는 별 재주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글에 대한 향수는 가시지 않았던지, 몇몇 지면에 잡문을 가끔씩 내밀곤 했었다. 상사며 상부 기관으로부터 글 사역을 자주 받으며 그런 일로 출장도 많이 다니곤 했다.

그런 세월이 흐르고 있던 어느 날 영남일보로부터 교단 칼럼을 맡아 달라는 청탁이 왔다. 근 두 해 동안 대구의 교사 한 사람과 번갈아 가며 썼다. 그러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수필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 칼럼이 수필과 인연을 맺어 주었다고 할까.

어느 교육 월간지에서 문예 작품 현상 모집을 하는데 응모했다. 내 수필이 심사위원장인 박연구 수필가의 무더운 여름날 소나기의 시원한 맛같다는 평과 함께 최우수작으로 뽑혔다. 이어서 박연구 수필가가 주간으로 발행하던 수필공원에 추천받게 되었다. 그 후로부터 수필가라는 이름을 걸고 글을 써 온 지가 근 삼십 년이 되었다.

수필과 인연 이야기가 너무 길었는가. 그런 인연에도 불구하고 만인의 눈에 뜨일 글, 지가를 높여 줄 책 같을 걸 남기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가수는 안 해도 노래는 안 부르고 못 살겠더라는 어느 가수의 고백처럼, 수필가는 안 해도 수필은 안 쓰고 못 배기게 된 나의 삶을 돌아보며 깊은 감회에 잠기곤 한다.

독자가 많이 읽어 주면 좋은 일이고, 그러기를 바라고 있지만, 설령 읽어 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서운해하지 않고 쓴다. 내 글이 필요하다고 청탁해 오면 기꺼이 응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쓰기도 하지만, 내 글을 찾는 곳이 없다고 할지라도 얼마든지 독자와 소통할 수 있다. 카페며 블로그 같은 온라인 시스템이 얼마나 발달해 있는가. 그런 매체에서 이일배의 수필 사랑은 나의 집필실이기도 하고 독자와 만나는 곳이기도 하다. 그렇게 나는 쓰기의 즐거움을 누리며 살고 있다.

그 번다했던 사회생활도 끝을 내고, 지금은 십수 년째 은퇴 거사로 살고 있다. 직업 사회에서는 은퇴했지만, 내 문학 생활은 더욱 왕성한 현역 거사로 살고 있음에 늘 기쁨과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수필을 쓰고 있으면 슬픔도 기쁨이 되고, 괴로움도 즐거움이 된다. 수필이 무엇인가. ‘삶의 고백이 아니던가. 삶을 털어내는 사이에 내 심중이 정화되고, 그 정화가 생애의 동력이 되고 있음에 늘 감사하는 마음을 안고 산다.

세월이 흐르는 사이에 어쩌다 보니 사궁지수四窮之首 되고 말았다. 모두 내 탓이오, 내 운명의 소치겠지만, 때로는 외롭고 서러운 상념이 안겨 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내가 살아 있기에 그런 거라고 스스로 쓰다듬어 보기도 하지만, 그 마음을 잘 이겨내지 못할 때가 없지 않다. 그때 나는 모니터를 마주하고 앉는다. 광기에 찬 듯 쏟아낸다. 그 마음을 적어도 좋고, 다른 상념을 풀어나가도 좋다. 쓴다는 그 자체만으로 모든 게 맑아지고 밝아진다.

수필이 나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일은 또 있다. 매주 한 번씩 수필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만나는 일이다. 어느 도서관에서 열어준 평생교육 수필창작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이 왜 그리 좋고, 어찌 그리 많은 정이 묻어나는가. 수필 이야기는 문장 이야기만이 아니다. 저마다 다른 삶을 풀어내는 글을 읽으며 함께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 그사이에 서로 더할 나위 없는 벗이요,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어가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이고 즐거움인가.

자기 글을 함께 읽는 날이면 무어라도 들고 안고 와 함께 나누는 마음은 나만의 기쁨과 즐거움이 아닌 것 같다. 한 주일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서로 그리운 사람들이 된다. 한 주일을 그렇게 기다리며, 미리 보내준 함께 공부할 글을 읽고, 공부한 후에 보내오는 글을 다시 읽어 함께 볼 매체에 올려 공유하는 일은 또 얼마나 즐거운가. 떨어져 있는 동안에도 쉼 없이 소통하고 있는 것이다.

이래저래 수필과 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고 말았다. 그런 수필에 깊어지는 흠모의 마음이 수필은 나의 친구요, 애인이요, 아내라 해도 빈말이 될 수 없고, 삶의 지팡이요, 기둥이요, 지붕이라 해도 헛말이 아니게 한다. 잠 못 이루는 어느 밤에 이 글을 쓰고 있다. 다 쓰고 나면 달고 깊은 잠에 빠질 수 있을 것 같다. 수필이 나를 토닥여 줄 것이다.

수필이 고맙다. 수필로 인연한 사람들이 고맙다. (2024. 11. 26. 04:17)

                                                                     

 

영혼 없는 문자

 

우리는 일상 속에서 주변 사람들과 많은 말을 주고받으며 산다. 바로 말의 존재 이유일 것이다. 특히 요즈음같이 에스앤에스가 발달한 시대에는 시간과 거리에 상관없이 여러 사람과 많은 말을 주고받는데, 그때의 말은 주로 문자가 많이 이용된다. 글말인 문자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면서, 정감 있는 그림 속에 넣어 그 말을 더욱 정답게 만들기도 한다.

어느 한 사람이 아름다운 그림 속에 받는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도 할 아주 감성적이거나 희망적인 문자를 넣어 보내면, 그 문자를 받는 사람은 혼자만 보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에게 전파하기도 한다. 전파자는 누구의 마음을 보내는 걸까. 자신의 마음일까, 원작자의 마음일까? 그렇게 받는 문자들에서도 보내는 이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까? 읽어야 할까?

오래전 학교 동기 한 친구는 나날 아침마다 정해진 시간에 예쁜 그림 속에 좋은 말들이 적힌 메시지를 보내온다. 아름다운 꽃 그림 속에 오늘도 좋은 일만 가득하시고 / 행복한 하루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 항상 건강하세요, 사랑합니다.” 그리 깍듯하지 않아도 무방한 사이이거늘 그리도 정중한 기원을 보낼까.

어느 날은 어여쁜 여인이 장구를 연주하고 있는 그림 속에 소중한 사람은 언제나 마음속에 있어요. / 처음처럼 변함없는 마음 보석처럼 빛나는 사람 오늘도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라 한다. 마치 연인에게 보내는 사랑의 메시지 같다.

또 어느 날은 한복으로 곱게 단장한 여인이 울긋불긋한 단풍을 바라보고 있는 그림 속에 가을이 점점 깊어져 갑니다. 차가운 날씨에 건강 조심하시고 익어가는 가을과 함께 기쁨 가득한 하루 보내세요.”라 했다. 고마운 말이지만, 왠지 말이 허공에 떠 있는 것 같다.

그런 말들을 받고만 있기가 멋쩍어서 한번 내 문자를 적어 보냈다. “잘 계시는지? / 나를 위해 하루도 안 빠지고 이렇게 좋은 말과 함께 기도를 다 해 주시니 정말 감사하네~!! ㅎㅎㅎ / 좋은 일 많으시게~!!”

ㅎㅎㅎ를 붙인 까닭을 알까? 그 웃음의 의미를 알아챌까. 좋은 말에 대한 기쁨의 웃음일 수도 있지만, 왠지 공허하게 느껴지는 문자들에서 오는 빈 웃음일 수도 있다. 보내오는 말들이 좋은 말이긴 하지만, 친구의 마음들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누구한테 받은 걸 그대로 나한테 무심히 전달한 것이라면 얼마나 공허한 일인가.

고교생 시절 문우로 친하게 지냈던 어느 여류 문인의 글을 50여 년 만에 어느 문학지에서 놀라움으로 대했다. 반갑고 그리운 마음에 프로필 끝에 적힌 이메일 주소를 보고 당장 편지를 보내 어렵게 연락되었다. 서로 반가운 마음으로 흘러간 옛일을 회억하면서 그간의 안부를 나누었는데, 일찍이 미국에 이민해서, 거기 한인 사회에서 문학 활동을 하다가 노경을 맞아 고국으로 돌아와 살고 있다 했다.

사는 곳이 다르고 멀어 만날 수는 없지만, 자주 연락은 하고 살자며 주로 에스엔에스로 소식과 마음을 주고받고 있다. 그렇게 마음을 나누어 가던 어느 날, 활짝 핀 해바라기 그림과 함께 늘 생각나는 사람 /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진심일 수도 있고, 남의 마음을 빌린 것일 수도 있다 싶어 정말~?!” 이라고 한마디 답장을 했더니. 함박웃음을 터뜨리는 이모티콘을 보내왔다. 그 웃음의 의미는 무엇일까.

무릇 말이란, 무슨 말이든 그에 걸맞은 의미와 함께 말하는 이의 영혼이 담겨 있어야 한다. 의미도 물론 중요하지만, 영혼이 없는 말은 한갓 소음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언어가 진정한 의사소통의 수단이 되기 위해서는 서로의 영혼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요즈음 에스엔에스에 떠도는 문자들을 보면 단순한 말장난이거나, 안 해도 좋을 말이거나, 남에게 받은 것을 다른 이에게 무의미하게 전달, 전달하는 게 대부분이다. 이런 일들이야말로 공해요, 전파 낭비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거기에 무슨 영혼을 기대할 수 있는가. 이런 매체들을 통하여 가짜뉴스가 횡행하는 것은 또 어찌 보아야 하는가. 그런 것에 어찌 영혼이 있다 할 것이며, 있다고 한다면 아주 사악한 영혼일 것이다.

하기야 영혼 없는 말로는 어찌 에스엔에스 문자뿐이랴. 일상 언어에선들 영혼 없는 말이 없을까. 특히 정치인들의 험한 말들을 보라. 그들의 말에 어찌 영혼이 있다 할 것이며, 있다면 가짜뉴스에서보다 더 사악하고 추악한 영혼이 깃들어 있을 뿐이지 않을까.

나를 돌아볼 차례다. 나는 그 누구에게 영혼 없는 문자를 보낸 적은 없는가. 소음에 지나지 않는 말을 한 적은 없는가. 영혼 없는 말이 필요치 않은 삶이 되고, 영혼 없는 말이 용납되지 않는 사회가 된다면, 한층 더 따뜻한 삶이 되고, 믿음직한 사회가 될 것이라는 상상과 기대에 젖어 본다. (2024. 11. 3)

                                                                   

 

댑싸리 전설(2)

 

댑싸리는 올가을에도 더는 붉을 수 없을 것 같은 짙붉은 물이 들었다. 아내는 올해도 그 붉은빛을 볼 수가 없다. 그런 채로 저 붉은빛은 씨를 남기면서 하얗게 바래 갈 것이다.

지난해 초여름 가료를 위해 아이들 집에 가 있던 아내가 당부한 말을 따라 그렇게 심었던 대로 올 초여름에도 어린 댑싸리를 문간 어름에 한 줄로 나란히 심었다. 그 댑싸리가 여름을 보내고 가을이 흘러가는 사이에 연두색에서 초록으로 빛을 바꾸어 가며 무럭무럭 자라다가 이제 그 푸른 고비도 넘어 새빨갛게 물이 들었다.

아내는 자기가 씨 뿌려서 난 모종을 한 줄로 보기 좋게 심어 달라 해놓고 초록으로 제법 북슬북슬한 자태를 이룬 한여름 어느 날, 그 모습을 영영 볼 수 없는 나라로 가버렸다. 지금처럼 가을이 이슥해져 그 붉게 타는 모습을 나 혼자 보아야만 했다. 그 빛깔은 내 안으로 들어와 타고 있었다.

그렇게 혼자서만 댑싸리를 지켜보며 지내던 작년 어느 겨울날, 그 댑싸리가 한살이를 마치고 씨를 흩뿌리고 거두어질 무렵이었다. 오직 혼자뿐인 방안에서 쓰러진 채 잠시 내 생애에서 완전히 지워진 혼절의 시간을 맞아야 했다. 119에 겨우 실려 어느 병원 응급실로 갔다가 아이들이 사는 대처의 큰 병원에 누워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119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 전화번호를 보고 위치 추적을 할 수 없었다면, 어느 땐가 백골이 되어서야 발견될지도 모를 일이었었다.

진단 결과는 체내에 있어야 할 무슨 무슨 요소가 결핍되어 쓰러지면서 그 충격으로 척추 한 부분에 골절이 났다는 것이다. 그 댑싸리를 홀로 보면서 지내온 시간들이 내 몸에 해찰을 부린 모양이었다. 평생 처음 홀로된 삶을 겪다 보니 그 시간들이 나를 만만하게 본 것 같다. 두어 주일 후에 온전치 못한 육신을 끌고 겨우 집으로 돌아왔지만, 나에게 안긴 건 이지러져 가는 몸과 빈방뿐이었다.

막막하고 캄캄했다. 절대 희망도 없듯 절대 절망도 있지 않은 것 같았다. 나라에서 알고 내 생애를 도와줄 사람을 보내주었다. 나에게로 온 그 사람은 나라에서 보내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서 보내준 사람 같았다. 먹고 입고 치유하며 지내야 하는 몸뿐만 아니라 의지하고 위안받고 싶은 마음까지도 채워주기에 애썼다.

그런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파릇파릇 돋아나는 모든 것 속에 댑싸리 파란 싹도 앙증맞은 얼굴을 내밀었다. 저들이 돋아나기를 바라며 씨를 뿌린 적도 없건만, 겨울 들머리에서 마른 것들이 남기고 간 씨앗에서 돋아난 것이다. 아내가 몰래 와서 뿌리고 간 것 같기도 했다. 그때도 아내는 나에게 말도 없이 씨를 뿌렸었다.

그래, 그 씨 뿌려놓고 간 아내가 저들 솟은 것을 솎아 한 줄로 심어 달라고 했지. 아내 말대로 한 줄로 옮겨 심었지. 그 봄이 흘러갔다. 댑싸리는 내 속을 알고 있기라고 하는 듯 잘 자라 주었다. 그중에는 자리기를 꾸물대는 것도 있었지만, 다들 아내가 기대했을 복슬복슬 탐스러운 모습으로 자라 주었다.

저것 좀 봐요, 참 이쁘지 않아요?”

아내가 아닌, 내 생애를 도와주는 분에게 말했다.

그러네요.”

짧은 말을 했다. 그는 알 리가 없다. 저걸 내가 왜 한 줄로 저렇게 심었는지를. 내가 왜 이쁘다고 하는지를-. 조금은 쓸쓸한 심사가 속을 쓸어내리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는 내가 세상을 견뎌 나가는 일을 위해서 스스로 할 일을 찾아 성심을 다해주고 있는 분이다.

점점 더 복스러워지면서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다. 크기는 달라도 자랄 대로 다 자란 것 같다. 가을 소슬한 바람에 흔들리면서 푸른빛이 붉은빛으로 바뀌어 갔다. 어느새 온통 붉은빛이 되었다. 아내가 씨를 뿌려놓고, 그 싹을 집 문간 고샅에 그렇게 옮겨 심으라 해놓고 자기는 못 보았던 빛깔이다.

지난겨울에 얻은 병의 뒤가 아직도 남아, 병원 길을 나서던 날에도 댑싸리는 붉게 타고 있었다.

도와주는 분은 내 길 채비를 도와주면서 문간 배웅을 나왔다.

빛깔이 참 곱지요?”

불타는 것 같네요.”

내 년에도 또 저렇게 가꾸어야겠어요.”

내 속도 타오르는 것 같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잘 다녀오시라며 손을 흔들었다.

아내가 못 본 것까지 내가 보고 보리라 속을 여미며 병원 길 차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2024.10.23.)

                                                                     

 

세월의 자국을 넘어서

 

커다란 거울이 터미널 화장실 입구 옆벽을 가득 채우고 있다. 화장실을 가도 무심히 그냥 지나칠 수도 있고, 차에 오를 시각이 임박하여 급히 가다 보면 눈 돌릴 겨를이 없어 거울을 지나치기도 한다.

어느 날 차 탈 대비로 화장실을 들면서 우연히 거울 쪽을 곁눈질하게 되었다. 허리 구부정한 웬 늙은이 하나가 중절모를 쓰고 한 손에는 가방을 들고 화장실로 들어가는 모습이 언뜻 눈에 들어온다. 누군가 싶어 다시 고개를 돌려보니, 바로 나였다.

낯선 모습이다. 내 언제 저리 허리가 굽어졌으며, 모자 아래로 드러나 있는 머리카락은 왜 저리 허옇게 보이는가. 집에서 반듯하게 서서 거울을 볼 때와는 영 딴판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저런 모습이 되어 있었구나.

점점 늙어가는 줄이야 모를 리 없다. 기력도 날로 여려지는 것 같고, 몸 기능들도 제 노릇 해내기에 조금씩 힘들어한다는 것을 느끼곤 한다. 볕 쨍쨍한 한낮보다, 불그레하게 물들어가는 석양이 더 정답게 느껴지는 것은 마음도 늙어가기 때문일 것이다.

내 늙은 모습이 저런 모습일 줄이야. 허리가 좀 쑤실 때가 있긴 해도 걸을 때는 바로 설 수 있다고 여겼었다. 아니, 별생각이 없이 서 있거나 걷곤 했다는 게 옳은 말일 것 같다. 어찌하였건 저런 모습이 내 모습일 줄은 몰랐다.

무엇이 나를 저렇게 만들었을까. 그렇지, 그것이 그랬구나. 그것이 저리 해찰을 부렸구나. 세월이다. 세월이란 무심히 흘러가는 것 같지만 강물처럼 유유하고 유장하게 흘러가지는 않는 것 같다. 제 자국을 꼭 남긴다.

물론 세월은 사람에게서만 흘러가는 것이 아니다. 나무며 풀이며 꽃이며 길짐승, 날짐승이며 미물에게까지도 다 흘러간다. 그 방법도 껴안든지 무얼 잡아끌든지 채찍질하든지 때에 따라 대상에 따라 다 다른 흔적을 남기며 흘러갈 수 있다.

나의 세월은 나를 어떻게 채근해 왔던가. 돌아볼수록 나에게는 별로 살갑거나 자비롭게 대해 준 것 같지는 않다. 내 탓이 클 것이다. 내가 세월과 잘 친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모두가 제 할 탓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어찌하였든 나의 세월이란 나를 따뜻하게 품어주거나, 다정히 손을 잡아주기보다는 나를 떠밀려 했고, 힐책하려 했고, 그러다가 자빠지게도 하고, 그래서 몸과 마음에 생채기를 남겨주기도 하면서 나를 살아오게 한 것 같다.

나에겐들 아늑하고 온기 어린 세월이 왜 없었을까만,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혹은 맑은 물은 흘러가고 자갈만 강에 처져 남듯 그런 기억은 묻히거나 흘러가 버리고 세월의 상반傷瘢들만 남이 있는 것 같아 사는 일이 허허로워지기도 한다.

그뿐이랴, 그 세월의 뒷자락에 나에게 남은 일은 사람이든 무엇이든 모두 나에게서 떠나갈 일밖에 없는 것 같다. 주위 사람들도 이미 떠났거나 떠나려 하고 있고, 내 몸도 나에게서 조금씩 떠나고 있다. 내 손때 묻은 것들도 차츰 사라져가고 있다.

돌아보면 허전하고, 둘러보면 뭔가 자꾸 비어가는 것 같아 고적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 고적의 끝자락엔 뭐가 기다리고 있을까를 돌아보는 순간, 체념이랄지 항심抗心이랄지 상념의 반전이 불현듯 일기도 한다. 다 빌 때까지 그냥 살아보자고-.

인디언의 방식으로 세상을 사는 법에 이런 말이 나오는 걸 봤다.

한 번에 하루 치의 삶을 살라. 그럼으로써 모든 날을 잘 쓰라. 정성을 다해 채소를 기르듯 영적인 밭을 일구라.”

그래, 하루 치씩 하루하루 살아가는 거다. 지난날이야 어찌할 수도 없고, 오지 않는 날이야 어차피 나의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냥 하루하루를 사는 거다. 채소를 가꾸듯 하루하루를 살다 보면 영적인 밭도 일구어져 가겠지.

지금 내 몸과 마음에는 수많은 세월의 자국들로 점철되어 있다. 이 구부정해진 허리도 물론 그 자국에 하나일 것이다. 이 굽은 허리가 지금까지 나를 살려온지도 모르겠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내게 찍혀 있는 모든 세월의 자국들과 함께.

내 살아가는 하루하루에도 또 자국이 남아 가게 될 것이다. 그 자국을 더는 남길 자리가 없게 될 때가 내 세상이 끝나는 날일 것이다. 남겨지는 데까지 남겨보자. 그 자국들이 내 영혼의 밭을 더욱 걸게 해줄지 아는가.

오늘 하루도 그렇게 살아보자. 구부정한 허리 거울을 뒤로하고, 세월의 자국을 딛고 넘어서 차를 오른다. 언제 보아도 기쁘고 즐거운 사람들을 만나러 갈 차다.

