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무소유

오늘도 산을 오른다. 나무를 보러 오른다. 나무는 내가 보려 하는 그 자리에 언제나 서 있어 아늑하게 한다. 늘 생기로운 모습으로 서 있어 더욱 아늑함을 준다. 막 잎이 날 때든 한껏 푸르러질 때든, 심지어 잎 다 지우고 맨몸으로 서 있을 때조차도 고즈넉한 생기가 전류처럼 느껴져 온다.

나무는 눈을 틔워 잎을 피워내던 시절을 거치면 푸름의 철을 맞이하게 된다. 잎이 자랄 대로 자라 푸를 대로 푸르러진다. 그즈음에 이르기까지 딴은 몹시 분주했을 것이다. 물을 빨아올리고, 햇볕을 조아려 받아 생체 조직을 작동시켜 엽록소의 빛깔로 드러내기까지 얼마나 분망했을까.

나무에게 욕망의 철이 있다면 바로 이 시절이 아닐까. 푸름에 대한 욕심, 생장에 대한 푸른 욕심이다. 나무의 그 욕심은 여기까지다. 누구의 무엇도 탐내지 않고 스스로 한껏 푸르러질 수 있는 데까지다. 제살이 한철의 절정을 구가할 수 있는 이 모습까지다. 나무는 제철을 넘어서는 욕심을 모른다.

다음 철에 이른다 싶으면 그 풋풋했던 푸름의 빛깔을 미련 없이 벗는다. 그 빛깔을 벗고 나면 지닌 품성을 따라 노란빛, 붉은빛, 갈색빛 들을 띠게도 되지만, 어쩌면 그런 빛들이 타고난 제빛인지도 모른다. 제빛을 찾아 푸름의 싱그러운 여행을 했던지도 모른다. 그 여행길의 끝에서 제빛과 만나는 것이다.

이 빛깔들에도 마냥 머물지는 않는다. 갈 것은 가야 올 것이 온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바람의 철도 바뀌어 부는 품새가 산산해진다 싶으면 제 태어났던 자리로 내려앉는다. 익숙한 몸짓으로 기꺼이 내린다. 가지도 이미 떨켜로 잎과의 작별을 예고한 터였다. 보내는 것이 곧 돌아오게 하는 것임을 또한 모르지 않는다.

어떤 나무들, 이를테면 감태나무며 떡갈나무 중의 어떤 것은 끝끝내 마른 잎을 붙들고 있기도 한다. 가기 싫고 보내고 싶지 않은 속된 욕망 때문일까. 아니다. 다음에 날 것의 자리를 지켜주기 위해 고한의 계절을 인내로 견뎌내는 것이다. 눈물겨운 모성의 자력이라 할까.

이제 나무는 모든 것을 모든 것을 벗어버렸다. 그 왕성했던 갈맷빛 청춘도, 농익은 장년의 빛깔들도 모두 내려놓았다. 아무것도 갖지 않았던 처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더 많은 것을 채울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더 많은 것이란 소유욕이 아니라 세상을 맑히기 위한 무소유의 다른 마음일 뿐이다.

나무의 허심은 잎을 떨어뜨리는 것에만 있지 않다. 가지도 떨어뜨린다. 나무는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수많은 가지를 뻗어내지만, 그것들을 생애 끝까지 다 품지는 않는다. 나무는 떨어뜨릴 건 떨어뜨려야 새로운 것을 키워낼 수 있음을 알고 있음은 물론이다. 키 큰 나무들을 보라. 줄기에서 밑동에 이를수록 가지가 없거나 드물다. 성장해가면서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산을 오르다 보면 마른 나뭇가지들이 떨어져 있거나 툭 하고 떨어지는 모습을 어렵잖게 볼 수 있다. 저들이 성장해 나가는 방식이기도 하지만, 소유에 욕심을 두지 않는 까닭이다. 그렇게 정리하지 않는다면, 그 많은 것을 품고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산을 걷는 이들은 산과 나무를 보면서 감명과 위안을 얻는 일 말고 또 하나 해야 할 일이 있다. 걷는 발 앞에 떨어져 있는 가지를 치워 길을 트는 일이다. 비바람이라도 심하게 치고 난 다음이라면 톱 하나쯤 들고 오르는 일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들어서 치울 수 없는 건 잘라서라도 치워야 하기 때문이다.

불평 삼을 일은 아니다. 나무의 삶과 그 속내를 안다면 불평할 거리가 아님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가지를 그리 버리지 않는다면 그 존재가 얼마나 힘들 것이며, 그로 인해 나무가 생기를 잃는다면 산을 올라 무엇에서 감동과 위안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길을 막고 있는 마른 가지들은 편한 자리로 옮겨주면 된다. 함께 사는 일이 아닌가.

나무가 내려놓는 것은 잎과 가지뿐만이 아니다. 마침내는 그 몸을 다 내려놓는다. 나무는 명이 다하면 선 자리에서 그대로 생애를 내려놓으면서 강대나무가 된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살아있을 때도 그러했지만, 내려놓은 생애로는 뭇 짐승들이며 온갖 미물들의 더욱 아늑한 보금자리가 되어준다.

거센 바람 부는 어느 날 선 자리에서 쓰러지게 되어도 온갖 것들의 보금자리가 되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그러면서 비에 젖고 바람을 맞으며 시나브로 흙이 되어간다. 어느 세월에일지 한 줌 흙으로 돌아가 있다가 하늘이 주는 씨를 받아 다시 태어날 것이다. 다시 오랜 세월을 감으며 무소유의 생애를 또 시작할 것이다.

나무의 무소유란 지지불태知止不殆에 대한 깨달음이요 그 실현이라 할까. 그 아리따운 꽃도 풋풋한 푸름도 세월을 이겨낸 붉고 노란 빛깔들도 내내 가져가려 하지 않는다. 놓을 때 놓을 줄 알고 질 때 질 줄을 안다. 그 마음 그 뜻이 산을 오르는 내 걸음을 이리 아늑하게 하고 있음을 나무가 내려놓은 가지를 옮기며 다시 돌아본다.

그 나무를 보면서, 내려놓은 가지를 들어 옮기면서 나는 또 세사의 무엇을 욕심내고 있는가. 무엇에 마음을 졸여 심사를 어지럽히고 있는가.(2022.9.15.)

                                                                    

글 쓰는 병
-이규보의 '詩癖을 보며

 

마을 사람들이나 아내의 눈에 비친 나는 종일을 한가롭게 빈둥거리다가 해거름이면 산에나 오르고 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아내나 남들처럼 무얼 정성 들여 심거나 땀 흘려 흙을 쪼는 건 어쩌다 부름을 받아서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번다했던 생의 한 막을 거두면서 이 한촌을 찾아올 때는 그저 조용히 살고 싶어서였다. 텃밭 가꾸기는 흙을 좋아하는 아내의 몫으로 미루었다. 아내도 위하고 나도 위한다는 변명과 함께 그 신념(?)을 십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잘 준수하고 있다.

그렇지만, 남들이 그리 보는 것처럼 마냥 시간만 탕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침 강둑을 거닐며 물이며 풀꽃, 해거름 산을 오르며 나무와 숲을 보면서 느꺼워해야 하고, 신문으로 뉴스로 세상 소식도 보고 들어야 하고, 읽고 싶은 것도 읽어야 하고, 글도 써야 하고…….

하루하루 흘려보내는 시간 속에 빈틈은 별로 없다. 딴은 이리 분주스럽게 살고 있음에도 늘 빈둥거리는 사람으로 화인 찍히는 건 좀 억울하지만, 그 일에 대한 내 분망을 헤아려 너그러이 받아줄 이도 만만치 않아 민연할 때가 없지 않다.

그 일들 속에서 나를 가장 곤혹스럽게 하는 것은 글쓰기다. 어쩌다 내가 글과 연분을 짓게 되었는지, 글이 나를 찾아온 후로는 쓰든 안 쓰든 하루도 글 생각을 떠나 본 적이 없다. 쓸 때는 써서 생각하고, 못 쓸 때는 못 써서 생각한다.

한동안 글을 안 쓰거나 못 쓰고 있으면 공연한 불안감이 무슨 해충처럼 내 속을 스멀스멀 기어 다니는 것 같다. 한동안이라는 것이 조금 길어지기라도 할 양이면, 이러다간 영영 못 쓰게 되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에 전율마저 느끼기도 한다.

누가 나를 글 안 쓴다고 윽박지르는 것도 아니다. 경향 지지紙誌들이 청탁을 빈번히 해오는 것도 아니다. 그리 널리 알아주는 내 문명文名도 아니다. 그러면서도 글을 안 쓰거나 못 쓰고 있으면 왜 그리 좌불안석하는 걸까.

어쩌면 안 들어야 할 습벽이 든 까닭인지도, 안 걸려야 할 병에 걸린 탓인지도 모르겠다. 그 불안에서 조금이라도 멀어지고 싶어, 멀어지는 만큼 마음의 평안을 들이고 싶어 모니터 앞에 앉는다. 기억들을 뒤적거리기 시작한다.

시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시 쓰는 병[詩癖]’이라 하여 이를 시로 쓴 고려 문인 이규보(李奎報 1168~1241)가 떠오른다. 그 시에서 한 번 붙어 떨어질 줄 모르는 이 병은 / 마침내 나를 이 모양 만들었네. / 낮이나 밤이나 심간을 도려내 / 몇 편의 시를 짜내고 있네.(一着不暫捨 使我至於斯 日月剝心肝 汁出幾篇詩)”라 했다.

나도 이규보처럼 글을 향해 밤낮으로 심간을 도려내듯이 하지만, 나의 글은 그의 시처럼 한꺼번에 몇 편씩 써낼 수 있는 건 아니다. 한 달에 한 편을 쓸지언정 글을 잡고 있기는 나도 밤낮을 가리지 않는다. 몇 마디, 몇 줄을 쓰든 못 쓰고 있을 때보다는 마음이 가볍다.

그러다 보니 잠을 잘 때도, 길을 걸을 때도 머릿속에서는 늘 글을 쓰기도 지우기도 하고, 고치기도 다듬기도 한다. 강둑을 걷거나 해거름 산을 오를 때가 나에게는 생각을 정리하기에도, 글을 다듬기에도 거침새 없이 편안한 시간이 된다.

그렇게 때와 곳을 가리지 않고 마음을 쓰고 애를 태운 끝에 나온 글은 어떤 글일까. 아침마다 보는 강물처럼 유려하게 흘러가는 걸림 없는 문장일까. 해거름마다 오르며 보는 넉넉한 산 같고 풋풋한 나무 같은 글일까.

아니다. 무엇이 맺혀있어 돌부리 많은 길 같기도 하고, 길 못 찾아 헤매고 있는 미아의 겁먹은 눈길 같기도 하고, 무슨 맛인지 모를 풋과실 같기도 해서 누구에겐지 모를 부끄러움으로 얼굴을 붉히기도 한다.

딴은 공들여 썼다 하면서도, 이걸 글이라도 썼단 말인가 하고 돌아보는 내 모습이 너무나 작고 초라해 보여 헛웃음이 나올 때가 있다. 당대의 대문장가인 이규보마저도 이런 심정에 잠길 때가 있음에야 어쭙잖은 내 글이야 오죽할까.

그는 온몸에 기름이 마르고/ 이제는 살점마저 남아 있지 않을(滋膏與脂液 不復留膚肌)’ 만큼 고심한 끝에 쓴 시를 두고도 그렇다고 놀랄 만한 시를 지어서 / 천추에 남길 만한 것도 되지 못하니 / 손바닥을 비비며 홀로 크게 웃다가 / 웃음을 그치고는 다시 읊조려 본다,(亦無驚人語 足爲千載貽 撫掌自大笑 笑罷復吟之)”라 했다.

온 마음을 다 바쳐 쓴 시를 보니 하도 같지 않아 스스로 비소誹笑를 지으며 허탈에 빠지다가 그 웃음 그치고 나면 다시 시를 읊조리게 되니, 그야말로 시 짓는 병을 고질로 앓고 있는 것 같다.

나 역시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수십 년 글을 써오면서 쓴 글을 다시 돌아보면, 마음을 가든히 다잡게 해주는 글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이런 글을 쓰기 위해 밤낮을 두고 그리 앓아야 했던가. 그렇게 앓아도 이렇게밖에 쓸 수 없단 말인가.

허탈하고 허전하여, 이제는 글을 쓰지 않으리라, 않으리라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모니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들기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문득 놀라곤 하는 건 무슨 까닭인가. 나도 저 백운거사처럼 고치지 못할 병을 심히 앓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글 쓰는 병이라 할까.

도리가 없다.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어차피 병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법, 병을 대책 없이 내치려 할 것이 아니라 얼러 친하는 수밖에. 구슬려 옆에 두고 즐기는 수밖에.

나를 한가로이 빈둥거리는 사람이 되게 하는 내 글 쓰는 병이여-.(2022.8.21.)

                                                                        

 

쓰러진 그리움

 

굽은 소나무가 있다. 속을 들여다보면 나이테가 수십 줄은 처져 있을 것 같은 이 나무의 굽은 모양이 예사롭지 않다.”라며 시작하는 나의 글이 있다. 삼 년 전에 썼던 나무의 그리움(경북문단36)이라는 글이다.

그 나무는 뿌리 박은 땅에서 자라 올라가다가 무슨 까닭에선지 거의 직각이라 할 만한 굽이로 몸이 굽어져 버렸다. 굽어진 그대로 살아갈 수는 없었다. 몸을 조금씩 들어 올리다가 다시 직각도 더 넘게 고개를 쳐들었다.

하루 이틀에 그리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수많은 세월을 안고 그렇게 추슬러 나갔을 것이다. 그렇게 곧추서서 한참을 올라가다가 다시 앞쪽으로 조금 굽어졌지만, 다시 몸을 세워 바로 올라갔다. 오직 한곳을 바라면서-.

다 커서 그렇게 굽어진 건지, 굽어지면서 그렇게 자란 건지는 알 수 없지만, 그렇게 굽고 휘어지면서도 오직 향한 곳은 어디였을까. 하늘이었다. 제 태어난 하늘이었다. 씨를 주고 움을 주었던 하늘, 그 하늘을 애타게 그리면서 그렇게 안간힘을 다한 것이다.

그걸 두고 나는 나무의 그리움이라 했다. 모든 나무는 하늘을 향하여 솟고 그 가지들을 뻗는다. 오직 하늘을 향해서만 산다. 그 소나무는 하늘을 바로 바라보기 어려운 몸이었기에 하늘이 더욱 간절했을 것이다. 하늘 향한 그리움이 더욱더 애절했을 것이다.

그 나무가 쓰러졌다. 온몸이 땅으로 내려앉아 버렸다. 그리움이 주저앉아 버렸다. 이제 저 나무는 강대나무가 되어 땅속으로 들 것이다. 오직 하늘 향해 모든 열정을 살랐던 기억들을 안고 흙이 되어 갈 것이다. 언젠가는 그 하늘 다시 우러를 수 있을까.

그 나무는 굽고 휘어진 몸을 하고서, 그럴수록 하늘이 더욱 그리워 지성을 바쳐 하늘 향해 솟구쳐 올랐지만, 다른 나무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잎 넓은 나무들의 그늘에 묻혀야 했다. 제가 하늘을 그리워하듯, 하늘 향해 오르려는 다른 것들을 또 어찌 탓할 수 있으랴.

몸에 칠팔 할 이상의 볕을 받지 못하면 살아내기 어렵다는 소나무들의 속성을 전들 어찌 이겨낼 수 있었으랴. 잎이 말라 들더니 잔가지 큰 가지 마침내 둥치까지 말라 들어 뿌리조차 힘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속성이야 어떨지언정 그리운 하늘, 가린 하늘에 애간장이 더욱 녹아들었을지도 모른다. 하늘을, 하늘을 봐야 하는데, 그 그리운 모습을 눈에 담고 몸에 안아야 하는데 마음대로 볼 수 없고 닿을 수 없어 애를 태우다 몸조차 타들어 간 게 아닐까.

딴 나무는 선 채로 강대나무가 되고서도 수십 년은 가는데, 왜 이리 쉬 쓰러지고 말았는가. 굽고 굽어지면서도 오직 하늘 향해 오르다 보니 한쪽으로만 쏠려 있는 제 몸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뿌리조차도 힘을 잃으니 이 마른 몸은 내려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움 쪽으로만 향해 있던 몸이 쓰러졌다. 그리움밖에 모르던 육신이 쓰러졌다. 그리움이 쓰러졌다. 아니다. 그리움은 쓰러지지 않았다. 결코 지지 않았다. 저 마른 육신 속에 그리움은 송이송이 피어 있을 것이다.

어느 시인은 너의 허락도 없이 / 너에게 너무 많은 마음을 / 주어버리고 / 너에게 너무 많은 마음을 / 뺏겨버리고 / 그 마음을 거두어들이지 못하고 / 바람 부는 들판 끝에 서서 / 나는 오늘도 이렇게 슬퍼하고 있다 / 나무 되어 울고 있다”(나태주, 나무)고 했다.

저 나무도 하늘의 허락도 없이, 하늘에게 너무 많은 마음을 주어버린 걸까. 하늘에게 거두어들이지 못할 마음을 너무 많이 뺏겨버린 걸까. 시인의 나무는 뺏겨버린 마음이 애달파 바람 부는 들판 끝에 서서 울고 있지만, 저 나무는 슬퍼할 겨를도 없었던 것 같다.

애간장이 다 녹아 재가 되듯 말라 들다가 그리움 모두 그러안은 채 저리 쓰러지고 말았다. 이제 저 나무가 가야 할 곳은 오직 흙이 되는 길뿐이다. 그 그리움 곱다시 안은 채로 부는 바람 내리는 비와 더불어 세월 속으로 흙 속으로 들어야 할 뿐이다.

저 나무는 제 태어난 흙, 언제나 그렇게 해 주었던 흙을 믿는다. 땅속으로 들어 흙에 섞여 흙이 되다가 어느 날 다시 새순, 새 얼굴로 세상에 나오게 될 날을, 흙이 그렇게 해줄 날을 믿는다. 그리하여 세상에 다시 나와 새 마음 새 그리움으로 새 하늘 향할 날을 믿는다.

그날은 다시 하늘 향해 가슴 활짝 열고 전생에서 못다 푼 그리움을 다 풀 수가 있겠지. 올 올 한 올도 남김없이 다 사를 수가 있겠지. 저 나무는 쓰러진 채로 앙가슴을 보듬고 여미며 꿈을 꾸고 있다. 언젠가는 다시 필 그리움을 새기고 있다.

쓰러진 그리움, 다시 태어날 그리움이다. 영원한 그리움이다. 새날 새 그리움을 향하여 날아오르는 그리움이다.

이승의 마지막 손을 흔드노니 나무여, 쓰러진 그리움이여! 그 고운 꿈, 곱게 미쁘게 새겨 가기를-! (2022.8.6.)

                                                                   

 

땅에 대한 사랑으로

 

회관 대회의실에 모여 앉은 회원들과 면민들의 눈과 귀가 모두 나에게로 모여 오고 있었다. 국민의례에 이어 회장께서 발간사를 말씀하고, 시의회 의장, 면장께서 축사했다. 이어 사회자의 소개를 받아 등장한 나는, 이곳에 아무런 연고도 없는 사람이라 했다. 17년 전 이곳으로 공직 발령을 받아 근무하게 된 것이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했다. 다른 곳을 거쳐 정년퇴직하면서 다시 여기를 찾아와 이 땅 사람이 되어 살고 있다 했다. 모두 박수를 보냈다.

