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의 얼굴

 

오늘도 산을 오른다.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늠름하고, 산자락에 안긴 나무들은 언제 보아도 생기롭다.

나무는 늘 몸을 바꾸어 가면서 생기를 돋우어 간다. 지금은 한껏 푸르던 시절을 조금씩 넘어서고 있지만, 그렇다고 생기가 달라지는 지는 것은 아니다. ‘생기란 무엇인가. 싱싱하고 힘찬 기운이기도 하지만, 바로 생명 활동이 아니던가.

더없이 무성했던 저 나무의 잎새들은 노랗고 빨간 물로 치장하다가 된바람 불어오면 또 하나의 제자리인 땅으로 내려앉을 것이다. 나무는 맨 가지만 남아 설한풍을 이겨 내야 하지만, 그때야말로 나무에게는 새로운 삶을 위한 부푼 꿈의 시간이다.

잎새가 내려앉은 땅이란 무엇이고 어디인가. 산이고 그 살갗이다. 나뭇잎은 산의 살갗 속으로 스며들었다가 하늘 맑고 물길 좋은 때가 되면, 다시 나무의 줄기를 타고 세상으로 오른다. 잎도 되고 꽃도 되고 열매도 된다.

다시 태어난 잎이며 꽃을 단 나무는 그 모습이 한층 새로워진다. 몸피도 조금은 불어난 것 같고, 새로운 꽃과 잎이 제 몸을 한결 단아하게 해주는 것 같다. 나무의 생기는 더욱 삽상해진다.

나무는 이제 잎을 점점 크게 피워가다가 무성한 녹음을 이루고, 꽃을 피웠던 자리에는 탄실한 열매를 달 것이다. 새들이 오면 그들의 놀음 자리가 되고, 뭇 짐승이 깃들면 포근히 안아 주고, 지친 인간들이 오면 푸근한 그늘을 드리워 줄 것이다.

나무에 잎이 돋고 꽃이 피고 돋은 잎이 무성해지고, 색색 빛깔을 물들이다가 다음 시절을 기약하며 땅으로 내려앉고, 그사이에 가지는 더욱 튼실해지는 새로운 날을 꿈꾸고……. 이런 활발한 생명 활동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산이다. 산이 그 생기를 돋우어주고, 그 꿈을 꾸게 해준다. 산이 그들에게 자양을 주어 살 수 있게 해주고, 품어 안아 주어 꿈을 꿀 수 있게 해준다. 그들에게 새도 날아오게 해주고 바람도 쉬어가게 해준다. 산이 아니면 무엇이 그렇게 하겠는가.

그렇지만 산은 아무 말이 없다. 산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다. 눈이 내리면 눈을 맞고 비가 오면 비에 젖고, 바람이 불면 품어 줄 뿐, 아무것도 변하는 게 없다. 산의 얼굴은 언제나 그 모습 그 모양 그대로다.

나무를 향하여 내가 너를 낳았노라.’고 하지도 않고, 그리하여 너는 나의 것이다.’라고는 더욱 말하지 않는다. 그냥 바라볼 뿐이다. 아니, 비라 본다는 생각조차 없다. 노자가 이런 산의 모습을 본 것 같다. 말씀이 그렇다.

성인은 무위로써 일을 처리하고, 말로 하지 않는 가르침을 행한다. 만물을 만들어 내지만, 내가 만들었다고 말하지 아니하고, 생기게 하고도 가지려 하지 않는다.(聖人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萬物作焉而不辭 生而不有, 道德經2)”

꼭 산을 두고 한 말씀 같다. 성인이 하는 일에는 아무런 욕심이 없다. 자기가 한 일에 대해 굳이 내색이나 생색을 내려 하지도 않는다. 무엇을 이루었다 해도 자기 것이라고 여기지도 않는다. 여기서 성인은 자연이라 해도 좋고, 산이라 해도 무방하다.

세상이 한창 시끄럽다. 조그만 일을 해놓고도 아주 큰 일을 한 것처럼 떠벌린다. 아무 일을 하지 않고서도 많은 일을 한 것처럼 내세우기도 한다. 좋은 일이면 어떤 일이든 자기를 주장하기 바쁘고, 좋지 않은 일이면 자기가 하고서도 발뺌하기 급하다.

세상에서 자기가 가장 잘났다. 남의 잘난 모습을 그냥 두고 볼 수 없다. 어떻게든 깎아내려야 한다. 자기의 모습은 별 게 아닐지라도 어떻게든 훌륭하게 보이도록 잘 꾸며야 한다. 친한 이도 득이 되지 않으면 과감히 내쳐버린다.

그 세상의 표정은 시시로 바뀐다. 웃었다가 울기도 하고, 화평한 체하다가 불같이 화를 돋운다. 성자인 척하다가 순식간에 악마가 되기도 한다. 이름에 빛이 좀 들게 했다가도, 그 이름을 순식간 시궁창에 쑤셔 박기도 한다.

우리의 산은 어디에 있는가. 무엇을 해도 욕심 없이 하는 산, 무엇을 이루고도 제 공이라 하지 않는 산, 제가 이루고도 제 것이라 하지 않는 산. 아니 그렇게 하고서도 그 얼굴에 표정을 바꾸지 않는 산, 표정을 바꿀 줄 모르는 산.

누굴 향해 무얼 바라랴. 시시로 웃다간 울고, 시시로 폈다간 일그러지고, 시시로 난 척하다가 찌그러지는 내 얼굴이 아니던가. 그러고서 그 산 어찌 바라고 싶다 하랴.

그래서 오늘도 산을 오른다. 산의 고요에 다시 안긴다.

하루 종일 아무 말도 안 했다 / 산도 똑같이 아무 말을 안 했다 / 말없이 산 옆에 있는 게 싫지 않았다 / 산도 내가 있는 걸 싫어하지 않았다 / 하늘은 하루 종일 티 없이 맑았다 (산경(山景)도종환)

이런 산을 위하여, 오늘도 산의 고요 속으로 걸음을 옮긴다.

                                                                     

 

어느 무덤

 

어느 날 산을 오르는데 나란히 자리 잡은 두 무덤이 보였다. 어느 산에나 무덤은 많이 있고, 내외가 나란히 누운 쌍분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지만, 그날 본 그 무덤은 뇌리에서 쉽게 떠나지 않은 까닭이 무엇일까.

죽죽 뻗은 소나무 숲속 비탈에 땅을 잘 골라 봉분도 반듯하고 둥그스름하게 잘 다듬어 놓았다. 크기도 작지 않은 묘가 보존도 잘 되어 있고, 마른 잔디 위에 솔잎들이 정갈하게 덮여 있었다. 잡풀도 많이 나 있지 않아 말끔해 보이기까지 했다.

산소를 쓸 때만 해도 후손들이 범절을 고루 갖추어 조상을 잘 모시려고 애쓴 것 같다. 봉도 보기 좋게 짓고 주변도 잘 정리해 놓았다. 제법 지체 있는 집안의 산소에 후손들도 다 덩실할 것 같았다.

봉분이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로 보면 산소를 쓴 지 그리 오래지 않아 보인다. 아니다. 수십 년은 훨씬 넘게 지난 것 같다. 봉우리를 비롯한 봉분 몇 곳에 굵고 큰 소나무가 곧게 뻗어 있다. 나이테 지름이 어림잡아 한 뼘은 훨씬 넘을 것 같아 수령들이 십수 년, 더 나아가면 수십 년은 족히 될 듯하다.

묘 위에 일부러 나무를 심을 까닭은 없을 터이고, 솔 씨가 떨어져 싹이 터서 줄기가 나고 잎이 돋아 저토록 크게 되었을 것이다. 나무가 움이 나 저리 자랄 때까지 후손들이 전혀 돌보지 않은 것 같다. 어느 시기에서 발길마저 뚝 끊었을지도 모르겠다.

장례 후로 참배를 이어갔다면, 이 산소의 역사는 그 참배 기간과 저 나무의 나이를 보탠 만큼의 시간을 품고 있을 것이다. 이래저래 그 산소는 꽤 오래된 세월을 안고 있는 것 같다. 못되어도 반세기 이상은 되어 보인다.

그 세월 속에서도 봉분이 이지러지지도 않고, 그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다. 망자의 복인가, 후손의 덕인가. 명당을 잘 가려 묘를 썼기 때문인가, 우거진 숲과 지형이 잘 지켜 준 덕분인가. 그 후손은 지금 어찌 되어 있을까.

모든 것이 덧없고 허망하다. 복이 있으면 무얼 하고, 덕이 좋으면 저리되었을까. 명당이면 무얼 하고, 잘 지켜주었으면 저 나무들을 저리 나게 하였을까. 그 후손들은 찾아뵙지 못하는 조상을 두고 마음을 졸였을까. 망자는 후손의 소식을 궁금해했을까.

한동안은 마음에 두었을지라도 지금은 그 마음 다 잊었을지도 모르겠고, 모두 이 세상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더구나 지하의 혼령이야 무엇을 알고 느낄 것인가. 저 봉분 저리 크고 둥글면 무얼 하며, 언제까지 저 모습을 지키고 있어야 할까.

어쩌면 비바람에 쓸리고 깎이어 고요한 산비탈로 돌아가 저 나무의 바른 자리가 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저 땅은 애초부터 나무의 터전이 아니었던가. 산에게 나무에게 잠시 빌린 땅일진대, 이내 돌려주어야 할 일 아닌가. 애초에 빌리지 않았더라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노자는 대저 잘 살려고 하지 않는 것이 삶을 귀하게 하려는 것보다 더 낫다.(夫唯無以生爲者 是賢於貴生, 道德經75)”라 했다. ‘잘 살려고 하지 않는 것이란 유위(有爲)의 삶이 아니라 무위(無爲)로 사는 삶을 말하는 것이다. 꾸밈없이 물 흐르듯 무위로 사는 삶이 일부러 귀하게 만들려고 하는 삶보다 낫다는 말이다.

삶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죽음에서랴. 죽고 난 다음에 어찌 둥글고 큰 봉분 짓기를 바랄 것이며, 그 앞에 빛나는 검은 돌 상판이며 깊게 새긴 휘()는 왜 있어야 할까. 그렇게 짓고 새기고 하는 것이 누구를 위한 일이며 무엇을 기리는 일이 될까. 흙을 딛고 물을 따라 태어난 목숨이라면, 갈 때도 그 흙이 되고 물이 되어 자취 없이 가야 할 것이 아닌가.

오늘 저 무덤을 다시 본다. 저 무덤을 지은 이에게는 서운할 일이 될지는 몰라도, 애초에 저 무덤을 저리 짓지 않았더라면 못 받드는 불손에 애태울 일도 없었을 것이요, 저 소나무도 제 자리도 아닌 곳에 뿌리를 박아 백골의 옆구리를 찌르게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저 무덤을 본다면 누가 저 일을 다시 할까. 그리하기를 또 애써야 할까. 남의 일이 아닌 것 같다. 내 다른 세상으로 갈 때는 어찌해야 할까. 스스로 할 수 없는 일이라 저세상으로 가는 나를 지킬 아들에게 곡진히 일러두고 싶다.

아들아! 언젠가 내 눈을 감게 되거들랑 고운 재로 만들어, 나 즐겨 다니던 산길 어디쯤 서 있는 듬직한 나무 아래에다 고즈넉한 흙이 되게 해 다오. 그다음은 속으로 조용히 헤아리다가 세월에 그냥 묻어가면 되지 않겠니…….”(2021.9.15.)

                                                                      

 

미술관으로 탈출하다

 

우리 일 한번 저질러 봅시다.”

같이 막걸릿잔을 들던 권 회장께서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도 답답해서 사지가 비틀릴 것 같다고 했다. 무슨 일을 저지를까 하니 이건희 컬렉션을 보러 가자 했다. 뜻밖이다. 권 회장께서 미술에 소질이나 조예가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고, 나도 마찬가지여서 미술로 주담을 삼아 본 적조차도 없다.

그냥 탈출해보는 거지요! 하하함께 웃었다.

코로나19는 많은 것을 묶어놓았다. 사람들을 마음대로 만날 수도 없고, 만나서 숨을 제대로 쉴 수도 없었다. 석 달마다 한 번씩 가던 문화유적 답사도 못 한 지가 이태가 다 되어 간다. 견문이라도 좀 넓히고 살자면서 지역 사람들로 모임을 지어 명승 고적을 찾아다닌 지 십 년이 넘었다. 서로 어울려 좋은 곳을 찾아다니는 것이 적적한 한촌 살이 중에 누릴 수 있는 크고도 뜻있는 즐거움이었다.

그냥 휙 갔다 오지 말고 이것저것 다 타고 보면서 갔다 옵시다.” 견문도 챙기며 재미있게 탈주해보자는 것이다.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 대구미술관에 전화해보니, 방역 관계로 관람 6일 전에 신청해야 하는데, 단체로는 4명까지만 관람할 수 있고, 시간대를 잘 지켜야 한단다. 코로나는 미술관이라고 예외를 두지는 않는 것 같다.

청년 시절을 객지에서 보내다가 돌아와 반세기 넘게 고향을 지키고 있는 권 회장과 한촌 살이 10년을 넘긴 나, 이 한촌에서 나고 살면서 대처 나들이가 별로 없었던 김 씨 어른과 몇 해 전 대학을 정년퇴직하고 낙향한 김 교수, 이렇게 넷이서 뜻을 맞추었다.

관람이 예약된 날, 새벽밥을 먹고 집을 나서 점촌역에서 6:59 무궁화호를 탔다. 기차를 타보기도 참 오랜만이라며 모두 감회에 젖었다. 코로나가 텅텅 비게 한 열차의 창밖으로 느리지도 않고 빠르지도 않게 지나가는 푸른 산야며 마을 풍경이 오붓한 정감을 일으킨다.

차는 김천역에서 멈추더니 갈아타라고 한다. ‘이것도 재미네~!’ 김 교수가 싱긋 미소를 짓는다. 구미의 빌딩 풍경을 지나 칠곡의 벙커 모습을 스치며 번화한 대구로 들어 9:12 동대구역에 닿았다. 대구 출입을 자주 하는 나더러 안내를 맡으라 한다.

택시를 타고 대공원역으로 가자 했는데, 기사는 높다란 철길 위로 다니는 전동차를 보며 어린이대공원 쪽으로 갔다. ‘우리 저런 것도 한번 타봅시다!’ 권 회장이 외쳤다. 기사는 길을 잘못 들었다며 전철 타지 말고 미술관으로 바로 가자 했다. 오늘은 너그러워지기로 했다. 도심 우회로를 달려 미술관에 닿은 것은 10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숲에 둘러싸인 우람한 미술관은 옆문 하나만 겨우 열어놓았다. 방역을 위해 3단계의 점검 절차를 거쳐 들어와 앉아 대기하라 했다. 이 또한 탈출 체험 아니랴! 드디어 전시장으로 들어갔다.

시를 위한 놀이터? 시가 놀이를 한다는 건가! 영상으로 보여주는 캄보디아 작가 크베이 삼낭의 영혼의 길, 원시림 속에서 건장한 사내가 벗은 채로 몸부림치고 있다. 무슨 몸부림일까. 오쿠보 에이지의 그림자놀이, 그림자만 그려놓았네. 자신의 그림잔가? 그렇지, 누구든 그림자를 안 지우고는 살 수 없잖아. 박현기의 비디오 아트, 물이 넘치고 있네. 미술관이 다 젖겠다. 저건 뭔가? 흙으로 곱창 같은 것도, 떡가래 같은 것도 빚어 놓았네. 이강소 작가의 세라믹 조각이라네. 이정 작가의 저 사진, 풍경 속에 네온 글자를 새겨놓았군. ‘소리 없는 아우성같은 역설을 표현해놓은 거라나. 비디오 예술가 백남준, 이 사람이 왜 여기서 나와! 달은 가장 오래된 텔레비전이라며 달 앞에 토끼 한 마리 앉혀 놓았네. 저 그림, 어린아이 낙서 같은데? 내가 저렇게 해놓아도 작품이라 할까? 같이 웃었다. 이건희는 어디에 있는 거야? 무슨 무슨 누구누구 그림이며 조각들을 거쳐 2층에 올랐다. 드디어 오늘의 목적지다.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웰컴 홈 향연’, 전시장 입구에는 삼성과 대구의 관계, 이건희 회장에 관한 소개를 전광 슬라이드로 비추었다. 이 회장의 문화 보국 정신을 일러준다.

전시장에는 이 회장이 기증한 서동진. 서진달, 이인성, 이쾌대 등 주로 대구 경북 출신 화가 8명이 그린 21작품을 전시해 놓았다. 추상화와 조각 작품도 있었지만, 인물화거나 풍경화가 많아 보기에 편했다. 서동진의 자화상에 이어 박명조 초상앞에서 내 눈길이 얼어붙었다. , 1 때 담임선생님! 반세기도 훨씬 전, 엄하면서도 자상하셨던 선생님의 모습이 선연히 떠오른다. 20대쯤의 모습인 것 같았지만 윤곽은 생전 모습 그대로다. 그때 선생님은 고명한 화가로 호가 우현(又玄)’이셨다. 얼굴이 검다고 호를 그렇게 쓰신다고들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도덕경의 현묘하고 또 현묘하다玄之又玄(현지우현)’이란 구절을 빌리신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일행에게 선생님 이야기를 하며 잠시 지난 시절로 돌아갔다. 이 그림 하나 본 것으로도 나의 탈출은 성공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혼자 뿌듯했다.

서진달의 나부상, 이인성의 여인상, 이쾌대의 항구 풍경 등 여러 작품의 모양과 빛깔들을 눈에 담고 전시장을 나오니 어마어마한 크기의 차계남 다티스트(DArtist) 작품 30여 점이 눈길을 끈다. 폭이 거의 2~5m나 되는 널따란 화판에 검은색 노끈 같은 걸 죽죽 늘어뜨려 놓았는데 무슨 뜻인지 몰라도 규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김 교수는 하나하나 죽을 작정하고 만든 것 같다고 했다. 그래, 코로나도 죽을 각오로 삐치면 제 놈이 어쩔 거야, 하고 한바탕 웃었다.