삽상하게 내딛고 싶은 걸음으로 오른다. (2024.10.2)

                                                                    

 

댑싸리 전설(1)

 

담장 옆 연녹색 댑싸리가 무성하다. 크고 작은 것이 섞여 있지만, 이웃하고 있는 밭의 들깨며 고춧대를 바라보며 저도 그만큼 크고 싶었는지 성큼 자라 우거져 있다. 키만 큰 것이 아니라, 줄기에서 올라와 크고 작게 벋어나온 수많은 잔가지가 사방으로 벌어 둥그스름한 모양을 이루기도 했다.

아내가 봤다면 맑은 미소를 지으며 기뻐했을 것이다. 아내는 청초하고도 복슬복슬한 모습을 탐스럽게 여겼던지 댑싸리를 이뻐했다. 지난해 봄, 어디서 구했는지 댑싸리 씨를 가져와 골목 밭 가에 뿌렸다. 따뜻한 햇볕이 내려앉고 때로는 비가 내리기도 하는 사이에 조그만 싹이 흙을 뚫고 솟더니 소록소록 자라 올랐다.

댑싸리 싹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을 무렵 아내는 자주 자리에 눕기 시작했다. 병원을 드나들기도 했지만, 진정이 되지 않아 아이들이 살고 있는 대처로 누울 자리를 옮겼다. 전화해서 좀 어떤지를 물으면, 어디가 어떻게 편치 못하고, 어디 병원을 다녀왔다는 말끝에는 댑싸리의 안부를 묻곤 했다. 복스럽게 자라고 있다고 했다.

어느 날은 전화하여 한 곳에 몰려 있게 하지 말고, 밭 가에 몇 뿌리씩 줄을 지어 옮겨 심어달라 했다. 아내가 말한 대로 한자리에 모여 있는 어린 댑싸리를 두세 뿌리씩 골목 밭둑 옆에 한 줄로 나가면서 옮겨 심었다. 아내에게 이렇게 심었다며 사진으로 찍어 보내주고, 집에 돌아와서 자라는 모습을 보라 했다.

댑싸리는 쑥쑥 잘 자라 났다. 아내에게 댑싸리가 잘 자라고 있다며 전화하니 병원에 다녀오는 길이라 했다. 집 걱정은 하지 말고 병원에 잘 다녀서 빨리 나아서 돌아오라 했다. 댑싸리는 잘 자라나고 있는데, 아내는 병원 다니는 횟수가 잦아져 갔다. 내가 가 볼까 해도 아이들이 잘 돌봐주고 있다 했다.

아내가 집을 떠난 지 두 달이 되어가던 여름 어느 날, 씨 뿌려 나게 했던 댑싸리를 다시 볼 수 없는 세상으로 덜컥 가버리고 말았다. 댑싸리가 무엇을 알까. 무럭무럭 잘 자랐다. 큰 것은 허리를 넘어설 만큼 자라났다. 댑싸리의 그 무심無心이 시리게 아려 보이기도 했다.

계절이 바뀌어 소슬바람이 불던 어느 날부터 잔잔한 잎새며 가지들이 단풍이 들 듯 붉게 물들어갔다. 연홍으로 물들어가는가 싶더니 어느새 훨훨 솟고 있는 불길인 듯 짙붉게 타올랐다. 댑싸리의 꽃말이 오래 참는 사랑, 고백이라 했던가. 마치 참고 참아왔던 사랑의 말을 한꺼번에 불길처럼 쏟아내는 것 같았다.

나에게는 저 타는 불빛이 아내가 참고 참았던 속상한 일들을 한꺼번에 토해내는 듯이 보이기도 했다. 같이해 오는 동안 속상했던 일들이 한두 가지였을까. 조금씩은 상한 속을 풀어내기도 했었지만, 어찌 다 풀어낼 수 있었으랴. 그 답답한 속을 저 짙은 빛깔로 다 털어내는 것 같기도 했다. 이따금 고개가 숙어지면서 저 빛 같은 얼굴빛이 되어 묵연히 바라볼 뿐이었다.

그렇게 가을이 가고 겨울이 들면서 노랗고 하얀빛으로 변하며 서서히 말라 갔다. 찬 바람이 불 무렵 잎은 다 떨어지고 줄기만 앙상하게 남게 되었다. 빗자루로 묶는다는 그 줄기지만, 묶을 엄두를 못 내고 그대로 거두었다. 댑싸리는 거두어 지면서 잊지 않았다. 제 씨앗을 세상에 남기는 일을-.

봄이 왔다. 언 땅이 녹고 따뜻한 바람이 불면서 댑싸리가 서 있던 자리에 하나둘 싹이 돋기 시작했다. 댑싸리만이 아니라 다른 풀들도 그것과 섞여 돋아났다. 아내 대신 밭을 부치는 이가 있었다. 농사를 짓는 사람은 누구라도 밭 가에 두렁에 풀이 돋는 것은 참지 못한다. 모든 풀은 없애야 한다.

가장 쉽게 없애는 방법은 제초제를 치는 일이다. 그도 두렁이며 밭 가에 제초제를 뿌려 나갔다. 한창 솟아나고 있는 댑싸리도 예외는 아니다. 어느 날 보니 밭 가의 모든 풀이 시들시들 잎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그중에는 약을 덜 맞았던지 요행으로 피할 수가 있었던지 머리를 들고 있는 것도 있었다.

성한 댑싸리만 골라냈다. 맞은편 담장 아래에 다른 풀을 뽑아내면서 한두 뿌리씩 묶어 아내가 말한 것처럼 한 줄로 옮겨 심었다. 일부러 심어놓은 걸 보면 제초제를 못 치겠지. 쑥쑥 잘 자라는 것도 있고, 좀 작은 것도 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연둣빛에서 녹색으로 빛깔을 바꾸어 가며 복슬복슬 자라났다. 아내의 맑은 미소가 보이는 듯했다.

밭 부치는 이가, 씨가 퍼지면 어쩌려고 저러느냐며 걱정했다. 내가 간직하고 있는 댑싸리 전설을 어찌 알 수 있으랴. 안 들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까. 내년에도 더 먼 날에도 아내의 말처럼 한 줄로 가꾸면 된다. 댑싸리를 보고 싶어 했던 그 마음을 가꾸면 된다.

나만이 아는 전설로 가꾸어 나가면 된다.(2024. 9. 16)

                                                                  

 

쓸쓸함에 대하여

 

누군들 쓸쓸할 때가 왜 없을까? 살기에 바빠 쓸쓸할 틈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바쁜 걸 강조해서 하는 말일 것이다. 정녕 쓸쓸할 틈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까. 아무리 바쁜 사람일지라도 문득 쓸쓸함이 밀려올 때가 어찌 없을까.

나는 덜 바빠서 그런지 쓸쓸함을 느낄 때가 더러 있다. 가끔씩 끙끙 앓기도 해야 하는 쓸쓸함에 잠길 때도 없지 않다. 바쁘게 살던 시절이 훌쩍 흘러가 버렸을 뿐만 아니라, 지금은 바쁠 수 있는 기력도 별로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 별로 없는 기력이 가끔은 쓸쓸함을 가져오기도 한다. 어쨌든 이따금 쓸쓸함이 찾아오지만, 그중에서도 혼자 읽기 아까운 시가 있어도 같이 읽거나 들려주면서 마음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없을 때 쓸쓸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심장이 / 몸 밖에 달렸더라면 / 네 마음을 더 잘 보았을 텐데…… 아니, 생각이 / 나보다 먼저 잠들기만 했어도 / 너와 더 오래 한집에 머물렀을 텐데……(정끝별, 너였던 내 모든)

이 시를 읽고 있으면 심장의 움직임이 조금씩 빨라져 가는 듯한 느낌이 드는 건 무엇 까닭일까. 설령 심장이 몸 밖에 달려 있다 해도 나에게 심장을 보여줄 사람도 없고, 내 심장을 보여줄 사람도 없다는 게 쓸쓸하다.

없다라는 말 속에는 있었다가 없어졌다.’라는 뜻도 있고, ‘처음부터 있지 않다.’라는 뜻도 있을 테지만, 나는 어느 쪽이라는 걸 굳이 말로 드러내고 싶지 않다. 말이 되어 나오는 순간 상념은 또한 쓸쓸함에 빠질 것 같기 때문이다.

나를 더욱 쓸쓸하게 하는 것은 그다음 구절이다. 너를 향한 생각이 나보다 먼저 잠들 수 있다면 나는 언제까지나 너를 안고 있을 수 있겠지만, 그 생각이 잠들어주지 않으니 너와 나 사이의 거리일지 벽일지 그런 게 자꾸 멀어지고 두꺼워지는 것 같아 점점 더 쓸쓸해진다.

이런 시를 같이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내 젖은 목소리로 들려줄 수 있는 이 누가 있다면 쓸쓸함이 쓸쓸함을 녹여줄 것도 같다. 결국은 이 시가 나를 더욱 쓸쓸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그래도 괜찮다. 내 쓸쓸함을 시가 대상代償해 줄 것 같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런 쓸쓸함보다 조금 더 짙은 쓸쓸함이 엄습해 올 때는 저녁밥을 혼자서 먹을 때다. 어찌하다 보니 삼시 세끼를 혼자서 치러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현실과 더불어 고단하게 사는 처지 속으로 병고까지 찾아왔다.

마냥 죽으라는 법은 없었던지, 고마운 제도가 고마운 분이 나를 찾아오게 해주었다. 하루 두어 시간 내 사는 일을 돌봐줄 뿐이지만, 나에게는 그야말로 구세주 손길이다. 그 길지 않은 시간을 아껴가며 정성을 다해주는 마음이 신고, 심고를 잊게도 해준다.

아침 일찍 나에게로 와 내 하루를 시작하게 해주고 하루 지낼 일을 마련해 놓고 가면, 그 마련으로 하루를 지내곤 하는 날들이 이어져 갔다. 그 정성스러운 마련이 감동을 주기도 했지만, 아침밥이나마 같이 먹을 이가 있다는 것이 여간 큰 위안이 아니었다.

그 위안은 아침으로 끝나야 한다. 점심과 저녁은 혼자서 맞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맞이는 물론 아침에 마련해 놓은 것으로 해결할 수 있기에 이 또한 다행이라 할 수 있지만, 쓸쓸함은 내 몫이 되어야 하는 건 어쩔 수 없다.

점심때는 창밖으로 보이는 푸른 하늘과 녹음 짙은 산이 마음을 추스를 수 있는 위안거리가 될 수 있지만, 저녁은 어스름 황혼 빛이거나 어둠 속에서 허우적대는 전등 빛 아래에서 홀로 술을 들다가 보면 국물 맛이 눈물 맛같이 다가올 때가 있다.

이렇게 혼밥 상과 함께한 이력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건만, 왜 이리 여물어지지 못했을까. 모든 것을 혼자서 해결해야 할 때도 없지 않았는데, 도움을 주는 이가 있음에야 더욱 여물어져야 할 것이 아닌가. 모를 일이다.

그랬던 것 같다. 혼자 한 마련으로 먹고 자고 할 때는 오직 생존 일념뿐이었던 것 같다. 비록 울울한 심정으로 술을 들지언정,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돌아봐 줄 이가 아무도 없다는 긴장감, 절박감이 쓸쓸함을 조금 앞질러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지금은 잠시간이나마 함께할 수 있는 이가 있다는 것이 생존에서 벗어나 생활 속을 살고 있다 싶어 안도감을 준다. 오히려 그 안도감이 쓸쓸함을 몰고 오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침과 저녁의 처지가 같지 않은 데서 오는 쓸쓸함은 또 무엇인가.

생활이 생존보다 더 쓸쓸한 것 같다. 생존은 간혹 거부하는 이도 있지만, 누가 생활을 마다할 수 있는가. 어차피 사람은 생활 속을 살아야 할 존재라면, 쓸쓸함은 모든 사람이 원죄로 타고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쓸쓸하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

오늘 저녁도 쓸쓸한 술을 든다. 밥술을 들고 가끔은 술잔도 든다. 이 저며오는 쓸쓸함이 나의 생활이라면 도리 없는 일이다. 쓸쓸하면서 살 수밖에 없는 일인 것을 세상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을까. 쓸쓸함을 보듬기도 하면서 숨 쉬어 나가는 수밖에 없는 것임을 나만이 아는 일일까.

생활 속의 쓸쓸함이여, 쓸쓸함 속의 생활이여! (2024.9.2.)

                                                                      

 

위대한 정령

 

밭에 나는 풀이 너무도 성가시다. 베어내도 나고. 뽑아도 나고 깊숙이 캐내어도 또 난다. 난 풀들은 쑥쑥 잘도 자란다. 아침저녁이 다르고 하루하루가 놀랍다. 신기하다. 이 풀들은 누가 씨를 뿌리고 누가 가꾸는 것일까. 돌보는 이가 없다면 이토록 끈질긴 생명력으로 나고 살고 무성해질 수 있을까.

심어서 가꾸려 하는 작물은 뜻대로 잘 나지도 않고 자라지도 않는다. 잘 나라고 씨뿌리기 전에 땅에다 거름을 묻고, 나면 비료를 주고 병 들지 말라고 약을 쳐주고 해도 바라는 대로 키우기는 쉽지 않다. 원하는 결실을 거두기는 더 어렵다. 저 풀을 가꾸는 손길에 비하면 작물을 가꾸는 사람의 손길이며 그 힘이란 보잘것없는 것 같다.

누가 가꾸든 모든 식물에는 꽃이며 열매가 다 피고 열리기 마련이다. 단지 그 열매를 사람이 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차이일 뿐이다. 사람이 못 먹으면 새며 짐승이 와서 먹고 남은 것은 씨앗이 되어 또 난다. 경영은 마찬가지다. 어쩌면 야생의 초목이 더 많은 생명체를 살려 나가는지도 모른다.

야생의 이런 경영은 누가 하는 것일까. 일찍이 인디언들은 위대한 정령이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말로는 와칸 탕카(Wakȟáŋ Tȟáŋka)라고 하는 존재다. 새가 울고 꽃이 피고 비버며 들소가 뛰어다니고,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고 하는 모든 것이 와칸 탕카, 위대한 정령이 하는 일이라 했다.

인디언들에게는 성경도 없고 교회도 없다. 그렇지만 절대적인 믿음은 있다. 아침에 해가 뜨면 만물의 아버지라며 감사하고, 흙은 대지의 어머니라며 감사하고, 강물은 대지의 핏줄이라며 감사하고, 바람은 대지의 숨결이라며 감사한다. 약초를 캐면서 그 풀에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들소를 사냥하여 먹거리와 옷을 삼으며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자연의 모든 것이 경배의 대상이다.

그 모든 것이 위대한 정령이 하는 일이라 여겨 오직 감사하고 숭배하는 것으로 그들의 신앙을 삼는다. 그리하여 풀 한 이파리, 미물이며 짐승의 목숨 하나도 허투루 여기지 않는다. 필요하여 채취하거나 수렵을 할 때도 경배의 기도를 먼저 올린 후에 실행한다고 한다. 위대한 정령에게 올리는 기도다.

위대한 정령이라는 게 정녕 있기나 한 건가. 인디언들에게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고 한다. 어떤 이가 위대한 정령의 정체를 알고 싶어 보이지 않는 정령에게 말씀을 들려 달라 하니 종달새가 노래했다. 그래도 또 말씀을 들려 달라 하니 천둥을 굴러다니게 했다. 모습을 보여 달라 하니 별을 빛나게 했다. 기적을 보여 달라 하니 한 생명을 탄생시켰다. 한번 만져 달라 하니 나비를 내려앉게 했다. 사람은 나비를 쫓아 보내고 떠나버렸다고 한다. 세상 모든 것이 위대한 정령의 일임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문명한 백인들이 야만스러워 보이는 인디언의 땅을 침략했다. 백인들은 인디언들에게 그들의 교회며 학교에 다니라 하고, 살기 좋게 한다며 땅을 마구 파고 나무를 무참하게 찍어 넘기고 높은 집을 짓고, 조용하던 들판에 철로를 놓아 기차를 다니게 했다. 살기 좋아지기는커녕 온갖 공해며 질병이며 범죄가 만연해져 갔다.

그 문명인들은 자연은 정복하는 것이라 했다. 모든 것을 자신들의 뜻대로 고치려 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풀은 잡초라고 부르며 짓밟았다. 인디언들은 세상에 잡초라는 것은 없다고 여겼다. 모든 풀은 마땅히 존중되어야 할 목적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쓸모없는 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어느 쪽이 더 괜찮은 삶일까.

마을 앞에는 강이 흐르고, 강둑 위에는 정자가 놓여 있다. 정자 옆 마을 쪽에는 수백 년 묵은 느티나무 노거수가 우람하게 서 있고, 강 쪽에는 봄에는 해사한 꽃을 피우는 벚나무며 절로 난 온갖 초목이 우거져 있다. 어느 날 그 초목들이 무참히 잘려져 나갔다. 나무들이 너무 자라 강의 경관을 막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민원을 받은 관에서 한 일이다.

정자에 앉아 물 맑게 흐르는 풍경을 바라며 즐기는 것은 운치 있는 일이다. 그 운치를 위해서 나무를 베어낼 수도 있다. 관의 발주를 받은 사람들은 그걸 어떤 마음으로 베어냈을까. 강과 정자의 경관을 살릴 수 있도록 나무를 다듬는 마음으로 벤 것일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베어내라니까 아무 생각 없이 마구잡이로 쳐 없애버린 것 같다.

오래된 벚나무의 커다란 가지들도 흉물스럽게 잘라 커다란 둥치만이 처참하게 서 있게 했다. 저 끔찍한 모습이 정자의 운치를 살려 줄 수가 있을까. 인디언처럼 위대한 정령의 존재에 관한 생각은 못 한다 할지라도 모든 것이 사람과 함께 공존해야 할 생명체로 여겼다면 저리 무참히 자르지 않았을 것이다.

인디언이 들소를 잡아 고기로 양식으로 삼고 가죽으로 옷을 해 입으면서도 위대한 정령에 대한 감사의 마음은 잊지 않았듯이, 자연물을 어떻게 쓰더라도 세상을 함께 사는 다 같은 생명체라는 생각만은 잃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는 일일까.

저 푸른 산의 나무며 저 들길에 함초롬히 핀 꽃, 저 숲속을 날아가는 새들이며 저 꽃을 찾아드는 나비들은 누가 가꾸며 누가 거두는 것일까. (2024.8.19.)

                                                                 

 

기다림에 대하여(6)

 

오늘 아침에도 내 귀는 현관문 쪽을 향해 있다. 그가 여는 문소리가 곧장 들릴 것 같다. 그는 나의 요양을 도와주는 분이다. 어쩌다 보니 홀로서기가 어렵게 되었다. 곁에 아무도 없는 지경이 된 데다 질고까지 겹쳤다. 관계 기관에서 내 처지를 헤아려 보내준 분이다.

정해진 시각 무렵에 어김없이 문이 열린다. 밤새 안녕을 묻는 인사와 함께 나의 하루에 필요한 일들을 챙겨나간다. 이내 몇 가지 찬이 어우러진 아침상이 들어온다. 텃밭 남새로 마련한 찬과 함께 집에서 보듬어온 정성도 곁들였다.

그가 여는 문소리는 요즘 내 삶의 고즈넉한 동력이고 희망의 시그널이다. 나는 그를 편안하고도 고마운 눈길로 바라지만, 그는 나의 눈길을 여밀 틈도 없이 바쁘다. 길지 않은 시간 안에 내 하루 소용되는 일들을 다 해 놓아야 한다. 지성을 다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의 일은 나에게서 끝나지 않는다. 또 나와 처지가 같은 사람에게로 가서 나에게 하는 그 정성을 쏟는다. 워낙 몸과 마음에 밴 일이라 어디서나 손길이 익다. 나에게 와서 임무를 다하고, 자리를 옮겨 한 번 더 되풀이하는 것이 자기 생활의 리듬이 되어 있다.

내가 그 리듬을 깰 때가 있다. 주중 어느 한 요일은 나에게 질고를 뛰어넘어 생기 찬 날이 된다. 글을 좋아하는 이들과 만나 글 속에 담긴 삶의 희비와 고락을 즐겁게 나누는 날이기 때문이다. 이날에 대한 기다림이 내 한 주를 힘내어 살 수 있게 해준다.

그날이 되면 나는 활기에 넘치지만, 그는 불편을 겪어야 한다. 나의 그 즐거움 때문에 그는 자신의 생활 스케줄을 조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먼저 일과 나중 일을 바꾸어야 하는 것은 물론, 양쪽 시간대도 다시 설정해야 한다.

어느 날 그가 웃으며 했다. “그냥 가만히 계시면 안 돼요? 그러면 아무 일 없을 텐데…….” 내가 말했다. “그러면 좋을까요? 그런 날도 없이 가만히만 있다 보면, 저를 돌봐주시기가 더 힘들 수도 있지 않을까요?” 하고 나도 웃었다.

맞아요. 괜히 해본 소리예요. 기대할 게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인가요? 그 바람에 힘을 내실 수 있다면 저에게도 좋은 일이지요. 일 좀 바꾸는 게 뭐 대순가요?” 하며 환한 미소를 짓는다. “고마워요. 그 마음 때문에 저는 외로운 것도 아픈 것도 잊고 살잖아요.”

순간, 그의 눈동자에 이슬이 반짝이는 듯했다. 내게로 옮아 오는 듯도 했다. 그의 불편을 딛고 내 즐거움을 누리는 것 같아 민망스럽기도 하지만, 그렇게 안아주는 너그러움이 있기에 나는 불행 속에서나마 작은 행복을 누릴 수 있어 고마울 따름이다.