마성문화진흥회라는 모임이 있다. 다른 곳의 발전한 문화도 부지런히 살피면서 지역의 문화 발전에 이바지해 보려 하는 순수 민간 문화 운동 단체다. 그런 일을 해 온 세월이 10년을 넘어섰다. 앞으로의 일을 더 알차게 해나가기 위해서라도 지나온 일들을 정리해 보자 했다. 어쩌다 보니 그 정리의 일을 내가 맡아 마성문화진흥회 10년사라는 조그만 책자를 엮어내게 되었다.

오늘 그 책의 출판기념회를 열면서 그와 관련하여 내가 강연을 하기로 했다. 이야기 주제는 마성 문화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다. 내가 이곳에 오래 살지도 않았으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외람되기도 하지만, 오래 살지 않았기에 선입견에 치우치지 않고 말씀드릴 수 있음을 이해해 달라 했다.

우선 지역 역사의 대강을 살피면서, 역사란 문화를 담는 그릇으로 문화가 축적된 것이 역사라 했다. 그것이 곧 새로운 문화 창조의 원동력이 되는 것임을 말하며, 지역의 상징적 사적이라 할 수 있는 고모산성을 비롯하여 열여덟 개 마을에 산재해 있는 동제洞祭 유적 등 여러 문화재를 답사 영상을 통해 살펴보았다. 이들 중 많은 것이 곧 사라져 갈 것임을 염려하면서 역사란 안 지키면 없어지고, 역사가 없으면 새로운 문화 창조도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우리 지역이 영남대로의 중요한 길목인데 그 길의 자취가 전혀 남아 있지 않은 것이며, 나라 산업화에 크게 이바지했던 탄광의 역사가 보존되지 않은 건 역사 보존 의식이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니냐고 물으며, ‘마성문화진흥회’ 10년밖에 안 된 역사지만 그 자취를 펴내는 건 역사의식을 새롭게 가다듬자는데 의의가 있다고 했다.

우리말 잘살다잘 살다는 차이가 있는 말이라 하면서, 전자는 부유하게 사는 걸 말하고, 후자는 행복하게 사는 걸 말한다고 풀이했다. 부유하다는 것은 물질적 가치, 실용적 가치 위주로 사는 것이지만, 행복하게 사는 건 정신적인 가지, 정서적인 가치를 존중할 때 얻어질 수 있는 것이라며, 문화적인 생활이 그 가치를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라 했다.

그 가치를 바라며 우리 마성문화진흥회에서는 선진 문물의 섭취를 위해 그동안 수십 회에 걸친 문화 답사를 하고, 여러 가지 역사 문화 자료집이며 계도서를 편찬하고, 향토 출신의 대학교수 등 자원 인사를 초빙하여 강연회도 개최하고, 택호패宅號牌를 만들어 주소패 아래 달아주어 이웃 간의 소통을 잘할 수 있게 해주고, 사라져가는 옛 지명을 찾아내어 지명도를 만들어 향토의 얼을 살리고자 하였다고 했다.

청중들은 점점 더 눈과 귀를 깊게 모아가는 듯했다. 그 바람에는 나는 신이 나서 아는 것, 준비한 것을 모두 쏟아내려 애썼다. 사회자가 시계를 가리키며 눈짓을 했다. 아차, 내가 너무 도취하여 시간 가는 줄 몰랐구나. 청중들은 왜 내색을 안 할까. 사회자가 그렇게 눈치를 주지 않았다면 나도 모를 시간의 수렁 속으로 빠질 뻔했다.

마지막으로 정리하겠다며, 지난겨울 의성의 어느 마을에서 우리 진흥회가 한 일에 대해 견학을 왔던 일을 상기시키면서 우리 지역의 문화에도 발전 희망은 있다고 했다. 그 희망을 내다보며 문화의 왕성한 소비와 생산을 위해 아름다운 곳, 유서 깊은 곳을 찾아다니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겠다고 했다. 유형, 무형의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 나가는 일에도 열정을 다 바치겠다 했다. 그렇게 향토 문화 발전을 위해 애쓰는 사람을 보면 격려와 성원을 아끼지 말아 달라 했다.

이곳이 향토도 아닌 내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사는 땅에 대한 사랑 때문이라는 걸 깊이 이해해주면 감사하겠다 했다. 어디 살든 나는 내가 몸 붙이고 있는 땅을 사랑할 것이라 했다. 박수 소리와 함께 한 시간 사십 분 정도의 짧지 않은 시간에 걸친 내 이야기가 모두 끝났다. 출판기념 떡을 자르고. 기념사진을 찍으면서 모든 순서가 끝났다. 달려 나와 악수를 청하는 사람, 명함을 달라고 하는 사람들과 함께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모두 헤어졌다.

사람들은 내 이야기를 들으면서 무엇을 생각했을까. 공감을 깊이 해준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어떻게 받아들인 사람에게든 사는 땅에 대한 사랑이라는 내 생각과 마음은 달라질 게 없다.

토포필리아(Topophilia)’라는 말이 있다. 희랍어로 장소를 뜻하는 토포(Topo)’와 사랑을 의미하는 필리아(philia)’가 합쳐진 말로 장소애場所愛로 번역되는 말이다. 명절이면 고향 땅을 찾아가고 싶은 그 마음, 그 사랑이다. 고향은 아닐지라도 김소월이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하듯, 살고 싶은 땅, 사는 땅을 향한 사랑이라고도 할 수 있다. 곧 장소 사랑이다.

오늘 나의 강연은 그 사랑을 고백한 것이다. 내 사랑하는 땅에 대한 고백이다. 나와 같은 땅에 사는 사람은 모두 나의 그 고백을 받은 셈이다. 연인 사이에도 그렇듯 그 고백을 받아 주고 안 받아 주고는 받는 이의 마음이다. 모두 나의 고백을 잘 받아 주었으리라 믿고 싶다. 그리하여 우리 마성문화진흥회에 더 많은 지역민과 대를 이어갈 더욱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참여해 주기를 빌며 회관을 나선다.

흰 구름 떠가는 푸른 하늘에는 아직도 서산마루를 멀찍이 두고 있는 해가 찬연한 빛을 내고 있다.(2022.7.25.)

                                                                   

 

허상의 글쓰기

 

1990년 미국에서 무분별한 개벌皆伐에 반대하여 거세게 일어났던 목재 전쟁이라는 환경 운동을 다시 알아보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하자 리처드 파워스가 그것을 소재로 하여 쓴 소설 오버스토리(The Over Story)가 나오고, 그것을 인용한 내 수필 나무의 살 자리도 떴다.

또 하나의 글이 떠서 오버스토리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신기하다 싶어 그 글을 클릭하여 들어가 보니.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내 글이 그대로 실려 있지 않은가. ㅎ 아무개가 썼다는 나무를 보다라는 글에-.

오늘도 산을 오른다. 산은 언제나 아늑하다. 산을 오르기 전까지의 어지럽고 성가셨던 일들이, 산에만 들면 맑은 물로 가셔낸 듯 말끔히 씻긴다.…….”라고 시작하는 첫 문단에서 첫 문장만 오랜만에 산을 오른다.’로 바꾸어 놓았을 뿐 다른 부분은 글자 하나 바꾸지 않았다.

그뿐이 아니다. 전편에 걸쳐 자기 문장이라고 넣은 건 아쉬운 것이 또 있다면 우리가 사는 제주 땅에 자원이라고 할 수 있는 소나무가……라고 한 두어 문장뿐인데, 이마저도 전체 주제와는 맞지도 않고, 나머지는 모든 문장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이런 글을 늠름히 실어놓은 곳은 어떤 사이트일까. 경로를 따라가 그 사이트 이름을 보고 깜짝 놀랐다. 우리나라 수필계의 아주 유력한 수필 월간지에서 배출한 수필 작가 단체의 카페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사람은 이태 전에 그 월간지에서 신인상을 받은 사람으로 어느 달의 그 책에 그 글이 실려 있다고 했다. 편집자가 글의 표절을 밝혀내기가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그 사람은 자기 글도 아닌 걸 그 유력지에 기고하는 용기를 어떻게 내었을까. 그 글은 어느 대학교수가 운영하는 수필교실 사이트에도 버젓이 옮겨져 있었다.

묵과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내 글을 도용당했다는 사실도 참기 어렵지만, 모든 선량한 문인과 우리 문학계를 위해서도 그대로 넘길 수 없었다. 그 카페에 작품 표절을 고발합니다라며 항의 글을 올리면서 게시자와 필자께서 해명과 사과가 있기를 촉구했다. 몇 시간 뒤에 글의 게시자는 빠른 시일 내에 본사와 작가, 카페지기의 입장을 발표하겠습니다.’는 게시문을 올리며, 나에게 양해를 구한다는 말과 함께 그 표절 글도, 나의 항의 글도 모두 삭제했다.

그 필자도 연락을 받았던지 ……마감 시간은 바쁘고 해서 선생님 글을 보고 하였습니다.……며 짧은 사과문을 보내왔다. 내 글을 보고, 무엇을 어떻게 했다는 말인가. 헛웃음이 나왔다. 게시자인 카페지기는 ……화가 많이 나시고 어이없는 상황이지만 부디 선생님의 넓으신 아량으로 며칠 기다려주시면 공식 입장을 전달하겠습니다.……라는 메일을 보냈다. 며칠 뒤 작가회 회장이라는 분이 정중하게 유감을 표한다면서, 징계위원회를 소집하여 중대 사안을 처리할 계획이라며 알려왔다. 마침 어느 정당의 대표가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때였다.

한참 동안 누구도 아무 말이 없었다. 한 열흘쯤 지난 뒤 정당 대표의 징계가 결정되었다는 소식에 표절 사태는 어떻게 되었을까 싶어 작가회 카페에 들어가 보니, 징계 회의를 열어 만장일치로 회원 자격 박탈을 결정했다며 공지를 올려놓았다.

회장에게 전화하여 회원들에게는 공지하면서 나에게는 왜 아무 말씀이 없으시냐 했더니, 회사에서 입장 표명이 있을 거라 했다. 문득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고 싶다 했다. 내 글이 실린 수필집과 표절 글이 실린 책이나 서로 주고받아 참고로 삼자 했다.

그 사람은 왜 그리 끔찍한(?) 짓을 했을까. 그러고도 마음이 편했을까. 영원히 자기 글이 될 것이라 믿었을까?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 검색하다 보니, 그가 신인상을 받으면서 어느 지역 신문과 인터뷰한 기사가 보였다.

남들이 글을 써서 신문에 얼굴 사진과 이름이 함께 실린 것을 보며 상당히 부러웠다고 한다. 자기도 무슨 글을 써서 어느 신문사에 사진과 함께 보냈더니 며칠 뒤에 글과 함께 얼굴이며 이름 석 자가 나와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글을 열심히 써서 상까지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글을 쓰는 목적은 오직 이름을 내는 것에 있다는 것이 된다. 이름을 내기 위해 열심히 쓰다 보니 작가도 되었다는 말이다. 글을 통해 나타내보고 싶은 인생관이며 세계관이야 어떻게 되든 이름만 낼 수 있으면 되는 것일까. 그래서 남의 글이라도 슬쩍해다가 자기 이름을 얹어 세상에 내놓았던 것일까.

그가 가져간 나의 글 나무의 살 자리속에 가로수와 정원수의 불행을 이야기한 부분이 있다. 그 불행은 나무의 살 자리를 빼앗아 제 살 자리에 갖다 놓고 행복해하는 인간들의 탐욕 때문이라 했다. 그도 내 글을 슬쩍 제 글 자리에 갖다 놓고서 이름이 난 것을 행복해했을 것이다. 그런 내용의 글을 보면서도 아무런 느낌이 없었을까.

글을 쓰는 일이란 결코 매명賣名이나 현명顯名을 위한 수단이 아니다. 진실한 삶의 모습을 드러내어, 그 진실이 독자들에게 얼마나 감동을 줄 수 있는가에 글의 생명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지금까지 글의 본질이 아닌, 이름이라는 허상虛像에 매달려 글을 써 온 것 같다. 허상의 글쓰기를 해 왔다고 할까.

글 쓰는 이는 누구이고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 얼마나 본질에 충실한 글을 쓰고 있는가. 얼마나 진실의 감동을 쓰고 있는가. 허상이 아닌 실상의 글쓰기를 하고 있는가. 그로 하여 실상의 글쓰기를 다시 한번 돌아본다.(2022.7.18.)

                                                                     

 

나무의 개성

 

오늘도 산을 오른다. 밤나무 노거수가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어귀를 올라 무성한 국수나무 수풀을 지나면 굴피나무가 어지럽게 서 있고 갈참나무, 떡갈나무가 올망졸망 잎을 벌린다. 진달래 나무며 초피나무가 어우러진 가풀막을 올라서면 소나무 벚나무 숲이 우거진다.

서로 겨루기라도 하듯 하늘 향해 한껏 뻗어 올라가는 소나무와 벚나무 사이로 조그만 상수리나무 졸참나무가 군데군데 숲을 이루고, 분꽃나무가 호분 향으로 산을 물들이던 꽃 시절을 그리며 서로 얽혀 서 있다.

저 조그만 꽃들은 무엇이 수줍어 잎 아래에 숨듯이 달렸는가. 그 꽃 모양새가 박쥐를 닮았대서 붙은 이름 박쥐나무다. 꺾어서 코를 대보면 생강 냄새가 나는 생강나무, 조그만 잎과 열매를 달고 하늘거리는 감태나무가 어울려 숲을 이룬다.

저 나무들 종류를 일일이 세어보기로 하면 밤하늘 별의 수에도 못지않을 것 같다. 저 갖가지 나무들의 생김새를 다시 본다. 크기며, 굵기며, 잎과 둥치의 빛깔이며, 가지를 벌리고 있는 모양새들이며, 살아가는 모습이며…….

어느 것은 하늘에 닿을 듯이 우뚝 솟아 있고, 어느 것은 하늘을 바라면서도 줄곧 땅을 기는 것도 있다. 아름으로도 다 안을 수 없는가 하면, 바람 조금만 불어도 곧장 부러지리만치 가냘픈 것도 있다. 저 빛깔이며 모양은 그야말로 제빛 제 본새대로다.

무엇 하나도 같은 것이 없다. 저마다의 색과 태로 다 다른 삶을 살고 있다. 모두 개성을 가지고 있다. 그 개성이야 어디 나무뿐이랴. 세상 모든 것에는 닮은 것은 있을지 몰라도 같은 것이란 없다. 모두 다 다른 품성을 지니고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크고 작고, 여위고 살진 외모가 각색인 것은 물론이지만, 그 외모의 생김새며 용모도 다 다르다. 더 다른 것은 성품과 생각이다. 사람마다 다른 성품이 다른 생각을 빚어내겠지만, 사람은 지닌 생각에서 확연한 개성이 드러난다.

누구라도 저만의 독특한 품성을 지녀야 하겠지만, 그것으로 이루어지는 개성 때문에 사람이 이루고 사는 사회, 그 삶을 어렵게 하는 일이 또 얼마나 하고한가. 서로 조화를 이루기보다는 갈등하고, 서로 사랑하려 하기보다는 시기하려 하고…….

남을 앞세우기보다는 자기가 앞서 이겨야 한다. 앞서가는 사람을 끌어내려 자기가 그 자리를 올라야 한다. 그러기 위해 치열한 쟁투도 벌인다. ‘개성이 자기만의 독특한 아름다운 예술품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그것은 참혹한 피비린내를 풍기기도 한다.

나무는 언제나 제 나름의 모습으로 제 자리를 늠름히 지키고 있다. 나무는 다 다른 빛깔과 모양을 하고 있지만, 종과 유를 가리지 않고 한데 섞이어 산다. 한 태에서 나온 피붙이처럼 서로 살을 맞대고 살기도 한다.

큰 나무라 해서 작은 것을 억누르지도 않고, 넓은 잎이라 해서 좁다란 잎을 우습게 여기지도 않고, 어느 것이 어느 것을 타고 기어올라도 그저 묵묵히 안아줄 뿐이다. 꽃의 빛깔이 붉든 희든 한데 어울리며 제 꽃을 수더분히 피울 뿐이다.

나무는 그렇게 서로 섞여 살지만, 염치를 모르지 않는다. 나무가 향하는 곳은 오직 하늘이다. 하늘을 바라며 솟아오르다가 그 가지의 끝이 이웃 나무에 닿아 하늘의 빛을 가릴 만하다 싶으면 뻗기를 멈추어 빛의 길을 만든다. 그걸 수관기피樹冠忌避라 한다.

나무는 저마다의 움을 틔우고 잎과 꽃을 피우지만, 가리지 않고 서로 어울리면서 무성하고 아늑한 녹음을 이루어 저를 대하는 모든 이들에게 위로와 안식을 주기도 하고 뭇 생명체들의 보금자리가 되기도 한다. 나무는 한결같이 그렇게 살고 있다.

나무의 이러한 속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하늘과 땅이 오래 갈 수 있는 까닭은 자기만 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天地所以能長且久者 以其不自生, 老子7라는 말이 있다. 나무도 하늘과 땅을 살면서 그 속성을 닮았기 때문이 아닐까.

나무는 어떤 빛깔과 모습을 지녔든 결코 자기를 남 앞서 내세우려 하거나, 앞서기 위하여 남을 밟으려 하지 않는다. 저마다 지닌 모습으로, 그 삶의 방법으로 살려 할 뿐이다. 그 모습과 삶의 방법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무성한 숲이 되게 하는 것이다.

사람의 모습을 보라. 나라 간의 일이든, 나라 안의 일이든, 무리 간의 일이든, 저마다 사는 일이든 모두 잘나려 하고, 제 잘난 것을 내세우기 위해 남을 누르려 안달을 내고 있다. 지금도 그치지 않고 있는 나라 간의 싸움, 정당 간의 싸움, 정치배들의 쟁투를 보라.

나무를 다시 본다. 저마다의 개성으로 태어나고 살고 죽고 하면서도, 오히려 그 개성은 조화가 되어 한결같이 무성한 숲 울창한 산을 이룬다. 뚜렷한 개성을 지니되, 결코 저를 내세우지 않는 나무의 품성을 다시 보인다.

또 오늘 신문에는 오직 저를 앞세워 누가 누구를 헐뜯고, 어느 정파가 또 어느 정파를 끌어내리려 하는 소식으로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을까. 들기가 기껍지 않은 세상으로 드는 걸음을 옮겨 산을 내린다. 나무를 다시 보며 내린다.

나무의 조용한 개성을 돌아본다. 그 조화를 본다.(2022.7.9.)

                                                                      

 

동병상련의 꿈

 

교재를 들고 수업할 교실을 찾아가는데 아무리 찾아도 교실이 보이지 않는다. 가파른 층계도 있고 언덕도 나오고 벼랑과도 맞서며 애써 헤쳐나가도 찾는 교실이 안 나타난다. 안간힘을 쓰며 헤매다가 눈을 뜨니 꿈이다. 간혹 꾸는 꿈이다.

프로이트의 말대로 꿈은 소망의 표현이라고 한다면, 내가 그만큼 교실에 들어 아이들과 더불어 수업을 함께하는 간절히 그리면서 산다는 말인가. 지금은 기억도 아련할 만큼 잊고 지내고 있는데, 왜 그런 일이 꿈으로 나타나는지 모르겠다.

