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은 들꽃대로

 

강둑길을 걷는다. 날마다 걷는 나의 산책길이다. 강둑길을 걸으면 맑게 흐르는 강물을 보는 것도 즐겁지만, 길섶에 피어나는 온갖 풀이며 꽃들을 보는 재미도 내가 강둑을 즐겨 걷는 큰 까닭이다. 물은 물대로 풀꽃은 풀꽃대로 모두 길동무다.

철마다 다 다른 풀이며 꽃이 피고 지고 하지만, 오늘 강둑길에는 금계국 노란 꽃잎이 하늘거리고, 갈퀴덩굴 환삼덩굴이 우거지고, 쑥대며 큰김의털, 소루쟁이가 머리를 흔들고, 개망초가 큰 키 위에 노란 꽃술 하얀 꽃잎을 앙증하게 피워 내고 있다.

길섶 강 쪽 가장자리 온갖 풀들이 자욱한 가운데 보일 듯 말 듯 언뜻 보이는 저 붉은 것은 무엇인가. 풀숲에 가려 있어 지나칠 뻔했다. 풀을 헤치고 들어가 보니 마치 접시꽃 모양 붉은 잎을 어여쁘게 펼치고 있다.

꽃양귀비다. 종이처럼 얇고 넓은 꽃잎을 애교 부리듯 살랑거리고 있다. 눈길이 뗄 수가 없다. 뛰어난 미모를 가진 여인에 비유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전설을 가지고 있는 데는 까닭이 있는 것 같았다. 이 꽃이 왜 이런 풀숲에 묻혀 있을까.

몇 사람이라도 더 보게 하고 싶고, 나도 가까이 두고 보고 싶다. 꽃도 잎도 뿌리도 상하지 않게 조심조심 캐내었다. 봉지에 잘 싸서 집으로 가져와 화단 한가운데 곱게 심고, 물도 듬뿍 주었다. 옮겨 심어도 꽃 모양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게 고맙다.

이튿날 아침에 보니 똑같은 꽃을 또 한 송이 피워 냈다. 쾌재를 부르며 다시 한번 고마워했다. 이웃에게도 보여주었다. , 그런데 웬일인가, 아침에 그리 싱싱하던 것이 저녁 무렵에는 잎이 시들시들했다. 물기가 부족해서 그런가 싶어 물을 촉촉이 주었다.

이튿날 아침에 보니 더 많이 시들었다. 꽃도 고개를 숙이고 폈던 꽃잎을 닫았다. 물을 아무리 주어도 잎도 줄기도 맥없이 시들고 말라 갔다. 내가 무얼 잘못했나 싶어 아린 마음과 함께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꽃양귀비는 곧은뿌리 식물로 옮겨 심으면 뿌리가 상해 죽기 쉬워 씨앗을 바로 뿌려서 키운다고 한다. 옮겨 심은 뒤 핀 꽃은 뿌리에 남아 있는 수분과 영양으로 이승의 마지막 꽃을 피워 낸 것 같았다.

내가 못 할 짓을 한 것 같다. 제자리에 고이 두었더라면 꽃을 몇 송이나 더 피워 냈을 것이고, 꽃을 많이 피우다가 보면 보는 이들의 즐거운 눈길도 얻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쇠잔해져 가는 내 기력이 더욱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나는 지금 난병을 다스리는 중이다. 저 시들어가는 꽃과 잎이 내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내가 못 할 짓을 많이 해 몸이 이울고 있는 것이 아닌가도 싶다. 저 꽃은 일부러 거두지 않아도 제 씨로 스스로 꽃을 피운다 했으니, 혹 씨가 떨어져 내년 봄이면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나는 내 고단한 삶을 스스로 못 다스려 고마운 도움을 받고 있다. 고마운 제도가 고마운 분을 나에게 보내주었다. 그분의 도움으로 지내던 어느 날, 달걀형의 조그만 잎 위 하얀 꽃받침 속에 붉은 꽃이 피어 있는 꽃분 하나 가져왔다.

사진으로 담아 검색해 보니, ‘행운’, ‘당신을 향한 애틋한 마음이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는 클레로덴트룸Clerodendrum이란 꽃이었다. 아프리카의 어느 청년이 전염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구하고, 자신은 탈진하여 숨을 거둔 그 자리에 피어난 꽃이라는 전설도 가지고 있었다.

나에게 주는 그분의 정성인 것 같았다. 나의 생존만을 보살필 뿐만 아니라, 내 마음에도 위안을 주고 싶어 건네준 것 같다. 방 안 책상머리에 놓고 수시로 보며 물을 주기도 하고 보듬기도 하면서 이뻐했다.

이쁜 모습이 단순한 위안만이 아니라, 내 고적한 삶 속에서 바랄 것이 있다는 안도감 같은 것을 함께 주었다. 그렇게 잘 지내던 어느 날부터 잎이 하나둘 말라 떨어지기 시작했다. 뜻밖의 일이라 안타까워만 할 뿐, 손을 써볼 수가 없었다.

물을 주어도 소용이 없다. 마침내 잎이 거의 다 마르고 말았다. 나를 도와주는 분도 안타까워하며 싱싱한 것을 또 가져오면 되니 너무 상심하지 말라 했다. 보기 편치 않다며 밖으로 들어내었다. 볕이 쬐면 볕을 받고, 비가 오면 비를 맞는 시간이 흘러갔다.

이게 웬일인가. 어느 날 내다보니 마른 잎 떨어져 나간 자리에서 새순이 돋고 있는 게 아닌가. 본디 잎의 형태를 서서히 갖추어가고 있다. 잎이 제법 어우러지는가 싶더니 하얀 꽃받침이 솟아 나왔다. 곧 붉은 꽃을 솟구쳐내기 위한 준비다.

내 생기가 돌면서 기력이 소물소물 솟아나는 듯했다. 피어나올 붉은 꽃을 그리니 내 얼굴에도 가슴에도 꽃물이 드는 것 같다. 그렇구나. 제 살 자리가 따로 있구나. 꽃양귀비도 클레로덴트롬도 제 살 자리가 따로 있는 걸 모르고 괴롭히기만 했다.

내 속만 차렸구나. 그 자리 다시는 빼앗지 않으마. 들꽃은 들꽃대로 두어야 하는 것을!

내 사는 자리가 돌아 보인다. 내 기력을 다시 일굴 수 있는 자리는 어디인가.(2026. 6. 2)

                                                                 

 

댑싸리 전설(5)

 

이웃 밭에 난 댑싸리 싹을 괭이로 긁어 매주었다. 콩밭 고랑에 댑싸리가 듬성듬성 났다. 고샅에 서 있던 댑싸리에서 날아간 씨가 퍼뜨린 것이다. 밭 옆에 작물도 아닌 것이 나서 씨를 퍼드리는 것이 성가실 수도 있지만, 그래도 이웃은 말이 없다.

고샅의 댑싸리를 떠나보낼 수 없는 내 속내를 모르지는 않는다. 아내가 댑싸리를 기르려 했던 자리기 때문이다. 아내가 만든 밭의 한 부분을 떼어 이웃에 부치라 하고, 아내는 밭과 담장 사이에 나 있는 고샅에 댑싸리 씨를 뿌렸다.

그 씨에서 싹이 새파랗게 돋아날 무렵 아내는 댑싸리도, 밭도 볼 수 없는 곳으로 멀리 가버렸다. 병 자리에서 댑싸리가 좀 자라거든 고샅 양쪽에 한 줄로 심어 달라 하고는, 그렇게 심어진 댑싸리를 아내는 볼 수 없었다.

아내가 댑싸리를 왜 그렇게 심고 싶어 했던지를 나는 모른다. 댑싸리가 자라는 모습을 보니 복슬강아지처럼 아주 귀여웠다. 다 커서 바람이 조금 서늘해질 무렵이면 바알갛게 드는 물이 새댁 다홍 치맛자락처럼 고왔다. 그 모습을 보고 싶어서였을까.

나중에 알고 보니 댑싸리 어린잎은 식용으로도 쓰고, 여름에 말려서 이뇨, 강장, 동통, 변비 등에 약재로도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아내는 늘 어디가 조금씩 편치 않다고 했었다. 그런 치료에 쓰고 싶어서였을까. 왜 그러냐 물으면 내가 애를 먹여서 그렇다고도 했었다.

나에게 그런 용도를 말해 준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댑싸리를 심은 것도, 그것들이 나는 것을 보고서야 알았다. 아내는 귀엽고 고운 모습도 보지 못하고, 식용으로도 약재로도 써 볼 겨를도 없었다. 그 아리따운 모습을 내가 볼 수 있을 뿐이었다.

아내는 이웃에게 부치라고 준 밭에서 난 댑싸리도 크는 걸 봐 가면서 그것조차도 어떻게 쓸 모를 삼았을지도 모른다. 관상觀賞이든 이용利用이든 그 용도를 마음속에 지니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리할 수 없어 그 밭에 난 댑싸리를 매 주었다.

고샅에서 난 것만은 아내의 마음을 따라 제대로 키우고 싶었다. 댑싸리는 내가 씨를 심지 않아도 제가 떨어뜨린 씨로 제 모습을 잘 가꾸어 갔다. 그렇게 댑싸리가 나고 피고 지기를 아내가 간 햇수만큼이나 거듭하고 있다.

씨가 떨어진 대로, 나고 자라는 대로 가만두면 온 고샅이 온통 댑싸리로 덮일 수도 있다. 그러면 다니는 길에 난 댑싸리 싹은 뽑아내거나 어떤 방법으로라도 없애지 않으면 안 된다. 나서 자라려는 걸 무참히 뽑아내기가 힘들기도 하지만, 안쓰럽기도 하다.

올해는 아예 양쪽 섶만 그대로 두고 가운데 길에는 풀 생장을 억제하는 부직포를 덮기로 했다. 그렇게 하는 걸 아내도 괜찮아할 것 같다. 댑싸리는 길섶에서 잘 나고 잘 자라주었다. 씨 떨어진 자리에서 몰려 난 것을 조금 자라면 한 줄로 옮겨 심어야 한다.

새끼손가락 크기쯤 자랐을 때 한두 포기씩 뽑아 고샅 담을 따라, 밭 두둑 옆 섶을 따라 나란히 심었다. 제 난 자리보다 살기가 아무래도 못 한 모양이다. 딴은 정성 다해 옮겨 심고, 부지런히 물 주고 해도 곧장 시들어버리기도 했다.

어쩌다 내가 물 주기를 잊거나 집을 비우는 날이면 이웃이 와서 물을 주기도 했다. 속 모르는 사람 같으면, 소출이 나는 것도 아닌 걸 두고 뭘 저리 아웅다웅하느냐 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 이웃은 내가 간직하고 있는 그 전설을 알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 이웃은 골목 하나 사이에 두고 우리 집과 각별하게 지내는 사이다. 그 부인은 아내와 더욱 각별했고, 나는 남편과 더불어 주붕으로 지내고 있다. 아내가 영정이 되어 제단에 앉았을 때 먼 길을 마다치 않고 서둘러 달려와 통한을 토로하던 이웃이다.

아내를 그려선지, 홀로된 나를 아리게 여겨선지 간혹 여러 가지 먹거리며 반찬거리를 챙겨주기도 했다. 그렇게 아내를 생각하는 마음과 나를 챙기는 마음으로 댑싸리에게도 물을 주곤 했을 것이다. 아내도 보고 있을 것이다.

옮겨심은 것 중에 시들어 소생 가망이 없는 것은 애석하지만 뽑아내고 다른 것을 옮겨 심는 수밖에 없다. 옮겨 심는 것 말고는 씨 자리에 난 것을 다 그대로 두었다. 옮겨 심은 게 다 잘 살아도 그 자리에 둘 것이다. 어느 것인들 아내 마음을 담아 나지 않은 것이 있으랴.

그렇게 가꾸다 보면, 올해도 아내의 바람대로 한 줄로 보기 좋게 잘 기를 수가 있을 것이다. 여름이 되면 복슬복슬한 잎사귀를 날리며 어여쁜 모습으로 안겨올 것이고, 가을이 되면 바알간 단풍 빛이 되어 보는 눈을 어리게 할 것이다.

그 빛이 지면서 여물린 씨앗은 겨울바람을 안으며 땅으로 내려앉을 것이다. 다시 봄이 오면 그 씨앗은 싹을 틔울 것이고, 나는 또 아내의 말을 따라 한 줄로 옮겨 심을 것이고, 아내는 그 광경을 멀리서 지켜볼 것이다.

나는 지금 난병 진단을 받아 놓고 있다. 그 병의 끝이 어디일지는 몰라도, 그 끝자락까지 아내와 나의 댑싸리 전설은 이어질 것이다. 그 난병 다스리러 집을 비우는 날이면 이웃은 나 대신 기꺼이 물을 줄 것이다. 그렇게 전설은 오래 살아갈 것이다. (2026. 5, 17)

                                                                      

 

그때가 오면

 

해사하고도 화사하게 강둑을 수놓던 강둑의 왕벚꽃이며, 산을 무늬 짓던 산벚꽃이 다 지고, 꽃의 자리를 푸른 잎들이 차지하고 있다. 꽃이 피었을 때가 먼 옛적인 듯 아스라하다. 저 꽃 속에 있을 때는 나의 복지인 듯 아늑했는데, 푸른 잎들은 나를 내몰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달력이 봄을 알려 와도 벚꽃이 피기 전에는 나의 봄은 아니었다. 강둑을 걷는 아침마다 벚나무의 꽃눈을 보고 또 보았다. 아주 조금씩 눈을 떠가는 모습이 신기하고도 애가 타기도 했다. 달라져 가는 게 없다 싶을 때는 애가 탔지만, 하루 건너서 보면 조금은 눈을 틔운 것 같아 신기하고도 반가웠다.

올해만이랴, 해마다 그렇게 기다려 왔지만, 반갑게 기다리는 마음은 그제나 이제나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애를 태워 가던 어느 날, 마치 무슨 무성영화에서 기총소사 전쟁판이라도 벌어진 듯 이 가지, 저 가지, 이 나무, 저 나무에서 꽃이 다다닥 피어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황홀할 수가 있는가. 내 생애의 봄날들이 다투어 터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랬다. 생애의 봄날이 왔다. 저 빛을 무어라 할까. 연분홍 수줍음이라 할까, 우윳빛 순수라 할까. 갓 피어난 봉오리는 붉은 기운이 도는 듯한 연한 분홍으로 수줍은 색시 같은 미소를 머금더니, 송이가 온전히 벌어 맑은 햇살을 받을 때는 눈이 시릴 만큼 눈부신 순백이 온몸을 적셔 오는 듯했다.

저 빛은 또 무엇인가. 붉게 물든 화심을 감싸고 있는 하얀 꽃잎은 마치 연지 곤지를 찍은 새색시같이 보이다가도, 햇살을 받는가 싶더니 따스한 황금빛과 어우러진 듯한 분홍색은 살짝 살굿빛을 띠면서 다시 수줍음 타는 모습을 내보이기도 한다. 정감이 뚝뚝 흘러내리는 것 같아 눈길을 바꿀 수가 없다.

저 빛깔들은 누가 보든, 어린이가 보든 젊은이가 보든 늙은이가 보든 속 깊은 정이 넘쳐나게 할 것 같다. 같이 보고 싶다. 정다운 사람들과 함께 보며 마음을 나누고 싶다. 꽃 보러 오라고 했다. 때를 번갈아 몇 사람이 달려왔다. 꽃그늘을 걸으며 정담을 나눈다. 정이 붉은 화심이 되고 담소가 정결한 꽃잎이 되어 나부낀다.

모두 이 꽃 속에 사는 나를 부러워한다. 나도 내가 부럽다. 이렇게 화사한 꽃 속을 정 깊은 사람들과 함께 거닐고 있는 내 모습이 언제 또 있었으며 언제 다시 올 것인가. 정다운 사람들과 함께 거닐던 꽃그늘에 꽃비가 내린다. 꽃길을 걷는다. 정다운 사람들과 함께 걸었던 적이 언제였던가 싶게 멀어져 간다.

만남은 짧고 그리움은 길다고 했던가. 그 화려했던 꽃의 시간들은 그리움으로만 남았다. 짙어 가는 꽃길 위로 가지는 비어간다. 꽃잎이 진 가지에 붉은 꽃자루가 다시 다홍의 꽃을 피우는가 싶더니, 그도 잠시 잎들이 빼죽 빼죽 솟아 가지가 푸르러진다. 강둑은 이내 푸른 숲길이 된다.

저 싱그러운 푸름을 보면 꽃의 시절이 다시 그리워진다. 저 푸름을 보며 활짝 피어나는 기운이며 용출하는 듯한 활력 같은 건 느껴 볼 수 없는 걸까. 그럴 수도 있을 것이지만, 나의 시절은 아닌 것 같다. 어쩌면 저 푸름이 나를 변방으로 밀어내고 있는 듯이 느껴지는 것은 또 무슨 자격지심일까.

어느 시인은 벚꽃 지는 걸 보니 푸른 솔이 좋아 / 푸른 솔 좋아하다 보니 벚꽃마저 좋아”(김지하, 새봄9)라 하여 변해가는 것들의 아름다움과 변하지 않는 것들의 소중함을 함께 품는 따뜻한 속정을 보여주고 있는데, 나는 왜 꽃 시절의 그 정다움이 더 그리운가. 내가 지금 꽃 시절 속을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인가. 푸름의 시절을 살고 있는 것은 더욱 아니지 않은가.

그 꽃 시절은 별로 여물 겨를도 없이 그리도 허망하게 져버렸지만, 나는 다시 올 꽃 시절을 기다릴 것이다. 누구는 벚꽃이 피었다는 것은, 누군가 당신을 위해 기도를 시작했다는 것이다.”라 하지 않았던가. 혹독한 추위 끝에 일제히 터져 나오는 꽃망울은 내 쇠잔해 가는 삶을 빌어주는 누군가의 기도일 수도 있다는 말로도 들려 온다.

그 기도 속에서 다시 피고 싶다. 저 꽃핀 강둑을 보라, 그 꽃을 안고 흐르는 강물을 보라. 봄이 강에 하얀 별들을 뿌려놓은 것 같지 않은가. 저 흘러가는 강물처럼 그 하얀 별 속을 유유히 걷고 싶다. 그 별을 타고 꽃잎처럼 날고도 싶다. 나를 밀어낼 푸름의 길이 아니라 나를 안아 줄 그 꽃그늘 길을 걸음 가볍게 걷고도 싶다.

그때가 오면, 그 기총소사하듯 한꺼번에 일매지게 피어나 연분홍빛 보듬으며 순백의 미소를 뿜어내던 그 꽃 시절이 다시 오면, 정겨운 사람에게 또 손짓할 것이다. 그때 그랬듯 정을 화심으로 삼아 담소를 정결한 꽃잎으로 새로이 피워낼 것이다. 그 꽃그늘 길을 그렇게 함께 걸을 것이다.

그때가 오면-. (2026, 4, 30)

                                                                  

 

벚꽃 약속

 

몇 달에 걸친 치료를 마치고 병원을 나서던 날, 의사는 나에게 책 한 권을 선물로 주었다. 불전佛典의 가르침에 깊은 관심을 두고 공부도 하고 있는 그가 나에게 준 책은 마음을 잘 쓰는 법을 이야기한 불교심리학에 관한 책이었다. 나중에 보니, 그 책 뒤표지 속에 귀한 인연에 감사드리며 몸도 마음도 늘 평안하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벚꽃 보기 좋은 날 꼭 초대해 주세요.”라는 말과 함께 정중한 서명을 해놓았다.

진료를 받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봄이 되면 우리 마을 강둑에는 왕벚꽃이, 뒷산에는 산벚꽃이 찬란하게 피어나 꽃 대궐을 이룬다고 자랑한 적이 있었다. 그 현란한 풍경을 꼭 한번 보여드리고 싶다 했다. 내 그 말이 기억에 깊이 남았던 것 같다. “, 잊지 않겠습니다. 꼭 초대하겠습니다.”라며 약속 문자를 보냈다.

요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심해지는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진정시켜 지내고 싶어 크고 작은 병원을 드나들었지만, 신통치 않았다. 우연한 기회에 요통 치료라는 어느 의원 안내판을 보고 찾아간 게 그와 만나는 계기가 되었다.

의사는 친절했다. 진료에 갖은 정성을 다 기울이는 것 같았다. 단순한 직업적인 친절 같지만은 않았다. 맥을 짚고 아픈 곳을 어루만지는 손길에 어린 진정한 마음이 전류처럼 몸으로 스며오는 듯했다. 심신이 약한 환자를 향한 의사의 본능적인 마음일 수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사람 사랑에서 솟아 나오는 넓고도 따뜻한 마음인 것 같았다.

그 친절과 정성만으로도 내 병이 언젠가는 쾌유에 이를 수 있을 것 같은 믿음이 들었다. 내가 마침 어느 신문에 칼럼을 쓰고 있는 중이어서, 어느 날 칼럼에 즐거운 병원 길이라는 제목으로 그의 친절과 정성을 이야기했다. 즐겁지 않을 수 있는 병원 길을 즐겁다 한 것이 역설적일 수 있지만, 나의 솔직한 심정이기도 했다.

그 칼럼을 의사에게 보여 주었다. 감동으로 감격스러웠다 했다 내가 수필가로 활동하고 있는 걸 검색을 통해 알았다며, 보통 분이 아니신 것 같다 했다. 과분한 말씀이라 하니, 다른 글도 보고 싶다고 했다. 근간 수필집 한 권을 건네주었다. 고맙다며 몇 가지 보신 약재를 챙겨주기도 했다.

그도 글 쓰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동화를 써 보고 있다고 했다. 자기는 내 몸을 치료해 줄 터이니 나는 자기 글을 좀 치료해 달라 했다. 쓴 글을 보고 싶다 했다. 그가 쓴 글 속에는 불법佛法의 이치를 어린아이들의 이야기로 풀어낸 그림 동화 형식의 글도 있었다. 나름대로 뜻있는 주제와 상념을 담고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바쁜 진료 시간을 벗어나 메일이며 에스앤에스로 글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에 서로의 삶의 모습에 대해 많은 이해도 쌓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내 병통은 쉽사리 치유되지 않았다. 그렇게 몇 달이 흘러가면서도 그 친절과 정성이 병고를 충분히 다스려 줄 것이라는 내 믿음은 달라지지 않았다. 즐거운 병원 길이 계속되었다.

그사이에 봄, 여름이 가고 가을도 가고 있었다. 몸을 떠나지 않던 통증이 시나브로 잦아들면서 움직임이 조금씩 가벼워져 가는 듯했다. 내 믿음이 효능을 발휘하는 것일까. 일주일에 두 번씩 받던 치료를 한 번으로 줄였다. 그래도 견딜 만했다. 한 해가 저물어가던 세모에 가까운 어느 날, 치료를 그만해 보자 했다. 그만해도 될 것 같았다.

마지막 치료를 받고 병원을 나서던 날, 마음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을 주면서 우리 마을 벚꽃을 기약한 그 바람 속에는, 나의 건강을 기원도 하면서, 확인도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있었을 것 같다. 겨울이 가고 약속의 봄이 왔다. 벚꽃이 피기만을 기다렸다.

드디어 마을 강둑에 벚꽃이 만발했다. “진료 업무에 늘 바쁘시지요? / 지금 우리 동네 강둑에는 벚꽃이 한창 피고 있습니다. / 토요일 오후, 시간이 있으시겠는지요? / 시간 되면 전화 한번 주십시오~.” 토요일은 학회가 있어 수요일 오후가 어떻겠냐는 전화가 왔다. 좋다 했다.

그날, 만발한 강둑 벚꽃이 한눈에 보이는 다리로 오라 했다. 수요일 약속 시각 무렵, 다리로 천천히 다가갔다. 프란체스카와 킨케이드를 인연 짓게 했던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떠오르기도 했다. 검은색 차가 다리를 천천히 건너오고 있었다. 다리 어귀에서 차가 멈추면서 그가 내렸다.

반가웠다. “얼굴빛이 아주 좋으시네요. 꽃이 더 아름다워 보입니다.” 내 손을 잡았다. 석 달여 만이었다. “모두 선생님 덕분입니다.” 서로 반갑다 하면서 화사한 벚꽃 길을 함께 걸었다. “좋은 기억이 될 것 같네요.” 미소를 지었다. “좋은 기억이 마음 주머니에 들면 좋은 마음이 되겠지요?” 마주 보며 웃었다.

몸이 한결 더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꽃도 마음도 기억도 언젠가는 다 흘러갈 것이지만, 오래 지지 않을 것 하나 남겨 두자며, 지나는 이에게 부탁했다. 찬연한 벚꽃을 뒤에 두고 지나는 이가 들고 선 핸드폰을 함께 바라보며 나란히 섰다. 꽃잎이 하늘거렸다.(2026. 4. 16)

                                                                      

 

모처럼의 외출

 

지난 한 해 동안 나들이 기회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몸이 말을 들어주지 않을 것 같아 엄두를 내지 않았다. 그저 동네 강둑을 거닐며 물을 보고 풀꽃을 보듬는 것으로 위안 삼았다. 다행스럽게도 그사이에 몸이 조금씩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어갔다.

봄이 오고 있었다. 나에게도 봄이 좀 오려는가. 내 몸이 한창일 때 내가 운영해 오다시피 하던 문화 모임에서 아무 날 남도 문화 답사 예정이라는 기별이 왔다. 추진하고 있는 이가 참여 여부를 물어 왔다. 참여하겠다고 했다.

답사지는 저 남쪽 구례, 하동 쪽으로 가서 창연한 운조루 고택을 보고, 유명한 화개장터며 십 리 벚꽃길을 달려 박경리문학관도 탐방하고 올 것이라 했다. 십여 전에 가 본 곳도 있지만, 기꺼이 가겠다 했다. 봤다 한들 느낌이야 어찌 같을 수 있으랴.

지팡이를 짚고 이른 아침을 서둘러 집을 나섰다. 마지막 집결지에서 이십여 명이 모였다. 오랜만에 나온 나를 보고 반가워했다. 남으로 남으로 길을 돋우었다. 회장님이 인사에 이어 답사 안내서에 준비한 시가 있다며 모두 펴 보란다. 이 길에 웬 시인가.

박목월의 나그네와 김춘수의 이 새겨져 있다. 시 낭송을 좋아하는 어느 분이 낭송하고, 회장님은 준비된 원고를 보며 해설을 곁들인다. 우리도 술 익는 길 나그네 되어, 보고 듣는 모든 것에 뜻깊은 의미를 새겨 보자 했다. 모두 박수를 모은다.

운전기사가 감화를 받은 걸까. 구성지고도 흥에 겨운 트로트를 거두고 봉경미의 시낭송 카페라는 영상을 보여주는데, 문병란의 희망가며 사무엘 울만의 청춘’, 김형경의 세월들이 흘러나온다. 창밖으로 흐드러진 벚꽃이 스쳐 갔다. 시가 꽃을 불렀는가.

구례라 했다. 내 사는 곳은 이제 꽃눈이 틀까 말까 한데, 남도는 이리 다르구나. 몸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드디어 구름 속의 새처럼 숨어서 사는 집운조루雲鳥樓에 닿았다. 영조 때 낙안군수를 지낸 유이주柳爾胄라는 분이 지은 전형적인 양반 가옥이라 한다.

금환락지金環落地 명당자리를 골라 안채, 사랑채, 행랑채, 사당을 다 갖추어 수십 칸 와옥으로 지었으니 기세가 등등할 것 같았지만, 대문간에 세워둔 원통형 뒤주 하나가 보는 마음을 유정하게 한다. ‘타인능해他人能解’, 배고픈 사람 누구라도 열어 쌀을 가져가라는 뒤주다.

굴뚝을 토방 아래에 두었다. 밥 짓는 연기가 높게 솟아오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란다. 그 연기를 보고 배고픈 사람 더욱 배를 고프게 하지 않으려는 배려라 했다. 그런 것들을 보는 순간, 성치 않은 내 몸이 무언가 위안을 받는 듯도 했다.

차를 달리다가 어느 밥집 앞에 멈추었다. 섬진강 재첩국에 지리산 천연 암반수로 빚은 산수유 막걸리 한 잔, 오늘 길 나서기를 잘했다 싶었다. 이 담백한 국물이며 청량한 한 잔 술이 내 몸에 봄기운을 유연히 돋구어주는 것 같았다.

하동 십 리 벚꽃길을 달린다. 꽃이 차를 달리게 하는지, 차가 꽃을 달리게 하는지, 온통 꽃 굴속을 내닫는다. 이런 꽃길이라면 어디까지라도 달려가고 싶기도 했다. 화개장터에 닿았다. 소문난 장터라 그런지, 사람도 북적, 불빛도 북적, 물건도 북적한다.

조영남 가수가 노래로 더 유명하게 만든 곳, ‘화개장터표지석과 함께 노래비를 세워놓고, 장터 한가운데 가수의 금박 형상도 앉혀 눈길을 잡는다. 노래가 곧장 흘러나오고 있는 듯하다. 오일장이 아니라 늘 장날인 것 같다.

평사리 박경리문학관, 최참판댁으로 간다. 주차장에서 내려 오르막길을 한참 걸어 올라야 한다. 내 지팡이 걸음으로 쉽사리 오를 수가 있을까. 운조루에서, 십 리 벚꽃길에서, 북적거리던 화개장터에서 얻은 기운으로 올라 보자.

마침 문학이며 음악, 시 낭송을 좋아하는 분과 말벗이 되어 오르게 되었다. 힘겨울 겨를이 없다. 말벗과의 대화도 힘을 주었지만, 문학의 향기에 또 하나의 기운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힘을 더해 준다.

박경리문학관으로 먼저 드는데, 마당 바닥에 살아있다는 것은 아름답다.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인식 이상의 진실은 없다.”라는 글귀가 보인다. 물론 박경리 선생의 말씀이다. ‘그렇지, 살아있다는 것은 아름다워야 해.’ 입속 혼잣말을 굴리며 문학관으로 든다.

선생의 연보며 토지를 비롯한 유작들, ‘토지의 배경이 된 평사리 들판이며, 등장인물들이 모여 단체 사진이라 박은 듯 형상화한 그림도 보여주었다. 이 작품이 얼마나 거룩하면 이곳 지명조차도 토지면이라 했을까. 문학 작품 하나가 이렇게 세상을 바꾼다.

최참판댁은 또, 한 세상을 만들어 놓았다. 아득히 너른 땅 위에 작품 속 세상을 현실 세상으로 살려 놓았다. 등장인물이 거처했던 공간을 하나하나 재현해 놓고, 거기마다 얽힌 스토리를 알뜰히 보여주고 있다. 새 세상을 이루고 있다.

박경리 세상을 보러 오르내리는 길가에는 수많은 가게가 객의 발길을 끈다. 많은 독자에게 깊은 감동을 주는 건 차치하고라도, 문학 작품 하나가 이리 많은 사람을 살리고 있다. 나도 살리는 것 같다. 그 위대한 힘에 끌려서인지 이 비탈길을 거뜬히 오르내리는 걸 보면.

귀로를 달린다. 기사는 올 때 보여주던 시 낭송 영상을 디스코 트로트로 바꾸었다. 차 안이 요동하기 시작한다. 한가득 봄바람 품고 있던 사람들 어깨가 들썩인다. 영상 반주와 함께 노래를 외치며 손뼉을 친다. 어떤 이의 소주잔 기울이는 소리가 흔쾌하다.

여느 때 같으면 피곤하게 여겨질 수도 있는 장면들이 오히려 정겹다. 마치 내 모처럼의 외출에 축가를 불러주는 것 같기도 했다. 나도 박달재의 금봉이야~’ 목청을 돋우기도 했다. 세상이 살 만한 것 같기도 했다.

사는 날까지는 살아 봐야겠다고 여기는 사이에 내릴 곳에 이르렀다. 지팡이를 서양 신사의 스틱으로 삼아 집으로 왔다. 내 몸에도 봄이 오고 있는가.(2026.3.31.)