시계를 보니 정오가 훨씬 지났다. 새벽을 가르고 나온 터라 모두 배가 몹시 고팠다. 저 화가들 예술 하느라 곯던 배를 우리도 체험하는 거라 웃으며, 정수기를 찾아 물을 몇 컵씩 들이켰다. 빨리 점심을 먹으러 가자며 1시에 운행한다는 셔틀버스도 기다릴 겨를 없이 마침 미술관으로 들어오는 택시를 타고 대공원역으로 내달았다.

모두 지하철 우대권 발행기 앞에서 어리둥절했다. 회장님이나 김 씨 어른은 지하철도 처음인 데다 서울살이를 한 김 교수도 우대권을 받아보기는 처음이라 했다. 오늘 새로운 거 많이 본다며 신분증을 넣어 우대권을 받아 땅속을 달리는 차 탔다. 요동도, 소리도 없이 가는 차가 신기했다. 시장기 해결을 위해 반월당에 내려 땅 위 식당을 찾았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음식이 다 맛있다 했다. 막걸리 몇 잔과 더불어 요기를 하고, 가까이에 있는, 일제강점기 저항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민족 시인 이상화 생가, ‘금연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한 민족 운동가 서상돈 생가까지 둘러보고 다시 도시철도를 탔다. 이런 강행군이 없다 하면서도 피곤한 얼굴에 미소를 그려냈다.

청라언덕역에서 지상철 3호선으로 갈아탔다. 권 회장께서 타보고 싶다는 열차다. 지상으로 올라가는 수십 미터 에스컬레이터에 모두 놀란다. 언제 이런 걸 다시 타볼꼬. 열차는 은하철도처럼 공중을 달리고 있다. 세상이 모두 눈 아래로 보인다. 만평역에서 내려 북부정류장까지 가는 길이 지친 걸음으로 걷기에는 너무 멀다.

집으로 오는 버스를 탔다. 오늘 어땠소? 힘은 들었지만 돌아가면 사지가 좀 덜 틀어질 것 같네. 오늘 힘든 걸 생각하면 그깟 놈의 코로나 못 이겨?! 탈출 잘해봤네. 그림은 울긋불긋한 빛깔 눈요기한 것만 해도 좋지 않았나. 게다가 지하철 지상철 다 타봤지, 민족 시인도 애국지사도 만나봤지, 오늘 탈출, 대성공이지요? , 앞으로 이런 일 좀 종종 저지릅시다. 하하

차는 계속 달려나갔다. 스르르 내려오는 눈꺼풀 위로 미술관에서 본 이인성의 꽃 그림이 소곳이 피어났다.(2021.8.30.)

                                                                    

 

산은 방이다

 

오늘도 산을 오른다. 녹음이 한창 무성하다. 커다란 나무는 커다란 대로, 조그만 나무는 조그만 대로 저마다의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내리쬐는 햇볕 햇살이 뜨겁고 세찰수록 그늘은 더욱 후덕해진다.

산을 오르다가 우거진 나무 아래 그늘을 두르고 앉아 땀을 긋는다. 길고도 억센 잎이 빽빽이 모여 짙은 그늘을 드리운다. 바람이 지날 때는 잎사귀가 그 바람을 부드럽게 재워 땅 위로 뿌려준다. 저 무슨 소리인가. 경쾌한 새소리 벌레 소리를 따라 나뭇잎이 춤을 춘다.

무슨 노래를 불러주는 것 같기도 하고, 먼 곳 어디 그리던 소식을 전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어디서 날아오는 향기일까. 나긋한 꽃 내음 같기도 하고, 풋풋한 풀 내음 같기도 하다. 나무 그늘은 반갑고 향긋한 저네들 세상 소식을 넌지시 들려준다.

아늑하다. 그 향긋한 소식에 어느 바깥세상에서 듣다 온 어지러운 소리가 다 씻어지는 것 같다. 사지가 편안해진다. 누워본다. 쌓인 잎이 포근하다. 나뭇잎 사이에서 햇빛이 아롱진다. 그립고도 어여쁜 이의 손짓 같기도 하다. 미소가 그려진다.

머릿속이 맑아지면서 그리운 이도 생각나고 글도 쓰고 싶어진다. 그리운 이를 그리워하는 글을 쓸까. 지나온 삶을 정리하면서 그 삶을 딛고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삶을 쓸까. 평안하다 할까, 번뇌롭다 할까. 이 그늘은 번뇌를 허락하지 않을 것 같다.

방이다. 방이란 무엇인가. 태어나고 살아가는 곳이면서, 쉬기도 하면서 상념에도 잠기는 곳이 아닌가. 세상살이가 좀 갈등스러울지라도 그걸 달랠 수 있는 곳도 방이요, 새로운 마음을 일으키게 하는 곳도 방이 아닌가.

, 그 숲 그늘은 방이다. 아늑히 쉬게 해주면서 세상의 미운 것들을 씻어내 주고, 거친 것들을 부드럽게 갈아주면서 맑은 생각이 떠오르게 하는 방이다. 다시 살아보고 싶게 하고, 사랑해 보고 싶게 하는 포근하고 따뜻한 방이다.

산에는 수많은 크고 작은 방이 있다. 그렇다고 산은 방 장사꾼이 아니다. 그 방은 누구에게나 자리를 내어준다.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는다. 찾아와 안기는 이라면 누구라도, 무엇이라도 상관없다. 미물이라도 좋고, 날짐승 길짐승도 가리지 않는다.

산의 방은 언제나 푸르다. 아니다. 푸르지 않을 때도 있다. 누를 때도 있고 붉을 때도 있다. 때로는 벽 칸살이며 천장이 다 드러나 하늘이 훤히 보일 때도 있다. 그래도 방은 늘 살아 있다. 어느 때 들어도 방이 지닌 정겨운 생명력은 잦아들지 않는다.

산의 방은 나무가 만들어 내는 것만이 아니다. 산이 품고 있는 작고 크고, 얕고 깊은 골짜기가 모두 방이다. 그 방들은 생명의 물을 품고 있다. 그 물은 산의 혈관에서 나오기도 하고, 산의 심장 속으로 흘러들기도 한다.

그 골짜기에서 온갖 것이 다 난다. 풀도 나고 나무도 나고, 작은 벌레도 나고 큰 짐승도 난다. 우리의 방이 새로운 걸 만들어 내는 터도 되듯이 산의 방 골짜기도 모든 생명체의 근원이 된다. 골짜기가 있기에 산이 서 있고, 산이 있어 골짜기는 방이 된다. 산의 안방이다.

사람의 방은 이따금 창과 문이 막히는 수가 있다. 그래서 세상과의 줄이 끊어지게도 하고, 홀로 된 외로움을 씹게도 한다. 산의 방은 결코 막히는 법이 없다. 오히려 세상과 줄을 이어주기도 하고, 홀로된 이들을 품어 위안을 주기도 한다.

어느 시인은 어렵고 막막하던 시절 / 나무를 바라보는 것은 큰 위안이었다고’(이성복, 기파랑을 기리는 노래1) 고백하지 않던가. 그 나무는 곧 산의 방이다. 산의 방은 바라보기만 해도 위안이 된다. 고즈넉한 위안이 온몸을 적시게 해준다.

산의 방은 나를 찾게 해준다. 그 방의 품에 안겨 쉬면서, 그 쉼을 통해 세상의 티끌들을 씻어내다 보면 내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그 모습이 창백해 보일 때도 있고, 생기로워 보일 때도 있지만, 어떤 모습으로든 나를 만날 수 있다는 게 반갑다.

산을 오르고 싶다. 그 방으로 들어 세상의 잡음도, 권속의 쇄언도 다 씻어내고 싶다. 위안도 받고 싶고 내 모습도 찾고 싶다.

상경한 초의선사가 자꾸 산으로 돌아가겠다고 하자, 그의 벗 추사가 그를 가지 못하게 붙들며 네 마음 고요할 땐 저자라도 산과 같고, 네 마음 들렐 때는 산이어도 저자일세. 다만 마음 그 속에서, 저자와 산이 나뉜다네.”(儞心靜時 雖闤亦山 儞心鬧時雖山亦闤. 只於心上 闤山自分, 靜偈)라고 했다 한다.

산을 오르고 싶은 것은 내 마음이 고요하지 못하기 때문일까. , 그 방에 든들 마음이 들레면 산 같지 아니할까. 오직 마음 탓일까. 어찌하였든 산의 방은 아늑하다. 그 방에서 세상 걱정을 다 못 떨칠지라도, 방은 늘 위안을 주고 있다. 그 방은 포근하다. 세상으로 나가는 길을 쉽게 틔워줄 수도 있을 것 같다.

오늘도 산을 오른다. 그 방을 찾아 오른다. 위안을 찾아, 생명력을 찾아 오른다. 나를 찾아 오른다.

산은 방이다, 아늑한 방이다.(2021.8.19.)

                                                                      

 

나뭇잎 행복

 

오늘도 산을 오른다. 숲 그늘이 날로 짙어지고 있다. 잎새의 잎파랑이가 더는 푸르러질 수 없으리만치 푸르러진 것 같다. 햇살에 반짝이는 빛깔이 눈부시다.

생강나무가 노란 꽃망울을 터뜨릴 즈음 잎눈을 수줍게 틔우기 시작했다. 세상을 향해 조금씩 눈을 떠나가다가 움이 되고 잎이 되어 세상의 빛을 안았다. 시나브로 깃을 세워 몸피를 불려 나가며 빛깔도 연두 연한 빛이 점점 초록 짙은 빛으로 변해갔다.

마치 어린 것이 세상에 태어나 젖니가 나고, 걷고, 소년이 되고 청년이 되듯이 잎도 그렇게 푸름을 더해간다. 청년이 기운과 기백을 한껏 펼치듯, 잎은 그 기백으로 무성한 녹음을 이루어낸다. 이제 잎은 어떻게 될 것인가.

청년이 생애의 꿈을 가꾸며 장년이 되어 자신과 함께 이웃을 위해 이바지도 하면서 원숙한 삶을 이루어 나가듯, 나뭇잎도 넓고 튼실한 잎으로 두꺼운 그늘을 드리며 많은 이들에게 안식과 위안을 주는 삶을 이어 간다.

불볕으로 내리쬐던 여름도 지나 바람이 소슬해지는 가을이 이르면, 우리의 삶이 황혼의 빛깔로 익어가듯 잎도 한 생애의 종언을 예감하면서 노랗고 붉게 익어간다. 바람이 차가워진다 싶을 때 그 바람을 타고 제 태어난 지상으로 사붓이 내려앉는다.

나뭇잎은, 채비 없이 문득 세상을 떠나곤 하는 어떤 이들처럼 느닷없이 가지를 떠나지는 않는다. 제 잎자루 끝에 떨켜라는 새로운 켜를 하나 쳐서 제게로 오는 물길을 막는다. 저를 낳은 가지가 설한풍 겨울을 무사히 나게 하기 위해서다. 그러고 저는 미련 없이 떨어져 내린다.

나뭇잎은 행복하다. 제 눈을 틔워준 가지와 연하여 움이 트고 잎으로 피어났다. 가슴을 한껏 펼쳐 원 없이 푸르러 가면서 꽃도 피고 열매도 맺게 했다. 그 꽃과 열매를 따듯이 싸안아도 주다가 생애를 다하여 소곳이 내려앉게 되니 얼마나 복된 일인가.

무엇보다도 다행인 것은 편안히 내려앉을 자리가 언제나 마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곳에는 먼저 자리 잡은 이들이 터를 포근하게 잘 지켜주고 있다. 그 아늑한 터의 품에 안기면 된다. 먼저 지상으로 내려온 잎들은 내려온 잎을 맞아주고는 서서히 흙 속으로 스며든다.

이제 내려앉으면 한동안 자리를 지키다가 내리는 잎을 따스하게 품어주고, 먼저 앉은 이들이 그랬듯 흙 속으로 들어 흙으로 몸을 바꾸면 된다. 새 씨앗의 거름이 되어 새 생명으로 태어나면 된다. 이 얼마나 평안하고도 아늑한 일인가.

잎의 생애를 다시 돌아본다. 볕살이 따스하던 어느 봄날 햇살의 은총을 받으며 눈을 트고 움이 터 잎으로 피어난다. 비와 바람과 어우러지며 푸름이 그 빛을 다할 때까지 거칠 것 없이 푸르러져 간다. 그러다가 생애가 다했다 싶으면 내릴 자리로 조용히 내려앉는다.

저 인간 군상들을 보라! 많은 생명이 축복 속에 태어나긴 하지만, 그렇지 못하게 태어나는 목숨도 없지 않다. 서로 나누는 사랑으로 살아들 가지만, 온갖 고뇌와 고통 속에 삶을 짓이기는 이들도 적지 않다. 속이고 속고, 뜯고 싸우고, 밟고 밟히면서 사는 이들도 드물지 않다.

어디 그뿐인가. 제 자리 잘 잡아 안락하게 사는 이들도 있긴 하지만, 설 자리를 얻지 못해 평생을 헤매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죽음도 제대로 맞을 수 없어 허망하게 스러져 가는 이들도 있다. 저세상 누울 자리마저 얻지 못해 구천을 떠돌아야 하는 영혼도 없지 않다.

이런 목숨들에 비하면 나뭇잎의 한생이며 그 뒤에 이어지는 생들은 얼마나 큰 천행인가. 하늘이 나게 하고, 그 하늘이 내려주는 볕과 바람과 비로 살다가 그렇게 난 자리로 돌아가는 생애란 얼마나 복 받은 것인가.

세상의 모든 나뭇잎이 마냥 그 행복을 누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도심에 서 있는 가로수 잎들을 보라. 청량한 바람 속보다는 숨 막히는 매연 속을 살아야 한다. 생애를 다하고 내려앉을 때도 자리를 얻지 못해 이리저리 굴리어 다니다가 둔중한 바퀴에 깔려 산산조각으로 부서지기도 해야 한다. 아니면 미화원의 빗자루에 쓸려 한 줌의 재로 사라지든지-.

사랑받으며 살 것 같은 뉘 집 정원수의 잎도 고단하기는 마찬가지다. 저 살고 싶은 대로 살지 못하고 주인의 눈길 손길을 따라 이리저리 잘리고 베이기도 해야 한다. 떨어진 잎조차도 태어난 흙 속으로 들지 못하고 밟히고 짓이겨지다가 허무하게 사라지기도 해야 한다.

행복은 어디에 있는 건가. ‘제자리에 있는 것 같다. 제 나고 살고 죽을 자리에 행복이 있는 것 같다. 나뭇잎의 제자리는 어디인가. 당연히 산이다. 산이야말로 나뭇잎의 행복을 키워주고 지켜주고 감싸 안아 주는 곳이 아닌가. 산의 잎이라야 제 행복 제대로 누릴 수 있지 않으랴.

나는 제자리를 살고 있는가. 제자리가 주는 행복을 누리며 살고 있는가. 이 세상을 떠나 다른 세상으로 내려앉을 때도 제자리로 돌아가 고즈넉한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 오르고 있는 산의 나뭇잎을 다시 한번 쳐다본다.

어쩌면 나는 제자리를 살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제자리를 산다면 밤마다 꿈자리가 그리 어지러울까. 그리운 일은 어찌 이리 많은가. 아직도 풀어내지 못한 미련과 번뇌와 후회로 새워야 하는 낮밤이 적지 않은 것도 제 자리를 살고 있지 못한 탓이 아닐까.

오늘도 산을 오른다. 행복한 나뭇잎을 그리며 오른다. 그 행복에 젖으러 오른다. 이렇게 오르다 보면 이 잎새들의 행복을 닮아갈 수 있을까.(2021.7.31)

                                                                   

 

산, 몸을 찾아서

 

오늘도 산을 걷는다. 무성히 우거진 숲의 그늘이 몸을 아늑하게 한다. 불같이 쨍쨍거리던 햇살도 숲에 닿으면 양순한 그늘이 되고 만다. 산은 언제나 싱그럽다. 숲이 있기 때문이다. 산은 언제나 아늑하다. 숲의 그늘이 있기 때문이다.

산에서는 흘리는 땀은 청량하다. 산의 땀은 몸을 새 깃처럼 가볍게 한다. 몸만 가벼워지는 것이 아니다. 몸 따라 마음도 가벼워진다. 가벼워지는 몸속으로 숲의 푸름이 스며든다. 푸름은 몸속으로 신선하게 가라앉는다.

푸름이 침윤한 몸속에는 아무것도 들 수가 없다. 세상의 어떤 호사도, 이해도, 상념도, 이념도 감히 자리를 넘볼 수 없다. 속된 근심 걱정거리야 말할 것도 없다. 그런 하찮은 것들이 어찌 이 푸름의 성역으로 들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처음 산을 오른 것은 몸의 기운을 북돋우고 싶어서였다. 산을 오르내리다 보면 몸의 힘살이며 내장의 기운이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바람에서다. 그랬다. 그렇게 산을 두고 오르다 보니 그것들이 좋아지는 것 같았다. 심신이 가든해지는 것 같았다.

더욱 좋은 것은 진실로 몸만을 위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몸을 위하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필요치 않았고, 필요로 삼고 싶지도 않았다. 호오며, 애증이며, 선악이며도 다 필요치 않았고, 이념이며 사상이며 네 편 내 편을 가르는 일은 더욱 필요치 않았다.

그런 것을 다 떨치고 오직 몸의 평안만을 위할 수 있는 게 산이라는 걸 왜 진작 몰랐을까. 그렇게 산을 알기 전에는 성인은 배를 위하고, 눈을 위하지 않는다.(聖人爲腹不爲目, 道德經, 12)”는 노자의 말씀이 잘 새겨지지 않았다. 왜 성인은 배를 위하면서 눈은 위하지 않는다고 했을까. 노자의 말씀을 즐겨 들으면서도 말씀들은 나에게 늘 숙제였다.

그러던 어느 날, ‘노자는 이념이나 가치의 세례를 받기 이전의 상태를 배라고 표현하고, 그 세례를 받은 이후의 상태를 눈이라고 표현한 것(최진석, 나 홀로 읽는 도덕경)’이라는 어느 철학 교수의 말씀이 귀를 번쩍 뜨이게 했다. 배와 눈을 말한 노자의 말씀이 어렴풋이 보이는 듯했다. 그는 는 곧 몸이요, ‘은 곧 이념을 뜻하는 것이라 했다.