더 놀라운 것은 이 비슷한 꿈들을 나만 꾸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어느 수필가도 말한다. 수업이 시작되었는데 들어갈 반 출석부가 없어 계속 찾아 헤매다가 천신만고 끝에 드디어 찾았지만, 들어갈 학급이 없어 2, 3층을 오르내리다가 진땀을 흘리다 깼다고 했다. (한국수필2022.4, 진혜영, 늘 그 속에 머물다)

또 누구는 꿈에서, 건물 여기저기로 허덕이며 급하게 달리고 위아래 계단을 오르내려 보지만 찾는 교실은 도무지 나타나지 않아 조바심만 증폭되고, 수업 시작종이 울린 지도 한참이 지났는데 출석부와 교재를 들고 계속 교실을 찾아 헤맸다고 했다. (한국수필2022.6. 정봉구, 꿈과 꿈)

동직을 살다가 비슷한 시기에 함께 은퇴한 친구에게서도 이 비슷한 꿈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러고 보면 교직 생활을 한 사람이면 누구나 꿈직한 꿈인지도 모르겠다. 왜 이런 꿈들을 꾸는 것일까.

교사가 학생들을 상대로 하는 수업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요,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기쁘고 즐겁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가볍게 해낼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가르치는 이와 배우는 이가 모두 만족하게 해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업에 대한 중압감이 강박관념으로 굳어져 꿈으로 나타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교실을 못 찾아 헤매는 것은 교실에 꼭 들어야 한다는 의무감의 다른 표현이요, 결국 못 찾고 마는 것은 잘해야 한다는 강박한 상념의 역설적 발현일 수도 있다.

교단을 내려선 지 오랜 세월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고 꿈으로 나타나는 것은 그만큼 무의식 속에 깊이 박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영원한 낙인처럼 남아 두고두고 꿈의 소재가 될지도 모른다.

사실 나는 교단생활 내내 수업의 부담감 속을 살아왔다. 하루에 몇 시간을 두고 목청을 세워야 하는 것도 힘들지만, 만족감이 들지 않는 수업 후의 개운치 못한 느낌이 더욱 힘들게 했던 것 같다.

모르긴 하되, 교직을 산 다른 이들도 그런 세월을 살지 않았을까. 수업마다 쉽고 즐겁게 하고, 흡족해하며 교실을 나서는 이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비슷한 꿈 이야기들에서 동병상련의 정이 느껴진다.

그렇게 힘든 세월을 살다가 관리자가 되어 이제 수업의 그런 부담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싶었는데, 관리자 생활이란 그것대로 또한 어려움이 없지 않다. 일이며 사람을 관리하는 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이던가.

드디어 퇴임 날이 다가왔다. 모든 것을 훌훌 벗어 버리고 싶었다. 산 깊고 물 맑은 한촌에 조그만 집을 지었다. 퇴임하면서 바로 봇짐을 지고 와 그 누옥에 들었다. 날마다 바람 소리 새소리 들으며 세상을 잊어갔다.

걸릴 게 없었다. 날이 새면 눈을 뜨고, 날이 밝으면 산을 오르고 나무를 안았다. 강둑을 걸으며 물소리를 듣고 물에 잠긴 하늘과 함께 놀았다. 지난날의 희로애락이 푸른 나무, 맑은 물에 다 씻겨 나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꿈은 그 시절에 그대로 머물고 있을 적이 많다. 아이들과 함께 부대끼며 고뇌에 젖던 일, 동료들과 일에 울고 웃으며 번뇌 속을 헤매던 일들이 가끔씩 꿈으로 나타난다. 교실을 못 찾던 일도 그중 하나다.

요즈음 들어 꿈이 더욱 많이 꾸어진다. 쌓여 가는 연륜이 삶의 일들을 늘어나게 하기 때문일까. 그 꿈들이 깊은 잠을 못 이루게 하면서 깨면 다 지워져 버린다. 다몽증이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교실을 찾아 헤매던 꿈은 금시인 듯 선명히 떠오른다. 예전에 교실 드는 일이 그랬던 것처럼 마음의 짐이 아닐 수 없다. 그런 꿈을 꾸는 다른 이들은 어떻게 느낄까. 다시 한번 동병상련이 솟는다.

이 굴레 같은 꿈을 어찌해야 할까. 방법은 딱 하나밖에 없을 것 같다. 꿈과 친하는 일이다. 교단을 내려 물러나 있듯, 세상에서 비켜나 한촌을 살고 있듯, 꿈도 한 발짝 물러서서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보듯 바라볼 수는 없을까.

그러다 보면, 조금은 긴장감도 주는 그 꿈을 오히려 재미있게 꿀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시절도 있었거니 하며, 찾다 찾다 못 찾은 길은 내일 또 찾으면 되리라 하고 느긋이 바라보고 싶다. 마음 일은 마음으로 풀 수밖에 없지 않은가.

오늘 밤도 어디의 누구와 함께 동병의 그 꿈길을 헤맬지도 모른다. 상련의 동지들과 그 드라마 함께 보며 지나온 삶의 한 장면으로 담담히 새기고 싶다. 동병상련의 그 꿈길 속으로 가붓이 들고 싶다.

그러면 꿈도 편안해질까. (2022.6.18.)

                                                                      

 

내 삶의 주인은

 

차를 탄다. 내가 타기 편할 시각에 출발하는 차는 없어졌다. 내 편리와는 맞지 않는 차지만 기다려 탈 수밖에 없다. 차는 제 갈 길로 달려나간다. 내가 가고 싶은 길과는 상관이 없다. 차를 타고 가는 것이 아니라 가는 차에 실려 가고 있다.

차는 내 목적지에만 데려다주면 저의 할 일은 끝나는 거라고 여길 터이지만, 차가 당도하는 그 목적지라는 곳은 내가 정한 것이 아니다. 차가 정해 놓은 곳을 맞추어 내 목적지로 삼아야 한다. 차는 저의 목적지에 나를 내려놓을 뿐이다.

멀리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오자면 외방을 달려온 차에서 내려 다시 동네로 오는 차를 갈아타야 한다. 차와 차 사이의 시간 틈을 나를 위하여 적절하게 조절해 주지는 않는다. 그 틈이 얼마이든 올 차를 간절히 기다렸다가 오면 기꺼이 탈 수밖에 없다.

차를 타고 오고 가고 하는 시간들은 모두 내 삶의 시간들이다. 차를 탈 때뿐만 아니라 내가 사는 모든 시간들이 나의 시간이라 할 수 있지만, 진정 그것이 나의 것인가. 그 시간들이 내가 오라고 해서 오고 가라고 해서 가는 것들인가.

아니다. 나와는 아무 관계 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 내가 그냥 담겨 있을 뿐이다. 내가 잡으려 한다고 잡히지도 않고, 보내버리려 해서 보내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붙들고 싶을 때는 쉬 가버리고, 쫓아내고 싶을 때는 나를 모질게 잡고 있는 게 시간 아니던가.

그 시간 속에 담겨 있는 내 삶인들 마음대로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인가. 태어나는 걸 내가 가려서 태어난 것도 아니다. 죽음도 내 뜻을 따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태어나졌을 뿐이고, 죽어질 때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삶이 아닌가.

내 마음인들 내 마음대로 다스릴 수 있는가. 희로애락이며 걱정, 한탄, 변덕, 고집과 같은 감정들을 다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가. 그것들은 어디서 어떻게 나오는 것인가. 장자莊子그 싹이 트는 곳을 알지 못한다. (而莫知其所萌, 莊子, 齊物論)’고 했다.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다.

내가 없으면 그런 감정들을 나타낼 데가 없고, 그런 감정들이 없으면 내가 살아있을 수도 없으면서 그 감정들을 어찌 내 뜻대로 부릴 수가 없는가. 내 속에 있는 것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을진대, 나는 내 삶의 무엇을 내 뜻대로 할 수 있는가. 나의 주인은 누구인가.

오늘도 산을 오른다. 나무를 다시 본다. 맨살로 서 있던 가지에서 움이 트고 떡잎이 돋아 점점 커지면서 빛깔도 차츰 짙어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무성한 녹음을 이룬다. 진녹색 잎은 때가 되면 누르고 붉은빛으로 변했다가 제 난 땅으로 돌아간다.

저것들이 움으로 돋을 때 세상으로 나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기라도 했을까. 짙푸른 빛깔로 피어날 날을 그리며 꿈에 부풀기라도 했을까. 다른 잎새들에 질세라 더 짙게 더 크게 피우기 위해 안간힘이라도 써보았을까. 푸른빛을 잃을 때가 올 것이라고 회한에 젖기라도 할까.

나무는 그냥 나고 살고 질 뿐이다. 날 때가 되면 나고 커질 때가 되면 커진다. 짙어질 때가 되면 짙어지고 물들 때가 되면 물들고 질 때가 되면 진다. 그냥 살아도 때를 놓치는 법이 없고, 욕심내어 와락 커지거나 세상살이 힘들다고 우두둑 져버리지도 않는다.

어쩌면 나무는 그런 욕심이며 변덕을 아예 모르거나 잊고 사는지도 모른다. 잊자 해서 잊어버리고 사는 것 같지도 않다. 그저 살고 그저 질 뿐이다. 제 삶의 주인이 되기를 애쓸 일도 없지만, 주인이 안 될 일도 없다. 무엇의 노예가 될 일은 더더욱 없다.

오늘도 차를 탄다. 내가 기다리고 있는 시각이 오고, 내가 타야 할 차를 내가 탄다. 내가 탄 차가 가는 길이 나의 길이다. 내가 탈 차라 할 것도 없고, 그 길이 나의 길이라 할 것도 없다. 그냥 타고 가면 된다. 차가 멈추는 곳에 내리면 된다.

내가 탄 차가 멈추는 곳이 나의 목적지이고, 내 발걸음이 머무는 곳이 나의 자리, 내 삶을 갈무리해야 할 자리다. 그 삶이 나에게 어떻게 오든 맞이하면 된다. 아늑하면 아늑한 대로 좀 힘들면 힘든 대로 그냥 맞으면 된다.

기쁠 때는 그저 기뻐하고 슬플 때는 그저 슬퍼하면 된다. 분노가 끓을 때는 일순 분을 일으키기도 하겠지만, 시간에 씻어 보내면 된다. 정녕 외로울 때는 잠시 술잔을 기울일 수도 있지만, 외로움에도 술잔에도 빠지지 않으면 된다.

애써 내 삶의 주인 노릇을 하려 애면글면할 일도 없고, 주인이 안 되려 내칠 일도 없다. 그냥 살면 내 삶은 곧 내 것이 되지 않으랴. 욕심내어 내 것으로 삼으려 할 일도 없고, 못 볼 것을 본 듯 물리치려 할 까닭도 없지 않은가.

살다 보니, 내가 내 삶의 주인 노릇을 기꺼이 하고 싶은 삶도 없지는 않다. 요즘 일주일에 한 번 가방을 들고 나서는 나의 행로다. 그 발길이 머무는 곳에는 삶과 문학을 목 놓아 주고받을 수 있는 이들이 기다리고 있다. 따뜻한 삶이 이루어질 수 있는 곳이다.

이 삶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내 심신이 나를 지켜줄 때까지, 나를 기다려주는 이들이 있을 때까지 사랑을 다하고 싶다. 아무런 욕심도 부담도 없이 그 길로 가는 차를 즐겁게 기다리고 싶다. 내 모든 삶을 그렇게 살고 싶다.

나무가 살아가듯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2022.6.5.)

                                                                      

 

선 물

 

윤 박사가 스승의 날을 기리는 전화를 했다. 사십오 년 전쯤의 제자다. 그도 이순을 벌써 넘어선 연치를 살고 있다. 일찍이 해외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하여 지금까지 사회와 나라를 위하여 좋은 일을 많이 해오고 있다.

내가 정년으로 교단을 내려온 지도 어느덧 십여 년이 흘렀다. 현직에 있을 때도 그리 우러름을 받는 사람은 못 되었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새겨주는 사람도 차츰 줄어들어 이제는 기억해 줄 제자도 몇 되지 않을 것 같다.

나를 돌아볼 일일지언정 누구를 탓할 일은 전혀 아니다. 어쩌면 그렇게 세월 속에 묻혀 가는 게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런 가운데서도 윤 박사는 여태 나를 잊지 않는다. 명절마다 마음을 전해 오는가 하면, 스승의 날에는 꼭 전화라도 해준다.

고마운 일이다. 내가 저에게 베풀어 준 게 무얼까를 돌이켜보면 그의 성심이 오히려 나를 민망하게 한다. 한편으로는 그런 사람이 가까이 있다는 것이 저물녘을 적요하게 살아가고 있는 내 삶을 한결 따뜻하게 데워 주기도 한다.

나의 근간 수필집 나무는 흐른다를 보고서는 자연과 더불어 살며 구도의 경지에 침잠하는 모습이 우르러 뵌다고 하면서, 은퇴 생활을 아주 뜻깊게 하시는 것 같아 자기도 퇴직하면 뒤따르고 싶다 했다. 제자의 그런 이해도 나에게는 큰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어찌하다 보니 물러난 삶의 적요를 깨워주는 일이 또 나를 찾아왔다. 교단을 한번 내려서면 다시는 설 일이 없을 뿐만 아니라, 다시 서고 싶은 마음도 가지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어찌하다 몇 해 전부터 어느 도서관에서 평생교육 과정으로 개설한 수필 강좌를 맡게 되었다.

평생을 두고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쳐 오고 반평생 글을 써왔다 하지만, 글 쓰는 일에는 늘 자신이 없어 그 일로 남 앞에 서는 일은 상상도 하지 않았는데, 살다 보니 그런 일이 또 생기게 되었다. 짐일까 복일까.

함께 공부하는 사람들이란 어린 학생들도 아니요, 삶의 이런저런 일을 다 겪어 저마다 삶의 연륜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중에는 평생을 두고 공직에 봉사하다가 물러나 은퇴한 삶을 뜻깊게 보내고 싶어 찾아온 분들도 있다.

연배가 그리 차이 나지 않는 이들도 있어 조심스럽기도 하지만, 비등한 삶의 경륜을 스스럼없이 함께 나눌 수 있어 오히려 편안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가르치고 배우는 자리가 아니라 삶의 담론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자리인 것 같아 오히려 기쁘고 즐겁기도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스승의 날 잔치가 한바탕 벌어졌다. 누가 스승이고 누가 제자란 말인가. 정성 깃든 선물들을 건네 오는가 하면, 꽃을 꽂아주고 소리 모아 노래를 부르며 축복해주었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하여 고맙다는 말조차 옳게 나오지 않았다.

마음으로 뜻으로 주는 여러 가지 선물이 다 감사했지만, 그중 어떤 이는 근래에 낸 내 수필집의 제목과 이름을 새긴 펜을 선사하기도 했다. 어찌 그리 만들었을까. 제목의 서체도 책에 쓰인 그대로를 살려 새겼다. 세상에 하나뿐인 선물인 것 같아 또 다른 감동을 안겨준다.

나는 무엇으로 답해야 할까. 내가 행복해서, 나의 행복을 위해서 하고 싶은 일이라 했다. 한 주에 한 번씩 여러분들을 만나러 오는 길이 그리 설렐 수가 없다고 했다. 그 행복을 나에게 주셔서 도리어 감사하다 했다. 그것이 내가 늘 받는 감동적인 선물이라 했다.

사실이 그랬다. 그렇게 함께하는 시간들이 행복했다. 도서관에서 봄가을 학기마다 누리집을 통해 수강생을 모집하는데, 수강 신청이 시작되자마자 오 분도 채 안 되어 정원이 다 차버린다. 글쓰기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그리 많다는 것도 기쁘지만, 강좌에 대한 호응이 그토록 뜨겁다는 것도 마음을 달게 했다.

강좌가 열려 수업이 진행되면 모두 부지런히 참여한다. 저마다의 작품을 텍스트로 하여 여러 가지 이야기를 풀어가는데, 작품을 스스럼없이 내어주는 것도 반갑고, 조언에 소곳이 귀 기울여 주는 것도 고맙다. 진지할 때는 더없이 진지하다가 우스울 때는 함께 웃어주는 것이 더할 수 없이 즐겁다.

내 삶의 경륜이 그리 탐탁지도 않고, 내 문력이 그리 두드러지는 것도 아닌데 모두 하나로 모아주는 그 뜻과 마음이 나에게는 여간 송구한 선물이 아니다. 만날 때마다 이리 느꺼운 선물을 받을진대, 거기에 축화에다 축가까지 받다니-.

더 열심히 살라는 뜻일 것이다. 문장 앞에 더욱 겸손히 임하라는 격려일 것이다. 더 정겨운 말씀을 달라는 당부일 것이다. 좋은 뜻과 따뜻한 격려와 정감 어린 당부를 받는 것만 해도 얼마나 복된 선물인가.

오늘도 가방을 들고 나선다. 두 시간여를 달려가는 시간이 그저 기껍기만 하다. 오늘은 무슨 담론으로 그 행복의 선물을 함께 나눌까.

등에 내리는 햇살이 살갑다. (2022.5.18)

                                                                     

 

나무는 그저 산다

 

오늘도 산을 오른다. 늘 오르는 산이지만, 오를 때마다 모습이 다르다. 산을 덮고 있는 나무의 빛깔이며 모양이 볼 때마다 새롭다. 저 둥치 줄기 어디에다 고갱이를 간직해 두었다가 철 맞추고 때에 맞추어 이리 새 모습으로 바꾸어내는 것일까.

엊그제만 해도 맨살 가지에 겨우 움이 트는가 싶더니 연둣빛 애잎이 돋고, 파릇한 새잎이 어느새 현란한 푸른 잎이 되어 가지를 감싸고 있다. 곁에서 지켜보고 있기라도 할 양이면, 그 빛깔이며 모양이 바뀌고 달라지는 모습이 고속 영상처럼 빠르게 피어날 것 같다.

연둣빛 푸른빛이라 하지만 눈여겨보면 나무마다 빛깔이 조금씩 다 다르다. 여리고 진하기도 다르고, 밝고 어둡기도 다 다르다. 빛깔뿐만 아니라 크기도 문채도 같은 게 없다. 둥글고 모진 것도 있고, 넓적하고 조그만 것도 있어 가지각색이다.

이파리만 그런 게 아니다. 줄기며 가지도 어느 것 하나도 같거나 닮은 모양이 없다. 가는 것도 있고 굵다란 것도 있고, 길쭉한 것도 있고 짤막한 것도 있다. 애가지도 있고 제법 연륜을 둘둘 감고 있는 것도 있다.

저 나무의 잎과 가지, 저 모양 저 빛깔은 어디서 오고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떡갈나무 잎은 어느 나뭇잎보다 크게 피워 보고 싶어 하여 저리 넓적하게 생긴 것일까. 상수리나무 잎은 예쁘게 피워 보리라 해서 저리 작고 둥그스름하게 핀 걸까. 물푸레나무는 줄기에 무늬라도 새겨 멋 나게 해보리라 하고 흰 띠를 저리 두르고 있는 걸까.

나는 샛노란 빛으로 봄을 아롱지게 꾸며보리라 하여 생강나무 저 꽃은 저리 노랗고, 나는 짙붉은 빛으로 내 아린 속을 세상에 보여주리라 하고 저 진달래 저리 붉은가. 나는 연한 빛으로 가지를 은은히 꾸며보리라, 나는 내 모든 물씨를 한껏 드러내어 진초록 세상을 만들어 보리라 하여 빛깔들이 저리 여리고 짙은가.

모든 나무의 으뜸이 되어 뭇나무들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하리라 하고 저 나무 둥치는 저리 굵고 튼실한가. 쥐똥나무는 태어난 것만으로도,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기며 작은 잎 가는 가지로 저리 하늘거리고 있는 걸까.