어느 공립 도서관 평생교육 과정의 하나로 수필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글 속에 깃들인 삶을 서로 나누어 온 지도 수년이 흘렀다. 그동안 많은 이들과 만나고 헤어지고 했지만, 모두 마음도 글처럼 순수하고 아름다워서인지 그들과 함께 울고 웃는 일이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이 되고 있다.

그들을 만나 들려줄 이야기며 들을 마음을 준비하면서 그날을 기다리다 보면 신고身苦도 심고心苦도 나의 것이 아니게 여겨질 때가 많다. “기다릴 게 남아 있는 사람은 / 행복한 사람이다.”(김원호, 행복한 사람)라고 한 어느 시인이 말이 돌아보인다.

저 노을처럼 저문 삶을 살고 있는 내가 무얼 더 바랄 게 있을까. 그런 가운데서도 아침마다 기다리는 희망의 문소리가 있고, 글로 함께 마음 나눌 사람들을 기다릴 수 있는 날이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참 행복한 일들이다.

시인의 말은 이어진다. “설사 그 기다림이 / 기다림으로 끝나버린다 해도 / 저문 길목에 서서 / 보고 싶은 얼굴을 기다리며 / 작은 소리 하나에도 귀를 열고 / 숨죽이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그렇다. 기다림만으로 끝나도 괜찮다. 기다리기만 하다가 세상을 바꿀지라도, 기다림은 희망을 주고 그리움을 남기지 않는가. 크지 않아도 된다. 화려하지 않아도 좋다. 소소한 기다림이면 어떤가. 어쩌면 그런 소박한 기다림이 더 소곳하고 아늑할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기다리며 살고 있는 그 기다림들은 어느 때가 되면 나를 떠나거나, 내가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 아직 오지 않은 때는 나의 것이 아니다. 나의 때도 아닌 걸 왜 미리 기다림으로 두어야 할까. 그때는 그때대로 오롯한 기다림이 있지 않으랴.

오늘 기다림은 나의 할 일이다. 나의 둘레에는 좋은 사람들이 있다. 그 기다림과 좋은 사람이 주는 희망이 있다. 임마누엘 칸트가 말했다지 않는가. ‘할 일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희망이 있다면 행복한 사람이라고.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기다림이 있으므로. (2024.8.1.)

                                                                 

 

침대 위에서

 

침대가 편안하다. 아늑하다. 지난날에는 침대 위에서 자는 잠이 어쩐지 편치를 못하고, 어떨 때는 허리가 저리기도 하던 때가 있었다. 그저 따뜻한 방바닥에 이부자리를 깔고 이리저리 뒹굴며 자는 것이 제일이라 여겼었다.

뭐가 잘못되었던지 기력을 잃고 쓰러지면서 척추에 금이 가는 환란을 당했다. 두어 주일 병원 신세를 지다가 나왔다. 허리가 몹시 아파 마음대로 드러누울 수도 없고, 누우면 일어나기도 힘들었다. 눕고 일어나는 일이 세상을 바꾸고 싶을 만큼 괴로웠다.

먼데 있는 아이들이 알고 사방 알아보고는 전동 침대를 들어오게 해주었다. 리모컨만 작동하면 앉은 사람을 눕게도 해주고, 누운 사람을 일어나게도 해주었다. 누우면 허리가 불편할 때 상체와 하체 부분을 약간씩 들어 올리면 허리가 편안해진다. 문명의 이기란 이런 것인가.

어느 날부터 책상다리 자세로 바닥에 앉기가 매우 불편해졌다. 무릎과 허리에 통증이 느껴져 와서 앉기도 힘들고 오래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의자에 앉아 무릎을 세우고, 등을 기대니 그런 불편이 줄어들었다.

누구와 약속 장소를 정할 때도 그곳의 앉을 자리가 의자식이냐, 아니냐를 살펴서 될 수 있으면 의자가 있는 집을 찾아 약속을 정하기도 했다. 나 같은 사람이 많아진 탓인지 의자로 바꾸는 집이 늘어나 갔다. 행정 당국에서 보조금을 대주며 바꾸라 한다고도 했다.

지난날 인디언들은 의자에 앉기를 마다했다. 의자에 앉으면 생명을 주는 대지의 힘으로부터 그만큼 멀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땅 위에 앉거나 눕는 일은 인디언에게는 만물의 근원인 땅을 더 깊이 생각하고 느끼기 위하는 일이라 여겼다.

아이들에게도 땅을 가리키며 우리 어머니 무릎 위에 앉자. 어머니로부터 우리 모두 나왔고, 다른 모든 생명체도 나왔다.”라고 가르친다. 그래서인지 인디언들에게는 부족 간에, 혹은 백인들과 전투할 때 다치는 상처 말고는 병이 없었다고 한다.

인디언에게는 야생이란 없었다. 자연이란 위험한 것이 아니라 더없이 친밀한 형제들이었다. 사람도 다른 자연물과 마찬가지로 그 자연 속에서 함께 살고 있기에 야생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 세상 모든 것이 야생이었다.

그러한 인디언을 야만인으로 본 백인들이 그들의 생활 터전을 침략하여 자신들의 문명한 생활 방식으로 살 것을 강요했다. 그 바람에 병 모르고 살던 인디언들이 갖가지 병을 앓게 되었다. 인디언들은 백인들이 자기들에게 준 건 독한 술과 총과 병뿐이라 여겼다.

인디언들은 문명한 백인들이 지배한 후 얻게 된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백인들이 만든 문명에 의지하게 된다. 문명이 병을 만들고, 문명이 만든 이기로 병을 이기려 했다. 문명이란 병부터 주고 그걸 미끼로 약을 주어 이득을 취하는 마약상 같은 존재라 할까.

내가 쓰러진 것도, 그로 인해 척추가 곤경을 당한 것도 모두 먹는 일, 사는 일에서 의지하는 문명 때문인 것 같다. 그걸 이겨내기 위해 병원이라는 문명 시설과 의사라는 문명 인력에 의지하고, 지금은 침대라는 문명의 이기에 의지해 편안함을 얻고 있다.

이 악순환을 어이할까. 나만이 겪어야 하는 불행은 아닌 것 같다. 누가 이러한 문명을 넘어설 수 있으며, 누가 이 굴레를 벗어나 살 수 있는가. 누구도 이 문명을 벗어나 살 수 없는, 철저하게 문명의 노예가 되어 버린 이 현실이 그저 암담하기만 하다.

내가 지금 이 침대의 편리를 누리며 아늑함을 느끼고 있는 이 편안이 오히려 처연하다. 병든 문명인이 되어 살면서 이를 이겨내기 위해 다시 문명 속을 찾아 들어야 하는 것이 어찌 처연하지 않은가.

다른 도리가 있을까. 조금씩이라도 문명 속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애써볼 수밖에 없다. 문명이 만들어 낸 맛난 것들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문명이 빚어낸 편리한 기기를 조금이라도 덜 쓰기를 애쓰는 일 말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지금 나의 처지에서 침대의 편리를 누릴 수밖에 없다 할지라도 누워 있는 시간을 줄여 보자. 허리와 다리가 편치 못할지라도 두 발로 걷기를 애써 보자. 맛난 것을 탐하기 전에 좀 거칠지라도 몸을 도와줄 수 있는 걸 찾아보자.

침대 위에서 일어나 바닥으로 내린다. 허리에 힘을 주며 팔다리를 흔들어 본다. 하늘을 보며 숨을 깊이 들이켜고 내쉰다. 뚜벅뚜벅 걷는다. 병 주는 문명의 너울이 조금이라도 벗겨지기 바라며, 문명에서 조금이라도 자유로운 내 몸을 바라며-. (2024.7.13.)

                                                                      

 

그냥 둘 걸

 

두렁길을 걷다 보니, 쇠뜨기 방동사니 깨풀 괭이밥 개갓냉이 돌나물 등 온갖 풀들이 자욱한 곳에 홀로 우뚝 서서 분홍색 꽃을 뿜어내듯이 피우고 있는 풀꽃 하나가 보인다. 나중에 알고 보니, ‘청춘의 사랑이라는 꽃말을 가진 끈끈이대나물이라는 풀꽃이었다. 가늘게 뻗어 올린 꽃가지가 마주 난 잎을 사이에 두고 갈래가 지면서 다시 뻗어 올라 다섯 개의 아기 새끼손가락 같은 꽃잎을 피워내고 있다.

들꽃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분홍빛이 시리게 고와 눈에 얼른 들 뿐만 아니라, 키도 다른 풀보다 유달리 커 끌리지 않을 수 없다. 저 꽃이 어찌 저 자리에서 피어났을까. 다른 풀보다 높이 솟기도 했지만, 꽃 빛도 주위의 풀들을 압도하고 있다. 풀씨가 하늘을 날다가 자리를 잘못 짚고 떨어져 피어난 꽃인 것 같아 조금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보다 저 꽃의 앞날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그려보면 더욱 안타깝고 아려지기까지 한다. 농부들은 두렁의 풀꽃들을 그냥 두는 법이 없다. 어떤 풀이든 자라 꽃을 피우고 씨를 맺을 만하면 예초기 예리한 칼날로 가차 없이 날려 버린다. 더 가혹한 것은 독한 약을 뿌려 바싹바싹 말라 죽게 하여 다시 잘 나지도 못하게 한다. 풀씨가 농작물에 해를 끼칠까 봐서다.

농부를 탓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꽃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탈 없이 살게 해보리라. 별로 자비로운 품성도 아니면서 이 측은지심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호미를 가져와 흙을 파헤쳐 뿌리째 캐어냈다. 뿌리 박고 있던 흙으로 감싸서 집으로 가져왔다. 화단 한쪽에 자리를 마련하여 곱게 심고 물도 충분히 주었다. 그다음 날도 물을 주며 보듬었다.

며칠 후, 아니나 다를까. 농부는 예초기 소리도 요란하게 두렁의 모든 풀을 처참하게 드러눕혔다. 농부는 후련했을 것이다. 나는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그 꽃 옮겨심기를 때맞추어 잘했다 싶었다. 꽃은 며칠 동안 제 빛깔, 제 모습을 잘 유지했다. 아침마다 그 꽃을 문안하듯 들여다보며 물을 주곤 했다. 물도 과하면 해가 될세라 살펴 가며 주었다.

그런데, 웬일일까? 이파리가 조금씩 생기를 잃어 가는가 싶더니 꽃도 빛깔이 바래 가는 듯했다. 영양이 부족해서 그런 걸까? 채소밭에 주는 영양제를 주어도 보았다. 그리해도 나날이 기운을 잃어 가고 있는 것 같았다. 급기야는 회복 불능의 상태가 되고 말았다. 잎도 꽃도 완전히 말라 들었다.

그냥 둘 걸!’

불현듯 옮겨 심은 것이 아리게 후회스러웠다. 제자리에 있었다면, 예초기의 칼날에 장렬한 최후를 맞이할지언정 사는 순간까지는 제대로 살 수 있었을 것 아닌가. 베어진 다른 풀들과 함께 드러누워 마르다가 거름이 되어서 더 찬란한 꽃을 태어나게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제 살기에 좋은 풍토가 따로 있음을 알지 못하고, 위해준다면서 괜히 옮겨심어 병구病軀로 세상을 떠나게 한 것 같아 아릿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지나친 관심이나 사랑도 독이 된다는 걸 진작에 깨닫지 못했을까.

내 살아온 자취를 돌아보면, 그냥 두어도 좋을 것을 괜한 관심 때문에 부담과 아픔을 끼치게 한 일이 적잖이 있었던 것 같다. 특히 아이들을 키울 때, 그냥 두어도 좋을 소소한 잘못들을 사랑이랍시고 심히 나무라고 심지어는 매질까지도 마다하지 않았던 일들이 다시 돌이켜진다. 내 아이들뿐만 아니라, 남의 아이들을 가르칠 때도 그런 일을 무던히 했던 것 같다.

내 아이든, 남의 아이든 그리한다고 그 사랑과 관심이 속 깊게 새겨져서 살아가는 데 생광스러운 보탬이 되었을까. 오히려 상처가 되어 마음에 멍울을 지우지나 않았을까. 그래서 오랜 세월을 두고 아픈 기억으로 남지나 않았을까. 지금은 겪어야 할 세상일들 웬만큼 다 치러내 가며 저마다의 삶을 영위하고 있을 그 아이들에게 민연한 심정을 금할 수가 없다.

그 아이들을 그대로 두었다면 지금보다 더 떨어지게 살고 있을까. 꼭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오히려 마음속에 공연한 반발심이나 혹은 적개심 같은 걸 심어주어 심성 발달을 그르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상상에 잠기다 보니 얼굴이 화끈거리며 홍조가 인다. 얼마나 더 살아야 후회 없는 삶을 살아볼 수 있을까.

화단에 줄기만 겨우 남아 바짝 마른 모습으로 서 있는 저 처연한 모습을 다시 본다. 보기 싫다 하고 쉽사리 뽑아 던져버릴 수 없다. 저것도 속이 있다면, 잘 살고 있던 저를 괜히 뽑아 옮겨 이리 괴로움을 겪게 하는가 하고 여길 것 같아 손길이 떨려온다. 그저 맥없는 상념만 되뇔 뿐이다.

그냥 놔둘 걸~!’ (2024.7.5.)

                                                                   

 

인간과 사람

 

인간사람은 한뜻을 지닌 같은 말일까? 인간이 곧 사람이고, 사람이 곧 인간일까? 국어사전의 풀이대로라면 그렇게 볼 수도 있다. 사전에서 제일의로 풀이하는 말은 인간 : 생각을 하고 언어를 사용하며, 도구를 만들어 쓰고 사회를 이루어 사는 동물. =사람.”, “사람 : “생각을 하고 언어를 사용하며, 도구를 만들어 쓰고 사회를 이루어 사는 동물. 인간이라 하여 동의어로 새기고 있다.

철학적, 윤리적인 정의를 내리려는 게 아니다. 내 삶에 화두를 두고 그 뜻을 새겨보고 싶을 뿐이다. 어떻게 정의해도, 내가 생각하는 인간’, ‘사람의 개념일 뿐이다. 그 개념으로 사전의 그 풀이를 인용認容할지라도, 사람은 생각을 하고 언어를 사용하며, 도구를 만들어 쓰고에 방점을 두고 싶고, 인간은 사회를 이루어 사는 동물에 방점을 찍어야 할 것 같다.

그런 관점으로 보면, 나는 하루에도 인간과 사람을 바꾸어서 하고, 요일을 두고도 사람으로 사는 요일이 있고 인간이 되는 요일이 있다. 인간으로든, 사람으로든 희로애락애오욕의 칠정은 다 겪겠지만, 그 속내는 다를 수 있다. 요즈음의 나는 인간으로보다는 사람으로 사는 시간이 훨씬 많은 것 같다.

외로운 사람으로부터 나의 하루는 시작된다. 세상에 사람이라곤 나 하나뿐인 것 같다. 같이 눈을 뜰 사람도, 옷을 챙겨 줄 사람도 없다. 혼자 눈을 떠서 혼자 옷을 찾아 입어야 한다. 아픈 곳이 있어도 혼자 아파해야 하고, 아픔을 다스리려 먹는 약도 홀로 꾸려 먹어야 한다. 내 어찌 인간일 수 있으며, 나의 사회는 어디에 있는가.

그리 참담에 빠지지 않아도 된다. 곧 인간이 될 수 있다. 나의 처지를 어여삐 여긴 사회 기관에서 치병에 도움 삼으라고 어떤 이를 보내주었다. 그는 내가 밥을 먹을 수 있도록 해주고, 잘 빨린 옷을 입을 수 있도록 해주면서, 나의 처지를 걱정도 해준다. 나는 그에게 깊이 감사하며 마음을 함께 나눈다. 그와 함께하는 나의 사회다. 그때 나는 인간이 된다.

내 그 사회의 생명은 길지 않다. 하루 두어 시간만 함께하면 내 사회는 이내 깨어진다. 임무를 마친 그는 돌아가야 하고, 나는 다시 외로운 사람으로 복귀해야 한다. 혼자 생각해야 하고, 아픈 곳도 혼자 다스려야 하고, 말도 혼자 해야 한다. 그때 내 말은 입말이 아니라 글말이다. 고적한 자취를 일기로 적고, 아프고 외로운 삶을 수필로 쓴다. 수필이란 삶의 고백이 아니던가. 모든 것을 오직 홀로 해야 하니, 사회를 이루어 사는 인간이 아니라 아프고 외로운 사람일 뿐이지 않은가.

그렇지 않은 날도 없지 않다. 매주 금요일이면 집을 나선다. 차를 타고 달려가다가 내리면 고맙게도 마중 나오는 분이 있다. 그분과 더불어 어느 음식점에 이르면 점심을 같이할 분들이 기다린다. 반갑고 감사한 마음을 나누며 화기롭게 같이 점심을 먹고 어느 도서관 강의실로 간다. 회원들과 함께 아는 것을 서로 나눈다. 활기찬 나의 사회다. 나는 기쁘고 즐거운 인간이 된다.

수필을 함께 공부하는 모임이다. 수필에 대해 일가를 이루지도 못했지만, 사는 일이며 쓰는 일을 조금 먼저 해왔다고, 내 말을 열심히 들어주는 분들이 있어 기쁘고 고맙다.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글을 통해 때로는 활짝 웃기도 하고, 가끔은 눈자위를 적시기도 하면서 서로의 삶을 나누다 보면, 나는 아프고 외로운 사람이 아니라 따뜻하고 활기찬 인간이 된다. ‘타인과 함께 나누어 가져야 이웃이 될 수 있고, 인간적인 관계가 이루어진다.’라는 법정 스님의 말씀이 새삼스레 울려온다.

그런 인간적인 관계는 또 있다. 한 달 중 몇째 어느 요일 밤은 그리운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다. 막걸릿잔을 나누며, 이제 우리 해야 할 일은 건강을 잘 건사하는 것뿐이라며 서로를 염려해주고, 때로는 삶의 철학이며 정치 사회의 현상에 관한 고담준론을 나누면서 유머를 섞기도 한다. 잔에 담기는 말은 정 아닌 게 없다. 얼마나 즐거운 나의 사회인가. 나는 오래오래 이들과 함께하고 싶은 인간이 된다.

그런 일들을 끝내고 다음에 다시 보자며 집으로 돌아온다. 모든 관계는 또 적막해진다. 혼자 자고, 혼자 먹고, 혼자 말하고, 병도 혼자 다스리는 외로운 날들이 나를 기다릴 뿐이다. 물론 아주 혼자는 아니다. 내가 혼자서 하는 모든 일이란 모두 사회적인 관계 속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일들이 아닌가.

그렇지만, 가슴에 켜를 짓는 쓸쓸함은 외로운 사람임을 떨쳐 버릴 수 없게 한다. 어느 시인이 말하듯 외로우니까 사람일까. 그래도 마냥 외롭지만은 않다. 글이라는 나의 속 깊은 통화자가 있다. 어느 때가 되면 기쁘고 즐거운 인간이 된다는 소곳한 기대가 있다. 그 통화자와 기대를 아울러 보듬으며 잠자리에 든다. 아늑한 꿈결로 든다. (2024. 6. 18)

                                                            

 

어머니 제삿날

 

설날, 형님이 의논을 좀 하자며 어렵게 운을 뗀다. 나이 자꾸 더해가다 보니 기력들이 전 같지 않아 형수 혼잣손으로 제상을 차리기도 쉽지 않다고 했다. 어머니 제사를 아버지 제사와 합치고, 설은 간소히 쇠고, 추석 차례는 성묘 겸해서 산소에서 모시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속이 아릿하게 저며오는 듯했지만, 다른 말을 하기 어려웠다. 형님 내외 모두 여든을 훨씬 넘어 구순을 바라보고 있는 데다가 일손도 마땅치 않은 처지고, 나도 멀리 떨어져 살아 도움이 되지 못할 지경이어서 묵묵히 들으면서 가는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제수를 진설한 제상 앞에서 강신례에 이어 헌작하며 형님은 나에게 글을 하나 읽으라며 주었다. 아들딸 잘 키워주셔서 고맙다는 말씀에 이어 세상의 변화에 어려움이 많아 제사를 함께 모시고자 하오니 너그러이 용서해주십사하는 말씀을 부모님께 사뢰는 내용이었다.

내가 독축하듯 읽어 나가자 형님은 참았던 눈물이 한꺼번에 터지듯 속 깊은 울음을 솟구쳐냈다. 나도 목이 메고 말았다. 불효자로 흘리는 회한의 눈물일까, 못난 자식으로 자아내는 무렴의 눈물일까. 설날 제상 앞은 눈물바다가 되고 말았다.

어머니 제삿날이 돌아왔다. 아버지와 합사하기로 했으니 형님댁에서는 어머니께 추모의 정은 드릴지언정 제사는 모시지 않을 것이다. 그사이 나는 혼잣몸이 된 터에다 질고 중이라 무얼 어떻게 해볼 수가 없었다. 어머니가 사무치게 그립고, 곁을 떠난 사람이 아리게 떠올랐다.