                                                                     

 

 나이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나이는 숫자일 뿐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서는 나이라는 생물학적 제약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다스리겠다는 강한 의지를 볼 수도 있고, ‘나는 여전히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라는 자기만의 삶의 속도를 중시하고자는 긍정적인 심리를 느낄 수도 있다.

한편으로, 이런 사람들에게서는 나는 늙어가고 있다.’라는 자각과 함께 노화에 대한 저항 심리를 볼 수 있다. 또한 아직 나는 건재하다.’라는 사실을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선언함으로써 자존감을 높이려는 심리적 전략으로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고 높이는 그 목소리는 누구보다도 노화를 저리게 느끼고 있다는 반향이 아닐까.

나이는 죄가 없다. 나이는 나이이지 숫자가 아니다. 나이 속에는 많은 것이 들어있다. 나이가 많을수록 적은 나이보다 더 많은 것이 들어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아프리카 속담에는 "노인 한 명이 죽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라는 유명한 말도 있지 않은가. 노인에게는 많은 지혜가 담겨 있다는 말일 것이다.

물론, 노인의 나이 속에는 가치 있는 지혜만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 속에는 갖은 부조리며, 온갖 풍파가 담겨 있을 수도 있다. 그것이 반면교사가 되어 남의 교훈과 지침이 되기도 하고, 그로 인하여 삶이 더욱 여물어지기도 하고 너그러워지기도 한다. 마치 갯가의 거친 돌이 시간이 흐를수록 단단하고 매끄러운 돌이 되어 가듯이.

나이가 많아지다 보면 여물어지고 너그러워질 수 있는 마음과는 달리 몸은 허물어지고, 쪼그라든다. 나이가 들수록 하루가 다르다기도 한다. 그럴수록 나를 지켜주기 위한 몸의 수고로움이 느껴진다. 몸은 마음, 정신의 그릇이요, 갑옷이 아니던가. 그것들을 붙들어 주려고 몸은 얼마나 안간힘을 써 왔던가. 나이가 들수록 몸이 눈물겹게 고마워질 때가 있다.

노인이 비우는 술병은 든 술병보다 빈 술병이 더 무거울 수가 있다. 술이 비어 가는 자리에는 웃음도 눈물도 들고, 사랑도 미움도 들고, 화목도 불화도 들고, 보람도 회한도 들고, 수치도 울분도 들고, 평온도 불안도 들고, 외로움도 그리움도 들고……. 살아오면서 안으로만 쟁여왔던 모든 것들이 어느 날의 빈 술병 속으로 들어 빈 병이 아주 무거워질 때가 있다.

그 빈 병을 채우는 것들이란 굴곡지게 살아온 삶의 간곡한 이력일 것이다. 그렇지만, 노인은 그런 것들 때문에 달뜨거나 소용돌이치지는 않는다. 그렇게 살아온 자취를 돌아보며 잔잔한 미소 한번 지으면 된다. 그 미소 속에 모든 것을 다 묻을 수 있는 사람이 노인이다. 삶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우기는 사람은 아직도 세상의 짐을 더 지고 싶은 사람인지도 모른다. 더 지고 싶으면 지면 된다. 지다가 내려놓고 싶거나 내려질 때 내려놓으면 된다. 그렇지만 욕심에 자유가 구속되어, 그 구속을 사는 사람은 노인이 아니다. 노인은 자유로운 사람이다. 그 자유는 늙음이 준 선물이 아닌가.

탈무드에서 청년은 눈으로 보고, 노인은 마음으로 본다.”라고 하듯, 노인은 무엇을 보든 마음의 눈으로 먼저 보려고 하는 사람이다. 아직도 눈에 보이는 게 많은 사람은 노인이 아닐지도 모른다. 눈으로 봤던 많은 것이 마음속에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마음은 눈보다 욕심이 적다. 마음속에 들어오면서 욕심이 좀 걸러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젊을 때는 남의 눈빛에 나를 맞추느라 정작 나를 돌아보는 일은 지나쳤을 수 있고, 남의 소리를 듣느라 내 속의 목소리에는 귀를 기울이지 못했을 수 있다. 노인은 남을 쫓던 시선으로 나를 볼 수 있는 사람이고, 세상의 소음을 따라가는 대신 조용히 나 자신과 마주 앉는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다. 이 또한 나이가 준 선물이 아닐까.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잘 보낸 하루가 행복한 잠을 선사하듯, 잘 산 인생은 행복한 죽음을 가져다준다."라고 했다지만, 이미 가버린 생애는 어쩔 수 없다.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일일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남은 날이나마 즐겁게 살 수 있도록 해볼 일이다. 늙어가다 보면 외로울 수 있지만, 외로움을 자유와 평화가 있는 그윽한 고독으로 바꾸어도 볼 일이다.

죽음이 다가오더라도 겁낼 일은 아닌 것 같다. 에피쿠로스라는 철학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까닭을 우리가 존재하는 한 죽음은 현존하지 않으며, 죽음이 현존할 경우 우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라 했다지 않은가. 살아있는 동안은 죽을 염려가 없다는 말이다. 이제 걱정할 것이 무엇인가.

이렇듯 나이는 늙음의 정도를 나타내는 노화지수老化指數라 할 수 있지만, 그 노화 곧, 늙음 속에는 많은 선물이 들어있기도 한다. 그 지수란 늙음이 간직한 선물의 양을 나타낸다고도 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든 예비 노인이지 않은가. 늙음을 잘 보듬고 다듬어갈 일이다.

역시 나이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부정하기엔 기려야 할 것이 많은 노화지수다.(2026. 3. 12)

                                                                      

 

따사로운 저녁노을을 바라며

 

나이가 들어갈수록 떨어지는 건 기력이고, 멀어지는 건 사람들인 것 같다. 딴은 건강 관리를 한다고 해도 몸의 모든 기능이 전 같지가 않다. 하루가 다르다 하면 지나친 말이 될까. 사람 대할 일도 그렇다. 떨어지는 기력과 함께 활동량도 줄어들다 보니 찾아갈 사람도, 찾아올 사람도 드물어져 가고 있다.

기운을 추슬러 보겠다고 몸을 움직여 보기도 하고, 이것저것 좋다는 걸 챙기고 챙겨주어 먹어 보기도 하지만, 그리 녹록지는 않다. 가까이 있어야 할 사람도 없다. 붙이도 모두 흩어지고, 권속도 떠나갔다. 남은 건 쇠잔해져 가는 기력과 구슬리기 쉽지 않은 외로움뿐이다. 그래도 사는 날까지는 살아 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런 고단한 날 속에서 찾아갈 곳이 있고 찾아올 사람이 있다면, 몸에도 마음에도 얼마나 큰 힘이 될 수 있겠는가. 그런 사람이 영 없지는 않아 그래도 조금은 위안스럽다. 일상을 고적하게 보내다가 매주 한 번씩 차를 타고 나가, 글쓰기 공부를 같이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큰 활력을 준다. 글을 통해 서로 곡진한 삶들을 나누다 보면 사람들이 모두 살가워진다.

그들 가운데는 먼 길을 마다치 않고 나에게로 가끔씩 찾아와 주는 이들도 있다. 반갑고도 유정하다. 차담과 함께 글 향기도 나누며 속내를 주고받기도 하고, 내 삶을 담고 있는 곳을 함께 거닐며 소담스레 아롱질 기억들을 심기도 한다. 생애에 서려 있는 외로움 탓일지 그렇게 하다가 헤어지고 나면. 한동안은 무언가 비어버린 듯한 공허감에 젖기도 한다.

그 공허감이란 무엇일까. 서운함일 듯도 하고 그리움일 듯도 하다. 그 서운함이며 그리움이란 어찌 오는 것일까. 정 때문일 것이다. 오고 간 인정 때문일 것이다. 인정과 헤어진 게 서운하고, 헤어져 있는 인정이 그리운 것이다. 그 인정이 마음에 결을 일게 한다. 그 인정이란 무엇일까. 애정일까, 우정일까.

애정과 우정의 정체가 다시 돌아 보인다. 애정과 우정은 모두 상대방을 위해 나를 내어주고 싶은 이타심에서 출발하는 마음일 것이다. 서로 깊은 유대감을 이루면서 삶의 한 부분에 대한 교집합을 이루고 싶은 마음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무언가 따뜻하고 정겨운 것들을 서로 나누어 가지면서 공유하고 싶은 마음일 것도 같다.

애정과 우정이 그렇게 한마음만은 아닐 것이다. 애정은 대체로 단 한 사람만을 보고 싶어 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일 수 있지만, 우정은 여러 사람을 동시에 마음속에 간직할 수도 있다. 애정은 불꽃처럼 타오르는 감정으로 영육이 일체가 되고 싶은 마음이라 할 수 있다면, 우정은 잔잔하고 유유하게 흘러가는 강물처럼 함께 흐르고 싶은 마음이라 할까.

프랑스 격언에서는 사랑은 눈을 멀게 하지만, 우정은 눈을 뜨게 한다.”라기도 하고. 괴테는 사랑은 지배하려 하지만, 우정은 자유를 준다.”라 하기도 했다. 여기서 사랑이란 물론 애정을 말하는 것이겠지만, 애정과 우정을 색깔에 비유해 본다면, 애정이 삶에 강렬한 색채를 더해주는 빨간색이라면, 우정은 지치지 않고 오래 바라볼 수 있는 초록색 숲과 같다 할까.

애정과 우정이 다 사랑을 바탕으로 하는 감정이라 한다면, 동성 간이든 이성 간이든 애정과 우정이 다 있을 수 있다. 동성 간에는 애정을 줄수록 우정이 깊어질 수 있지만, 이성 간에는 우정을 쏟다 보면 애정으로 변할 수도 있고, 그렇게 느낄 수도 있다. 어떤 정이든 서로의 삶과 감정선을 존중할 때 그 정이 더욱 아름다워질 수 있을 것이다.

나를 돌아보면서 내 마음의 방문을 가만히 열어본다. 나는 지금 황혼 녘에 홀로 서서 저물어가는 해를 바라보고 있다. 저 해는 붉고도 푸른 꿈을 안고 솟아올라 세상을 비추어 나가면서 하늘 한가운데 이르러 세상을 다 안아 보기도 하다가, 이제는 고운 빛을 뿌리며 조용히 내려앉고 있다. 저 빛 속에 내 환영이 어리기도 한다.

이제 내가 그리운 것은 세상을 불사를 듯 붉게 타는 빛이 아니라, 내 강둑 산책길에서 늘 보는, 맑고 푸른 빛으로 은은히 흐르는 강물 같은 빛이다. 그 강물 빛 속에서 다소곳이 미소지으며 나를 보고는, 살포시 걸어서 나에게로 와 주는 사람이 있다면 무엇을 더 소망할까. 내 마음의 방 안에 그런 사람을 살게 하고 싶다.

어느 시인은 , 혹은 때때로 /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는 건 / 얼마나 생기로운 일인가.”(조병화, , 혹은)라 했다. 그 생기를 위해서라도 나는 지금 맑은 우정의 사람을 그리워하고 싶다. 그 사람이 ……, 그러한 네가 있다는 건/ 얼마나 따사로운 나의 저녁노을인가.”라는 그 시인의 감탄사 속으로 들어와 주기를 바라고도 싶다.

그 바람이 나의 것이 될 때 내 잦아들던 기력도, 나를 시나브로 죄어오는 외로움도 조금은 숨통을 틔울 수 있을 것도 같다.

눈을 그윽이 뜨게 하면서 아늑한 자유를 품고 있는 그 따사로운 저녁노을을 그리며, 오늘도 해거름 강둑길을 느긋이 걷는다. 강에는 맑고 푸른 물이 흐르고 있다. (2026.3.5.)

                                                                  

 

고장에 대하여

 

세월은 나를 저물녘 황혼빛 속에서 홀로 고적을 안고 살아가게 만들어 놓았다. 그것만으로 그치지 않고 병마를 불러들여 안겨 혼자서는 생존도 생활도 제대로 건사하기 힘들게도 했다. 세월은 그렇게 해찰을 부리지만, 세상은 그리 무정하지 않았다.

내 무슨 복덕을 지은 것도 없는데, 마치 설화 속 이야기처럼 어디서 고마운 분을 나에게로 보내주었다. 그분은 아침 한때 잠시 나를 보살펴 줄 뿐이지만, 생존의 고단을 풀어주고, 생활의 적막을 달래주기 위해 따뜻한 마음을 다해 주고 있다.

세월을 다시 돌아본다. 세월은 몸도 마음도, 그 몸과 마음을 의지하고 있는 주위의 모든 것도 이냥 그대로 두는 법이 없다. 모든 것을 태어나게 하고 자라게도 하지만, 또 모든 것을 허물고 없애버리기도 한다. 그게 세월의 속성이던가.

그 세월 따라 세상 빛을 오래 쬐며 살수록 새로 무엇이 생겨나고 새로워지기보다는, 낡아 헤지고, 고장이 나 못 쓰게 되는 것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다. 내 몸부터 그렇지 않은가. 성하던 기력이며 근력은 다 어디로 가고, 어디 한 곳도 온전한 데가 없는 것 같게 했다.

쓰는 물건인들 성한 게 있으랴. 늘 써 오던 것이니까 쓰고 있을 뿐, 무엇인들 새것만 하랴. 그렇게 쓰다가 쓰기에 불편해지거나 못 쓰게 되면, 고쳐 쓰거나 버리는 수밖에 없다. 오래 손때가 묻은 것이라 애착이 없지 아니하지만, 어쩌겠는가.

어느 날 나를 도와주는 분이 전기 포트 스위치 부분이 잘 작동되지 않는다며, 주방에서 쓰고 있는 여러 가지 집기가 모두 너무 오래된 것 같다 했다. 오래 살다 보니, 오래된 것이 많을 수밖에 없다. 웬만한 것은 버려야 하지 않겠냐 했다. 버려야 할 것이 그것들뿐이랴.

어디 한번 보기나 하자 하고 포트를 살펴보니, 전원을 켜고 끄기가 제대로 잘 안 움직이고 있었다. 이리저리 만져 봐도 여전히 잘되지 않았다. 에멜무지로 기름이나 한번 쳐보자 하고, 스프레이 윤활유를 조금 뿌렸더니 제대로 작동되었다.

내 워낙 기계치라 그 부분이 어떻게 되어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작동하는 부분에 녹이 슬거나 접촉이 원활하지 못해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사람도 나이가 많아질수록 관절 부분에 가장 먼저 이상이 생기는 것에 견주어 볼 수 있을까.

내 심신을 다시 돌아본다. 마음도 몸도 짧지 않은 시간을 잠시도 멈춤 없이 끈질기게 써왔다. 마음이란 무엇인가. 기억의 주머니가 아니던가. 희로애락 호오 애증의 온갖 기억들이 얼마나 많이 들락거렸던가. 어떤 것들은 저 깊은 바닥에 더께처럼 가라앉아 있을지도 모른다.

기억들 때문에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욕심에 차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는 사이에 마음을 얼마나 피곤하고 상처받게 했던가. 그러니 그 마음인들 얼마나 지쳐 있으랴. 고장이 날 만도 하겠다. 그 대가로 이 적막 속을 유형流刑처럼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몸인들 온전하랴. 몸 여러 기관을 얼마나 부리고 혹사해 왔던가. 팔다리는 물론 내장 기관 하나하나 잠시도 쉴 겨를 없이 온갖 노동에 시달려 왔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 어디 성한 곳이 있겠는가. 무엇이 젊은 시절 같으랴.

급기야는 사는 일을 두고 혼자서 무얼 해내기가 힘든 처지가 되어 고마운 분의 도움을 받아야 할 처지에 이르지 않았는가. 하루 잠시의 도움으로 온 하루를 살고 있지만, 그 도움이 나에게는 몸에도 마음에도 생광한 윤활유가 되고 있다.

윤활유가 영원한 치유는 될 수 없을지라도, 망가져 못 쓰게 되기 전까지는 잘 돌아가게 해주는 고마운 역할을 충실히 해낼 수 있다. 그러고 보면 고장과 윤활유는 뗄 수 없는 필연적, 필수적 관계하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래 써도 고장이 잘 나지 않는 게 없지는 않다. 책이다. 아무리 오래 두고 보아도 다칠 일이 별로 없다. 오래 두고 볼수록 더욱 찬연한 빛을 내뿜는 책도 있다. 그런 책조차도 세월이 흐르다 보면 내용이나 모양이 바랠 수도 있고, 쌓이다 보면 애물단지가 되기도 한다.

영원히 볼 수 있고, 오래도록 지닐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으랴. 흔히들, 무엇을 누구를 향한 사랑이 영원하기를 바라기도 하지만, 바람일 뿐, 그것도 고장이 잘 나서 그로 인해 속 깊은 눈물을 뿌리기도 해야 한다. 그 눈물이 때로는 심신을 다치게도 한다.

사랑은 뿌리치고 싶지 않아도 가버릴 수 있지만, 고장은 뿌리치고 싶어도 온다. 사랑을 잘 다스려 오래 간직하고 싶듯, 고장을 잘 다스려 내 쓰고 싶은 걸 오래 쓸 수 있도록 할 일이다. 사랑을 잘 보듬고 싶듯, 고장도 잘 보듬으며 살 일이다. 윤활유를 적절히 쳐줄 일이다.

고마운 분은 내일 아침에 또 내 고장 난 심신에 윤활유를 치러 올 것이다. 윤활유 친 포트에 전원을 다시 넣어본다. 물이 잘 끓는다. 마음이 따뜻해져 온다. (2026. 2. 9)

                                                                      

 

시 낭송 애호가와 시 낭송가

 

시 낭송은 지금 전성시대를 맞이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전국적으로 시 낭송 강좌며 각종 행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 현상은 나라 경제 수준의 향상과 더불어 예술과 문화에 대한 욕구와 인식의 정도가 고양된 결과로 볼 수도 있고, ‘K-컬쳐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현상과도 무관치 않을 것 같다.

이러한 현상의 결과로 시 낭송 콘서트며 경연대회가 성황리에 열리고 있고, 낭송하는 사람과 낭송을 즐기는 사람들도 계속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 특히 경북 지역에서는 학교 교육의 필수 과정으로 되어 있는 프랑스의 시 낭송 교육을 모델로 한 경상북도교육청 임종식 교육감의 울림학교교육 시책도 큰 동력이 되고 있다. 초중등 학교 교육에서는 물론, 교육청 관할 각 지역 도서관 활동을 통하여 시 낭송 행사가 활발하게 진행되어 시민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이에 따라 많은 사람이 시 낭송에 참여하고 있는데, 참여자들 가운데는 시 낭송을 즐기기 위한 사람도 있지만, 낭송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도 많이 활동하고 있다. 특히 시 낭송 경연대회에서 입상하면, ‘시 낭송가 인정서를 받을 수 있어 명실공히 전문가로서 활동할 수 있다. 이렇게 낭송을 즐기는 사람들은 시낭송회혹은 시낭송가협회라는 모임도 만들어 함께 낭송회도 열고, 대중을 상대로 한 낭송 콘서트 등도 개최하고 있다.

여기서 낭송 애호가와 전문 낭송가의 시를 대하는 관점과 낭송에 임하는 자세에 대해서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낭송 애호가는 좋아하는 시를 찾아서 즐겨 낭송하면 된다. 그것으로 문화적인 삶을 누리면 된다. 낭송가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낭송가에게는 관객이 있고, 있어야 한다. 낭송도 무대 예술이요, 공연 예술이기 때문이다. 낭송 애호가와 낭송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며 차이점은 무엇일까.

첫째, 낭송 애호가나 낭송가는 좋은 낭송을 위해 많은 시를 읽고, 낭송하고 싶은 시, 낭송에 좋은 시를 찾아야 한다. 이때 애호가는 자기가 선호하는 시를 선택하면 되지만, 낭송가는 관객들의 반응도 고려해야 한다. 혼자만 도취할 수 있는 시로는 안 된다. 관객에 대한 배려도 있어야 한다. 관객이 좋아할 만한 시라고 생각되면, 애착을 가지고 열심히 읽고 외고 할 수 있어야 한다. 마치 가수가 자신의 기호보다 대중들이 좋아할 수 있는 노래로 선곡하기에 애쓰는 것과 마찬가지다. 낭송가도 가수와 같은 대중예술가다.

둘째, 시 낭송은 시를 단순히 외우는 것이 아니라 목소리로 시를 연기하고 재해석하는 과정이다. 시를 선택하고 난 다음에는 해석에 충실해야 한다. 애호가는 자기의 취향을 시의 분위기에 맞추어 해석해서 즐기면 되지만, 낭송가는 관객의 반응을 고려한 해석에 더욱 철저해야 한다. 여기에는 낭독자의 인생관이며 삶이 반영될 수도 있다. 그 반영에 따라 그 시가 지닌 풍미가 달라질 수 있음은 물론이다. 같은 곡을 두고도 부른 가수에 따라 노래의 분위기며 관객의 호응이 아주 달라지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셋째, 해석과 낭송을 잘하기 위해서는 선택한 시의 시어 하나하나에 대한 철저한 이해와 함께, 시어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전체 시에 대한 깊은 통찰이 있어야 한다. “시를 낭송한다는 것은 그 시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는 행위이다.”라는 말이 있다. 같은 시를 두고도 낭송자가 시를 대하는 자세에 따라 그 생명은 매우 달라질 수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애호가보다는 낭송가가 더욱 진지하고 치열한 자세를 지녀야 한다.

넷째, 전문 낭송가일수록 낭송에 연극성과 음악성을 극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 낭송가는 무대에 서면 배우요, 가수다. 손동작이나 자세 등 비언어적 표현을 통해 시의 의미를 효과적으로 풀어낼 수 있어야 한다. 시어 하나하나, 행과 연의 구분을 통하여 음악적인 효과를 충분히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 가수는 작사가 지은 가사에 작곡자가 붙여준 곡을 부르면 되지만, 낭송가는 가수인 동시에 작곡가를 겸해야 한다. 이 음악성을 잘 발휘할 수 있을 때 더욱 감동적인 낭송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낭송 애호가와 전문 낭송가가 해야 할 일과 갖추어야 할 자세를 살펴보았지만, 단체 낭송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 단체가 애호가 집단인지, 전문가 집단인지를 돌아보아야 한다. 대중을 상대로 한 콘서트를 열곤 한다면 전문가 집단이라 할 수 있다.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라는 말이다. 어느 낭송가 단체에서 애송시 만들기회원 행사를 수시로 열고 있다고 한다. 낭송 기량 연마를 위해서는 바람직한 일이다. 그 단체가 전문가 집단이라면, 그 애송시가 자기를 위한 것인지, 관객을 위한 것인지를 헤아려보아야 한다. 자기만을 위한 것이라면 전문가 집단이 아니라 애호가 집단에서 해야 할 일다.

낭송 애호가든, 전문 낭송가든 이들에 의해 시 낭송이 더욱 아름다워질 수 있고, 따라서 우리의 삶도 한층 아름다워지고 질적인 고양이 이루어질 수 있음은 물론이다. 애호가는 애호가 대로, 전문가는 전문가대로 낭송 예술의 발전에 열정을 다해 이바지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2026. 1. 31)

                                                                     

 

이경종 선생의 바다

 

……집채 같은 파도가 손바닥만 한 배를 덮치는 순간 배는 맥없이 기우뚱했고 56명의 승객은 !’ 하고 비명과 함께 차가운 바닷속으로 던져졌다. ‘살려줘요!’ 하는 절규와 함께 허우적거리던 어린이, 부녀자들이 순식간에 파도 속에 묻혔다. 배는 산산조각이 나고 시체는 영하 5도의 차가운 바다 위에 떠올랐다. 마중 나왔던 가족들은 빤히 보이는 참변 모습에 발을 동동 구르며 통곡했다.……

1976117일 울릉도 북쪽 천부항에서 만덕호가 참혹하게 침몰하는 모습을 신문 기사(1976.1.19. 동아일보)는 이렇게 시작했다. 결국, 그 배에 타고 있던 37명은 시체로 떠 오르거나 영원한 실종자가 되어 바다의 혼이 되어야 했고, 19명만이 살아나올 수 있었다.

그 배에 천부초등 6학년 담임과 경리를 담당하고 있던 이경종李景宗 선생이 타고 있었다. 선생은 전날 수업을 마친 오후, 직원 봉급 수령을 위해 눈 쌓인 산길 몇 시간 걸어 소재지 도동으로 왔다. 저문 날을 하숙에서 새우고, 이튿날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려는 두 제자의 어렵게 마련한 입학금을 납부하고, 15명 직원 1월 급료 155만여 원을 수령했다.

다시 눈 속 산길을 걸어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아 배편을 알아보니, 마침 어선 만덕호가 천부로 간다 했다. 정원 207.2t 목선으로 조그만 고깃배였다. 그것도 귀한 배편이라 타려는 사람도, 실을 짐도 많았다. 철근 1.7t, 정부미 10포대, 라면 15상자에 승객 20여 명을 태우고, 경찰의 검문이 끝나고 30여 명을 더 태웠다.

저동항을 지나 선창 앞바다에 이르자 삼선암 너머에서 하얀 갈퀴를 세운 난파도가 무섭게 몰아쳤다. 배가 심하게 요동했다. 천부항 앞에 이르자 바람은 북동풍으로 돌변하며 더욱 거세졌다. 몰아치는 노도가 바위에 부딪히면서 천파만파 물기둥을 치솟게 했다. 입항에 실패한 배는 일단 후퇴하여 거센 파도를 피하려 했지만, 배가 심하게 요동치는 바람에 뒤 갑판 위에 사려둔 밧줄이 스크루에 휘감기면서 시동이 꺼져버렸다.

다시 성난 파도가 빠른 속도로 뱃전을 치며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거대한 물 폭발이 덮쳤다. 폭발이 가라앉자 배는 바닷속으로 무참히 빠져들었다. 사람과 짐이 한꺼번에 바닷속으로 쏟아지면서 천부항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학창 시절 수영 선수였던 선생은 기민한 동작으로 파도를 헤쳤다. 마침 물 위에 뜬 승강용 목판(길이 5m, 넓이 40cm, 두께 5)을 잡을 수가 있었다. 뭍을 향해 나아가려던 찰라. 좀 떨어진 곳에서 제자 최병춘 군과 신현진 군이 탈진 상태로 허우적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재빨리 물을 헤치며 한 명씩 가까스로 끌어당겨 목판을 붙잡게 하고, 이 아이들과 함께 몰아치는 파도와 사투를 벌였다.

뭍에서 보고 있던 사람들은 주먹을 부르쥐거나 발을 구를 뿐이었다. 북면 지서의 순경이 달려와 사건을 전파하고, 부근에 있던 배가 달려와 선장 등 3명을 구조하는 데 다시 파도가 휘몰아쳐 행정선과 경비정이 달려와도 접근할 수 없었다. 파도 잦아들어 바다가 잠잠해졌을 때는 깨어진 배 조각만 떠다닐 뿐, 선생도 아이들도 다른 삼십여 명의 목숨도 흔적이 가뭇했다.

험한 파도를 막아내지 못한 열악한 항구 조건, 정원을 초과한 승선 인원, 화물 과적 등이 사고 원인으로 지적되었지만, 원인 규명이 죽은 목숨을 살아오게 할 수는 없었다. 더구나 한목숨 기꺼이 받쳐 제자들과 함께 죽어간 선생도 살릴 수는 없었다. 선생의 모습은 거룩한 죽음을 기려 수여된 상과 훈장으로, 몸담았던 교정에 세워진 순직비로 남았을 뿐이었다.

1941623일 대구 노곡동에서 태어난 선생은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하고 1959831일 영천 지곡국민학교 교사로 첫 발령을 받은 이래, 군 복무 기간 1년 말고는 줄곧 영천 관내 초등학교에서 봉직하다가 낙도 울릉도 근무를 자원했다. 197331일 천부국민학교에 부임하여 1976년 순직하기까지 35년의 길지 않은 삶과 153개월의 짧지 않은 교직 생애를 장렬하게 바쳤다.

뭍의 교사가 섬 학교 근무를 자원할 때는 더욱 창창한 교직의 꿈을 펼치기 위해서인 것은 물론이다. 그 꿈도 성실하지 않으면 몽상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그날도 아이들 입학금 납부며 공무 수행을 위한 출장 중이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언제나 온후하여 아이들 사랑도 지극했고, 학교 곳곳을 꽃밭으로 만드는 일에도 열성을 기울인 선생님으로 기억하고 있다. 어쩌면 그가 바로 이 세상에 피어난 한 떨기 꽃이었는지도 모른다.

제자의 명재경각 위기 앞에서, 미래의 꿈 같은 건 떠올릴 겨를도 없고, 천년포 해안으로 달려와 그의 주검을 앞에 두고 피 울음으로 통곡할 부인의 모습도 전혀 머릿속에 그릴 수가 없었다. 오직 저 아이들을 살리는 일 말고 무엇을 생각에 둘 수 있었으랴. ‘생각이 아니라 찰라적 본능이었다. 그 고결한 본능을 파도가, 바다가 삼킨 것이다.

선생이 몸을 던진 바다는 선생이 일군 아름다운 사랑의 꽃밭이 되었고, 폭발한 파도는 선생의 사랑이 폭발한 것이었다. 선생의 사랑은 바다에만 꽃이 되지 않았다. 섬의 일주도로 건설에 박차를 가하여 마침내 1979년부터 여객 버스가 다니는 계기가 되게도 했다. 그 사랑이 뭍에서도, 뭍의 모든 사람에게도 꽃을 피운 것이다.

그의 고결한 죽음 50주기를 기려 제정한 이경종 스승상을 처음으로 수여하는 2026, 울릉도는 파도 걱정 없이 섬 한 바퀴를 돌 수 있는 일주 버스가 그의 숭고한 희생을 안고, 그 사람 사랑의 높은 뜻을 싣고 섬을 경쾌하게 달리고 있었다.

이경종 선생의 바다는 사랑의 바다였다. 섬 모든 곳에 사랑의 꽃을 피워준 바다였다. 세상 모든 사람의 가슴속에 인간애의 뜨거운 마음을 꽃피게 해준 바다였다. (2026.1.25.)

                                                                     

 

이경종 선생의 목소리

 

이경종 선생은 울릉도 북쪽 천부초등학교 교사였다. 지금부터 50년 전인 1976117일 천부항에서 배가 난파되었다. 그 배에 타고 있던 선생은 무사히 헤엄쳐 나왔지만, 돌아보니 제자 둘이 위기에 처해 있었다. 다시 뛰어들어 목판을 이용해 제자들을 뭍으로 밀치고 자신은 파도 폭발을 이기지 못해 물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때 선생은 35, 교직의 창창한 꿈을 그리던 청년 교사 시절이었다.

그 후 그의 아름다운 인간애를 추앙하는 사람들에 의해 상과 훈장이 수여되고 순직비가 세워졌다. 해마다 그날이 오면 빗돌 앞에 제수를 차리고 꽃을 바치며 25십만 년 전 화산섬 울릉도를 흘러내린 용암보다 더 뜨거웠던 그 열정 어린 사람 사랑을 기리고 새겼다.

내가 선생의 순직비 앞에 서서 고개를 숙였던 것은 두 번째로 울릉도를 삶의 터로 삼아 울릉고에 재직하고 있던 때인 200811732주기 추모식에서였다. 눈이 빗돌을 덮고 있었다. 그 위기 앞에서 나는 그런 의기를 낼 수 있을 것인가를 돌아보니, 선생의 그 숭고한 정신이 더욱 우러러졌다.

그때 제자를 안고 있는 형상을 한 추모 빗돌이 지반 침하로 인해 한쪽으로 기울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저렇게 기울다 보면 선생의 품에 안긴 아이들이 추락해버릴지도 모른다는 안타까움과 함께 선생의 꽃다운 넋이 망각의 늪 속으로 매몰되어 가는 건 아닐까 하는 기우가 들어 마음이 아리기도 했었다.