여혹 나무들이 그런 뜻들을 품고 태어나고 자라고 살고 한다면 이 산이 어찌 되어 있을까. 나무의 종과 유가 좀 많은가. 서로 아리따운 빛깔, 멋진 모양, 굳고 센 힘을 다툴 양이면 산은 아비규환의 수라장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산의 그런 모습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산은 언제 들어도 아늑하다. 산을 꾸미고 있는 나무들은 언제 보아도 풋풋하고 싱그럽다. 단풍든 모습은 정겹고 다 벗은 맨살의 모습은 오히려 숭엄해 보인다. 서로 어울려 사는 모습은 은근하면서도 우렁찬 한 편의 교향악 같다. 바람 소리 새소리까지 어우러지면 누구든 산을 향해 나무를 향해 가슴을 열지 않을 수가 있을까.

어떤 이가 나무 우거진 저 산의 빛깔을 멀리하고 싶어 하랴. 바로 서 있든 굽고 휘어져 뻗든 저 나무 저 모양을 누가 기껍잖다 할 수 있는가. 짙고 여린 갖은 빛깔들이 모여 저절로 조화를 이루고, 갖가지 모양이 어울려 자아내는 저 풍경이 어찌 느껍잖을 수 있는가.

나무는 이루려는 게 없다. 나무는 주어진 색깔과 모양대로 태어나고, 태어난 모습과 빛깔대로 산다. 내 빛깔이 왜 이럴까 곁을 돌아보는 법도 없고, 내 모양이 어찌 이리 났을까 다른 이를 건너다볼 줄도 모른다. 오직 제 빛깔 제 모양으로, 난 대로 살 뿐이다.

나무는 서로 다투려 하지 않는다. 꼭 한 가지 다투려 하는 것은 없지 않다. 다른 이보다 하늘을 더 많이 보고 싶다. 하늘 볕살을 더 많이 쬐고 싶다. 그렇다고 다른 것을 꺾고 제치지는 않는다. 하늘은 누구에게나 우르러 그리워하고 싶은 존재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무는 누가 보아도 살고 안 보아도 산다. 누가 보고 있다고 해서 모양을 다듬어가며 살려고도 하지 않고, 누가 안 본다고 해서 모든 걸 흩트려 놓고 살지도 않는다. 나는 대로 나고 사는 대로 날 뿐이다. 나무는 살기 위해 애쓰는 일이 없다.

나무는 그저 산다. 그래도 꽃은 필 때 피고 질 때 진다. 열매 맺을 철이면 맺고 떨어져 흙 속으로 들 때면 든다. 다시 나올 때가 되고 나오고, 나오면 볕살 따라 바람 따라 자라고 살아간다. 나무는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하지 않는 일이 없다.

나무는 살 때도 그저 사는 것처럼 죽을 때도 그저 죽는다. 명을 다 해도 그저 서 있으면 된다. 바람이 넘어뜨리기라도 하면 넘어지면 된다. 땅속으로 들 때가 되면 그저 묻히면 된다. 난 자리가 산 자리고 산 자리가 죽는 자리다. 나무에게 삶과 죽음은 다르지 않다.

나무를 다시 본다. 그저 살아서는 사는 게 아니라는 세상은 왜 있는가. 세상은 이루려 할수록 왜 이루기가 어렵기만 한가. 남을 이기기 위해 서로 겨루고 다투는 세상이 있는 건 무슨 까닭인가. 다투다 못해 서로 해치고 끝내는 목숨까지도 앗아가는 세상은 또 어느 세상인가. 그런 세상이 있는 곳은 어디고, 그저 사는 나무가 있는 세상은 또 어디인가.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나무를 다시 본다. 멍하니 바라다본다.

나무는 그저 살고 있다. 그저 살아갈 뿐이다.(2022.4.28.)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고작 나흘을 머물다 갔다. 올 때도 무슨 혁명을 하듯 불같이 와락 솟더니 실패한 혁명군이 사라지듯 순식간에 가버렸다. 허무하다. 모든 이목을 뒤집을 듯 이 강둑 현란하게 밝힐 땐 언젠데, 이리 속절없이 가버린단 말인가.

아침마다 걷는 강둑을 향해 나선다. 지난밤 빗방울이 좀 듣기라도 했는가. 구름이 좀 짙게 드리워지긴 했지만, 엊그저께 피어난 꽃이라 오늘도 찬란하겠지. 한 열흘은 못 버티려고-. 강둑이 가까워진다. , 이게 무슨 변고인가. 그 찬연한 꽃들은 다 어디로 사라져버린 건가.

십여 년 전 이월 이십육일, 생애의 한 막을 내린 봇짐을 지고 이 마을을 찾아왔다. 앞에는 강이 흐르고 뒤에는 산이 둘러싸인 곳에 삼십여 호가 사는 고요한 마을이다. 그 고요에 잠겨 조용히 살고 싶었다. 산 보고 강 보며 나무처럼 물처럼 살리라 했다.

아직은 겨울의 찬 기운이 채 가시지 않을 때였지만, 곧장 들이며 강둑길에는 하얗고 노란 풀꽃들이 피어나고 산에는 노랗고 붉은 꽃들이 피어났다. 그런 꽃들이 앞다투어 피어나는가 싶더니, 어느 날 강둑에 늘어선 벚나무에서 하얗고 연붉은 꽃잎들을 일시에 활짝 터뜨려냈다.

세상에 이런 꽃 대궐이 또 있을까. 길에는 봄까치꽃, 냉이꽃, 꽃다지, 제비꽃, 봄맞이꽃……. 갖가지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나고, 길가 벚나무에는 꽃이 하늘하늘 하롱하롱 휘날리며 춤을 추고, 들 건넛산에는 산벚꽃이 커다란 봉오리 무덕무덕 온 산을 꽃 천지로 만들고 있다.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모두 꽃이다. 이런 마을에 와 살려 하기를 참 잘했다 싶었다. 살아온 자취 돌아보면 이렇다 하게 잘한 일 별로 보이지 않는데, 이 꽃 마을에 온 건만은 지혜로웠다 싶었다. 꽃만 보고 살아도 몸도 마음도 전혀 고프지 않을 것 같았다.

철마다 피고 지고 지고 피는 색색의 갖은 꽃들을 보며 하루하루 한 해 한 해를 보내는 일이 환희롭기만 했다. 그중에도 가장 기다려지는 건 역시 봄꽃이었다. 강둑길을 찬연하게 수놓는 벚꽃을 보는 것만 해도 내 한 해는 마냥 희열에 찰 수 있을 것 같았다.

설령 그 벚꽃이 져버린다 해도, 철마다 다르게 강둑길을 수놓고 있는 풀꽃들을 보며 다시 오는 해의 벚꽃을 기다리는 마음을 가눌 수 있다. 그런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어느 날, 강둑에 삽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더니 그 많은 풀꽃을 죄다 밀어버렸다.

풀꽃이 짓이겨진 강둑에 철근을 깔고 회반죽을 들이부었다. 메마른 길이 되고 말았다. 벚나무 아래로 트럭이 다니고 경운기가 털털거렸다. 때로는 할 일 없는 차들이 번쩍이기도 했다. 풀꽃들이란 그저 몇 낱 좁다란 길섶에서나 명줄을 가녀리게 잡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괜찮다. 벚나무가 있잖아, 내년에도 벚꽃은 필 거잖아! 내가 이 마을을 잘 살고 있는가, 이 마을에 잘 온 건가 하는 느낌이 들기라도 할 때면 해마다 찬연히 피어나는 벚꽃을 그리며 위안 삼았다. 그때가 되면 아무 데서나 잘 볼 수 없는 거룩한 풍경이 그려지잖아!

강둑에서 바랄 수 있는 꽃은 오직 벚꽃뿐이었다. 차들이 지나다니는데 거치적거린다며 가지를 다치게라도 할라치면 마치 내 몸에 생채기가 진 것같이 아릿하기도 했다. 자꾸 문명화되어 가는 세상을 어쩌랴 여기면서도 한구석이 비어가는 듯한 마음은 모른 체할 수 없었다.

그런 중에도 봄은 오고 벚꽃은 피어났다. 제 몸은 돌보지 않고 꽃을 피워내기만을 오로지하는 나무가 가상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몽우리 몽글몽글하는가 싶더니 어느 날 꽃을 일매지게 활짝 피워내어 온 강둑을 찬연한 꽃 세상으로 만든다.

내 세상이 온 듯, 나를 위해 저 꽃들이 피어난 듯했다. 혼자 보기 아까워 렌즈에 담아 여기저기 정다운 이에게 보내기도 하고, 가까운 이들을 불러 꽃그늘에 앉아 꽃잎이 뜬 잔을 그윽이 기울이기도 한다. 이 꽃 이대로 영영 가면 얼마나 좋을까.

지난밤 비바람이 지나간 모양이다. 아침 강둑에 섰을 때, 세상이 온통 무슨 포화라도 맞은 듯 꽃잎이란 꽃잎은 모두 죽은 듯 땅에 널브러져 있었고, 가지에는 붉은 꽃자루만 휑하니 드러나 있을 뿐이었다. 하루아침에 세상이 이토록 개벽 될 수 있단 말인가.

피어난 지 몇 날이나 되었다고! 필 때도 화들짝 놀라게 하더니, 질 때도 이리 와르르 무너지듯 하는가. 한 열흘도 옳게 머물러 주지 않고 이토록 무정하고 허무하게 져버리다니! 이럴 때 그 시인의 심정이 그래었겠구나. 그래서 이리 읊었겠구나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그랬다. 내 한 해가 다 가버린 듯했다. 그리 고대해 온 한 해가 일시에 싹 가버린 듯했다. 이제 무엇에 기대어 이 한 해를 또 기다리며 살아야 할까. 무엇을 의지 삼아 또 한 해를 손꼽아 본단 말인가.

가슴을 쓸며 회반죽 길 위에 패잔군처럼 널브러져 있는 꽃잎들을 다시 본다. 이리 잠시 머물다 가려고 그리 용쓰고 피어난 건가. 그래도 저대로는 한껏 피운 생애를 살았던가. 그래서 미련 두지 않고 가버린 건가.

그래, 무엇인들 영원히 사는 게 있을까. 길고 짧은 것을 누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가. 살 때만이라도 저들처럼 활짝 살 일이다. 질 때도 저들처럼 돌아보지 않고 가버리는 게 차라리 아름다울 수도 있으리라. 생애의 길고 짧음이 다 무엇인가. 활짝 살았음에야.

다시 올 것이다. 온 것은 가야 하지만, 간 것은 또 돌아오지 않는가. 다시 올 그날을 그리며, 가는 그들에게 내 미련도 함께 싸서 보내자. 기다리자, 그 꽃 다시 활짝 필 때까지.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2022.4.16.)

                                                                      

 

늙기 싫으세요?

 

오늘도 벚나무 줄지어 선 아침 강둑 산책길을 나선다. 아니, 이 무슨 변란인가! 다른 길, 딴 세상을 걷는 것 같다. 하룻밤 사이에 이렇게 달라질 수 있는가! 아침마다 걷는 길이건만 오늘은 전혀 다른 길이 되어 버렸다.

어제까지만 해도 수줍어 수줍어하며 몽우리 속에서 꼬물꼬물 옥이고만 있던 꽃잎이 한꺼번에 현란하게 터져 별천지를 이루었다. 이 꽃들이 일시에 봉오리를 터뜨리는 순간에는 무슨 기총소사라도 하듯 요란한 소리가 천지를 뒤흔들었을 것 같다.

어라, 이 나무 좀 보게! 온몸에 꽃 이리 화사하고 해사하게 피워놓고 제 몸뚱이는 왜 이 모양인가. 둥치는 전쟁터에서 치열하게 불을 뿜다가 버려져 검게 녹슬고 터진 포열 같기도 하고, 껍질은 이곳저곳이 갈라지고 거칠어진 늙은 농군의 투박한 손등 같기도 하다.

꽃은 늘어뜨린 가지에만 달고 있는 게 아니다. 제 몸 구석 어디라도, 어떤 모양이라도 꽃을 피울 수 있겠다 싶으면 꽃을 달았다. 몸뚱이 가장자리든 한가운데든, 꽃가지가 길든 짧든 가리지 않고 날렵한 꽃잎들을 달고 있다.

이 나무가 할 일이라고 여긴 건 오직 꽃 피우는 것밖에 없었던 것 같다. 제 뼈며 살이며 살갗이야 어떻게 되든 좋은 날 좋은 때에 활짝 꽃을 피워내는 것만이 제 필생의 과업으로 삼으며 갖은 힘을 다 써 온 듯했다.

꽃 이리 피워내고는 제 한생 이대로 종언을 고한다고 해도 아무런 후회나 미련이 없을 것 같은 결기가 드러나 보이기도 한다. 꽃 피우는 일 말고는 제 몸을 위하여 무엇 하나라도 살피고 보듬은 듯한 기미를 찾아볼 수가 없다.

그렇구나. 그 집념이 이 꽃들 이렇게 현란히 피워냈구나. 제 몸에 지닌 정력과 기력을 다 바쳐 제 몸을 온통 꽃의 천지로 만들었구나. 무서우리만치 강인한 그 집심이 일시에 이리 일매지게 깜짝 놀랄 세상을 만들었구나.

그렇게 생애의 모든 것을 다 털어 피운 꽃이면 천년만년을 달고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그토록 모진 산고를 싸안으며 피워낸 꽃을 길어야 고작 열흘을 달고 있다니-. 질 때는 또 피워낼 때의 그 통고를 다 잊은 듯 그리 분분하고도 가볍게 내려앉게 하다니-.

일여덟 해 넘는 세월을 알로 애벌레로 지내다가 성충이 되어 세상 밖으로 나와 겨우 한 달쯤 짧은 삶을 살고 한 살이를 마감하는 매미를 돌아보며 위안 삼을까. 저 꽃 지는 광경을 그려보면 활짝 피어있는 꽃이 외려 심통을 더한다.

저 꽃 보는 마음 어찌 아파 만하랴! 저 나무는 세상을 길이 누릴 욕심을 품고 제 몸 모든 걸 바쳐 꽃 저리 피워낸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냥 저렇게 피워내는 것으로, 그리하여 피어나는 것만으로 제 삶의 보람을 얻는 일이라 여겼을지도 모른다.

그 보람이 차라리 미쁘고 아름답지 않은가. 제가 지고의 가치로 여기고 싶은 생의 과업을 위하여 저의 모든 것을 다 바치는 저 모습이 얼마나 숭고한 것인가. 제가 이룩해낸 것이 무엇을 누리게 해주지 못할지라도 무언가를 이루어낸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그래서 이 꽃 이리 애틋한 아름다움을 주는가. 붉고 푸른 원색의 현란은 없을지라도 잎 잎마다 소담하게 담고 있는 해사한 빛깔이 아련한 그리움으로 어룽진다. 그리운 꽃잎이 화사한 봄날 속으로 정겨이 흘러들고 있다. 봄이 꽃 되고 꽃이 봄 되어 흐르고 있다.

 

이 아름다움 혼자서만 새겨두기가 아까워 렌즈에 담아 정다운 이에게 보낸다. 답을 보내왔다.

……꽃이 피는 건 좋은데, 저 혼자 빠르게 달라빼는(달아나는) 세월을 조금이라도 잡을 수만 있으면~” 이 꽃에서 그는 세월을 보았구나. 답의 답을 이렇게 보냈다.

늙기 싫으세요~?! 이 답의 답으로 그는 ~’만 보내왔다. 늙기가 싫다는 말일까, 싫지 않다는 말일까. 늙는 게 왜 싫을까. 좋을 일도 없지만 싫을 일도 없다. 저 꽃 저리 피고 지듯 세월 가고 청춘 가면서 늙고 죽고 하는 거야 마땅히 그리해야 할 일 아니던가.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돌아보아 저 꽃처럼 제 모든 것을 다 받친 집심을 불태우면서 살아본 일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아니면 살아갈 날 속에 그런 불 지를 일을 일으킬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럴 수 있을까?

어느 시인이 누구에게나 / 불탈 시간은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다’(김주완, 불길)라 했지만, 그나 나나 그 불 그리 태울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다.

저 꽃들을 피워낸 나무를 다시 본다. 내가 살아온 세월을 돌아보고, 살아갈 시간을 헤아려 본다. 누가 나에게 이리 묻는다면 내 삶은 또 무어라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늙기 싫으세요?”(2022. 4. 9)

                                                                      

 

영원히 간직될 나의 책
-
나무는 흐른다출판기념회를 마치고

 

문학도 하나의 사회적 활동이라고 볼 때, 출판기념회가 열리는 것은 반갑고 축복할 일이라 했다. 어떠한 이유에서든 리추얼ritual이 점차 붕괴되어 가고 있는 요즈음의 추세가 안타깝게 느껴지던 터라서 더욱 환영할 만하다 했다. 오늘의 출판기념회를 열게 한 내 수필집에 작품론을 쓴 교수님의 말씀이다.

책을 내는 것은 나를 위한 일인가, 남을 위한 일인가, 아니면 무엇을 위해 내는가에 관한 물음에 대한 답을 쉽사리 얻을 수 없어 쌓여만 가는 작품을 두고도 책 내기를 망설이고만 있었다. 그 물음에 자신 있는 답을 얻을 수는 없었지만, 쌓이고 쌓여 중압감까지 들게 하는 글과 삶의 무게를 어디에 조금이라도 부려 놓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마침 어찌어찌하여 한국예술인복지재단으로부터 창작지원금을 받게 되어 용기를 내었다.

드디어 나무와 산을 주제로 한 수필집 나무는 흐른다가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첫 책을 낸 지 이십 년 만이다. 책이 나오던 날 갖은 감회가 나를 설레게도 하고 조금은 달뜨게도 했지만, 주위 사람들도 나 못지않게 반가워하고 기뻐해 주었다. 오랜 세월 시 낭송이며 수필 공부를 나와 함께해온 사람들은 모처럼 나온 내 책을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다고들 했다.

두 단체가 주최를 맡아 출판기념회를 준비해 나갔다.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 고마운 마음들이 넘어서기 힘든 장애물 앞에서 주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코로나 대유행 때문이다. 기념의 뜻을 곱게 새기고 싶은 마음들은 그 고약한 유행 앞에서 일단 주저앉아야 했다. 좋은 날을 기다리기로 했다. 책은 밀폐된 상자 안에서 답답한 잠을 이루어 갔다.

곡절을 거쳐 겨우 장소와 시간을 잡아 기념회를 열기로 한 날,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는데 그 괴팍스러운 유행은 거리를 두고 띄엄띄엄 앉아 밥을 먹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못 하게 했다. 그리하는 것으로 어찌 모처럼의 출간을 뜻깊게 기릴 수 있단 말인가. 나보다 주최 단체 임원들이 더 발을 굴렀다. 부랴부랴 수소문하여 소략하게나마 기념회를 열 수 있는 곳을 얻어냈다. 지역 도서관 강의실이었다. 예정된 장소에서 멀지 않아 다행이었다. 모두 바쁜 걸음으로 옮겨갔다.

호사다마일까, 이 시국에 그러한 일을 하려 한 게 잘못이었을까. 그런 상황 속에서도 책의 출간을 기려 주려는 회원들의 의기가 눈자위를 뜨겁게 했다. 내가 복이 많은 걸까, 회원들의 마음이 아름다운 걸까. 겨우 현수막 하나만 걸고 마이크도 없는 조촐한 기념회를 진행해 나가야 했지만, 마음은 준비해온 색색 아리따운 장식품들이며 우렁찬 음향 기기 속을 유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사회자가 먼저 주최자인 문학회 회장을 소개했다. 회장께서는 나와 같은 시기에 함께 울릉도를 산 인연을 가지고 있고, 섬 살이의 정경을 담아서 낸 내 첫 수필집에 서평을 쓰기도 했다. 보잘것없는 내 문학적 이력을 먼저 소개한 후, 첫 책에 얽힌 사연과 함께 오늘 두 번째 책을 내기까지의 역정을 그려나가면서 더욱 건필하기 바라는 것으로 축복해주었다.