눈은 항상 밖을 향하면서 모든 것을 구분하는 것이라 했다. 그렇구나. 눈이 곧 모든 것을 가르는구나. 좋고 나쁨도 가르고, 옳고 그름도 가르고, 내 편 네 편도 눈이 다 가르는구나. 그래서 사람에게 근심 걱정도 생기게 하고, 욕심과 질투도 솟게 하고, 술수와 투쟁도 부리게 하는구나. 노자는 일찍이 마음은 비우고 배는 튼튼하게 하라(虛其心 實其腹, 上同 第3)”고 하지 않았는가. 눈이 모든 것을 좌우하는 마음을 믿지 말고, 모든 삿된 것이 아예 틈입할 수 없는 몸을 실하게 하라는 말씀임을 알 것 같다.

어디에 가면 그런 곳이 있을까. 눈이 아니라 몸으로 살 수 있는 곳, 눈으로 깨달아 아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느끼며 즐길 수 있는 곳이 어디 없을까. 말씀들을 아울러 뇌며 산을 오르다 보니, 산이 바로 거기였다. 산은 무슨 가치를 매기지 않아도, 이념의 푯대를 세우지 않아도 좋다. 마냥 걸으면 되고 그저 오르면 된다. 삽상한 바람에 젖으면 되고 명랑한 새소리 들으면 된다.

노자는 산을 보면서 모든 말씀을 했던 것도 같다. 이를테면 낳아주되 갖지 않고, 위해 주되 바라지 않고, 길러주되 간섭하지 않으니, 이를 일러 현묘한 덕이 한다.(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 是謂玄德, 上同 第51)”고 한 노자의 현덕란 곧 나무를 대하는 산의 마음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렇듯 산을 보노라면 노자의 말씀이 모두 풀어지는 것 같다.

산을 오르면서 산이 가진 마력에 잠기다 보니, ‘성인은 배를 위하고, 눈을 위하지 않는다.’라는 말씀이 다시 새겨진다. ‘성인은 자연이라 해도 좋다. 자연은 아무런 이념이나 가치 같은 걸 가지지 않고 그냥 그대로의 상태인 몸으로 존재하는 것이라는 말씀이 쟁쟁히 들려 온다.

그런 산을 오르는데 눈이 부채질해내는 무슨 사념 같은 게 왜 필요할까. 그냥 그대로의 몸으로 걷고 오르고 내리면 될 것이 아닌가. 사람 사는 일이 이와 다를까. 그냥 살면 되지 않는가. 산의 결처럼 살면 되지 않는가. 무슨 가치며 무슨 이념이란 걸 내세워 그것에 맞지 않으면 모두 적으로 돌려야 할 까닭이 있을까.

산은 그냥 몸으로 살라 한다. 몸을 위하여 살라 한다. 그 자연으로 살라 한다. 그렇게 사는 세상에는 오직 자연의 삶이 있을 뿐 이념이 부리는 술수며 쟁투란 있을 수 없다.

이렇듯 배, 곧 몸을 중시하는 노자는 자신의 몸을 천하만큼 귀하게 여긴다면 천하를 줄 수 있다.(貴以身爲天下 若可寄天下, 上同 第13)”고 했다. 무엇을, 누구를 위하여 일한다는 사람보다는 자신 완성을 위해 애쓰는 사람이 세상을 더 잘 다스릴 수 있다는 말씀이라 했다.

자기 몸을 위하는 사람일수록, 자기를 이루려 하는 사람일수록 산으로 갈 일이다. 산은 오직 몸을 위해 주기 때문이다. 아무런 이해타산도 없는 몸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세상은 경영 못 해도 몸은 위해 주고 싶다.

오늘도 산을 오른다. 오직 몸을 위해 주는 산을 오른다. 몸을 찾아간다.(2021.7.17.)

                                                                      

 

사람은 땅을 본받고

 

동네 인심이 전 같지 않다고 한다. 날이 갈수록 말라가는 것 같다고 한다.

내가 이 마을을 산 지도 십 년 세월이 넘어 흘렀다. 산전수전의 한 생애를 정리하고 이제는 산 치레 물 치레로 살리라 하고 산수 좋은 곳이라 찾아와 산 세월이 그렇게 흘러갔다. 그 세월 따라 흐르지 않고 달라지지 않은 게 무엇이 있으랴만, 동네도 많이 변했다. 사람도 흐르고 산천도 바뀌었다.

모처럼 이 궁벽한 마을을 찾아와 살려 하는 사람이 있다고, 마을 사람은 두 팔 벌려 반기고 환영해 주었다. 사는 데에 어디 편치 못한 일이나 없는지 살펴주려고도 했다. 살면서 얼굴도 마음도 익어지니 처음 같지는 않았지만, 서로 노나 가지려는 인심은 쉬 달라지지 않았다. 집집이 돌아가며 마련하는 화기 그득한 자리로 정을 나누기도 했다. 늘 그렇게들 살아왔다고 했다. 참 살기 좋은 마을인 것 같았다.

그렇게 서로 정을 나누며 사는 사이에 윗마을 모과나무 집 할매, 옥천 할매 내외, 하내 할매, 김 씨 노인 내외도 저승으로 가고, 아랫마을 김 씨 노인 내외며 이 씨 부부도 세상을 떠났다. 드는 사람은 드물고, 집은 자꾸 비어가니 동네가 전보다 적막해지긴 했지만, 그거야 누가 막을 수 있는가. 세월이 흘러 세상을 달리해 가는 일이야 자연의 일이 아닌가.

어느 날 대형 삽차가 강둑에 나타나 둑을 마구 파헤치기 시작했다. 강둑에 우거져 있던 푸나무들을 짓이겨댔다. 사람들이 지나다니기에는 좀 불편해도 온갖 풀들이 돋아나고, 풀마다 가지각색의 꽃들을 피워내던 길이었다. 냉이, 산괴불주머니, 고들빼기, 씀바귀, 애기똥풀, 달맞이, 메꽃, 나팔꽃, 사광이아재비, 개망초, 원추리, 큰까치수염, 둥근잎유홍초. 달개비, 도깨비바늘……. 셀 수도 없는 수많은 꽃이 철 따라 갖가지 모양으로 빛깔로 피어났다. 꽃을 보며 걷는 길이 풀잎에 맺힌 이슬로 바짓가랑이를 다 적시게 해도 마음은 더없이 아늑하기만 했다. 이런 길이 있다는 것이 고맙고도 신기했다.

나만의 물색 모르는 상념이었을까. 몇 마을 사람들이 요즈음 세상에 편히 걷지도 못하는 이런 길을 어찌 두고 볼 수 있느냐며, 매끈하게 다듬어 달라고 관서에 질기게 진정했다. 마침내 관서에서 삽차를 내보냈다. 파헤친 길 위에 거푸집을 치고 철근을 깔고 회반죽을 들이부었다. 길은 매끈해졌다. 이슬이 바짓가랑이를 적실 일도 없어졌다. 편하게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차도 트랙터도 경운기도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차가 자주 다니다 보니 강둑 길섶에 줄지어 선 벚나무 가지가 거치적거린다. 봄이면 온 강둑을 화사한 꽃 천지로 만드는 나무다. 중장비가 지나다니면서 늘어진 가지를 참혹하게 찍어 내리기도 했다.

일 잘하고 수완 좋은 이가 이장이 되었다. 그는 지역 무슨 단체에 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관서에 교섭하여 마을 길을 다시 다듬게 했다. 길섶을 수놓고 있는 꽃이며 풀들을 다 걷어내고 포장하여 길을 넓혔다. 여름이 들 무렵이면 마을회관 앞길을 환히 밝히던 붉은 작약꽃은 자취를 감추었지만, 차들이 마음대로 교행할 수 있게 되었다며 좋아했다. 이장은 자기가 이룬 성과라며 자랑스러워했다. 모든 마을 길은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말끔한(?) 길이 되었다.

하천 정비 공사를 한다며 삽차들이 부지런히 드나들었다. 강바닥을 긁어내고 보()도 더 깊이 팠다. 홍수가 나면 어찌 될지 몰라 제방을 더 높여야 한다고 했다. 그리하자면 제방 주변에 서 있는 나무들을 다 베거나 뽑아내야 한다고 했다. 나뭇값은 적절히 보상해 줄 거라 했다. 수십 년 묵은 은행나무며 느티나무, 회나무는 값도 적잖이 나갈 거라 했다. 동네 기금이 쌓인다며 좋아하는 마을 사람들도 있었다. 이장은 그것도 자기의 공이라며 으쓱해 했다. 그런 나무가 있는 자리를 비켜서 공사를 하거나, 공사 후 다른 나무라도 심어야 할 거라는 목소리가 없지 않았지만, 그 소리는 보상비의 위력에 무참히 묻히고 말았다. 강둑은 보강되고 둑길은 잘 다듬어졌지만, 나무 한 그루 없는 메마른 땅이 되어야 했다.

그런 일들이 마을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이에 사람들의 삶도 달라져 갔다. 사람들이 서로 집집을 오가는 일이 서서히 잦아져 갔다. 정겹게 오라는 집도 드물어가고, 만만히 찾아갈 만한 집도 녹록지 않게 되었다. 어느 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다 안다던 시절은 전설이 되어 갔다. 우리 집에서 빚은 맛난이라며, 우리 밭에서 난 푸성귀라며, 장에 간 김에 뭘 하나 더 사 왔다며 서로 주고받던 일도 가물거려 갔다. 무슨 연유일까.

회반죽으로 휘덮은 강둑 길로 사람들이며 차들이 잘 다닐 수 있고, 마을 길이 넓어져 차들이 서로 잘 비킬 수 있게 되지 않았던가. 제방은 더 튼튼해지고 봇물은 넓고 깊어지지 않았는가. 이렇게 동네는 눈부셔지고 지내기에 편해졌는데, 푼푼했던 집집의 삶이며 그 삶으로 오가던 마음들은 어찌해 전 같지 않아진 걸까.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스스로 그러함을 본받는다.(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 (老子, 道德經)”고 하듯, 사람의 마음이 풀 한 포기 없는 길, 그 땅을 본받아 말라 가는 걸까. 아니면 도()가 제 길을 잃어 땅과 사람을 틀어지게 한 걸까.

가끔씩은 어느 집에 모여 앉아 마을 돌아가는 이야기며 논밭 갈이 소식들로 남새 부침개에 술잔을 함께 가누던 시간들은 어디로 날아간 걸까. 그 술잔에 마음을 담그던 정들은 어디로 갔을까. 참혹하게 베어진 강둑 백 년 은행나무 혼령이 안고 간 걸까. 길섶에서 사라진 봄까치꽃이며 꽃다지, 제비꽃이 가져간 걸까.

오늘도 매끈한 강둑 길에는 늘어진 벚나무 가지를 젖히며 차가 달리고 있다.(2021.7.3.)

                                                                     

 

엉겅퀴 사연

 

오늘도 산을 오른다. 녹음이 무성하다. 수풀이 우거진 어귀 오솔길을 오르는데 무엇이 바짓가랑이를 찌르듯이 잡는다. 놀라 돌아보니 엉겅퀴다. 날마다 걷는 길인데 오늘 나를 잡을까. 이제 비로소 꽃을 피웠노라며 저를 봐달라는 말인가.

어제는 미처 보지 못했던 꽃이 수술일지 꽃잎일지 모를 가시를 뾰족뾰족 뽑아 올리며 함초롬히 피어 있다. 붉은빛, 분홍빛, 자줏빛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송이를 이루고, 흰색으로 뻗어 올린 피침 하나하나에 붉은빛을 감고 있다.

줄기에도 잎에도 잔털이 송송 나 있고, 잎은 양쪽으로 깊게 갈라지면서 끝에 뾰족한 가시를 달고 있다. 그 가시가 나를 잡은 것이다. 꽃의 빛깔이며 생김새도, 가시가 나 있는 잎이며 줄기도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는 것 같다.

그 꽃이 서 있는 땅은 다른 데보다 더 기름지지도 않고, 사방이 탁 트여 햇빛이 잘 드는 곳도 아니다. 그런 곳에서도 저리 고운 빛깔로 꽃을 피우고 있는 것 하며, 아리따우면서도 다른 이를 아리게 할 가시를 달고 있는 것이 무슨 애틋한 사연을 품고 있을 것만 같다.

상처 난 곳에 찧어서 바르면 피를 엉기게 하여 멎게 한다고 엉겅퀴라 불리게 되었다는 설이 있지만, 하 많은 사연이 엉겨 있어 엉겅퀴라 부르는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한방에서 대계(大薊)라 하여 뿌리를 이뇨제, 지혈제 등에 쓴다고 하거니와, 시인들은 엉겅퀴에 엉겨 있는 사연이며 그 심사를 결코 지나치지 않는다.

흑진주처럼 /해묵은 사연 있을까./ 두메 산기슭 /작은 무덤에 /엉겅퀴 꽃이 피었네./…… / 이제는 초로(初老)/ 봄이 담담한 / 까칠한 누이처럼 / 사는 꽃이여.”(오낙율, 엉겅퀴꽃)라 하여 박덕한 누이를 떠올린 시인도 있고, “엉겅퀴야 엉겅퀴야 / 철원평야 엉겅퀴야 / 난리 통에 서방 잃고 / 홀로 사는 엉겅퀴야”(민영, 엉겅퀴꽃)라며 민요조 가락에 실어 엉겅퀴에서 전쟁의 비극을 읽어내는 시인도 있다.

그런가 하면, “들꽃이거든 가시 돋친 엉겅퀴이리라 / 사랑이거든 가시 돋친 들꽃이리라 / 척박한 땅 깊이 뿌리 뻗으며 / 함부로 꺾으려 드는 손길에 / 선연한 핏멍울을 보여주리라 / 그렇지 않고 어찌 사랑한다 할 수 있으리 (복효근, 엉겅퀴의 노래)” 하며 엉겅퀴에 단호한 사랑을 싣고 있다. 이러한 꽃에 어찌 전설이며 유래담이 없을까.

몽골이 고려를 침략하던 여몽 전쟁 시기였다. 몰락한 어느 가문에 보라라는 예쁜 외동딸이 있었다. 그녀보다 두 살 많은 똘똘하고 총명한 또깡이라는 어린 종이 항상 그녀 곁을 지켜주었다. 어딜 가나 무엇을 하나 늘 함께하며 오누이처럼 지내면서 점점 자라는 사이에 서로 사랑하게 된다. 몽골의 침략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또깡이는 대몽 항전을 위해 먼 길을 떠나고 보라만 남는다. 또깡이가 돌아올 날을 고대하며, 오면 입힐 옷을 짓고 있던 보라는 공녀로 징발되어 몽골로 끌려가는 처지가 된다.

감시 책임을 맡고 있던 흑조라는 다루가치가 끌려가던 보라를 탐내어 덮치려 하자 댕기에 늘 꽂고 있던 바늘로 흑조의 정수리를 찔렀다. 흑조가 잠시 정신을 잃은 사이에 보라는 도망을 쳤지만, 이내 정신을 차린 흑조가 따라와 채찍을 마구 갈겨댔다. 보라는 살이 갈기갈기 찢어져 마침내 죽게 되었는데, 찢어진 살갗에서 송송 가시가 돋아났다. 그렇게 보라가 죽은 자리에 피어난 보라색 꽃이 엉겅퀴다. 보라의 원한이 핏빛 꽃에 가시가 되어 피게 된 것이다.

전설이 먼저인지 꽃이 먼저인지는 알 수 없지만, 원한 맺힌 사연을 가진 꽃으로 보이고 느껴지는 것은 그 모습이 지닌 표상 때문일 것이다. 그런가 하면, 13세기경 스코틀랜드와 덴마크가 전쟁을 벌이고 있을 때 엉겅퀴 가시가 긴요한 구실을 하여 위기에 처한 스코틀랜드를 구했다고도 한다. 그 후 스코틀랜드는 엉겅퀴를 나라꽃으로 삼게 되었다는 유쾌한 유래도 전해진다.

어쨌든 엉겅퀴는 고운 빛깔과 매서운 가시를 함께 지닌 꽃이다. 서로 화합할 수 없고 조화도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것들이 서로 어울려 보는 이를 설레게도 하고 아리게도 한다. 돌아보면 우리 삶엔들 어찌 고운 빛깔만 있고 매서운 가시만 있으랴. 엉겅퀴는 빛깔과 가시를 기의(記意 signifié)로 하는 우리 삶의 명쾌한 기표(記表 signifiant)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금 꽃으로 살고 있다. 세상의 번다한 일 다 떠나 산 치레 물 치레로 살고 있으니, 이만하면 빛깔도 은은한 꽃이 아닌가. 시인은 또 말한다.

들꽃이거든 엉겅퀴이리라 / 꽃 핀 내 가슴 들여다보라 / 수없이 밟히고 베인 자리마다 / 돋은 가시를 보리라 / 하나의 꽃이 사랑이기까지 / 하나의 사랑이 꽃이기까지 / 우리는 얼마나 잃고 또 / 떠나야 하는지”(복효근, 엉겅퀴의 노래)라 했다.

그 은은한 빛깔도 속을 들여다보면 찢기고 밟힌 자리가 왜 없을까, 그 자리마다 돋은 가시가 어찌 없을까. 가시가 있다 한들 무엇을 원망하랴. 그것이 있어 고운 빛깔도 있지 않은가.

오늘도 강둑을 걷고 산을 오른다. 꽃 아닌 풀이 있으랴. 저마다의 사연을 간직한 채 꽃으로 피어나고 있다. 엉겅퀴꽃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 오늘이다.(2021.6.15.)

                                                                  

 

모두 다 꽃이야

 

내가 보는 풀꽃마다 보내 달라고 했다. 아침마다 늘 풀꽃 길을 걷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 길에서 만나는 꽃들을 날려 보냈다. ‘참 예뻐요!’, ‘너무 곱게 피었네요~!’와 같은 짧은 댓글을 보내올 뿐이지만, 그 어투에서는 꽃들을 진정으로 반기는 마음이 묻어났다. 내 산책길의 눈길은 그 마음을 좇아간다.

아침 산책길을 나선다. 두렁길도 걷고, 강둑길도 거닐고, 골짝 길도 간다. 어느 길에도 풀꽃이 없는 길은 없다. 두렁길에는 봄 내내 길을 꾸며 주던 봄까치꽃이며 꽃다지, 냉이꽃은 한철을 지나가고, 누운주름잎만이 가는 봄을 지키려 하고 있다. 그것들은 벌써 이 강산 봄소식이 되어 날아간 지 한참 되었다.