마음속 그리운 정만으로 제삿날을 보내기가 무슨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만 같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마침 하루 중 잠시나마 나를 도와주고 있는 분이 있어 그분의 손을 좀 빌리기로 했다. 홀로 치병하기 어렵다고 건강관리기관에서 보내준 분이다.

사정을 말하고, 제사를 모시려는 게 아니라 미성으로나마 추모의 정을 드리고 싶다 하며 전 조금만 부쳐달라고 부탁했다. 기꺼이 해주겠다고 했다. 출타했다가 돌아와 보니 나물 전 몇 가지에, 어디서 어떻게 구했는지 대추, , 곶감을 몇 알씩 갖추어 놓고 돌아갔다.

나중에 들으니, 마침 자기 집에 있는 것 조금 가져와 준비해 놓았다 했다. 치병에 도움을 주는 분이 내 심정까지도 치유해 주려는 것 같았다. 이리저리 민망하고 고마운 마음에 이는 회오와 감동이 눈자위를 뜨겁게 했다.

어머니 앞에 앉았다. 지방 대신 영정을 띄운 노트북을 상 앞머리에 앉혔다. 그 앞에 잔을 놓고 고맙게 마련해준 실과와 전을 차렸다. 의식은 갖출 수 없어도 헌작 배례는 드리고 싶어 잔 올리고 절을 드리는데, 어머니의 지난 생애가 파노라마로 머릿속을 아리게 지나간다.

신행 날 바로 집을 떠나 일본이며 만주며 이국땅을 전전하는 소년 신랑을 애태워 기다리며 층층시하를 살아야 했던 소녀 새댁의 속눈물 신접살이, 해방 공간의 혼란과 동족상잔의 소용돌이 속에서 피신 은신과 피란으로 겪어야 했던 험악한 시대적 고초, 아들 하나 잃고 마흔에 얻은 작은아들을 또 잃을세라 금이야 옥이야 학교를 들 때까지도 등에서 떼지 못했던 애절한 모정, 혁명 시절, 큰아들을 군대 보내고 엄동설한에도 하루도 거름 없이 얼굴 다 트도록 찬물로 세수하고 정화수 앞에서 아들 무사를 빌고 빌던 간구 치성, 자식 학업을 위해 무작정 도시로 뛰어든 아버지와 함께 온갖 간난을 이 악물며 싸안아야 했던 간난의 살림살이…….

자리보전을 하시면서도 고향 대통령을 좋아했던 아버지께서는 그 대통령 시해弑害 이틀 넘긴 새벽, 벽지 근무 중인 작은아들이 달려오자마자 힘들게 잡고 있던 숨줄을 놓으셨다. 그 후, 어머니는 17년을 어렵게 간고해 오시던 중에 이 세상 막바지에서 수족 마비되고 언어 끊긴 난병을 한 해나 앓으시다가 세상을 바꾸셨다. 돌아볼수록 어머니의 생애는 고초와 고난으로만 점철되어 온 것 같아 명치가 따갑게 저며온다.

가신 뒤에도 평안 세월 누리지 못하고, 제상조차 따로 받으실 처지가 못 된 것이 못내 송구하고 죄스럽기만 하다. 더욱이 지금 내가 온전치 못한 홀몸으로 다른 이 도움을 받아가며 지내고 있는 처지를 아신다면 또 얼마나 상심이 크실까.

눈앞이 어리어 영정조차 바로 볼 수 없지만, 부질없는 눈물이다. 이 또한 어머니 마음을 아리게 할 것임에야 눈물 흘리기도 면구하여 눈두덩 지그시 찍어 누른다.

제삿날 아닌 이 기일에, 이제부터라도 어머니 속을 조금이라 편케 해드리고 싶은 마음을 명치에 깊이 새기며 무거운 몸을 추스른다. 내 한 몸 온전히 건사하여 큰 탈 없이 사는 것 말고 어머니가 바라시는 일이 또 있을까. 영정을 거두어 모시며 다시 한번 절 올린다.

일기장을 펼쳐, 그리움을 담아 올린 제상 아닌 제상을 적고, 내일 아침 가뿐하게 일어나 하늘을 향해 가슴 환히 열고, 몸 가벼운 체조로 하루를 시작할 것이라 적어본다. 지극 자정 기리며, 사는 날까지 몸도 마음도 따뜻하게 하루하루를 엮어가리라고도 적는다. (2024.6.2.)

                                                               

 

풀은 강하다

 

골짜기로 든다. 길은 언덕 아래로 이어진다. 밭을 이고 있는 언덕배기는 무성한 풀밭이다. 밭에는 콩이며 고추며 감자며 옥수수며 여러 가지 농작물들이 자라고 있지만, 언덕배기에는 누가 가꾸지 않아도 절로 나는 갖가지 풀들이 살고 있다. 꽃 안 피는 풀은 없다. 언덕배기는 갖가지 꽃이 어우러진 화원인 셈이다. 봄까치꽃, 현호색, 꽃다지 냉이, 씀바귀, 애기똥풀, 개망초, 돌나물, 미나리냉이, 쇠별꽃, 별꽃, 괭이밥 …….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꽃들이 철철이 다투어 피고 진다.

고요와 평화가 있는 골짜기를 향해 걷는 재미도 발걸음을 한결 가볍게 하지만, 걸으면서 보는 언덕배기의 풀꽃들이 설렘으로 다가와 눈을 흠뻑 적시곤 한다. 그 꽃 하나하나에 눈길을 주다가 보면, 어떨 때는 골짜기로 드는 걸음을 잊을 때가 있다. 아늑한 고요를 찾아가려던 걸음이 황홀에 유혹당하여 외도에 빠지기도 한다.

내가 이렇게 풀꽃들의 아름다운 유혹에 젖고 있을 때, 시샘과 미움으로 속을 태우는 사람들이 있다. 언덕배기 위아래 농작물 밭 임자다. 풀을 그냥 두면 풀씨가 날아들어 곡식의 생장에 지장을 준다며 속을 끓인다. 그래서 그들은 연록, 진록의 빛깔도 싫고, 갖가지 색깔과 모양으로 피어나는 꽃들도 귀찮기만 하다.

밭 임자가 땀을 많이 흘렸을 것 같다. 날카로운 예초기 칼날을 갖다 대어 풀꽃들을 모두 날려버렸다. 무거운 기름통을 메고 언덕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며, 낮은 곳에서 올려다보며 그 많은 풀을 쳐내자면 팔이며 목은 얼마나 아프고 힘은 또 얼마나 많이 들었을까. 물론 그 꽃을 사랑하는 사람은 안중에도 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 있는 걸 안다면 얼마나 물색없는 사람이라 할까.

풀들이 깎여 나간 언덕을 바라보는 내 심정을 그가 알 바도 없거니와 알려고 할 일도 없다. 베어져 누운 풀들을 바라보는 나는, 아끼고 사랑하던 소중한 것을 잃어 비린 듯, 산산조각이 난 보물을 아리게 들여다보고 있는 듯했다. 이를 어쩌나, 발을 구르고 있는 내 모습이 조금은 어이없기도 하다.

그렇지만, 안다. 저 베어져 나간 풀이 저들의 영원한 죽음이 아니라는 것을. 곧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풀은 결코 죽는 법이 없다. 죽은 자리에 새 풀이 돋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머지않아 새 얼굴, 새 모습으로 다시 난다. 베어져 나간 것들을 거름으로 하여, 저들을 딛고 더 어여쁜 모습으로 날 것이다.

문득 김수영 시인의 이라는 시가 떠오른다. “…… 풀이 눕는다 /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물론 이 시는 시인 나름의 깊은 알레고리를 담고 있을 것이지만, 어쨌든 풀의 끈질긴 생명력을 나타낸 것은 틀림없다. 지금 여기 풀은 바람에 눕는 정도가 아니다. 아예 베어져 드러누웠다. 날카롭고 빠른 칼날에 날아가 버렸다.

그래도 그 자리에 다시 난다. 다시 움이 돋고 잎이 나고 꽃이 핀다. 자리를 옮기지도 않는다. 모습을 바꾸지도 않는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지난날 그곳에서, 그 모습으로 다시 난다. 풀의 강인성을 알고 믿기에 베어진 풀을 보며 아린 마음을 이내 거둔다. 농부의 헛수고가 조금 안타깝기는 하지만. 농부도 그런 풀의 생명력을 모르지 않는다. 다시 날 때까지의 시간을 좀 벌 뿐이라는 걸 알고 있다.

나도 풀이다. 살면서 어려움과 아픔을 겪지 않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만, 나 역시도 지금 몹시 고단한 마음과 몸을 안고 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을 잃어 마치 어디 한 부분이 피를 흘리며 잘려나간 듯한 데다가, 몸도 한 부분이 떨어져 나간 듯 큰 고장이 났다. 내 몸을 내가 감당하기 어려울 만치 고통스럽다.

베어져 나간 풀이 새로 돋듯, 나도 지금은 새로 돋는 풀이 되어 가고 있다. 풀처럼 그렇게 끈질기지는 못하지만, 시나브로 예전의 모습을 회복해가고 있다. 풀이 혼자 돋는 것은 아니다. 흙이며 물, 바람이 도와준다. 세상은 모든 것이 혼자 고적하게 굴러가도록 내버려 두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세상은 나도 고통 속을 홀로 헤매도록 버려두지는 않았다. 따스한 도움의 손길이 뻗쳐왔다. 그 도움의 고마움 속에서 다시 살아나가고 있다.

오늘 같은 휴일은 그 손길도 쉬는 날이지만, 그 손길이 잠시 닿지 않을지라도 그 온기는 늘 나를 감싸고 있다. 그 따스함으로 또 하루를 살아간다. 풀은 결코 죽지 않는다. 나도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 그 풀의 언덕을 보듬어 안으며 고요와 평화의 골짜기로 향한다. 베어졌지만 다시 살아날 풀을 보며 걸음도 가볍게 골짜기로 내딛는다. 평화가 안겨 올 골짜기로 든다.

풀은 강하다.(2024. 5. 19)

                                                                      

 

지금 이 순간만을

 

어느 문학지에서 한 시인과 김소월 시인의 가상 인터뷰를 읽었다. 시인의 물음에 대한 답변 중에 소월 시인은 우리는 대개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만 하다가 인생을 마치는 게 아닐까.’ 싶다며 생과 사에 얽매이지 말고 지금 이 순간만을 살았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소월이 살아온 생애를 돌아보면서 나올 만한 답변을 상상하며 건넨 질문의 답을 적어본 것이지만, 마치 내 삶을 두고 하는 이야기 같아 쉬 눈길을 뗄 수 없었다. 특히, ‘지금 이 순간만을 살았으면 좋겠다.’라는 말에 이르러서는 동공이 굳어졌다.

이 순간만을 산다? 그러고 보니 나는 과거와 미래에 너무 많이 매여 살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나이가 이슥해진 탓인지 떠오르는 지난 일들이 많다. 어린 시절, 청년 시절. 중년 시절. 지금의 황혼기에 이르기까지의 일들이 문득문득 돌아 보이곤 한다.

지금에서 먼 지난 시절보다는 가까운 때의 일이 더 뚜렷이 떠오르는 건 물론이지만, 아득한 옛일 중에서도 뇌리에 깊고 또렷하게 박혀 있는 것도 없지 않다. 다른 이도 다 그럴까. 좋은 기억보다는 잊고 싶고. 지우고 싶은 기억들이 더 많이 떠오르는 건 무엇 때문일까.

돌아볼수록 내 살아온 삶이란 실수와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생각할수록 부끄럽고 창피한 일, 그로 인하여 남에게 손가락질받고, 비소도 당했을 수도 있었을 걸 생각하니 지금도 얼굴이 붉어진다. 그중에는 억울한 부끄럼도 없지 않은 것 같지만.

딴은 최선의 길이라 여긴 것이 좀 힘들거나 몹시 험난한 길이기도 했다. 뜻밖에 당한 치욕과 불행에 전율과 비통을 안아야 했던 일도 떠오르는 게 많다. 내가 잘하고, 잘해주지 못해 미안하고 송구한 일도 적지 않게 생각난다.

그 반면에 기쁜 일, 즐거운 일, 보람된 일은 열 손가락을 다 채우지도 못할 정도로 한미한 것 같다. 내가 그토록 모자라고 못난 사람이었단 말인가. 누가 날 보고 참 못나고 너무 모자란 사람이라 해도 별 대척할 말이 없을 것 같다.

석양의 노을빛을 벗 삼고 있는 지금에까지 이리 살아왔다면 남은 삶인들 얼마나 곱게 살 수 있을까. 잘 살래야 그 시간이 별로 많지도 않고, 썩 잘 살아갈 자신이 있는 것도 아니다. 생각할수록 민연한 비감만 안겨 올 뿐이다.

지금 나는 세상에 오직 나 혼자만 외떨어져 있는 것 같다. 슬하가 있다 하나 모두 제 삶들을 건사하면서 품 안을 떠난 지 오래다. 어쩌다 외기러기 처지가 되어 혼자만 날아야 하는 하늘이 너무 멀고도 험하다. 얼마 남지 않은 생애에 염려가 없지 아니하다.

몸이 튼실한 것도 아니다. 감당하기 쉽지 않은 앓이에 들었다. 나라 기관에서 보내주는 분의 도움을 받아 겨우 회복해 가고 있다. 움직임은 겨우 되찾을 수 있을지라도 전 같지는 않을 것 같다. 도와주는 분의 성심이 고마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홀로 지내다가 더 큰 앓이라도 당하게 되면 일이 어찌 될까. 기우일지 모르지만, 혼자 심히 앓다가 남몰래 숨줄이라도 놓아버리게 되면, 그래서 몇 날 며칠이 흐르고 나면 잠자리에 하얀 모골로만 남지 않을까.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참상이다.

돌아보아도 내다보아도 밝고 따뜻한 일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소월 시 한 구절이 속에서 굼실거린다. “붉은 해는 서산마루에 걸리었다. /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초혼)” ‘그대는 여러 가지로 새겨볼 수 있겠다.

그렇구나. 소월도 그래서 이 순간만을살았으면 좋겠다고 한지도 모르겠다. 소월이 아내에게 한 마지막 말이 여보, 세상은 살기가 힘든 것 같구려,”라 했다지 않은가. 문득 미래를 원하지도 않고, 과거를 추억하며 우울해하지도 않는사람이 평안한 사람이라는 부처님의 말씀이 들려 오는 듯하다.

미래를 원하지 않고 과거를 우울해하지 않자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순간만을 사는 일밖에 없을 것 같다. 순간순간을 온기와 화기로 살다 보면 따뜻한 과거가 되고, 밝은 미래가 되지 않으랴. 그러고 보니, 내가 사는 이 순간들에 즐겁고 따뜻한 일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한 주일에 한 번 수필 가족들을 만나는 일은 나에게 참 명랑한 순간들을 선사하고 있다. 수필이란 삶의 진솔한 고백이 아니던가. 그 고백을 진실한 마음으로 함께 나누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내 온전하지 못한 심신을 온전히 할 수 있도록 지성을 다해주는 분의 헌신과 성심은 나에게 가득한 화기로 다가온다. 그 성심을 내 마음의 불씨로 삼아 나도 남을 향해 피워낼 수 있다면 그 순간은 또 얼마나 따뜻할까.

이런 글이라도 쓰면서 맺힌 정과 뜻을 풀어보기도 하는 순간은 늘 내 삶의 의미를 청량하게 해주고 있다. 글 쓰는 일은 무언가를 새로 짓는 즐거움도 주지만, 찌든 마음을 씻어낼 수 있는 살뜰한 수세미도 되지 않는가.

순간순간을 그렇게 살 수 있다면 남은 삶도 살 만하지 않으랴. 생각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는 듯하다. 함께 진실을 나눌 수필 가족의 시간이 기다려진다. 아침이면 적적한 문을 열고 들어설 성심의 손길이 그리워진다. 글거리를 찾아가는 걸음이 아늑해진다.

그 순간들을 위하여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을 해야 할까.

지금 이 순간만을 사는 삶을 바라며-.(2024. 5. 6)

                                                                   

 

떠나보내기가 무엇이기에

 

사람은 누구나 맞이하고 떠나보내기를 거듭하면서 삶을 엮어 나간다. 사람을 맞이했다가 어떤 계기가 되어 떠나보내기도 하고, 물건을 맞이했다가 쓸모없거나 낡아서 떠나보내기도 하고, 시간들을 맞이했다가 때가 되면 떠나보내기도 한다.

때로는 맞이하고 싶지 않은 것을 맞이했다가 힘들게 떠나보내기도 하고, 맞고 싶지만 쉽게 와주지 않는 것을 공들여 맞이했다가 서운하게 떠나보내야 하는 것도 없지 않고, 우연으로 맞이했다가 필연을 남기고 떠나보내는 것도 있을 수 있다.

맞이했기에 떠나보내기도 해야 하겠지만, 떠나보낸 기억이 맞이한 기억보다 더 뚜렷이 새겨지기도 한다. 가깝고 먼 시간의 차이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만, 맞이가 주는 놀라움이나 기쁨보다 떠나보내기가 주는 아쉬움과 비감이 더 깊게 새겨지는 탓도 있을 것이다.

물론, 모든 맞이와 떠나보내기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맞이한 것에 대한 부담감 같은 것을 안고 있다가 그것이 떠나갈 때 느끼는 시원함이랄지, 안도감 때문에 떠나보낸 기억이 맞이할 때보다 더 편안하게 남을 수도 있다.

사람도 물건도 시간도 다 마찬가지다. 특히 사람에 대한 기억이 물건이나 시간보다 더 감회가 깊을 수 있다. 좋은 감정이든, 그렇지 않은 감정이든 물건이나 시간에서보다는 사람에게 더 복잡다단하게 얽힐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 참 많은 것들을 맞이하고, 맞이한 만큼 많이도 떠나보냈다. 누군들 그렇지 않으랴만, 나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숱한 사람들을 맞이하고 세월이 흐른 후에는 여지없이 떠나보내 왔다.

그 사람들 가운데에는 언제 만나고 언제 떠나보냈는지도 모르게 아련하거나 아예 기억에서 사라진 이들도 없지 않지만, 맞이한 일도, 떠나보낸 일도 결코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되어 내내 아쉽고 아릿하게 남기도 한다.

평생을 함께한 사람이라면 어떠할까. 맞이할 때의 감회가 세상에 무엇과 바꿀 수 없을 만큼 환희로울 수도 있고, 떠나보낼 때의 안타까움은 천지에서 가장 큰 아픔과 슬픔일 수 있다. 그간의 주고받은 사연이야 어떠했든 결코 지울 수 없는 기억으로 남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수많은 세월 속에서 희비와 고락을 함께해온 사람이 남겨 놓고 간 물건들이며 옷가지를 추스르다가 낡은 상자 깊은 곳에서 외투 하나가 나왔다. 깜짝 놀랐다. 반세기에 가까운 까마득한 시절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내가 받은 혼수품이었다.

떨리는 손길로 펼쳐보니 흠진 곳 하나 없이 말짱한 채로 얌전하게 잘 개어져 있었다. 이 말짱한 옷을 왜 이렇게 깊이 간직해 두었을까. 이리 간직할 때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나름대로는 오만가지 상념이 얽혔을 것 같다.

말짱하긴 했지만, 세월이 흐르다 보니 시속에 쳐진 것이 되어 차마 계속 입게 할 수 없다고 여긴 것 같다. 버리자니 어려있는 사연과 애착을 끊을 수 없고, 그렇다고 장롱 속에 곱게 걸어 둘 수만은 없어 이리 깊이 간직해 둔 것 같다.

그때 우리는 설레는 마음들을 안고 몇 곳의 양복점을 돌아다녔다. 천의 종류며 색깔이며 무늬도 가려야 했고, 만드는 사람의 솜씨와 정성도 살펴야 하고, 모양이며 입은 맵시도 염두에 두어야 했기 때문이다. 어렵게 한 곳을 찾아 적당한 천을 골라 정성을 다해 지어 달라 했다.

그렇게 고르고 고른 것은 그만큼 꿈도 정도 크고 뜨거웠기 때문일 것이다. 그 외투를 비롯해 그가 나에게 해 준 옷가지 하나하나마다 앞으로 그려나갈 삶의 모든 것을 다 담았을지도 모른다. 그 꿈들이 잘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나에게 입히고 입혔을 것이다.

살아오면서 어찌 좋은 날 복된 날만 있었으랴. 희로애락을 다 겪으며 살아오는 동안에 그 옷들에 정념을 묻기도 하고, 때로는 원망을 새기기도 했을 것이다. 그 정념도 원망도 모두가 애착 때문이었으리라. 그렇기에 못 입을 지경이 되었어도 차마 버릴 수가 없었던 것 같다.

그 옷에 어린 그런 마음들을 새겨보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이는 듯도 했다. 마치 그 사람과 마주 있는 듯도 해 그리움이랄지 미안함이랄지 안타까움이랄지 걷잡을 수 없는 상념의 소용돌이가 일면서 심신이 다 떨려왔다.

이제 이걸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언젠가는 떠나보내야 하고, 떠나가야 할 것이지만, 차마 보낼 수가 없다. 아침이 없는 깊은 밤 속에서 이 옷과 함께 그의 나라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 가고 오는 것이 어찌 마음대로 뜻대로 될 수 있을까. 떠나보내야 한다는 마른 마음과 떠나보내기 아쉬워 젖은 마음 사이를, 나는 지금 방황하고 있다. 어쩌면 이 방황은 내 세상 문을 닫을 때까지 갈지도 모르겠다. 그 방황과 함께 긴 잠속으로 들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떠나보낸다는 게 무엇이기에-.(2024.4.21.)