섬사람들은 선생을 결코 잊지 않았다. 그동안 안락한 이전과 재정비 논의를 해오다가 드디어 202012, 45주기를 앞두고 추모비와 주변을 대대적으로 정비하면서 더욱 튼튼하게 조성한 기단 위에 추모 빗돌을 안전하고 안락하게 앉을 수 있게 했다. 선생은 제자들을 더 사랑스럽게 안아줄 수 있게 되었다.

그즈음 선생의 정신을 더 높이 승화시켜 오래도록 모든 스승의 귀감이 될 수 있게 해보자는 논의가 일어났다, 마침내 울릉 출신의 39대 김진규 울릉교육청 교육장이 울릉교육의 발전을 위해 이바지한 교원들을 대상으로 한 이경종 스승상제정을 위한 기틀을 마련하고. 뒤이어 202531일 자로 부임한 40대 이동신 교육장이 실행에 옮기게 되었다고 한다.

2026117, 선생의 50주기가 되는 날이다. 그 며칠 전, 이 교육장이 나에게 전화했다. 50주기를 기념하여 시상하기로 그 상에 다른 두 분과 함께 내가 첫 수상 대상자로 선정되었다는 것이다. 깜짝 놀랐다. 당혹스럽고 난감했다. 내가 무슨 일을 했다고, 그것도 울릉도를 떠나온 지 20년이 다 되어 가는 사람에게 그런 상을 주려 한다니, 믿기지 않았다.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었다.

한 일이 제대로 있어야 상을 받아도 떳떳할 것이고, 이런 상 받았노라며 내놓을 수도 있을 것이 아닌가. 내 섬 생활을 돌이켜 보면, 내가 몸 붙이고 있는 섬을 사랑하고, 내 삶의 터전인 그 섬의 학교를 사랑하고, 오직 내 할 일인 그 학교의 아이들을 사랑하려 애썼을 뿐이다. 교직을 사는 이라면 누구나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섬 사랑만으로 오롯이 책 한 권 낸 일이 있고, 섬에 예술 문화적 풍토를 조성해 보자 싶어 섬 최초로 문학회를 만들어 섬사람들 글을 모은 책 발간을 주선하기도 했다. 섬의 수려한 풍광 속을 사는 사람이면, 그런 예술적 정서도 없지 않으리라는 믿음에서였다. 그런 일이라면 학교 교육 외적인 일 아닌가.

어찌하였든, 섬의 교육과 문화 발전에 이바지해 수상 대상자로 선정되었다며 시상식에 참석해 달라 했다. 그런 상을 받는 것도 송구한데, 다시 한번 송구하다 했다. 배를 탈 자신이 없었다. 섬 살이를 할 때만 해도 한창때였던지 섬 사랑과 함께 즐겁게 배를 탔었는데, 세월 탓인지 이제는 몸이 따라 주지를 않을 것 같았다. 교육장께 사정을 말하고 양해를 구했다.

이경종 선생의 당시 모습을 다시 새겨본다. 폭발하고 부서지기를 거듭한 뒤의 바다에는 부서진 배 조각들만 떠다닐 뿐이었다. 제자를 구해낸 선생의 손길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선생의 시신은 닷새 뒤인 22일 천부항 부근 천년포 해안에서 인양되었다고 한다. 시신은 바닷물에 침윤되어 알아볼 수 없었지만, 비보를 받고 뭍에서 달려온 부인에 의해 남보다 큰 발과 다리의 점으로 겨우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아동문학가 김진태 선생이 지은 비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㰡’……푸른 파도가 넘실거린다. 높새바람이 분다. 넘실거리는 파도를 들여다보면 어른거리는 모습이 있다. 우는 바람 고요히 귀를 기울이면 애끊는 흐느낌이 들려 온다.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않고 어린 양들의 목숨을 구하려던 갸륵한 이경종 님의 얼굴이다. 사랑하는 어린이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짖던 스승의 목소리다.……

이제 나는 그 얼굴, 그 목소리를 오래도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나에게 주는 상은 그간의 내 행적에 주는 상이 아니라, 그 모습을 내 가슴 속에 오래도록 간직하며 살라고 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목소리가 쟁쟁히 울려 오는 것 같다.

무엇을 위해서 무엇을 어찌하며 살아야 할까. (2026.1.18.)

                                                                      

 

산바람 강바람과 안성기

 

안성기 배우가 향년 7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영화에 문외한이 되어버린 지 오래되어 영화에 관해서는 관심도 지식도 별로 없지만, 배우 안성기하면 꼭 떠오르는 장면이 하나 있다. 어느 영화에선가 그가 산바람 강바람이라는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다.

내가 초등학교(국민학교) 시절이었으니 60년도 훨씬 더 전이다. 어느 조그마한 극장에서 흑백 영화로 본 기억이 아련한데, 안성기 말고는 영화 제목도, 출연 배우도, 줄거리도 다 잊어버렸다. 그 장면 하나만 남아 안성기 이름만 나오면 그 장면이 떠올랐다.

다른 장면이며 줄거리가 기억 안 나면, 노래 그대로 산을 뛰어다니거나 강물을 쫓아다니며 노는 장면 속에서 부른 노래였을까, 그런 청량하고 순정한 장면들을 마음대로 상상하며 어린이 배우 안성기와 그가 부른 노래를 떠올리곤 했다.

그 영화 속에서 안성기를 만났을 때 안성기보다 내가 몇 학년 높았을 것 같았지만, 또래 같은 생각이 들면서 어쩌면 그리 똑똑하고 잘 생겼을까, 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런 기억과 더불어 나도 안성기도 황혼의 나이가 되는 세월이 훌쩍 흘러갔다.

그 기억 속의 안성기가 작고했다고 하니 어린 시절 본 그 산바람 강바람의 장면이 다시 떠오르면서, 내가 무슨 영화, 어떤 장면 속에서 그를 봤을까 하는 게 무척 궁금했다. 웹 사이트에 관련될 만한 검색어를 넣어 찾아보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제미나이Gemini를 실행하여 안성기 배우가 출연하여 산바람 강바람이라는 노래를 불렀던 영화가 어떤 작품이었는지 알려 달라.’AI에게 청했더니, 1960년에 나온 하녀라는 영화라고 재깍 알려 준다. 과연 AI. 그때 같으면 내가 초등학교 졸업반 무렵이다.

내친김에 줄거리와 그 노래가 불린 장면도 좀 알려 달라 했다. 그걸 알 수 있으면 내 기억도 살아날까 싶어서다. AI는 잠시도 망설임 없이 원하는 걸 척척 알려주었다. 호기심과 설렘으로 AI가 해주는 말을 열심히 듣고 읽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내 상상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 줄거리의 대략은 이러했다.

작곡가이자 어느 방직공장 음악 선생님인 동식(김진규 분)은 아내와 아들 창순, 딸을 데리고 이 층 양옥집으로 이사를 했다. 아내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밤낮으로 재봉틀 일을 하며 몸이 허약해져 있었다. 아내의 건강이 걱정된 동식은 공장 학생 소개로 한 하녀를 집으로 들인다. 이 하녀는 처음부터 어딘지 모르게 기괴하고 대담한 행동을 보이며 집안의 분위기를 묘하게 바꾼다.

비가 쏟아지는 어느 날 밤, 하녀는 동식을 유혹하여 관계를 맺고 임신을 하게 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내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 하녀를 설득해 아이를 유산시킨다. 자신의 아이를 잃은 하녀는 광기에 사로잡혀 가족을 위협하기 시작하는데, 특히 동식의 아들 창순(안성기 분)을 계단에서 밀어 떨어뜨려 다리를 다치게 하는 등 잔혹한 복수를 감행하며 집안을 공포로 몰아넣는다.

결국, 하녀는 동식과 함께 쥐약을 먹고 동반 자살을 시도한다. 동식은 마지막 순간에 아내의 곁으로 기어와 숨을 거두며, 영화는 관객에게 이 모든 것이 하나의 '경고' 혹은 '상상'일 수도 있다는 묘한 여운을 남기며 끝이 난다.”라고 했다.

이런 이야기 속에서 그런 서정적인 노래를 불렀다니! AI는 또 이렇게 말해주고 있다.

하녀에 의해 다리를 다친 창순이 계단을 힘들게 오르내리며 동요 산바람 강바람을 흥얼거리는데, 하녀는 위층에서 차가운 눈빛으로 창순을 내려다보고 있고, 창순은 아무것도 모른 채 노래를 부른다. 이때 흐르는 동요는 평화로운 가사와 달리, 곧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스릴러적 긴장감을 극대화하는 장치로 쓰였다.”라고 했다.

끔찍한 이야기다. 그 노래가 그런 장치로 쓰였다니! 그런데 왜 내 기억 속에는 그러한 사건이며 분위기가 전혀 남아 있지 않고, 안성기의 그 천진한 노래만 여태껏 남아 온 걸까. ‘미성년자 관람 불가로 판정되었을지도 모르는 그 영화를 내가 어찌 볼 수 있었던지도 모르겠다.

불가佛家에서는, 생각은 인연이 되었을 때만 일어난다고 하며 이를 연기법緣起法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 스릴러적분위기는 내가 어려 이해를 못 했거나 받아들이지 못해 내 기억으로 남지 않고, 오직 안성기 배우의 그 노래와만 내가 인연을 맺었단 말인가.

그 영화의 이야기며 그 속의 사건이 그런 끔찍한 것이었다면 내 기억에 남지 않은 것이 오히려 다행일지 모르겠다. 이처럼 세상 모든 일을 두고 인연을 맺고 싶은 것만 맺어 기억으로 남기고 싶은 것만 남기며 살아갈 수 있다면 그 삶은 얼마나 아름답고 편안할까.

그런데 우리는, 기억 때문에 기쁘고 가벼운 마음, 아름답고 따뜻한 마음, 누군가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도 가지게 되기도 하지만, 또 기억 때문에 슬픔, 괴로움, 우울함, 미움 같은 감정을 안고 가야 할 일도 얼마나 많은가.

지금도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천진하게 그 노래를 부르던 창순(안성기)의 모습만을 내 기억 속에 담아 두고 싶다. 친절한 AI가 내 궁금증을 풀어준 건 고맙지만, 그 끔찍한 사건들 때문에 어린 안성기의 그 무구한 모습에 대한 기억에 흠이 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다행히 안성기 배우는 인기인이면 으레 따라다니기 마련인 가십거리 하나 남기지 않고, 곁눈 팔지 않고 오직 영화만을 위한 영화예술인으로 살다 갔다고 한다. 그 노래 그대로 좋은 바람, 고마운 바람이 되어 관객들의 땀과 눈물을 씻어 주다가 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산바람 강바람과 안성기를 오래도록 내 기억 속에 담아두고 싶다.(2025.1.8.)

                                                                  

 

고맙습니다

 

파이브, , 쓰리, . 원 제로-”

공모가 55,000 현재가 61,600” 팡파르가 울리면서 거래소의 커다란 스크린에 숫자가 큼지막하게 떴다. 장내는 우렁찬 박수와 함성으로 터져 올랐다.

대표 회사가 비로소 주식을 상장上場하는 날이다. 장내에는 주식 상장에 관계된 많은 인사며 관계자들이 모여 있고, 중앙에는 식장이 스텐딩으로 마련되어 있었다. 식전 행사로 이 대표가 증권회사 대표들에게 제품 설명해 나갔다. 세계 최초의 상···90도 다관절 복강경 수술 기구의 성능과 제작 과정을 소개했다. 듣는 이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관심 깊게 듣고 보고 있었다.

식이 시작되면서 내빈 소개에 이어 회사와 제품을 안내하는 홍보 영상이 상영되고, 이어서 증권회사 대표와 이 대표가 상장 증서에 서명하고, 서로 교환하는 절차가 진행되었다. 이 대표는 누가 나와 갈아입힌 붉은색 재킷 차림을 한 채 장내 한쪽에 놓여 있는 큰 북 앞으로 올랐다. 용호가 힘차게 포효하는 무늬가 새겨진 북 앞에 서서 북채를 들어 힘차게 내쳤다. 장내는 또 한 번 박수와 함성의 도가니를 이루었다.

정면 식대로 와서, 회사와 증권 관계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무슨 버튼을 누르자 카운트 다운 숫자와 함께 폭죽이 터지듯 하는 팡파르가 울려면서 주가가 떠올랐다. 이 순간을 바라보는 이 대표의 감회는 어떠했을까. 보고 있는 나도 온몸에 전율이 돋으면서 누선이 울컥 솟구쳐 올랐다.

사회자의 대표 기념 연설 소개와 함께 이 대표가 객석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세상을 바꾸자.'라는 것이 저희의 목표인데요. 세상과 시장의 법칙을 잘 꿰뚫고 이해를 해서 거기에 맞게 살아가면 성공을 거둔다고 믿었습니다. ……큰 성공이라는 것은 재무적인 성공뿐만 아니라, 저는 선진화된 의료 기술을 누구나 누릴 수 있게 만들겠다는 거대한 꿈을 꾸었습니다…….

2011년 창사 이래 14년 동안 온갖 어려움을 무릎 쓰고 로컬 맥시마(Local Maxima·국소적 최적점)’를 넘고 넘어서, 언젠가 마주할 그랜드 맥시마(Grand Maxima)’인 에베레스트산을 향해 줄기차게 노력해 왔다면서 감회에 젖기도 했다.

기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신념으로 기술 혁신을 위해 정진을 계속해 왔다며, ‘누구나 누릴 수 있어야만 진정한 혁신이라 믿으며 타제품과의 초격차 성능과 함께 원가 절감을 위해서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고도 했다

나중에 들으니, 세상에 없는 최초의 유일무이한 것을 만들어 내는 일이라 초 마이크로 베어링을 비롯한 미세한 부품 하나하나까지 직접 구안하고 제작하여 원하는 걸 만들어 내야 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무려 200건이 넘는 특허를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원천 기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제품이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인정받고 각광받아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고 했다. 그렇지만 이제부터가 제 일의 시작이라고도 했다.

이런 아들이 대견하고 자랑스러워 보일수록 내 모습은 작아져만 보였다. 아들이 불러서 참석은 했지만, 여기에 이르기까지 내가 해준 일이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내가 감격해 하는 것조차 무람한 일이 될 것 같았다.

제가 자랄 때 내가 호기심을 갖게 해주었다 싶은 게 하나 있다면, 지금부터 한 사십 년 전쯤 컴퓨터가 처음 보급될 때, 나도 잘 모르는 걸 구해서 안겨준 일이 기억 난다. 그때 저는 초등 저학년 시절이었는데, 흥미를 느끼면서 재미있어했다. 그게 계기가 된 것인지는 몰라도 그때부터 과학과 수학에 관심을 가지고 고등학교와 대학을 과학 기술 계통으로 나아갔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의학에 관심을 가지더니 대학원은 제가 전공한 전자공학에 의학을 접목할 수 있는 곳을 찾아갔다. 대학원을 졸업하면서 학위를 받고 어느 대학교에 가서 연구 교수 생활을 얼마 동안 하더니, 제가 조그만 회사를 차렸다고 했다. 그사이에 무슨 무슨 상을 받기도 했다지만, 그 과정에서 저 딴은 고생도 많이 한 것 같았다.

그러한 일을 해 오는 동안 나는 저에게 무어라 해준 말도, 보태어 준 힘도 없었다. 일찍부터 집을 떠나 있었고, 학비조차도 그리 많이 들지 않은 곳을 다녀 나에게는 별 부담도 지우지 않았다. 저의 공부며 일이 내 평생을 두고 살아온 분야와는 전혀 달라 나는 잘 알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다. 식구끼리도 아들은 돌연변이 같다 했다.

행사 과정에서 아들이 나를 여러 사람에게 소개할 때, 나는 그저 고맙습니다.”라고만 했다. 내가 무슨 할 말이 더 있을까. 아들의 일을 주변에서 잘 도와주어 고맙고, 일을 이루게 해준 세상이 고맙고, 묵묵히 제 일을 잘해 낸 아들에게도 고맙다는 뜻을 담은 말이었다.

제 말마따나 이제부터 시작일지 모른다. 저의 연구로 출시할 제품들이 계속 이어질 거라 했다. 모든 일을 잘 이루어내기만을 빌 뿐, 역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제 포부대로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기술 혁신을 빛나게 이루어낼 수 있기를 빌며, 조용히 행사장을 나섰다. 하늘이 부시게 푸르러 보였다.

하늘을 우러르며 다시 말했다. “고맙습니다.”(2025. 12. 30)

                                                                     

 

기다림에 대하여(8)

 

시골 버스는 승강장에 도착하는 시각이 제 도착 시각이고, 출발하는 시각이 제 출발 시각이다. 승강장마다 행선지와 출발 시각을 안내하는 표지가 붙어있지만, 어디까지나 참고용일 뿐이다. 승객들은 곁눈질로 슬쩍 한번 보면 된다.

지켜지지도 않을, 이런 쓸모없는 것을 왜 붙여 놓았을까. 붙여 놓았으면 지켜야 할 게 아닌가. 시골살이가 참 힘들구나, 하고 한탄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에 비하면 도시에서 시내버스를 기다려 타는 것은 얼마나 편리한가.

버스 노선 번호별로 경유지, 목적지가 상세하게 안내되어 있을 뿐만아니라, 몇 분 후에는 차가 도착할 것이며, 지금은 어디쯤 오고 있다는 전광판 안내에 이어, 이제는 전 승강장을 통과하여 곧 도착할 것이라는 여성 목소리 안내 방송이 나긋하게 흘러나온다.

차별이 이리 심한 곳에 살고 있는 것에 대해 무언가 손해를 보고 있는 듯도 하고, 문명한 곳에서 살지 못하는 비문명의 처지를 비감하게 느낄 수도 있다. 주민을 위한 복지와 편리를 도모할 줄 모른다며 행정기관을 원망할 수도 있다.

만약 그렇게 여기는 사람이 있다면, 시골에 오래 살아보지 않은 탓이거나, 늙어보지 않은 탓일지 모른다. 시골에 오래 산 사람, 나이 지긋이 든 사람들은 아무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버스를 타려면 올 때까지 기다리고, 출발하면 비로소 가는 줄 안다.

시골에는 노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 그 중에도 칠팔십 대가 많다. 노인의 나이가 그냥 드는 게 아니다. 한두 가지 병은 다 안고 늙어간다. 그중에서도 허리, 무릎의 관절을 많이 앓고 있다. 나도 그렇다. 노화 현상인 걸 어쩌랴.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스스로 운전을 안 하거나 못 한다. 성치도 않은 몸을 끌고 버스를 오르내리려니 민첩하게 움직일 수가 없다. 한 발을 올려놓고 손잡이 힘껏 잡아당기면서 천천히 올라야 하고, 내릴 때는 한 발씩 조심조심 내려야 한다.

시골 버스 기사는 인내심이 없으면 안 된다. 승객이 몸을 완전히 올려 자리에 안착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타는 사람이 많을수록 인내심은 더 강해야 한다. 내리려 할 때는 차가 설 때까지 움직이지 말라 하고, 차체에서 몸이 완전히 떨어진 후에 차를 움직여야 한다.

배차 시간이 조금 신경이 쓰이긴 하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다. 안전이 제일 아닌가. 급정거 시 방어해 줄 앞자리 등받이가 없는 맨 앞자리는 승객이 앉지 못하게 종이상자라도 묶어놓아야 한다. 요철이 심한 길일수록 속도를 잘 조절해야 한다. 노인은 버틸 힘이 약하다.

차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은 안다. 시각을 비교적 잘 맞춘다 싶게 도착하면 빈 차거나 한두 사람이 탔을 뿐이다. 차가 제 도착 시각보다 늦을수록 승객이 많을 거라는 걸 짐작한다. 장날이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사람들은 2·7, 3·8장을 곧잘 떠 올린다.

어떤 날은 앞서 와야 할 차가 뒤차보다 더 늦게 승강장에 도착하는 수도 있다. 그 앞차에는 사람이 많이 타고, 뒤차는 승객이 별로 없는 탓이다. 거쳐 오는 곳이 달라 승강장마다 타고 내리는 사람이 적을 수도 있고 많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차가 일찍 오든 좀 늦게 오든 말없이 탄다. 어디 대처 볼일이 있어 역이나 터미널로 가서 그곳 원행 차의 출발 시각을 맞추려 하면, 길을 좀 더 일찍 나서 한 차례 앞 차를 기다려 타야 한다. 기다리는 차가 언제 와 줄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어쩌다 차가 빨리 좀 움직여 역이나 터미널에 이르러 대처 차 출발을 쓸데없이오래 기다려야 할지라도 그 쓸데없는 시간을 아깝다 할 수 없다. 뒤뚱거리며 타고 내리는 내 몸을 말없이 기다리며 태워준 기사가 얼마나 고마운가.

도시 사람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나오는 사람이 약봉지를 들고 차를 느릿느릿 타니, 젊은 버스 기사가 빨리 타지 않는다고 버럭 소리 지르더란다. 승강장 방송 시각에 쫓긴 탓일까, 인내심이 부족한 탓일까.

시골 사람들은 기다린다. 타고 갈 차를 기다리고, 타는 사람이 느릿하게라도 다 오를 때를 기다리고, 출발하기를 기다린다. 누구도 성급해 하지 않는다. 기사는 더욱 마찬가지다. 저 관절염 환자들이 잘 타고 잘 내리기를 기다릴 뿐이다. 나도 그 승객 중의 한 사람이다.

기다림의 지루함과 초조함은 다른 세상 이야기다. 시골 버스 승강장에 앉아 차를 기다리는 시간은 따뜻하다. 그 속에는 배려가 있고, 인간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 속의 시간들은 오직 그런 것들을 위해 이바지해 준다.

오늘도 나는 승강장 벤치에 앉아 그 따뜻한 시간을 누린다. 이 차를 타고 달리면 내 즐거운 벗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 기다림을 향해 달려오는 이 따뜻한 기다림, 언제 올지 몰라도 그 차 오면 내 뒤뚱거리는 몸은 즐거이 오를 것이다.

내 시외버스 터미널 차는 얼마를 기다려 타도 좋다. 반가운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2025. 12. 14)

※글 속의 삽화는 AI가 그려준 그림입니다.

                                                                     

 

자기 자비에 대하여

 

무엇을 해도, 어디에 있어도 무언가 마음 한쪽이 비어 있는 것 같다. 그 빈 마음은 책을 읽는 데도 집중을 못 하게 할 때도 있고. 무얼 먹어도 속이 차지 않게 할 때도 있다. 이 빈 마음의 정체는 무엇일까.

한 생애의 막을 내리고, 새로운 삶을 시작한 지도 십수 년이 흘렀다. 한 생애가 막을 내렸다는 것은 지난했던 생애의 한 업에서 놓여났다는 것이다. 한동안 그 해방감을 만끽하며 지냈다. 별세계를 사는 것 같았다.

그 별세계도 한 해 두 해를 살다 보니 보통의 세계, 일상의 삶의 되어갔다. 그런데 그 일상에는 무언가 하나 있어야 할 게 비어 있는 것 같아 허전했다. 그렇다고, 그전 생애의 세계가 그립거나 돌아가고 싶은 건 아니었다.

한때는 시 낭송을 즐겨 하여 동호인들과 함께 무대를 만들어 보기도 했고, 수년 전부터는 수필을 쓰고 싶은 사람들과 함께 공부하며 문학회도 만들어 해마다 책을 내고 있다. 그런 일들은 나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런 일들이 내 마음의 빈자리를 얼마큼은 메워 주었지만, 온전히 메꾸어주지는 못했다. 돌아보면, 나 자신을 위해서나 누굴 위해서라도 무얼 하나 뚜렷하게 해 놓은 일도 없고, 하는 것도 없이 세월만 흘리고 있는 것 같아 허무감도 없지 않았다.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처지나 하는 일들이 실수,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있는 것 같고, 그런 과거들만 쌓여 있는 것 같아 가끔 우울해질 때가 있다. 이 나이까지 살아오면서 돌아보아 후회하지 않을 일을 할 수가 없단 말인가, 회의감에 젖기도 한다.

그렇게 달이 가고 해가 바뀌는 사이에 세월만 흘러가는 게 아니었다. 사람도 흘러갔다. 같은 시기에 퇴직하면서, 다시 인연을 이어가자 하고 만나 즐거이 대작하던 네 사람 중에 세 사람이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가버렸다. 나 하나 남은 것이 서러웠다.

서럽다 해야 할까, 서러움마저 매몰되어 버렸다 해야 할까. 옆 사람마저 원심을 남긴 채 이 세상에서는 다시 못 볼 곳으로 훌쩍 떠나갔다. 누가 나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올 때, ‘내 삶은 총체적인 실패인 것 같다.’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새어 나왔다.

먼저 간 사람을 따라갈 기회가 왔다. 고립 고적한 시간들이 쌓여가던 어느 날 나는 혼절했다. 구급차에 실려 대처 병원에까지 육신이 옮겨져 갔지만, 누굴 뒤따라가지는 못했다. 두어 주일 뒤에 다시 나의 방으로 돌아왔을 때는 몸도 마음도 예전 것이 아니었다.

홀로 견디기도 힘들고, 견뎌 나갈 의지도 챙기기 어려웠다. 보이는 것, 느껴지는 것, 와 닿는 모든 것이 아수라였다. 그 절망의 아수라 속에서 한 줄기 빛이 비쳐 올 줄이야. 나라의 제도가 나의 손을 잡아 끌어주었다.

요양 보호사라는 따뜻한 이름을 가진 천사가 나에게로 왔다. 내 힘으로 해결하기 쉽지 않은 생존의 문제를 하루 중 잠시나마 와서 해결해 주고, 말 붙일 곳 없는 내 고적을 잠시라도 깨워주는 게 여간 고맙지 않았다.

일본에는 지금 공헌수명貢献寿命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주목받고 있다 한다. 노인이 돌봄 없이 스스로 일상을 유지하면서 사회에 뭔가 이바지하며 살아갈 수 있는 기간을 뜻하지만, 노인이 자력으로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사회에 공헌하는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 나는 어찌해 세상을 위해 별다른 이바지도 못 하면서, 나 혼자 못 살아 다른 이 손길조차 이리 받아야 하는가. 참 허망한 삶을 살고 있다는 비감이 폐부를 찌를 때, 문득 자기 자비Self-Compassion라는 말이 눈에 띄었다.

실수하거나 고통을 겪을 때 자신을 비난하는 대신, 따뜻하고 너그럽게 대하는 태도라는 것이라 했다. 또한, 고통은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인간이 겪는 보편적인 경험이라는 인식을 가지는 일이라 했다.

겪고 있는 고통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그것에 휘둘리지 않고 균형 있게 바라보는 마음 챙김이라고도 했다. 자신에게 자비를 베풀 수 있어야 남에게도 베풀 수 있다고도 했다. , 나를 사랑하는 마음을 챙기지 못해 누구를, 무엇을 위할 수도 없었단 말인가.

아침 강둑을 걷는다. 즐겨 걷는 내 산책길이다. 맑은 햇살이 강으로 강둑으로 내려앉는다. 강에 앉은 햇살은 윤슬이 되어 반짝반짝 빛을 낸다. 내 안을 흐르고 있는 마음 강에도 저 윤슬이 반짝일 있을까.

강물이 유유하다. 거침없이 흐른다. 걸리는 게 있으면 소리 없이 비켜 가고, 비켜 흘러서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옆의 물과 스스럼없이 어울린다. 흘러간 강물은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오직 앞만 바라보면서 내달을 뿐이다.

그렇구나, 그냥 흘러가자, 걸리는 게 있으면 아파하지 말고 둘러 가자. 만나는 이를 반가이 맞자. 그리고 또 흘러가자. 내일은 글 친구들을 만나는 날이다. 글과 삶을 서로 나누다가 눈물 나면 눈물에 젖고, 웃음 나면 가슴 펴고 웃을 일이다.

허전도 외로움도 다 나의 것 아닌가. 빈자리는 빈자리대로 보듬고 가자. 그냥 흘러가는 저 물처럼 유유히 흘러가자. 내일 글 친구들을 향해 걸음 가볍게 나서자. (2025. 12. 4)

                                                                      

 

건망에 대하여

 

오래 사귄 친구 이름이 한동안 기억나지 않다가 어느 날 문득 이름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보다 더 민망한 일은 아는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데, 이름이 통 기억나지 않는 것이다. 물어보면 실례가 되거나 실망을 줄 것 같아 물어보지도 못하고 아주 답답했던 적이 있었다.

무슨 일을 하리라 하고 앞으로 한 걸음 내디디는 순간 잊어버렸다. 내가 무슨 일을 하려 했더라? 한참을 궁리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욕실에 가서 무엇을 하리라 하고 방에서 욕실로 갔는데, 순간 내가 왜 여기 왔지? 어처구니없는 의문에 스스로 놀라기도 했다.

어떤 글을 읽다가 엄살’. ‘다혈질이라는 말을 떠올려야 하는데, ‘응석’ ‘어리광’, ‘고혈질’, ‘고혈압과 같은 얼토당토않은 말만 맴돌고, 그 말이 도무지 기억나지 않아, 이렇게 어찌 살아야 하나 하는 암담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근래에 와서 건망健忘이 부쩍 심해진 것 같다. 주위에 그런 사실을 털어놓으면 다른 이들도 자주 그런다면서, 다 나이 탓이라 했다. 나이가 들면 다 그런 건망을 다 앓아야 하는가. 그런데 건망에 튼튼하다는 뜻의 자는 왜 붙는 걸까. 잊는 게 튼튼하다는 말인가. 우습다.

어떤 자료에 의하면, 나이 탓만 아니라 수면과 운동이 부족해도, 스트레스와 우울이 심해도, 과음과 흡연을 해도, 고혈압 당뇨 등 만성 질환이 있어도, 사회적 고립 및 대화 부족이나 정신적 자극 부족도 기억력과 인지력 저하를 초래하는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 했다.

그런 위험 요인 중 몇 가지가 마치 나를 지목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근래 내가 처한 처지와 환경에서 그런 요인들이 거의 비롯된 것 같다. 요즘 와 더욱 심해진 것 같은 건망의 원인으로 와 닿는다.

어쩌다 홀로 사는 처지가 되었다. 잠을 잘 못 이룰 때도 있고, 심한 스트레스와 우울을 겪기도 한다. 거기다가 오래전부터 겪고 있는 만성 질병에 독작과 독백으로 고립감을 이겨내려 해보기도 한다. 건망의 위험 요인을 두루 갖추고 지내는 셈이다.

그럴 바에 모든 것을 싹 몰각해 버릴 수는 없을까. 우스갯소리로 주위 사람들은 불편하지만, 본인은 편한 병이 치매라기도 한다. 모든 걸 다 잊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란다. 그렇다고 치매를 바랄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잊고 싶은 것일수록 왜 그리 잊히지 않는 걸까.

기쁘고 즐거운 일이 잘 떠올라주면, 그 또한 얼마나 즐거운 일이 될까. 그런 일보다는 세상을 살아오면서 실수며 시행착오를 겪었던 일, 상처를 주거나 받은 일이 기억에서 잘 지워지지 않는다. 내가 한 일이 실수며 시행착오인 줄도 모르고 저지를 때가 많았던 것 같다.

상처도 그렇다. 내가 남에게 알게 모르게 준 상처도 많았을 것이다. 남들도 나에게 그렇게 상처를 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준 것이든 받은 것이든 상처 진 기억들이 뇌리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내가 끼친 상처가 잘 잊히지 않는다.

세상살이를 모두 어찌 편안하게만 할 수 있을까만, 세상에 부대끼면서 살아오는 사이에 생겨난 고통스러운 상처 때문에 가끔씩 우울에 빠질 때가 있다. 내 탓이 크겠지만, 이런 일들은 왜 내 건망의 목록에 들어주지 않는 걸까.

