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은 가을 구월로 바뀌었지만, 여름 숲이 여전히 무성하던 2023년 9월 2일 토요일 오후 4시, 열한 번째 시 낭송 콘서트가 「시의 숲에 당신이 왔습니다」라는 주제를 걸고 지역 문화회관 무대에서 펼쳐졌다.
그 무대를 위해 ‘당신’이 찾아올 숲을 가꾸어야 했다. 생강나무 꽃이 겨우 움이 틀 이른 봄부터 회장을 비롯한 몇 사람들은 그 나무 심기 고민에 나섰다. 어떤 묘목을 어떻게 구해 어떻게 심고 가꿀까. 묘목이란 시고, 가꾸기는 프로그램 밭에서의 연마일 터이다.
독송, 합송, 윤송, 시 퍼포먼스, 시극 나무에 시와 가까운 수필 낭독 나무에다가 어린이 청소년 낭송 꿈나무도 가꾸기로 했다. 나무를 심고 물을 주고 북돋우어 주어야 했다. 좋은 묘목을 고르는 일도 쉽지 않았지만, 정성 들여 가꾸기는 더욱 힘이 들었다.
팀별로 나누어진 낭송 나무들은 함께 가꾸어 나가기 위해 아침 이른 시간도, 해 질 녘 어스름도 마다치 않았다. 어느 마을 정자도 좋고, 도서관 강의실도 괜찮고, 때로는 야외 공연장도 찾아서 어디서든 함께 만나 꾸준한 연찬으로 기량을 닦아 나갔다.
유창한 낭송과 함께 적절한 동작이 동반될 때 낭송의 운치가 한층 살 수 있다. 특히 시 퍼포먼스와 시극은 단순한 몸짓을 넘어 시의 흐름과 함께할 열정적인 연기도 곁들여야 한다. 그 구성과 안무 때문에 몇 날 며칠을 두고 고민도 토론도 치열하게 해야 했다.
그사이에 봄이 흐르고 여름이 갔다. 나무들은 쑥쑥 자라났다. 드디어 성목이 된 낭송 나무들이 무대에서 숲을 이룬다. ‘당신’들이 모여든다. 따뜻한 발길로 찾아온 ‘당신’을 향해 꽃과 잎이 활짝 핀 숲을 이룬다. 시의 숲 향연이 펼쳐진다. 얼마나 고대하던 이 날 이 무대였던가.
프롤로그 오프닝 사운드로 트럼펫, 비올라 부부 연주가가 등장하여 잔잔하고도 정감 깊은 선율을 수놓는 것으로 무대의 개막을 알린다. 객석이 고요해진다.
그 고요 위로 협회 고문이신 전 회장이 「오늘의 약속」(나태주)을 낭랑하게 풀어내며 등장한다. 푸른 드레스 가슴에 핀 붉은 장미가 눈길을 잡는다. “남의 이야기, 세상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해요 / 우리들의 이야기, 서로의 이야기만 하기로 해요……” 그랬다. 오늘 우리는 세상사 다 제쳐 두고 시의 숲만 만들기로 한다. 현란한 박수 소리가 객석을 메운다.
사회자가 「그리운 이름 하나」를 주제로 하여 펼쳐지는 합송 무대를 소개하자 한 회원이 객석에서부터 천천히 걸어 「그 숲에 당신이 왔습니다」(김용택)를 읊조리며 울창한 숲이 우거진 무대의 영상 속으로 든다. 세 회원이 「참 좋은 당신」(김용택), 「야생화」(구은주), 「가보지 못한 골목길」(나태주), 「그리운 이름 하나」(용해원)를 앙상블을 이루어 낭송하면서 등장하여 분위기에 어울리는 몸짓과 함께 그리운 이름을 새겨나간다. 참 좋은 내 그리운 당신은 어디에 있을까. 객석의 어떤 이는 가슴에 조용히 손을 얹기도 한다.
회장이 오늘의 콘서트를 즈음한 인사를 한다. ‘제각기 서 있는 나무가 숲을 이루며 살아가듯이 우리도 따뜻한 인정을 나누며 더불어 살아가기를 소망한다.’라며 마치 한 편의 서정시를 낭송하듯 정겹게 인사한다.
박수 소리를 헤치면서 청바지 차림의 네 남자가 등장한다. 경상도와 전라도 사투리로 엮은 「아, 모구장 깃티마다 공가 놓곤 했던 그 대지배와 사발들은 지금쯤 어데 가 있을낑공?」(상화구), 「한 수 위」(복효근)를 사투리 구수한 맛을 살려가며 코믹하게 낭송하자 객석에서는 시낭송 콘서트에서는 이례적이라 할 웃음보가 터진다. 관객들에겐 신선한 체험일지도 모른다.