오늘은 뭐 새로운 게 없을까, 어쩌면 오늘 내가 걷는 길은 어제 보지 못했던 걸 찾아가는 걸음인지도 모른다. 그 길에 새로 피어나는 모든 꽃은 내 사는 곳의 새 소식 되어 날아가곤 했다. 그는 늘 올해의 새로운 소식을 받는 셈이다. 이름을 물어온다. 아는 대로 혹은 알아내어 가르쳐 주면, 알면 보인다며 다시 감탄의 답글을 보내온다.

강둑에는 자세히 보면 다 다르지만, 얼핏 보면 어슷비슷한 노란 꽃들이 한창이다. 노랑선씀바귀, 씀바귀, 고들빼기 그리고 뽀리뱅이다. 꽃잎의 모양도 조금씩 다르지만, 꽃술의 빛깔도 같지 않다. 한가지로 보이지만 다 다른 거라고 말해주면, 또 한 번 감탄한다. 어찌 그리 잘 아느냐 묻는다. 나는 이들과 함께 사는 사람이 아니냐고 은근히 젠체한다.

둑에 지천으로 피는 꽃이 애기똥풀과 개망초다. 봄이 다 갈 때까지도 둑을 노랗게 물들이고 있는 애기똥풀은 줄기를 자르면 아기 똥 같은 노란 즙이 나온다고 붙은 이름이란다. 꽃말도 엄마의 사랑과 정성이다. 인제 내 차례라며 긴 줄기를 세워 노란 꽃술 하얀 개망초가 쏙쏙 피어나고 있다. 아무 데나 가리지 않고 잘 나는 바람에 농부들 애를 하도 먹여 개같이 망할 풀이라며 뽑아 던진 데서 유래한 이름이라나. 그래도 꽃말은 화해. 두 꽃을 접사로 담아 띄웠더니 너무 이쁘다며 감탄부를 몇 개나 찍어 보냈다.

풀숲 속에서 활짝 갠 얼굴을 내밀고 있는 메꽃은 아침 인사가 착실하다. 하늘하늘 미나리아재비도 인사에 빠지지 않는다. 그 인사 그대로 전해주었다. 좋은 날 보내라는 인사가 돌아온다. 가시 돋친 핏빛 엉겅퀴꽃 하나가 오뚝 섰다. 꽃을 보내며 시 한 구절 들려준다.

들꽃이거든 가시 돋친 엉겅퀴이리라 / 사랑이거든 가시 돋친 들꽃이리라 / 척박한 땅 깊이 뿌리 뻗으며 / 함부로 꺾으려 드는 손길에 / 선연한 핏멍울을 보여주리라 (복효근, 엉겅퀴의 노래)” 무섭고도 슬퍼 엉겅퀴 가시 같은 소름이 돋아 오른단다.

물가에 흐드러지게 핀 노란 갓꽃들 속에 노랑꽃창포가 담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냉담, 무관심이란 꽃말 가운데서 믿는 자의 행복이 넓적한 잎을 치세우며 노란 손수건을 흔든다. 손을 마주 흔들어주고 골짝 길로 든다. 언덕배기에 회색이 다소곳하던 현호색은 다 어디로 갔는가. 그 많던 자주 제비꽃도 흰젖제비꽃도 서울제비꽃도 이제는 보이지 않는다. 그 꽃들이 귀여워 죽겠다던 그의 웃음소리만 메아리지게 한 채 가는 계절 속으로 흘러갔는가.

보일 듯 말 듯 저 잔잔히 핀 꽃, 자세히 안 보면 지나칠 하얀 개미자리와 쇠별꽃이다. 잘 보이게 담아 보내며 나는 당신의 것’, 그리고 추억, 밀회라는 꽃말도 함께 띄웠더니, 몸이 갑자기 오그라드는 것 같다며 웃었다. 아니, ㅎㅎ을 보내왔다. 그것도 무슨 꽃 모양 같다.

, 저 꽃은 무엇인가! 눈을 닦고 자세히 보니 쇠별꽃 조그만 꽃잎을 둘씩 짝지어 놓은 것 같다. ‘모야모에 물었더니 유럽점나도나물이라는 생경한 이름과 순진, 경청, 가련함이라는 꽃말을 보내왔다. 순진하고도 앙증맞은 모습이 다시 눈에 들어온다. 역시 꽃은 자세히 보아야예쁜 모양이다. 풀꽃을 좋아하는 이를 기쁘게 해주려다 보니 나도 모르게 자세히 보는 길이 든 것도 같다.

꽃은 골짜기 도랑 건너 산비탈 나무에도 피었다. 손톱보다 작은 꽃을 보던 눈에 비친 큼지막이 하얀 꽃이 눈부시다. 고광나무에 핀 오백 원 동전보다 조금 더 큰 듯한 꽃이다. 빛깔도 생김새도 품새가 달라 보인다 했더니, 꽃말이 기품, 품격이란다. 꽃이란 작은 것은 작은 대로, 큰 것은 큰 대로 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것 같다. 이 꽃도 날려 보냈더니 나를 닮았다고 했다. 나를 닮은 게 어찌 이 꽃뿐이겠냐며 나도 ㅎㅎ을 보냈다.

맞아요, 꽃 속에 사는 사람이 꽃이 아니면 무엇이겠어요? 꽃을 좋아하는 사람 또한 꽃이지요. 자세히 보면요, 세상에 꽃 아닌 게 없어요. 아직 피지 않았거나 피우지 못한 건 있을지라도 모두 꽃을 품고 있지요. 피면 다 꽃이…….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노래를 흥얼거려 나간다.

산에 피어도 꽃이고 들에 피어도 꽃이고/ 길가에 피어도 꽃이고 모두 다 꽃이야/ 아무 데나 피어도 생긴 대로 피어도/ 이름 없이 피어도 모두 다 꽃이야……(류형선 사·, 모두 다 꽃이야)”

고광나무 옆에서는 붉은 꽃자루 흰 꽃잎 병꽃나무 꽃이 노랫가락을 따라 무슨 악기라도 부는 듯 일렁이고 있었다.(2021.6.2.)

                                                                     

 

나무의 사랑(2)

 

오늘도 산을 오른다. 나무를 보러 오른다. 산이 정겹고 아늑한 것은 나무가 있기 때문이다. 나무가 없는 산이란 얼마나 황폐하고 거칠고 쓸쓸한가. 나무가 있어 산이 그립고, 산이 그리워 나무를 찾아간다. 마을에는 사람이 정을 가꾸고, 산에는 나무가 정을 가꾼다.

나무는 산을 정답게 할 뿐만 아니라, 저를 보는 이들의 가슴도 정과 위안에 젖게 한다. 나무를 보고서도 마음이 편안해지지 않는 이가 있을까. 그런 이가 있다면 나무 탓이 아니라 세속에 깊이 찌든 마음 때문일 것이다.

나무의 숨결을 느끼지 못하고 산다는 것은 자연적 존재로서의 생태적 자아로부터 너무 먼 자리에서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우석제, 나무의 수사학)라 한 것도 나무에 젖지 못하는 이를 두고 한 말일 것이다.

세상의 간난 속을 사는 이일수록 나무를 만나야 한다. 나무 품속 깊이 묻혀야 한다. 맑은 눈으로 나무를 보면 나무는 언제나 편안을 느끼게 하고 위안을 준다. 나무는 편안과 위안을 줄 힘을 가지고 있다. 그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 비밀을 어느 신문의 한 칼럼(조선일보, 2021.5.12., 한삼희의 환경 칼럼)이 넌짓 일러준다. 칼럼은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수잰 시마드 교수가 했던 자작나무와 전나무 묘목을 이용한 실험을 소개하고 있다. 두 나무에 양분을 측정할 수 있는 장치를 설치하고, 전나무 묘목에는 빛이 닿지 않도록 검은 천막을 덮어 광합성을 못 하게 했다.

그런 다음 일주일 뒤 찾아가 계수기를 갖다 댔더니 자작나무뿐 아니라 전나무에서도 ~~’ 하는 반응 음이 나왔다. 그 소리는 자작나무가 광합성으로 만들어낸 탄수화물 양분 일부가 전나무로도 건너간 반응이다.

자작나무가 영양 결핍에 빠진 전나무에게 양분을 나눠준 것이다. 양분 전달이 가능한 것은 땅속 균사가 두 나무를 연결했기 때문이다. 이 균사 연결망을 통해 나무들끼리 양분을 주고받는다.

산에는 키가 큰 나무 작은 나무, 줄기가 굵은 나무 가는 나무, 잎이 넓은 나무 좁은 나무……, 성질도 모양도 다 다른 갖가지 나무들이 오순도순 모여 산다. 산에 사는 나무 수는 하늘에 있는 별 숫자보다 많을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수많은 나무는 씨앗이 터 잡은 자리에서 저 홀로 나고 살면서도 서로 어울려 한 가족처럼 살아간다. 큰 나무라고 작은 나무를 깔보는 일도 없고, 굵은 나무라고 가는 나무를 얕보지도 않고, 잎 넓은 나무라고 잎 좁은 나무를 휘덮으려 하지도 않는다.

오직 한 가지 다투는 게 있다면 서로 하늘에 가까이 닿으려 하는 것이다. 그래야 햇볕을 많이 받을 수 있고, 그 볕으로 광합성을 잘하여 양분을 잘 만들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투면서도 나무는 나무에게 야속하지 않다. 약한 나무를 나 몰라라 하지 않는다.

시마드와 그 제자들의 연구는 이어진다. 큰 나무는 자기의 그늘에 가려 광합성에 어려움을 겪는 작은 나무들을 돌본다는 사실도 확인했다고 한다. 시마드는 큰 나무를 중심 나무(Hub Tree)’, 또는 엄마 나무(Mother Tree)’라고 불렀다.

그뿐 아니다. 나무가 친족을 알아본다고도 한다. 중심 나무가 친족 나무들에게 더 많은 양분을 나눠준다. 나무가 해충이나 병원균 공격을 받으면 그 정보를 땅속 연결망을 통해 이웃 나무들에 알려 방어 물질을 생성하게 해준다. 그래서 벌채하더라도 중심 나무는 남겨두어 새로 난 묘목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했다.

이 연구가 사실이라면 나무도 느끼고 생각할 줄을 아는 것 같다. 그것은 제 새끼를 사랑할 줄 아는 동물의 본능처럼 나무의 본능일 수도 있다. 어쨌든 양분 넉넉한 나무가 배고픈 나무를 돕고, 붙이를 아낄 줄 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돕고 살자는 자각을 세워 서로를 위해 주려는 것도 아니고, 핏줄의 연 때문에 붙이를 지키고자 하는 의도나 의무로 하는 일도 아니기에 나무의 본성에는 변함이 있을 수 없다. 어느 때 어떤 나무든 그렇게 사랑을 나누면서 그들의 삶을 이루어 나갈 것이다.

서로 위하고 살자면서 공정, 평등, 정의를 입버릇처럼 외치는 인간들은 어떤가. 권세를 많이 가진 이들일수록 그것을 더 많이 부리려 하고, 가난한 이들의 것을 오히려 앗아 저들의 욕심을 더욱 채우려 하지는 않는가. 내 편 네 편을 갈라 질시를 일삼지는 않는가.

이 땅의 많은 어린 것들이 버려지고, 고통받고, 심지어 죽임까지 당해야 하는 현실은 또 무엇을 말하는가. 오직 국민을 위한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 중에 진실로 자신을 내던지면서 국민을 사랑할 수 있는 이는 몇이나 되는가.

나무를 다시 본다. 큰 나무가 사는 곳에 작은 나무도 살고 있고, 굵은 나무 옆에서도 가는 나무가 잘 자란다. 큰 나무가 작은 나무를 사랑하고, 굵은 나무가 가는 나무를 도와주고 있다. 나무는 한 송아리에서 나온 붙이를 향한 각별한 정을 결코 저버리지 않는다.

나무는 서로 사랑하고 있다. 어떤 계산도 술수도 없는 사랑이다. 마냥 사랑하고 있다. 오직 무위의 사랑이기에 변하지도 않고 변할 수도 없는 사랑이다. 그런 사랑으로 사는 나무가 있는 산이 정겹다. 산에는 나무가 뿜어내는 사랑의 숨결이 끓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산을 오른다. 나무가 있어 정겨운 산을 오른다. 그 나무를 보러 오른다. 나무의 사랑에 안기려, 사랑의 나무를 안으려 산을 오른다.

사랑은 사랑을 낳지 않는가.(2021.5.13.)

                                                                      

 

내가 사는 첫날들

 

사십 년 넘는 세월을 두고 일기를 써 오고 있다. 오랫동안 써 오면서 한결같은 일이 하나 있다. 날마다 적는 것은 늘 내 살아온 날의 맨 끝 날이라는 것이다. 당연한 일일까. 어쨌든 나는 늘 생애의 끄트머리만 잡고 살아온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일기장의 끝에다 이따금 내일은 어떻게 올까.’라고 적을 때가 있다. 오늘과 다른 날이 올까, 궁금할 때가 많다. 똑같은 날을 살아본 적이 없다. 날짜가 어제와 다를 뿐만 아니라 하늘도, 산책길의 풀꽃도 어제와 같지 않은 것이 새삼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자연의 일이라 그렇다 하더라도, 내가 하는 일도 모두 그렇다. 날마다 얼굴 보며 나누는 아내와의 대화도 다르고, 어제와 같은 책을 읽어도 느낌이 같지 않고, 매일 걷는 만 보 걷기에서도 꼭 같은 걸음 수를 걸은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러니 어찌 같은 날이 있을까.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윤여정 배우가 몇 년 전 어느 방송 프로그램에서 “60세가 되어도 인생은 몰라요. 나도 처음 살아보는 거니까. 나도 67살은 처음이야.”라고 한 말이 세간에 회자하고 있다. 맞는 말이다. 누구도 자기 나이는 처음 살지 않는가.

나도 늘 새로운 날을 산다. 물론, 나에게 오는 날은 내가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날이다. 언제나 생애의 첫날이다. 요즈음에 와서 더욱 그런 느낌 속을 살고 있다. 어쩌면 그다지 놀라운 느낌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내 사는 날을 날마다 새로운 날로 느끼는 것은, 사실은, 다가오는 날에 대해서라기보다는 지나간 날을 돌아볼 때 더욱 그렇다. 늘 처음의 날을 살았던 것 같다. 내가 맞이한 날이 이전에도 살아보았던 날이었다면, 그렇게 보낼 수 있었을까. 그리 덩둘하게 살 수가 있었을까.

돌아보면 내 지난 생애는 거의 모두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시행착오란 겪어본 적이 없는 일을 처음으로 시도할 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닌가. 그러면 나는 생애의 모든 일을 처음으로 해내면서 살아왔단 말인가.

사실 그랬다. 모든 것을 처음으로 사는 듯했다. 자식으로도 부모로도 남편으로도 처음 살아봤고, 동료도 부하도 상사도 처음 겪어본 자리였고, 인정도 우정도 연정도 처음 느껴본 감정들이었다. 그런 관계들로 어느 날 어떤 이와 무슨 일을 할 때마다 내 몸짓은 언제나 처음인 듯 서툴기만 했다.

그 당시로써는 그럴 수밖에 없다거나 혹은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할 일이라고 여겼을지 몰라도, 지내놓고 보면 모두가 어설펐거나 틀렸거나 사리를 알지 못하고 했던 일이었던 같다. 그런 나로 인하여 힘들었거나 괴로웠거나 아팠던 이들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날들이 돌이켜질수록 심사가 가볍지 않다. 얼굴이 붉혀지기도 하고, 마음이 아려지기도 하고, 괴로움에 겨워지기도 한다. 그토록 나는 왜 모든 날을 헛살기만 했을까. 겪는 날마다 새로운 날이 되어 시행착오를 되풀이해야 했을까.

노자(老子)의 말씀을 듣노라니, 이런 구절이 아프게 와 닿는다.

본성으로 돌아오는 것을 늘 그러한 이치라 하고, 늘 그러한 이치를 아는 것을 밝음이라 한다. 늘 그러한 이치를 모르면 제멋대로 좋지 않은 일을 일으키게 된다.(復命曰常, 知常曰明 不知常 妄作凶, 道德經16)”고 했다.

그러고 보면 나는 늘 내가 누군지를 모르고 살았던 것 같다. 내 본성에 비추어 무엇을 어떻게 해야 일이 잘될 수 있는지를, 그 한결같은 이치를 모르고 하루하루를 지내왔던 것 같다. 그 이치를 아는 밝음[]’이란 현명함, 이것저것 두루 살필 줄 아는 통찰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것이 나에게 없었으니 맞이하는 날이 늘 첫날인 것 같고, 그 한결같은 이치를 모르는 처음앞에서 늘 서툴러야 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제멋대로 좋지 않은 일을 일으키게되어 내 일을 그르치는 건 물론, 남도 힘들고 아프게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이런 일들이 돌아보이는 것은 늘 처음이었던 그 쌓인 날들로 인해 나이가 좀 든 탓일까. 내 비록 처음 맞는 이 나이지만, 쌓인 날들로 든 나이라면 늘 그러한 이치를 조금이라도 알아야 할 것이 아닌가. 노자의 말씀은 이어진다.

늘 그러한 이치를 알면 너그러워지고, 너그러워지면 공평해지며, 공평해지면 왕이 된다.(知常容 容乃公 公乃王)”고 했다. 여기서 자연의 이치를 말하는 것이라 한다. “자연의 이치대로 하면 오래갈 수 있으며 죽을 때까지 위태롭지 않다.(道乃久 沒身不殆)”고 했다.

그랬다. 나는 늘 그러한 이치를 모른 채로 늘 새날을 맞았던 것 같다. 그래서 너그러워지지도 못했고, 공평해지지도 못했고 따라서 자연의 이치를 모르고 살던 날이 되곤 했던 것 같다. 그리하여 나는 늘 위태롭게 실수투성이로 살아왔던지도 모르겠다.

, 지금이라도 늘 그러한 이치를 알 수 있을까. 이제부터 맞는 날들은 낯선 날이 아니라 익숙한 날이 되어 너그럽고 공평해질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내일 올 날도 나에게는 여전히 낯선 날이 될 것만 같다. 또 어떤 시행착오가 나와 남을 고단하게 할지 모르겠다.