부처님의 어느 경전을 보면 평안한 사람이란 미래를 원하지도 않고, 과거를 추억하여 우울해하지도 않는사람이라 했다. 그렇게 마음을 잘 다스릴 수 있다면, 이 또한 부처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정신적 자극이 부족하면 뇌 가소성可塑性이 감소하여 기억 회로가 퇴화한다고 했다. 정신 자극에 도움이 될까 해서 책 읽기며 글쓰기에 마음을 바쳐 보고, 시 외기를 즐겨 해본다. 그런 일이 아픈 기억들을 밀어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도 없지 않다.

내가 즐겨 외는 시에는 정일근의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 조창환의 나는 늙으려고, 박주택의 하루에게, 계절에 따라서는 봄에는 신달자의 봄의 금기 사항, 여름에는 오세영의 파도는, 가을에는 문병란의 반려返戾, 겨울에는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들을 즐겨 외지만, 내가 특별히 애송하는 시는 조병화의 , 혹은이다.

, 혹은, 혹은 때때로 /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는 건 / 얼마나 생기로운 일인가로 시작해서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건즐거운 일이라 하고, ‘그리워지는 사람이 있다는 건인생다운 일이라 하고,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건 아직도 살아 있다는 명확한 확인이라 했다.

사람이라도 좋고, 사물이라도 무방하다. 그렇게 시를 외며 정신에 자극을 조금이라도 주다 보면, 그리하여 늘 혹은 때때로 누구를, 무엇을 생각하고 보고 싶어 하고 그리워하다 보면, 내 건망의 늪에도 청량한 샘물이 고일 수 있을까. 살아 있음이 확인될까.

건망이란 일깨워 가는 내 생각으로 조금은 잠재울 수도 있을 것이라는 아린 믿음도 가지면서 조용히 시 하나 외어 본다. (2025.11.25.)

                                                                     

 

희망에 대하여

 

오늘도 강둑길을 걷는다. 날마다 걷는 나의 산책길이다. 강둑 바깥쪽으로는 들판과 마을이 펼쳐지고, 마을 주위로는 산이 새 날개처럼 둘러 서 있다. 강둑 안쪽으로는 길을 따라 벚나무가 줄지어 서 있고, 강에는 윤슬을 실은 강물이 흐른다. 사시장철 변함없는 풍경들이다.

아니다. 그 풍경이 한 시도 같은 적이 없다. 들판도 산도 달마다 철마다 모양이며 빛깔을 바꾸어 나가고 있다. 강둑 벚나무도 철을 맞추어 쉼 없이 몸을 고쳐 가고, 물도 흐르는 자리 따라 몸짓을 달리해 간다.

이렇게 피고 지고 흘러가는 것이라고, 그저 무심히 흐르는 것이기만 하랴. 사나운 폭풍우를 만나기라도 하면 지녔던 모습들이 일거에 깨어지는 상처와 고통 앞에 서지 않으면 안 된다. 모든 것을 다시 다스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한들, 저들 일이야 뭐가 무엇을 잘못해서가 아니라 모두 자연이요, 하늘의 일이지 않은가. 그래도 물은 제 줄기를 지니고 흐를 수나 있고, 나무들도 풀들도 제철을 누릴 수나 있지, 나에게도 그런 제 줄기며 제철이라는 게 있었던가.

희로애락 우여곡절 만난萬難 끝에 한 생애를 마무리 짓고, 이제는 초원을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야생마라도 될 수 있을까 했는데, 허몽 속에서나 그릴 수 있을 뿐이었다. 물은 흐르고 자갈만 처진다더니, 세월 따라 모든 게 흘러가고 쳐진 건 외로움과 병마뿐이다.

붙이도 떠나고, 티격태격하던 옆 사람도 가버리고, 마음에는 공허만 가득하고, 몸에는 숙병만 차 있다. 누구는 아프지 않으면 죽은 것이라 했지만, 아파도 누가 옆에 있어야 몸도 마음도 기대어 볼 수나 있을 텐데, 내가 짚을 곳은 절망의 벽밖에 없는 것 같았다.

그래도 세상이 그리 야박하지만은 않았다. 고단한 처지에서 나이 들고 병들어 기댈 곳 없는 이들을 살펴주는 제도가 있어, 그나마 몸과 마음을 조금이라도 붙일 곳이 있다는 걸 알았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찾은 듯했다.

한 달에 정해진 날수를 두고 하루에 길지 않은 시간 도움을 받을 뿐이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생존 수단이며 고단한 심사까지도 잠시나마 기댈 곳이 있다는 것이 그리 고마울 수가 없다. 그렇지만 그것도 흐르는 시간 따라 기한이 다 차면 다시 통과의례를 치러야 한다.

마치 입학시험을 앞둔 학생 심정이라 할까. 기일이 하루하루 다가오면 불안에 더 나아가 살아 있다는 게 짐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 심정이란 마치 불설비유경에 나오는 안수정등岸樹井藤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에서는 사람 사는 걸 두고, 맹수에 쫓겨 낭떠러지 등나무에 매달려 있는데, 위에는 흰 쥐와 검은 쥐가 등나무 줄기를 갉아 먹고, 아래 우물 속에는 굶주린 독사들이 먹이가 떨어지기를 기다리며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형상과 같다고 했다.

내 처지에 빗대어 보면, 나이와 병에 쫓기다가 겨우 살펴주는 제도를 만났는데, 시간이 그 제도의 끝으로 몰아내니 기다리는 것은 다시 노쇠와 병고뿐이라는 것이다. 이 절망을 어찌해야 할까. 강둑을 걸으며 보이는 산도 물도 모두 절벽을 향해서 가고 있는 것 같다.

높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젊은이 못지않은 활동력을 과시하는 사람들 얘기를 들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내 의지와 노력이 모자라 홀로 설 힘을 갖추지 못한 게 무렴한 상념으로 차오르지만, 가버린 일신의 세월이며 와버린 심신의 고단을 어찌 다스려야 할까.

관계 기관에서 방문 점검을 나왔다. 마치 입사 면접을 보는 것 같았다. 마음과 몸의 상태를 묻는 대로 답하는 가운데, 아무에게도 도움이 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 비감할 뿐이라 했다. 잘 알겠다 하고 심사관이 돌아가며 의사 소견서를 내어 달라 했다.

지정 병원에 가서 의사의 친절한 진단을 여러모로 받는 중, 문진에서 이렇게 많은 분께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먼저 가버린 사람을 하루라도 빨라 따라가고 싶다 했다. 의사는 그런 말씀 말라 했지만, 솔직한 심사이기도 했다.

그런 의례 끝에 세상이 고맙게도 다시 한번 나를 돌아봐 주었다. 몇 년 동안은 덜 외롭게 살 수 있게 되었다. 거쳐야 할 문을 통과한 것이다. 그 통과가 희망으로 안겨 왔다. 피에르의 희망이 다시 나를 찾아온 것이다.

프랑스 사회운동가 아베 피에르(Abbe Pierre, 1912~2007) 신부는, 세상에 소망들은 많지만, 희망은 삶의 의미, 단 하나뿐이라 하지 않았던가. 이 지경에서 내가 가질 수 있는 소망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그 소망에서 내 삶의 의미를 얻었다. 몸부림치는 아수라의 생존이 아니라, 일상을 무난히라도 지켜갈 수 있는 사람의 생활, 그 삶의 의미를 다시 찾았다. 또 언제 그 의례 앞에 서야 할 때가 올지라도, 지금 나에게는 희망이 있다. 삶의 의미가 있다.

그 희망으로 강둑을 걷는다. 물 위에 반짝이는 윤슬이 찬란하고, 산빛은 오늘 더욱 찬연해 보인다. 내일은 나를 기다리는 글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날이다. 몸이 한결 가벼워질 수 있을 것 같다. 내일도 즐겁고도 유익한 자리를 만들고 싶다.(2025. 11. 6)

                                                                      

 

길은 살아있었다

 

이태 만이다. 그리워하던 주지봉에 올랐다. 별다른 사정이 있는 날 말고는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오르내리던 길이었다. 그 길의 풀이며 나무 하나 눈길 주지 않은 게 없고 그 산의 흙이며 돌덩이에 발길 대지 않은 곳이 없으리만큼 오르고 내렸다.

그 길과 산을 내 글 속에 고스란히 담아 책 한 권 엮기도 했다. 그 나무며 그 산이 품고 있는 숨결은 곧 나의 호흡이고 맥박이었고. 내뿜는 정기는 곧 내 삶의 살이 되고 근육이 되곤 했다. 그러던 산을 이태나 버려두어야 했다.

방안에서 혼절하여 쓰러졌다. 옆 사람이 가뭇없는 길을 떠나고 난 뒤 고적하게 지내던 어느 겨울날이었다. 가물가물하는 의식 속에서 겨우 핸드폰을 잡아 119를 불러 응급실로 실려 갔다. 급기야는 대처 큰 병원 병실에 누워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영양 불균형과 척주 골절상이라는 진단을 받고 의사와 간호사에게 몸을 맡겨 두어야 했다. 두어 주일 후 겨우 내 몸을 내가 찾아 집으로 돌아왔지만, 지난날의 그 몸도 아니었고, 지난날 같은 내 생존도 지켜나갈 수 없게 되었다.

절망만 있는 세상은 아니었다. 고마운 제도가 고마운 분을 보내주었다. 하루 두어 시간이었지만, 그분의 따뜻한 마음과 손길을 받아 생존을 지키며 다 치유하지 못한 몸과 마음을 다스려 나갔다. 병원을 이웃 드나들 듯하면서 때로는 먼 길도 오가야 했다.

그러는 사이에 생존만이 아니라 생활이 아주 조금씩 나에게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게 이태 만이었다. 내 생활이 온전히 나의 것이 되기 위해서는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먼 것 같지만, 조금은 나를 돌아볼 수 있게 해준 세상이 여간 고맙지 않다.

돌아 보이는 내 모습 중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게 숲길을 걷고 비탈길을 오르는 모습이었다. 가을이 깊어가던 어느 날 오후, 지난날 오를 적보다는 조금 더 이른 시각에 등산화를 신고 나섰다. 그리움으로 설레며 떨리는 걸음을 떼었다.

조금 먼 지난날에는 나 말고도 이 산길을 오르고 내리던 이들이 없지 않았다. 그래서 누가 가풀막에 가로목도 걸쳐 계단 삼아 오를 수 있도록도 해놓았지만, 몇 해 전부터는 오직 나만을 위한 나만의 길이 되었다. 그 길을 이태 동안이나 못 올랐으니-.

십수 년 전, 내가 그 산을 삼백 번 오른 것을 기념하여 주위 사람들이 뜻을 모아 내 이름까지 새겨넣은 표지석을 마루에 세워주기도 했다. 오를 때마다 朱芝峰세 글자를 어루만지며 감회에 젖기도 했는데, 그 돌은 잘 있을까. 길은 그대로 온전할까.

아득했다. 들머리부터 마른 넝쿨 풀들이 얼기설기 얽혀 길을 막고 있었다. 이것들이 다른 곳도 얼마나 이렇게 막고 있을까. 돌아설 수는 없다. 힘주어 뜯어내었다. 그 사이를 비집고 나아가니 앞이 트여왔다. 수풀 길 지나 큰 나무들 서 있는 곳으로 들었다.

비명 같은 환호가 나도 모르게 터져 나왔다. 희미하게나마 길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주저앉아 낙엽 아래 잠들어 있는 그 흙에 손을 짚었다. 해방된 조국 땅에 첫발을 디딘 어느 독립지사가 흙에 입을 맞추며 감격했다는 일화가 헛말이 아님을 알 것 같았다.

그 감격을 안고 한 발 한 발 나가면서, 보이지 않는 길은 감각과 기억을 불러내었다. 그 나무, 그 바위가 그 자리 그 모습대로 있어 주었다. 향긋한 생강나무며 얼룩이 물푸레나무, 봄이면 해사한 꽃을 피우는 산벚나무도 그대로였다.

다만 내가 변했다. 보폭도. 보속도 지난날 같지 못했다. 바위며 가풀막을 딛고 오르기가 전 같지 않았다. 걸음이 둔해지고 무릎이 떨려왔다. 가을이면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산에 오르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의사의 말을 믿고 싶었다. 그래서 이 가을에 힘을 냈다.

드디어 마루 직전 가풀막이다. 먼 지난날 누가 가로목 173개를 놓아 오르는 힘을 덜어주기도 했지만, 지금은 많이 썩고 허물어졌다. 그래서 내가 그 계단 길 따라 밧줄을 메어놓기도 했다. 나를 반기기라도 하듯 하얀 줄 빛이 더욱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만만치 않았다. 남아 있는 가로목을 딛고 밧줄을 잡아당기면서 오르기도 힘에 겨웠다. 짐승처럼 엎드려 네발로 가쁘게 기어오르기도 했다. 드디어 정상이다! 수풀에 묻히긴 했지만, 표지석 글자도, 내 이름도 그대로다. 울컥 눈물이 치밀었다. 이렇게 다시 만날 수가 있다니!

감격도 잠시, 날이 내 삶처럼 저물어 들었다. 전보다 집을 일찍 나서긴 했지만, 힘이 예 같지 않은 걸 몰랐다. 서둘러 감격을 거두고 내림 길을 잡았다. 내림 길엔 어둠이 더 빨리 내리지 않던가. 내 늙어가는 몸처럼. 어둠살 헤치고 내려왔을 때, 피인지 땀인지로 온몸이 젖었다.

집에 이르니 다스리고 있는 허리와 무릎이 쑤셔왔다. 내일 또 병원 길을 나서야 할 것이다. 나아가던 허리가 조금 더 아파질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몸이 가벼워진 듯한 느낌은 또 무엇인가. 길을 보았다. 내가 걷지 않은 세월 속에서도 길은 살아있었다.

내가 나아갈 길도 살아있을 것이다. 오늘의 그 길처럼, 길은 내 앞으로 올 것이다. 내 그리움의 길이-. (2025. 10. 21)

                                                                     

 

댑싸리 전설(4)

 

가을이 여물어가는가 싶더니 올해도 댑싸리가 발갛게 물들고 있습니다. 당신이 그렸을지도 모르는, 그렇지만 볼 수 없었던 빛깔이지요. 당신이 씨 뿌렸던 그 댑싸리의 후예들입니다. 가을비가 살포시 내리더니 빗물의 무게 때문인지 드러누운 것도 있네요.

그때 당신이 씨를 뿌린 건 당신이 떠나던 해의 봄이었지요. 그것이 움이 터서 싹이 올라와 잔잔한 이파리들을 피워낼 무렵 초여름에 당신은 환우를 안고 아이들에게로 떠났지요. 아이들 집에 있던 어느 날, 한데 몰려 있게 하지 말고 고샅에 한 줄로 옮겨 심어 달라 했지요.

당신이 댑싸리 씨를 뿌린 것도 처음이었고, 나도 당신이 뿌린 씨로 댑싸리를 처음 알았지요. 어디서 복슬복슬 이쁘게 자라는 댑싸리를 보고 가까이 두고 싶었던지, 가을에 발갛게 물드는 그 모습을 어여삐 여겼던지, 어쨌든 그것으로 당신과 내가 그것과 인연을 맺었지요.

약재藥材를 좋아하는 당신이라, 혹 약에 쓰려고 기르려 했던 건 아니었는지요? 나중에 알고 보니 잎을 데쳐서 나물로 먹거나 국을 끓이기도 한다지만, 씨는 지부자地膚子라하여 간염, 간 경화며 피를 맑히는 데도 좋다는군요.

당신의 그러저러한 뜻을 들어볼 겨를도 없이 당신은 곁을 떠나 있다가 급기야는 댑싸리가 한창 푸르던 어느 날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길로 떠나고 말았지요. 나에게도 아이들에게도 하고 싶은 많은 말을 안고 떠나갔겠지요. 나에게는 원망하고 싶은 말도 많았을 것이고요.

당신이 뿌려놓은 댑싸리는 그런 사연도 모른 체 무럭무럭 잘 자라 잔잔한 잎들이 모여 커다란 달걀을 세워놓은 듯 둥글둥글하고, 귀여운 강아지 털같이 복슬복슬 어여쁜 모습이 되었습니다. 가을이 오자 연붉은 물이 들기 시작하더니 눈이 아릴 듯 붉은빛이 되었습니다.

그 붉은빛을 보면서 나는 당신이 채 다하지 못하고 떠나야 했던 그 말들을 한꺼번에 다 토설해내고 있는 것 같은 상념에 문득 얼굴을 붉히기도 했습니다. 그 붉은 빛이 작년에도 들었고, 올해도 지금 들고 있습니다.

당신이 뿌린 그 댑싸리가 가을 붉은빛에 이어 단풍이 지듯 잎과 씨를 떨구고 말라 갔지요. 겨울 지나 봄이 오면서 마른 댑싸리를 걷어낸 자리에 파릇파릇 싹이 돋더니, 당신이 가던 해처럼 무럭무럭 잘 자라 고샅을 보기 좋게 채웠습니다.

그 댑싸리가 또 그렇게 붉은 물이 들었다가 씨를 남기고 가버린 자리에 올해도 그렇게 나고 살고 물들고 있습니다. 씨의 씨가 커서 저렇게 물이 들어갑니다. 그러고 보니 당신이 가신 지 벌써 몇 해가 흘러가고 있네요.

댑싸리의 꽃말이 오래 참는 사랑’, ‘고백이라는 걸 당신은 아십니까? 내가 만약 그런 말을 당신에게 했다면, 빈 웃음을 어이없이 날릴지도 모를 일이지요. 언제 우리가 그렇게 살아 봤냐면서. 그래서 나에 대한 원망의 말도 많이 남았을는지 모르겠네요.

어찌하였거나 내가 이승을 떠나는 날까지도 댑싸리는 피고 물들고 지기를 거듭하겠지요. 그냥 저들끼리 살도록만 내버려 둘 것이 아니라 늘 보살피겠습니다. 나야 그것으로 나물을 해 먹을 수도 없고 약재로 쓸 수도 없는 일이지만, 따뜻이 살피며 지내겠습니다.

추석이 지나갔습니다. 당신이 떠난 후 명절이면 그랬듯이 당신을 만나러 아이들에게로 달려갑니다. 추석을 맞아 댑싸리 소식을 안고 갔지요. 그 역귀성이 나의 일이 될 줄은 일찍이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명절이면 언제나 아이들이 늙은 부모에게로 달려올 줄 알았지요.

이제 내가 아이들에게로 달려가서 아이들 집에서 당신을 만나야 하네요. 영정影幀과 지방紙榜으로 당신을 만나고, 그리하고는 아들 집 가까이에 있는 산집으로 달려갔지요. 비가 내리고 있더군요. 아들이 튼실히 지어준 집이라 비 맞을 일은 없겠지요,

당신 앞에 서 있는 나와 아이들의 얼굴에도 무엇이 흘러내리는 듯했지만, 빗물이겠지요. 지금 물들고 있는 댑싸리도 비를 맞고 있겠지요, 빗물이 무거워 드러누운 것도 있을 테지만, 날이 개면 다시 일어나 더욱 깊은 물이 들어가겠지요.

당신에게 올해도 댑싸리가 잘 자라 고운 물이 들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고 집으로 돌아왔지요. 내년 추석 때는 물론, 내가 살아 있는 날의 추석이면 언제나 물들어가는 댑싸리 소식을 전할 수 있겠지요. 언제까지나 전할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지만요.

당신이 좋아했을 그 복슬복슬한 머리를 쓰다듬으며 지내겠습니다. 당신이 못 보고 떠난 그 붉은빛을 보면서 그 빛 속에서 당신이 하는 말들을 묵묵히 듣겠습니다. 하고 싶은 말 모두 쏟으소서, 마음 가벼워질 때까지 붉게 붉게 물드소서. 댑싸리여, 당신이여-!(2025.10.7.)

                                                                    

 

종이부시終而復始

 

친구는 우리 네 사람 모임에서 총무 역할을 했다. 한 달에 한 번씩 만나는 그날 이른 아침에도 저녁 아무 시에 모일 것이니 그때 보자는 문자를 보내왔다. 그러던 사람이 그날 늦은 오후 무렵, 걷기가 힘들어 외출이 어려우니 셋이서 즐거운 자리를 가지라며 더 이상 참석이 어려울 것 같다는 문자를 다시 보내왔다.

무슨 오해가 있는 건지, 홀연 무슨 일인가 싶어 전화하니 꺼져가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갑자기 속이 뒤틀리면서 전신에 힘이 빠지고 말도 잘 안 나온다며 온 가족이 다 모여 있다 했다. 무슨 변인가 싶어 달려 가보겠다 하니, 부담된다며 오지는 말고 차도 소식을 기다려 달라 했다. 친구와 나눈 마지막 목소리였다. 소식은 아들이 보낸 모바일 부고장으로 왔다.

나 말고 세 사람은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 내가 따로 만나던 세 사람을 한데 모았다. 넷은 나이도 거의 같고 모두 현직을 은퇴한 사람들이었다.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막걸릿잔이나 나누며 살아가는 회포나 풀어보자 했다. 그 세월이 십수 년이 흘렀다. 모두 인생을 살 만큼 살면서 산 고투 물 풍파 다 겪은 사람들이라 이해 못 할 말도, 그럴 일도 없었다.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날이 많다 보니, 함께 앉아 잔을 기울이다 보면 지난 일들을 많이 이야기하지만, 때로는 철학이며 종교, 예술 등에 대한 고담준론도 마다하지 않았다. 정치 이야기로 설왕설래할 때는 가끔은 지지도 보내지만, 때로는 분개도 하면서 정 안 되면 우리라도 올라가 봐야 하는 게 아니냐.’ 하며 호탕하게 웃기도 한다.

화제에 가장 많이 오르는 것은 건강 문제다. 어디가 안 좋아 어느 병원에 가서 무슨 치료를 하고 어떤 약을 먹으며, 건강 관리를 위해서는 무슨 운동을 어떻게 하고, 무슨 요법을 어떻게 쓴다는 등, 저마다의 비법, 비책을 털어놓느라 열을 올린다. ‘이런 이야기에 열 내는 걸 보니, 우리도 늙은 모양일세!’ 하며 또 한 번 웃는다.

무슨 문제를 토론하고, 무슨 이야기를 나누든, 우리의 잔 속에 담기는 건 늘 웃음과 정이었다. 살아온 날들의 무슨 일을 말하다가는 입은 웃으며 눈은 눈물에 젖는 일도 없지 않았다. 한 친구는 이런 말 다 털어놓으니 속이 시원하네!’, 또 한 친구는 한 달이 왜 이리 길어? 좀 더 자주 보면서 세상 욕도 좀 하자.’ 하며 다시 웃기도 했다.

십수 년을 한 달도 거르지 않고 우리는 만났다. 그렇게 엄중했던 코로나 시기에도 약속한 달과 날을 절대 놓치지 않았다. 누구도 마다하지 않았고, 그날은 만사를 제친 날이었다. 그런 날들을 돌이키며 우리는 목숨을 걸고 만났던 역전의 용사들이 아닌가, 그런 뜻에서 건배!’ 호기로운 웃음소리가 술잔을 흔든다.

그렇게 담소하다 보면 서너 시간도 잠시, 종업원도 다 퇴근하고 혼자 남아 있는 주인 눈치를 보며 의자에서 억지로 몸을 떼어낸다. 이 친구는 자리 주선뿐만 아니라, 마칠 때는 뒤처리까지 말끔히 다 한다. 그런 일을 하면서도 한 번도 싫다 한 적 없이, 응당 자기가 해야 할 일인 줄로 알고 해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친구가 자리를 마치고 집에 가면서 한 친구와 함께 지하도 긴 길을 걸어가다가, 숨차고 힘들어 같이 못 가겠다며 먼저 가라 하더란다. 두고 먼저 갈 수 없어 보조를 맞추며 걸어 전철을 같이 탔다고 했다. 그날이 우리가 이 친구를 마지막으로 본 날이었다. 그다음 달 만날 날에 시각과 장소를 자기가 알려 놓고 자기만 오지 못했다.

셋이서 걱정스럽게 잔을 나누고 헤어진 두 주일쯤 뒤의 어느 날, 우리는 검은 옷을 입은 채 꽃장식에 둘러싸인 영정 앞에 앉아야 했다. 곧장 같이 한잔하며 잔을 내밀 것만 같았다. 병원에 입원한 지 사나흘 만에 숨을 거두었다 했다. 급성 뇌경색이라 한다. 믿기지 않았다. 지금 다음 달 약속 문자를 쓰고 있는 건 아닐까?

영정을 마주해야 했던 그날이 내 오랜 속병인 요통 치료를 위해 병원을 가야 하는 날이었다. 영정과 헤어지고 병원행 먼 길 차를 탔다. 믿기지 않던 일이 내 통곡이 되어 울대를 치밀어 올라왔다. 친구는 정말 가버린 건가. 그리도 쉽게 갈 수 있는가. 부럽기도 했다. 나도 그렇게 가버릴 수 있다면 이 병고도 없을 것 아닌가.

의사가 내 검은 행색이며 그렁한 표정을 보고는, 어디 문상이라도 다녀오시느냐 했다. 가버린 친구한테 갔다 오는 길이라 했다. 병원을 자주 다니다 보니 의사와도 친숙하다. ‘친구가 가셔서 마음 아프시겠지만, 오랜 고생 안 하고 가신 건 다행이라 여기시고 좋은 데 가시도록 빌어 주세요.’ 다행이라고? 오랜 병을 안고 있는 나보다, 그래, 다행일지 모르겠다.

집에 와 넋을 놓고 앉아 있으려니 의사가 문자를 보내왔다. “…… 종이부시終而復始, 끝나자마자 다시 시작한다는 / 염주 알처럼 시작도 끝도 없는 길을 / 발 없는 발이 걸어간다고 하더라구요. / 먼 길 고단하셨을 텐데 / 몸도 마음도 따뜻하고 편안한 밤 되세요……, 삶과 죽음이란 그런 걸까. 그래서 우리의 우정은 다시 걸어 나갈 수 있을까.

발 없는 발이 걸어가는, 그 시작도 끝도 없는 길이 바로 우리의 길일까.

잘 가시게, 다시 만나세! (2025. 9. 23)

                                                                      

 

의사의 동화

 

손목에 손가락을 얹어 맥박을 짚으며, 뛰는 소리를 듣고 보기라도 하려는 듯 온 감각 기능을 다 모으는 것 같다. 옷을 살짝 걷어 복부 곳곳을 꼭꼭 눌러본다. 그러고는 혈을 찾아 발가락부터 배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침을 놓는다. 전기 자극까지 얹어 자르르한 진동이 느껴지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간호사가 와서 침을 뽑고는 엎드리라 하여 허리에 물리치료를 시작한다. 치료가 끝나면 다시 의사가 와서 등판에 부항을 붙이고 허리 곳곳을 지그시 누르면서 침을 놓는다. 급소를 찌를 때는 비명이 터져 나올 만큼 아프기도 하지만, 굳은 몸이 풀어지면서 뭔가 트이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요통으로 고통받으며 몇 곳 병원을 전전했지만,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 어느 날 길을 가다가 통증 치료라는 한 한의원의 안내 현수막을 보고 전화 상담부터 했다. 그 이튿날부터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몸의 여러 가지 증세를 말하는 중에 평소 만성 변비로 고통을 받고 있다고도 하자 의사는 함께 치료해 보겠다고 했다.

쉽게 치료되지는 않았다. 치료를 받은 지 달포가 넘어가고 두 달이 넘어가는 사이에 약간의 차도가 느껴지는 듯은 했지만, 뚜렷한 차이가 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그 의사를 믿고 싶었다. 치료를 위해 갖은 의술을 다 기울이고 있는 듯할 뿐만 아니라 온갖 정성을 다해 병을 다스리려 해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정성이란 자기 일에 대한 애착에서 나오기도 하겠지만, 더 깊은 마음은 사람에 대한 사랑과 환자의 아픔에 대한 연민인 것 같았다. 맥을 짚고, 혈이며 환부를 찾아 꾹꾹 누르는 그 손길, 손끝에 사랑이 보이는 듯했다. 의사는 불법佛法에 관심을 두고 공부하는 중이라 했다. 그 공부하는 마음과 진료의 손길이 무관치 않은 것 같았다.

일주일에 두 번씩 가는 날짜가 기다려지기까지 했다. 어느 신문에 칼럼을 쓰고 있으면서 즐거운 병원 길이라는 제목으로 그 의사의 정성에 관한 칼럼을 써서 발표하기도 했다. 그 글을 의사에게 보여주었더니, 쑥스러워하면서도 감격해 하는 것 같았다. 나를 매체에서 검색해 보고는 내가 글 쓰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며 감동과 기쁨을 느꼈다고 했다.

어느 날 진료대에 누운 나에게 의사가, 자기는 내 병을 치료해 줄 것이니, 나는 자기에게 글 치료를 좀 해 달라 했다. 글 치료? 동화 창작에 관심과 흥미가 있어 써보고 있는데, 잘 안 되더라 했다. 내가 쓰고 있는 장르와는 다르지만, 써놓은 글을 보고 싶다 했다. 며칠 후 글 몇 편을 메일로 보내왔다.

유아들을 대상으로 하는 그림 동화였다. 이야기와 함께 그림을 보여주도록 구성해 놓았는데, 쉬운 이야기로 엮어나가면서도 주제 의식이 뚜렷한 글들이었다. 정진하고 있다는 불법의 세계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어린아이들이 은연중에 느끼게 할 수 있는 재미난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었다.

보내온 동화 중에 이런 게 있었다. 아이들의 화를 먹고 자라는 도깨비가 마침 화난 아이를 찾아내어, 화를 한 시간만 지니고 있으면 원하는 것은 다 들어주기로 약속한다. 그 아이는 어느새 화가 풀어지고 말아 그 약속은 못 지켜졌다는 것이다. 모든 마음은 실체가 없는 ()’한 것이라는 불법의 진리 쉽고 흥미로운 이야기로 풀어내었다.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도 있었는데, 우리가 아는 둘의 경주 이야기가 아니었다. 거북이가 토끼를 만나 함께 길을 가기로 했는데, 거북이는 꽃도 즐기면서 가다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염소며 다람쥐를 도와주다 보니, 오직 자기 목표만을 향해 달리고 있는 토끼보다 많이 처지게 되었다. 그걸 본 다람쥐가 자전거를 빌려주어 토끼에게로 달려가 둘이 함께 타고 목적지까지 재미나게 갈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들을 읽고 보니 환자 진료에 성심을 다하는 심정을 알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모든 것에 실체가 없음을 깨닫는다면 가장 소중한 것은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가 아닌가. 지금 자기 앞에 누워 있는 환자가 의사에게는 가장 소중한 존재라 여기며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또한, 목표지향적으로만 살다 보면 현재 누릴 수 있고, 누려야 할 사랑과 행복을 놓치기 쉬운 우리의 삶을 의사는 토끼와 거북이의 이야기를 통해 돌아보고 있는 것 같았다. 현재 자기가 해야 할 일과 처지에 정성을 다함으로써 사랑과 행복을 누리려 하는 것은 아닐까.

의사의 그 정성과 사랑 때문일까. 내 병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 같았다. 배변도 순조로워져 가고 있고, 요통도 줄어들고 있는 것 같았다. 나에게 치유에 대한 믿음을 준 그 손길과 의사를 향한 나의 믿음도 치료제의 몫을 하고 있을 것 같았다.

의사의 동화 속에 나타난 순수한 상념과 무구한 상상력의 세계는 내가 오히려 본받아야 할 게 많은 것 같았다. 어휘 몇 곳만 조언해 주며 꼭 책으로 만들어서 세상 어린이들의 아름다운 꿈과 심성을 다독여 줄 수 있도록 하라고 곡진히 권유하였다. (2025. 9. 6)

                                                                

 

고독사가 아니라 고립사다

 

외롭지 않은 사람은 없다. 외로움이란 인간의 실존적 본질이기 때문이다. 어느 시인이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고 한 것도 외로움이 인간이 지닌 숙명으로서의 본질을 형상화한 말일 것이다. 외로움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주관적인 감정의 세계이기도 하다.