                                                             

 

아침 문 여는 소리

 

아침마다 내 사는 일을 도와주기 위해 찾아와 주는 분이 있다. 오늘 아침에 또 정성 들인 반찬을 찬그릇에 정갈하게 담아왔다. ‘늘 이렇게 가져오시면 어떻게 하느냐?’ 하니. ‘제 마음이지요.’라 하며 상긋이 고개를 숙인다.

감당하기 쉽지 않은 병치레를 하고 있다. 두어 주일을 병원에 머물다 나왔지만, 곧 좋아질 증세가 아니었다. 병원을 나와서가 더 힘들었다. 도와줄 이가 없이 혼자 견뎌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라도 살아야 하는가, 비감 서린 마음과 함께 자칫 희망을 잃을 뻔했다.

병중인 몸을 돌봐 줄 이 없는 궁색한 삶을 굳이 살아내어야 하는 걸까. 몸이 아픈 것도 힘든 일이지만, 곁에 아무도 없다는 것이 아픈 몸보다 더 고통스러웠다. 아픔 아래에 깔린 고적이 삶에 대한 회의감마저 들게 했다. 아침이 나의 것이 아니기를 빌며 잠드는 밤이 많았다.

그 사정을 알게 된 지역 사회복지기관과 나라 건강관리기관에서 주선하여 내 사는 일을 도와줄 분을 보내주었다. 낯선 사람이 사생할 속에 들어온다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기대도 없지 않았다. ‘천만다행이란 말이 나를 위해 생겨난 것 같다.

내 고적이 잠시나마 깨어질 수 있다는 게 위안이 되기도 했고, 버거운 생활의 일들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안도감을 느끼게도 했다. 함께하는 생활이 하루에 두어 시간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 짧은 시간으로 온 하루를 아늑하게 보낼 수 있도록 해주려고 애썼다.

그는 오늘도 이른 아침 나에게로 왔다. 조반부터 준비해 나갔다. 처음엔 집에서 아침을 들고 온다며 나만 차려 주었다. 며칠 후부터 아침을 함께하자고 했다. 같이 먹을 사람이 있으면 밥맛이 더 날 수 있지 않으냐며, 함께하면 더 잘 차리기에 애쓸 게 아니냐는 농담도 보탰다.

함께 먹으니 한층 더 가까워지는 듯했다. 한 식구가 된 것이다. 식생활은 물론, 의식주 전반에 걸쳐 더욱 깊은 정성을 기울이는 것 같았다. 살림을 아예 좀 챙겨달라며 신용카드 한 장을 맡겼다. 맡기를 주저했지만, 그게 나도 편한 일이라며 맡아 달라며 사정했다.

그 카드로 장을 봐와서 먹거리며 필수품들을 마련해 나갔지만, 카드를 쓸 수 없는 재래시장에서 거래한 것은 금액을 물어 이체해 주곤 했다. 그게 걸려서일까, 베풀기를 좋아하는 본래의 마음에서일까. 집에서 장만한 먹거리들을 때때로 가져와 함께 먹자 했다.

이런 것도 다 재료비가 들었을 것 아니냐며 비용을 대고 싶다 하니, ‘꼭 그렇게 하셔야 하느냐?’며 낯빛을 바꾸었다. 자기는 정성으로 하는 일을 왜 그리 각박하게 대하느냐는 뜻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오히려 무안했다.

그런 마음을 가진 그를 위해 나도 조금의 보답이라도 하려고 애쓰고 있던 어느 날, 이 철에 겉옷 안에 받쳐 입을 옷이 마땅찮은 것 같더라며, 셔츠와 조끼를 한 벌로 사 와 입어보라 했다. 아주 잘 어울렸다. 고마운 마음을 미소에 실었다.

그렇게 마음과 정성을 주고받는 사이에 내 몸이 한결 가벼워져 가는 느낌이 들어갔다. 주어진 일만 열심히 해서 대상자 보호라는 임무를 완수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정성을 붓다 보면 모든 것이 잘 다스려질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런 일을 하는 분들은 다 그런 신념을 가지고 있는 걸까. 다 그럴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이분의 천품인 것 같았다. 내가 따로 바랄 일을 남기지 않는다. 내 속을 꿰뚫어 보듯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척척 정성을 쏟아낸다. 천품이 아니고야 어찌 그리 헌신할 수 있으랴.

감동의 하루하루가 이어져 나갔다. 하루 첫 문이 열리는 반가운 소리에 귀를 세우는 아침들이 내게로 오는 일이 거듭되면서 처지에 대한 비감이랄지, 삶에 대한 회의감이 조금씩 스러져 가는 것 같았다. 아침 문 여는 소리를 안고 잠드는 밤이 많아져 갔다.

프랑스의 사회운동가인 아베 피에르(Abbe Pierre, 1912~2007) 신부는 온갖 종류의 소망들을 가질 수 있지만, 희망은 삶의 의미 단 하나뿐이라 했다. 무언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들은 개개인의 소망일 뿐, 희망이란 자신의 삶에 의미가 있다고 믿는 일뿐이라는 것이다.

그랬다. 나는 희망을 내려놓을 뻔했다. 내 삶의 의미를 무엇에겐가 빼앗길 뻔했다. 삶에 대한 의미를 잃어버린다면, 그것은 가야 할 곳은 딱 한 곳뿐인 절망 아닌가. 절망이란 희망이 끊기고 무너진 것이 아닌가. 나는 지금 살아 있다.

아침을 한결 가볍게 일어난다. 병중의 허리를 부드럽게 하기 위한 체조를 하고 세수를 맑게 한다. 가뿐히 살아가고 싶은 마음을 다시 여미며, 아침 문 열리는 소리를 기다린다. 희망을 기다린다. 그 기다림과 함께 삶의 의미를 다시 새겨 본다.

내일쯤이면 몸도 마음도 가뜬해질 것도 같다. (2024.4.3.)

                                                                      

 

의사의 경고를 어겼다

 

의사의 경고를 어겼다. 의사가 오르지 말라는 산에 오르고 말았다.

어쩌다 척추에 금이 가는 변고를 당했다. 십여 일 입원하면서 갈라진 금을 붙이는 치료를 하고, 퇴원하고서도 계속 가료 중이다. 산은 평지보다 허리에 더 무리한 힘이 가해질 수 있고, 때에 따라 치명적인 충격을 받을 수도 있다고 했다.

기동할 만할 즈음부터는 잠시간씩 걷는 것도 회복에 도움 되는 일이라기에 순탄한 길을 잡아 조금씩 걸었다. 늘 다니던 강둑길로 나가서 맑게 흐르는 물을 보며 위안 삼기도 하고, 고요한 골짜기를 걸으며 사색에 잠기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해가 바뀌어 겨울 가고 봄이 왔다.

시나브로 오는 봄과 함께 땅속에 묻혀 있던 상사화 둥근 뿌리가 잎 촉을 내밀기 시작하여 점점 자라 오르고, 두렁에는 하늘빛을 닮은 봄까치꽃이 자잘한 꽃들을 피워냈다. 강둑에는 노란 꽃을 피워낼 산괴불주머니가 잎부터 돋우어내고 있다.

저들이 저리 피어나자면 산 소식은 어찌 돌아가고 있을까. 겨울의 두꺼운 낙엽들은 그대로 쌓여 있을까. 나무들은 아직도 맨몸의 묵언 수행을 계속하고 있을까. 무슨 움이라도, 망울이라도 수줍게 틔워 내고 있을까.

때마침 야생화 전문 기자인 조선일보 김민철 논설위원이 국립중앙박물관 뜰에 찾아온 봄꽃 소식을 뉴스레터로 전해왔다. 거기에는 매화는 물론 돌단풍이며 미선나무꽃, 생강나무 노란 꽃이며 올괴불나무 꽃이 이른 봄을 수놓고 있다고 했다.

생강나무, 올괴불나무 꽃~!! 성냥개비 끝에 피어나는 불꽃처럼 갑자기 내 속 깊은 곳에서 그리움이 화르르 솟아올랐다. 내 늘 오르는 산에서 다른 어떤 푸나무들보다 가장 먼저 봄을 느껍게 해주던 꽃들이 아닌가.

서울 도심 한복판에 그 꽃 그리 핀 것을 보면, 내 산길의 그 꽃들도 이미 제빛 제 모습을 다 드러내고 있을 것이 아닌가. ‘무엇을 어찌하고 싶어 죽겠다.’라는 상투적 어구 속에 박제되어 있는 죽겠다라는 말이 내 속에 살아서 꿈틀거리는 듯했다.

산으로 내달았다. 허리 보호대를 두르는 것조차 잊어버린 채 발은 벌써 산어귀를 딛고 있었다. 내가 볼 수 없는 사이에 봄이 벌써 이렇게 가깝고도 깊게 와 있구나. 몇 걸음 오르지 않아 노란 꽃술을 뭉쳐 놓은 것 같은 생강나무 꽃이 물오른 가지에 송이송이 송송 달려 있었다.

생채기 진 가지에서 생강 냄새가 난다는 꽃나무, ‘사랑의 고백’, ‘영원히 당신 것이라는 꽃말을 가진 그 꽃, 정선아리랑 속의 동박, 김유정 소설 동백꽃속의 그 동백, 내 산길 속에서 봄마다 나를 가장 먼저 맞고, 내가 유달리 이뻐하던 꽃이 아니던가.

내 몸 어디가 아프단 말인가. 지난날 내 발자국이 살아있을 것 같은 길을 익숙한 걸음으로 디뎌 나아간다. 오름길 한 곳, 저 가녀린 나무 그 잔가지에서 보일 듯 말 듯 고개 숙인 꽃, 올괴불나무 꽃이다. 이른 봄, 내 산길에 생강나무 노란 꽃과 함께 나를 반겨주던 꽃이다.

나래 치듯 벌린 연분홍 꽃잎 속에 솟아난 꽃술, 그 끝에 달린 빨간 문채, 김민철 기자는 빨간 발레 토슈즈를 신은 듯하다 했다. 꽃말이 사랑의 희열이고 보면 그 희열로 경쾌한 발레라도 추고 있는 건가. 이 봄 이 꽃을 못 볼 양이면 내 희열 하나가 무참히 묻힐 뻔했구나.

내친걸음은 점점 가풀막진 곳을 향한다. 그 가풀막 위에는 내가 오로지하는 고사목 의자가 있다. 이승의 명을 다하고 누운 나무 하나가 수많은 미물의 집이 되듯, 나의 아늑한 의자가 된 것이다. 못 올라도 거기까지는 올라야 한다. 또 봐야 할 것이 있다.

다리와 스틱에 박차를 가한다. 드디어 고사목 의자가 보인다. 그보다 먼저 눈을 번쩍 뜨게 하는 것, 진달래가 언제 저리 곱게 피었는가. 막 벙글려는 것도 있지만, 활짝 피어 나를 향해 함박웃음을 짓는 것도 있다. 날마다 오를 적에는 움트고 망울지고 그 망울이 꽃으로 피는 걸 사랑스레 지켜봐 오다가 저 핀 꽃을 대하니 왜 이제야 오느냐?”며 외려 날 탓하는 것 같다.

진달래뿐이랴, 생강나무 꽃도, 올괴불나무 꽃도 마찬가지다. 날 얼마나 원망했을까. 아니 내가 너희들을 못 보고 이 봄을 넘겼더라면 내 속에 얼마나 아린 멍이 졌겠느냐. 이제야 그 멍을 조금은 지울 수 있겠노라며, 다시 보자 하고 산을 내린다.

내리는 걸음이 그리 무겁진 않았지만, 길이 완만해질 때쯤은 허리에 무슨 전류라도 흐르는 듯 저려 온다. 의사의 경고 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려오는 듯하다. 그 경고를 어긴 업보로 하루 이틀쯤은 허리를 곧추 펴고 누워서 앓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도리 없다. 보고 싶은 것 보고, 사랑하고 싶은 것 사랑했으니, 그 병통쯤이야 달게 겪어야 할 일이다. 살고 죽는 것도 그럴 수 있지 않으랴. 온 마음 바쳐서 하고 싶은 일을 한 연후에 한두 해쯤 일찍 세상을 떠나는 일이 있을지라도 무슨 아쉬움이 그리 남으랴.

그렇지만 의사의 경고를 남의 일같이 내칠 수는 없는 일이다. 내일은 고즈넉한 골짜기를 걸을 것이다. 세상 모든 소음은 사라지고 고요만이 가득한 그 골짜기, 모든 사랑도 그리움도 미움도 욕심도 다 내려놓을 수 있는 그 아늑한 골짜기로 들 것이다. (2024. 3, 20)

                                                                      

 

 골짜기의 신은 죽지 않는다

 

강둑을 내려와 골짜기로 든다. 강을 품고 있는 강둑을 내리면 산골짜기로 드는 길과 들판으로 가는 길이 갈린다. 들길을 따라 집으로 갈 것을, 요즈음은 골짜기 깊숙한 곳까지 들었다가 돌아 나와 들길을 지나 집으로 향한다.

여느 때는 아침엔 들판과 강물을 옆구리에 끼고 강둑을 거닐고, 저녁 무렵엔 고샅을 지나 산으로 오르곤 했다. 산을 오를 수가 없게 되었다. 무슨 병 탓인지 갑자기 쓰러지면서 등뼈에 금이 갔다. 어려운 시술 끝에 금을 붙이긴 했지만, 산에는 오르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다.

아침저녁의 걸음을 합쳐 강둑을 거닐다가 골짜기로 든다. 언덕 중허리에서 정한 물이 나는 샘골을 지나 속삭이듯 흐르는 도랑물 소리를 들으며 깊숙한 걸음을 옮긴다. 한 발짝 한 발짝 골의 깊이를 더해갈수록 세상이 달라져 간다.

바뀌어 가는 풍경 속에 눈 풍경만이 아니라 귀 경치도 점점 다른 모습을 드러낸다. 강둑을 걸을 때는 강 건너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 소리가 강물 소리를 집어삼키곤 했다. 그래도 물이 아늑하고 물에 잠긴 풍경이 그윽하여 즐겨 걷곤 했다.

골짜기가 깊어질수록 세상의 차들이 하나둘씩 사라지더니 마침내는 모두 감감해져 버렸다. 요란하게 질주하던 소리들은 다 어디로 가버린 걸까. 오직 남아 있는 것은 도랑물 소리, 내 발길 소리뿐이다. 산의 나무들도 깊은 묵언행에 들어 있다.

도랑이 곁에서 좀 멀어지자 아무 소리도 남지 않았다. 어쩌다 가녀린 새소리가 들려올 뿐, 세상의 모든 것이 멈추어져 버렸다. , 나도 멈추어지고 말았다. 발길도 고요 속에 얼어붙고, 머릿속을 끓던 잡념들도 뚝 끊기었다.

무서우면서도 편안하다. 세상에서 뚝 떨어져나온 것 같은 고독감이 두렵기도 했지만, 세상 모두 내 것이 된 것 같아 마음이 부요해지면서 고즈넉해 온다. 마음에 무슨 근심이 있고 걱정이 있으며, 몸에 무슨 지장이 있고 병이 있는가.

법정 스님은 출가란 단순히 집에서 나온다는 말이 아니라. 온갖 세속적인 모순과 갈등과 집착의 집에서 훨훨 미련 없이 떨치고 나온다.’(물소리 바람 소리, 가사 입은 도둑들)라는 뜻이라 했다. 그러고 보니 이 순간만은 내가 고결한 출가승이 된 것 같다.

마음이 어찌 이리 아늑해지는가. 깊숙한 골짜기의 이 정밀이 어찌 이리 포근한가. 그래서 노자가 골짜기의 신은 죽지 않는다. 이를 일러 미묘한 모성이라 한다.’(도덕경, 6)라고 한 건가. 이 골짜기가 그야말로 어머니의 품같이 포근하다.

이 품은 괴로움도 즐거움이 되게 하고 불행도 행복으로 바꾸어 줄 것 같다. 아니 그렇게 되게 하고 그렇게 바꾸어 준다. 나는 지금 외기러기가 되어 고단하게 살고 있다. 거기다가 불의의 병마까지 덮쳐와 육신의 통고와 함께 지내고 있지 않은가.

한 줄기 빛이 비쳐왔다. 몸도 처지도 어려움 속을 헤매고 있다는 걸 알고, 건강을 보살펴주는 기관에서 내 심신을 기르고 도와줄 이를 보내주었다. 아침나절 짧은 동안의 일로 하루 일을 다 채울 듯 성심을 다해 살펴준다. 나는 지금 불행 속의 행복을 누리고 있다.

이 골짜기에서는 모두가 행복이다. 불행도 행복이 되고, 행복은 더욱 따뜻해진다. 괴로움은 즐거움이 되고, 즐거움은 더욱 아늑해진다. 아니다. 불행도 행복도 없다. 괴로움도 즐거움도 없다. 이 원시 고요 속에 무슨 고락이며 행불행이 따로 있으랴. 평온이 있을 뿐이다.

고요를 지고 품으며 골짜기를 나선다. 배웅해 주는 고요의 온기가 등을 어루만지는가 싶더니 안긴 고요가 체온을 남기며 하나둘씩 손을 흔든다. 도랑물 소리가 조금씩 살아나고, 세상이 가까워질수록 자취를 감춘 소음들이 민낯을 드러내며 다가온다.

소리는 점점 소란스러워진다. 고속도로가 보이면서 소리의 세상으로 변한다. 골짜기로 들 때 들려오던 소리보다 조금은 부드러워진 것 같다. 듣고 넘길 만하다. 모든 것을 평화롭게 하던 골짜기가 세상 속진에 너그러울 수 있는 아량을 준 건지도 모르겠다.

골짜기를 나와 들길을 걸어 집으로 간다. 집에 들면 앓고 있는 병과 다시 마주해야 하고, 그것에 이기기 위해 약을 먹고 허리 보호대를 다잡아 챙겨야 할 것이다. 괴로움과 즐거움이 나누어질 것이고. 행복과 불행이 갈라질 것이다.

괜찮다. ‘골짜기의 신은 죽지 않는다.’ 하지 않았는가. 영원하다는 말이다. 나무며 풀이며 벌레며 짐승이며 물과 바람 그 모든 것을 품고 있는 그 모성의 품도 영원할 것이다. 고락이 나누어지고, 행불행이 갈라질 때면 나도 한 마리 짐승이 되어 그 영원의 품으로 들면 된다.

아침이면 찾아오는 이가 나의 골짜기다. 나의 병구를 안아주는 집 안의 골짜기다. 내일도 강둑을 지나 골짜기로 들 것이다. 고요가 모든 것을 보듬어주는 골짜기, 내 세상의 골짜기다. 골짜기는 내 가난한 행복이다. 언제 안겨도 포근히 맞아줄 행복을 찾아간다.

골짜기의 신은 죽지 않는다.(2024. 2. 25)

                                                                     

 

내일은 거뜬히

 

혼자 끓여 먹고 하느라고 뭘 옳게 먹었겠나.……형님의 물기 어린 목소리가 전화기를 적시며 흘렀다. 며칠 후에 형님 내외와 여동생 내외가 길을 접어 달려왔다. 영양가 있는 먹거리를 잔뜩 챙겨왔다. 내가 쓰러진 건 못 먹어 난 병이라며 홀로 사는 내 처지를 가슴 아파했다.

어쨌든지 잘 챙겨 먹고 빨리 나아야 해.” 십 년 맏이 형님이 근심 어린 눈빛으로 입가엔 미소를 지으며 손을 잡았다. “오빠! 우리 집에도 한번 놀러 와야지.” 남매들의 걱정에 눈시울이 화끈거린다. 주위를 위해서라도 병을 잘 다스려야 할 것 같다.

갑자기 쓰러져 혼절에 이르러면서 몸 한 부분에 금까지 가게 되는 중병을 얻었다. 큰 도시 큰 병원에 몸을 눕히고, 빈사지경에 이른 몸에 난치 과정을 거쳐 두어 주일 만에 병원을 나왔다. 이제부터 내가 해야 하는 치병, 구병의 시작이었다.

홀로 조섭해야 하는 처지가 고려되어 건강 관리기관에서 사람을 보내주었다. 그 요양 덕분으로 치병은 잘 이루어져 갔지만, 하루 이틀에 좋아질 일은 아니었다. 구병이 이어지는 동안 나만 아픈 게 아니라 여러 사람의 마음을 편치 않게 하고 있었다.

지역의 선배 어르신들이 평소 내가 좋아하던 것들을 들고 달려왔다. 얼마나 고생이 많으냐며 어깨를 쓰다듬었다. 어르신들의 문병을 받는 게 도리가 아니라며 겸연쩍어하자, ‘그러면 아프지 말아야지.’ 하고 껄껄 웃으셨다.

나도 따라 웃었다. 웃는 사이에 잠시나마 아픔이 잦아드는 것 같았다. 웃음이 좋은 약인 것 같다. “한잔하러 가지 않으실랑가? 그 집(단골집) 막걸리가 다 쉬고 있을 텐데.” “그럽시다. 지금 병이 다 나아버렸습니다. 하하유쾌한 위로였다.