나는 언제까지 첫날만을 살아야 할까. 얼마를 더 살아야 늘 그러한 이치를 아는, 설지 않는 날들을 살아갈 수 있을까.(202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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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오늘도 산을 오른다. 봄이 무르녹고 있는 산은 하루가 다르게 푸르러지고 있다. 맨 먼저 봄을 싣고 온 생강나무와 진달래는 노랗고 붉은 꽃을 내려놓고, 새잎을 수줍게 돋구어내고 있다. 겨우내 제자리를 지키고 있던 감태나무 마른 잎은 새 움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가지를 떠난다.

지난가을에 떨어진 씨앗이 땅속에 들었다가 새싹이 되어 세상으로 눈을 내미는 것도 있을 것이다. 큰 소나무 아래 조그만 소나무가 기지개를 켜고 있다. 작년에 혹은 재작년에 태어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고 자란 나무들은 작은 것은 작은 대로, 큰 것은 큰 대로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나무들은 저마다의 모습으로 산다. 큰키나무도 있고, 떨기나무도 있다. 바늘잎나무도 있고 넓은잎나무도 있다. 늘푸른나무도 있고 갈잎나무도 있다.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도 있고, 기름진 흙 속에 몸을 담그고 있다. 높은 곳에 훌쩍 서 있는 것도 있고, 골 깊은 곳에서 하늘을 향해 긴 목을 뽑아 올리고 있는 것도 있다.

철 따라 붉고 희고 노란 꽃을 울긋불긋 피워내는 나무도 있는가 하면, 꽃은 보일 듯 말 듯 푸른 잎들을 치렁하게 돋우어내고 있는 것들도 있다. 가을이면 큼지막한 열매를 뚝뚝 떨어뜨리는 나무도 있는가 하면, 잔잔한 열매를 남몰래 땅에 묻는 것도 있다.

산에 꽃 피고 잎 돋아 푸르고 싱싱한 나무만 사는 게 아니다. 천명이 다해 잎을 다 떨어뜨리고 강대나무로 말라가는 것도 있고, 아예 드러누워 흙이 되어 가면서 뭇 벌레와 짐승들의 집이 되고 놀이터 노릇을 하는 것도 있다. 산에는 산 나무만 사는 것 아니라 죽은 나무도 함께 살고 있다.

산은 나무만 사는 곳이 아니다. 크고 작은 온갖 날짐승, 길짐승들도 살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잔살이들도 깃들인다. 어디 그뿐인가. 사람들도 터전 삼거나, 이따금 찾아들지라도 산을 의지하며 살지 않은가. 이 목숨들이 산 아니면 어찌 숨을 고를 수 있을 것인가. 죽어서 들어야 할 곳도 결국은 산이 아니던가.

이렇듯 산에는 갖은 나무를 비롯한 온갖 생명체들이 갖가지 모습으로 살고 있다. 산이 없다면 태어날 수도, 살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세상의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이며, 죽어있는 것들까지도 모두 산을 바탕 자리로 하고 있다. 산이 모든 것들을 태어나게 해주고, 살게 해주고, 죽어 묻히게 해주는 걸까. 산이 이 모든 것을 다스리고 있는 걸까.

아니다. 산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아무런 솜씨도 꾀도 부리지 않는다. 씨알이 날아와 앉았다고 갈무리하여 묻어주지도 않고, 새로운 생명이 태어난다고 건사하여 보듬어 주지도 않는다. 물길이 고르지 않다고 물을 대어 주거나, 난 자리가 척박하다고 기름진 흙을 채워주지도 않는다. 나는 대로 사는 대로 그냥 놔둘 뿐이다.

그래도 산은 이루지 못하는 것이 없다. 나고 살 자리도 깃들게 하고, 살다가 죽어서 들 자리도 틀게 한다. 살아 아리따운 꽃과 잎도 피우게도 하고, 죽어 새로운 생명이 되어 새 세상을 이루게도 한다. 향기도 감돌게 하고, 싱그러운 기운도 풍기게 한다. 산은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산에는 모든 것이 잘 피어나 잘살고 있다.

노자가 바로 이런 산의 모습을 보고 도는 언제나 무위하지만, 이루어지지 않음이 없다.(道常無爲而無不爲, 道德經37)”라 한 것이 아닐까. 산에 나무들이 죽죽 하늘 향해 뻗어나는 것이, 아름다운 꽃이 피고 푸름이 넘치는 것이, 뭇짐승들이 제 세상으로 한껏 뛰어노는 것이 바로 무위(無爲)’ 때문이라 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 산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해낸다. 모든 생명을 이루어내고 모든 기운을 일으키게 한다. “만물을 만들어 내지만, 제게서 비롯된 것이라 하지 않는다.(萬物作焉而弗不始, 道德經2)”는 말도 산을 두고 한 말일 것 같다. 이 산이 바로 ()’, 도가 바로 산이 아니고 무엇인가. 노자는 산에 산다. 산이 바로 노자다.

사람아, 누구를 위하여 무엇을 이루어내기 위하여 산다는 사람들아! 돌아보라, 누구를 위한다는 위선이 오히려 수많은 이들을 힘들게 하지는 않는가. 무엇을 이루어내려는 탐욕이 세상의 많은 것을 피폐하게 만들지는 않는가. 그런 이념들 때문에 세상이 조각나고 있지는 않은가.

노자는 또 성인의 말씀을 빌려 내가 무위하면 백성들은 저절로 교화되고, 내가 고요함을 좋아하면 백성들은 저절로 올바르게 된다.(我無爲而民自化 我好靜而民自正, 道德經57)”라 했다. 이 말씀의 뜻도 산의 도와 다르지 않을 터이다. 웬만하면 모든 걸, 모든 사는 일을 그대로, 그 모습 그대로 둘 수 없을까. 산처럼, 산의 도처럼-.

내 누구를 향해 무어라 하랴. 내가 산을 오르고 싶어 하는 건, 산같이 살지 못해 산을 그리고 있음이 아닌가, 그 무위의 도를 바라고 있음이 아닌가. 어찌하면, 언제쯤이면 그 산이 될 수 있을까. 그냥 살아도 마음이 자유로운 삶이 될 수 있을까.

오늘도 산을 오른다. 산이 아무것 하지 않아도 나무가 무성히 푸르러지고 있다. 원 없이 하늘을 우러르고 있다. 푸른 하늘에 흰 구름 한 점 유유히 날고 있다.(202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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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외로움

 

나무는 외로움을 모른다. 외롭다거나 외롭지 않다는 걸 겪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무엇이 외로운 것인가, 혼자 있는 것이 외로운 것인가, 여럿 중에서 혼자 외따로 되는 것이 외로운 것인가. ‘혼자라는 게 무엇인가. 그게 바로 저 아니던가.

나무는 애초에 한 알의 씨앗으로 땅에 떨어졌다. 그때부터 혼자다. 오직 흙과 물이 보듬어줄 뿐, 누가 그를 태어나게 해준다거나, 태어난 것을 자라게 해주는 손길이 따로 있지 않았다. 혼자서 싹이 트고 혼자서 세상으로 나왔다.

세상에 나와서도 혼자다. 바라볼 수 있는 건 하늘뿐이었다. 하늘을 바라면서 태양의 볕살을 쬐고 바람을 안을 뿐이었다. 뿌리에는 흙과 물이 있고, 가지에는 햇살과 바람이 있어 그것들을 의지 삼아 몸피를 불려 나갔다.

그랬다. 흙과 물과 햇살과 바람-. 그것들이 몸을 자라나게 해주었다. 물론 나무를 위해서만 그것들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세상에 있는 모든 것에게 손길을 준다. 다른 것들보다도 나무가 그 손길을 잘 받고 있을 뿐이다.

그 손길을 받아 둥치도 솟구치고 가지도 뻗어나고 잎들도 푸르게 달았다. 나무는 하늘이 그립다. 그곳에는 세상 어머니 품처럼 모든 게 다 있을 것 같다. 햇살과 바람뿐만 아니라 흙도 물도 하늘에서 내려주지 않으면 어디에서 날까. 나무는 오로지 하늘을 바라며 뻗어 오른다.

햇살은 가지에도 내리고 잎에도 앉는다. 그때마다 잎은 반짝반짝 빛이 난다. 바람이 불어와 더운 몸을 식혀 주기도 하고, 더욱 삽상한 생기를 불어넣어 주기도 한다. 그 빛과 생기로 싱그러운 그늘을 드리워 지친 이들의 안식처가 되게도 한다.

하늘은 나무에게 꼭 요긴한 만큼만의 볕살과 바람을 주는 것은 아니다. 온몸이 타오를 만치 볕을 내리쬘 때도 있고, 몸이 다 부서질 정도로 내리치는 비바람도 없지 않다. 갈증에 허덕이다 말라 들기도 하고, 커다란 가지가 우지끈 부러지기도 한다.

그럴 때도 나무는 햇살이며 바람을 탓하지 않는다. 큰비가 내리고 설한풍이 사납게 불어 온몸이 떠내려갈 뻔하거나, 눈 속에 폭풍 속에 묻혀 버릴 것 같은 때도 있지만, 좀 힘들면 힘든 대로 상처가 지면 지는 대로 견뎌낼 뿐이다.

제힘으로 이겨내거나 견뎌내지 않으면 무엇도 저를 안아주거나 덮어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아니다. 나무는 그렇게 어려울 때도 무엇이 저를 감싸주리라는 바람이나 기대조차도 가질 줄 모른다. 그 모든 것을 하늘이 주는 일로 알 뿐이다.

나무는 오직 혼자서만 산다. 밤이든 낮이든 혼자서 지내고, 어릴 때든 훌쩍 솟아서든 혼자서 산다. 그렇다고 나무에게 이웃이 없는 건 아니다. 여러 미물이며 뭇짐승들이 찾아와 함께 놀아주기도 하고, 그중에 벌 나비는 꽃가루를 물고 와 씨를 맺게도 해준다.

그런 것들이 찾아와 함께해 줄 때는 사는 일이 한층 정겹고 따뜻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들이 가버린다고 해서 서운하고 쓸쓸할 일은 없다. 오고 가는 모든 것이 모두 바람이 불고 햇살이 내리는 일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때로는 이웃 나무들과 함께 하늘을 우러르기도 하고, 때로는 어깨를 겯고 지내기도 하지만, 이웃에 기대는 일은 없다. 설령 같은 자리에 뿌리를 박고 산다 할지라도 저마다 틔운 물길로 생명수를 얻어 가지를 뻗고 꽃과 잎을 피운다.

나무는 오직 한자리에서만 산다. 태어난 자리에서 살고, 산 자리에서 숨을 거둔다. 넓은 세상을 모른다 하랴. 넓은 세상은 무엇으로 사는 곳인가. 자리다툼이며 얼굴 겨루기로 사는 곳이라지 않는가. 나무는 오직 제 자리, 제 얼굴로만 살 뿐이다.

나무는 세월 속을 살고 있다. 몸속에 그 세월을 하나하나 그으며 산다. 세월을 둥글게 그려나가다가 하늘이 준 세월이 다 찼다 싶으면 그대로 내려앉으면 된다. 자신이 만들어 내려 앉힌 잎들 위로 몸을 눕혔다가 또 어느 세월쯤에 태어났던 흙으로 다시 들면 된다.

나무는 그렇게 한 생애가 끝날 때까지도 외로움을 모른다. 외로운 것이 곧 자신의 삶이라 알기 때문일까. 아니다. 모든 것이 하늘의 일이라고 여길 뿐이다. 기쁨도 슬픔도, 즐거움도 괴로움도 모두 하늘이 준 일로 알 뿐이다.

사람아, 누가 외롭다 하는가. 일찍이 어느 시인이 말하지 않았던가.

 

외로운 사람아

외로울 땐 나무 옆에 서 보아라

나무는 그저 제자리 한평생

묵묵히 제 운명, 제 천수를 견디고 있나니

너의 외로움이 부끄러워지리

                             -조병화, 나무-외로운 사람에게

 

오늘도 산을 오른다. 나무를 본다. 오직 하늘을 바라며 홀로 홀로 서 있는 나무를 본다. 외로움을 모르는 외로운 나무들을 본다. 마음이 고즈넉해진다.

그 나무 가슴에 안고 산을 내린다. 걸음이 가든하다.(2021.3.24.)

                                                                   

 

나뭇잎 삶

 

오늘도 산을 오른다. 진달래 작은 몽우리가 수줍게 솟아오르고 생강나무가 노란 꽃을 터뜨리고 있다. 채 떨어지지 못한 나뭇잎이 앙상한 가지 아래서 대롱거린다. 이제 저 꽃과 더불어 잎의 움이 돋고, 마른 잎은 새 움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땅으로 내려앉을 것이다.

잎은 나뭇가지에서 움이 트는 것으로부터 한살이를 시작한다. 가지도 애채로부터 생애를 시작하지만, 애채가 힘을 가지게 되면서 움을 돋우고 그 움에서 애잎이 피어난다. 애잎은 연녹색을 띠면서 조금씩 자라나 진녹색으로 살빛을 바꾸며 세상을 차츰 푸르게 만들어 간다.

애잎은 마침내 짙푸른 큰 잎이 되어 꽃의 어여쁜 모습을 더욱 곱게 해주고, 열매가 맺히면 튼실히 자라게 해준다. 찾아오는 친구의 놀이터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제 난 가지를 싸안아 비바람을 막아 주기도 한다. 그뿐 아니다. 지친 이들에겐 편안한 그늘이 되어도 준다.

하늘이 푸르고 햇살이 눈 부시다. 반짝이는 햇살이 온몸에 내려앉는다. 잎도 반짝인다. 반짝반짝 해를 닮아가고 싶다. 하늘을 향해 가슴을 활짝 편다. 하늘이 그립다. 그 무한한 세상을 펄펄 날고 싶다. 잎도 가지도 하늘 향해 손을 높이 흔든다.

그렇게 한철을 지나면서 무성한 녹음을 이루어 산천의 생기를 돋운다. 세상만사 흐르고 변해가지 않는 것이 없거늘, 나뭇잎인들 어찌 무성하기만 할까. 사늘한 바람이 불고 서리라도 내릴 양이면 서서히 색깔을 바꾸어 가면서 그의 삶은 점점 불그레 익어간다.

그 익어가는 것은 가지를 위한 헌신의 몸짓일지도 모른다. 가지에서 받은 은혜를 돌려 갚는 일이라 할까. 찬 바람 불어오면, 잎이 가지를 감쌀 철이다. 가지와의 사이에 떨켜를 만들어 생명수의 흐름을 잎자루로 막는다. 가지가 차가운 겨울을 넉넉히 이겨내도록 해주려는 것이다.

이제 잎은 지난 일도, 앞으로의 일도 모두 내려놓고 남은 삶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 노랗게도 물들었다가, 불그레하게도 얼굴빛을 바꾸어 보았다가, 때로는 온몸을 불태울 듯 진홍으로 변신해 보기도 한다.

그렇게 불타는 듯한 모습은 보는 이들을 즐겁게 한다. 잘 익었다고도 하고, 고운 물이 들었다고도 한다. 그렇다. 한 생애를 정리해 가면서 삶이 잘 익어간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치 저 하늘의 맑은 노을빛처럼 고운 물이 든 것인지도.

그러는 사이에 몸피가 조금씩 줄어들면서 간직하고 있던 물기도 빠져나간다. 오직 마른 살갗밖에 남지 않았다. 올 날이 온 것이다. 발그레한 빛을 곱게 뿌리던 저 해도 건넛산 마루를 넘고 있듯이 인제 땅으로 내려앉을 때가 된 것 같다.

나뭇잎은 몸짓도 가볍게 땅을 향해 몸을 내린다. 나게 해주고 살게 해준 가지지만, 돌아보지 않고 내려앉는다. 달려 있을 때나 내려앉을 때나 그 마음이 별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가지도 담담하다. 잎새가 태어나는 것도, 떨어지는 것도 숨 쉬는 일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어떤 나무에는 여느 잎들이 다 떨어져 나가도 끈기 있게 달려 있는 마른 잎도 있다. 새롭게 태어날 어린 것들의 자리를 감싸 지켜주기 위해서다. 새것이 움틀 봄뜻이 느껴지기만 하면 미련 없이 내려앉을 것이다.

나뭇잎은 땅 위로 사붓이 내려앉았다. 한 생애가 막을 내린 것이다. 가지는 태어날 적의 제 자리이듯, 땅은 생애를 마칠 적의 제 자리가 아닌가. 제 자리에서 또 하나의 제 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저 우람한 가지도 아무 일 없었던 듯 또 새로운 생명을 맞이할 것이다.

세상 아무것도 달라질 게 없는 변화 아닌 변화일 뿐이다. 이제 나뭇잎은 땅속으로 들기만 하면 된다. 새로운 생명의 거름으로 몸을 바꾸면 된다. 거름이 바로 싹이 되어 언젠가 철이 돌아오면 새 생명으로 태어나면 된다.

나는 지금 푸른 철 다 보내고 마른 잎 생애를 살고 있다. 익어가던 물빛이 아직 조금은 남아 있어 그 빛깔을 즐기며 살고 있다. 이렇게 즐기던 어느 날, 나도 저 잎새처럼 땅으로 내릴 것이다. 지금의 내 발 자리가 내 자리이듯, 내려앉을 자리도 내 자리가 아닌가. 익은 몸짓으로 내려앉을 것이다.

보건소에 가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라는 걸 작성하고 왔다. 생애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왔을 때 구차스러운 삶을 이어가지 않겠다는 서약이다. 국가가 정한 법과 규칙에 따라, 임종 과정에 있다는 의학적 판단이 나면 인명 의료를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하겠다는 약속이다.

순순히 가겠다는 말이다. 저 나뭇잎처럼 아무 걸림도 미련도 없이 땅으로 내려앉겠다는 말이다. 잎새 하나 진다고 나뭇가지가 요동할 일이 없듯, 나 하나 간다고 달라질 게 아무것도 없는 세상을 조용히 떠나겠다는 것이다. 태어난 자연으로 곱게 돌아가겠다는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은 나뭇잎이다. 나뭇잎 삶이다. 나뭇잎처럼 해맑게 태어나고, 나뭇잎처럼 푸르고 붉게 살다가, 나뭇잎처럼 소곳이 가야 할 삶이 아닌가.