지금 세상에서는 외로움을 두고 누구나 지닌 개인적, 사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공적인 문제로 풀어나가야 할 것이라는 인식이 고조되어 가고 있다. 사회 구조적인 문제와 관련이 있다고도 보기 때문이다.

영국에서는 세계 최초로 외로움부(Minister for Loneliness)’를 만들고, 일본도 내각부 산하에 고립·고독 대책 담당실을 설치하고, 우리나라 서울시에서도 외로움 없는 서울사업을 추진하여 외로움에 대처하고 있다 한다.

그런데, ‘외로움에 관해 말하는 사람들은 외로움고독’, ‘고립과 동의어로 쓰기도 한다. 국어사전에서조차 외로움홀로 되어 쓸쓸한 마음이나 느낌으로, ‘고독을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이 매우 외롭고 쓸쓸함으로 풀이하여 뜻에 별 차이를 두지 않고 있다.

어느 신문에서 고독사 절반 이상은 5060 중장년층 남성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하면서 고독사를 주로 홀로 사는 사람이 아무도 모르게 사망하고, 일정 시간이 흐른 뒤에 발견되는 경우를 가리킨다.”(조선일보, 2025.9.6.)라 하고 있다.

아무도 모르게 홀로 사망한다고 하는 것은 사회적인 관계가 모두 단절된 고립 상태에서 사망한다는 것이다. 이런 처지라면 고독한 처지가 아니라 매우 외로운 처지에 놓여 있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외로운 죽음이라 할 수 있을지언정 고독사라고는 할 수 없다.

고독은 홀로 있어도 고립은 아니다. 고독 속에는 사랑도 있고 그리움도 있을 수 있다. 사랑이나 그리움은 늘 대상과 관계를 맺는다. 외로움은 모든 관계가 끊어진 고립 속에 있는 것이지만, 고독은 사람이든 사물이든 관계를 맺고 있기 마련이다.

외로움은 어딜 둘러봐도 절망밖에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고독은 관계 속에서 따뜻한 위안을 받을 수도 있고, 삶의 의미를 다시 새길 수 있는 희망의 불씨를 지펴 올릴 수도 있다. 관계를 맺지 못하거나 관계가 끊어진 삶이야말로 얼마나 외로운 것인가.

배우 오드리 햅번은 나는 외톨이가 되고 싶진 않지만, 나를 혼자 내버려 두면 좋겠다.’라 했다고 한다. 외톨이가 되어 고립되는 건 싫지만, 혼자서 조용히 고독을 즐기고 싶다는 말일 것이다. 이처럼 고독은 자기 의지로 즐길 수 있고, 즐기고 싶은 것일 수 있다.

외로움은 자발적으로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괴로운 심리 상태다. 고독 속에도 쓸쓸함은 있지만, 견디기 어려운 외로움 속의 쓸쓸함과는 달리 아늑한 심리 상태에 이를 수도 있다.

고독은 스스로 찾아 즐길 수 있지만 외로움을 즐길 수는 없다. 즐길 수 있다고 하면 그것은 외로움이 아니라 고독이다. 고독은 혼자 있는 즐거움일 수 있지만, 외로움은 혼자인 것이 괴로울 뿐이다.

고독은 그 안에 머물고 싶을 수 있어도 외로움은 어서 탈출하고 싶다. 탈출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거나 탈출할 수 있는 기력마저도 잃어버렸을 때, 스스로 목숨을 포기하거나, 아무도 모르게 죽음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죽음을 두고 세상에서는 고독사라고 하지만, ‘외로운 죽음혹은 고립사라고 할 수 있을지언정, ‘고독사라 할 수는 없다. 스스로 고독을 찾아 즐기다가 죽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죽는다면 그것은 사고사라 해야 할 것이다.

고립은 주관적인 감정과 개인적인 상황의 문제일 수 있지만, 사회적인 관계망의 문제일 수도 있다. 오늘날과 같이 여러 가지 관계가 복잡하고 빠르게 흘러가고 있는 사회 구조 속에서 자칫하면 일탈되고 소외되기 쉽다.

외로움을 두고 사적 차원의 주관적 감정으로만 보지 않고. 사회적 현상으로 파악하여 사회 정책으로 대처하려는 움직임도, 사회 구조적인 문제에서 오는 그 일탈과 소외를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로만 바라볼 수 없다는 인식 때문일 것이다.

그 대책으로 가장 먼저 살펴야 할 것은 바로 사회적인 고립의 문제를 해결하여, 누구든 사회 관계망에서 이탈하거나 소외되지 않고 함께 손잡고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일이다. 정책 부서에도 그런 점을 첫째의 해결 과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고독사라는 용어부터 고립사로 바로 잡아야 한다. 모든 관계가 단절된 상태에서 참혹하게 죽어가는 것은, 자칫하면 유희적으로도 들릴 수 있는 고독사가 아니라고립사외로운 죽음이다.

고립 상태에 옥죄어 죽어갈지언정. 고독해서 죽는 사람은 없다. (2025. 9. 9.)

                                                                     

 

기다림에 대하여(7)

 

내가 왜 이리 상사화에 빠졌는지 모르겠다. 산수 좋은 곳이라고 찾아와 마을에 발을 내리고 살던 어느 날, 마을 숲에서 만났다. 애절한 그리움을 지닌 꽃이란 걸 알았다. 내게도 맺혀 있던 무슨 그리움이 있었던지, 그 후로 상사화 꽃밭은 내 정서의 샘이 되고, 내 삶의 한 의지처가 되기도 했다. 비가 내리든 바람이 불든 그 꽃을 찾지 않는 날이 없었다. 상사화는 잎과 꽃이 서로 그리며 돋아나고 피어나다가 말라가고 잦아드는 꽃이라지만, 나는 상사화를 보며 피어나고 잦아든다.

눈이 채 녹기도 전인 2월 하순께 어느 날 마을 숲에 들다 보면 문득 땅속에서 뾰족한 순이 솟는다. 날이 따뜻해지면서 순은 잎이 되어 자라난다. 봄을 지나 5월을 넘어서기까지 난초처럼 길쭉하고 치렁한 잎을 돋우어 내다가, 6월 들면서 꽃 한번 만나보지 못하고 서서히 말라간다. 7월이 되면 거의 형체도 없이 말라 땅속으로 잦아든다.

7월 말경이 되면 그 잎 진 자리에 또 순이 솟는데, 그 순은 잎이 아니라 꽃대가 된다. 솟은 꽃대는 며칠 만에 성큼성큼 자라나 끝자락에 여섯 잎 분홍 꽃을 예닐곱 송이 피워낸다. 한창 화사하게 피어나다가 지친 듯 꽃이 시들면서 진다. 진 꽃대 끝에 열매 같은 걸 남기지만, 그리던 잎을 만나지 못한 탓인지 맺지는 못한다.

꽃과 잎이 만나지는 못하면서 서로 그리기만 하다가 말라가고 져가기에 상사화相思花라 했다던가. 그렇다면 치렁한 잎이 말라 시들어가는 것이며. 그 화사한 꽃이 제빛을 잃고 져가는 것이 모두 그리움으로 애타 하는 몸짓이란 말인가. 그리움은 기다림이 되고 기다림은 병이 되어 그렇게 이울어가는 꽃-. 누구에겐지, 무엇엔지 모를 내 그리움도 그 꽃 따라 피고 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참혹한 일이 벌어졌다. 그 잎이 그리워할 자유를 무참히 빼앗겨 버렸다. 숲에 풀이 무성해 지면 마을 사람들이 울력으로 숲의 무성한 풀을 베어내는데, 일 잘한다는 이장이 자기 집 과수원 네발 예초기를 몰고 나와 탱크로 적진을 쳐부수듯 숲의 모든 풀을 깡그리 밀어붙여 버린 것이다. 상사화 잎도 그 이장에겐 잡풀일 뿐이었다. 예초기 바퀴가 잎 잘려나간 알뿌리를 무자비하게 짓이기도 했다.

남은 것은 갈가리 찢긴 잎 자국, 무참하게 뭉개진 알뿌리 자취뿐이었다. 잎은 꽃이 그리워 말라갈 수도, 그리움에 지쳐 땅속으로 잦아들 수도 없게 되었다. 저 짓이겨진 알뿌리가 무엇을 그릴 수 있으며, 어떤 날을 기약할 수 있단 말인가. 그리움도 기다림도 모두 처절한 아픔이 되고 말았다. 이리 한 많은 그리움이 또 있을까.

처참한 날들이 하루이틀 흘러갔다. 누가 또 나처럼 애를 태울까. 이 뿌리를 보며 가슴 죄며 애태우는 사람은 세상에서 나 한 사람뿐일 것이다. 나의 봄도, 여름도, 내 삶의 시간들도 무참히 다 쓸려 가버린 것 같다.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라던 어느 시구가 아니라도, 이제 나는 무엇을 그리며, 무엇을 기다리며 살아야 하나.

그 꽃자리를 잊지 못하고 떨칠 수 없어 날마다 찾아가 보아도 짓이겨진 상흔만이 애를 태울 뿐, 꽃 기미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일주일이 지나가고 열흘이 넘어갔다. 다른 해 같으면 벌써 꽃대가 솟고 연분홍, 진분홍 꽃 빛깔을 뿜을 때도 되었건만, 올해는 덧없고 허망하게 지나가야만 하는가. 저 알뿌리, 생기 차려주기를 비는 간절한 마음만 허공을 맴돌 뿐이었다.

, 심상사성心想事成, 간절하면 이루어진다 했다던가. 그렇게 빌고 빌던 어느 날, 마침내 움 하나가 솟아났다. 선 자리 그대로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다른 해에 꽃대가 솟아날 즈음을 두 주일쯤이나 넘긴 뒤였다. 저 움 커서 꽃대가 되어 꽃을 피울 무렵, 잃어버린 내 한 해가 다시 올 것도 같았다. 살아봐야겠다 싶었다.

내 삶에도 이장의 네발 예초기보다 더 비정한 일이 할퀴고 갔었다. 옆에 있던 사람을 데려가 버렸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무참히 데려갔다. 상사화가 그렇게 짓이기고 베어지듯 내 삶도 참혹하게 베어지고 말았다. 막막하고 처절하다 못해 그 네발 예초기가 내 삶을 다시 한번 밟고 가주기를 바라기도 했었다.

살면 살아지는 건가. 크로노스 시간들의 흐름을 따라 카이로스 시간들도 추적추적 따라 흘러갔다. 그렇게 한 해가 지나가고 두 해도 흘러갔다. 외로움일지 고독일지 모를 시간들 속에서 외로움보다는 고독이 날 안아 주길 바라며, 상사화가 있는 숲 지나 강둑길도 걷고, 물에 비친 하늘 구름도 바라곤 했다.

짓이겨진 상사화가 다시 피어났다. 상처 난 명줄을 잡고 얼마나 안간힘을 썼을까. 하나둘씩 솟아나던 꽃대가 쑥쑥 자라 올라 꽃을 피워낸다. 눈부시다. 그 질곡 속에서도 힘을 어디서 만들어 내었을까. 잎을 애타게 그리는 그 그리움의 힘이었을까. 이 꽃처럼 무언가를 누군가를 그리며 기다리며 살다 보면 나에게도 그 힘이 일까.

오늘 찾아간 상사화밭에는 거의 모든 꽃대가 꽃을 활짝 피웠다. 짓뭉개어진 뿌리가 피워냈다. 살아보자. 그리다 보면, 기다리다 보면 내 삶의 날도 저리 다시 피어날까. 그리움은 기다림이고, 기다림은 그리움이지 않은가. (2025.8.16.)

                                                                      

 

이 상처를 어찌할까

 

살다 보면 몸과 마음에 상처를 받는 일이 적지 않다. 사는 일이란 상처의 극복 과정이라 할까. 그 상처를 잘 극복하지 못하면, 삶이 어렵거나 심지어는 무너질 수도 있는 일이다. 요즈음 나는, 남이 알면 비소할지도 모르지만, 나에게는 커다란 상처가 되는 일로 칼끝이 찔러오는 듯한 아픔을 겪고 있다.

조용하고도 아름다운 산수를 찾아 이 마을에 발을 내리고 산 지도 어언 십수 년이 지나가고 있다. 내가 마을에서 아름답게 여기는 정경 중 하나가 마을 숲 가장자리 한 곳에 다소곳이 피고 있는 상사화 꽃밭이다. 누가 오래전 몇 포기 심은 것이 점점 벌어 칠팔 월 한여름쯤에는 화사한 홍자 빛 꽃밭을 이룬다.

상사화는 여러해살이 알뿌리 화초로 이른 봄에 움이 터 5, 6월까지 난초 같은 치렁한 잎을 돋우어내다가 점점 말라 든다. 7월 말경 잎이 다 말라 땅속으로 잦아들 무렵, 촉이 나면서 비늘줄기 꽃대가 솟고 그 끝에 홍자색 꽃 몇 송이가 함초롬히 피어난다. 잎은 꽃을 그리다가 말라가고, 꽃은 잎을 그리다가 시들어간대서 상사화라 했다던가.

그 꽃이 큰 상처를 입고 말았다, 유월 들면서 숲에 풀이 무성해지면 마을 사람들이 함께 풀베기에 나서 숲을 말끔하게 만드는데, 그날 이장은 자기 과수원에서 쓰는 네발 예초기를 몰고 나와 숲의 풀들을 무차별로 밀어버렸다. 무차별속에 꽃을 그리며 말라가고 있던 상사화 잎들도 무참히 걸려들었다. 갈기갈기 짓이겨졌다. 그야말로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

누구도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없다. 상사화 잎이든 뭐든 숲을 말끔히 하기 위해 쳐내고 베어내어야 할 잡풀일 뿐이었다. 나는 그 참경을 목도하고 박탈당한 그리움이라 하며 이런 글을 썼었다. “상사화가 잎이 말라가는 것은 꽃을 향한 그리움의 간절한 몸짓이 아니던가. ……그리워할 자유를 빼앗기고 말았다. 그리움을 무참히 박탈당한 것이다.” 그 박탈이 곧 나의 박탈로 옮아 왔다.

상처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강둑길은 아침저녁 즐겨 거니는 나의 산책길이다. 그 강둑에 줄지어 선 벚나무는 나의 듬직한 의지처고, 아늑한 위안처다. 봄이면 화사한 꽃을 피워 온 마을을 꽃동네로 만들고, 여름에는 무성한 잎으로 정량한 그늘 길을 만들고. 가을에는 단풍이 들어 봄 못지않은 꽃길이 되게 하고, 겨울에 눈 내리면 새하얀 꽃들을 피운다. 내가 이 마을 사랑하는 으뜸가는 까닭이라 해도 좋은 모습들이다.

어느 날, 강둑에 커다란 굴착기가 오르더니 그 나뭇가지를 마구 찍어댔다. 이장이 땀을 뻘뻘 흘리며 굴착기를 지휘하고 있었다. 나뭇가지가 너무 무성해 차 다니기 불편하다는 민원이 들어왔단다. 톱으로 곱게 못 다듬느냐 했더니, 그러면 일거리가 너무 많아진단다. 처참했다. 부러지고 꺾어지고 찢어지고 벗겨지고, 채 덜 부러진 가지는 꺾어진 채로 덜렁거리고. 어쩌면 이리 잔인할 수 있단 말인가.

이장이 면사무소에 건의하고, 면에서 장비를 내주어 그렇게 했을 터이다. 면 담당자에게 항의했다. 나무를 굴착기로 짓이기는 법이 어디 있느냐, 이 참상을 나와서 한번 보시라 했다. 이장에게는 당신 과수원 과목도 이렇게 할 수 있느냐.’고 호소하듯 물었다. 그래도 끓는 속을 가라앉히기 어려워 동네 사람들에게 하소연이라도 해 보고 싶지만, “그깟 나무 가지고 뭘 그러느냐!”라는 말밖에 들을 게 없을 것 같아 더욱 참담했다.

오히려 동네 사람들은 이장이 시원시원하게 일을 잘한다고 여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이르니 몸이 그대로 내려앉는 것 같다. 나 혼자만 왜 이러는 걸까. 면에서도 이장도, 내 뜻과 마음을 조금은 살핀 것인지, 며칠 후 꺾이고 부러진 자리를 톱으로 다듬었다. 조금 나아 보이긴 했지만, 나무와 나에게 진 상처가 쉽사리 아물 수 있지는 않았다.

마을 숲에 갈 때마다 상사화 꽃자리를 살핀다. 잎은 무참히 짓이겨졌을지언정 꽃대는 솟아주지 않을까. 솟을 때가 되었는데, 때가 지금 지나가고 있는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아픔이 다시 솟구친다. 이 아픔을 누구에게 말한들 한마음이 되어줄 사람도 없다. 물색 모르는 사람이라 할 일밖에 없을 터다.

빌면서 기다린 끝에 지나간 해들보다 두어 주일쯤 늦게 꽃대 몇 개가 고개를 내밀었다. 반가움일지, 안타까움일지 다시 한번 마음이 아려왔다. 그 참혹한 상처 속에서, 잎 시절을 그리며 꽃대를 피워 내려 얼마나 안간힘 돋우었을까. 무지하고도 비정한 인간의 탓으로 얼마나 아린 시간을 치러내야 했을까. 이리 아픔을 이겨 내려 한 것이 고맙고도 대견스러울 뿐이다.

나는 어쩔까, 마음 깊이 새겨진 이 상처를 무엇으로 다스려야 하나. 다시 봄이 오기만 기다려야 할까. 저 처참히 찍히고 베어진 가지에서 새잎, 새 가지가 날 봄을, 저 무자비하게 짓이겨진 알뿌리가 다시 기력을 돋굴 봄날을-. 그 시간의 흐름 속에 내 상처를 맡길 수밖에 없는 무력함이 다시 상처로 새겨져 온다. 이 물색없는 상처를 어찌할까. (2025.8.9.)

                                                                      

 

나를 보고 자꾸 떠나라 한다

 

사람 속에서 사람과 더불어 부대끼며 살아오던 생의 한 막을 거둔 지 어느새 십수 년 세월이 흘렀다. 번잡한 도회를 떠나 자연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어울리며 살리라 하고, 산 좋고 물 좋다는 이 한촌을 찾아와 지금까지 그 세월을 살고 있다.

앞으로는 강이 맑게 흐르고 있고, 뒤로는 산이 아늑하게 자리하고 있어. 아침이면 강둑길을 걷고 저물녘에는 산을 올랐다. 강둑 풀숲길을 걸으면서 강물 맑게 흐르고 온갖 야생초들 하늘거리는 풍치를 보는 것도 유유했고, 철마다 빛깔과 모습을 달리하는 숲속 산길을 오르내리며 걷는 것도 더없이 자적했다.

살 만하다 싶었다. 내 생애에 언제 이런 별천지가 있었던가. 몇 철을 그 별천지 속을 거닐었을까. 어느 날 커다란 굴착기가 강둑을 마구 파헤쳐 나갔다. 철을 갈아가며 노랗고 하얗고 붉은 꽃을 함초롬히 피우던 풀꽃들이 여지없이 짓뭉개졌다.

파헤쳐진 길에 회반죽이 쏟아 부어지고, 풀꽃 길은 단단하고 편편한 포장길로 변했다. 비가 오면 질척이고 이슬이 바짓가랑이를 적시게 하는 이런 길을 어찌 그대로 둘 것이냐며 마을 사람들이 진정하여 포장하는 것이라 했다. 나는 마을 사람이 아니었던가. 이제 그 길엔 사람만이 아니라 차도 쉽게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이장은 마을 일에 아주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마을을 편리하게 만드는 일이라면 이것저것 돌아보지 않고 면사무소에 달려가 마을 사람들의 뜻이라며 청을 넣어 일을 이루어 내곤 한다. 특히 그는 마을에 풀숲 길을 없애기 위해 애썼다.

마을 길 길섶에는 온갖 풀이 자라면서 저마다 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곳에도 어느 날 굴착기가 와서 길섶의 풀꽃들을 다 걷어내더니 아스콘을 쏟아붓고, 둥글넓적한 바퀴 차가 매끈하게 다져나갔다. 길이 넓어져 차가 다니기 좋게 되었다며, 이장도 자랑삼고, 마을 사람들도 이장이 일을 잘한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그 후로 마을 고샅에서는 풀 한 포기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도회지 길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무언가를 잃어버린 듯 안타깝고 아쉬운 마음이 드는 사람은 나뿐인 것 같았다. 몇 해를 두고 살아도 나는 아직 마을 사람이 되지 못한 건가. 얼마를 더 살아야 마을 사람들과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산에서도 내 상념, 내 마음과는 아랑곳없는 일들이 참혹하게 벌어졌다. 어느 날 산을 오르다 보니 커다란 나무 둥치들이 이리저리 넘어져 나뒹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베어진 나무들이 내가 다니던 길을 마구 막고 있다. 내가 고사목 의자라 부르며 쉴 자리로 삼고 있던 누운 고사목 둥치도 마구 잘라놓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산림청에서 나와 간벌 작업을 한 것이라 했다. 간벌이란 빽빽한 나무를 솎아 다른 나무가 잘 자라게 하려는 것이거늘, 이리 난잡하게 남벌하고 길까지 막아야 하는가. 산이 좋고 나무가 좋아 그 정서를 여러 편의 글로 남겨 책을 만들기도 했던 내 정념을 그들이 알 리는 없다 하더라도, 이렇게 참혹한 모습으로 산을 짓쑤셔 놓아야 하는가.

그뿐 아니다. 내가 방에 앉아 내다 보는 창밖의 산은 지금 가죽이 벗겨져 피를 죽죽 흘리고 있는 짐승같이 참혹한 모습을 하고 있다. 산주가 산판 업자한테 나무를 팔아 산을 무참히 벗겨버린 것이다. 아무리 사유재산이라지만, 자연을 저리 처참하게 짓뭉갤 수 있는가. 늘 그 참경을 바라봐야 하는 나만 피해자로 여겨질 뿐, 마을 사람들에겐 예삿일에 지나지 않았다.

강둑길이 시멘트로 포장이 되면서 풀꽃들은 길섶에서 겨우 피고 지고 할 뿐이지만, 그 길섶에서 행렬을 이루고 있는 벚나무는 해마다 봄이면 화사하고 해사한 꽃을 피워내어 산의 산벚꽃과 어울리면서 온 마을을 꽃 천지로 만들고 있다. 그 풍경을 보노라면, 이 운치 하나만으로도 이 마을을 살 까닭이 없지 않다고 여기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또 커다란 굴착기가 강둑에 올라 드리워진 벚나무 가지를 철천의 원수를 무찌르듯 마구 찍어대는데, 앞에서 이장 그 일을 지휘하고 있었다. 강둑 길을 걷다가 깜짝 놀라 왜 이러느냐 물으니 가지가 너무 성해 차가 다니는 데 지장이 된다는 민원이 들어왔다 했다. 톱으로 다듬을 수도 있지 않으냐 하니, 일일이 어찌 그리하느냐 했다.

강둑은 전장의 폐허를 방불케 했다. 포화로 찢겨 나간 팔다리 같은 가지가 즐비하고, 마저 부러뜨리지 못한 가지가 흉측하게 달려 덜렁거린다. 길바닥에는 잔해들이 널브러져 막 치열한 전투가 끝난 자리 같다. 진두지휘에 땀 뻘뻘 흘리고 있는 이장을 누가 보면 일 잘한다 할 걸, 나는 왜 그리 야속하고 비정하게 보이는가. 무력감이 온몸을 짓누르는 것 같다.

왜 나만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칠 수 없는 걸까. 아무도 뭐라지 않는 일을 두고 나만 이리 못 견뎌 하는 걸까. 나는 이방인인가. 이런 일들이 일어날 때마다 누가 나를 보고 자꾸 떠나라고 하는 것만 같다. 나더러 무어라 하는 사람은 없지만, 떠나라는 소리가 자꾸 귓전을 맴도는 듯한 환청은 무슨 까닭인가. (2025.7.26.)

                                                           

 

박탈당한 그리움

 

오늘도 마을 공원 숲속으로 든다. 산책길에 늘 거쳐 가는 곳이다. 소나무, 상수리나무, 느티나무, 회나무 노거수가 우거진 숲속 한가운데에 마을의 안녕을 비는 제당이 있고, 그 옆에는 상사화가 모여 꽃을 피우는 곳이 있다. 아주 오래전 마을 어느 부인네가 어디에서 몇 뿌리 가져와 옮겨 심은 것이라 한다. 그 꽃이 간직하고 있는 사연을 알고서 심은 것일까.

상사화는 알뿌리에서 순이 돋고 잎이 난다. 잎은 비늘줄기에 나 긴 타원형으로 치렁하게 자라다가 오뉴월 무렵부터는 조금씩 말라 든다. 칠월이 되면 완전히 마르고 삭아서 땅속으로 스며들 듯 자취를 감추고, 그 자리에 꽃대가 솟는다. 꽃대는 솟으면서 끝자락에 꽃을 품다가 마침내 몇 갈래로 홍자색 꽃을 아리따이 피워낸다. 꽃 진 꽃대 끝에 열매가 맺히긴 하지만 여물지는 못한다.

잎은 꽃 모르게 꽃을 그리고, 꽃은 잎은 잎 모르게 잎을 그린다. 서로 애달픈 짝사랑에 빠져 있다고 할까. 잎은 꽃을 그리며 세상으로 나와 하늘을 바라지만, 그리움에 지친 탓일지, 햇볕 뜨거워지는 어느 날부터 잎 끝자락부터 말라 들어 마침내는 제 난 자리로 다시 들 듯 잦아들고 만다. 제가 그리던 꽃의 그림자도 보지 못한 채.

그즈음 잎이 애간장을 사르며 져버린 줄이나 아는 걸까. 꽃이 제 피어날 자리를 위해 꽃대 애순부터 솟구쳐 낸다. 순이 고개를 내미는가 싶으면 어느새 꽃대로 성큼성큼 자라 오른다. 사나흘이면 꽃대 끝에 연분홍, 진분홍이 섞이면서 홍자 빛이 되어 여섯 꽃잎 몇 송이 꽃을 수줍게 피어낸다. 그리 피기를 서두르는 것은 무엇을 바라서일까.

꽃은 어찌해 하늘을 바로 바라지 못하는가. 잎을 그리는 간절한 마음으로 서둘러 피어올랐건만, 저를 싸안아 주어야 할 잎은 보이지 않는다. 그 잎을 찾는 몸짓일까. 그 서러움에 차마 고개를 들 수 없는 애절한 마음에서일까. 다소곳이 고개를 숙인 채 먼 허공만 하염없이, 속절없이 바라고 있다.

길쭉한 꽃대가 그리 튼실하지는 못한 것 같다. 지나는 바람결에 조금만 흔들려도, 혹은 제 몸피를 스스로 못 이긴 탓인지, 쉽사리 넘어지기도 하고 심지어는 부러지기도 한다. 제 몸의 무게라 하는 것이 그리움의 무게는 아닐지,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없어 넘어지기도 하고 부러지기도 하는 건 아닐지-.

그 꽃 지고 나면 실없는 씨방이 맺히는 듯하다가 그것도 옳게 맺히지 못하고 이내 말라 들고 만다. 상사화의 생애란 이렇듯 부질없이 없는 듯하지만, ‘그리움하나만은 절절히 남기고 간다. 어쩌면 상사화는 그립기 위해 피어나 그리움으로 살다가 그리움으로 죽어가는 그리움의 화신일지 모르겠다. 그리움이란 언제나 설레고도 눈부신 게 아니던가.

상사화, 그 그리움의 생애를 그리며 논두렁 길을 지나 공원으로 향한다. 한창 자라나고 있는 벼가 싱그러운 초원의 삽상한 정감에 젖게도 한다. 초원의 그윽한 정감을 미처 떨치기도 전에 이내 먹먹해진다. 공원 숲속의 피폐해진 상사화밭 풍경이 칼날로 긋듯 가슴을 아리게 하기 때문이다.

공원 숲에 풀들이 자욱해지면 해마다 두 번씩 동네 사람들의 울력으로 풀베기하여 공원을 말끔하게 만든다. 그 말끔한 풀베기가 올해는 돌이키기 힘든 상처가 되어버렸다. 과수원을 경영하고 있는 부지런한 이장이 자기 밭에서 쓰는 네발 예초기로 모든 풀을 삽시간에 깡그리 밀어버렸다. 상사화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의 눈엔 과수가 아니면 모두 쳐 없애야 할 잡초였다. 다른 사람들에겐 베어진 풀을 긁어내라 했다.

그때 상사화는 무성하던 잎이 끄트머리부터 조금씩 말라가기 시작하고 있던 무렵이었다. 그 잎이 칼날 바퀴에 짓이겨지고 말았다. 상사화가 잎이 말라가는 것은 꽃을 향한 그리움의 간절한 몸짓이 아니던가. 그리움을 삭히고 절여가며 말라든 자리에 꽃도 잎을 그리며 피어나는 것을, 잎은 그리워할 자유를 빼앗기고 말았다. 그리움을 무참히 박탈당한 것이다.

이제 그리움의 자유를 빼앗긴 저 상사화가 꽃을 피워 낼 수 있을까. 피워 낼 뜻이며 힘을 차릴 수나 있을까. 그리움에는 힘이 있고, 생기가 있고, 의욕이 있고, 희망이 있다. 그 솟는 힘과 생기로, 그 부푸는 의욕과 희망으로 치렁한 잎을 돋구어 내고, 눈부신 꽃을 피워내지 않았던가. 이제 뿌리만 겨우 남은 상사화는 무엇에 정을 얻어 꽃을 피워낼 수 있으랴.

야속하고 야멸차다. 잎과 꽃의 저 순결한 짝사랑을 그리 짓밟을 수 있단 말인가. 이 꽃 이리 짓밟듯, 혹 사람이 사람에게 그리하는 일은 없을까. 남의 그리움을 무자비하게 짓밟아 그 사랑을 무참하게 하는 일은 없을까. 남의 순결한 그리움을 짓이겨 놓고, 그래서 누구는 울고 누구는 웃는 일은 없을까.

저 짓이겨진 상사화를 보며, 저 박탈당한 그리움을 보며, 무상하고 무렴한 인간의 일을 돌아본다. 인간 세상일이 아니기를 바라기도 하면서. (2025.7.12.)

                                                                      

 

그윽한 고독 속으로

 

사전에 나오지 않는 말이지만, ‘고독력이란 말이 쓰이고 있다. 인간의 생로병사를 이야기하는 어느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노년층 삶에 필요한 능력 중의 하나로 고독력을 말했다. ‘고독력이란 혼자서도 문제없이 잘 사는 능력이라 했다.

고독이란 말을 두고 사전을 펼쳐 보면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이 매우 외롭고 쓸쓸함.’으로 풀이하고 있다. 적확한 풀이는 아닌 것 같다. 고독은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한 게 아니라 세상과 떨어져 있고 싶은 마음이다. 고독에는 자발적 의지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고독은 외롭고 쓸쓸한 것도 아니다. 외로움은 자발적으로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괴로운 심리 상태다. 고독 속에도 쓸쓸함은 있지만, 견디기 어려운 외로움 속의 쓸쓸함과는 달리 받아들이기에 따라서는 달금할 수도 있다.

다단한 삶 속에서 남녀노소 가릴 것이 없이 사람은 누구나 홀로 살아야 할 처지며 신세가 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언젠가는 반드시 홀로 되어야 할 사람들이 있다. 노년들이다, 다른 이들은 그 처지를 벗어날 소망을 가져볼 수도 있지만, 노년은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나 역시 사궁지수 퇴은 노옹이다. 사방을 둘러봐도 산이며 하늘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웃이 없지 않지만, 무엇을 어찌해 볼 수 있단 말인가. 그저 담소며 대작으로 일시를 위안 삼을 수 있을 뿐, 살 속을 파고드는 고적감이야 무엇으로 다스릴 수 있단 말인가.

외로움은 아무것도 만져주지 못한다. 떼어 버리려 하고, 붙어 있으려 하는 실랑이만 있을 뿐이다. 외로움은 정녕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길이 없을 것 같지는 않다. 그리움을 키워 보면 어떨까. 사람이라도 좋고, 풀꽃이며 물소리, 숲속의 새소리도 괜찮겠다.