이웃들도 가만있지 않았다. 수시로 병을 물으면서 병치레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이것저것 챙겨왔다. 먼 길 친지들도 연이은 위로 전화와 더불어, 된 걸음 마다치 않고 달려오기도 했다. 어느 지인은 부부 함께 와서 맛난 먹을 것과 함께 따뜻한 위로의 정을 건넸다.

수필 공부로, 시 낭송으로 인연 맺고 있는 분들 대여섯이 달려왔다. 회장님은 손수 만든 갖은 반찬을 내놓는가 하면, 어떤 분은 내가 좋아하는 추어탕을 마련해 왔다. 병고 달래라고 고소한 강정이며 소복에 좋다는 영양 과일들을 쏟아냈다. 내가 무얼 한 게 있다고 이러시는가.

내가 먼저 사과했다. 와병으로 예정된 수필 공부를 함께 못하게 되어 면목이 없노라 하니, “그래요. 해주셔야지요. 내일이라도 해주세요.” 맛난 과일을 들며 모두 웃었다. “저도 몸이 근질근질합니다.” “병도 작품이 될 테지요? 하하

순간, 내가 환자가 맞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몸의 중심도 잡기 어렵고 어지러워서 차를 잘 탈 수도 없다고, 그래서 어디를 갈 수가 없다며 모임을 알려온 친구들에게 말한 내가 맞는가 싶었다. 후딱 일어서서 성큼성큼 걸어 나가는 내 모습이 환영으로 새겨진다.

문병객들이 모두 돌아갔다. 그 고마운 사람들과 어울려 잠시나마 아픔을 잊을 수 있던 시간들이 꿈속의 일만 같았다. 그 꿈속의 일이 현실이기를 바라며 자리에서 일어서보니 좀 어지럽긴 했지만, 훨씬 나아진 것 같았다.

그런 나날, 시간들이 흘러가는 사이에 몸과 마음은 조금씩 원기를 찾아갔다. 굴신을 못 했던 퇴원 당시를 돌아보면 엄청나게 좋아진 것 같다. 깊은 잠에서 기분 좋게 깨어난 것처럼 머잖아 기지개 산뜻하게 켜고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렇게 조금씩이나마 기력을 회복할 수 있게 해주는 힘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하루 중 잠시나마 와서 도와주는 분의 정성을 받아가며 빠뜨리지 않고 복용하는 약의 효용도 있겠지만, 고적한 와병 생활 속에서 따듯한 관심과 정성을 안겨준 분들의 위로도 큰 힘이 되는 것 같다.

아이들은 모두 품을 떠나 있고, 가장 가까운 식구마저도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가버려, 홀로 적적히 사는 생활이 병의 가장 큰 원인이 된 것일지도 몰랐다. 그런 터에 온기 어린 관심으로 적요한 말길을 틔워주는 분들이 구병의 가장 좋은 힘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분들을 볼 때면 내 살아온 날들이 돌아 보이는 건 무엇 때문일까. 나는 누구 병을 앓고 있는 이를 진정으로 걱정하며 그들 병 자리를 찾아본 적이 있었던가. 내 붙이며 혈친들 말고는 별로 그리 못 해본 것 같다. 그런 내가 많은 분의 관심을 받아 기력을 찾아가고 있다니.

남의 정 어린 관심 받을 만한 일도 못 한 내가 그런 관심을 얻고 있다고 생각하니 얼굴에 화기가 돈다. 나는 왜 그리 푼푼한 마음, 넉넉한 뜻을 가지고 살아오지 못했을까. 인제부터라도 따뜻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누워서 보는 창밖 하늘이 새롭다. 오늘따라 더 푸르게 더 높게 보이는 것 같다. 수필 동호인들에게 삶이 곧 글이라며, 잘 살아야 좋은 글도 쓸 수 있다고 했었다. 나는 잘 살고 있는가. 내 말에 대한 부끄러움을 조금씩이라도 덜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하리라.

선배 어르신, 그 집 막걸리가 다 쉬어 간다고 하셨지요? 기다려 주세요. 곧 가뿐하게 달려가 멋지게 한잔 올리겠습니다. 잔 속에 철철 담아 넣던 살아가는 이야기들이 더욱 푸근해지도록 애쓰겠습니다.

몸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 같다. 내일이면 거뜬히 일어날 수 있을 것 같다. (2024.2.4.)

                                                                

 

변화 앞에서

 

살아가면서 어떤 사건이나 사실을 계기로 삶의 방향이나 해야 할 일이 달라지는 건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전에 비해 후가 긍정적, 희망적으로 달라질 수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에 따라 행복해하거나 불행을 느끼기도 한다.

나도 살아오면서 숱한 그 계기를 맞이하면서 울고 웃어왔다. 그 연속이 삶의 과정이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다들 그렇게 살아왔겠지만,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가 분별이 잘 서지 않는 변화 앞에서는 또 어찌해야 하는가.

갑작스러운 입원을 하게 되었다. 홀몸이 되어 적요하게 살던 어느 날 문득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벽에 부딪히며 쓰러지는 충격으로 외상도 입으면서 뼈 한 부분에 금이 갔다. 구급차를 바꿔가며 실리기를 거듭하여 도시의 어느 큰 병원 병실에 눕게 되었다.

몸 한 부분에 부족하다는 영양소 한 가지가 혼절할 정도로 큰 병이 되게 할 줄은 몰랐다. 의식을 겨우나마 찾게 되기까지, 찾은 의식을 정상으로 돌리기 위한 섭생에까지 그리도 숱한 나날과 힘든 공력이 들어야 한다는 건 더욱 몰랐다.

금이 간 뼈를 붙게 하는 일은 세상에 더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죽음은 차라리 아주 편한 일 같았다. 그 고통의 시간이 길지 않은 것은 다행한 일이었지만, 그 고통은 보호대를 힘들게 차고 지내야 하는 숱한 나날을 맞게 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입원의 시간을 보내고 퇴원했지만, 병으로부터 해방은 결코 아니었다. 여느 때는 쓸 일 없었던 침대가 방바닥과 나를 떼어놓게 했고, 내 몸 추스르는 데 나라의 도움을 받기에 이르러야 했다. 퇴원 후 내 생존의 달라진 모습이다.

퇴원해 누운 집에 침대가 들어왔다. 어색했다. 몸이 바닥을 두고 어디를 떠다닌다는 말인가. 바닥과 몸은 하나여야 하는 줄로 알았었다. 침대는 내 몸을 바닥에서 분리했다. 그 분리가 편리를 가져다주는 데 이르러서 내 상식은 깨어지고 말았다. 또 하나의 바닥이 생겼다.

침대는 제힘으로 일어나기 힘든 몸을 버튼만 누르면 일으켜 세워 준다. 들기 힘든 다리도 들리게 해준다. 참으로 편리했다. 내가 맞이한 새로운 문명이다. 그 문명은 나를 순치시켰다. 나는 점점 침대가 없이는 불편을 느끼는 존재가 되어갔다.

이 병 다 나아도 침대와 함께하고 싶다. 포근한 쿠션도 나를 매료시킨다. 방바닥의 은근한 온기가 그립기는 하지만, 그건 전기의 힘을 빌리면 된다. 따뜻하고 폭신한 감촉에 나는 잘 길들고 있다. 퇴원이 나에게 준 커다란 편리다.

나라 사람의 건강을 관리하는 기관에서 등급을 주었다. 그에 따라 내 생존을 도와주는 이가 내게로 왔다. 제힘으로 치러야 할 의식주에 관한 일상사를 혼자 힘으로 감당하기 힘들다고 도와주는 것이다. 고마운 일이다.

천성이 아주 너그럽고 헌신적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에 거기에 걸맞은 사람을 가려 보내준 건가. 내 복으로 그런 사람을 만난 건가. 하루에 제한된 시간을 나와 함께하면서도 게 불편하고 부족한 게 없을 만치 일을 잘 치러낸다. 그저 행복할 뿐이다.

침대는 나를 편리하게 해주고, 나를 도와주는 그분은 나를 행복하게 해준다. 그 편리와 행복은 퇴원한 나에게 주어진 커다란 행운이다. 이 행운 앞에서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마냥 웃고 있을 수만은 없을 것 같다. 웃고만 있기에는 마음이 편치 않을 때가 있다. 내 몸의 움직임을 왜 다른 것에 의지해야 하는가. 내 일상사를 왜 다른 이의 손길 속에서 치려 내야 하는가. 비감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솔직히, 다행스러운 느낌도 없지 않다. 힘 별로 안 들이고 몸을 움직이게 해주는 건 다행 아닌가. 권속이 다 곁을 떠난 고적한 처지에서 도움도 고맙지만, 잠시나마 말벗이 있다는 것도 다행한 일 아닌가. 오래오래 곁에 있어 주면 좋겠다. 입원의 혜택이라 해야 할지.

머리를 흔들며 잃었던 혼을 다시 깨쳐본다. 지금 그 혜택이 나에게 왜 주어지는 걸까. 마냥 그 자리에 편히 머물라고 주는 걸까. 내 비록 황혼기를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렇게만 내내 살아도 되는 걸까.

그렇다. 어쩌면 그 혜택은 입원 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라는 계시일지도 모른다. 여느 때의 모습으로 돌아갈 힘을 길러주기 위해 내게 와 준 것일지도 모른다. 그 계시를 나는 알아채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내 의지만으로 일어날 수 있기를 애쓰고, 내 힘만으로 생활해나갈 수 있기에 공을 들여서 그렇게 될 때, 침대의 효능과 도움의 효용은 더욱 빛날 수가 있을 것이다. 설령 그 침대를 계속 쓰고, 그 도움과 함께 살아갈지라도 자력 의지를 잃어서는 안 된다.

침대로부터, 고마운 분으로부터 받는 도움들은 입원 전과 후의 가장 큰 변화다. 그 변화가 또한 나를 돌아보게 한다. 나의 입원 전 일상적 모습에 대한 상념을 더욱 깊게 만들어 준다. 입원 전에는 지나쳤던 상념, 어떤 모습이 나인가, 무엇이 내가 해야 할 일인가.

심신의 건강을 찾아가는 일이다. 찾아야 하는 일이다. 누워있을 수만은 없다. 일어나 조금씩 걷는다. 지난날의 그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나간다. 걸음에 익었던 길이다. 푸른 하늘에서 노을을 곱게 그릴 밝은 햇살이 내리고 있다. (2024. 1. 27)

                                                                     

 

노을빛이 좋다 

 

저녁 노을빛이 좋다. 언제부터 좋아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특히 요즈음 들어와서 다홍으로 티 없이 곱게 물든 노을빛을 보면 그리운 이와 마주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오래된 사랑을 다시 따뜻하게 나누고 있는 것 같기도 하여 가슴이 설레기도 한다.

노을빛이 다 고운 것은 아니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아침놀을 뿌리며 지상으로 밝게 솟아올라, 중천에 높이 떠 세상을 환히 비추다가 서서히 서녘을 붉게 물들이며 저물어가는 해라야 노을빛이 곱다. 구름을 털어낸 밝고 맑은 해일수록 노을빛도 고운 것이다.

그리 고운 노을빛을 보면 지나온 내 생애가 돌아 보이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나는 어떻게 살아왔던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저물녘에 서 있지 않은가. 저 해처럼 한 번이라도 세상을 환하게 비춰나 보고 저물고 있는가. 돌아보이는 게 많은 걸 보면, 나도 늙긴 한 모양이다.

요즈음 보호사가 와서 내 지내는 일을 도와주고 있다. 도움이 필요한 노령자에게 국민의 건강을 관리하는 기관에서 보내주는 사람이다. 도움을 받으며 살아나가는 처지가 된 것이 서글프기도 하지만, 지금 그 사람은 나의 참 고마운 구원자임은 어쩔 수 없다.

어느 날 갑자기 쓰러져 119에 실려 가는 처지가 되었다. 지역 종합병원이 감당 못 해 도시 큰 병원으로 가야 했다. 무슨 영양소 결핍이라는 진단과 함께 쓰러지는 충격으로 등뼈에 금이 가 있다고 했다. 이중고를 안게 된 것이다.

오랜 날 병실 신세를 지다가 나왔어도 여느 일상으로 돌아오기까지는 충분한 섭생과 관리가 필요하다 했다. 그 필요에 따라 하루에 잠시일망정 보호사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의식주며 성치 못한 몸을 다스려 나가고 있다.

오직 한 몸 홀로 살아가야 하는 시간들 속을 살고 있다. 붙이들은 성가하여 둥지를 떠난 지 오래고, 반려마저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버렸다. 붙이들을 좀 더 성심으로 거두어 줄 걸, 그 반려를 좀 더 따뜻하게 안아 줄 걸, 하는 후회들만을 허공에 덧없이 날리고 있다.

딴은 힘을 다해 살아온다고 한 게 그렇다. 방장했던 시절, 별로 하고 싶지 않은 일도 내가 해야 할 일이면, 땀 흘려 하기를 애썼고, 응당 내가 해야 할 일이면 열정을 불사르며 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래서 한때는 주위로부터 작은 기림도 받아가며 보람을 안아보기도 했다.

그런 것들만이 내 전부라 치부할 때도 없지 않았다. 다른 것은 별로 돌보지 못하고 살아온 지난날들이 오히려 지금은 아픔이 되어 남을 줄이야. 별반 이루어 놓은 것도 없을뿐더러, 마음 따뜻이 나누어 가질 수 있는 사람도 마땅찮은 처지가 되어 있지 않은가.

기운을 잃고 쓰러지게 된 것도, 몸 어디에 금이 가게 된 것도, 모든 것이 내가 짊어져야 할 업보일 것이겠다. 모든 사리를 두루두루 잘 건사하며 살아왔다면 이런 일들이 왜 일어날까. 고통을 달게 받을지언정 누구를 탓하고 무엇을 원망할 것인가.

이 허물 많은 사람에게도 비쳐올 빛이 있었던가. 다행히 내 생존의 일을 도와줄 이를 잘 만났다. 공간을 차지하여 먹고 입고 하는 데에 손쓸 일이 좀 많은가. 가려운 데를 어찌 알아 시원하게 긁어주듯, 내가 치루기 어려운 모든 일을 잘 챙겨주고 있다. 고마울 따름이다.

그는 나와 혈족도 아니고, 가약으로 맺어진 사람도 아니거늘 어찌 이리할 수 있는가. 타고난 품성인가, 따뜻하게 살려는 애씀인가. 오늘도 그는 아침 일찍 나에게로 와서 제반사를 알뜰하게 챙겨주고, 하루 지낼 일을 마련해 놓고 내일을 기약하곤 집을 나선다.

그를 대할 때마다 내 살아온 이력이 자꾸만 돌아 보인다. 나는 누구에게 이리 따뜻하게 대해 준 적이 있었던가. 무엇에 살뜰한 마음을 쏟아 본 적이 있었던가. 그렇구나. 매사를 고마워하며 사랑할 줄을 모르고 살았구나. 이 늘그막에 철이 드는 걸까.

철이 진작 들었더라면, 쓰러지지 않아도, 금이 가지 않아도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또 한 번 회한 어린 후회심이 들기도 하지만, 지나가고 흘러간 일을 돌이킬 수 없어 안타깝고 아쉬울 뿐이다.

도움 덕분인지 지난 모습을 조금씩 찾아가고 있다. 그 도움이 나의 거울이 되는 하루하루를 고맙게 살아가고 있다. 그 하루하루 끝에는 저 해 저물어 서산을 넘듯 내 삶도 이슥해져 서녘 깊이 들게 될 것이다. 저 해는 고운 빛을 뿌리고 제 뿌린 빛 속으로 소곳이 들고 있다.

무엇을 더 소망하랴. 나도 저 해처럼 고운 노을빛을 뿌리고 싶을 뿐이다. 구름 낀 마음으로 저 빛 어찌 뿌릴 수 있으랴. 맑지 못한 심사로 저 빛 속을 어찌 들 수 있으랴. 따뜻한 마음을 돋울 일이다. 티 없는 심사로 살기를 애쓸 일이다.

저녁 노을빛이 좋고도 부럽다.(2024. 2. 22)

                                                                     

 

사선死線을 넘다

 

몸이 그토록 쉽게 무너질 줄은 몰랐다.

어느 날,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기침이 심하게 나고 머리가 빙 내둘리면서 나도 모르게 쓰러졌다. 잠시 정신을 잃었다. 눈을 떠보니 쓰러지면서 벽에 얼굴을 부딪쳐 입술과 관골에 생채기가 지고 무릎에도 상처가 났다. 등도 무척 아팠다. 일어나려 했지만, 바닥을 짚을 힘이 없었다.

이러다가 죽는 게 아닌가 싶어 억지로 몸을 끌어 전화기를 잡고 119에 도움을 청했다. 구급차가 이내 달려왔다. 실려 가면서도 머릿속이 가물가물했다.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도 이런 정신 상태를 거쳐 가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지역 종합병원에 이르러 응급실로 갔다. 증세가 어떻냐고 묻는데 몽롱해지는 정신을 힘들게 추스르며 아픈 데를 말했다.

피도 뽑아 보고 엑스레이, CT도 찍었다. 독감에 나트륨, 전해질 부족 증세에 허리에 골절도 생겼다며 보호자 연락처를 물었다. 나에게 보호자가 있나? 아들 전화번호를 말해주었더니, 도시의 큰 병원으로 옮기는 게 좋겠다며 아들에게 연락한 모양이다. 잠시 후 아들이 큰 병원을 섭외해 놓았다고 연락이 왔다며 응급차를 주선해 주겠다고 했다.

차에 실려 가며 흐릿한 머릿속에서도 온갖 생각이 다 일었다. 내가 이런 일을 당하다니-. 몸속에 나트륨이 부족하다는 것은 소금기가 적다는 말이 아닌가. 환부鰥夫로 살면서 혼자 이것저것 챙겨 먹는 사이에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하지 못한 모양이다. 그 영양의 불균형 때문에 쓰러지게 되고, 쓰러지면서 충격을 받아 허리뼈에 금이 간 것 같다.

날이 어두워질 무렵에 아들이 사는 도시의 병원에 이르니, 아이들이 나와 있었다. 아이들을 보고는 다시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환자복을 입고 독방 병상에 누워있었고 팔에는 링거가 꽂혀 있었다. 독감으로 인해 감염 우려가 있어 일인실에 배치됐다 했다. 간호사들이 수시로 들락거리며 혈압과 맥박, 혈당을 측정하고 링거에 주사를 넣었다.

며칠이 지나자 여럿이서 쓰는 병실로 옮겨도 된다고 했다. 신장내과 치료가 끝나고 신경외과 치료로 넘어가 허리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죽을 고비 하나를 넘겼다 할까.

환자 네 명이 함께 쓰는 병실로 옮기자마자 수술실로 인도되었다. 허리 부분을 수술이 아닌 시술로 치료한다고 했다. 엎드리라고 하더니 허리 쪽을 무엇으로 찌르는 모양이었다. 죽는 게 낫겠다 싶을 정도로 엄청나게 아팠다. 두 군데를 찔렀다. 그 구멍을 통해 시멘트를 집어넣는다고 했다. 시멘트가 굳으면서 금 간 허리뼈가 붙는다는 것이다.

치료를 마치고 났을 때는 온 얼굴에 땀범벅이었고, 죽었다 살아난 것 같았다. 병실로 돌아왔지만, 통증은 잦아들지 않았다. 허리 보호대를 주면서 누울 때 말고는 꼭 착용해야 하고 조금씩은 걸어도 된다고 했다. 며칠 후 퇴원하라고 했다. 조섭은 계속하여야 한다며 약을 한 보따리 주었다. 두 주일 후에 다시 와서 검진을 받으라 했다. 어쨌든 두 번째의 죽을 고비를 넘긴 셈이다.

나 혼자 이 아픔을 어떻게 감당해 낸단 말인가. 퇴원하여 아이들이 사는 도시를 떠나오자니 혼자 빈집에 들어갈 내 모습이 불안도 하고 처량도 했다. 그런 내 심정보다 아이들이 더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딸이 백방으로 알아보니, 내가 사는 지역에 재가노인복지센터라는 것이 있더라 했다. 거기에 의뢰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며 의뢰도 해놓았다 했다. 의료보험 공단에도 지원받을 길을 알아보고 있다 했다.

집에 와서 혼자 약을 먹으며 아픔을 다스리고 있는데, 복지센터에서 나와 내 상태를 묻고, 이어 보험 공단에서도 내 몸 상태를 점검하러 나왔다. 공단에서 나온 사람은 쉰 개도 넘는 문항을 가지고 질문하면서 신체 상태도 살폈다. 치매가 지원받기 가장 쉬운데 치매는 아니라며 돌아갔다. 십여 일 후에 등급이 나왔다며 공단에 와서 인정서를 받아가라 했다. 복지센터 관계자와 함께 가서 받아왔다. 2년 동안 유효하고 그 후에는 또 점검을 받아야 한다 했다.

수속이 완료되면 보호사 한 사람이 나와서 생활 전반을 돌봐 주는데, 경비의 대부분은 공단에서 부담해 준다 했다. 경비도 경비지만, 고적한 생활 속에서 하루에 잠시일지라도 누구와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게 적이 마음을 놓이게 했다. 특히 아플 때 옆에 아무도 없다는 것은 얼마나 서러운 일인가.