저 가지의 잎새처럼-.(2021.3.15)

                                                                     

 

모성의 희망

 

어느 낭송가가 낭독하여 유튜브에 올린 나의 글 어느 어머니의 유언이 조회 수가 5만 회를 넘어 6만 회를 바라보고 있다. 인기 연예인이나 유명 유튜버의 영상이 보여주고 있는 수십만, 수백만 조회 수에 대면 미미한 숫자라 할 수 있지만, 수필 한 편이 그토록 많은 관심을 끌 수 있다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은 아니라고들 한다.

그 관심은 글 내용 때문일 수도 있고, 낭독 효과 때문일 수도 있고, 두 가지 모두가 그 원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정감 짙은 목소리로 호소력 있게 읽어 가는 그 낭독 속의 글은 어떤 사연을 담고 있기에 흔치 않게 많은 관심을 끌 수 있는 것일까.

사십 대 초반에 공무원이던 남편을 저세상으로 보내고, 35년간을 홀로 오직 일녀삼남 자식들만 바라며 살아오다가 난소암 투병 끝에 78세로 세상을 떠난 어머니 이야기다. 장례식장에서 공개 그 어머니의 유서가 많은 이들에게 숙연한 감동을 주었다고 한다. (조선일보 2017.12.27.)

유서는 자네들이 내 자식이었음이 고마웠네. 자네들이 나를 돌보아줌이 고마웠네.’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다. ‘나를 어미라 불러주고, 젖 먹여 배부르면 나를 바라보는 눈길이 참 행복했다.’고 회고하며, 지아비 잃고 살아가는 험한 세상을 버틸 수 있게 해준 것도 모두 자식들이라 했다. ‘하느님 부르실 때 곱게 갈 수 있게 곁에 있어 주어 참말로 고맙다.’고도 했다. 사 남매가 성실하게 지내온 역정을 하나하나 토닥여 주면서 고맙다. 사랑한다. 그리고 다음에 만나자.’며 끝맺고 있다.

자녀들이 이 애틋한 유서를 읽어 가는 동안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끊이지 않다가 마침내는 온 장례식장이 흥건한 눈물바다를 이루었다고 한다. 그 유서에 서려 있는 어머니의 깊은 사랑에 대한 짙은 감동 때문임은 말할 나위 없다.

당신이 있어 자식들이 잘살 수 있었던 게 아니라, 자식들이 잘 돌봐주어 당신이 잘살고 행복했다고 한다. 곱게 세상을 떠날 수 있게 해주어 참으로 고맙다면서 슬픔에 잠길 자식들을 오히려 다독이고 있다. 그 오롯한 사랑에 감동하지 않을 사람 있을까.

이런 어머니의 자식들이라면, 바른 성정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하여 세상을 올바르게 살아가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자식이 바르게 성장하여 잘살아 준 자식을 두고 어머니는 고맙다고 하고 있다. 이 얼마나 사랑의 따스한 순환인가.

어머니의 자식 사랑은 물론 모성에서 나온다. ‘모성(母性)’을 사전에서는 여성이 어머니로서 가지는 정신적·육체적 성질, 또는 그런 본능이라 풀이하고 있다. 그런데 세상의 학설에는 모성은 본능이다.’라는 설도 있고, ‘모성은 사회화의 산물이다.’라는 설도 있는 모양이다.

모성은 인간만이 아니라 동물에게도 볼 수 있다. 펠리컨이라는 새는 먹이를 부지런히 날라다 부리 주머니에 갈무리해 두었다가 새끼들이 배고파할 때 먹인다고 한다. 먹이가 궁해지면 자신의 가슴 털을 뜯고 살을 찢어 먹이고, 병으로 죽어가기라도 하면 자신의 핏줄을 끊어 입에 넣어준다고도 한다. 이런 모성도 사회와의 산물일까.

모성이 본능이거나 사회화에서 생겨난 것이거나 간에 사랑이 없는 모성이란 있을 수 없다. 모성이란 사랑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즈음, ‘어머니는 있지만 모성곧 사랑이 없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큰 불행이 아닐 수 없다.

떠올리기조차도 살 떨리는 일이지만, 의붓자식이나 입양아를 무도하게 구박하여 마침내는 치사 혹은 살인으로 이어져 못다 핀 여린 목숨을 무참하게 꺾어버리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몸소 산고를 겪으며 얻은 자식도 학대하고 방치, 방기하여 무고한 어린 목숨에 참혹한 고통을 주거나, 심지어는 목숨이 끊어지게까지 하는 무서운 부모가 있다는 뉴스가 연일 들린다. 이십 대 친모가 세 살 아기를 몇 달 동안이나 빈집에 내버려 두고 돌보지 않아 아사 상태의 백골로 발견된 끔찍한 일도 있다지 않은가.

모성애19세기 이후 국가가 여성에게 아이 돌보는 본능을 강조하면서 생겨난 근대화의 산물이라는 주장도 있다지만, 누가 모성애 부성애며 그 숭고한 사랑을 부정할 수 있을 것인가. 지금 우리 사회에는 그 사랑을 거리낌 없이 팽개치고 일신의 안일만을 추구하는 부모들이 만연하고 있는 것도 같다. 장차 우리네 가정 윤리며 사회 도덕이 어떻게 치달아갈 것인지, 상상만 해도 캄캄한 절벽이 앞을 막아서는 듯하다.

그 절망의 구렁 속에서도 한 줄기 가느다란 빛살은 없지 않은 것 같아 여린 안도의 숨결을 가누어 본다. 어느 어머니의 유언장에 새겨져 있는 깊고 뜨거운 자애를 보며 감동의 눈물을 짓는 사람들이 있고, 그 유언의 사연을 소개하는 글 한 편에 공감해주는 수많은 사람이 있지 않은가. 그런 사람들이 있고 보면, 목숨 사랑의 불씨는 여전히 살아있다는 따듯한 안도감이 감돌기도 한다. 가녀린 희망의 꽃씨나마 소곳하게 안을 수 있을 것도 같다.

그 유언에 눈물짓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모성의 사랑에 대한 경외의 마음과 함께 진득한 그리움이 배어있지 않을까. 그 곡진한 마음을 전해주는 글에 쏟아지는 마음에는 자신도 그런 사랑의 어버이로 살고 싶은 소박한 희구가 녹아있지 않을까.

그런 마음들이 있다면 사람이 사람 되어 사람으로 사는 삶과 더불어 따사로운 사랑이며 그 희망의 꽃이 곱게 피어날 수 있지 않을까.

자네들이 있어서 잘 살았네, 자네들이 있어서 열심히 살았네…….” 그 모성의 눈물겨운 울림에 함께 눈물짓는 사람들이 있는 한.(2021.2.23.)

                                                                      

 

고사목 의자

 

오늘도 산을 오른다. 내가 산을 오르는 일은 물을 마시고 숨을 쉬는 일과도 다르지 않다. 그런 곳을 골라 찾아와서 살고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 일상으로 오를 수 있는 산이 내게 있다는 것이 여간 생광스러운 일이 아니다.

바람 소리, 새소리와 함께 산을 오르노라면, 온갖 나무들이 철마다 저마다의 단장을 달리하면서 언제 봐도 반가이 맞아준다. 상수리나무, 떡갈나무, 물푸레나무, 생강나무, 벚나무, 소나무, 노간주나무……, 내가 손을 흔들기도 전에 저들이 먼저 수많은 손을 흔들며 나를 맞아 준다.

산의 모습이 정겹다. 하늘 향해 싱그럽게 죽죽 뻗으며 서 있지만, 그중에는 잎을 다 지운 채 강대나무가 되어 서 있는 것도 있고, 그 몸통마저도 땅에 누인 것도 있다. 삶과 죽음이 함께 살고 있다. 생사를 따로 나누지 않는 나무들의 살이가 정겹다.

산을 오르노라면 아늑하고 호젓한 오솔길도 만나지만, 숨결을 가쁘게 하는 가풀막도 올라야 한다. 한참 오르다 보면 땀도 숨도 차오르고 다리도 뻐근해진다. 어디 쉴 곳이 없을까. 비탈의 가랑잎 위에 잠시 앉아 땀을 긋고는 다시 오른다.

어느 날, 산을 오르노라니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가풀막 중간쯤 쉬어 가고 싶은 곳에 긴 의자 하나 떡하니 놓였다. 잎이며 잔가지는 비바람에 다 쓸려 가고 훌쩍한 몸통만 서 있던 소나무 고사목이었다. 지난밤 세찬 바람이 불더니 그 큰 덩치를 땅에 눕힌 것이다.

쓰러져 누운 자리가 우연하게도 굽이진 가풀막의 한중간쯤이어서 쉬어 오르기 딱 좋은 곳이다. 그 우람한 덩치가 서 있는 걸 늘 보긴 했지만, 그렇게 쉽게 쓰러질 줄이며 쓰러져도 자리를 이리 긴요하게 잡아 누울 줄은 몰랐다.

소나무는 병을 얻어 강대나무가 되기도 하고, 다른 나무들보다 햇빛요구도가 높아서 빛을 제대로 못 받으면 고사하게 된다고도 한다. 어찌하였든 저의 명을 다하여 드러누운 것이지만, 나로서는 귀한 자리를 잡아 누운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경사진 곳은 남은 가지로 받쳐 가면서 비탈을 평탄하게 고르면서 누웠으니, 가풀막을 오르다가 가쁜 숨을 잠시 멈추고 앉아 쉬기가 더할 나위 없이 편한 모양새가 되어 있다. 마치 기왕 쓰러질 바에는 쓸모 있는 자리에 쓸모 있게 누우리라 작심이라도 하고 누운 듯했다.

나무는 쓰러져도 할 일이 많다. 개미를 비롯한 다양한 벌레들의 보금자리가 되어 그들을 살게 하고, 모든 팡이실의 온상이 되어 갖은 버섯을 돋게 한다. 그뿐 아니라 온갖 새, 다람쥐, , 멧돼지, 곰 등 크고 작은 짐승들의 놀이터가 되고, 이끼며 풀꽃들의 터전이 되기도 한다.

나도 이제 나무에 숨결을 기대는 생명체의 하나가 될 것이다. 나도 팡이실이며 뭇 짐승과 한 족속이 되어 앉아 쉬면서 땀을 씻고 숨을 고를 것이다. 목숨들의 숨을 고르게 해주고 있음에야 이 나무는 결코 죽은 것이 아니다. 나무는 죽어서도 다른 목숨들과 더불어 산다.

지금부터 나는 이 나무와 남은 생을 함께할 것이다. 아니, 이 나무는 나의 편안한 의자가 되어주고도, 또 긴 세월을 두고 하고많은 생명체들의 보금자리가 될 것이다. 쓰러진 나무가 흙이 되어 땅속으로 들기까지는 한두 세기의 세월은 족히 보듬어야 한다지 않는가.

산을 오를 때면 이 나무에 꼭 쉬어서 간다. 숨이 가쁘고 다리가 팍팍해서도 쉬지만, 이 나무를 보면 쉬고 싶어진다. 내가 이 나무에 앉아 쉬는 것은 힘을 얻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고마움에 대한 인사이기도 하다. 그렇게 앉았다가 오르면 정상이 훨씬 가까워진다. 정상에 오른 가슴이 더욱 넓어진다.

집을 떠나 멀리 갈 때가 아니면 산을 꼭 오른다. 정상까지 오를 겨를이 안 되면 이 의자가 있는 곳까지라도 반드시 간다. 비가 내려도, 눈이 날려도 오른다. 그런 날이면 이 의자가 더욱 아늑하게 느껴진다. 눈비를 함께 맞아주는 의자가 더없이 포근하다.

내가 필요로 하는 곳에 자리해 주는 존재가 누가 있고 몇이나 있던가.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은 이 자리에 오늘도 몸을 묻으며 숨을 고르고 땀을 씻는다. 아무런 걸림새 없이 온몸을 내어주는 그 마음에 기대어 내 마음도 깊이 묻는다.

나무는 천성이 그러한가. 내가 이 나무에게 마음을 묻고 있는 것처럼 다른 많은 것에게도 그 마음자리를 아낌없이 내어주고 있다. 이것이 타고 난 마음이 아니고 무엇인가. 나무가 안아주는 많은 것들과 더불어 나도 그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 여간 푸근하지 않다.

세상을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이치를 이 나무가 다시 돌아보게 한다. 세상에 외롭지 않은 존재가 어디 있는가. 외롭기에 이웃이 있어야 하고, 기댈 곳도 있어야 하지 않은가. 이 산중에 고즈넉이 기댈 곳이 있어 산이 더욱 포근해진다.

오늘도 산을 오른다. 내일도 오를 것이다. 고사목 의자, 그 아늑한 안식처가 있으므로.

나는 누구와 무엇의 의자가 되고, 안식처가 될 수 있을까.(2021.2.4.)

                                                                    

 

코로나 설날

 

오지도 가지도 못하는 설날이다. 아이들은 아비 어미를 찾아올 수 없고, 아비는 어버이의 차례를 모시러 갈 수도 없다. 일찍이 겪어보지 못했던, ‘코로나19’라는 모질고도 질긴 괴물 탓이다.

설날설다낯설다에서 왔고, 그래서 설날은 낯선 날’, ‘익숙하지 않은 날이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다더니, 올 설날이야말로 누가 말하듯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설날이 될 것 같다.

명절은 그리움의 날이다. 타향 객지에 나가 사는 붙이가 그립고, 고향 집에서 애태우고 계실 부모님이 그립다. 오늘 하루라도 저승에 계시는 어버이를 이승으로 모시고 싶은 마음에 더욱 그립다. 그런데도 안 만나고 안 모셔야 효도라는 구호가 참으로 해괴하다.

설날의 어원을 섧다에서 파생된 서러운 날에서도 찾기도 한다. 해가 바뀌어 나이를 먹어간다는 걸 서럽게 여긴다는 뜻이라던가. 그거야 자연의 일이라 서러울 것도 없지만, 올 설날은 말 그대로 서러운 날이 될 것 같다. 그 조그만 바이러스 하나 쉽사리 물리치지 못하는 인간의 무력이 서럽지 않은가.

사람의 그 무능이 안타깝고, 사람들을 잘 지켜야 할 임무를 지고 있는 사람들의 처사가 원망스럽다. 그렇지만, 그것을 아무리 안타까워하고 원망해도 당장 달라질 게 별로 없다는 것이 더욱 딱하고 답답하다.

이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조금이나마 어루만질 수 있는 길이 없을까. 멀리 떨어져 있을지언정 그림자로라도 만날 길이 없을까. 막연히 마음만 가까이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 거리를 조금이라도 좁힐 방도가 없을까.

아이들의 온라인 학습방법이 문득 떠오른다. 그래, 그렇게 해보는 거다. 부모님 차례를 모실 큰댁에 연락하여 시각을 맞추어 동시에 예를 올리자 했다. 객지 먼 땅에 있는 아이들에게는 화상으로 세문안을 하고 차례를 올리자 했다.

원단, 새해 아침 해가 올랐다. 큰댁에서 제수 진설을 모두 할 것이지만, 나도 조그만 상이나마 차리되, 지방(紙榜)은 큰댁에서만 모시도록 했다. 한 신주 아래 상을 하나 더 드리는 것이다. (ZOOM)을 에스엔에스에 연결하여 아이들을 불렀다.

약소하게나마 차린 상 머리에 아들, 며느리, 손주들이 화상으로 앉았다. 아이들은 환호를 불렀다. 할미는 손주들을 보고 화상을 얼싸안을 듯 감격에 겨워했다. 우선 세배부터 하라 했다. 제 아비, 어미에 이어 어린 것들이 손을 모으고 너부죽이 엎드린다.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세요. 그래그래 너희들도 아픈 데 없이 무럭무럭 잘 자라고, 올해도 좋은 책 많이 읽도록 해라. 세뱃돈은 통장에 넣어주마. 코로나가 물러나면 어서 달려오너라.

큰댁에서 진설이 다 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 지금 예를 올리지요. 분향은 큰댁에서 하고 강신례부터 함께해 나갔다. 잔을 드리고, 떡국에 숟가락을 꽂고 유식을 거쳐 사신례에 이르기까지 큰댁 형님과의 동선을 맞추려 했다. 화상 속의 아이들은 나를 따라 배례를 함께 해나갔다.

차례의 모든 절차가 끝났다. 부모님이 보고 계신다면 무어라 하실까. 즐겁고 기쁘게 여겨주실까. 마음으로 깊이 모셔야겠지만, 의식을 잘 치르는 것도 마음 못지않게 중한 것이 우리네 습속이라 생각하며 정성을 다해 모시려 했다.

큰댁과는 의례 시각을 맞추어 거리를 좁히고, 아이들과는 화상으로 함께한 코로나 설날-. 생전 처음 겪어보는 의례의 방법이라 낯설기는 했지만, 그렇게라도 하고 나니 그래도 산 설날이 된 것 같고, 그리움이 조금은 풀린 것 같다.

무슨 큰일 하나를 해낸 듯 뿌듯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오늘 아이들과 함께한 영상을 지인 몇 사람에게 보내며, 나는 코로나 설날을 이렇게 보냈노라며 자랑삼기도 했다. 현대 문명을 잘 부리고 있다며 부러워하는 속내를 전해오는 지인도 있었다.

견우직녀도 다리로 만났듯, 건널 수 있는 다리가 있다는 게 얼마나 기쁜 일이냐고 했다. ‘떨어짐쓸쓸함사이에 화상이라는 다리를 놓아 그 다리를 통하여 모습도 나누고 마음도 함께할 수 있어 즐거웠다고 했다.

아버지 어머니며, 붙이를 향한 그리운 마음을 푸는 일과 함께 그 모진 코로나를 이겨내는 성전을 치러낸 것 같기도 했다. 그놈들을 힘으로 쫓아내기가 어렵다면 마음의 성벽이라도 굳게 쌓아야 할 것이 아닌가.

오늘 코로나 설날, 마음의 승리 장군이 된 듯한 쾌감에 젖는다. 이놈의 코로나, 아무리 쳐들어와도 내 성벽은 절대 무너뜨리지 못할 거다. 제풀에 지쳐서 돌아가지 않고서는 안 될 거다.

나의 오늘 설날은 설지도 서럽지도 않았다. 내 앞에서 기를 못 쓰는 바이러스를 보며 익숙하고도 따뜻한 설날을 보냈다.