그리운 사람을 그리며, 풀꽃을 보듬으며, 강가를 거닐며, 산을 바라며 내 속 빈자리를 채워 본다. 조금씩 채워지는 듯도 하다. 채워지는 자리만큼 외로움이 비켜나는 것 같다. 외로움이 비켜난 자리에 들어앉는 것은 고독이다. 고독이 자리 잡을수록 외로움은 잦아드는 것 같다.

고독은 홀로 있어도 고립은 아니다. 그리움은 늘 대상과 관계를 맺는다. 외로움은 모든 관계가 끊어진 것이지만, 그리하여 어딜 둘러봐도 절망밖에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그리움은 관계다. 그 관계가 위안을 주기도 하고, 삶의 의미를 다시 새길 수 있는 희망의 불씨를 지펴 주기도 한다. 관계를 맺지 못하거나 관계가 끊어진 삶이야말로 얼마나 외로운 것인가.

그리움이 있어 고독은 아늑하고 즐거울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리움이란 하나의 얼굴만 가진 게 아니다. 괴롭고 슬픈 그리움도 있는가 하면, 즐겁고 기쁜 그리움도 있는 것 같다. 이 그리움을 보자.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김소월. 초혼) 이 그리움은 애달프고, 안타깝고, 고통스럽고 절망의 그림자까지 비치고 있다.

그토록 고통스럽지는 않을지라도 오늘은 바람이 불고 / 나의 마음은 울고 있다 / 일찍이 너와 거닐고 바라보던 / 그 하늘 아래 거리건마는 / 아무리 찾으려도 없는 얼굴이여(유치환, 그리움) 하는 이 그리움은 또 얼마나 애잔하고 슬픈 그리움인가.

이 그리움의 주인공들은 괴롭고 슬플 수밖에 없다. 이런 그리움은 아늑한 고독 속의 그리움이 아니다. 사무치도록 외로운 심사 속의 그리움일 뿐이다.

이런 그리움은 어떤가. “, 혹은 때때로 /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는 건 / 얼마나 생기로운 일인가 // , 혹은 때때로 /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건 /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조병화, , 혹은) 말 그대로 생기롭고 즐거운 그리움이 아닌가. 이런 그리움을 안은 고독이라면 얼마나 그윽하고 아늑할 것인가.

이 그리움은 이렇게 매듭을 짓고 있다. “가까이, 멀리, 때로는 아주 멀리 / 보이지 않는 그곳에서라도 / 끊임없이 생각나고 보고 싶고 / 그리워지는 사람이 있다는 건 / 얼마나 지금, 내가 / 아직도 살아있다는 명확한 확인인가 // , 그러한 네가 있다는 건 / 얼마나 따사로운 나의 저녁노을인가

살아있음을 확인시켜주는 그리움, 그런 그리움을 안고 있는 고독이야말로 얼마나 힘이 센 고독력을 가진 것인가. 고독력의 3요소는 고독 생산성, 자립력, 회복 탄력성이라 했다. ‘그러한 네가 있다는것이 정녕 따사로운 나의 저녁노을이 될 수 있다면, 그 고독은 생산적일 뿐만 아니라 혼자서도 잘 살 수 있고, 아픔에서도 잘 회복될 수 있지 않을까.

그 그리움의 대상이 사람이든 자연이든, 가까이 있든 멀리 있든, 이 세상에 있는 존재든 없는 존재든 상관없다. 이런 그리움을 안은 고독으로 산다면, 저 곱게 물든 저녁노을이 어찌 따사롭지 않으랴. 홀로 살아있다는 것이 어찌 서럽기만 한 일이랴.

그 따사로운 저녁노을을 위하여 나는 오늘도 그윽한 고독 속으로 깊숙이 든다. 그리운 이를 그리워하며 노을빛 속으로 흔연히 잠겨 든다. (2025.6.25.)

                                                                      

 

혼자서도 잘 사는 법

 

마을 들머리 숲에는 아름드리 소나무며 참나무 회나무 느티나무 들이 우거져 있고, 그 한가운데쯤에 정월 대보름 새벽이면 마을의 안녕을 비는 제당이 있고 그 옆에 상사화밭이 있다. 해마다 유월, 구월이면 마을 사람들 모두 나와 풀베기를 하지만, 풀은 또 어느새 우거진다.

상사화는 모든 것이 아직 얼어 있는 이월 말이면 움트기 시작하여 곧 촉을 내민다. 봄이 오는가 싶으면 난초 같은 긴 잎들을 돋워낸다. 봄 지나 오뉴월에 이르기까지 무럭무럭 자란다. 상사화만 자라는 게 아니다. 주변의 풀들도 상사화보다 더 크게 솟는다.

풀이 상사화가 잠길 만큼 짙어진다. 상사화 잎은 짙어지다가 유월 중순부터는 마르기 시작한다. 칠월 넘어서면 마른 잎은 땅에 붙어버리고 꽃대가 솟아 8월에 이르면 홍자색 아리따운 꽃을 피워낸다. 잎과 꽃이 서로 그리지만 만날 수 없는 슬픈 사랑의 전설이 절정에 이른다.

잎이 마르는 것도 꽃이 피는 것도 저들의 그리움이거늘, 힘껏 자라 맘껏 마르도록 해주어야 한다. 풀이 자욱해지면 낫을 들고 숲으로 간다. 상사화 주위의 풀들을 걷어낸다. 마을 사람들은, 그냥 두면 나중에 풀베기를 다 할 텐데 공연한 짓을 한다고 여기기도 한다.

마을 사람들의 예초기 칼날은 무자비하다. 풀이든 꽃이든 깡그리 베어버린다. 그때 상사화 잎도 무참히 잘려나간다. 뿌리는 다치지 않아 해마다 나긴 하지만, 마를 겨를도 없이 처참히 베어지는 모습이 안타깝다. 내가 주위의 풀들을 좀 쳐놓으면 그래도 많은 잎이 살아남는다.

요즈음 견디기 쉽지 않은 요통을 앓고 있다. 허리를 굽혀 무얼 하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 가끔씩 술잔을 나누며 많은 얘기로 서로 마음을 나누는 마을 친구가 하나 있다. 예초기가 없는 나는 그 친구에게 내 사정을 말하고 도움을 청했다.

그 친구 생각도 마을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 꽃이 뭐라고! 나중에 다 벨 텐데.” 한마디로 잘라버리는 그 말에 무슨 뜻을 더 보태랴. 무언가 와르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아침 산책길에 낫을 들고 나서 숲으로 갔다. 아픈 허리 부여잡으며 상사화 곁 풀들만 조금 쳐냈다.

어쩌다 보니 권솔들을 만날 수 없거나 만나기 쉽지 않은 곳으로 다 떠나보내고 혼자 살고 있다. 그런 삶 가운데서 그 친구는 큰 위안이었다. 그렇지만, 대작으로 흉금을 터놓는 담소 속에서도 나누어지는 마음과 나누어지지 않는 마음이 있는 것 같았다.

아무렇지도 않게 던지는 그 꽃이 뭐라고!’라는 말이 나에게는 충격이라는 걸 그는 모를 수도 있다. 그 말은 나를 깊은 외로움의 수렁으로 빠지게 했다. 친구에 대한 의지依支가 무참히 내려앉는 듯한 느낌 때문일 것이다.

혼자 사는 삶에 어찌 외로움이 없으랴. 먹고 입고 자고 하는 모든 것들에서 외로움이 배어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숲으로 강둑으로 걸으며 풀꽃 보며 즐기고, 책 속으로 빠져들어 다른 삶, 남의 삶을 관조하기도 하고, 그 심정들을 모아 글을 쓰기도 한다.

그런 것들은 내 외로움을 잘 달래주고, 잘 견디게도 해준다. 그리하여 외로움을 즐길 수 있게도 해준다. 외로움에 즐거움이 들면, 그건 외로움이 아니고 고독일 뿐이다. 외로움은 혼자 있음의 괴로움일 수 있지만, 고독은 혼자 있음의 즐거움이지 않은가.

언젠가 내가 쓴 글에서 고독은 걸림 없이 즐길 수 있지만 외로움을 즐기기는 힘들다. 고독은 스스로 원하여 빠져들 수 있지만, 외로움은 어떤 이가 스스로 원할까. 고독은 혼자 있는 즐거움일 수 있지만, 외로움은 혼자인 것이 괴로움일 수 있다. 고독은 그 안에 머물고 싶을 수 있어도 외로움은 어서 탈출하고 싶다.”(수필세계77외로움과 고독, 2023)라 한 적이 있다.

지금도 그 상념은 변함이 없다. 흔히 외로움에서 탈출할 수 있는 구원의 손길을 사람에게로 내밀기 쉽다. 그런 마음이 들 때도 없지 않다. 그래서 그 술친구가 좋고, 사람 만나는 일이 즐겁지 않던가.

쇼펜하우어의 행복은 얼마나 혼자 있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라는 말이 다시 새겨진다. 인간은 본래 이기적이어서 완벽한 사랑도, 이상적인 관계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것은 물론, 나를 대하는 남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내가 남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혼자서라도 잘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남에게 기대는 것은 결국 실망과 상처로 돌아올 뿐이라지만, 어찌 사람을 만나지 않고 살 수 있으랴. 만남을 외로움의 탈출구로 삼을 일이 아니라, 풀꽃을 사랑하듯, 책 속의 삶을 관조하듯 그렇게 만나고 사귈 일이다.

외로워서 누구를 애타게 그리는 게 아니라, 고독 속의 아늑한 그리움으로 새길 수 있다면, 혼자서도 잘 살게 해주는 만남이요, 사랑이 되지 않을까. 그것은 나 자신을 사랑하는 일과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오늘 밤은 그윽한 독작으로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고 싶다. 그러다가 키보드를 두드리며 즐거운 그리움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 그러한 시간들이 오롯이 나의 것이 되기를 바라며 회심의 잔을 들고 싶다. 올해도 홍자색 상사화가 곱게 피겠지. (2025.6.1.)

                                                                     

 

즐거운 병원 길 (2)

 

봄이 가고 여름이 왔다. 계절이 바뀌어 간다는 것은 삶이 흘러간다는 말이다. 계절들은 저마다 다른 나의 삶을 안고 있었다. 지난봄은 나에게 아쉬움을 남겨놓고 흘러갔다. 그런가 하면 소망과 기쁨도 남겨놓았다.

무엇이 잘못된 탓인지 해를 바꾸어 가며 요통을 계속 앓고 있다. 지난해 벽두부터 일기 시작한 통증이 계절이 바뀌고 바뀌어 같은 계절이 돌아와도 잦아들지 않는다. 큰 병원 작은 병원을 가리지 않고 치료에 유용할 만한 곳을 찾아다녔지만, 쉽게 치유되지 않았다.

해가 바뀌어 봄이 왔다. 내 처지와는 상관없이 봄은 제 할 노릇을 잘해나갔다. 마른 나무에 움을 틔우기 시작하고, 검은 땅이 조금씩 푸른 빛을 띠어갔다. 이맘때쯤이면 늘 오르던 집 뒷산에는 생강나무며 올괴불나무도 눈을 뜨겠지. 곧 노란 꽃술이며, 연분홍 꽃 초롱을 달겠지.

마음은 산으로 먼저 달려갔지만, 몸이 쉽사리 따라나서지를 못했다. 참을성이 바닥난 어느 날 한 손으로는 지팡이를 짚고, 다른 손으로는 허리를 받치며 용기 내어 나섰다. 산기슭을 기다시피 힘주어 올랐다. 그리던 대로였다. 생강나무 노란 꽃이며 올괴불나무 조그만 꽃이 함초롬 피어 있었다. 어린 진달래꽃도 두어 송이 눈에 든다.

힘든 몸에 한결 생기가 도는 것 같았다. 이럴 줄 알고 내가 이리 너희들 보러 왔지 않으냐. 이 꽃들을 한참 사랑하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저 가풀막 위에 무리 지어 핀 진달래가 가슴들을 활짝 벌리고 있다. 언제 저리 피었나. 뛰어올라 끌어안기도 하고, 묻히고도 싶었다.

발은 앞으로 나가는데, 용을 써도 몸이 나가주지를 않는다. 넋을 놓고 한참을 바라다가 손을 흔들었다. 몸 잘 다스려 다시 오마. 돌아 돌아보며 기슭을 내려왔다. 다시 보자던 그 약속 봄이 다 가도록 지키지 못했다. 봄은 아쉬움을 남기고 속절없이 가버렸다.

내 봄이 아쉬움만을 남긴 건 아니었다. 희망과 즐거움을 안긴 계절이기도 했다. 하늘도 강물도 조금씩 풀려가던 초봄 어느 날, 길을 스치다가 어느 빌딩에 걸린 통증 치료라는 현수막을 보고 그곳을 찾아 들었다. 젊은 의사가 진료하는 한의원이었다. 개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한다.

내가 말하는 증상을 꼼꼼히 기록하더니 한번 해봅시다.”라고 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그 병원으로 향하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침술과 탕약을 위주로 하는 치료가 예상보다는 쉽사리 효험을 나타내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내 발길은 즐거이 그 병원을 향하고 있다. 먼저 맥을 짚어 보고, 몸 곳곳에 혈을 찾아내어 주무르면서 정성스레 침을 놓는 손길과 모습이 여간 따뜻하지 않다. 의무감으로 건네지는 손길이 아니라, 병약자에 대한 진심 어린 손길인 것 같다. 치료를 받고 나오는 걸음이 한결 가뿐한 것 같았다.

설령 내 병이 쉽게 낫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이 의사의 정성과 의술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내 병이 워낙 고질이라 쉽게 낫지 않을 뿐이라 여기고 싶을 정도였다. 그 손길이 그저 고맙고, 병원 가는 길이 즐겁게 느껴지게 했다.

어느 신문에 연재 중인 <살며 생각하며>라는 칼럼에 즐거운 병원 길이라는 제목으로 이 의사의 친절 이야기를 썼다. ‘즐거운병원 길의 결합이 모순 형용의 충돌을 일으키는 것 같기도 했지만, 내 상념을 적절하게 표현해 주는 말로 여겨진다.

그 의사의 정성에 대한 감사한 마음의 표현으로 칼럼이 제재된 사이트 주소도 알려 주고, 출력물로 만들어주기도 했다. 그다음에 치료를 받으러 갔을 때, 의사가 글을 읽고 부끄러운 마음과 함께 많은 감동도 받았다며, 내 정체(?)가 궁금해 여러 곳을 검색해 보았다고 했다.

내가 낸 수필집의 제목도 말하면서 고명한 분을 진료하게 되어 영광이라 했다. 사인이라도 받고 싶다고 하며 더욱 정성스러운 손길을 베풀었다. 별로 그러하지도 못한 처지라 민망스럽기도 했지만, 고마운 마음 담아 서명한 수필집을 한 권 드리겠다 하니 거듭 감사하다고 했다.

다음 치료받으러 가면서 수필집 한 권을 선물했다. 감사해하는 표정에 묻어나는 진심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어디 불편한 곳은 더 없느냐며 곳곳을 살펴주는 친절을 베풀기도 했다. 치료에 도움이 되기 바란다며 귀한 약재들을 곁들여 챙겨주었다. 그 친절들은 몸에 밴 천성인 것 같았다.

그렇게 나의 봄이 흘러갔다. 계절은 바뀌어 가도 나의 병원 길은 이어지고 있다. 그 봄은 나에게 보고 싶은 꽃도 마음대로 즐길 수 없는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지만, 나에게 희망과 기대를 안겨 주기도 했다.

요통은 아직 나를 떠나지 않고 있지만, 그렇게 따뜻하고 진심 어린 손길이 이어지다 보면 언젠가는 상쾌한 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바람과 기다림을 보듬으며 오늘도 즐거운 병원 길을 나선다. 푸른 하늘에 피어나는 뭉게구름이 싱그럽다. (2025.5.22)

                                                                    

 

육신과 정신

 

큰일 났다. 강의실에서 나와 차를 몇 번 갈아 타고 집에 이르러 하루를 정리하려고 보니, 유에스비(USB)가 없다. 가방이며 주머니를 아무리 뒤져도 나타나지 않는다. 어디에서 흘려 버린 걸까. 예사 큰일이 아니다. 그 속에 들어있는 수많은 자료를 어찌해야 하는가!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내 정신이 텅 비어버린 것 같다. 그게 뭐길래 나를 이리 무력하게 만드는가.

강의실에서 컴퓨터에 꽂아서 쓰면서 강의를 마치고 난 뒤, 집으로 돌아온 길을 되짚어 봐도 길에서 흘린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컴퓨터에 꽂아 쓰고는 그냥 두고 온 게 분명하다. 그렇게 여기면서도 마음은 몹시 불안했다. 내 짐작이 틀릴 수도 있고. 누가 보고 가만두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몸에 진땀이 나면서 경련이 이는 것 같았다.

날이 새기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강의실 문 열릴 시각을 맞추어 다시 차를 몇 번이나 바꾸어 타고 달려갔다. 심장이 아주 바쁘게 뛰었다. 드디어 강의실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올라가 강의실 문을 급하게 열었다. 전자교탁 안 컴퓨터를 보니, 내가 꽂아 놓은 대로 달려 있었다. 몇십 년 이산가족을 상봉한 듯 반갑고 감격스러웠다.

유에스비를 뽑아 다시 만져 본다. 이게 나에게 무엇인가. 내가 지금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게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이 속에는 내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문서 자료들, 예컨대 일기장이며 글쓰기 작품, 작품을 쓰는데 필요한 자료들, 강의를 비롯한 모든 활동에 필요한 자료들이 곱다시 다 들어있다. 내 정신세계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곧 이것이다. 아니, 나보다 훨씬 낫다. 내 정신을 갈무리해주고 있는 게 아닌가. 나라는 이 육신이 감당하지 못하는 능력을 이 작은 것이 해내고 있다. 내 육신이란 이리 무능한 존재인가. 이것을 컴퓨터에 꽂아 놓았다는 사실도 기억 못 하고 잊어버려 이리 소중한 것을 그냥 두고 다니다니. 내 육신과 그 능력에 대한 회의감이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이 작은 물체 하나보다 못한 이 육신을 내가 지니고 살아야 하는가. 지닐 가치가 있는 것인가. 이런 육신을 지키고 유지하기 위해 맛난 걸 먹으려 하고, 멋진 옷을 입으려 하고, 편안히 뉠 자리를 찾는단 말인가. 내 모든 정신세계는 이 작은 것에게 맡기고, 나는 거저 빈 머리로 살아가고 있단 말인가.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란 무엇인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능력이 있다고 한들, 그런 것들은 내가 눈을 감거나 시간이 흐르면 다 사라져 버리는 데 비해 이 조그만 것은 내 정신세계를 아주 오래도록 갈무리해주지 않는가. 돌이켜 볼수록 육신에 대한 실망감이 소용돌이친다.

나는 지금 요통 때문에 심한 고통을 받고 있다. 몇 곳 병원을 옮겨가며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다. 몸 어디 한 곳이 옳지를 못하니 모든 움직임에 자유롭지 못하고 힘들 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 의욕도 떨어지면서 마음조차도 약해지는 것 같다. 몸이 아픈 것 이상으로 마음도 힘들어 사는 일이 고달프게 느껴진다.

치료를 받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그 과정에서 통증이 좀 덜해졌다가 다시 더하다가 하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통증이 덜할 때는 몸이 좀 가벼워지면서 마음도 따라 가벼워지는 것 같다. 통증이 또 심해지면 몸만 아픈 것이 아니라 정신도 고통스러워지는 것 같다. 육신과 정신, 몸과 마음은 하나란 말인가.

치료를 열심히 받아야겠다. 몸도 몸이지만 정신의 해방감을 위해서라도 치료를 충실히 받아야 할 것 같다. 나선비구경那先比丘經이라는 불경에서 밀란다왕과 나가세나 존자가 주고받는 문답 중에, 전쟁에서 몸을 다쳐 상처가 났을 때 약을 발라 싸매는 까닭은 상처가 소중해서가 아니라 빨리 낫게 하려고 약을 발라 보호한다.’라는 문답이 나온다.

몸도 그런 것 같다. 몸 자체가 소중해서라기보다는 정신을 싸안고 있는 몸을 잘 지킴으로써 심신을 다 잘 지킬 수 있지 않을까. 육신과 정신은 둘이 아니라 하나인 것을 몸이 아파보니 절실히 느낄 수가 있겠다. 육신도 정신도, 몸도 다 소중한 나의 것임을 새삼스레 새기며 유에스비를 다시 들여다본다.

내 몸이 아니었다면 유에스비에 내 정신을 어떻게 담을 수 있었겠으며, 내 정신이 아니면 거기에 담을 거리를 어떻게 생각해 낼 수가 있는가. 내 능력으로 다 담고 있을 수 없는 것들을 다 담아 주니 얼마나 고마운 것인가. 몸이 있어야 정신 작용도 이루어지고, 정신 활동이 이루어져야 몸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이 작은 것을 보며 다시 깨닫는다. 몸도 마음도 어느 것 하나 허투루 할 게 아니라는 것을-.

육신과 정신이 하나 되어 살고 있고, 하나 되어 살아가야 할 우리 삶이여! (2025.5.11)

                                                                   

 

댑싸리 전설(3)

 

댑싸리가 이제 새로운 생애를 시작한다. 지난가을 붉게 타오른 뒤 겨울 들면서 씨를 담뿍 떨어트려 놓고는 그대로 말라 갔다. 한생을 다해가는 모습이다. 마른 채로 눈이 오면 눈을 맞고 바람이 불면 흔들리다가 봄을 맞았다.

새로운 생명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난 생애의 자리를 비켜나게 해야 한다. 아내가 씨 뿌려 나게 한 그 생명체들을 다시 맞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마른 것들을 들어내었다. 그 자리에는 씨앗들이 소복이 내려앉아 있었다. 씨앗들이 앉은 자리를 다치지 않게 천천히 힘주어 살며시 들어냈다.

봄이 익어갔다. 강둑의 왕벚나무며 뒷산의 산벚나무가 피고 지고 할 무렵 제 전생이 비켜난 그 자리에 새로운 생명들이 꼬물꼬물 솟아났다. 아내가 뿌렸던 그 씨앗, 그 생명체들이다. 윤회의 바퀴를 돌고 돌아 또다시 명을 얻어 태어난 것들이다.

복스러운 모습을 보려 했을까, 약재로도 쓰일 수 있다는 걸 알고는 무슨 약으로도 쓰려 했을까? 씨를 뿌려 놓은 아내는. 그것들이 땅 위로 앙증한 얼굴을 내밀 무렵 치병을 위해 아이들이 있는 대처로 떠났다. 아기 손가락만큼 자랐을 때 아내는, 한데만 오물오물 몰려있게 하지 말고 고샅에 한 줄로 나란히 옮겨 심어 쑥쑥 자라게 해 달라 했다.

옮겨 심었다. 잘 자라났다. 아내는, 그것이 자라 복슬복슬 귀여운 자태를 짓는 것도, 망울망울 눈곱 꽃을 다는 것도, 무슨 애틋한 사연 담아 정염을 불태우듯 하는 그 홍염도, 다음 생을 기약할 자잘한 씨앗을 송송 맺는 것도 보지 못했다. 볼 수 없는 곳으로 가버렸다.

올 댑싸리도 아내가 옮겨 심어 달랄 때만치 자랐다. 그 모습이 다시 온 것이다. 불도에서는 윤회의 과정을 생유, 본유, 사유, 중유 등 사유四有로 나눈다 했다. 생유生有는 전생의 업력을 받아 이승에 다시 태어나는 것이고, 본유本有는 태어나 생로병사의 갖은 일 겪으며 일생을 사는 동안을 말하는 것이라 했다.

지금 댑싸리는 생유를 얻어 세상에 나와 바야흐로 본유를 시작한다. 그때 아내가 그렇게 해달라 한 것처럼, 올해도 뿌리를 갈라서 한 줄로 나란히 옮겨 심었다. 아내의 손길로 얻은 전생의 업력을 물려받아 난 것들을 보는 감회가 아리다.

이렇게 본유를 열어가지만, 또 안고 가야 할 생애의 일들이 남았다. 무상한 시간들 속에서 바람 불면 바람 맞고, 비 내리면 비 맞고, 어디 탈이라도 나면 아프기도 하고, 푸르고 붉은빛으로 색깔도 바꾸어 가다가 모든 걸 다 내려놓고 마침내 사유死有의 순간을 맞이해야 하고, 그 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중유中有에 들어야 한다.

이 댑싸리야 무엇을 더 그리랴. 무럭무럭 자라기만 하면 된다. 자라다 보면 꽃이 피고 다음 생을 기약할 씨도 맺게 될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푸른 빛을 벗고 붉은 물도 들 것이다. 물이 붉게 들면 그 빛깔에서 다시 한번 아내를 보는 건 나의 몫이다. 아내의 애틋한 마음일 것도 같고, 나를 향한 노원怒怨일 것도 같은 그 빛깔이다.

저야 무엇을 알까. 푸르면 푸른 대로 살고, 붉으면 붉은 대로 살면 된다. 붉은빛도 바래면 그냥 해맑은 빛으로 지내다가 달고 있던 씨앗을 떨어뜨리면 된다. 그 씨가 곧 저의 중유가 되고 다시 생유를 얻어 새 세상의 빛을 맞이하면 되지 않으랴. 저에게 얽히고설킨 사연이야 저는 몰라도 된다. 아내의 일도, 나의 일도 다 몰라도 된다.

댑싸리는 이제 새로운 생애를 아리땁게 시작하고 있지만, 저에게 전생을 준 아내는 이미 사유며 중유를 다 지나 오히려 탈속의 평안을 누리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 평안을 누리고 있을까. 아내는 갖은 마음을 다해 가족을 껴안았지만, 나는 이따금 아내의 애를 태우기도 했다. 원망을 안고 갔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본유의 긴 터널 속에서 생로生老의 굽잇길을 돌고 돌아 지금 출구 쪽을 비쳐드는 노을빛을 안으며 병고를 보듬고 있다. 이제 나아갈 곳은 사유 세상밖에 남지 않았다. 무엇을 더 바라랴. 그 세상으로 가면 아내가 맞아줄까.

올해도 댑싸리는 잔잔한 잎새를 보들보들 날리며 푸르러지다가 어느 날 때가 되면 터놓을 심사가 많기라도 한 듯 눈 아린 선홍빛으로 타오를 것이다. 그러고는 수많은 씨앗을 지상으로 내려 앉힐 것이다.

한 줄로 나란히 심어놓은 이 댑싸리를 보는 내 아릿한 마음은 돌아보지 않을지라도, 아내가 그리고 바라기도 했을 복슬복슬 푸르러질 모습이며 약으로 유용할지도 모를 저것들을 사랑스레 안아주면 좋겠다. 내가 그리는 마음같이 안아주면 좋겠다.

그렇게 아늑한 품이 되면 좋겠다. (2025. 5. 1)

                                                                      

 

즐거운 병원 길 (1)

 

세 곳째 병원을 다니고 있다. 병원이든 의원이든 날 치료하는 곳은 나에겐 다 병원이다. 견디기 쉽지 않은 요통을 얻게 되었다. 시시로 통증이 올 때는 참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 의욕마저 사라지는 것 같다. 허리가 편치 않으니, 앉고 서고 걷는 일이며, 무얼 들고 내리는 일이며, 몸 굽혀 땅이라도 파고 묻고 해야 할 일 같은 것들을 제대로 해낼 수가 없다.

노화 현상 중의 하나라 하지만, 어쩌랴. 사는 날까지는 불편을 없이 하거나 줄여서 살기라도 해야 할 게 아닌가. 척추센터가 따로 있는 큰 병원이며, 재활 치료를 잘한다는 정형외과에 해를 넘겨 가며 다녔지만, 별 효험을 보지 못했다. 통증을 겪고 있던 어느 날, 차를 타고 가는데 문득 어느 빌딩에 붙은 통증 치료라는 광고 막이 눈에 들어왔다. 한의원이었다.

집에 와서 전화하여 허리 통증도 치료할 수 있느냐고 하니, 내원해서 원장님과 자세한 상담을 해 보시라 했다. 간호사의 말이었지만, 치료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담고 있는 말로 들렸다. 실낱같은 기대이라도 걸 수 있는 곳이 있다면 그대로 지나칠 수가 없다. 이튿날 그 병원으로 달려갔다. 약 향이 실내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원장실로 안내받았다. 진료 이력이 그리 깊어 보이지 않는 의사였다. 우선 손목을 잡고 맥을 짚어보았다. 증상을 묻기에 지금도 저린 허리 부위를 먼저 짚어 보였다.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 식습관이며 소화 정도는 어떠냐, 운동은 어떻게 하고 있느냐는 등에 대해 꼼꼼히 물었다. 내가 겪고 있고, 하고 있는 대로 소상하게 말했다. 의사는 내 말을 들으면서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바쁘게 메모해 나갔다.

못 되어도 수십 분은 되었을 것 같다. 다른 곳의 경험에 비추어 의사가 환자와 상담을 위해 쓰던 시간과 친절 정도를 떠올리면, 그것만으로도 큰 치료를 받은 것 같았다. 한마디 한마디 말에 속에서 우러나오는 친절이 배어 있는 것 같아 큰 위안이 되는 것 같았다. 경과가 쉽지 않을 수 있지만, 약을 드시면서 일주일에 두 번쯤 치료를 받아 보시라 했다. 원장님의 친절한 말씀에 희망이 드는 것 같다 하고 치료대에 누웠다.

허리와 배를 따뜻하게 덮인 후에 누운 채로 발이며 다리, 복부, 머리를 주물러 맥을 짚고 침을 놓았다. 얼마간 지난 뒤 침을 다 뽑고 엎드리라 했다. 허리에 전기 치료를 하고 나서 통증 부위는 물론 허리 여러 곳 맥을 짚으며 침을 놓고 등에는 부항을 떴다. 그 손길 하나하나에 오롯한 정성이 고여 있는 것 같았다. 그 손길에서 맑은 감동이 느껴져 왔다. 치료를 마치고 나오는데, 몸이 한결 가벼워진 듯했다. 다음 치료 때에 달인 약을 주겠다 했다.

며칠 뒤에 가니 처음과 같은 치료를 하며 약침을 놓는다고 했다. 증세를 물으며 치료와 관련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자상하게 들려주었다. 치료를 마치고 나올 때 묵직한 약상자를 들려주는데, 그 안에는 마치 친한 이에게 보내는 편지 같은 자상한 복약 안내문이 들어 있었다. 책상에 의지하고 있는 시간이 많다 했더니 ‘30분 독서 후 5~10분 정도 가벼운 걷기 및 스트레칭을 하라.’ 하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의사는 불교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는 독실한 불자였다. 깊은 불심이 환자에게 성심을 다하는 의사가 되게 한 것도 같았다.

이후로도 치료가 계속되었지만, 그 정성은 언제나 한결같았다. 의술을 기술로만 알고 치료 기능인 역할로 만족하려는 의사가 없지 않고 보면, 의술이란 곧 인술임을 믿고 환자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인 듯 치료에 심혈을 기울이는 의사가 돋보이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세상에는 이렇듯 진정한 의사가 적지 않다.

외과학의 창시자로 알려진 장기려(張起呂 1911~1995) 박사 같은 분은 자신은 이렇다 할 재산 하나 건사하는 게 없이 평생을 소외된 이웃에게 희생과 봉사의 의술을 베풀어 모든 이에게 감동을 주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몸이 불편하고도 외로운 어르신들을 부모처럼 여기며 치료와 위로를 위해 온갖 친절을 다 베풀어 주위 사람들로부터 자자한 칭송을 받고 있다는 어느 시골 공중보건의 이야기도 오롯한 감동을 준다. 지금 나를 치료하고 있는 의사도 이런 미담의 주인공이 되어도 모자람이 없을 것 같다.