내 책의 작품론을 쓴 문학평론가 교수께서 연단에 섰다. 어려운 여건을 무릅쓰고 이런 기념회를 연다는 것부터가 감동이라며 나의 작품 세계를 풀어냈다. 자연 귀의를 통한 진정한 귀향은 인간 본성을 회복하기 위한 자기 수행이고 구도의 길이라며 이 책의 저자는 지금 그 구도의 길을 무던히 걷고 있다고 했다. 내가 정말 그렇게 살고 있는가 돌아보려는데, 교수께서는 앞으로 자연 생태 문제에도 관심을 가져 달라고 당부하며 말씀을 맺었다.

책을 내는 나의 소회를 이야기할 차례다. 출판사 대표와 두 주최 단체 회장께서 안겨주는 꽃다발과 함께 앞에 섰다. 오랜 망설임 끝에 책을 낸 연유를 말하고, 가수는 안 해도 노래는 부르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던 어느 무명 가수의 심정을 빌어 글을 결코 떠날 수 없었던 심사를 털어놓았다. 나무와 산을 쓰기 위해 산골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산골을 살다 보니 나무와 산 그리고 꽃이 보이더라 했다. 그것들을 통해서 보고자 했던 것은 결국 사람 살이의 모습이라 했다. 내가 기리기를 애썼던 노자 장자는 세상을 떠나 자연에 은거했던 이들이 아니라 세상을 자연으로 살려 했던 사람들이라 여겨진다 했다. 내 소망도 자연으로 살다가 자연으로 죽는 일이라며, 그 상념을 이 책에 담았다고 했다. 기념회를 마련해준 여러 회원님에 대한 고마움은 두고두고 새겨 나가겠다며 말을 마무리했다. 축복의 박수 소리가 아늑하게 안겨 왔다.

회원들이 준비한 축하 공연 순서가 이어진다. 첫 순서로 낭송협회 회장께서 나의 글 산의 가슴을 정감 깊은 목소리로 낭독했다. “나는 오늘도 해거름 산을 오른다. 그 가슴을 찾아 오른다. 그 가슴을 안으려, 그 가슴에 안기려 오른다. 당신 품에 안겨 당신이 될 그 가슴에-.”라 맺으며 낭독 판을 접을 때 객석에서는 박수가 터졌지만, 나는 오히려 가슴이 먹먹했다.

다음 순서가 진행되려 하는데 교육감께서 막 도착했다. 일과 후 바로 달려오는 길이라 했다. 아무리 바빠도 이 뜻깊은 자리에 오지 않을 수 없었다며 오래오래 좋은 글로 독자의 심금을 울려주십사 하며 건강과 건필을 기원해 주었다. 내가 뭐라고 이리 애써주실까.

전문 낭송가이신 낭송협회 전 회장께서 음악 회원의 기타 연주와 노래에 맞추어 정두리의 시 그대를 축시로 낭송한다. 회장님의 목소리는 언제나 청옥 빛이다. “네가 깨끗한 얼굴로 내게로 되돌아오는 길 / 그대와 나는 내리내리 사랑하는 일만 / 남겨두어야 합니다.” 그랬다. 우리는 모두 내리내리 사랑하며 살아갈 일이다.

문학회 국장께서 나의 글 나무의 행복을 맑고도 차분한 목소리로 읊어낸다. 이 자리의 모든 사람이 저 나무처럼 행복하면 좋겠다. 나는 행복하다. 이 많은 이들이 내 책을 기려 주고 있는 이 자리가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는가. 박수 소리가 마냥 행복하게 일고 있다.

마지막 순서다. 낭송가이며 가수인 윤 여사, 곡절 많았던 삶의 역정을 내가 글로 썼고, 오늘의 책에도 실렸다. 윤 여사의 그 생애를 두고 내가 지은 노랫말에 음악 회원이 곡을 붙인 노래가 있다. 그 노래를 부른다. 기타 반주에 맞추어 신이 난 듯 부른다. 나를 향한 축하의 몸짓이다. 그의 생애는 파란이 많았지만, 그 노래는 오늘의 축가가 되어 울려 퍼지고 있다.

기념회의 모든 순서가 끝났다. 모두 앞으로 나와 기념사진을 찍는다. 마스크로 얼굴을 덮은 채 카메라를 바라보아야 했지만, 그 속에는 봉곳한 꽃들을 피우고 있을 것이다. 그 미소의 꽃들이 내 동공 속으로 들고 있다. 모두 고마운 미소들이다. 그 미소는 나를 다시 일깨우는 정 깊은 죽비일지도 모른다.

나무는 흐르고 있다. 흐르는 흔적을 제 몸에 둥근 금으로 새기며 끊임없이 흘러간다. 오늘 나에게 새겨지는 금은 어느 때보다 더 새뜻하고 도렷할 것이다. 다사롭고도 아늑할 것이다. 나무는 또 흐른다. 이제 오늘 같은 책을 다시 낼 수 없을지라도 오늘의 사연만으로도 나는 수많은 책을 가슴에 품을 수 있다. 영원히 간직될 따뜻한 나의 책이 될 것이다.(2022.3.23.)

                                                                      

 

강물이 익어 가듯

 

아침 강둑을 걷는다. 그리 많은 물은 아니지만, 졸졸 흐르고 조용히 내리고 콸콸 쏟아지기도 하면서 만나는 것에 몸을 맞추며 쉼 없이 흘러가고 있다. 물에 내려앉은 햇살이 윤슬이 되어 반짝인다. 강물은 윤슬로 제 몸을 단장하면서 유유히 흘러간다. 흘러 흘러서 간다.

강물이라 했지만, 막상 제 몸을 담아주는 물길은 이름을 얻지 못했다. 너비는 웬만한 강에 못지않아도, ‘이라는 이름으로 흐르고 있을 뿐이다. 아쉬울 일은 없다. 조금만 흘러가다 보면 다른 물들과 합쳐지면서 강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이라는 이름도 없었다. 산골짜기 작은 옹달샘에서 솟고 있을 뿐이었다. 그게 넘치면서 물돌을 타고 흐르다가 다른 물돌 여울을 만나 개울을 이루었다. 그렇게 몸피를 불려 나가며 흐르다 보니 예까지 흘러 이 되어 흐르고 있다.

그 물을 보면서 나도 함께 흘러간다. 내 걸음을 따라 나도 예까지 왔다. 나는 어디를 걷고 걸어서 오늘 여기 강둑에까지 흘러왔는가. 나도 물론 조그만 생명체로부터 태어나 거듭되는 철을 겪으면서 살고 살아 철을 얻어 이 강둑까지 왔다.

저 물이 흘러 예까지 오자면 숱한 굽이, 고비를 겪어야 했을 것이다. 숲도 보고, 들에도 안기고, 얕은 곳도 흐르고, 깊은 곳이면 들었다가 다시 흐르고, 작은 돌은 쓰다듬으며 흐르고, 큰 돌을 만나면 돌아서 흐르고, 그렇게 흐르면서 이웃을 만나 함께 흐르다 보니 개울도 되고 내도 되었다.

난들 어찌 그런 굽이며 고비가 없었으랴. 애증도 만나 희비도 껴안고, 외로움도 겪으며 화락도 돌아보고, 쟁투에도 부딪치고 화평에도 젖으면서 수많은 세월을 안아 온몸에 나이테를 문신으로 새기면서 예까지 오지 않았던가.

그 생애가 아직 얼마나 더 흘러가야 할지 모른다. 저 물이 얼마나 더 흘러가야 할지 모르듯. 흘러가다 보면 더 큰물을 만날 것이다. 그 큰물을 만날 때 이라는 이름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물은 어떤 이름을 바라 그것을 얻기 위하여 흘러가지는 않는다. 흘러 흘러 큰물을 만나고, 그리하여 이라는 이름을 얻을 뿐이다. 이름 하나 얻기 위해 아웅다웅 살아가는 무리가 있을지라도, 물은 그냥 그렇게 흘러가다 보면 이름이 와 붙을 뿐이다.

물이 그렇게 익어 간다. 개울이 내가 되고, 내가 강이 되는 것이 물이 점점 익어 가는 것이다. 흐르고 흐르는 사이에 온갖 풍파를 다 겪으면서 물은 점점 익어 크고 너른 강이 되어 간다. 그렇게 익고 여물어 가면서 흐르고 흘러서 간다.

금모래 반짝이는 강촌 마을도 지나고, 질펀하고 매끈하게 뻗어있는 길을 옆구리에 끼고 흐르다가, 빌딩과 높은 굴뚝을 바라보면서 흐르기도 하다가, , 드디어 종착지에 닿는다. 바다다! 세상 모든 물이 다 모이는 바다, 막힌 데 없이 트이고 드넓은 바다에 이른다.

저 물, 아직은 내에 몸을 얹어 흐르고 있지만, 아무것에도 메임이 없고 걸림이 없는 그 너른 세상을 바라며 저 물도 익어 가고 있다. 제가 그리 여기든 아니든 흘러가다 보면 그 광활한 바다는 저에게 안길 것이다. 아니, 그 바다에 안겨 바다가 될 것이다.

어디 강물만이랴. 사람도 살아가고 흘러가며 작은 물, 큰물, 많은 물을 만나 커지고 넓어지고 하면서 그렇게 익어 가고 늙어가지 않는가. 그래서 어느 철학자는 사람이 늙어가는 것을 두고 익어 가는 것이라 했던가.

나는 저 물보다는 조금 더 먼 길을 흘러온 지도 모르겠다. 정갈한 실개울 물도 만났지만, 잿빛 시궁의 물도 끼어들고, 큰비를 맞아 넘치는 홍수가 되기도 하다가 이제는 어지러운 물살을 조금은 걷어내고 은은히 흐르기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내가 물이라면 나에게 지금쯤은 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을까. 나는 지금 저 물이 흘러서 닿는 그 바다에 조금씩 가까워져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머지않아 바다가 보일 듯도 하다. 강이 흘러 바다로 들 듯, 나에게도 바다가 그리 멀지는 않은 것 같다.

바다에는 앞을 막는 굽이도, 몸을 묶던 보()도 없다. 오직 하늘 따라 넓게 펼쳐져 있을 뿐이다. 장자(莊子)는 죽음을 두고 하늘의 속박으로부터의 해방(帝之懸解)’라 하고, 아내의 죽음을 두고도 하늘과 땅이란 거대한 방 속에 편히 잠들고 있다.(入且偃然寢於巨室)’라고도 했다.

바로 바다가 아닌가. 그 바다를 그린 것이 아닌가. 아무 메임 없는 그 바다가 부럽게 바라다보이기도 한다. 그 해방의 바다가 그리 쉽사리 다가올까. 그저 흐르기만 하면 무장무애한 평안의 바다, 고요의 바다가 펼쳐질까.

삶을 잘 사는 것이 죽음을 잘 맞이하는 길이라고 했다. 남은 세월 동안이라도 몸과 마음을 잘 추슬러 삶을 잘 익혀 나아갈 수 있기를 새삼 애써 볼 일이다. 익고 익어 마침내 바다에 이를 저 강물을 보며-. (2022.3.1.)

                                                                      

 

상장 모정

 

설날 큰댁에서 차례를 모시고 둘러앉아 음복하는데, 형수께서 누렇게 변색한 두루마리 뭉치를 내놓으며 나에게 건넸다. 서랍을 정리하다 보니 깊숙이 들어있더라 했다. 하도 오래 돌돌 말려 있던 것이라 잘 펴지지도 않는데, 억지로 펴다간 으스러질 것 같아 조심조심 펼쳤다.

깜짝 놀랐다. 단기 4292년이면 서기로 1959년이다. 초등학교 4학년을 마치면서 받은 개근상장에 적힌 연도다. 그로부터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내가 받은 상장들이 고스란히 말려 있었다. 지금부터 63년 전에서 55년 전에까지 받은 것이니까 모두 반세기가 훨씬 지난 것들이다.

특출하게 빛나는 상장은 없었지만, 개근상 정근상은 거의 놓치지 않은 것 같다. 그중에는 국민(초등)학교 졸업장이며 고등학교 때 교내 백일장에서 받은 상장, 어느 대학교 신문사 주최 전국 고교생 문학 콩쿠르대회 상장, 문예반장을 했다고 졸업 때 받은 공로상장 들이 들어있었다.

무량한 감개가 아니라 경악스럽기까지 한 감개가 가슴속에서 해일처럼 일었다. 언제 적 것인데 이제야 나온 건가. 내 지나온 날들이 빛 낡은 필름이 되어 기억 속을 분주히 돌아갔다.

초등학교 3학년 초에 대구로 이사하면서 전학했다. 그해 여름 장티푸스에 걸려 앓아눕는 바람에 오랫동안 학교에 가지 못했다. 4학년 때부터는 학교는 빠지지 않고 잘 다녔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는 글쓰기에 관심을 가지고 문예반 활동을 하다가 대학도 국문과로 진학했다.

2학년 마치고 군에 입대하여 3년을 복무하는데, 군 생활 중에 집을 옮겨 휴가 때는 주소를 들고 찾아가기도 했다. 제대하고 복학하여 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사회로 나가면서 부모님 곁을 떠났다. 그렇게 오늘날까지 살아오는 사이에 큰댁은 또 집을 옮기고,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셨다.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신 지 올해로 43, 어머니는 27년이 되었다.

어쩌다 보니 내가 가진 학창 시절 흔적은 중고등 졸업장과 앨범뿐이었다. 그 시절이 떠오를 때면 가끔씩 다른 흔적들도 보고 싶었지만, 찾을 수도 없고 물어볼 곳도 없었다. 이사를 하고, 집을 떠나 있고 하던 날이 많아 그 와중에 모두 없어진 것 같아 늘 아릿하던 터였다.

오늘 그 상장들을 대하면서 돌이켜보니, 그런 것들을 받는 대로 어머니께 드렸던 것 같다. 어머니는 위로 아들 둘을 잃은 뒤 마흔 만득으로 나를 낳으시고는 또 어찌 될세라 잠시도 몸에서 떼지 않고 나를 키우셨다. 내가 장성할 때까지도 나에 대한 자정이 각별하셨다.

그런 어머니이시기에 대단한 것은 아닐지라도 아주 귀하게 여겨 장롱 깊숙이 묻어두셨던 것 같다. 한 장씩 더해질 때마다 기특하다 하시며 포개고 포개어, 말고 말아 곱게 넣어 두셨을 것이다. 집안일과 내 삶이 어떻게 변전해 가도 그것만은 꼭 품고 계셨던 것 같다.

내가 입대할 때는 저 응석받이가 군대 생활을 어이 할거나.’ 싶으셨던지 눈물을 지으시기도 했다. 그 아들이 보고 싶을 때 어쩌면 그것들을 꺼내 보셨을지도 모르겠다. 학교를 마치고 직장을 따라 객지로 나아갔는데, 응석받이가 직장을 얻고 제집을 이루어 나가는 걸 기뻐하시면서도 저 어리석은 것이 힘든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까.’하고 잠시도 걱정을 놓지 못하시는 것 같았다. 그때마다 장롱 속에 보물처럼 간직해 놓은 것을 꺼내 보셨을까.

어느 해 어버이날, 모처럼 어머니를 찾아뵈었다. 가슴에 꽃을 달아드리면서 낮 하루를 포근하게 지내다 집으로 돌아온 그 날 저녁, 어머니께서 갑자기 쓰러지시면서 수족을 못 쓰고 언어가 막히셨다고 한다. 그럴 리가! 낮에만 해도 말짱하셨는데 별안간 쓰러지셨다니! 천지가 뒤집히는 것 같았다.

뇌졸중이셨다. 꼭 한 해 동안 병상 신세를 지시다가 이듬해 어버이날 하루 뒤 자식들의 손을 놓으셨다. 어버이날을 보내면서 쓰러지시어 또 어버이날 이튿날 눈을 감으시다니-. 불효를 꾸짖는 하늘의 뜻 같았다. 갑자기 언어가 끊기신 탓에 유언 한 말씀 들을 수 없었던 것이 못내 쓰리고 안타까웠다. 당신은 또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큰댁에서 어머니 유품을 정리하다가 그 상장 뭉치를 발견하고는, 형수께서 나에게 전해 주리라 하고 간직해 두었던 것 같다. 깜빡 잊었던지 어머니 가신 지 삼십 년이 다 되어 가는 이제야 내놓는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건 아쉽지만, 여태 간직되게 한 것은 고마운 일이다.

그것들을 펼치는 순간, 까마득히 떨어져 있던 피붙이를 만난 듯 치솟는 격정과 함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마른풀 위의 불길처럼 뜨겁게 타오른다. 세월이 아득히 흐르는 사이에 조금은 가라앉아 있던 그리움이다. 오늘 그 그리움의 불길이 다시 솟아 가슴을 다 사를 것 같다.

가끔씩 보고 싶던 것들을 이제 보았으니 아쉬움은 풀리는 것 같았지만, 내 삶의 저물녘에 이것들을 만나고 보니 또 언제 헤어져야 할지 모르는 다른 아쉬움이 일어난다. 내가 세상을 달리하고 나면 누가 내 마음같이 이것들을 건사해 줄까. 하기야 건사한들 어디에 쓸까. 그래, 인제는 언제 없어져도 괜찮다. 세상에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란 없지 않은가.

그것들이 아무리 없어져도 절대 없어지지 않을 것이 있다. 어머니의 손길, 마음 길은 언제까지라도 내 안에 따뜻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다른 세상에서라도 어머니의 그 사랑은 항상 나와 함께할 것이다. 어떤 상장보다 더 설레고 따뜻하게 남을 것이다.(2022.2.9.)

                                                                      

 

십칠 년밖에

 

해가 바뀌었다.

권 선배가 말했다.

이제 나는 십칠 년밖에 못 산다네요!”

권 선배는 나보다 여덟 살이나 위이시지만, 막역한 술벗이다.

누가 그럽디까?!”

요새 백세 시대라잖아요! 하하

그러고 보니 권 선배께서는 올해 여든셋이 되셨다.

그러면 저는 십칠 년 후에는 누구와 술벗을 하란 말입니까? 하하

그걸 난들 어찌 알겠소! 하하

하기야 누가 감히 앞일을 알 수 있을까. 어쩌면 권 선배는 이승에서는 나의 선배시지만, 세상을 바꿀 때는 누가 선배가 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선배의 여명 십칠 년! 내가 이 한촌을 찾아와 산 걸 돌이켜보면 십칠 년도 잠깐이다. 바로 십칠 년 전 이 땅을 처음 디뎠다. 공직 발령을 따라 그해 초봄 이 궁벽한 산촌을 찾아왔었다. 둘러봐도 사방 보이는 건 산뿐, 그 안 좁다란 평지 몇 곳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들, 그 넓은 교실에 몇 보이지 않는 아이들-. 이 적막한 골짝에 어찌 사나 싶던 것이 이태를 살고 나니 그 적막이 정으로 변했다. 다시 영을 따라 두 곳을 더 전전하다가 생애의 한 막을 거두고, 조용히 살 수 있는 곳이라 여겨 이 적막을 다시 찾아와 살고 있다.

그 세월 그렇게 십칠 년을 보내는 사이에 선배같이 풍미 있는 분을 만나 적막을 또 다른 정으로 새기며 오늘도 이렇게 회포 어린 술잔을 마주하고 있다. 드는 잔마다 정이 담겨 있다면 선배와 내 몸의 세포들은 온통 정으로 흠씬 젖어 있을 것이다. 그 세월이 언제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돌이켜 보면 당장에라도 손에 잡힐 듯한 순간들이 언제 그렇게 가버렸는지!