웃음소리들을 딛고 어린아이 둘이 아장아장 걸어 나온다. 4학년, 1학년 남매가 나와 「꽃」(정여민), 「풀꽃」(나태주)을 앙증스러운 목소리로 낭송한 데 이어 「모두 다 꽃이야」(류형선 사·곡)을 해맑게 부른다. 관객들의 박수 소리가 어느 때보다 커진다. 오늘 시의 숲 꿈나무들이다.
네 사람의 여회원이 등장하는 윤송 순서로 이어진다. 「가정」(박목월), 「얼굴 반찬」(공광규), 「엄마의 회초리」(길영수), 「나의 어머니」(신달자) 등의 시구절들을 극적인 연출로 주고받으며 가정, 가족의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무대에 준비한 소품과 시의 분위기를 살린 출연자들의 의상이 시의 정감에 더욱 깊숙이 젖게 한다. 배경 영상은 모든 무대에서 그렇듯, 시의 배경을 실감 나게 재현해 주고 있다.
잠시 쉬어 가는 순서, 기타 연주자가 나와 연주와 함께 「푸르른 날」(서정주 시), 「사람들」(한돌 사)을 불러 무대의 전환을 알린다.
다음은 조지훈의 시로 구성한 오늘 무대의 하이라이트, 시 퍼포먼스 순서다. 날렵하면서도 우아한 아우라를 풍기는 의상의 두 여 회원이 달려 나와 춤사위를 펼치는 것으로 열린 무대는 남 회원의 몸짓과 함께 「풀잎 단장」 낭송으로 이어진다. 다섯 출연자 모두 등장하여 낭송하는 「절정」으로 옮겨가며 유장하고도 격정적인 춤사위와 더불어 퍼포먼스도 절정에 이른다. 서서히 하강하여 「아침」에 이르고, 꽃 지는 춤사위와 함께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를 애틋한 목소리로 합쳐내면서 끝난다. 잔뜩 숨을 죽이고 있던 객석에서는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진다. 울고 싶은 감동으로 끝을 맺은 찬란한 무대였다.
시 낭송 교육에 관심이 많은 임종식 교육감께서 특별 출연하여 「내가 사랑하는 사람」(정호승)을 온화한 목소리로 낭송한다. 교육감께서 각별히 사랑하는 사람은 이 땅의 모든 학생일 것이다. 콘서트가 끝나고 함께 출연한 꿈나무들을 정겹게 다독여 주기도 했다.
조금은 자란 꿈나무 순서다. 남녀 중학생 두 명이 등장하여 「별 헤는 밤」(윤동주)과 「나룻배와 행인」(한용운)을 제법 물이 오른 목소리로 낭송한다. 장차 무성한 숲의 우람한 나무가 될 재목들이다.
수필 낭독 순서로 이어진다. 출연자 수필가의 자작 수필 「외로움과 고독」(이일배)을 사회자와 함께 윤독해 나간다. “고독할 때 마시는 술은 달금할 수도 있지만, 외로울 때 드는 술잔은 쏟아버리고 싶을 수도 있다…….”며 차분한 목소리와 맑은 음성이 조화를 이루어 고독과 외로움의 다른 모습들을 애틋하게 그려나간다. 관객들은 한껏 숨을 죽인다.
마지막 무대 시극이다. 시극 연출 전문가 부회장의 연출과 출연으로 두 여회원과 함께 엮어나간다. 세상살이의 한 단면을 그린 「가위바위보 세상」(김윤현)으로 시작하여 「가을」(함민복), 「섬」(정현종) 등 짧은 시 몇 편을 주고받으며 시의 흐름을 드라마틱하게 꾸민다. 「나 하나 꽃피어」(조동화)로 끝을 맺으며 시의 꽃을 한껏 피워내고는 관객들에게 인사를 할 때 장내는 환호의 도가니로 끓는다.
피날레 순서로 음악가 회원이 「아름다운 세상」(박학기)을 선창하자 아름다운 세상이 바로 여기라는 듯 관객들도 모두 따라 부른다. 출연 회원, 스태프진들이 모두 나와 ‘아름다운 시 외며 사는 행복’을 담은 협회가를 제창하며 관객을 향해 손을 흔들자 관객들도 일어서며 환호의 손길을 보낸다. 출연자와 관객들이 함께 기념촬영을 하는 것으로 모든 순서가 끝났다.
숲을 찾아와 그늘을 한껏 향유하던 ‘당신’들은 모두 돌아가고 숲만 남았다. 무성한 숲만 그대로 무대에 우거졌다. 숲은 영원히 무대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곧 단풍이 들고 낙엽이 지고 맨살의 성찰을 거쳐 다시 봄여름을 맞을 것이다. 더욱 싱그럽고 무성한 숲을 이룰 것이다.
‘당신’은 그 숲을 다시 찾아올 것이다. 더욱 향기로운 숲의 그늘은 언제나 사랑하는 당신을 맞을 것이다.
오늘 우리 시의 숲에 온 당신, 그 숲 아늑한 향기 속에서 다시 해후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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