신체에 고통을 받고 있으면 심신이 모두 약해진다. 이 약자에 대한 성심 어린 치료는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따뜻하게 다스려 주는 일이 될 것이다. 나는 지금 따뜻한 손길이 그리운 약자가 되어 아픈 몸을 다스리고 다스림을 받기 위해, 마음에 위안을 받고 그 온기를 얻기 위해 오늘도 병원을 찾아간다.

몇 번의 치료로 잘 낫지 않을 수도 있고, 오랜 시간을 두고 치료를 받아야 할 수도 있겠지만, 따뜻한 손길이 있는 한, 나에게는 그립고도 즐거운 병원 길이 될 것이다. 병원 길이 즐겁다 보면 언젠가는 몸도 마음도 잘 다스려지지 않으랴. 기도 같은 걸음으로 즐겁게 병원 길을 나선다. (2025.4.13.)

                                                                      

 

먼 진달래

 

꽃 피고 잎 돋는 봄은 왔다. 그렇지만 내 몸은 아직도 봄을 저만치 밀쳐 내두고 있다. 한 해여 전부터 높은 곳, 비탈진 곳은 걷지 말라는 의사의 지시를 받은 터였다. 해거름이면 늘 오르던 산을 못 오르게 된 게 아쉽긴 했지만, 다시 힘찬 걸음으로 오를 날을 위하여 의사의 말을 따라 편한 길로만 걷고 있다.

잠시 혼절하여 쓰러지면서 벽에 부딪혀 척추에 골절이 난 것은 의사의 시술로 치료가 되었지만, 그 후로도 허리는 계속 저리고 아팠다. 시술의 후유증으로 알고 약을 먹으면서 낫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다시 검사를 해보니 그사이에 척주관 협착증이 왔단다.

사는 일, 행하는 일에 몸과 마음을 넓게 가지지 못해 허리도 협착해진 건가. 무릎도 말을 잘 안 들을 때가 있다. 다 노화 탓이라 한다. 늙는 일이야 어찌할 수 없지만, 사는 날까지 하고 싶은 일, 보고 싶은 것은 챙기며 살고 싶다. 그리되기 바라며 먹어야 할 약 알뜰히 먹고, 받아야 할 치료 착하게 받고, 필요한 운동을 위해서도 애쓰고 있다.

기력이 닿을 때까지 하고 싶은 일 하나 있다면, 수필교실 가족들과 오래도록 만나는 일이다. 한 주일에 한 번씩 수필 속의 삶을 함께 나누고, 삶 속의 수필을 같이 찾아가는 사람들과 만나는 날, 그날이야말로 나의 봄이고, 그 사람들이야말로 나의 꽃이다. 그 봄과 꽃을 오래오래 보듬으며 살고 싶다.

봄이 되면, 꼭 보고 싶은 게 있다. 해마다 이맘때면 반갑게 만나는 봄꽃이다. 강둑에 줄지어 선 벚나무가 피워내는 꽃이 해사하고 화사하게 어우러지면 내 봄은 절정에 이른다. 그보다 앞서 산에서는 올괴불나무꽃, 생강나무꽃에 이어 진달래꽃이 봄을 이고 달려온다. 세상을 다하는 날까지 그 사람들, 그 꽃들과 만나는 일 말고 무엇이 더 그리울까.

언젠가는 성한 몸이 돌아오리라 믿고 있지만, 믿음처럼 쉽게 나아지지는 않는다. 내 처지와는 아랑곳없이 봄은 아장아장 오고 있다. 늘 걷는 강둑 길섶에 푸른 움이 한두 곳 여리게 보이는가 싶더니, 겨우내 무거운 침묵에 잠겨 있던 벚나무가 망울에 은은한 혈기를 얼비추어 내고 있다.

이쯤이면 산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무엇이라도 꿈틀거리고 있을 거다. 스틱을 짚고 나선다. 오르기 쉽지 않겠지만,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스틱으로 받치며 힘주어 오르는 발길을 낙엽이 밀어제치기도 하지만, 이 기슭을 오르면 무언가라도 봄소식을 들을 수 있겠지. 의사의 말을 잠시 잊기도 하고, 잊어버리고 싶기도 하다.

드디어 기슭을 올랐다. 푸른 솔숲 길을 지난다. 봄이 보인다. 노란 얼굴 앙증히 내밀고 있다. 생강나무꽃 어린 망울이다. 그러면 그렇지, 강둑에 오는 봄을 산인들 어찌 모른 체하랴. 함께 보고 싶은 게 또 하나 있다. 올괴불나무꽃이다. 붉은 꽃술과 연분홍 꽃잎이 돋보이는 손톱만 한 꽃-.

보이지 않는 꽃을 찾노라니 잊고 있었던 허리가 저려 온다. 저기 보일 듯 말 듯 두어 개 망울이 보이지만, 아직은 좀 이르구나. 잘 피어나거라. 내 다른 세상의 꽃 좀 만나고 올 터이니 포근한 봄 안고 와 있거라, 당부하고 내려온다.

한 시간여를 달려 차를 내린다. 고마운 마중과 함께 교실에 이른다. 책상을 서로 마주보기 좋게 가지런히 놓고 있으면. 꽃들이 달려온다. 봄을 안고 온다. 봄을 맞아 새로이 문을 연 수필교실이다. 때로는 눈물로 때로는 터지는 홍소로 수필 속에 깃든 삶을 함께 나눈다. 삶 속에서 수필을 찾아내기 위해 궁구의 심연을 헤매기도 한다. 통증이 간데없다. 봄이 익어 간다.

이제는 산에도 녹은 봄소식이 와 있을까. 스틱으로 허리를 받치며 산을 오른다. 그리던 대로다. 진노랑 생강나무꽃이 이제야 제 세상인 듯 복슬복슬 무르녹았다. 저기 가녀린 가지 끝에 오종종히 달린 연분홍 아기 초롱, 올괴불나무꽃이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인 채 함초롬히 미소 짓는다. 그래, 그런 네 모습을 그려 내 이리 와 있지 않으냐.

이때쯤이면 또 하나 반가운 것이 얼굴을 내밀 듯도 한데 싶어 두리번거리며 오르막 하나 더 오른다. 허리도 저리고 다리도 무겁지만, 발이 자꾸 앞선다. 발이 아는구나. 저만치 보이는 다홍빛 꽃잎, 진달래다. 언제 저리 잎까지 벌렸나. 마른 풀숲 헤치고 다가간다. 쓰다듬고 만져 보기도 하면서, 급기야 꽃잎 하나 살포시 따서 입에 살짝 넣어 본다. 향긋하다.

고개를 들어보니 저 먼 가풀막 한 자락에 쏟아부은 듯 분홍 잎새들, 무리 진달래가 미소를 피우고 있다. 달려가 그 미소 속에 묻히고 싶다. 그리운 사람, 치맛자락 같을까. 또 발이 앞선다. 어쩌랴, 발은 자꾸 앞을 지르지만, 몸이 말을 안 듣는다. 저 가풀막은 도저히 안 되겠단다. 저 먼 진달래를 향해 손을 흔든다. 안긴 거로 할게. 아주 아늑했던 거로 새겨둘게-.

내려오는 발길이 자꾸 뒤로 끌리는 듯하다. 그래도 괜찮다. 먼 모습이라도 보고 싶은 모습 봤지 않은가. 내일은 또 하고 싶은 일 하러 가지 않는가. 울고 웃을 삶 나누러, 새로운 삶 찾으러 가지 않는가. 그 빛만도 고왔다, 먼 진달래여. 네 미소 속에 묻힐 날 있을 테지-.(2025. 3. 30)

                                                                    

 

어느 날 날씨를 보며

 

아침에 일어나 보니 뜬금없이 철 아닌 눈이 내려 창밖의 산야를 하얗게 칠해 놓았다. 어느새 비가 뿌리면서 그 순백 세상의 민낯을 여지없이 드러나게 한다. 검은 흙은 검은 흙이고, 마른 풀은 마른 풀이다.

그런가 싶더니 비는 문득 그치고 우중충한 하늘빛이 맑게 흐르는 물도 흐려 보이게 한다. 그것도 잠시다. 세상을 보고 싶어 몸살이라도 난 듯 구름 사이를 어렵게 비집고 햇살이 살포시 내려앉고 있다.

햇살이 힘겹게 뚫어놓은 구름의 문이 스르르 닫히면서 성근 눈발이 날린다. 눈발이 점차 굵어지더니 급기야는 아기 주먹만 한 크기로 내려앉는다. 한겨울에도 만나기가 쉽지 않은 눈 입자들이다.

언제 그런 눈이 내렸는가 싶다. 다시 하늘 문이 열리면서 맑은 햇살이 산과 들을 어루만진다. 이제는 저 구름도 물러나 푸른 하늘빛을 드러낼까. 아니다. 또다시 회색빛으로 변한 하늘에서 가루눈을 뿌려 댄다.

그것도 잠시 눈은 빗방울이 되어 눈의 알갱이를 밀어내고 내려앉는다. 하늘의 먹구름이 무슨 힘에선가 조금씩 밀려나더니 햇빛 몇 줄기가 빗겨 내린다. 그렇게 눈과 비와 구름과 햇살이 얽히고설킨 날이 몇 번 되풀이되는 사이에 날이 저물어간다.

저 날의 변환들을 감당해 내느라 하늘인들 얼마나 숨 가빴을까. 하늘도 밤이 되면 좀 쉬고 싶을 것이다. 환히 개게 할 내일을 준비하기 위해서라도. 이런 날씨를 보고 있노라니 문득 내 살아온 걸음걸음이 돌아 보인다.

어느 날 무슨 필요에 따라 주민등록표 초본을 떼어 보게 되었디. 깜짝 놀랐다. 부모님 슬하로부터 분가하여 살게 된 이후로 주소지를 바꾼 횟수가 무려 스물한 번이나 되었다. 젊은 시절 식솔들을 끌고 이리저리 자주 옮겨 다닌 줄은 알았지만. 그토록 잦을 줄은 몰랐다.

대부분 발령지를 따라 봇짐을 싸 들고 옮겨 다닌 것이었지만, 옮기는 과정이며 살아가는 일들에서 희비며 고락이 교차하는 일이 빈번히 벌어지곤 했다. 수십 년 세월 뒤 끝에 선 지금은 젊어 한때 일로 가벼이 넘길 수도 있지만, 그때는 밤잠을 못 이루리만치 고뇌에 빠지기도 하고, 새로운 세상에 기대로 잠을 설치기도 했다.

아이들이 나고 키울 때까지도 셋방살이하면서 내 아이가 주인집 아이와 다투어 다치게 되어 병원까지 가야 했던 일이며, 셋집의 처지를 따라 어려움을 안고 방을 옮겨야 했던 일은 지금 돌아봐도 송연한 아픔이 되어 새겨져 온다.

그러다가 어렵게 작으나마 내 집이라고 마련했을 때의 그 감동이야말로 내 생애에 몇 번 되지 않은 큰 보람으로 안겨 오기도 했다. 그나마도 아이들이 커감에 따라 더 너른 집을 찾지 않으면 안 되었고, 그 과정에서 또 봇짐을 싸야 했다.

그렇게 마련한 집이었지만, 나는 정착할 수가 없었다. 인사이동을 따라 떠돌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나 혼자 객지를 헤매기도 했고, 아이들이 제 살길을 찾아 떠난 후로는 멀쩡한 내 집은 비워둔 채 아내와 함께 다시 셋방을 전전하기도 해야 했다.

세월이 흐르는 사이에 한 집단에 대한 관리 책임을 맡는데 이르게 되어 주어지는 집에서 거처할 수 있게 되었지만, 타관을 유랑해야 하는 일은 멈출 수가 없었다. 절해고도의 섬 살이도 마다치 않고 몇 상자의 짐을 거센 파도를 넘고 넘어 날라 고단한 몸을 눕히기도 했다.

그런 곡절들 속에서 겪는 일들이 힘들기는 했지만, 마냥 고통으로만 다가온 것은 아니었다. 새로운 일들을 개척해 나간다는 도전 의지도 없지 않았고, 그 일들이 이루어졌을 때의 성취감으로 밤을 새워 가며 설레어 보기도 했다.

마치 궂고 개고. 맑고 흐리기를 거듭하는 오늘 날씨처럼 내 삶도 그렇게 변환이며 변전을 거듭해 왔다. 그 사이에 세월이 흐르고. 그 세월 속에 숱한 희로애락이 묻혀 가면서 그 흔적이 저 주민등록표에 고스란히 남았다.

이제는 이런저런 세월이 다 흘러가고, 주민등록표에 더 새겨질 흔적도 없게 되었다. 세상의 번다한 일들을 다 떨치고 퇴은 노옹이 되어 산야에 묻혀 산 지도 십수 년이 흘러갔다. 이 주민등록표 그대로 간직하다가 이 세상 영원히 떠났다는 딱 한 줄만 더 새기면 된다.

눈비가 섞바뀌던 날씨는 마치 어느 옛적 일이라도 되듯 하늘에는 드문드문 보이는 구름 사이로 노을빛이 곱게 번져가고 있다. 회색빛 구름마저도 노을에 젖으며 연황빛으로 물들어간다. 이제 해도 쉴 자리로 가야겠다는 듯 산마루 뒤로 서서히 잠겨 가고 있다.

나도 이제 저 노을이고, 저 해다. 무엇을 더 바라랴. 저 빛깔 고운 노을이 되는 일 말고, 가벼이 쉴 자리를 찾아가는 저 해가 되는 일 말고, 무엇이 나에게 더 있어야 하랴. 내 삶을 파노라마로 펼쳐 주고는 갈 길도 일러주는 오늘 날씨를 보면서-.(2025. 3. 20)

                                                                     

 

인디언 십계명

 

책상에 앉아 책을 읽다가 눈에 피로감이 느껴지는 듯해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본다. 살벌하다. 눈이 더 뻑뻑해지는 것 같다. 산이 온통 상처투성이다. 산의 맨살에서 선혈이 낭자하게 흘러내리고 있는 것 같다. 애목 성목 가릴 것 없이 모두 잘려나갔다. 그야말로 인정사정 볼 것이 무차별로 베어버렸다.

그뿐만 아니다. 흉한이 휘두른 흉기에 죽죽 그어진 자상刺傷처럼 비탈을 가로질러 가며 여기저기 파헤쳐져 있다. 베어낸 나무들을 실어내기 위해 파헤친 길 자국이다. 살을 찢는 아수라의 비명이 몸서리치게 들려오고 있는 것 같다. 차라리 눈을 감는다. 창문에 암막이라도 치고 싶다.

크고 작은 것들이 서로 어울려 이루어진 울창한 소나무 숲이었다. 간혹 밤나무며 상수리나무 들도 섞여 있어 밤도 도토리도 구르곤 했다. 사시사철 푸르고 싱그럽고 삽상한 느낌을 주던 곳이었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면 지척으로 다가와 온몸을 청량해지게 했다. 가볍고 시원한 느낌으로 눈길을 다시 책에다 얹곤 했다.

누가 그 산을 누구에게서 샀다는 소문이 들리더니 나무들을 산판 업자에게 넘긴 모양이다. 산주나 업자나 이득만 취하면 될 일이지, 이것저것 가릴 일은 아예 염두에 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걸 위해 산을 사고 나무를 판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나에게 돌아오고 있는 걸 그들은 알까. 그 산 앞에 창을 두고 있는 죄업일까.

그런 사람들에게 득리하는 일 말고는 무슨 말이 귀에 들 수 있을까. 이럴 때 인디언 십계명을 떠올리는 것은 물색없는 이의 부질없는 상념일까.

그 옛날 인디언들이 삶의 철칙으로 삼았던 십계명 중에는, 그들이 와칸탕카 곧 위대한 정령으로 숭배하는 자연계에 대한 계명 몇 가지가 있다. 그 첫째가 대지는 우리의 어머니, 그 어머니를 잘 보살피라.’라는 것이고, 그다음으로 나무와 동물과 새들, 당신의 모든 친척을 존중하라.’ 했고, ‘모든 생명은 신성한 것, 모든 존재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대하라.’라는 계명도 있다.

인디언은 대지를 모두의 어머니라 여겼다. 대지는 모든 것을 낳고 기르고 살게 해주기 때문이다. 봄이면 땅을 함부로 밟지 않는다. 혹 태어나는 것들이 밟힐까 저어해서다.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만큼 갈고, 가꾸고 파고 갈 때는 감사의 기도를 먼저 올린다. 대지는 위대한 정령의 것이기 때문에 절대로 사고팔 수도 없다고 여긴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어떤 푸나무일지라도, 하잘것없는 미물일지라도 다 같이 소중한 생명체로 여길 뿐 아니라, 모두 어머니 대지의 붙이로 소중한 친척으로 여긴다. 함부로 치고 빼앗고 베어서는 안 되고, 서로 존중하면서 친하게 지내야 한다고 했다. 그것들과 사람은 서로 관계를 맺고 있다고 믿는다.

특히, 나무에 대한 사랑은 각별하다. 이런 일화가 있다. 나뭇가지 하나를 잘라 지팡이 삼아 걷고 있는 어린이에게 부족의 어른이 나무에게 허락을 구했는지, 필요한 만큼만 잘랐는지, 나무에게 감사를 표시했는지를 물었다. 어린이가 그냥 잘랐다고 말하자 자연에서 무엇을 취할 때는 나무에게 반드시 허락을 구해야 한다며 가르쳤다.

인디언들은 나무도 말을 한다고 믿고 있다. 나무들로부터 날씨, 동물, 위대한 정령 등에 대한 많은 것을 나무의 말을 통해 배운다고 한다. 나무 아래 서 있으면 살아 있는 모든 존재 속에 깃든 무한한 가능성을 실감한다고 했다. 비단 나무만이 아니라 인디언들은 모든 생명, 모든 존재를 신성한 것으로 여겨 항상 존경하는 마음으로 대했다 한다.

처참한 벌거숭이산을 보며 인디언의 삶과 계율을 떠올리는 나의 상념은 부질없다 할지언정, 인디언들의 이런 계명이 어찌 부질없다 하겠는가. 하지만, 이런 계명이 인디언을 지켜주지는 못했다. 이 계명을 지키고 사는 인디언을 미개한 사람들로 몰아붙이는 흉포한 세력들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백인들이다. 신대륙의 발견이라는 미명과 함께 문명의 병기들을 앞세우고, 청결한 자연과 더불어 평화롭게 살아가는 인디언의 땅을 무참하게 침노해 왔다. 신대륙이 아니라 순박한 사람들이 자연의 변전을 더 할 수 없는 진리로 믿으며 오랜 유서와 함께 오순도순 화목하게 사는 땅이었다.

백인들은 자기네 문명을 모르고 살아가는 인디언들을 야만인으로 몰아 내쫓으며, 그 땅의 나무를 마구 베고 파헤쳐 높은 건물을 짓고 철로를 놓기 시작했다. 백인들이 점차 세력을 넓혀가게 되면서 인심이 야박해지고, 전염병이 창궐하고, 범죄들이 만연해 갔다. 백인들은 인디언들에게 계획적으로 전염병을 퍼뜨리기도 했는데, 인디언들은 이를 두고 콜럼버스의 악수라 했다. 인디언들은 서서히 삶의 터전을 잃으면서 쇠잔해져 갔다.

내가 마치 그 인디언이 된 것 같다. 문명한 자본의 폭력으로 인해 그지없이 피폐해져 버린 저 창밖의 살풍경을 늘 마주하다 보면 나의 모든 기력이 소진해 갈 것만 같다. 어쩌랴. 어찌해야 하랴! 저 문명한 사람들의 참혹한 폭력 앞에서-. (2025. 3. 2)

 

[참고] 인디언 십계명

대지는 우리의 어머니, 그 어머니를 잘 보살피라.

나무와 동물과 새들, 당신의 모든 친척들을 존중하라.

위대한 신비를 향해 당신의 가슴과 영혼을 열라.

모든 생명은 신성한 것, 모든 존재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대하라.

모두에게 선한 일을 행하라.

모든 새로운 날마다 위대한 신비에게 감사하라.

진실을 말하라. 하지만 사람들 속에선 오직 선한 것만을 보라.

자연의 리듬을 따르라. 태양과 함께 일어나고 태양과 함께 잠들어라.

삶의 여행을 즐기라. 하지만 발자취를 남기지 말라.

                                                                      

 

협착증을 지고

 

허리가 자꾸 아픈 것은 금이 간 척추를 시술한 후유증인 줄 알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척주관 협착증이었다. 시술 의사도 처음엔 그렇게 알았던 것 같다. 협착증 치료를 위해 너덧 주에 한 번씩 아들이 사는 대처 시술 병원을 몇 달을 두고 오르내려야 했다. 노화 탓이라 했다.

통증은 이어지면서 좀처럼 낫지 않았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척추 시술 이후부터 그랬다. 척추 시술과 척주관 협착증이 관계가 있는 건 아니라지만, 척추에 일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이리 고통을 받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그런 가정假定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아내가 저 먼 나라로 가출한 지 너덧 달쯤 되던 겨울 어느 날이었다. 방을 나서다가 갑자기 혼절하고 쓰러졌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일어나려 했으나 등이 몹시 저리고 기운을 차릴 수가 없었다. 억지로 용을 써서 핸드폰을 끌어당겨 119를 눌렀다.

눈을 떠보니 어느 종합병원 응급실 병상이었다. 쓰러지면서 벽에 부딪혀 얼굴에 타박상을 입고, 그 충격으로 1번 척추에 금이 갔다 했다. 독감에 무슨 무슨 영양소 결핍으로 쓰러진 것 같다 했다. 내 사는 한촌의 병원에서는 감당을 못해, 아들이 사는 대처 더 큰 병원 이송을 주선해 주었다.

두어 주일을 입원하면서 영양소 결핍도 치료하고, 척추에 간 금도 붙였지만, 허리 통증은 잦아들지 않았다. 해를 넘겨 가면서 대소 병원을 전전해도 사그라지지 않는 통증을 지고 지금까지 왔다. 언제 어디까지를 더 가야 할지 모르겠다.

지금 치료 받고 있는 병원에서는 12주에서 15주 정도 치료하면 될 것이라 진단했다. 12주를 묵묵히 치료받았지만, 진정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무슨 다른 방법이 없겠느냐 하니 DNA 주사를 몇 주 정도 맞아 보자 했다. 맞고 있지만, 진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허리가 제 기능을 못 하니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통증을 돌아보니, 이 병은 내 삶에 협착증이라는 명사로보다 협착하다라는 형용사로 먼저 찾아온 것 같기도 하다. 사전은 협착하다라는 형용사를 차지하고 있는 자리가 매우 좁다.’, ‘처하여 있는 사정이나 형편이 매우 어렵다.’라는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

은퇴 생활에 든 지도 십수 년째가 넘어가고 있다. 혈기방장한 시절이 가버린 지가 그만큼 오래되었다는 말이다. 지금 내가 주로 차지하고 있는 자리는 방 안의 책상이다. 책상을 벗어나 강둑이며 산골짜기를 거닐며 물도 보고 새소리를 듣기도 하지만, 내가 숨 쉬고 있는 공간이란 세상과는 떨어진 아주 좁은 자리에 지나지 않는다.

바깥세상을 볼 기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한 주일에 한 번씩은 한촌을 벗어나 글을 사랑하고, 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즐거움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좋아하는 사람들과 만나 마음과 뜻을 서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이 내 좁은 삶의 자리에 청량한 숨결을 더해 준다. 내 삶의 자리가 좁은 것은 내가 원해 만든 것이니, 그 건 그리 살지라도, 처지의 곤궁은 어찌해야 할까.

어쩌다 보니 홀로 살아야 할 처지가 되었다. 내 생존과 생활을 혼자 감당해야 했다. 생존은 고단하고 생활은 쓸쓸했다. 무엇 하나 내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의식주 해결이 어렵고, 집을 나서지 않으면 사람을 만날 수 없다. 그런 삶을 힘겹게 버텨 나가던 어느 날, 혼절하여 쓰러지면서 척추에 금 가는 병고를 얻게 된 것이다. 설상가상의 처지가 되었다.

세상은 나를 버리지 않았다. 세상에는 늙고 병든 이를 보듬어 주는 제도가 있음을 이런 처지가 되고서야 비로소 알았다. 그 고마운 제도가 고마운 분을 나에게 보내주었다. 의식주를 해결해야 하는 내 몸의 움직임을 도와주고, 집 안에만 있어도 사람을 만날 수 있게 해주었다.

협착한 자리의 숨결을 더욱 청량하게 도와주는 즐거운 만남이 내게로 왔고, 내 삶의 협착한 처지를 보살펴 주는 분이 내게로 와서 고단한 생존과 쓸쓸한 생활을 그런대로 따뜻하게 풀어나가고 있다. 언제까지 그 청량함과 따뜻함이 나의 것이 될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는 터이지만, 지금 남은 일은 견뎌내기 쉽지 않은 허리의 협착을 다스리는 일이다. 잘 치유되지 않는다.

믿고 싶다. 내 협착한 자리를 조금이나마 넓혀주는 즐거운 일이 어느 날 나에게로 왔듯이, 내 협착한 처지를 따뜻하게 데워 주는 분이 내게로 왔듯이, 어느 날인가는 내 허리의 협착증도 잘 다스려줄 의술과 그 손길이 나를 찾아오리라는 것을 간곡하게 믿는다.

그 믿음의 길을 따라 오늘도 병원 길을 나선다. 치료가 기대한 대로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지만, 언젠가는 거뜬해지리라 믿음으로 마음에는 협착증이 돋지 않기 바라며 병원으로 향한다. ‘삶의 의미가 있는 곳에, 희망은 살아 있다는 어느 사회운동가의 말을 다시 새기며 걸음을 옮긴다. 협착증 그 허리를 지그시 누른다. (2025. 2. 14)

                                                                  

 

역귀성

 

설날이 내일이다. 아내를 만나러 간다. 아이들을 보러 간다. 눈발이 날린다. 차는 날리는 눈발을 다시 날리며 달려나간다. 잘 달리는 차가 오히려 서럽다. 아이들이 전화하여 핸드폰의 내비를 켜보라 했다. 몇 시에 도착할지가 나온다 했다. 내비를 켠다. 아무 시에 도착할 거라고 알려 준다. 그렇게 아이들이 나를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다는 말인가.

(「기다림에 대하여(5)」, 한국수필, 2023.9.)이렇게 글을 쓸 때가 있었다. “……명절이며 무슨 새길 날이면 한촌 늙은 아비 어미를 찾아 달려올 아이들이 기다려진다. 그저 잘 살기만을 바라는 아이들이 의젓하고 정겨운 모습을 하고 안겨 오면 어찌 살갑지 않으랴. 무슨 정성을 들고 올까. 저들의 환한 얼굴이 으뜸 치성이 아니던가.……(기다림에 대하여(5), 한국수필, 2023.9.)

옛날이야기다. 이제 명절이라고 아이들이 찾아올 일이 없다. 늙은 아비 홀로 저들이 있는 곳, 아내가 사는 곳을 찾아야 할 뿐이다. 무슨 환한 얼굴이 있을 거라고 내가 이리 달려가는가. 아내가 그리워하고 있을까, 아이들이 활짝 팔 벌려 맞아 줄까. 눈발은 쉼 없이 날리고 있었다. 천지는 하얘도 길은 까맸다. 차는 서럽게도 잘 달려나간다.

차가 멈추었을 때 눈도 멈추었다. 차를 내렸다. 모자 달린 두꺼운 외투에 마스크까지 썼지만, 아들은 잘 알아보았다. 제 차에 어서 타시라며 가방을 얼른 받아 든다. 아들과 함께 달리는 거리는 휘황한 불빛이며 네온사인이 무슨 축제를 벌이는 듯 현란한 춤을 추고 있다. 녹는 눈이 차장을 눈물처럼 흘러내리면서 불빛이 어룽진다.

아들 집에 이른다. 세찬을 준비하던 아이들이 나와 인사한다. 아내는 아직 오지 않았다. 내일 아내를 맞는 날이다. 아이들과 둘러앉는다. 모처럼 아이들과 여럿이서 밥술을 든다. “참 오랜만에 함께 먹는구나.” 내가 미소를 짓자 아이들도 엷은 미소를 띠었지만, 무언가가 비어 있는 듯했다.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이제 좀 정리도 해야 하지 않을까.……아이들은 묵연했다.

아이들이 펴준 이부자리에 든다. 내일 만날 아내가 꿈으로 미리 올까. 여러 가지 조각 꿈들이 흘러갔지만, 늘 함께 있기에 굳이 꿈속을 올 일이 없어서일까, 아내는 오지 않았다. 내가 일어났을 때 아이들은 아직도 자고 있는 듯 기척이 없다. 집에서 혼자서 하던 대로 체조하고 세수하고 노트북을 펼쳤다. 흘러가던 꿈결 속에서 볼 수 없던 사람을 일기 속으로 부른다.

아이들이 제 어미를 맞을 채비로 부산하다. 네 어미는 평소에도 그리 많은 걸 먹으려 하지 않았어. 뭘 이리 많이 차리냐. 부질없는 잔소리를 주절거린다. 아이들이 들을 리가 없다. , , , , ……, 딴은 진설을 하노라 한다. 아내가 아이들의 이 정성을 흐뭇해할까.

드디어 아내가 왔다. 오랜만이다. 늘 대하는 모습이 아니라 영정으로 지방으로 앉아 있다. 아이들이 기특하다는 듯 미소짓고 있다. 분향 재배하고 강신례를 드려라, 헌작 삽시하고 재배 올려라. 내가 말 안 하면 아이들이 모를까. 아이들이 절 올릴 때 나는 아내를 바라본다. 속을 무던히도 태웠던 나를 반길까. 의례가 끝난 뒤 내가 한 잔 부어 아내 앞에 놓고 넋 없이 바라다가 그 술 내가 단숨에 마셨다.

성묘하러 가잔다. 저들은 수시로 어미를 찾아간다고 하면서도 오늘 같은 날 또 가보고 싶단다. 아직도 아이들에게는 이 세상의 어미다. 차를 달려나갔다. 집에서 멀지 않다. 선대 산소 터가 없지 않았지만, 아들은 굳이 저 가까이에 모시고 싶다 했었다. 궁벽한 한촌에 나만 적적히 남아야 하는 것이 아쉽긴 했지만. 하릴없었다. 나도 나중에는 그리될까.

산에 눈이 많이 쌓였다. 발목이 잠겼다. 눈부시게 펼쳐진 설원에 첫발을 찍으며 숱한 무덤을 지나 아내 집으로 갔다. 구겨지지도 않은 두꺼운 솜이불을 편안하게 덮고 있다. 그 이불 그대로 놔두고 싶었지만, 아이들은 정성스레 벗겨낸다. 김 아무개가 고이 잠들어 있다는 묘지墓誌가 드러난다. 아이들은 주과포를 차려 놓고 절을 올린다. 음각에 남아 있던 눈이 햇빛을 받으며 녹아내린다. 아이들을 반기는 눈물일까. 나는 먼 하늘을 바라본다. 파란 하늘에 조그만 얼룩이 지고 있다.

산을 내려 차를 달린다. 모두 말이 없다. 할 말이 없거나 할 말을 못 찾는 듯했다. 제 어미는 아직 살아있다. 아내가 산집으로 옮겨간 지 이태가 되어 가는데도, 아직 저들 집에 살고 있고, 가족부에도 살아있다. 아내가 살고 있는 아이들 집에 다시 이른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엄마가 채전에 받아만 놓고, 고르지 못한 객토를 봄이 오면 기계를 불러라도 정리해야 하지 않겠느냐?……했다. 보낼 건 보내서 어미가 편히 가서 마음 놓고 쉬게 하자는 말은 차마 못 하고, 아이들 집을 나섰다.