그 따뜻함을 든든히 누리기 위해 얼굴을 마스크에 다시 깊이 묻는다.

진정 설지도 서럽지도 않은 많은 설날을 위해.(2021.1.12.)

                                                                       

 

꿈이 가는 길

 

꿈이 왜 그리 많은지 모르겠다. 청운의 꿈, 그 희망이 솟고 활기가 넘치는 꿈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건 아니라도 봄날의 꽃잎 같고, 설한의 잉걸불같이 곱고도 따뜻한 꿈이라면 또 얼마나 생기로울까.

나이 탓일지, 몸의 기운 탓일지는 몰라도 요즈음 잠자리에 누웠다 하면 꿈이다. 눈만 감으면 몽롱한 꿈이 오래된 영사기의 낡은 필름처럼 어지럽게 돌아간다. 흘러간 세월 속에서 만났던 사람들이거나 몸담았던 장소들이 스쳐 간다. 몇 조각 남은 영상들이다. 꿈에서 벗어나거나 잠을 깨고 나면 거의 지워지고 아련한 자취만 머릿속을 가를 뿐이다.

영상 속의 사람들은 거의가 서러운 사람들이거나 어려운 사람들이다. 만나서 서럽도록 애틋한 사람들인가 하면, 만나면 서로 힘들기만 한 사람들이다. 어머니의 글썽이는 눈물을 보면서 숨죽여 울기도 하고, 맺힌 게 많은 사람을 만나 진저리를 내기도 했다. 만남이 기뻐서 얼싸안고 춤이라도 추고 싶은 사람들은 어디에 있을까.

근무지에 부임한 첫날이었다. 내가 근무할 장소를 찾아가야 하는데, 언덕도 나오고 벼랑도 맞서고, 녹슨 원통 같은 게 앞에 놓여 그 속을 기어들기도 하면서 헤맸지만, 아무리 헤쳐가도 길이 나오지 않았다. 한참 찾아가다가 보니 임무를 수행해야 할 시간이 다 끝나버렸다.

어느 날은 검은 옷을 입고 음흉한 미소를 띤 사람이 내가 자는 방문 앞에 나타났다. 마루 끝에 걸터앉아 다시 한번 소름 돋는 미소를 흘리더니, 문 안으로 성큼 팔을 집어넣어 걸린 문고리를 벗기려 한다. 제대로 터지지도 않는 비명과 함께 몸부림치다가 깼다. 나를 딴 세상으로 데려가기 위한 사람이던가.

길을 가다가 시궁창에 빠져 온몸이 오물투성이가 되는가 하면, 친구라고 만났던 사람이 야멸차게 돌아서는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보기도 하고, 까마득히 지워져 있던 인물이 불쑥 나타나 평온을 마구 깨트리기도 했다. 그 파란의 기억 조각 너머로 가라앉을 듯한 피로감이 젖어오기도 했다.

나에게는 기쁘고 즐겁고, 환희와 활력이 넘치는 꿈이 왜 찾아오기가 어려운 걸까. 왜 그리 아쉽고 아리고 안타깝고 힘든 꿈이 주로 오는 것일까. 내 살아온 이력과도 무관치 않은 것일까? 내가 그토록 순탄하고 평안하게 오지 못했던가.

사실, 내 살아온 세월을 돌아보노라면 따뜻하고도 떳떳하게, 편안하고도 영예롭게 살아온 날이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나를 위해 갖은 인내와 고통을 감수해야 했던 사람들도 많았을 것 같고, 나로 인하여 불편과 어려움을 겪었을 사람들도 적지 않았을 것 같다. 그렇게 면구하고도 염치없이 살아온 세월을 돌아볼수록 몸과 마음이 가볍지가 않다.

어쩌면 감은 눈 속으로 어지럽게 떠오르는 내 꿈이란 그런 인과에 대한 응보인지도 모르겠다. 그 업보가 오랜 세월을 두고 내 속에 쌓이고 쌓여 오다가 더 감당하기가 어렵게 되자 터져 꿈으로 나오는 것은 아닐까.

잠들어서도 꿈을 꾸어 마음이 쉴 사이가 없고, 깨어나면 몸의 감각이 열려 사물과 접하면서 날로 마음의 다툼을 일으킨다. (其寐也魂交 其覺也形開 與接爲構 日以心鬪, 『莊子』 齊物論)”라고 한 장자(莊子)의 한 구절은 그런 나를 두고 한 말인지도 모르겠다.

잘 때는 어지러운 꿈결에 젖느라 마음 편히 가눌 수 없고, 깨어서는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따라 갈등을 일으키다가, 다시 잠자리에 들면 또 어지러운 꿈속을 허덕이고……. 그런 험한 고리를 돌고 도는 것이 나의 삶이란 말인가.

어찌 살아야 할까. 어찌해야 그런 꿈 안 꾸고도 잘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장자는 진인(眞人)을 앞세워 잠잘 때는 꿈을 꾸지 아니하며, 깨어서도 걱정하는 일이 없다. 정신은 순수하고, 혼은 지치지 않는다. 허무 염담하여 자연의 덕과 합치하고 있다.(其寢不夢 其覺無憂 其神純粹 其魂不罷 虛無恬惔 乃合天德 『莊子』 刻意)”라며 그 길을 제시하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정신이 맑고 혼이 생기가 있으며 허무하고 염담하면 자연의 덕과 맞아 잠을 자도 꿈이 없고 깨어서도 근심이 없게 된다는 뜻이겠다. ‘허무염담(虛無恬惔)’에 답이 있는 것 같다. 비어서 아무것도 없고[虛無], 욕심 없는 깨끗한 마음[恬惔]을 가지면 잠자리 꿈자리도 거침새가 없이 편해져서 자연의 삶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이다.

이 진인의 경지를 내 어찌 바라고 따를 수 있을까. 상념이 다시 아득해진다. 결국, 내 꿈이 가는 길이란 내가 살아온 길에 다름 아닌 것 같다. 삶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꿈은 항상 내 잠과 함께할 것이지 않은가.

오늘도 해거름 산을 오른다. 산은 언제나 아늑하다. 나무가 있기 때문이다. 나무는 발가벗은 몸이 되어 파란 하늘을 우러르고 있다. 잎들이 풋풋하고 치렁하던 때며 색색 빛깔로 물들이던 시절을 모두 벗었다. 그 모습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떨쳐버리고 탈속한 선인 같기도 하다.

서 있는 품이 더없이 편안해 보인다. 그 모든 것을 떨칠 때 한때의 집착이며 미련도, 욕망이며 근심도 다 내려보냈을 것 같다. 그런 것을 다 떨쳐버렸다면 저 나무의 꿈인들 얼마나 고요하고 맑을까, 그 잠은 또 얼마나 아늑할까.

오늘 밤 꿈속에서는 저 나무를 만났으면 좋겠다. 저 나무가 되었으면 좋겠다.(2021.1.10)

                                                                       

 

세상 여행

 

날이 가고 달이 가고 해가 간다. 그들이 가는 속을 내가 살고 있다. 그들이 갈 때 어떻게 가는가. 보고 듣고 겪고 느낄 많은 것을 만들고, 주고, 남기고 간다. 세상을 둘러보면 온통 그것들이 남기고 간 것들이다. 하늘이며 땅이 그렇고, 산이며 물이 그렇고, 나무며 풀이 그렇고, 꽃이며 열매가 그렇다.

어디 그뿐이랴. 세상 만물, 만사가 그것들이 만들지 않은 것이 없고, 남기지 않은 것이 또한 없다. 그것들에 의해 또 많은 것이 태어나고, 살아가고, 병들고, 죽어가고 있다. 그렇게 하면서 세상의 온갖 희로애락을 다 겪게 한다.

사람들은 그 속을 여행하기에 걸음이 분주하다. 하늘도 땅도 보고 밟아야 하고, 산도 물도 오르고 젖어야 한다. 나무와 풀을 보며 아늑함을 느끼기도 해야 하고, 꽃이며 열매를 안아 보듬기도 해야 한다. 그렇게 모든 걸 사랑으로 대하며 서로 나누면 얼마나 좋은가.

사람과 사람이 섞여 여행하는 사이에 볼 것 못 볼 것, 들을 것 못 들을 것을 다 보고 들으며, 겪을 것 못 겪을 것, 느낄 것 못 느낄 것을 다 겪고 느끼면서 세상을 돌아다닌다. 그 여행이란 즐겁고 기쁘기도 하지만, 힘들고 고달프기도 한량없다. 즐겁다고 느낀 것이 어느새 고통으로 다가오고, 희열로 달뜬 일이 찰나에 슬픔을 불러오기도 한다.

천지신명이 사람을 낼 때, 세상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듯이 그 모든 것들과 더불어 잘 살라고 했을 것 같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것들과 서로 위하며, 마음 서로 주고받으며 살고 있는가. 어쩌면 더 많은 하늘과 땅을 차지하고, 저 산과 물을 제 것으로 만들까, 어떻게 하면 나무며 풀을 제집 것이 되게 하고, 저 꽃과 열매로 제 속을 채울까에 매몰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속을 채우려 하는 사이에 기뻐하다가도 슬퍼하고, 아늑하다가도 속을 끓이고, 사랑하다가도 원수가 되고, 행복을 누리다가도 불행의 구렁에 떨어지고, 정을 주고받다가도 등을 지고, 서로 마음을 모으다가도 갈라지기도 한다.

사람들은 왜 이런 분란에 빠져야 하는가. 마음을 더욱 깨끗하게 하려고 그리하는가. 정신을 더욱 맑히려고 그렇게 하는가. 그 많은 것을 제 것을 만들어서 제 속을 채우면 마음자리가 순량하고 소박해지는가. 아니다. 오직 육신의 치레를 위한 일일 뿐이다. 육신이 좀 더 좋은 걸 먹고 입게 하고, 좀 더 편안한 곳에 살고 자게 하고, 그 이름을 올리고 싶어서 하는 일이 아니던가. 그런 것을 얻어 세상을 휘두르는 권력으로 삼으려 함이 아니던가. 그 탐욕에 어찌 근심, 걱정이 없을 것인가.

육신이란 무엇인가. “육신은 상처 덩어리에 불과한 것/ 병치레 끊일 새 없고 욕망에 타오르고/ 단단하지도 영원하지도 못한 껍데기 (법구경)”일 뿐이라 하지 않는가. 그 껍데기의 호사를 위해 온갖 제물 바치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 제물이 호화로울수록 무언가를 크게 이룬 것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그러는 사이에 그 마음과 정신이 피폐해지면서 그간에 쌓아 올린 이름이며 자리를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뜨리기도 한다.

그런 속을 우리는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그런 열병을 앓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걸 사람들은 세상 사는 일, 그 여행이라고 알고 있다. 탐욕하는 것이 많을수록 호화 여행이라고 믿는다. 이런 여행을 꾸역꾸역 이어나가야 하는 걸까. 이어나가야 한다면 어찌해야 하고, 그렇게 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답을 내려 줄 이 없어 우리는 고독한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원초의 고독 속을 살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진리의 말씀>은 우리의 고독을 이렇게 들여다보고 있다.

이미 이 세상의 여행을 마치고 / 근심과 걱정을 떠나 / 모든 속박을 끊고 자유를 얻은 사람 / 그에게는 털끝만 한 고뇌도 없다.(법구경)”

세상의 여행을 마친다니? 그래야만 근심과 걱정을 떠날 수 있단 말인가. 그렇게 하여야만 모든 속박을 끓고 자유 얻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세상이라야 털끝만 한 고뇌도 없을 수 있다는 말인가. , 고뇌 없는 세상이란 얼마나 황홀한 경지인가!

그 경지를 이 세상의 여행을 마쳐야만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이 세상 여행을 마친다.’라고 하는 것은 무슨 말씀인가. 이승을 하직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것을 갈음할 수 있는 무슨 깨달음을 얻으란 말인가. 산목숨이 하직은 어떻게 해야 하고, 옹졸한 목숨이 깨달음은 또 어찌 얻으란 말인가. 깨달음을 얻지 못하면 살아도 산목숨이 아닌 건가.

진리는 우리에게 늘 숙제다. 자유를 얻어 고뇌 없는 곳에 이르자면, 과연 어찌해야 할까.

그 답을 찾아 흐르는 세월을 따라 다시 먼 세상 여행을 떠나야 할까 보다.(2021.1.1.)

                                                                    

 

삶을 잘 사는 것은

 

세월이 흐르고 있다. 흘러가면서 남긴 자취가 내 안에 쌓여간다. 누가 불러서 오는 것도 아니고, 등을 밀어서 가는 것도 아닌 게 세월이지 않은가. 그렇게 자연으로 흘러오고 흘러가면서 굳이 자취를 남기는 세월이 가시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쌓이는 세월의 자취가 몸피를 더해간다 싶을수록 그 자취에 남은 세월이 이따금 돌아 보인다. 돌아보아 따뜻하고 즐거운 일만 있다면야 얼마나 아늑한 일일까. 그렇지 않은 일이 돌이켜질 때면 아린 마음을 거두기가 어려워지기도 한다.

어느 날 서가를 뒤지다 보니 오래 손길이 닿지 않아 머리에 먼지가 까맣게 앉은 책이 보였다. 언제 적의 책인가 싶어 빼어보니 이십여 년 전에 산 것이다. 뒤쪽 속 표지에 이렇게 적혀 있다.

ㅇㅇㅇㅇ와 함께 서울역에서 사다.”

모년 모월 모일 배웅하는 아들과 함께 서울역에서 타고 갈 차를 기다리며 책을 샀다는 말이다. 그러고 보니 지난날의 기억이 구름 속에서 어슴푸레 나타나는 그믐달같이 떠오른다.

그때 나는 볼일도 보고, 혼자 힘들게 대학원 공부를 하고 있는 아들도 만나 보기 위해 서울을 갔었다. 볼일을 마치고 아들과 함께 서울역으로 와서 저녁을 함께 먹고 내려갈 차를 기다리면서 서점에 들러 책을 하나 샀다. 아들의 손길을 뒤로하며 집으로 향했다.

아직 젊은 시절이라 현직의 일이 녹록지 않을 때였다. 아들과 함께 산 그 책은 만만히 읽을 수 있는 책도 아니어서, 언제 겨를이 주어지면 다잡아 읽으리라 하고 서가 깊숙이 꽂아두었다. 그걸 여태껏 까마득히 잊어버린 것이다. 읽기가 쉬운 책이 아니기도 했지만, 나의 나태도 한몫했을 것이다.

책값을 보니 그 당시로써는 적은 액수가 아니었다. 한창 공부 중인 아들은 용돈에도 매우 궁색했을 것이다. 몇 푼 용돈을 쥐여주면서 좀 더 넉넉히 주지 못해 마음이 걸렸었다. 그러면서도 적잖은 돈을 들여 그 책을 사고, 그러고서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니-.

잘 읽지도 못할 그런 비싼 책을 사면서도 아들 용돈은 왜 푼푼이 주지 못했던가. 그렇게 산 책이라면 열심히 읽었어야 할 게 아닌가. 허식과 아집에 차 있던 이 아비가 야속하게 여겨졌을지도 모를 아들을 생각하니 얼굴도 달아오르고 마음도 찔려온다.

지금 중년에 든 그 아이는 어려움을 이겨내고 나름의 성취를 하여 제 일을 잘해 나가고 있다. 이제야 그 책을 펼쳐 읽노라니 아들의 모습이 다시 켕겨 온다. 그때 아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따뜻한 마음을 베풀어주지 못한 것이 민연스러울 뿐이다.

그뿐이랴, 내 살아온 모든 일이 다 그런 것 같다.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어 온전한 사랑을 준 기억이 별로 없다. 오히려 나로 인해 불편과 고통을 느껴야 했던 사람이며, 그런 일들도 많았을 것 같다. 그렇다고 나의 일을 버젓하게 이루기라도 했는가. 그렇지도 못했던 것 같다.

오직 나만을 아는 욕심과 집착 때문에 남을 돌아볼 줄도 몰랐고, 그런 것만을 최선으로 알았던 아집 때문에 남모르는 고통도 번민도 없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니 무슨 일인들 떳떳하게 이룰 수 있었으랴.

때에 안정되고 자연의 변화에 순응하면 슬픔이나 즐거움은 끼어들 수가 없는 것이다. 이것이 예부터 이르는 하늘의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인 것이다. (安時而處順 哀樂不能入也 古者謂是帝之縣解, 『莊子』 大宗師)”라 한 성인의 말씀을 새삼스레 뇌어 보는 일이 참 부질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는 왜 주어진 처지며 운명에 순응하면서 미음을 편안히 열고 살지를 못했던가. 지금은 마음의 해방을 누리고 있는가. 아직도 수습 안 된 정신이 떨쳐내지 못한 아집의 켜들을 적잖이 움켜쥐고 있는 것 같다.

그래도 세월이 흘러가면서 남긴 자취가 나에게 가르쳐 준 것이 전혀 없는 것 같지는 않다. 얼굴 붉히며 돌이키는 젊은 시절의 옹졸했던 언행과 함께 조금은 그 안시(安時)’처순(處順)’에 마음자리를 걸고 싶어질 때가 있다. 다시 장자의 말씀을 따라 가본다.

대자연은 육체를 주어 나를 이 세상에 살게 하며삶을 주어 나를 수고롭게 하며, 늙음으로 나를 편안하게 해주며, 죽음으로 나를 쉬게 한다. 그러므로 자기의 삶을 잘 사는 것은 곧 자기의 죽음을 잘 맞이하는 길인 것이다. (夫大塊載我以形 勞我以生 佚我以老 息我以死 故善吾生者 所以善吾死也, 『莊子』 大宗師)”

나의 삶도 참 수고로웠다는 생각이 든다. 욕심과 아집 때문에 사는 일이 힘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늙으면 절로 편안해지는 걸까? 대자연이 이제 세월을 나에게 쌓아주어 늙게 한 것은 나를 힘들게 한 것들을 버리라는 말이 아닐까.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맞는 죽음은 얼마나 편안한 쉼이 될까.

삶을 잘 사는 것이란 모든 걸 비우고 사는 것이라는 말이겠다. 무심으로 무위로 살라는 말이겠다. 그러면 죽음도 잘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겠다.

과연 나는 얼마나 잘 비울 수 있을까. 그냥 아무 걸림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잘 살고 싶다. 잘 죽고 싶다.(2020.12.13.)