이제 남은 세월이 또한 십칠 년이라니! 마치 불치의 고질을 안고. 시한부를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도 얼핏 스쳐 간다. 세월이란 그토록 재바르게 흘러 가버리는 것이라면, 선배와 함께하는 그윽한 술잔도 얼마나 더 들 수 있을는지, 생각할수록 아쉽고도 아릿하다. 그 십칠 년이란 것도 선배의 익살로 하는 말씀이라, 언제 어느 순간에 누가 먼저 세상을 달리하게 될지 모를 일 아닌가. 누가 이승을 두고 먼저 가든, 남은 이는 또 얼마나 아득할까.

어찌 아득해만 할 일일까. 마음을 고요히 가눌 일이다. 오고 가는 것이야 누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가. 문득 이 세상에 왔듯 홀연 갈 수도 있는 일이다. 오기로 되어 있어 오는 것이고 가기로 되어 있어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고 가는 때도, 가고 남는 일도 고요한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다면, 안타까움도 아득함도 다 싸안을 수 있는 일이다.

장자의 아내가 세상을 떠나 혜자가 문상을 하러 가니, 장자는 두 다리를 뻗고 앉아 동이를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고 한다. 고락을 같이한 부인이 죽었는데 곡은 하지 않고 웬 노래냐 하니, ‘살고 죽는 거란 사계절이 돌고 도는 것과 같아 저 사람이 모처럼 천지 큰방에서 편히 자려 하는데, 내가 큰 소리로 운다면 천명을 깨닫지 못하는 짓이라며 그래서 울지 않는다고 했다 한다. 그런 지경에는 못 미칠지라도 삶은 삶대로, 죽음은 죽음대로 천연히 받아들일 일이다.

무명 생활 24년 만에 어느 오디션에서 우수한 성적에 올라 찬연한 빛을 보게 된 어떤 가수가 한 방송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는 걸 들었다. “무명 생활이 힘든 게 아니라 언제 무명 생활을 끝낼 수 있을지 모르는 게 아주 힘들었습니다.”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앞날을 알 수 있었다면 오히려 그 생활을 못 이겨냈을지도 모른다. 선배께서 난들 어찌 알 수 있겠소!’ 하며 짓던 호탕한 웃음이 오늘 우리의 술잔을 더욱 풍미롭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동인 활동을 함께하는 한 회원의 부군이 그리 많지 않은 향년으로 갑작스레 유명을 달리했다 한다. 환우가 조금 있기는 했지만, 자리보전은 별로 하지 않았다고 한다. 별안간 당한 상부의 처지가 얼마나 참담했을까. 남편이 죽은 슬픔을 두고 예로부터 붕성지통(崩城之痛)’이라 하여 성이 무너지는 참사에 비유할 만큼 무엇보다 큰 슬픔으로 여겼다.

감염병의 유행으로 문상이 자유롭지 못해 다른 이에게 조문의 뜻을 전했더니, 다녀온 문상객이 그 회원은 슬퍼하면서도 장례 일이며 문상객을 담담하게 잘 맞고 있더라고 전해주었다. 평소 사회 봉사활동도 열심히 해오던 그는 많은 사람을 겪어오는 사이에 오고 가는 것을 자연의 이치로 여기는 달관한 심덕을 가지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하물며 이렇게 즐거이 살아있으면서 그윽한 술잔을 마주하고 있음에야 십칠 년이면 어떻고 홑 칠 년이면 어떤가. 그저 허물없이 살다가 빚이나 남겨 놓지 않고 갈 수 있다면, 그 죽음이야 삶과 무엇이 그리 다를까. 모두가 자연의 일이 아닌가.

언제 누가 오고 간들 무슨 상관이오? , 한잔 듭시다! 하하(2022.2.2.)

                                                                     

 

가야 할 때가

 

협회를 물러나겠다고 했다. 회가 창립된 지 11년 만이다.

회장님과 나는 지역 문협의 시 낭송회에서 전문 낭송가와 지역 인사 초청 출연자로 만났다. 연배는 십여 년 차가 났지만, 대화를 나누다 보니 시 낭송에 관한 관심이 서로 통했다. 당시 지역에는 시 낭송으로 뜻을 같이할 수 있는 동호인 모임이 없었다.

우리가 만들어 보자 했다. 알음알음 물색하여 십여 명을 모았다. 회장님이 회원들 낭송 지도와 함께 회 운영의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면, 나는 그 운영을 뒷받침하며 회를 이끌어 나가자고 했다.

회를 발기한 우리 두 사람은 회원들의 선임에 따라 회장과 자문위원을 나누어 맡기로 하고, 젊어 패기도 있으면서 낭송 활동에 의욕도 있는 한 회원에게 실무를 맡겼다. ‘○○낭송가협회라는 이름으로 출발을 했다. 시와 낭송의 아름다움 때문인지 회가 화기롭게 운영되어 갔다.

수시로 회장님의 지도를 받으며 낭송을 갈고 닦다가 두 달에 한 번 모여 작은 낭송회를 열고 낭송의 기량을 서로 평가했다. 그렇게 하기를 이태가 된 해의 여름, 시민들을 상대로 첫 번째 시 낭송 콘서트를 열었다.

완성도를 더욱 높여 가야 할 첫 콘서트였지만, 출연 회원들의 열기와 시민들의 호응은 뜨거웠다. 그 열렬한 갈채에 힘을 얻어, 시 낭송이란 음성화한 시로 구현하는 삶의 예술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갖은 열정을 태워 나갔다.

그 세월이 강산이 변한다는 십 년을 넘어서고 콘서트도 아홉 번째에 이르렀다. 그 세월 동안 변한 강산의 모습보다 회원들의 변모가 더 눈부신 것 같았다. 회원들 모두 낭송 전문가가 되어 많은 회원이 낭송지도자 자격을 갖추기도 했다.

회장님은 회원들의 낭송 지도에 주력하는 한편, 나는 회원들이 낭송할 만한 시를 찾는 일이며, 그 시와 회의 운영 상황을 담는 웹 카페 관리에 힘을 모았다. 콘서트가 열릴 때면 낭송 시첩을 만들고, 낭송 시 소개 영상을 만들어 관객들이 잘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회원들에게 아호를 하나씩 지어 주어 서로 편하게 호명할 수 있도록도 했다. 회가 운영되어 가는 곳곳에 알게 모르게 내 손길, 마음 길이 많이 스며들게 되었다.

회원들이 회장님과 내가 하는 일을 신뢰하면서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호응하여 마음과 힘을 하나로 모아주는 것이 무엇보다 큰 보람으로 여겨졌다. 시 낭송도 아름답지만, 회원들의 마음 하나하나가 시처럼 아름답게 보였다.

회원들과 만나는 날이 설레게 기다려졌다. 따뜻한 마음을 서로 주고받으며 인정도, 낭송의 아름다움도 기쁘게 나누어 갔다. 그렇게 낭송에 빠져들다 보니 기량이 점점 나아지지 않을 수 없고, 콘서트도 해마다 새로운 모습을 관객들에게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

음악을 전공하여 악기 연주와 노래며 작곡도 즐겨 하는 회원이 있었다. 낭송 활동을 더욱 재미있고 즐겁게 하기 위해 협회 노래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달포를 고심한 끝에 3절로 된 가사를 완성했다. 음악 회원에게 작곡을 부탁했다.

꽃피고 새 노래하는 계절도 좋지만 / 보고 싶은 사람들 서로 만남도 기쁘지만 / 아시나요 아름다운 시 외며 사는 행복을 / 그 행복 찾아가는 ○○낭송가협회 // 기쁘고 즐거울 때는 환희의 시 외고 / 힘들고 외로울 때는 위안의 시 읊으면 / 슬픔도 기쁨도 꽃으로 피어나는 길 / 그 길을 찾아가는 ○○낭송가협회 // 낭랑한 목소리에 아늑한 꿈 싣고 / 시 속에 피어오르는 오롯한 사랑 향해 / 따뜻한 삶을 위해 정겨운 세상을 위해 / 좋은 시 찾아가는 ○○낭송가협회

1절에서는 낭송 활동의 의의, 2절에서는 낭송의 효용성, 3절에서는 세상에 이바지하는 낭송의 지향성을 담고 싶었다. 내 생각만 오로지 담은 것이 아니라, 그러한 마음과 뜻으로 함께해 온 우리의 지난날들을 우려낸 것이다.

회 창립 10주년 한 해 전 어느 날 정기 모임에서 음원 발표를 하고 음악 회원의 선도로 함께 불렀다. 회원들 모두 감격으로 눈시울을 적시며 목청을 높여갔다. 그리운 이를 만난 것같이 행복하고, 좋은 이에게 받는 사랑 고백처럼 황홀하다 했다. 그해 가을 콘서트 무대를 통하여 더욱 큰 감격을 안고 울려 퍼졌다.

창립 10주년을 막 넘어선 새해 벽두에 정기총회가 열렸다. 나하고 같이 회를 창립했던 회장님이 물러났다. 이제 후진이 나설 때가 되지 않았냐며 물러날 뜻을 수차례 말씀해온 터였다. 회장님은 감회의 눈물을 삼키며 퇴임사를 했다. 회원들은 아쉬움과 함께 그간 노고에 대한 위로와 감사를 드리며 고문으로 추대했다. 사무국장을 맡아오던 회원을 회장으로 선출하여 축복의 박수를 보냈다.

나는 전격적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회를 떠나겠다고 했다. 홀연 눈동자들이 커졌다. 오직 회원들과 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엮어온 세월이었지만, 내 그림자가 너무 짙게 드리워져 있는 것 같았다. 내 방법만이 최선이었을까. 회원들의 잠재력 분출 기회를 앗은 것은 아니었을까.

……창립할 때 회장님과의 약속을 생각하며 없는 힘이지만 나름대로 열정을 바쳐왔습니다. 이제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더욱 새롭게 나아가는 협회가 되기를 간절히 빌면서…….”

내가 떠나는 것만이 회가 더욱 새로워질 것이라는 믿음을 모른 체할 수 없었다. 회와 회원을, 우리의 낭송을 사랑하는 마음에서임은 물론이다. 세대는 흘러가야 하지 않는가.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형기, 낙화)’라 하지 않던가. ‘협회 노래를 감회롭게 제창하며 총회를 마치고, 나는 집으로 가는 길을 나섰다.

나의 뒷모습이 아름다울까. 회원들은 극구 만류했다. 만류는 몇 날 며칠을 두고도 이어졌다. 모든 일을 다 받쳐 주던 분이 떠나면 어떻게 하느냐 했다. 그럴수록 내 믿음의 끈을 더욱 다잡았다.

……따뜻한 삶을 위해 정겨운 세상을 위해 / 좋은 시 찾아가는 ○○낭송가협회~~!”

그렇게 영원하기를 바라며 그 믿음의 끈을 다시 한번 힘주어 당긴다.(2021.1.25.)

                                                                      

 

외로움과 고독

 

좋아서 찾아와 살고 있으니 타향 아닌 애향이라 해야 할까. 한 생애를 정리하고 티끌세상을 떠나 이 한촌에 와 산 지 강산이 변하는 한 세월을 성큼 넘어섰다. 그 세월 그런대로 잘 껴안고 살고 있다 싶으면서도, 두고 온 사람들이며 그 바깥세상의 그림자는 곁을 떠나지 않는다.

눈을 들어 창밖을 보면 어딜 봐도 사방 모두 우람한 산이다. 인가 몇 채에 텅 빈 들판, 벚나무가 늘어선 강둑도 보이지만, 적막하다. 파란 하늘에 구름이 날고 그 아래로 간혹 나는 새가 보일 뿐 정물화 같은 풍경이다.

지난날의 사람들이 그립다. 그는, 그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따금 달려가거나 불러서 차라도 술잔이라도 함께 나누고 싶다. 이 넓은 세상에 사람이라곤 오직 나 하나뿐인 것 같다. 혼자서 기울이는 술잔을 드는 손길이 고적하다.

이 고적이 어찌 적막만 한 것이랴. 아늑한 평안이 느껴지는 것은 또 무슨 까닭인가. 희비와 고락을 번뇌로 섞바꾸며 살아야 했던 지난 시절을 떠올리면 이 삶의 순간들이 저 날아가는 구름처럼 넉넉히 한가롭고 편안하게 안겨 오기도 한다.

늘 보고 안고 사는 산을 오르고 강둑을 걷는다. 나무를 보고 물을 안는다. 원 없이 가지를 뻗은 저 나무같이, 걸림 없이 흐르는 강물같이 흘러가기를 바라는 내 삶이 아니던가. 거칠 것이 없는 고독 속을 사는 이 삶도 마음 밖으로 밀어내고 싶지는 않다.

외로움은 아린 것이지만, 고독은 아늑한 것일 수도 있다. 외로움은 벗어나고 싶은 것이지만, 고독은 더불어 살고 싶은 것일 수도 있다. 시인들도 그런 심정으로 외로움과 고독을 고백하지 않았던가.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 눈은 푹푹 날리고 /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 나타샤와 나는 /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시인은 외로웠다. 눈 내리는 쓸쓸한 겨울밤이 시인을 더욱 외롭게 했다. 소주로 외로움과 고뇌를 달래며 사랑하는 이를 그리워한다. 그 외로운 현실을 벗어나고 싶다. 눈처럼 순수한 흰 당나귀를 타고 사랑을 오붓이 나눌 수 있는 산골 오두막집으로 함께 가는 환상에 젖는다.

이 시인의 마음은 어떤가.

홀로 있는 시간은 / 쓸쓸하지만 아름다운 / 호수가 된다. / 바쁘다고 밀쳐두었던 나 속의 나를 / 조용히 들여다볼 수 있으므로 // 여럿 속에 있을 땐 / 미처 되새기지 못했던 / 삶의 깊이와 무게를 / 고독 속에 헤아려볼 수 있으므로 (이해인, 고독을 위한 의자)”

시인은 고독했다. 그 시간은 쓸쓸하지만 아름다운 호수였다. 나를 조용히 새겨 볼 수 있는 시간이므로. 내 삶의 깊이와 무게를 다시 헤아려 볼 수 있는 시간이므로. 그 시간은 자신을 다스려 삶을 잘 꾸리게 할 수 있는 따뜻한 가치를 지닌 것이 된다.

정호승 시인은 외로움은 사회적인 인간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라 하고, 고독은 인간이라는 존재적 실존성 속에서 형성되는 것’(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이라 했다. 외로움이 상대적인 것이라면, 고독은 절대적인 것이라는 말이겠다. 누구와의 관계가 그리운데 혼자일 수밖에 없을 때 느끼는 심정이 외로움이라면, 모든 관계를 떠나 혼자가 될 때 느끼는 아늑함이 고독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고독은 걸림 없이 즐길 수 있지만 외로움을 즐기기는 힘들다. 고독은 스스로 원하여 빠져들 수 있지만, 외로움은 어떤 이가 스스로 원할까. 고독은 혼자 있는 즐거움일 수 있지만, 외로움은 혼자인 것이 괴로움일 수 있다. 고독은 그 안에 머물고 싶을 수 있어도 외로움은 어서 탈출하고 싶다.

외로움은 누가 그립거나 누구를 사랑할 때 올 수 있지만, 고독은 남을 향한 사랑보다는 자신에 대한 사랑에서 올 수 있다. 고독할 때는 전화기를 꺼두고 싶을 수 있어도, 외로울 때는 하염없이 전화 소리를 기다리기도 한다.

고독할 때 마시는 술은 달금할 수도 있지만, 외로울 때 드는 술잔은 쏟아버리고 싶을 수도 있다. 고독을 찾아 홀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은 있지만, 외롭기 위해서 떠나는 사람도 있을까. 고독할 때는 편지를 쓸 마음이 나지 않을 수 있지만, 외로울 때는 간곡한 편지를 쓰고 싶다. 답장도 받고 싶다.

살다 보면 외로울 수도 있고 고독할 수도 있다. 외로움으로 괴로움을 느낄 수도 있고, 고독을 찾아 즐길 수도 있다. 나는 지금 외롭기도 하고 고독도 안겨 온다. 외로워서 술잔을 들기도 하고, 그윽한 독작을 기울이기도 한다.

외로움은 역시 쓸쓸하고 고단하다. 이 고적한 한촌을 벗어나 그리운 사람들에게로 달려갈까. 아니다. 어차피 내가 택한 길이 아니던가. 외로움을 고독으로 바꾸면 될 일 아닌가. 전화가 없어도 괜찮고, 답장을 기다리지 않아도 좋을 고독을 살면 되지 않으랴.

고독하자. 가분하게 고독하자. 그 힘으로 외로움의 너울을 벗어버리자. 사색의 잔을 기울이며 고독 속으로 가든하게 들자.(2022.1.2.)

                                                                      

 

 

사람들은 모두 끈을 부여잡고 산다. 그 끈은 하늘이 천연으로 내려주기도 하지만, 그 하나를 얻기 위하여 온갖 공을 다 모으기도 한다. 하늘이 내려준 끈도 귀하지만, 공을 모은 끝에 얻은 끈이 더 귀할 수도 있다.

끈을 힘주어 잡고 있다 보면 뜻하지 않게 놓치거나 끊어지기도 하고, 놓치고 끊어진 것을 다시 잡고 잇기 위하여 갖은 애를 쓰기도 한다. 끈이 없으면 살 수가 없을 수도 있고, 살더라도 편안하게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한 친구가 있었다. 같은 직장은 아니었지만, 같은 직업, 직위를 가지고 가끔씩 만나 마음을 나누다 보니 조금씩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같은 곳에 같은 볼일을 보러 갈 때는 함께 차를 타고 다니며 많은 얘기를 나누기도 하고, 일 처리 방법을 함께 궁리하며 서로 의견을 주고받기도 하는 사이에 정도 들어갔다. 그 정은 우리 사이를 잇는 끈이 되어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정년퇴직할 날이 다가왔다. 같은 날은 아니지만 같은 시기에 퇴임식을 하고 자리를 물러났다. 그 친구의 퇴임식에 가서 외길 평생으로 얻은 영예의 퇴임을 축하해 주었다. 내가 퇴임식을 할 때 그 친구는, 다른 무슨 일에 초청을 받았다며 오지 않았다. 그럴 수도 있으려니 했다.

퇴임하고 나니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전 같지 않았다. 아쉽고 안타까웠다. 기회가 없으면 만들기라도 해야 할 게 아니냐며 사는 곳을 찾아 오가기도 했다. 그럴 것이 아니라 정기적으로 만나 얼굴이라도 보며 살자 했다.

두어 달마다 한 번씩 만나기로 하고, 그렇게 몇 번을 만나다 보니 애틋한 마음도 익어 가는 듯했다. 둘이서만 이 좋은 만남을 즐길 게 아니라 퇴임 전에 함께 만났던 이들 중에 누구, 누구도 불러 같이 만나는 게 어떠냐는 의견이 나왔다. 늙어갈수록 친구가 제일이 아니냐며 그렇게 하자며 두 친구를 더 불렀다.

둘이 만날 때보다 즐거움이 갑절로 불어난 것 같았다. 만나면 주로 건강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는데, 이런 얘기 자꾸 하는 것 보니 우리 늙긴 했구만, 하고 함께 웃으며 막걸릿잔을 비우곤 했다. 함께 나누는 담소는 좋은 안주가 되었다. 그렇게 노경의 적요를 서로 안아 주는 것이 정겹고 기뻤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두 친구가 사소한 말끝에 시비가 붙었다. 그런 말을 어떻게 할 수 있느냐, 그게 뭐가 잘못된 거냐며 설왕설래하다가 얼굴에 핏줄을 세웠다. 두 친구를 진정시키려 애썼지만 듣지 않았다. 다투던 한 친구가 먼저 가버렸다. 나와 먼저 정들었던 친구였다.