두 주일 후 병원에 다시 가니 나트륨은 많이 채워졌다며, 약은 당분간 계속 먹어야 한다고 했다. 허리 부분에 대해서는 병원에 한 번 더 오라 했다. 내 병은 뭐가 부족한 것도, 허리가 탈 난 것도 모두 노쇠가 원인일 것 같다. 기력만 괜찮았다면 그런 일이 왜 일어날까. 누구나 겪어야 할 과정이긴 하지만, 내게 조금 빨리 온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지금도 나는 사선의 고개를 헤매고 있는지도 모른다.

필요한 수속은 복지센터에서 해주기로 하고, 나는 그 조치를 기다렸다. 며칠 후 센터에서 보호사 한 분과 함께 찾아왔다. 반가웠다. 일신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도 반가웠지만. 아픔을 위로받을 수 있다는 것이 여간 반갑지 않았다. 고맙다 했다. 앞으로의 내 날들은 어떻게 이어질까. 상상만으로도 아픔이 조금은 덜어지는 것 같다. 그리하여 나는 국가관리 노인이 되어 가고 있다 싶어 공허한 웃음기가 돌았다.

몸도 성해야 하겠지만, 정신만은 맑게 살다가 가고 싶다. 보호사에 대한 기대도 크지만, 나 자신도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는 의식이 새삼스레 꿈틀거린다. 이것저것 골고루 챙겨 먹고 신체 운동도 열심히 해야겠지. 건강한 신체에 깃들 맑은 정신을 위하여, 다음 사선과도 친해지기 위하여-.

                                                                    

 

얼마나 달려가야

 

오늘도 산을 오른다. 나무에는 잎이 거의 다 떨어졌다. 푸르고 누르다가 떨어져야 할 철을 알아 모두 제 자리를 찾아내려 앉았다. 떨어지는 것은 잎새뿐만 아니다. 가지도 떨어진다. 뻗어 오르는 나무에서 가지도 제 할 일을 다 했다 싶으면 누울 곳을 찾아 내린다.

저렇게 내려앉는 잎과 가지들 가운데는 줄기가 보내고 싶지 않았는데도 줄기의 손길을 무정히 뿌리치고 내렸거나 무참히 베어내진 것은 없을까? 줄기의 마음이야 어떻든 제 갈 길을 찾아 가버리거나 아프게 떨어져 나간 것들은 없을까, 줄기에 깊은 상처를 남긴 채.

, 저 나무 저 모습, 누가 가지 하나를 무자비하게 베어버렸나. 나무는 그 상처를 끌안은 채 숱한 세월을 두르고 있다. 둥치는 그 상흔을 감싸듯 주위를 제 살로 둘러치고 있다. 얼마나 아프고 서러웠을까. 점점 깊어져 가는 상처만 오롯이 남아 있다.

저 둥치는 얼마나 안타깝고 아픈 시간들을 보내어야 했을까. 그 아린 세월이 흐르는 사이에 지난날 가지가 달려 있던 자리는 상처가 굳고 굳어 골찬 옹이가 되었을 것이다. 아픔만큼 모진 옹이로 맺혔을 것이다.

이런 헤어짐의 아픔이 어디 나무며 그 줄기의 일일 뿐일까? 사람 살이도 마찬가지다. 사람 사이에도 만남도 있고 이별도 있고, 태어남도 있고 죽음도 있지 않은가. 이별이든 죽음이든 자연으로 가는 일도 있고, 그렇지 못하게 가야 하는 일도 있다.

어찌 가든 헤어진다는 것은 안타깝고 슬픈 일이지만, 순리에 따라가는 것이야 시간의 흐름 속에 그 아픔을 묻어갈 수도 있다. 헤어질 수도 없고 헤어져서도 안 될 이별이었다면, 그 아픔을 평생 안고, 아니 세상을 바꾸면서까지도 골수에 새긴 채 가기도 한다.

이별로 보내든 사별로 헤어지든 가슴에 결코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아 있다면, 그 상처가 바로 아픔으로 굳어진 옹이가 아닐까. 그 아픔을 노래한 어느 가수의 옹이(조항조 노래)라는 노래가 대중들로부터 호응을 얻고 있다.

사랑에 불씨 하나 가슴에 불 질러놓고 / 냉정히 등을 돌린 그 사랑 지우러 간다 / 얼마나 달려가야 이 사랑 내려놓을까 / 어디쯤 달려가야 그리움도 놓을까 / 너무 깊어 옹이가 된 사랑 때문에 내가 운다 / …… 빼지 못할 옹이가 된 사랑 때문에 내가 운다.”

얼마나 달려가야, 얼마나 오랜 세월이 흘러가야 그 아픔을, 상처를 다스릴 수 있을까. 한생이 다하도록까지 잊을 수도 지울 수도 없는 것이라면, 너무 야멸찬 옹이다. 대중가요의 정서란 사랑과 이별의 정한이 주종을 이루는 것이긴 하지만, 그런 아픔을 안고 이입된 감정으로 목놓아 부르는 사람은 없을까.

원곡 가수를 비롯한 유명 무명의 수많은 가수가 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만큼 이 노래를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듣고 싶어 한다는 것은 가사와 가락에 마음을 같이하면서 그 심금을 적시고 싶어서일 것이다.

이 노래가 나의 심금도 아릿하게 울려주고 있다. 나에게도 이 노래에 마음을 담글 만한 무슨 사연이며 사정이 있다는 말인가. 있은들 어찌 말로 드러내고 싶으랴. 말이 아픔을 덧나게 할 것도 같아, 다만 노래를 듣고 부르는 것으로 대상代償하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가끔씩 이 노래를 듣기도 하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면서 토머스 하디(Thomas Hardy 1840~1928)거울 속을 들여다보네라는 시를 함께 중얼거려도 본다.

……세월은 나를 슬프게 하려고, / 어떤 부분은 빼앗아 가고, 어떤 부분은 남겨 두네. / 그리고 한낮의 두근거림으로 / 이 저녁의 허약한 뼈대를 흔드네.”

제목 그대로 거울 속에 자신의 얼굴을 비춰보며 읊은 시다. 저 말대로 세월은 나를 슬프게 하려고 어떤 부분은 빼앗아 가고, 나만 이리 동그마니 남겨 두었는가. 그럴 때 나는, 황폐해진 거울 속 자신의 피부를 보면서 하나님께서 차라리 / 내 심장을 저렇게 수척하게, 사그라지게 하셨더라면!”이라고 절규한 저 시인의 시구를 아릿하게 뇌어본다.

홀로 이리 서럽게 남아 있을 바에는 저 시인의 마음처럼 뛰고 있는 심장이라도 멎었으면 좋겠다. 세월은 나를 왜 이리 슬프게 하는가. 그렇지만 어쩌랴, 멎지 않고 사그라지지 않는 심장을. 노래로나 싸안을 수밖에. 내 가슴을 대상해 주기 바라면서-.

가지가 잘려나간 자리의 옹이를 다시 돌아보며 산을 내린다. 어쩌면 내 가슴속의 옹이일지도 모르겠다. 심장이 살아 있는 한, 그 옹이를 감싸주지 않고 어쩌랴. 그렇게 포근히 싸안아 보듬고 살다 살다 보면 모든 걸 내려놓을 수 있는 날이 올까.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있다. 깊은 옹이를 품고 있는 저 나무도 심장은 살아 있다는 아린 몸짓일까. 얼마나 달려가야 이 사랑 내려놓을까, 어디쯤 달려가야 그리움도 놓을까.(2023. 12. 5)  

                                                 

 

쭈그러진 칡넝쿨

 

가을이 깊어가는 강둑을 걷는다. 줄지어 선 벚나무는 붉은빛 잎들이 떨어지면서 맨살을 드러내 가고 있다. 나무 아래 쑥부쟁이가 가을을 보내는 손짓인 듯 하늘거리고, 강물은 나무 그림자를 어루만지며 맑게 여물어간다.

저 나무의 칡 좀 보게나. 넓적한 잎을 쩍쩍 벌리며 넝쿨을 마구 감고 뻗어 대던 때가 언젠데 저리 말라 쪼그라들 줄이야. 지난여름 왕성하던 그 모습은 까마득히 사라지고 빛바랜 모습으로 우그리고 있는 자태가 처연해 보이기도 한다.

한때 칡넝쿨은 기고만장했다. 전후좌우도 돌아보지도 않고 아무 데 할 것 없이 마구 뻗어나고, 뻗어나는 곳마다 사정없이 감아댔다. 큰 나무든 작은 풀이든 가리지 않았다. 굵은 가지는 굵은 대로 칭칭 감고, 여린 풀의 잎이며 줄기는 목을 비틀 듯 감았다.

큼지막이 벌린 잎으로 볕살마저 가려 다른 것들은 숨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게 했다. 숲길이라도 걸을라치면 어김없이 발길을 잡는 것은 환삼덩굴 아니면 칡넝쿨이다. 환삼덩굴은 내치면 물러나기라도 하지만, 이건 기어이 발길을 잡아 넘긴다.

그렇게 세상을 살 때는 온통 제 세상인 줄 알았을 것이다. 못 오를 곳이 없고, 못 붙들 것이 없었다. 무엇이라도 제 갈퀴 안에 다 넣을 수 있지 않았는가. 무엇이라도 다 덮어 제 그늘에 넣을 수 있지 않았는가.

어느 당의 혁신 조직에서 최고 권력자와 가까이 지내는 정치인들에게 다음 선거에 출마를 사양하거나 어려운 곳에 출마하여 당을 도우라고 권했다. 그러자 어느 정치인은 오히려 백 대에 가까운 버스로 사천여 명의 지역 지지자를 동원하여 환호 속에서 세를 과시하더란다.

그에게는 아직 가을도 오지 않고, 겨울은 더욱 모르고 마냥 모든 게 짙푸른 여름을 누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마음대로 못할 일이 없고 뜻대로 되지 않을 일도 없다는 듯 한껏 호기를 부리고 있는 것 같다. 마치 한창때의 칡넝쿨처럼-.

말라가는 칡넝쿨을 다시 본다. 그 한창때는 뻗으려고 하면 어디로든 뻗을 수 있고 감으려면 무엇이든 감을 수가 있었다. 그 마음 그 뜻 그대로 모든 것들은 뻗을 길을 내주었고, 크든 작든 어떤 것이라도 그의 갈퀴에 감겨들었다.

세상에 무엇이 영원한가. 무엇이 영원히 살 수 있고, 무엇을 영원히 누릴 수 있는가. 저 칡넝쿨 세상을 모르고 무섭게 모든 것을 감으며 뻗어 올라가다가 계절이 바뀌면 이리 초라해진다는 것을 내다 보기나 했을까.

시간이 흐르고 철이 바뀌면 변하고 쇠해 가는 게 어디 칡넝쿨뿐이랴. 사람도 나무도 풀도 모든 것이 성할 때는 성하다가 쇠할 때는 쇠하여 가기 마련이고 그러다가 죽고 소멸하고, 또 나고 자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도 저 칡넝쿨의 성쇠가 예사롭지 않아 보이는 건 무슨 까닭일까. 성할 때 너무 호기를 부리지 않았는가. 아무것도 돌아보지 않고 제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버렸다는 것이다. 저 넝쿨에 몸을 묶이고 목을 조인 것들은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을까.

그렇게 겁나는 게 없었다면 세상이 끝날 때까지 기세 좋게 살아 볼 일이지, 저 조락한 꼴은 무엇인가. 다른 나무의 잎들도 다 말라고 떨어져 가도 저만은 등등하게 살아야 하지 않은가. 지금은 오히려 다른 것보다 더 초라해져 보이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지역민의 지지세를 과시하던 그 정치인의 그 힘은 영원할까. 그래서 누가 뭐라고 하든 눈치 안 보고 산다며, 모든 일은 자기 뜻대로 하겠다고 호언하고 있는 걸까. 저 칡넝쿨도 한철은 그랬다. 하고 싶은 것 다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계절의 변화는 비켜 가지 못했다.

누구든, 무엇이든 제 삶의 철이 있기 마련이다. 제철이 지나면 쇠락을 면치 못하게 된다. 제철이라고 해서 아무것도 가리지 않고 함부로 살아서는 안 된다는 걸 저 칡넝쿨에서 다시 본다. 그 삶의 뒤끝이 저리 을씨년스럽기까지 하지 않은가.

나를 본다. 지금 나는 제철을 다 보내고 내다 볼 일보다 돌아볼 일만 잔뜩 쌓인 계절 속을 살고 있다. 나는 편안하고 떳떳하게 살고 있는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고단도 하고 힘들어도 하면서 궁상스럽게 살아가고 있다.

그러고 보면 나도 제철을 철모르고 보낸 것 같기도 하다. 그 한때의 열정, 격정, 분노 속을 살면서 모든 것을 내 뜻대로만 하려 하며 살아왔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래서 지금은 저 칡넝쿨 같은 모습이 되어 있는 것도 같다.

고대 로마의 대문호 키케로가 노년에 관하여에서 기력이 쇠하는 이유는 그저 나이 들어서가 아니라 젊은 시절을 방탕하게 보냈기 때문인 경우가 더욱 많다.’라고 한 말과 일맥상통한다고 할까.

어찌 생각하면 분노의 시간들을 흘려보낸 지금의 내 세월이 아늑하다 싶으면서도, 얽히고설킨 지난날들을 돌아보면 얼굴에 화기가 솟기도 한다. 저 말라가는 칡넝쿨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지지세를 과시하던 그 정치인은 장차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이제부터라도 잘 물들고 싶다. 고운 빛깔 단풍으로 내려앉고 싶다. 마지막 저녁노을 빛처럼 곱게 스러지고 싶다. (2023.11.16.)

                                                              

 

단풍이 들 때 들고

 

오늘도 해거름 산을 오른다. 해거름 삶에서 해거름 산 오르기는 편안한 일체감을 주는 것 같아 걸음이 한결 아늑하게 느껴진다. 내 이 오랜 산행에는 늘 두 가지 기대와 목적을 품고 있다. 하나는 실용적인 것이고, 또 하나는 정서적인 것이다.

산을 오르고 내리는 사이에 내 고질인 고혈압, 고혈당이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이 산행의 덕이라 믿고 있다. 산을 걷다 보면 아프고 서러운 마음도 물 흐르듯 씻기는 것 같고,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상념들도 하나같이 단순해지는 것 같다.

이만하면 몸과 마음의 그 실용적, 정서적 기대와 목적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 것 아닌가. 그 충족을 즐거워하며 오늘도 가벼운 걸음으로 산을 오른다. 이렇게 하는 것은 오래 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곱게 죽기 위해서라며 늘 나 자신에게 말해주곤 한다.

낙엽이 발아래서 바스락거린다. 산에 단풍 빛이 비치는가 싶더니, 어느새 내려앉은 잎새들이 산을 정겹게 덮고 있다. 모두 들 빛이 들었다가 떨어져야 할 때 떨어져 제 자리들을 편안하게 잡아가고 있다.

세상에서는, 단풍 절정기를 맞이했음에도 불구하고 풍경이 예년만 못 하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단풍 빛이 덜 들었거나 여전히 녹색을 떨치지 못한 나무가 많다는 것이다. 온난화 여파로 여름과 가을 사이날씨가 이어지면서 단풍이 제때 제 색깔을 못 찾았다 한다.

올해는 더위의 기간이 길어져 광합성을 멈출 때를 놓쳐버린 탓이라 한다. 견뎌내기 힘들지라도 더울 때는 더워져야 하고 추울 때는 추워져야 한다. 잎이 싱그럽게 피어날 때는 피어나야 하고, 물들 때는 들었다가 질 때는 져야 한다. 그게 자연의 순리지 않은가.

우리의 삶은 그 순리를 잘 따르고 있는가. 피어야 할 때는 잘 피어나다가 질 때는 곱게 져가고 있는가. 자연의 순리를 어그러지게 만드는 이상기후 현상이라는 게 자연이 지은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 것이고 보면, 사람들의 삶이 순리를 잘 지키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쉼 없는 걸음으로 산을 오른다. 어찌하였거나 물들 잎은 물들어가고 떨어질 잎은 떨어지고 있다. 진 잎은 흙에 몸을 붙였다가 언젠가는 그 흙 속으로 들 것이다. 저 나무 저 잎새들 다 지고 나면 맨살의 청정한 몸으로 다시 새로운 푸름을 돋우어 낼 것이다.

넘어가던 해가 나뭇가지 사이로 붉은 노을을 뿌리고 있다. 환히 밝힌 아침을 딛고 중천에 올라 세상을 한껏 안아 보기도 하다가 조금씩 내려앉아 내일 아침을 기약하며 저리 고운 노을을 뿌리며 져가고 있다.

저 노을 보니 내일도 아주 맑을 것 같다. 속담에도 저녁노을은 맑음, 아침노을은 비라 했고, 예수도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라 했다지 않은가.

살다 보면 반듯한 날도 어그러진 날도 있고, 외로운 날도 고독한 날도 있고, 사랑의 날도 미움의 날도 있을 수 있다. 모두 나의 날이 아니던가. 그런 날들을 안아 보기도 하고 내쳐보기도 하는 사이에 세월은 흘러가고 있다.

그 세월 속을 살아오면서 나에게도 저 나무들의 생애처럼 싱그런 푸름의 시절도 있었던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 시절이 없었다면 오늘의 내가 어찌 있을까. 나에게 지금 그 시절은 아득한 전설로 흘러가 있는 것 같다.

오늘 해거름 산을 오르며 보는 붉은 하늘이며, 그 빛 속에 서 있는 나무며, 붉고 노란 물이 들어 떨어지는 잎새들이 마치 내 모습을 그려내고 있는 것 같다. 오늘의 내 모습을 비춰주기 위해 저 해 저리 붉은 기운을 뿜어 하늘을 물들이고 저 잎새 저리 떨어지고 있는 것 같다.

그렇구나. 이제 나에겐 떨어질 일밖에 남지 않았구나. 저 잎새 편안한 자리로 내려앉듯 나도 그런 자리를 보듬을 일밖에 없는 것 같구나. 미련은 없다. 잎도 단풍이 들 때 들고 떨어져야 할 때 떨어져야 하듯이 내 삶도 그렇게 되어야 할 것 아닌가.

나의 오늘도 저 하늘빛과 같은 선홍빛 고운 저녁노을이고 싶다. 그냥 말라가지 않는 선연한 빛깔의 잎새이고 싶다. 그리만 된다면, 언제 져도 더 상관할 일 없고. 어떤 자리에 앉아도 더 그리울 게 없을 것 같다.

맑고 고운 노을을 뿌리던 해가 산마루에 고즈넉이 내려앉는다. 노을이 고우면 아침이 맑다지 않은가. 내 삶도 그런 모습으로 그렇게 떨어져 내려앉다가 보면 내생 또한 맑지 않으랴.

저 하늘빛이 나의 빛이 되기를, 저 잎새 자리가 나의 자리가 되기를, 그 원 발길 속에 쟁여 담으며 아늑한 걸음걸음으로 저무는 산을 내린다. 그윽한 술 한잔하고 싶다. (2023.11.4.)

                                                                      

 

시의 숲에 당신이 왔습니다
-제11회 구미낭송가협회 시낭송콘서트를 마치고

 

달은 가을 구월로 바뀌었지만, 여름 숲이 여전히 무성하던 202392일 토요일 오후 4, 열한 번째 시 낭송 콘서트가 시의 숲에 당신이 왔습니다라는 주제를 걸고 지역 문화회관 무대에서 펼쳐졌다.

그 무대를 위해 당신이 찾아올 숲을 가꾸어야 했다. 생강나무 꽃이 겨우 움이 틀 이른 봄부터 회장을 비롯한 몇 사람들은 그 나무 심기 고민에 나섰다. 어떤 묘목을 어떻게 구해 어떻게 심고 가꿀까. 묘목이란 시고, 가꾸기는 프로그램 밭에서의 연마일 터이다.

독송, 합송, 윤송, 시 퍼포먼스, 시극 나무에 시와 가까운 수필 낭독 나무에다가 어린이 청소년 낭송 꿈나무도 가꾸기로 했다. 나무를 심고 물을 주고 북돋우어 주어야 했다. 좋은 묘목을 고르는 일도 쉽지 않았지만, 정성 들여 가꾸기는 더욱 힘이 들었다.

팀별로 나누어진 낭송 나무들은 함께 가꾸어 나가기 위해 아침 이른 시간도, 해 질 녘 어스름도 마다치 않았다. 어느 마을 정자도 좋고, 도서관 강의실도 괜찮고, 때로는 야외 공연장도 찾아서 어디서든 함께 만나 꾸준한 연찬으로 기량을 닦아 나갔다.

유창한 낭송과 함께 적절한 동작이 동반될 때 낭송의 운치가 한층 살 수 있다. 특히 시 퍼포먼스와 시극은 단순한 몸짓을 넘어 시의 흐름과 함께할 열정적인 연기도 곁들여야 한다. 그 구성과 안무 때문에 몇 날 며칠을 두고 고민도 토론도 치열하게 해야 했다.

그사이에 봄이 흐르고 여름이 갔다. 나무들은 쑥쑥 자라났다. 드디어 성목이 된 낭송 나무들이 무대에서 숲을 이룬다. ‘당신들이 모여든다. 따뜻한 발길로 찾아온 당신을 향해 꽃과 잎이 활짝 핀 숲을 이룬다. 시의 숲 향연이 펼쳐진다. 얼마나 고대하던 이 날 이 무대였던가.