                                                                      

 

내 삶 속의 작은 회심

 

세월이 조금은 쌓인 탓인지 가끔씩 지난날이 돌아보일 때가 있다. 허망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 세월 되도록 잘한 일이 무엇이며, 괜찮게 이루어놓은 일은 무엇인가. 별로 없는 것 같다. 구차스럽게 숨줄만 이어온 것 같아 누가 보지 않는데도 얼굴에 홍조가 인다.

그런대로 눈을 씻고 지난 일을 뒤지다 보면 집히는 게 전혀 없지는 않은 것 같아 작은 위안을 얻는다. 그중 하나가 바로 울릉문학회금오산수필문학회를 만든 일이다. 내가 아니면 못 했거나 늦어졌을 일이기 때문이고, 그런 것이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훨씬 나을 거라는 생각에서다.

십여 년 전, 몇 해 전에 근무했던 울릉도를 못 잊어 다시 근무지로 택하여 찾아갔다. 바다와 산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기기묘묘한 풍광이며 섬사람들의 순박한 인심에 매료되었던 기억을 늘 간직하고 있었다. 육지로 나온 후에는 그 감동과 감회를 책으로 엮기도 했었다.

두 번째로 그 섬을 찾았을 때는 초행 때의 감동보다 좀 덜하긴 했지만, 섬은 역시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운 풍광에 비해 문화적으로는 매우 척박한 곳이라는 데에 눈길이 돌려졌다. 감동에 이성을 더하여 섬의 삶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문학인들을 비롯한 여러 장르의 예술가들이 섬을 다녀가기만 하면 아름다운 작품이 이루어져 나오는데, 섬사람들 가운데서는 왜 예술 작품이 나오지 않는가. 그 정서의 샘이 없어서가 아니라 길어 올릴 두레박이 없어서일 거라는 데에 생각이 닿았다. 문학회를 만들어 그 두레박이 되어 섬사람들의 정서를 길어 보자 했다.

알음알음으로 찾아도 보고 권유도 하여 마침내 뜻을 같이하는 십여 명의 회원을 모았다. 봄이 무르익어가던 오월에 창립총회를 열고,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작품을 나누어 읽으며 기량을 다져갔다. 섬 살이의 애환을 그린 내용이 많은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문화원에서도 그 뜻에 호응하여 출판비 부담을 자임하고 나섰다. 단비 같은 일이었다. 회가 창립된 지 한 해가 될 즈음 드디어 회지 창간호를 내게 되었다. 녹음이 짙어갈 무렵 모든 회원을 비롯한 지역의 각계 인사들과 함께 창간호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그때 나는 개척민의 심정으로라는 제목의 창간사를 썼었다. 함께한 이들은 섬의 역사, 문화, 문학의 새로운 꽃을 피울 것이라는 기대와 긍지가 넘쳐났다.

그렇게 문학회를 만들어 회지 창간호를 내어놓고 전근이 되어 육지로 떠나왔다. 그 세월도 십여 년이나 흘렀다. 그 세월 속에 나는 섬사람들에게 잊혔을지 몰라도, 회지는 해를 거르지 않고 매년 나오고 있고, 회원들도 활동을 잘하고 있는 것 같다. 섬의 역사 한 부분을 개척했다는 자긍심은 지금도 남몰래 나의 것이 되어 있다.

수필을 삶의 즐거움으로 삼아온 지도 그럭저럭 반평생 가까이 되어가고 있다. 한 생애를 마감하고 산수에 묻혀 사는 지금은 더욱이 수필과는 뗄 수 없이 살고 있다. 이 생애 가운데 시 낭송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 시 외기를 함께 즐기고도 있다. 내가 오랜 세월 수필에 탐닉하고 있음을 안 낭송 회원 몇 사람이 수필도 함께 공부해 보고 싶다고 했다.

글이 좋아 함께 공부해 보고 싶다는데 어찌 기쁘지 않을쏜가. 지금부터 사오 년 전, 어느 초봄에 몇 사람이 모여 공부를 시작한 것이 오늘에 이어지고 있다. 처음에는 어느 교회당 뒷방이며 아파트 휴게실 들을 전전하면서 어렵게 공부했지만, 글쓰기를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두어 해 전부터 공립 도서관의 한 방을 얻어 공부하던 중에 도서관 평생교육 프로그램의 하나로 채택되면서 공부는 한층 활기를 더해 갔다.

공부해나가는 사이에 그 결과물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의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가수에게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무대가 필요하듯이-. 마침 내가 조그만 문학상과 약간의 상금을 받게 되었다. 그걸 종자 회비로 전액 내어놓고, 함께 공부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낭송 회원 중에 상당한 문단 이력을 가진 분을 회장으로 추대하여 문학회를 꾸렸다.

공부와 함께 합평회를 통해 작품을 나누어보는 수련을 거듭하다가 문학회를 시작한 지 한 해 만에 첫 회지를 내게 되었다. 갓 난 붙이를 처음 품에 안아보는 감격에 못지않았다. 처음으로 글과 이름을 책에 실어보는 회원들의 감격은 더욱 컸을 것이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회비도 알뜰히 모아 두 번째의 책을 낼 때는 종합 문예지에서 수필 전문지로 성격을 바꾸어 수필 공부에 더욱 진력하기로 했다. 문학회 합평회며 도서관 평생교육 수필창작과정을 통해 기량을 더욱 다져가며, 세 번째 책을 낼 때는 경북문화재단으로부터 출판비 일부도 보조받게 되었다. 수필을 향한 애정과 열정은 더욱 뜨겁게 타올랐다. 이제 우리의 책은 명실공히 문학 연마의 장인 동시에 그 결과의 산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찌 내 힘만이랴. 뜻을 같이해 줄 사람들이 없었다면 될 일이 아니었다. 그 산파역에 대한 조그만 긍지라도 여밀수록 마음 함께 모아준 사람들이 더욱 따뜻하게 느껴진다. 그렇게 문학을 향한 열정을 태워왔다 하나 성과를 말하기엔 아직 이를지 모른다. 다만, 나의 작은 애씀으로 인해 한 지역의 문화에 조그만 이바지라도 되었다면, 글과 친해지고 싶은 이들에게 여린 마중물이나마 되었다면 문학과 더불어 살아온 내 삶의 한 보람으로 새겨보고도 싶다.

이제 나에게, 새로운 일들을 해내기에는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다. 수필 공부에 애정 어린 정진을 거듭해감으로써 뜻을 함께하는 이들의 삶이 더욱 기꺼워질 수 있다면, 이보다 더한 보람이 무엇에 있을까. 못한 것이 참 많은 나의 삶 속에 작으나마 회심會心의 미소를 그릴 수 있는 일이라 해도 괜찮지 않을까.

오늘도 나는 가방을 들고 도서관 수필교실을 향해 나선다. (2020.12.2.)

                                                                     

 

자연을 알게 주소서

 

책을 읽다가 보면, 눈길을 딱 멈춰 서게 하는 구절이 있다. 그런 구절은 그대로 그 자리에서 붙박고 싶게 한다. 그 구절이 주는 공감과 공명을 오래 간직하고 싶어서일 수도 있고, 읽을수록 편안해는 마음속에 계속 머물고 싶어서일 수도 있다.

세상을 살면서 마음을 알아주는 이를 만나는 것은 얼마나 기쁘고도 즐거운 일인가. 마음을 더없이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이가 있다면 얼마나 고맙고도 포근한 일인가. 사는 일이 어렵고 힘들다고 느껴질 때, 안아주기도 하고 밀어주기도 하는 이를 만난다면 얼마나 따뜻하고도 생기로운 일이 될까.

어떤 책의 어느 한 구절은 바로 그런 사람을 만난 듯한 희열을 느끼게 하고 위안을 얻게도 한다. 그 구절을 어찌 떠나고 싶겠는가. 그 감동에서 깰까 싶어 어찌 다른 구절로 나가고 싶겠는가.

어느 날 장자(莊子)를 읽다가 문득 그런 구절을 만났다. 모든 걸 멈추고 말았다. 더 나아가고 싶지도 않았고, 나갈 수도 없었다. 눈길도 발길도 모두 그 자리에 들러붙는 듯했다. 나를 옴짝달싹 못 하게 한 그 구절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다.

한 번 몸을 받아 태어났으면 손상하지 않고 다해지기를 기다려야 한다.(一受其成形 不亡以待盡, 『莊子』 齊物論)”

이 세상에 한 몸 태어났으면 다치지 말고 자연스레 살다 가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나를 다치게 하는 일 없이 자연스럽게 살아왔는가. 아니다. 많이도 다치면서 살아왔다. 못 나서 다치기도 하고, 나서려다 다치기도 했다. 왜 난 대로 살지 못했던가. 무엇에 끌려 나서려 했던가. 그리하여 무엇을 얻었던가. 몸만 상하게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시진待盡이 아니라 자진自盡을 그려본 적도 있지 않았던가. 다음 구절들도 더욱 적나라하게 나를 비추고 있다.

사물과 서로 맞서고 마찰을 일으켜 뜀박질하듯 살아가면서 그 발길을 멈추지 못한다면 또한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與物相刃相靡 其行進如馳 而莫之能止 不亦悲乎)”

사람이 살다 보면, 사물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마찰이 어찌 없을까. 우리는 물건들, 물질들과 좀 많이 싸우며 살아가는가. 얻고, 지니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용을 쓰는가. 사람하고는 또 어떤가. 이기고, 짓밟기 위해, 그것으로 명예와 승리를 누리기 위해 또 얼마나 혈투를 벌였던가. 그것들을 쟁취하기 위해 뒤도 돌아볼 겨를없이 얼마나 숨 가쁘게 달려왔던가. 힘이 없어 그리하지는 못했을지라도 속은 그런 것에 매몰하지 않았던가.

그런 게 본연이 아니라는 거다. 슬픈 일이라는 거다. 그런 삶이 결국은 몸을 상하게 하고, 자연의 삶에서 벗어나게 한다는 거다. 그런 걸 모르는 사람이 없다 할 터인가. 알면서 그렇게 살고 있는가. 장자 님의 당연한 이 말씀이 가슴 깊은 곳을 새삼 찔러 오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그렇다. 난 애달프게 살고 있다.

평생을 발버둥 쳐오면서도 이루어 놓은 공은 없고, 고단하게 지치고서도 돌아갈 곳을 알지 못하니 애달프지 아니한가! (終身役役而不見其成功 苶然疲役而不知其所歸 可不哀邪)”

한생을 살아오는 동안에 나를 거쳐 가거나 내가 잡으려고 애썼던 일도 많았지만, 이루어 놓은 게 무엇인가. 허무한 자취만 어지럽게 그려졌을 뿐, 이게 나를 위하고 이웃을 위한 나의 공이라며 내세울 수 있는 게 무엇이 있단 말인가.

지난날 나를 스쳐 간 명함으로, 지금 지니고 있는 울[] 한 칸으로, 이게 나라고 내세울 수 있는 건가. 사는 일이 참 겹고도 곤고하다. 그 간난을 덮을 수 있는 것으로 나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그러고서도 돌아갈 곳은 오직 흙이며 바람일 뿐이지 않은가. 그래도 사람들은 나를 아직 살아 있다고 한다. 장자 님은 다시 준열하다.

사람들이 이를 일러 아직 살아 있다 하지만, 무슨 보탬이 되겠는가! (人謂之不死 奚益)”

나는 지금까지 무엇으로 살아왔으며, 그렇게 살아온 내가 지금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걸 모르면서도 내가 살아 있단 말인가. 살아 있은들 누구에게 무슨 보탬이 될 수 있단 말인가.

그랬다. 살려고 그리 애쓰는 게 아니었다. 내가 집착해온 것들이 나를 잘 살게 해주는 게 아니었다. 그냥 살아야 했다. 풀꽃이 피고 지듯이 그냥 그렇게 살아야 했다. 저 풀꽃과 사람이 무엇이 다른가.

나는 저들과 무언가 다를 거라는 착각 속에 살아오지는 않았던가. 그래서 저 풀꽃에는 없는 욕심들을 애써 품으려고 하지 않았던가. 장자 님은 이리하라는 계시의 말씀 한마디 없지만, 은근히 아프게 꾸짖고 있다. 그 임의 말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겉모습이 늙어감에 따라 그 마음도 따라서 늙어간다면 큰 슬픔이라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其形化 其心與之然 可不謂大哀乎)”

풀꽃이 철을 따라 피고 시들고 마르고 종내는 제 난 자리로 돌아간다고 아려하는 걸 보았는가. 늙는 게 무엇인가. 어차피 모든 것은 흘러갔다가 흐른 것은 제 자리로 돌아오는 게 아니던가. 마음이 그 변천을 일일이 왜 따라가야 하는가. 도법자연道法自然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세상의 일희일비에 울고 웃는 한살이가 참 아둔하다. 맺는 말씀의 울림이 더욱 역력하다.

사람의 삶이란 이다지도 아둔한 것인가. 나만 홀로 아둔하고, 아둔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을까.(人之生也 固若是芒乎 其我獨芒 而人亦有不芒者乎)”

임이여! 당신이 있지 않습니까? 당신이 아둔한 저를 일깨워주고 쓰다듬어주고 북돋우어 주기에 이 말씀 앞에 무한정 머물고 싶어지게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몇 말씀만으로도 저에게는 한량없는 위안이요, 등불이요, 그 등불을 들고 나설 수 있는 용기입니다.

임이여, 제가 섣불리 나서기 전에 조금만 더 곁에 머물면서 그 말씀의 참뜻을 한 번 더 헤아려 품게 해주소서. 그 무위를 살면서 자연을 알게 해주소서. 그 삶을 살 수 있게 해주소서. 그래서 한 번 받은 몸을 다치지 않고 시진待盡하게 해주소서. 임이시여! (2020.11.15.)

                                                                       

 

어리적어서 어쩔꼬

 

어쩌다 지나온 삶을 한번 돌아보는데, 문득 어리적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부모님은 나를 두고 가끔씩 어리적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군대엘 갈 때도, 학교를 마저 마치고 사회에 발을 내디딜 때도 이따금 엷은 미소와 함께 나를 쳐다 보시며 어리적어서 어쩔꼬?’라 하셨다.

나중에 그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았지만, 어떤 곳에도 그런 말은 없었다. 가장 가까운 말이 슬기롭지 못하고 둔하다.’를 뜻하는 어리석다였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고 한다.’ 하는데, 설마 자식을 두고 그런 뜻으로 말씀하셨을까. ‘어리적다어리석다의 묘한 뉘앙스의 차이를 생각할 때마다 나를 보며 미소짓던 부모님 모습이 다시 떠오른다.

나는 여덟 살 때까지 막내로 자라면서 부모님의 온갖 귀염을 다 받았다. 위로 딸 둘 아들 하나가 있었지만, 아들 둘을 내리 없앤 다음에 얻은 것이라 막내라고 여기며 온갖 귀염을 다 주셨던 것 같다. 그렇게 응석받이로 자라온 탓에 어리적게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세월이 쉼 없이 흘러 군대 생활을 거쳐 학교를 마저 마치고, 사회를 살아오는 사이에 부모님 모두 세상을 떠나셨다. 나도 맡고 있던 직책에서 정년을 맞이하고, 지금은 아버지가 누리신 세월보다 훨씬 더 긴 날들을 살아가고 있다. 어머니께서 이승에 남기신 연륜만큼 세상 빛을 볼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살아온 날이 살아갈 날보다 세 곱절도 더 넘을 것 같다는 짐작이 들 때마다 숱하게 쌓여 있는 지난날들이 슬몃슬몃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본다. 어려움을 겪는 가족들을 보면서, 그런대로 학업을 무난히 마치고 사회로 나왔다. 무슨 일이든 성실하게 해보리라 마음을 다지며, 해야 할 일,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려고 애썼다. 생각과 힘이 모자란 일에 대해서는 책망을 받기도 했지만, 인정을 얻은 일도 없지 않았다.

내가 해놓은 일을 제 것인 양 가져가서 제 얼굴을 내세우는 사람을 보기도 했다. 그때 나는 안타까움을 느끼면서도 아무 말 안 하고도 못 했다. 시간이 흐른 뒤에 바르게 밝혀지면 다행이지만, 밝혀지지 않아도 밝혀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런 세월이 쌓여 가면서 사회적 이력도 늘어나, 힘들게나마 한 기관을 책임져야 하는 자리에까지 이르렀다. 어떤 자리의 일이든 잘해보고 싶은 마음이 왜 없었겠는가. 내가 생각이 모자라 다른 이들에게 불편을 끼친 일도 있었던 것 같고, 하는 일들이 내 마음같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어려움을 느껴야 했던 적도 없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도 성대하게 베풀어주는 퇴임식을 끝으로 한 생애를 마감했지만, 돌아볼수록 아쉽고 부끄러운 일이 적잖이 떠오른다.

내 사사로운 삶도 그리 탐탁스럽게 이루어내지는 못한 것 같다. 집을 위해서나 나를 위해서나 모든 것이 덩둘했지만, 특히 물질을 다스리는 일에는 아주 손방이었다. 재물을 모으는 데도 솜씨가 없었지만, 소비에도 서툴기만 했다. 옷을 하나 갖추어 입는데도, 가구를 들여놓는데도, 심지어는 오랜 고심 끝에 집 하나 장만하는 데도, 이루어 놓고 보면 모두가 남보다 처진 것이었다. 들일 힘 다 들이고도 그랬다.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일만 해도 그렇다. 한 생애를 마감하고, 세상 자유 다 누리면서 느긋하게 살아보리라 하고 산과 물이 좋은 어느 한촌을 찾아 조그만 집을 지어 수년째 살아가고 있다. 아내는 집이 편치 않다고 이따금 불평을 늘이며, 지금도 더 나은 집을 그리고 있다.

살아온 일을 이리 돌이키다 보면 부모님이 나를 두고 걱정하시던 어리적다라는 말씀의 뜻이 다시 뇌어지면서 부모님이 그리워진다. 내 살아온 행적에 맞추어 그 말씀을 헤아려 보면 세상일에 재바르지 않고, 약삭빠르지도 못하다.”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어떻게 해야 저한테 이득이 되는지도 모르고, 그러다 보니 속셈을 차릴 줄도 모르고, 하는 일마다 곧장 손을 볼 것 같다는 걱정이 어린 말씀이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