잡고 있던 끈이 하나 뚝 끊어진 듯했다. 귀가 순해지는 나이도 지나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법도를 넘지 않는 나이를 코앞에 두고 그래야만 하는 걸까. 날 봐서라도 그러지 말라며 오래도록 달래도 보고 사정도 해보았지만, 친구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서운했다. 내 퇴임식에 안 온 일이 새삼스레 떠올랐다. 그러는 사이에 한 친구가 유명을 달리했다. 이 세상에서는 영원히 잇지 못할 끈이 되어 떨어져 나갔다.

둘로는 호젓할 것 같아 또 다른 친구 둘을 불렀다. 다시 넷을 만들어 마음을 나누어오는 사이에 몇 해가 흘러 망팔쇠년도 성큼 넘어섰다. 어느 날 문득 우리를 떠났던 친구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늦둥이 막내딸 혼인 청첩이었다. 이럴 수가 있나. 야속하게 떠날 때는 언젠데! 속이 편치 않았다. 부조 빚도 없는 터라 눈을 감아버렸다. 잊었다. 그도 잊을 것이다.

어느 날, 세수하고 수건을 들어 얼굴을 닦으려다 보니 누구 정년퇴임 기념이라는 글자가 찌르듯이 눈에 띄었다. , 그 친구! 닦으려던 얼굴에 갑자기 열기가 확 끼쳐 올랐다. 이게 여태 남아 있었구나! 버릴까, 쓸까? 그 수건을 볼 때마다 뜬금없는 청첩 메시지를 받았을 때보다 마음이 더 산란했다. 내가 너무 옹졸했던 건 아니었을까.

신실한 사람에게 나도 신실하게 대하고, 신실하지 못한 사람에게도 신실하게 대하여 이로써 신실을 이룬다.(信者吾信之 不信者吾亦信之 德信, 道德經49)”는 노자의 말씀이 꼭 나를 나무라는 말씀같이 울려왔다. 그 친구를 탓할 게 하나도 없을 것 같았다. 수건을 다시 대하던 어느 날, 폰을 잡고 문자를 써나갔다.

오랜만일세~! 잘 계시는지? 사정이야 어떻든 지난번 딸 혼사 때 부조금을 안 보낸 것은 내가 아주 잘못한 것 같네. 미안하네. 마음 넓게 생각해 주시게. 지금이라도 내 성의를 표시해야 마음이 편할 것 같네. 번거롭더라도 계좌 번호 좀 알려주시게. 부탁하네…….”

정말 오랜만일세! 건강하제? 새삼스럽게 뭘~?!……하고 답장을 보내왔다. 다른 친구를 만날 때마다 마음에 걸리더라며, 지금이라도 내 마음을 보낼 수 있게 해 달라 했다. 수건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며칠 뒤에 계좌 번호를 보내오며 언젠가는 만날 날이 있겠지?’ 간곡한 듯한 말을 했다.

뒤늦은 일이지만 부조금을 조금 보내며 조그마한 정성 보내네. 마음의 끈을 잇는 거라 여겨주시게~!’ 했다. 고맙다며 건강하게 지내다가 언제 꼭 한번 보자는 답글이 왔다.

세수하고 얼굴을 닦으며 그 수건 글자를 볼 때, 새로 돋는 움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살포시 솟는다. 끈이 새로 이어졌다는 앳된 안도감이 주는 느낌일까?(2021.12.22)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

 

나에게 언제 죽음이 와도 기꺼이 맞이할 마음을 가지고 있다. 살 만큼 살았다는 생각이 들어서이기도 하고, 이제 내가 짊어져야 할 짐이나 갚아야 할 빚이 별로 없는 홀가분함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특별히 무슨 깨달음을 얻어 죽음 앞에서 유달리 초연하려 하는 것도 아니다. 풀도 나무도 짐승도 사람도, 목숨을 가진 모든 것들이란 태어남이 있듯이 죽음이 있는 것도 당연하다는 평범한 상념에서일 뿐이다.

죽지 않고 살아 있기만 해서도 안 되고, 그런 일이란 있을 수도 없지 않은가. 철이 되면 미련 없이 가지를 떠나는 나뭇잎처럼 나도 그렇게 담담히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 그래서 나라에서 관리하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라는 것도 쓰면서 죽음에게 순순하려 하고 있다.

그런데, 내가 정말 죽음에 초연한 걸까. 그렇게 담담하다면 순순히 죽어갈 준비는 잘하고 있는가. 말과 생각은 그렇게 하면서도 행신은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아 나 자신에게 부끄러워질 때가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볼 때마다 죽는다는 사실 앞에서 문득 섬뜩해지기도 한다. 내가 죽으면 나를 담고 있는 이 공간들이며, 나와 함께 그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하고한 용품이며, 나와 맺고 있는 많은 관계는 다 어찌해야 하는가.

내 손때가 짙게 묻었거나 내 손길 눈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저 수많은 책은 다 어찌해야 하고, 어쭙잖은 것일지라도 그간 써놓은 많은 글은 또 어찌해야 하는가. 나를 앉혀주던 서궤며, 나를 챙겨주던 가용들을 모두 한 점 불티로 사라지게 해야 하는 걸까.

죽을 사람이 별걱정을 다한다며 실없다 할 일이지만, 실로 실없는 탓인지 가슴이 답답해질 때가 있다. 내가 지지 않으면 안 될 짐이 별로 없다 하면서, 가진 것 때문에 쉽사리 삶을 놓을 수가 없겠다는 생각은 또 무엇인가.

덜고 줄이고 없이하면 될 것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법정 스님같이 무소유에 대한 자각이 철저한 사람이라면 왜 이런 걱정을 하겠는가. 역시 나는 범속한 무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다시 한번 곱씹게 할 뿐이다.

사실, 내가 가진 것 중에는 재물 가치가 있는 것은 별로 없다. 모든 가구며 용품들도 그렇지만, 내가 아끼는 책이며 글들도 그렇다. 책 중에 무슨 희귀본이 있어 두고두고 보존 가치가 있는 게 있다거나, 써 놓은 글 중에 문학사에 길이 남을 명문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럴지라도 나에게는 소중한 것들이다. 그런 것이 남의 손에 들면 그저 공허한 짐 덩어리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나 죽고 나면 허접한 쓰레기 같은 것들만 남겨 처리를 부담스럽게 한다고 누구는 나를 원망할지도 모른다.

죽음 앞에서 그게 좀 억울하고 안타까운 것이다. 나에게 소중했던 것이 남에게는 귀찮은 존재가 되고, 나는 긴요하게 챙기고 싶은 걸 남은 하찮은 것으로 보는 것이 죽음을 쉽게 여길 수 없게 한다고 하면, 나를 참 열없는 사람이라 할까.

아내가 건강하게, 무병 무탈하게 오래 살기를 바란다. 아내가 나보다 먼저 세상을 달리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고, 그런 일이 있어서도 안 된다. 나 혼자 적막히 살아갈 일도 안타깝지만, 아내가 쓰던 것들을 어찌 두고 볼 수가 있단 말인가.

염치없는 심사일지는 몰라도, 나의 순순한 죽음을 위해서라도 아내는 나보다 오래 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아내의 건강이 집안의 더할 나위 없는 평안이 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울러 내가 남겨놓은 것들을 적절히 건사하고 처결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민망하고 부질없다. 내가 지은 업보를 누구에게 미룬단 말인가. 누가 삶과 죽음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가. 어차피 언제 죽어도 죽지 않으면 안 될 일이라면, 죽음을 겸허하게 맞을 방도를 찾는 일 말고 다른 도리가 있을까.

그 방도는 저마다 사는 모습에 따라 다 다를 수 있을진대, 나에게는 무슨 방도가 있는가. 그 방도를 살피며 내 삶을 돌아보노라면, 가지고 있는 것들에 얽매여 죽음을 주저하고 있는 내 모습이 참 같잖게 여겨지기도 한다.

죽음을 기꺼이 맞이하고 싶다 하면서도 가진 것들을 놓기가 애석해 죽음을 망설이는 것은 그야말로 소탐대실이 아닌가. 노자(老子)도 사람의 마음이 머물 곳은 소박함을 보고 품으며 사욕을 줄이는 데 있다.(見素抱樸 少私寡欲, 道德經 第19)’ 하지 않았던가.

좀 늦은 깨침이지만, 이제부터라도 세상 어떤 것이든 가지기를 탐내지 않고, 가지고 있는 것에도 착심을 줄이고 털어나갈 일이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따라갈 수는 없을지라도, ‘견소포박하며 검박하게 살기만은 애쓸 일이다.

잘 살기 위하여, 가붓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하여-.(2021.12.9.)

                                                                      

 

나무의 철

 

오늘도 산을 오른다. 어제 그 산길로 어제 그 나무를 보며 산을 오른다. 아니다. 어제 그 길이 아니고 그 나무가 아니다. 나무는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가만히 보면 어제 그 잎이 아니고 그 가지가 아니다. 길도 그 길이 아니다.

모양도 바뀌어 가고 색깔도 달라지고 있다. 잎이 어느 때는 실눈 속의 눈썹 같았다가, 어느 때는 아기 손톱만 했다가, 언제는 엄지손톱처럼 자랐다가, 손바닥만큼 넓적해지기도 한다. 파르스름한 가지가 조금씩 굵어지다가 팔뚝만 하게 커서 흑갈색을 띠고 있다.

그 가지의 잎들이 한창 푸르러지는가 싶더니 노랗고 붉은 물이 들었다가 말라 들면서 떨어져 땅으로 내린다. 땅은 잎을 싸안아 차곡차곡 재었다가 제 살 속으로 스며들게 한다. 나무들의 거름이 되게 하여 나무를 나게 하고 자라게 하고 잎을 피워내게 한다.

이렇게 나무들은 한살이를 이루어나가지만, 한살이가 한 살이로만 끝나지 않는다. 나무는 철의 바뀜을 따라 나고 살고 지기를 거듭하면서 숱한 살이를 이루어나간다. 수십 년, 수백 년의 세월을 두고 거듭되는 시공 속을 살고 있다.

오랜 세월을 안으며 살이를 거듭해가다가 어느 한 세월 앞에서 강대나무가 되었다가 쓰러지기도 하고, 삭아 흙으로 돌아가기도 하지만, 삭아가면서도 많은 미물의 보금자리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땅으로 들면 새 생명이 되어 다시 땅 위로 솟는다.

나무는 철을 잘 맞이하고 잘 보낼 줄 안다. 어느 해 어떤 철이 돌아와도 그 철에 맞추어 척척 잘 맞는다. 싹을 틔우고 잎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잎을 물들이고 그 잎을 땅으로 내려보내는 일을 한 해도, 한 철도 거르거나 그르치는 법이 없다. 매년 그렇게 하는 일을 제 몸에 줄을 그어 새겨두기도 한다.

이렇게 나무는 마치 시간표를 짜놓고 거기에 맞추어 생명 활동을 해나가는 것처럼 여러 철을 되풀이하여 살아가지만, 사람은 어떤가. 오직 한 철밖에는 살지 못한다. 사람의 생애란 움으로 싹터서 자라가다가 마른 잎이 되어 떨어지는 나뭇잎의 한생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나무처럼 수많은 철을 맞이할 것처럼, 영원히 살 것처럼 갖은 욕심을 다 부린다. 더 많은 재물을 안고 싶어 하고, 더 센 힘을 갖고 싶어 하고, 더 큰 즐거움을 누리고 싶어 하고, 더 편하고 유족한 삶을 추구하려 한다.

한 철밖에 살지 못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런 욕심을 부리는 것일까. 살 동안에 더욱 많은 것을 다 누리고 싶은 몸부림으로 그리하는 것일까. 그러면 그것은 삶이 아니라 발악일 뿐이다. 그렇게 악을 쓰며 사는 삶이란 얼마나 고단한 것인가.

인도의 대서사시 바하바라타Mahabharata에서 강인한 영혼인 야크샤Yaksa가 팝다바Papdaba의 최고령자이자 현자인 유디스티라Yudhisthira에게 무엇이 가장 큰 신비인지 물으니, 현자는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데도 살아 있는 자들은 자신들이 불멸의 존재인 것처럼 산다.”라 했다고 한다.

한 철밖에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이 오히려 신비해 보인다는 말이다. ‘신비란 일이나 현상 따위가 사람의 힘이나 지혜 또는 보통의 이론이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신기하고 묘하다는 뜻을 지닌 말이 아닌가.

신비는 한 철 살이 존재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의 우둔을 반어적으로 풍자한 말로 볼 수 있다. 사람이란 그런 존재이기에 이라는 말을 두고 계절이라는 뜻 외에 사리를 분별할 수 있는 힘이라는 뜻이 파생되어 나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그런 뜻을 가지면서 사리를 분별할 만한 자격이 없다.’를 뜻하는 철없다라는 말이 나오고, ‘사리를 분간할 줄 모르다.’라는 뜻을 가진 철모르다라는 말도 생겨났다. 영어에서도 ‘unseasoned man’이라는 말로 철없는 사람을 일컫는다고 한다.

아직 사리를 분별할 힘을 가질 수 있는 연륜에 이르지 못한 어린아이들에게 철없다라고 하면 세상의 때가 묻지 않아 순진하다.’는 뜻으로도 볼 수 있지만, 삶의 연륜과 경륜을 제법 쌓았으면서도 철없고 철모르는 사람이 없지 않은 것 같다.

세상에는 사리 분별을 잘못하여 남도 자신도 나락에 빠지게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욕심을 절제하지 못해 축적한 부와 명예를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뜨리는 사람들을 철 알고 철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는가. 나아가 한 나라를 불행에 빠뜨리는 사람은 또 어떤가.

남의 일만 말하고 있을 처지가 아니다. 나는 과연 철을 제대로 가지고 철을 잘 아는 사람으로 살고 있는가. 돌아보면, 나도 한생을 철모르고 철없이 살아온 것 같다. 하는 일마다 온통 실수와 시행착오가 붙어 다녔다. 그 때문에 많은 상처를 심신에 새기기도 하고, 그런 나로 인해 나의 상처에 못지않은 아픔을 느꼈을 이들도 적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런 지난날을 떠올릴 때면 얼굴은 제 빛깔을 잃는다.

지금은 철이 들어 그 철 잘 지키며 살고 있는가. 살아가는 일에 간난과 불편이 떠나지 않는 걸 보면 아직도 철을 잘 모르고 살고 있는 것 같다. 더구나 그런 나를 바라며 원망을 쌓고 있는 이를 보면서도, 그 원망 삭혀주지 못하고 있는 걸 보면 철이 많이도 모자라는 것 같다.

무엇 때문일까. 모든 일에 겸허하지 못한 오만과 교만 때문일까. 몸과 마음에 차 있는 욕심과 허영 때문일까. 제 하는 일을 옳게만 여기는 이기와 위선 때문일까. 어쩌면 그런 모든 것을 과감히 떨쳐내지 못하는 미련과 집착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산을 오른다, 제철을 잘 아는 나무가 살고 있는 산을 오른다. 나무에 기대어 본다. 얼마를 더 살아야 철을 가진 삶을 살 수 있을까. 나무를 쓰다듬어 본다. 철을 제대로 아는 내 삶은 어디에 있는가. 이 나무는 알까. 내 철의 행방을-.(2021.11.17.)

                                                                      

 

저 눈부신 가을 속으로
-제9회 구미낭송가협회 시낭송콘서트를 마치고

 

아직도 코로나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기약해놓은 콘서트 날짜는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다. 무대 하나를 만든다는 것이 하루 이틀에 될 일도 아닌데, 어디 가서 어떻게 갈고 닦아야 하나. 몇 사람이든 모이기나 할 수 있을까.

가을쯤이면 좀 나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와 함께 봄부터 계획을 세웠다. 올해가 우리 낭송협회가 창립 10주년을 맞는 해이기도 해서 어느 해보다도 뜻은 각별했다. 경북문화재단에 신청했더니 보조금도 조금 나왔다. 그 가을을 기대하며 콘서트를 향해 나아갔다.

코로나의 목숨이 아무리 끈질겨도 가을은 찬연하게 눈부실 것이다. 우리가 눈부시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시를 향한 열정이 있기에 우리의 가을은 눈부시게 찬연할 것이다. 그 아름다움을 향해 합송, 윤송, 듀엣 낭송, 시 퍼포먼스, 낭독, 시극 등으로 팀을 나누어 성음을 가다듬어 나갔다.

팀별로 어느 회원댁의 거실, 공원 한쪽 자리며 야외무대, 도서관 빈 강의실 등 사람이 적은 곳을 찾아다니며, 방역수칙을 지키면서도 비밀결사를 하듯 어렵게 연마해나가야 했지만, 그럴수록 열정은 뜨거워져 갔다. 그렇게 닦아 나갔던 시간들을 모두 모으면 수백 시간은 족히 될 것 같다.

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 무대를 어렵게 얻었다. 오후 4시부터 시작되는 콘서트를 앞두고 아침부터 다 모였지만, 회관의 방역 지침에 따라 11시부터 리허설 무대에 설 수 있었다. 몇 시간 후에 펼쳐질 무대를 위하여 가득한 청중 앞에 선 것처럼 열정을 태웠다. 그렇게 애태우던 시간들이 흘러 드디어 객석이 우리 앞에 놓였다.

이백 석 정도의 계단식 객석이 무대를 내려다보고 있다. 앞 두 줄은 비우고 한 자리씩 띄어 앉은 50여 명의 마스크 관객이 앉아 있다. 초대도 할 수 없는 처지에서 알음알음 찾아온 관객이다. 가득 찬 청중 대신에 우리의 모습과 소리를 모두 담아낼 카메라의 눈빛이 무대를 뜨겁게 쬐어 온다. 무대를 영상에 담아 유튜브를 통해 더 많은 관객에게 시 낭송의 아름다움을 선사하기 위해서다.

2021116일 오후 4. 봄여름을 닦아 왔던 목소리를 풀어놓을 시간이다. 우람한 징 소리와 함께 거문고 연주자가 차려 놓은 악기 앞에 앉으면서 청아하면서도 박진감 있는 거문고 선율이 눈부시게 무대를 연다. 청중의 박수 소리로 연주가 끝나면서 사회자가 등장하여 콘서트의 시작을 알린다.

<저 눈부신 가을 속으로>라는 주제로 무대를 열어나가겠다는 멘트와 함께 여는 시순서로 오늘의 주제 시인 박정만 시인의 저 가을 속으로를 낭송할 회장님을 소개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 눈부신 꽃잎만 던져놓고 돌아서는 / 들끓는 마음속 벙어리같이……맑고 고운 목소리가 무대를 울려 나가며 관객도 출연자도 모두 눈부신 가을 속으로 들 채비를 한다.

먼저 당신께 드리고 싶습니다라는 주제로, 자식을 사랑으로 껴안는 시인인 회장님의 시 내 삶의 햇살, 어머니 사랑을 기리는 이채 시인의 어머니께 드리는 가을 편지가 듀엣 낭송으로 펼쳐진다. 노련미가 돋보이는 회원과 중년의 원숙미를 지닌 회원이 등장하여 마치 다정한 모녀간 같은 모습으로 눈도 가슴도 설레게 시를 풀어나간다.

여고생 차림의 네 회원이 박수 속에서 등장한다. ‘바람이 맛있어요를 주제로 기다려주기(박소영), 가을 나뭇잎(강만영), 바람이 맛있어요(구은주), 내가 살고 있어서(정석영) 등의 동시를 서로 주고받으며 어린아이 표정과 몸짓과 함께 합송으로 엮는다. 관객은 한순간 모두 순진한 동심의 세계로 젖어 든다.