프롤로그 오프닝 사운드로 트럼펫, 비올라 부부 연주가가 등장하여 잔잔하고도 정감 깊은 선율을 수놓는 것으로 무대의 개막을 알린다. 객석이 고요해진다.

그 고요 위로 협회 고문이신 전 회장이 오늘의 약속(나태주)을 낭랑하게 풀어내며 등장한다. 푸른 드레스 가슴에 핀 붉은 장미가 눈길을 잡는다. “남의 이야기, 세상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해요 / 우리들의 이야기, 서로의 이야기만 하기로 해요……그랬다. 오늘 우리는 세상사 다 제쳐 두고 시의 숲만 만들기로 한다. 현란한 박수 소리가 객석을 메운다.

사회자가 그리운 이름 하나를 주제로 하여 펼쳐지는 합송 무대를 소개하자 한 회원이 객석에서부터 천천히 걸어 그 숲에 당신이 왔습니다(김용택)를 읊조리며 울창한 숲이 우거진 무대의 영상 속으로 든다. 세 회원이 참 좋은 당신(김용택), 야생화(구은주), 가보지 못한 골목길(나태주), 그리운 이름 하나(용해원)를 앙상블을 이루어 낭송하면서 등장하여 분위기에 어울리는 몸짓과 함께 그리운 이름을 새겨나간다. 참 좋은 내 그리운 당신은 어디에 있을까. 객석의 어떤 이는 가슴에 조용히 손을 얹기도 한다.

회장이 오늘의 콘서트를 즈음한 인사를 한다. ‘제각기 서 있는 나무가 숲을 이루며 살아가듯이 우리도 따뜻한 인정을 나누며 더불어 살아가기를 소망한다.’라며 마치 한 편의 서정시를 낭송하듯 정겹게 인사한다.

박수 소리를 헤치면서 청바지 차림의 네 남자가 등장한다. 경상도와 전라도 사투리로 엮은 , 모구장 깃티마다 공가 놓곤 했던 그 대지배와 사발들은 지금쯤 어데 가 있을낑공?(상화구), 한 수 위(복효근)를 사투리 구수한 맛을 살려가며 코믹하게 낭송하자 객석에서는 시낭송 콘서트에서는 이례적이라 할 웃음보가 터진다. 관객들에겐 신선한 체험일지도 모른다.

웃음소리들을 딛고 어린아이 둘이 아장아장 걸어 나온다. 4학년, 1학년 남매가 나와 (정여민), 풀꽃(나태주)을 앙증스러운 목소리로 낭송한 데 이어 모두 다 꽃이야(류형선 사·)을 해맑게 부른다. 관객들의 박수 소리가 어느 때보다 커진다. 오늘 시의 숲 꿈나무들이다.

네 사람의 여회원이 등장하는 윤송 순서로 이어진다. 가정(박목월), 얼굴 반찬(공광규), 엄마의 회초리(길영수), 나의 어머니(신달자) 등의 시구절들을 극적인 연출로 주고받으며 가정, 가족의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무대에 준비한 소품과 시의 분위기를 살린 출연자들의 의상이 시의 정감에 더욱 깊숙이 젖게 한다. 배경 영상은 모든 무대에서 그렇듯, 시의 배경을 실감 나게 재현해 주고 있다.

잠시 쉬어 가는 순서, 기타 연주자가 나와 연주와 함께 푸르른 날(서정주 시), 사람들(한돌 사)을 불러 무대의 전환을 알린다.

다음은 조지훈의 시로 구성한 오늘 무대의 하이라이트, 시 퍼포먼스 순서다. 날렵하면서도 우아한 아우라를 풍기는 의상의 두 여 회원이 달려 나와 춤사위를 펼치는 것으로 열린 무대는 남 회원의 몸짓과 함께 풀잎 단장낭송으로 이어진다. 다섯 출연자 모두 등장하여 낭송하는 절정으로 옮겨가며 유장하고도 격정적인 춤사위와 더불어 퍼포먼스도 절정에 이른다. 서서히 하강하여 아침에 이르고, 꽃 지는 춤사위와 함께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를 애틋한 목소리로 합쳐내면서 끝난다. 잔뜩 숨을 죽이고 있던 객석에서는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진다. 울고 싶은 감동으로 끝을 맺은 찬란한 무대였다.

시 낭송 교육에 관심이 많은 임종식 교육감께서 특별 출연하여 내가 사랑하는 사람(정호승)을 온화한 목소리로 낭송한다. 교육감께서 각별히 사랑하는 사람은 이 땅의 모든 학생일 것이다. 콘서트가 끝나고 함께 출연한 꿈나무들을 정겹게 다독여 주기도 했다.

조금은 자란 꿈나무 순서다. 남녀 중학생 두 명이 등장하여 별 헤는 밤(윤동주)나룻배와 행인(한용운)을 제법 물이 오른 목소리로 낭송한다. 장차 무성한 숲의 우람한 나무가 될 재목들이다.

수필 낭독 순서로 이어진다. 출연자 수필가의 자작 수필 외로움과 고독(이일배)을 사회자와 함께 윤독해 나간다. “고독할 때 마시는 술은 달금할 수도 있지만, 외로울 때 드는 술잔은 쏟아버리고 싶을 수도 있다…….”며 차분한 목소리와 맑은 음성이 조화를 이루어 고독과 외로움의 다른 모습들을 애틋하게 그려나간다. 관객들은 한껏 숨을 죽인다.

마지막 무대 시극이다. 시극 연출 전문가 부회장의 연출과 출연으로 두 여회원과 함께 엮어나간다. 세상살이의 한 단면을 그린 가위바위보 세상(김윤현)으로 시작하여 가을(함민복), (정현종) 등 짧은 시 몇 편을 주고받으며 시의 흐름을 드라마틱하게 꾸민다. 나 하나 꽃피어(조동화)로 끝을 맺으며 시의 꽃을 한껏 피워내고는 관객들에게 인사를 할 때 장내는 환호의 도가니로 끓는다.

피날레 순서로 음악가 회원이 아름다운 세상(박학기)을 선창하자 아름다운 세상이 바로 여기라는 듯 관객들도 모두 따라 부른다. 출연 회원, 스태프진들이 모두 나와 아름다운 시 외며 사는 행복을 담은 협회가를 제창하며 관객을 향해 손을 흔들자 관객들도 일어서며 환호의 손길을 보낸다. 출연자와 관객들이 함께 기념촬영을 하는 것으로 모든 순서가 끝났다.

숲을 찾아와 그늘을 한껏 향유하던 당신들은 모두 돌아가고 숲만 남았다. 무성한 숲만 그대로 무대에 우거졌다. 숲은 영원히 무대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곧 단풍이 들고 낙엽이 지고 맨살의 성찰을 거쳐 다시 봄여름을 맞을 것이다. 더욱 싱그럽고 무성한 숲을 이룰 것이다.

당신은 그 숲을 다시 찾아올 것이다. 더욱 향기로운 숲의 그늘은 언제나 사랑하는 당신을 맞을 것이다.

오늘 우리 시의 숲에 온 당신, 그 숲 아늑한 향기 속에서 다시 해후할 수 있기를-!

                                                                 

 

살고 싶다

 

아내는 살고 싶어 했다. 잘 살고 싶었다. 마당 텃밭이 좁다며, 사는 집이 편하지 못하다며 마음에 안 차 했다. 왜 그리 욕심이 많은가. 상추만 길러 먹을 만한 밭이면 족하지 않은가. 집이 좀 좁고 누추하면 어떤가. 얼마나 오래 살 거라고 그리 힘을 들이려 할까. 아내의 욕심에 나는 가끔 딴죽을 피우기도 했다.

어디 남의 쉬고 있는 땅이라도 있으면 찾아가 그 땅을 쪼아 무어라도 심고 갈았다. 잘 가꾸든 못 가꾸든, 푸성귀가 자라든 풀이 무성하든 그저 심고 갈고 싶어 했다. 벽돌로만 얇게 쌓아 지은 집 말고, 콘크리트 옹벽에 철근을 넣어 집을 지어볼 수 없을까. 추위도 더위도 걱정 없는 집, 마당 넓은 집에서 살아볼 수 없을까. 그런 집을 짓고 싶어 했다.

드디어 아내의 꿈이 눈앞에 이르렀다. 대출도 좀 내고, 아이들 도움도 받아 가며 전답 하나를 손에 넣었다. 마침 동네를 흐르는 강에서 하상河床 준설 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거기서 나온 모래며 자갈을 받고, 주문한 흙으로 땅을 돋우어 반쪽은 밭으로, 반쪽은 대지로 만들었다.

밭에는 깨며, 들깨, 콩 들을 심고, 대지에는 아내가 원하는 대로 두꺼운 옹벽 집을 짓기 시작했다. 밤낮이 바뀌기를 거듭하는 사이에 밭에는 작물들이 자라고, 대지에는 철근 옹벽이 서기 시작했다. 이삼 년이 경과하면서 밭은 무성해지고 집은 제 형체를 이루어 갔다.

그런 것들에 비해 아내의 몸은 자꾸 쇠약해져 갔다. 일에 힘이 들기도 했겠지만, 평소에 가끔씩 앓아누울 정도로 건강 상태가 그리 튼실하지 못했다. 거기다가 자기가 하는 일을 내가 잘 이해해 주지 못한다고, 내가 하는 일을 아내가 그리 반기지 않는다고 가끔씩 다투기도 한 것이 마음의 짐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아내는 점점 잦아드는 듯한 건강 때문에 오히려 괜찮은 경작지며 쓸모 있는 집을 가지려 했음이 분명하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가지게 되면 건강도 좋아질 거라는 막연한 믿음을 가졌던 같다. 그래서 일에 더욱 열성을 부렸는지도 모른다. 아내는 잘 살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혼자서, 때로는 나와 같이 지역에서 무슨 진료를 잘한다는 병원 의원들을 들락거리기도 하고, 아이들이 사는 대도시의 큰 병원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한의든 양의든 가리지 않고 진료를 받고, 한약이든 양약이든 그 처방을 마다하지 않았다. 아내는 살고 싶었다.

그런데 병원의 의사며 기계들은 아내의 병통을 분명하게 짚어 내지 못했다. 내가 속을 너무 썩여 얻은 심통心痛 때문에 병명도 명확히 잡을 수 없는 환우에 빠진 건 아닐까. 마침내 아내는 아이들 집으로 거처를 옮겨 긴 와병에 들어가야 했다.

아내는 나와 함께 반세기 가까운 세월을 살아오는 사이에 갖은 고초를 참 많이 겪었다. 아이들 키우랴, 살림살이 건사하랴 하는 일들은 남들이 다 하는 일이라 치더라도 나와 아내의 잘 맞지 않는 상념들 때문에 다투기도 많이 했던 고통이 가장 컸을지도 모른다. 순전히 나 때문에 내가 그 병통을 앓고 있는 것 같았다.

아이들 집에서 병원을 오가며 병과 싸우고 있던 아내는, 그러기를 달포가 되어 가던 어느 날부터 집의 무슨 열쇠며 통장은 어디에 있고, 무슨 문서는 어디에 갈무리해 두었다며 잘 찾아 챙기라는 말들을 자주 했다. 나는, 당신이 나아서 오면 될 일을 그런 걸 왜 나에게 말하느냐고 했다.

또 어느 날은 전화하여 자기가 어떻게 되면 아이들에게는 무엇을 어떻게 해주고, 무슨 일은 어떻게 처리하라는 말들을 했다. 문득 겁이 났다. 아내는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걸까. 빨리 나아서 돌아와야지 무슨 말을 하느냐며 소리를 높였다.

당신이 돌아오기만 하면 내 이 세상에서 가장 착한 사람이 되어 당신 말을 아주 존중하겠다며 어서 낫기만 하라 했다. 아내도 나아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몸이 자꾸 말을 안 들으니 어찌하면 좋으냐며 목메어 했다. 참 살고 싶다 했다.

나는 죽고 싶었다. 아내를 사경에 이르게 한 내가 어찌 살아 있으랴 싶기도 했지만, 아내 없이 사는 내 모습이 도무지 상상되지 않았다. 그건 다른 곳, 어디 먼 나라 사람 일일지는 몰라도 전혀 나의 일일 수는 없다. 하루를 먼저 가도 내가 먼저 가야지, 아내가 먼저 가다니, 그게 될 말인가. 아내가 세상을 바꾸기 전에 내가 꼭 먼저 가야 한다.

아이들의 손길을 부여잡고 누운 지 두 달이 되어 가던 어느 날, 아내는 아이들의 손길도 이 세상의 줄도 느닷없이 놓고 말았다. 내가 달려갔을 때 아내는 체온이 이미 다 빠져나간 뒤였다. 눈을 감은 아내의 손에 좋아하는 포도가 들려 있었다고 했다. 아내는 끝까지 명줄을 놓으려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죽어야 할 일이었다. 아내는 자기가 심은 들깨가 무럭무럭 자라 무성하게 우거져 있는 밭도 뒤로 하고, 도색만 하면 짓기도 끝나는 집에 한 번 누워 보지도 못하고 눈을 감았다. 아내가 그리 원하던 걸 내가 보고 있을 일이 아니었다. 아내 대신 내가 한 항아리의 재가 될 일었다. 무참히도 내가 살아남고 말았다.

아내의 살고 싶음은 무엇인가. ‘죽어 감이었다. 그렇기에 죽음을 물리치려고, 살아보려고 그토록 애를 썼던 게 아니었을까. 나의 죽고 싶음은 무엇인가. ‘살아 있음이다. 살아 있기에 죽고 싶은 게 아닌가. 살고 싶은 사람은 그리 애처롭게 죽어 가고, 죽고 싶은 사람은 이리 서럽게 살아남았다.

살고 싶음의 아내여! 그쪽 세상에서 그 삶 잘 이어가고 있는지? ‘죽고 싶음의 나는 왜 이리 아프게 살아 있는지? 살고 싶음의 죽어 감이여, 죽고 싶음의 살아 있음이여~!(2023.9.1.)

                                                                      

 

혼자 돌아왔다

 

돌아와 달라고 애절하게 빌었건만, 오히려 나를 불렀다. 달려갔던 나는 혼자 돌아오고야 말았다. 돌아와 주기만 하면 내가 아주 딴사람이 되어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나의 애끊는 호소는 허공중에 무참히 흩어져 버렸다.

바쁜 일이 있더라도 아이들 전화는 잘 받아 달라던 부탁이 나에게 한 마지막 말이 될 줄이야. 당장 당신에게 달려가고 싶다고 했지만, 그러지는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 말만 믿고 나는 내 볼일을 천연하게 보고 있었다.

당신의 부탁대로 아이들의 전화를 잘 받았지. 그런데 이게 무슨 산산조각 깨어져 내려앉는 하늘 같은 일이란 말인가. 내가 달려갔을 때 당신 체온은 이미 빠져나가 버리고, 감은 눈에 앞니 하얀 끝자락만 살포시 보여주고 있었지. 오랜만에 만나는 나에게 짓는 미소였던가.

아이들 곁으로 가서 아이들 손길을 부여잡으면서 세상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애쓴 지 두 달이 가까운 어느 날, 그렇게 세상의 끈도 아이들의 손길도 모두 놓아버렸네. 그동안 내가 한 일은 어서 돌아오라고, 잘 나아 돌아와 달라고 비는 일뿐이었던 것이 야속했을 것이네.

야속한 일이 어디 한두 가지일까. 돌아보면 평안을 주고 사랑을 안겼던 일은 별로 한 게 없이, 살이의 모든 짐을 지우고 속만 끓게 하였으니 얼마나 답답하고 원망스러웠을까. 병원의 기계들조차 집어내지 못하던 그 병통은 모두 내가 만든 것만 같으니 어찌하면 좋은가.

엄마, 엄마~!’ 피 끓는 목소리로 당신을 부르며 자지러질 듯 당신 품에 엎어져 통곡하는 남매 아이들의 울음소리도 모두 내 탓인 것만 같아 나는 차라리 눈물을 욱여넣어야만 했네. 우리 살아오는 동안 당신 향한 내 가슴과 손길이 조금만 더 따뜻했어도 아이들 이리 목놓아야 할까.

숱한 원망을 품고 갔을 당신, 나에게 남은 회한은 어찌하면 좋은가. 꽃 장식에 싸인 당신은 관으로 들고, 관 위에 장례지도사가 무어라 한 마디 적으라 하데. 가슴에 엉긴 말을 어찌 다 풀어 놓을까. ‘미안하오, 편히 가시오이렇게밖에 적을 수가 없었네.

그 시답잖은 한마디 말로 당신 가슴의 응어리가 어찌 다 풀어질 수 있을까. 그래도 관 속에 들 때 당신 얼굴은 주름살 하나 없이 입술연지를 빛내고 있었지. 속은 나에게 대한 원망으로 끓고 있었겠지만, 남은 붙이들을 위해 마지막 선물로 주고 간 것인가.

그렇게 염습, 발인제를 거쳐 한 항아리의 재가 되어 납골에 삼우제, 성분제라는 세상의 절차를 거쳐 당신은 떠나갔지. 그 몇 절차로 당신은 홀연 떠났지만, 아이들과 내가 헤쳐가야 할 숱한 이 세상의 절차는 또 어찌해야 하는가. 그 절차 어떻게 헤쳐가며 살아야 하지?

당신의 절차를 다 끝내고 조문객들의 위로와 당부를 잔뜩 안고 나는 돌아왔네, 혼자서 돌아왔네. 모든 것이 그대로인 집에 나 혼자 돌아왔네. 밤이 되어 잠을 자고 아침이 오고 일어났네. 그 아침도 어김없이 나에게 오데. 야속하게 오데.

연전에 친구 부인이 친구를 두고 급작스레 떠났을 때, ‘장자(莊子)는 노자(老子)가 죽어 문상 간 진일(秦佚)의 이야기를 앞세워, 죽음도 삶도 자연현상에 불과한 것이니 죽음 앞에서 울고불고할 것 없이 편안히 여겨 자연의 도리에 따르면, 기쁨이나 슬픔 같은 감정이 끼어들 수가 없다고 했다.’라는 말과 글로 친구를 위로해 준 적이 있다.

이 얼마나 허망한 말이었던가. 위로랍시고 하는 내 말을 친구가 어떻게 들었을까를 생각하니 얼굴에 화기가 솟는다. 친구여, 사과한다. 친구의 아내, 내 아내의 죽음이 무슨 자연현상이란 말인가. 불시에 간 친구 아내며, 병통 애통 속을 떠난 아내가 과연 자연현상인가.

그게 자연현상이라면 얼마나 원망스러운 자연이고, 얼마나 한탄스러운 현상인가. 진리며 명언이란 겪어보지 않고 당해보지 않은 사람들, 그런 한가한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것인가. 그저 머리로만 짜낸 허언으로 중생들을 현혹하는 것은 아닐까.

장자가 처의 주검을 앞에 두고 동이를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다고? 그게 사람으로 할 짓인가. ‘하늘과 땅이란 거대한 방 속에서 편안히 잠들고 있는 것을 축복하는 것이라고? 그게 무슨 축복이고 달관이란 말인가. 허망하고도 서럽다.

지금쯤 아내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내가 있는 곳은 슬픔도 괴로움도 없는 곳이겠지. 애탐도 속 끓임도 없는 곳이겠지. 누가 있어야, 무엇을 볼 수 있어야 괴로워하든 속을 끓이든 할 게 아닌가. 그저 편안하게만 있을까. 아내는 그 편안한 세상을 찾아간 걸까.

그래서 성인은 당신 아내의 죽음을 두고, 세상 천지간에 편안히 잠들었다.’ 한 건가. 그걸 두고 자연의 도리요, 자연현상이라 한 건가. 그랬구나. 아내는 그 도리 속으로 갔구나. 아무도 없고, 무엇도 안 봐도 되어 속 끓일 일도 없는 편안한 곳으로 훌쩍 떠났구나.

그렇게 아내는 속 끓일 사람 없는 편안한 곳으로 떠났다. 서러운 이승의 집에 나 혼자, 혼자만 돌아왔다.(2023.8.20.)

                                                                      

 

가요무대』를 보며

 

가요무대는 많은 시청자로부터 사랑을 받아오고 있는 아주 오래된 정통 가요 프로그램이다. 무대를 통해 방송하는 가요들은 애틋한 추억에도 빠져들게 하고, 가슴 뭉클한 향수에도 젖게 하고, 사무치는 그리움에 에어지게도 하고, 또 어떨 때는 어깨 절로 들썩이게 하는 흥겨운 가락으로 시름을 씻어주기도 한다.

그런 가요를 들으며 사람들은 흘러간 날의 추억과 사람, 그 그리움에 젖어 보기도 하고, 마치 그리운 사람을 마주하고 있는 듯한 환영에 싸여 보기도 한다. 학창시절로 돌아가 풋풋한 친구들과의 우정 놀이에 빠져 보기도 하고, 첫사랑의 그림자에 아늑히 안겨 보기도 한다. 손뼉으로 함께 흥을 맞추며 살이의 고달픔을 잊어 보기도 한다.

가요무대는 그런 노래만 고른다. 그렇게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면서 잊고 살던 아름다운 일들을 떠올리게도 하고, 우울에 잠겨 있던 마음을 은근하고도 흥겨운 가락으로 달래주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