수필 낭독이 이어진다. 이일배 수필가의 수필 산을 걷는다를 작자와 여회원이 목소리를 모아 낭독한다. 가을 산을 걸으며 삶과 죽음의 문제를 사색하는 내용이 정감에 젖은 음성을 타고 객석으로 울려 나간다. 그 울림 속으로 관객이 깊게 빠진다.

잠시 쉬어갈 시간이다. 테너 성악가가 등장하여 가을을 눈부시게 하는 노래 두 곡을 맑고도 우렁찬 목소리로 들려준다. 가을이 점점 눈부시게 익어가고 있다.

네 회원이 등장하여 님의 노래를 주제로 김소월을 가르치다 보면(곽재구)을 중간중간 섞어 가며. 소월 시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풀 따기, 초혼, 님의 노래를 때로는 개울물 같고 가랑잎 같은 잔잔함으로, 때로는 시 두루마리를 휘날리며 격정적인 춤사위로 퍼포먼스를 엮어낸다. 이 무대가 끝나면 모든 기운이 다 소진될 듯 가진 정열을 모두 태워버린다. 출연자들이 함께 끝인사를 하자 관객 수보다 훨씬 큰 박수 소리가 객석을 휘덮는다.

다시 조용한 가을로 돌아온다. 회장님을 비롯한 네 회원이 등장하면서 가을 편지를 주제로 가을 편지(나호열), 꽃씨(문병란), 가을에(정한모), 즐거운 편지(황동규), 혹은 깊은 사색에 젖는 듯, 혹은 조용한 기도에 드는 듯, 혹은 그리움을 향해 달려가는 듯 홀로 혹은 서로 주고받으며 윤송으로 풀어낸다. 가을이 한층 눈부셔지는 듯했다.

회장님이 다시 등장한다. 시의 정감에 흠뻑 젖어 있는 관객을 향해 잘 감상하고 계시냐며, 우리가 건너야 할 코로나의 강은 남았지만, 협회 창립 10주년을 기념하고 싶다며, 그래서 이 가을을 눈부시게 만들고 싶다며 인사한다. 이어 오늘의 귀빈이자 회원이신 경북교육청 임종식 교육감을 소개한다.

시 울림이 있는 학교를 교육 시책으로 삼고 있는 임 교육감께서는 낭송의 아름다움에 대한 예찬의 인사와 함께 흔들리며 피는 꽃(도종환)을 부드럽고도 의지에 찬 목소리로 무대를 감싼다. 때로는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아름다운 꽃을 피워야 할 것을 간곡하게 이른다.

오늘의 마지막 순서, 모두가 기대하는 시극 순서다. 이일배 수필가가 가수이기도 한 어느 회원의 파란 많았던 삶을 수필로 쓴 당신 함께 가는 길을 연극에 조예가 깊은 부회장이 시를 넣어 각색하고, 음악 전공 회원이 음악을 넣어 만든 극이다. 그 가수 회원의 삶을 소재로 원작자가 가사를 쓰고 음악 회원이 곡을 붙여 노래로도 만들었다.

그 삶의 주인공인 가수 회원을 비롯한 한 세 사람의 출연자가 시 낭송과 함께 구성진 연기로 엮어나가며 그 삶을 노래한 곡이 나오기까지의 사연을 풀어간다. 마지막에 가수 회원과 작곡자가 함께 노래 부르는 장면에서 관객들은 마치 깊은 늪 속으로 드는 듯하다가 극이 끝나자 함성과 함께 해일 박수가 터졌다. 관객 속에는 주인공 가수의 가족도 있었다. 그들은 눈물로 박수를 모았을지도 모른다. 이 무대가 가을을 더욱 눈부시게 했다.

이제 관객들과 함께 호흡하는 피날레 순서다. 음악 회원의 기타와 함께 바램(노사연), 가을은 참 예쁘다(박강수)를 함께 부르는 싱얼롱, 기타 반주에 맞추어 무대와 객석이 함께 노래하며 오늘 콘서트의 뜻을 다시 새긴다.

마지막으로 모든 회원이 나와 관객이 손뼉으로 맞추는 박자를 타며 구미낭송가협회 노래를 제창한다. “……따뜻한 삶을 위해 정겨운 세상을 위해 좋은 시 찾아가는 구미낭송가협회~” 회원들은 노래를 부르며 깊은 감회와 뿌듯한 자긍에 젖는다.

출연자들이 손을 흔들고 관객들이 일어선다. 이 가을은 참으로 눈부셨다. 아름다운 시와 노래가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눈부셨다. 거기에 더해진 낭송을 향한 회원들의 사랑과 열정이 더욱 눈부시게 했다. 그 눈부심을 안고 예술회관을 나선다. 가로수의 꾀꼬리단풍이 축복처럼 발길 위에 얹힌다. 그렇게 우리의 가을은 눈부시게 깊어갔다.(2021.11.8.)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가을이 여물어가는 강둑을 걷는다. 강물은 언제나 반짝이는 윤슬로 무늬를 새기며 쉼 없이 흘러가고 있다. 유유하게 흘러가는 강물을 배경 삼아 서 있는 둑의 벚나무는 화사했던 지난날꽃 시절을 뒤로 한 채 머리에서부터 붉은 물을 들여가고 있다.

억센 줄기로 벚나무를 힘차게 기어오르던 칡넝쿨은 한풀 꺾인 듯 넓은 잎을 추레하게 늘어뜨리고 있고, 길섶을 온통 제 세상으로 만들던 환삼덩굴도 기가 한껏 죽었다. 길쭉한 꽃대 위에 노란 꽃을 해맑게 피워내던 달맞이꽃도 머리를 수그린다.

그 꽃대에 가느다란 넝쿨을 감아올리며 빨간 꽃을 앙증하게 피워내던 둥근잎유홍초는 져가고 있지만, 산국이 줄기를 서로 기대며 조그만 꽃잎 속에 노란 미소를 담아내고 있다. 보라 쑥부쟁이도 하늘거리며 해맑은 눈짓을 날리고 있다.

대지를 온통 푸름으로 덮었던 철이 지나가면서, 이울 것은 이울어 가고 피어날 것은 이리 피어나고 있다. 처음 보는 풍경은 아니다. 이맘때가 되면 지난해에도 지지난해에도 펼쳐지던 풍경이었다. 무엇이 저렇게 해마다 같은 풍경을 만들어 내는가.

마치 잘 짜놓은 정류장의 발차 시각표처럼, 교실의 학습 시간표처럼 언제나 어느 때나 변함없는 일들이 되풀이되고 있다. 다시 그런 해가 오고 그런 계절이 오고 그런 달이 오고 그런 날이 온다. 그래서 우리는 늘 해를 보내야 하고 달을 맞이해야 한다.

그런 시각표, 시간표는 누가 어떻게 만들어 무한 반복하게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한번 짜놓은 이것들은 아주 견고하게 고정되어 있는 것 같다. 그 굳센 틀 속에서 세상이 흘러가고 있다. 이 틀이 바로 자연이요, 그 이치인지도 모르겠다.

시계가 시간을 가리키며 돌고 있는가. 그 시계의 시간이라는 것, 그것은 인간이 억지로 나누고 갈라 구분 지어 놓은 것일 뿐이다. 해와 달이 뜨고 지면서 낮과 밤이 새고 바뀌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오가면서 꽃과 잎이 피고 지고 할지언정 시간이라는 게 과연 있는가.

과학자의 계산에 의하면 1년은 3655시간 4916초라 한다. 시간이라는 게 있었다면 왜 이렇게 아귀가 맞지 않는 계산이 나오는 건가. 그래서 어느 해는 365일도 되고 366일도 되고 하는 건가. 시간이 존재하는 거라면, 어렵게 계산하지 않아도 딱 떨어져야 하지 않는가.

그런 계산과는 아랑곳없이 해와 달과 날이 바뀌어 간다. 이 우주 지구 어디, 어느 날은 해가 오래 머물기도 하고, 어느 밤은 달이 길게 빛을 드리우기도 한다. 그래서 어느 날, 어디는 몹시 덥기도 하고 매우 춥기도 한다. 그런 것도 시간을 따라 그렇게 되는 건가.

모든 것은 변해간다. 만물은 태어나 장성해 가기도 하고, 늙고 병들어 죽어가기도 한다. 꽃이 피고 잎이 피고 열매 맺다가 꽃도 잎도 져가기도 한다. 열매가 땅속에 들어 다시 꽃으로 잎으로 피어난다. 시간이야 있든 없든 세상은 이리 변해간다.

시간과는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우리가 사는 일들이 과연 시간과 관계가 있는가. 시간이란 게 필요하여 부른다고 달려오던가, 있는 시간이 거추장스러워 가라니 가던가. 와 있는 시간이 긴요하여 머물러 달라니 있어 주던가. 그런 시간의 모습을 본 적이 있기나 한가.

강물이 흘러가고 있다. 흐르다가 웅덩이를 만나면 잠시 머물긴 해도 넘어서면 다시 유장하게 흘러 흘러간다. 강둑의 나무도 풀도, 그 강물과 나무와 풀의 길을 걷고 있는 나도, 언제나 쉼 없이 흘러가는 저 강물처럼 흘러갈 뿐이다. 그냥 변해 갈 뿐이다.

그렇게 흘러가다가 어디 앉을 곳을 만나면 잠시 앉기도 하고, 주막을 만나면 잔을 기울이기도 하면서 흘러간다. 그렇게 흘러가다가 누울 곳을 만나면 누웠다가 영원한 잠에 들면 깊게 자면 된다. 그 흐름에 어찌 시간이며 무엇이 있다는 말인가.

노자도 만물은 저절로 변해 간다.(萬物將自化, 道德經 第37)’고 했다. 저절로 흘러가고 변해가는 것이 만물일 바에야 무슨 큰 욕심을 가질 일이 있을까. 노자도 욕심을 전혀 모르진 않았던 모양이다. ‘저절로 달라지는데도 무슨 욕심이 생기면 무명의 질박한 도로 이를 누른다.(化而欲作 吾將鎭之以無名之樸)’고 했다.

욕심이 일 때는 마음을 순박하게 가다듬는다는 말이겠다. 누가, 무엇이 조화를 부려서 변해가는 것도 아닌 바에야 발버둥 치면 무얼 하고 안간힘 쓰면 어찌하겠다는 말인가. 노자는 또 욕심 없이 고요하게 있으면 세상이 절로 안정될 것이다. (不欲以靜 天下將自定)’라고도 했다.

하기야 누구나 다 노자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거저 범속하게 살다 보면 욕심에도 빠지게 되고, 그러다가 화를 당하기도 마련인 게 범인의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엇의 힘으로 우리가 변해가는 게 아니라 절로 변해간다는 것을 알고 살긴 해야겠다. 무엇의 힘이라면 주로 시간의 힘이라 여겨질 터이지만, 시간을 본 이가 있는가.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이 세상에 우리를 변화시키며 흘러가고 있는 시간이란 어디에 있는가. 아니, 흐를 수 있는 시간이라는 형체가 있기나 한 건가. 만물은 절로 변해간다. 우리가 어떤 욕심을 가져도 세상은 거저 변해간다.

우리는 그냥 흘러갈 뿐이다.(2021.10.21)

                                                                      

 

산의 얼굴

 

오늘도 산을 오른다.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늠름하고, 산자락에 안긴 나무들은 언제 보아도 생기롭다.

나무는 늘 몸을 바꾸어 가면서 생기를 돋우어 간다. 지금은 한껏 푸르던 시절을 조금씩 넘어서고 있지만, 그렇다고 생기가 달라지는 지는 것은 아니다. ‘생기란 무엇인가. 싱싱하고 힘찬 기운이기도 하지만, 바로 생명 활동이 아니던가.

더없이 무성했던 저 나무의 잎새들은 노랗고 빨간 물로 치장하다가 된바람 불어오면 또 하나의 제자리인 땅으로 내려앉을 것이다. 나무는 맨 가지만 남아 설한풍을 이겨 내야 하지만, 그때야말로 나무에게는 새로운 삶을 위한 부푼 꿈의 시간이다.

잎새가 내려앉은 땅이란 무엇이고 어디인가. 산이고 그 살갗이다. 나뭇잎은 산의 살갗 속으로 스며들었다가 하늘 맑고 물길 좋은 때가 되면, 다시 나무의 줄기를 타고 세상으로 오른다. 잎도 되고 꽃도 되고 열매도 된다.

다시 태어난 잎이며 꽃을 단 나무는 그 모습이 한층 새로워진다. 몸피도 조금은 불어난 것 같고, 새로운 꽃과 잎이 제 몸을 한결 단아하게 해주는 것 같다. 나무의 생기는 더욱 삽상해진다.

나무는 이제 잎을 점점 크게 피워가다가 무성한 녹음을 이루고, 꽃을 피웠던 자리에는 탄실한 열매를 달 것이다. 새들이 오면 그들의 놀음 자리가 되고, 뭇 짐승이 깃들면 포근히 안아 주고, 지친 인간들이 오면 푸근한 그늘을 드리워 줄 것이다.

나무에 잎이 돋고 꽃이 피고 돋은 잎이 무성해지고, 색색 빛깔을 물들이다가 다음 시절을 기약하며 땅으로 내려앉고, 그사이에 가지는 더욱 튼실해지는 새로운 날을 꿈꾸고……. 이런 활발한 생명 활동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산이다. 산이 그 생기를 돋우어주고, 그 꿈을 꾸게 해준다. 산이 그들에게 자양을 주어 살 수 있게 해주고, 품어 안아 주어 꿈을 꿀 수 있게 해준다. 그들에게 새도 날아오게 해주고 바람도 쉬어가게 해준다. 산이 아니면 무엇이 그렇게 하겠는가.

그렇지만 산은 아무 말이 없다. 산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다. 눈이 내리면 눈을 맞고 비가 오면 비에 젖고, 바람이 불면 품어 줄 뿐, 아무것도 변하는 게 없다. 산의 얼굴은 언제나 그 모습 그 모양 그대로다.

나무를 향하여 내가 너를 낳았노라.’고 하지도 않고, 그리하여 너는 나의 것이다.’라고는 더욱 말하지 않는다. 그냥 바라볼 뿐이다. 아니, 비라 본다는 생각조차 없다. 노자가 이런 산의 모습을 본 것 같다. 말씀이 그렇다.

성인은 무위로써 일을 처리하고, 말로 하지 않는 가르침을 행한다. 만물을 만들어 내지만, 내가 만들었다고 말하지 아니하고, 생기게 하고도 가지려 하지 않는다.(聖人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萬物作焉而不辭 生而不有, 道德經2)”

꼭 산을 두고 한 말씀 같다. 성인이 하는 일에는 아무런 욕심이 없다. 자기가 한 일에 대해 굳이 내색이나 생색을 내려 하지도 않는다. 무엇을 이루었다 해도 자기 것이라고 여기지도 않는다. 여기서 성인은 자연이라 해도 좋고, 산이라 해도 무방하다.

세상이 한창 시끄럽다. 조그만 일을 해놓고도 아주 큰 일을 한 것처럼 떠벌린다. 아무 일을 하지 않고서도 많은 일을 한 것처럼 내세우기도 한다. 좋은 일이면 어떤 일이든 자기를 주장하기 바쁘고, 좋지 않은 일이면 자기가 하고서도 발뺌하기 급하다.

세상에서 자기가 가장 잘났다. 남의 잘난 모습을 그냥 두고 볼 수 없다. 어떻게든 깎아내려야 한다. 자기의 모습은 별 게 아닐지라도 어떻게든 훌륭하게 보이도록 잘 꾸며야 한다. 친한 이도 득이 되지 않으면 과감히 내쳐버린다.

그 세상의 표정은 시시로 바뀐다. 웃었다가 울기도 하고, 화평한 체하다가 불같이 화를 돋운다. 성자인 척하다가 순식간에 악마가 되기도 한다. 이름에 빛이 좀 들게 했다가도, 그 이름을 순식간 시궁창에 쑤셔 박기도 한다.

우리의 산은 어디에 있는가. 무엇을 해도 욕심 없이 하는 산, 무엇을 이루고도 제 공이라 하지 않는 산, 제가 이루고도 제 것이라 하지 않는 산. 아니 그렇게 하고서도 그 얼굴에 표정을 바꾸지 않는 산, 표정을 바꿀 줄 모르는 산.

누굴 향해 무얼 바라랴. 시시로 웃다간 울고, 시시로 폈다간 일그러지고, 시시로 난 척하다가 찌그러지는 내 얼굴이 아니던가. 그러고서 그 산 어찌 바라고 싶다 하랴.

그래서 오늘도 산을 오른다. 산의 고요에 다시 안긴다.

하루 종일 아무 말도 안 했다 / 산도 똑같이 아무 말을 안 했다 / 말없이 산 옆에 있는 게 싫지 않았다 / 산도 내가 있는 걸 싫어하지 않았다 / 하늘은 하루 종일 티 없이 맑았다 (산경(山景)도종환)

이런 산을 위하여, 오늘도 산의 고요 속으로 걸음을 옮긴다.

                                                                     

 

어느 무덤

 

어느 날 산을 오르는데 나란히 자리 잡은 두 무덤이 보였다. 어느 산에나 무덤은 많이 있고, 내외가 나란히 누운 쌍분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지만, 그날 본 그 무덤은 뇌리에서 쉽게 떠나지 않은 까닭이 무엇일까.

죽죽 뻗은 소나무 숲속 비탈에 땅을 잘 골라 봉분도 반듯하고 둥그스름하게 잘 다듬어 놓았다. 크기도 작지 않은 묘가 보존도 잘 되어 있고, 마른 잔디 위에 솔잎들이 정갈하게 덮여 있었다. 잡풀도 많이 나 있지 않아 말끔해 보이기까지 했다.

산소를 쓸 때만 해도 후손들이 범절을 고루 갖추어 조상을 잘 모시려고 애쓴 것 같다. 봉도 보기 좋게 짓고 주변도 잘 정리해 놓았다. 제법 지체 있는 집안의 산소에 후손들도 다 덩실할 것 같았다.

봉분이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로 보면 산소를 쓴 지 그리 오래지 않아 보인다. 아니다. 수십 년은 훨씬 넘게 지난 것 같다. 봉우리를 비롯한 봉분 몇 곳에 굵고 큰 소나무가 곧게 뻗어 있다. 나이테 지름이 어림잡아 한 뼘은 훨씬 넘을 것 같아 수령들이 십수 년, 더 나아가면 수십 년은 족히 될 듯하다.

묘 위에 일부러 나무를 심을 까닭은 없을 터이고, 솔 씨가 떨어져 싹이 터서 줄기가 나고 잎이 돋아 저토록 크게 되었을 것이다. 나무가 움이 나 저리 자랄 때까지 후손들이 전혀 돌보지 않은 것 같다. 어느 시기에서 발길마저 뚝 끊었을지도 모르겠다.

장례 후로 참배를 이어갔다면, 이 산소의 역사는 그 참배 기간과 저 나무의 나이를 보탠 만큼의 시간을 품고 있을 것이다. 이래저래 그 산소는 꽤 오래된 세월을 안고 있는 것 같다. 못되어도 반세기 이상은 되어 보인다.

그 세월 속에서도 봉분이 이지러지지도 않고, 그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다. 망자의 복인가, 후손의 덕인가. 명당을 잘 가려 묘를 썼기 때문인가, 우거진 숲과 지형이 잘 지켜 준 덕분인가. 그 후손은 지금 어찌 되어 있을까.

모든 것이 덧없고 허망하다. 복이 있으면 무얼 하고, 덕이 좋으면 저리되었을까. 명당이면 무얼 하고, 잘 지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