역귀성을 마치고 한촌으로 돌아간다. 아내가 그대로 사는, 쓰던 그릇이며 입던 옷이 그대로 있는 집을 향해 길을 되짚는다. 이 역귀성은 내 산 동안에는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아내도 아이들도 나도 환한 얼굴로 서로 만날 수 있기를 아리게 비는 일 말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으랴. (2025. 1. 30)

                                                                

 

이웃집 할머니 영희, 박-파안

 

어느 날 밤,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재독 한국인 작곡가를 만났다. 늘 대하는 이웃집 할머니인 줄 알았다. 검은 머리보다 백발이 더 성한 단발머리, 적당히 주름진 얼굴에 짓는 맑은 미소. 우리 동네 할머니들도 즐겨 입을 듯한 스웨터에 조금 헐렁한 바지, 크지 않은 키에 등마저 굽었다. 파킨슨병 때문에 거동이 불편해 보행보조기에 의지해 걷고 있다. 내 사는 마을 어느 할머니 모습과 다르지 않다.

그렇지만, 이 할머니의 생애는 범상하지 않았다. 반세기 세월을 독일에 살면서 독일 음악계를 이끌고 있는 한국인 영희, -파안 Younghi Pagh-Paan작곡가. 오랜 세월을 남의 나라에서 살아오고 있지만, 잠시도 고국을 잊어 본 적이 없는 우리나라 사람, 그의 음악 속에는 우리의 얼이 살고 있다. 그런 음악을 창조해 낸다. 그 정신이 그를 더욱 이웃집 정 많은 할머니같이 느껴지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나라가 식민지에서 풀려나던 1945년에 청주 남주동에서 태어났다. 그가 들은 첫 번째 음악은 한국전쟁 때 완전히 폐허가 된 거리에서 어느 걸인이 구걸하며 불던 해금 소리였다. 일곱 살 때 아버지와 장터에 가서 소리꾼들이 판소리와 창 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때 국악을 처음 접했다. 열 살 때부터 피아노를 치고, 열세 살부터는 주한미군방송에 나오는 클래식 음악을 듣고 악보를 그리기 시작하면서 음악적인 소양을 쌓아 갔다.

열 살 때 여읜 아버지이지만, 교량 건축가인 아버지가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다리를 설계하는 모습이 멋져 보여 자기도 아버지가 하는 일을 해보겠다는 꿈을 가지기도 했다. 아버지가 떠나신 후 형편이 어려워졌다. 피아노 레슨비도 감당하기 힘들어 음악 공부를 중단하면서 청주여중·고를 졸업했다. 아버지처럼 교량 건축가가 되기 위해 서울대 공대를 지원하려고 수학, 물리, 화학 등을 열심히 공부했지만, 음악이 도저히 포기되지 않았다. 재수까지 하면서 결국 음대에 들어간다. 다른 과목 성적이 우수하여 3등으로 합격해 기성회비를 면제받으며 공부했다.

서울대 음대, 대학원 작곡과를 졸업하고 죽을 각오로 공부하여 29세 때 국내에서는 최초로 독일학술교류재단(DAAD) 장학금을 받아 독일 유학길에 오른다. 프라이부르크 음악대학에서 유럽 최고의 음악가들을 만나, 1977년 보스윌 세계작곡제에서 1등 하고, 도나우싱엔 음악제에서 Sori(소리)를 발표하면서 작곡가 영희, -파안이라는 이름이 전 유럽에 알려졌다.

파안파안대소破顔大笑에서 따온 말로, 크게 웃고 살자는 뜻을 담았다. 그 파안과 함께 오직 음악만을 위해 살아오는 동안에 1978년 스위스 보스빌 국제작곡제 여성 최초 1, 1980년 두나오에싱엔 음악제 여성 최초 오케스트라 곡 위촉, 1994년 독일어권 작곡가 최초 여성 교수로 임명되어 부총장까지 역임, 1995년 동양인 최초 독일 하이델베르크 여성 예술인상 수상, 2011년 대학 정년 퇴임, 2016년 본인 이름을 딴 국제 박영희 작곡상제정. 2020년 여성 동양인 최초의 베를린 예술대상 수상 등 화려한 이력을 쌓아 왔다.

그러면서 그의 정신세계는 잠시도 고국을 잊어 본 적이 없었다. 1978년 스위스 보스빌 작곡콩쿠르에서 1등을 한 곡 MAN-NAM(만남)은 신사임당의 시 '사친思親'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고 한다. 이 곡과 함께 2011년 대관령국제음악제에 참가하여 아시아 초연작 타령Ⅵ」은 국악기를 쓰지 않으면서도 한국 전통 장단을 그려냈다고 한다. 2014년에는 고향 청주를 위해 청주시민의 노래를 작곡하였으며, 통합 청주시 제1호 명예시민이 되었다.

어느 날 제자들이 모여 스승의 은혜를 기리는 자리를 마련했다. 보행보조기에 의지해 그 자리에 들어서는 그를 보며 제자들이 박수로 환호했다. 보조기와 함께 빙 돌면서 한쪽 다리와 팔을 번갈아 번쩍 들며 인사하는 세련되지 않은 그 사위가 바로 우리 시골 할머니의 정겨운 모습이었다. 제자들은 그를 위해 우리 가곡 스승의 은혜를 우리말로 부르며 고마워했다.

팔순의 그가 왜 이웃집 할머니 같은지를 알 것 같다. 소박한 외모며 정 많은 마음도 그러했지만, 몸은 이국땅에 있을지언정 정신은 언제나 고국에 두었던 것도 그러하고, 우리의 옛것을 사랑하는 철저한 한국 사람인 것도 그러했다. 초등학생 때처럼 오직 연필로만 눌러가며 악보를 쓰는 작곡 모습도 그러하고, 민족의 얼에서 소재를 가져오는 예술 신념도 그러했다.

그는 병구病軀를 불편하게 이끌고 있지만, 사는 일이 즐겁고도 행복해 보였다. 그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의 예술에서 나온 것 같다. 오직 혼신을 다 바치고 있는 그의 예술이 육신의 고통이며 삶의 간난을 다 넘어설 수 있도록 해준다. 예술에는 그런 힘이 있다.

나는 그와 비슷한 연배로서 같은 시대를 살아왔고, 지금도 살고 있다. 나는 어디에 살고 있는 누구인가가 돌아보일수록 그가 더욱 우르러진다. 뛰어난 작곡가 이웃집 할머니 영희, -파안.

그 영상을 본 날 밤, 머리에 가슴에 새겨진 그 모습이 내 잠결 속을 깊숙이 파고들어 왔다.(2025. 1. 7.)

                                                                      

 

우리가 인생이라고 부르는 것들

 

한 해도 얼마 남지 않은 십이월 어느 날, 연간으로 펴내는 회지 출판기념회 겸 송년회가 열렸다. 회원들이 한 해 동안 수필 공부를 하면서 써온 글을 모아 내는 책이다. 그 성과의 보람과 즐거움을 함께 나누면서, 그렇게 보낸 한 해의 의의를 기려보자며 마련하는 자리다.

회무를 맡은 몇 사람은 그 행사를 어떻게 재미있고도 뜻깊게 꾸며 볼까 하고 궁리를 거듭하고 있었다. 드디어 그날 그 시간이 왔다. 사무국장은 행사 시작 전에 회원들에게 주머니 하나를 내밀면서, 까닭을 묻지 말고 주머니 속 접힌 쪽지 하나 집어서 펴보지도 말고 호주머니 속에 잘 넣어두라 했다. 펴보지 말라니 더 궁금했다.

의식이 진행되었다. 축시 낭송에 이어, 회장이 회지 발간 의의와 그 성과를 자축하는 인사를 할 동안 남몰래 쪽지를 살짝 펼쳐 보니 번호와 한 회원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걸로 무얼 하겠다는 건가? 궁금증이 더해 갔다. 내 궁금증과는 상관없이 한 해 동안 각종 문예 작품 공모에서 입상한 회원들에게 축하 화환을 증정하고, 몇 사람이 나와 책에 실린 자작 수필을 낭독했다.

기념 떡을 자르고 악기 연주에 재주가 있는 몇 사람이 나와 축하 연주를 했다. 어느 회원은 오카리나로 숨어 우는 바람 소리를 불고, 또 두 회원은 기타와 타악기 연주를 반주로 걱정 말요 그대를 불렀다. 그 노래들과 함께 한시를 좋아하는 회원이 주렴계의 애련설愛蓮說을 성독聲讀하는 구성진 목소리에 이르러 출판기념회는 절정으로 오르는 듯했다.

바람 소리는 숨어 우는데, 숨겨 둔 쪽지는 언제 펼쳐 볼 수 있는 걸까? 걱정은 없지만, 궁금증은 더해 간다. ‘연꽃은 멀리서 바라볼 수 있으나 함부로 만질 수는 없다.可遠觀而不可褻玩하는데, 함부로 펼쳐 볼 수 없는 것이 내 주머니 속에 있다. 큰 글씨로 적힌 그 번호며, 그 아래 적힌 이름은 무엇인가. 펼쳐 볼 수 있는, 펼쳐 봐야 하는 순간이 마침내 다가왔다.

사회자의 멘트가 이어진다. “여러분들, 지금까지 수필 낭독도 잘 듣고 노래 연주도 잘 감상하고, 귀한 한시 성독도 감동적으로 들으셨지요? 이제 우리 출판기념회가 절정으로 갑니다. 기대해 주십시오.” 만면에 피운 웃음으로 좌중을 둘러 본다. “더 즐겁고 재미있게 진행하기 위해 자리를 만찬장으로 옮겨서 진행하겠습니다.” 만찬장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만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의식 행사 자리와 층을 달리한 가까운 자리에는 맛깔스러운 술과 음식들이 차려져 있었다. 모두 자리에 앉아 한 해를 보람되게 정리하고 새해를 새 뜻으로 맞자는 회장님의 건배사에 이어 사무국장은 맨트를 이어나갔다.

……우리가 수필 공부하면서 선생님께 늘 듣던 말씀이 있지요? 쓰기와 읽기는 항상 같이 가야 한다는 말씀, 쓰기의 바탕이 곧 읽기라는 말씀을 우리는 늘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을 깊이 새기면서 그 뜻을 어떻게 이 출판기념회에서 새겨 볼까 하는데, 회원 한 분이 멋진 아이디어를 내셨습니다.……그 회원에게 박수를 보냈다.

그 아이디어가 책 나누기를 하는 것이란다. 쪽지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이다. 이 자리 참석 준비물로 좋은 책 한 권씩 지참하라 했던 예고를 상기시켰다. 각자 가진 책을 들고, 쪽지를 펼쳐 놓으라 했다. 또 한 주머니에 든 같은 내용의 쪽지 하나를 회장님이 제일 먼저 뽑아서, 회장님 책을 그 번호 이름이 불린 회원에게 주면, 책을 받은 회원이 쪽지를 뽑아 그 번호와 이름을 불러 책을 주는 순서로 진행될 것이라 했다. 사슬처럼 이어나간다는 거다.

모두 둥그런 눈동자들 이리저리 굴리기에 바빴다. 어떤 이 무슨 책이 누구에게, 그 책을 받은 이는 무슨 책을 누구에게? 번호와 이름을 부르면 불린 이는 뛰어나가 책을 받고, 그 사람은 또 누구를 뽑아 자기 책을 주었다. 갈채와 환호가 쏟아졌다. 자기가 아껴 읽던 책을, 새로 나온 좋은 책을, 베스트셀러를 곱게 포장도 하고 예쁜 리본도 달아 책에 대한 해설을 곁들여 건네주었다. 그중에는 한강 작가의 노벨상 작품도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술의 흥도, 음식의 맛도 더욱 정겨워져 갔다.

사회를 맡은 사무국장의 추첨 순서가 되었다. 몇 번 누구하고 부르는데, 나를 부르는 게 아닌가! 회원들 모두 친한 사람들이지만, 사무국장과 나는 특히 대화를 많이 나누었던 사이다. 나에게 건네주는 책 제목도 심상찮다. 시 해설을 잘하는 정재찬 교수의 시 강의집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이었다. 정다운 사람으로부터 좋은 책을 받는다는 게 여간 기쁘지 않았다. 내가 추첨할 차례다. 이 무슨 기막힌 우연의 장난이란 말인가? 나에게 불린 사람은 바로 사무국장이었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며 모두 환성을 터트렸다.

나는 사무국장에게 계간 수필 전문지를 주며 말했다. “우리가 다양한 교양을 담거나 깊이 있는 사색을 새긴 책을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으로 어떤 글을 쓰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글쓰기에 중요한 공부가 될 것이라 했다. 국장과 나는 둘이 서로 주고받은 셈이다. 책 나누기는 이어지고 송년 분위기는 점점 뜨거워져 갔다. 이슥한 시간이 흐르고, 내년에는 더욱 좋은 글로 쓰기의 보람을 찾아보자며 자리를 일어섰다.

내가 받은 책에는 마음, 공부, 가진 것, 동행, 열애, 배움, 건강 등 우리기 인생이라 부르는 많은 것들에 관한 시와 사색이 담겨 있었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쓰기와 더불어 오늘 우리가 함께한 일들이 모두 인생이라 할 수 있겠지만, 특히 책 나누기는 이 모든 것을 함께 나누었던 이벤트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 책들 속에 인생의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지 않으랴. 우리가 인생이라고 부를 수 있는 모든 것들이-.(2024.12.31. 0:10)

                                                                      

 

창밖의 벌목

 

둔탁하면서도 날이 선 기계톱 소리가 마을 안까지 요란하게 들려온다. 마을 남쪽 산에서 나무를 베고 있는 소리다. 그 산 앞에 작은 산이 하나 더 있어 함께 골짜기를 이루고 있는데, 산의 벌목은 산허리 넘게 올라와 앞산의 능선을 올라섰다. 산마루에 이르도록 모두 베어낼 기세다. 나무를 베어내는 잔인한 톱질 소리와 함께 처절한 산의 비명이 마을을 흔들고 있다. 마치 동물이 제 가죽이 벗겨질 때 지르는 비명 같은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그 소리는 나에게 더욱 참혹하게 들려오는 것 같다. 저 산을 정면으로 비추어 주고 있는 내 방의 창이 그 소리를 적나라하게 전해주고 있다. 굴착기는 산허리를 가로질러 그 허리를 꺾을 듯이 파내고 있다. 베어낸 통나무를 쌓기 위한 자리며 실어낼 길을 만들려는 모양이다. 나무를 저리 마구 베어내서, 산의 가죽을 저리 처참하게 벗겨내서 어쩌겠다는 건가. 물론 대가를 얻기 위해서일 것이다.

지금부터 수년 전, 가을 어느 날이었다. 여느 날처럼 맑은 물이 흐르는 강둑길을 유유히 걷고 있었다. 날마다 걷는 나의 산책길이다. 흰 구름이 새맑게 떠 있는 고요한 물을 보며 걷고 있는데, 난데없이 둔중한 중장비 소리와 함께 기계톱 돌아가는 소리가 강물을 들쑤셨다. 고개를 돌려 보니 강둑 끝자락에 서 있는 산을 굴착기가 파헤치는 소리, 나무 베는 소음이 혼란스럽게 뒤섞이고 있었다.

작업을 지시하고 있는 산주를 만났다. 자기가 이 산을 샀다며 산림을 경영해 볼 것이라 했다. 산에 길도 내고 나무도 다듬고 버섯 같은 것도 재배해 볼 것이라 했다. 저 나무들은 그런 일을 위해서 베어내는 것이라 했다. 그때는 산 아랫자락의 나무들만 베어내고 있었다. 나중에 보니 산을 파헤쳐 낸 길의 가장자리에 막대 같은 걸 나란히 꽂고, 거기에 무슨 시구詩句 같은 글귀가 적힌 나무판을 갖다 걸었다. 길가에는 마리골드를 심어 꽃을 피우게도 했다.

시인인가, 아니면 시적인 정서의 세계를 동경하고 있는 사람인가 싶어 호기심과 기대가 섞인 마음으로 나도 그 길을 오르고 내려 골짜기로 들곤 했다. 해가 바뀌고 계절도 바뀌어 갔다. 산을 파내어 낸 길에는 흙이 사태를 이루어 내려앉고, 길이며 나무를 베어낸 자리에는 잡풀이며 애목이 무성해져 갔다. 글귀를 걸어 두었던 막대며 그 글귀들은 다 치워졌는데, 허물어진 길이며 뒤엉긴 푸나무들은 그대로 방치되고 있었다.

산주가 경영을 쉬어가려는지, 뜻을 접었는지 무심한 시간들이 흘러가고 있는 사이에 풀숲길이 된 그 산길에는 몇 포기 남은 마리골드와 함께 취나물, 물레나물, 등골나물, 짚신나물 등 갖은 풀들이 꽃을 피워냈다. 길이며 산을 이리 버려둘 바에야 왜 파헤치고 베어내고 했단 말인가. 이 풀꽃들을 두고 꽃을 갖다 심은 건 또 무엇인가. 산주의 소식은 아는 사람도 없고 알려고 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기계톱 소리가 진동하면서 나무들이 맥없이 쓰러지고 있었다. 마구 베고 자르고, 찍고. 파헤치고, 끌어내고, 대항군도 없는 전쟁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었다. 이 산을 반드시 제패하고 말리라는 듯, 그 비장한 각오가 예리하고도 둔탁한 기계음이 되어 산을 요동치게 했다. 산주가 어디서 무얼 하다 이제 나타났는지, 를 걸던 그 사람인지, 잇속에 잰 이로 바뀌었는지, 그 사람이 표변豹變한 건지, 알 사람은 알지 몰라도 관심 두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았다.

알아봤자 어찌할까. 제 산 제가 벗겨 먹는 걸 무어라 할 것인가 하는, 그런 생각들을 모두 하고 있는 것 같았다. 1990년대 미국에서 무분별한 개벌皆伐에 반대하여 목재전쟁을 벌이던 사람들은 나무에 몸을 묶고 벌목꾼들과 감옥행도 불사하면서 치열하게 싸웠다지만, 그건 먼 나라 남의 이야기일 뿐. 어떤 잇속을 가진 사람이 처참한 광경을 벌이든 말든, 누가 남의 일에 나서려 할까.

나만 속이 탈 뿐이다. 오직 나만이 피해자인 것만 같다. 책상에 앉기만 하면 봐야 할 수밖에 없는 저 산, 전진戰塵이 들끓고 있는 저 장면을 어찌해야 하는가. 마구 나뒹굴어진 시신들이며, 어느 무속 의식 제상에 차려졌다는 가죽을 모두 벗긴 소 사체 같은 저 산을 날이면 날마다 시시로 때때로 어찌 바라보아야 한단 말인가. 볼수록 생각할수록 전율만 솟을 뿐이다.

내 이 끔찍한 피해를 무엇으로 보상받을 수 있는가. 저들의 사유재산 앞에서, 그 당당한 자유 앞에서 나는 어찌해야 하는가. 나무가 저렇게 쓰러져도, 산이 저리도 발가벗겨져도 나는 할 일이 없다. 어서 봄이 오기를 기다리는 일 말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봄이 오면 베어진 그루터기 사이에도 풀은 다시 돋고 꽃도 새로이 피어날 것이다. 베어지고 파헤쳐진 상처를 딛고 새로운 생명을 돋구어낼 것이다. 그것만 기대하는 것으로 아린 마음을 다스릴 수는 없지만, 그 생명을 믿는 수밖에 없다. 내가 믿든 안 믿든 그 생명들은 힘차게 올 것이다. 반드시 올 것이다.

인간의 폭력 앞에서, 자연의 생명력 앞에서 나는 할 일이 없다. 참 무력하다. (2024. 12. 19)

                                                                    

 

전동 스쿠터를 타다

 

내 힘을 별로 들이지 않고 내 뜻대로 길을 달려 보기는 평생 처음이다. 지금까지는 가쁜 숨에 땀을 닦아가며 달리거나, 달려주는 기기를 위해 상당한 비용을 치르면서 달려야 했지만, 지금 나는 힘도 비용도 아주 적게 들이면서 내 뜻을 따라서 가는 길을 달리고 있다.

흘러가는 세월이 내 땀으로 내달을 수 있는 길을 거두어갔다. 한 발 한 발 디뎌 걸을 수 있는 길을 내어주는 것만으로 만족해하고 감사해하며 걸어야 할 처지가 되었다. 그것도 힘닿는 데까지다. 그 한계를 넘어서면 다른 것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다.

가장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것이 자전거다. 자전거는 걷는 것보다는 적은 힘으로, 걸어서 갈 때보다는 더 먼 길을 갈 수 있게 주는 이기다. 그렇지만 자전거도 내 힘을 적지 않게 들여야 갈 수 있다. 두 바퀴로 달리려면 균형 감각을 잃어서도 안 된다.

세월의 심술은 그 이기를 쓰는 것마저도 만만치 않게 했다. 오르막을 달리기는 걷는 것 못지않게 힘 들뿐만 아니라, 내리막을 달리는 것도 긴장을 늦추면 안 된다. 세월은 그 힘이며 그 긴장마저도 거두어가려 할 때가 있다.

나에게는 차도 없고, 차를 몰아본 적도 없다. 기계 조작에 손방인 탓이겠지만, 그 기계가 가지고 있는 속성이며 속도를 감당할 자신이 서지 않았다. 아주 오래전 일이지만. 면허 시험에 한 번 낙방하고는 흥미도 자신도 싹 잃고 말았다.

그렇다 보니 나에게 남은 교통수단은 걷기와 대중교통뿐이게 되었다. 달리기는 못 해도 걷기는 열심히 하고 있다. 걷기는 나의 교통수단일 뿐만 아니라 건강 유지의 유용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걷기에 먼 길은 조금 불편이 따르긴 해도 대중교통 수단을 잘 이용하고 있다.

문제는, 걷기에는 조금 멀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는 그리 먼 길도 아니거나 이용할 수도 없는 길을 갈 때다. 예컨대, 농협에 가서 금융 볼일도 봐야 하고, 우체국에, 면사무소에 가서 소용되는 일도 해야 할 경우가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자전거 이용도 만만찮은 지금-.

아들이 전동 스쿠터를 권했다. 그것인들 속도가 나는 기계가 아닌가. 여러 가지 조작법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 그리 염려하지 않아도 좋을 거라 했다. 조작도 아주 간단하고, 속도도 사고 위험이 별로 없을 정도로 나는 것이라 했다.

그러면 어디 한번 타볼까? 마트에 가서 생필품도 사 와야 하고, 때로는 동행인도 함께 탈 수 있는 게 있겠느냐 하니, 있다며 주문하여 보내주었다. 간단한 조작으로 짐칸을 좌석으로 바꿀 수 있는 삼륜 스쿠터였다. 충전만 잘하면 웬만한 거리는 내왕할 수 있을 것이라 했다.

운전도 어렵지 않았다. 오른쪽 손잡이를 틀어주면 나아가는데, 트는 각도에 따라 느리게도 빠르게도 할 수 있다. 그 각도만 주의해서 잘 틀면 별 위험은 없을 것 같다. , 후진 변환과 굽이 돌기에 유의해야 할 것 같다. 브레이크는 자전거와 같아 익숙하다.

잘 달려나갔다. 새 세상을 달리는 것 같았다. 핸들만 잘 잡고 있으면 내가 원하는 속도로 내가 필요한 곳을 큰 힘 들이지 않고 달려나갈 수 있다. 나에게는 새로운 세상, 그 세상으로 가는 길이 열리는 듯했다. 세월의 심술도 말려 줄 듯했다.

바르게 난 길도 달려 보고, 굽잇길도 달려 본다. 우리 인생도 그렇고 내 삶도 그랬던가. 굽잇길 달리기보다는 바른길 달리기가 쉽고도 편안하다. 내 살아오면서 바른길이 어디에 있는 줄 몰라 굽이진 험로를 헤맨 적은 없었던가.

굽잇길 돌기가 얼음판같이 조심스럽긴 해도 그런 길이 없다면 바른길인들 어찌 있으랴. 굽잇길이 없다면 바른길의 편안을 어찌 알 수 있으랴. 바른길도 굽잇길도 모두 내가 달려야 할 길이다. 굽잇길을 단련하다 보면 바른길 달리기도 더욱 편해질 것 같다.

주의를 기울여 달려야 하기는 바른길과 굽잇길이 다를까. 삶의 길인들, 이 스쿠터의 길인들 한눈을 팔지 말고, 긴장을 풀지 않고 달려야 함이 다를까. 내 살아온 길이 새삼스레 돌아보지만, 돌아보기는 차를 내려서 해야 할 일, 오직 앞만 보고 달릴 일이다.

농협 마트로 갔다. 선물 상자 몇 개를 샀다. 나에게 인정을 베풀어준 이웃들에게 작은 정성이나마 전하기 위해서다. 짐칸에 싣기가 편리하다. 이 탈 것이 아니면 이런 걸 어떻게 옮길 수 있으랴. 이웃에 진 신세를 조금이나 갚을 수 있다 싶어 마음이 유쾌해진다.

이 스쿠터가 준 유쾌가 아닌가. 이 차를 아끼고 사랑할 일이다. 오래오래 유쾌해지기 위하여-. 많이 타고 잘 타는 것만이 아끼고 사랑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이 차에 너무 의지하지 않는 것도 아끼는 일일 수 있을 것이다.

세월의 심술을 녹여 보리라며 이 차에 모든 행보를 맡기다가 내 발걸음이 쇠퇴해지면 어쩌랴. 내 건강이 쇠해지면 어찌하랴. 이 차를 아껴 사랑하기 위해서라도 부지런히 걸을 일이다. 안전하게 타기 위해서라도 힘내어 걸을 일이다.

달려온 스쿠터를 창고에 들여 쉬게 하고, 늘 걷는 해거름 산책길을 나선다.

걸음을 가볍게 옮겨 나아간다. (2024. 12. 6)

                                                                   

 

수필이 고맙다

 

수필이 고맙다. 수필로 인연한 사람들이 고맙다.

내가 사랑하는 수필로 좋은 글을 남기지도 못하고, 빛나는 이름도 얻지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내 속에 흐르고 있는 문학의 피는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학창 시절에는 시에 관심을 가지고 교과서 읽기보다는 시집 읽기를 좋아하고, 시를 좋아하는 마음이 시를 쓰게 만들었다. 시를 열심히 쓰면서 문예반장으로 활동도 하고, 문학 동아리 활동도 관심을 빠뜨리지 않았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로 나왔다. 바쁘게 사회생활을 하는 사이에 나도 모르게 시는 나에게서 시들해져 갔다. 모든 걸 비유와 상징으로 응축해야 하는 시에는 별 재주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글에 대한 향수는 가시지 않았던지, 몇몇 지면에 잡문을 가끔씩 내밀곤 했었다. 상사며 상부 기관으로부터 글 사역을 자주 받으며 그런 일로 출장도 많이 다니곤 했다.

그런 세월이 흐르고 있던 어느 날 영남일보로부터 교단 칼럼을 맡아 달라는 청탁이 왔다. 근 두 해 동안 대구의 교사 한 사람과 번갈아 가며 썼다. 그러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수필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 칼럼이 수필과 인연을 맺어 주었다고 할까.

어느 교육 월간지에서 문예 작품 현상 모집을 하는데 응모했다. 내 수필이 심사위원장인 박연구 수필가의 무더운 여름날 소나기의 시원한 맛같다는 평과 함께 최우수작으로 뽑혔다. 이어서 박연구 수필가가 주간으로 발행하던 수필공원에 추천받게 되었다. 그 후로부터 수필가라는 이름을 걸고 글을 써 온 지가 근 삼십 년이 되었다.

수필과 인연 이야기가 너무 길었는가. 그런 인연에도 불구하고 만인의 눈에 뜨일 글, 지가를 높여 줄 책 같을 걸 남기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가수는 안 해도 노래는 안 부르고 못 살겠더라는 어느 가수의 고백처럼, 수필가는 안 해도 수필은 안 쓰고 못 배기게 된 나의 삶을 돌아보며 깊은 감회에 잠기곤 한다.

독자가 많이 읽어 주면 좋은 일이고, 그러기를 바라고 있지만, 설령 읽어 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서운해하지 않고 쓴다. 내 글이 필요하다고 청탁해 오면 기꺼이 응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쓰기도 하지만, 내 글을 찾는 곳이 없다고 할지라도 얼마든지 독자와 소통할 수 있다. 카페며 블로그 같은 온라인 시스템이 얼마나 발달해 있는가. 그런 매체에서 이일배의 수필 사랑은 나의 집필실이기도 하고 독자와 만나는 곳이기도 하다. 그렇게 나는 쓰기의 즐거움을 누리며 살고 있다.

그 번다했던 사회생활도 끝을 내고, 지금은 십수 년째 은퇴 거사로 살고 있다. 직업 사회에서는 은퇴했지만, 내 문학 생활은 더욱 왕성한 현역 거사로 살고 있음에 늘 기쁨과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수필을 쓰고 있으면 슬픔도 기쁨이 되고, 괴로움도 즐거움이 된다. 수필이 무엇인가. ‘삶의 고백이 아니던가. 삶을 털어내는 사이에 내 심중이 정화되고, 그 정화가 생애의 동력이 되고 있음에 늘 감사하는 마음을 안고 산다.

세월이 흐르는 사이에 어쩌다 보니 사궁지수四窮之首 되고 말았다. 모두 내 탓이오, 내 운명의 소치겠지만, 때로는 외롭고 서러운 상념이 안겨 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내가 살아 있기에 그런 거라고 스스로 쓰다듬어 보기도 하지만, 그 마음을 잘 이겨내지 못할 때가 없지 않다. 그때 나는 모니터를 마주하고 앉는다. 광기에 찬 듯 쏟아낸다. 그 마음을 적어도 좋고, 다른 상념을 풀어나가도 좋다. 쓴다는 그 자체만으로 모든 게 맑아지고 밝아진다.

수필이 나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일은 또 있다. 매주 한 번씩 수필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만나는 일이다. 어느 도서관에서 열어준 평생교육 수필창작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이 왜 그리 좋고, 어찌 그리 많은 정이 묻어나는가. 수필 이야기는 문장 이야기만이 아니다. 저마다 다른 삶을 풀어내는 글을 읽으며 함께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 그사이에 서로 더할 나위 없는 벗이요,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어가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이고 즐거움인가.

자기 글을 함께 읽는 날이면 무어라도 들고 안고 와 함께 나누는 마음은 나만의 기쁨과 즐거움이 아닌 것 같다. 한 주일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서로 그리운 사람들이 된다. 한 주일을 그렇게 기다리며, 미리 보내준 함께 공부할 글을 읽고, 공부한 후에 보내오는 글을 다시 읽어 함께 볼 매체에 올려 공유하는 일은 또 얼마나 즐거운가. 떨어져 있는 동안에도 쉼 없이 소통하고 있는 것이다.

이래저래 수필과 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고 말았다. 그런 수필에 깊어지는 흠모의 마음이 수필은 나의 친구요, 애인이요, 아내라 해도 빈말이 될 수 없고, 삶의 지팡이요, 기둥이요, 지붕이라 해도 헛말이 아니게 한다. 잠 못 이루는 어느 밤에 이 글을 쓰고 있다. 다 쓰고 나면 달고 깊은 잠에 빠질 수 있을 것 같다. 수필이 나를 토닥여 줄 것이다.

수필이 고맙다. 수필로 인연한 사람들이 고맙다. (2024. 11. 26. 04:17)

                                                                     

 

영혼 없는 문자

 

우리는 일상 속에서 주변 사람들과 많은 말을 주고받으며 산다. 바로 말의 존재 이유일 것이다. 특히 요즈음같이 에스앤에스가 발달한 시대에는 시간과 거리에 상관없이 여러 사람과 많은 말을 주고받는데, 그때의 말은 주로 문자가 많이 이용된다. 글말인 문자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면서, 정감 있는 그림 속에 넣어 그 말을 더욱 정답게 만들기도 한다.

어느 한 사람이 아름다운 그림 속에 받는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도 할 아주 감성적이거나 희망적인 문자를 넣어 보내면, 그 문자를 받는 사람은 혼자만 보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에게 전파하기도 한다. 전파자는 누구의 마음을 보내는 걸까. 자신의 마음일까, 원작자의 마음일까? 그렇게 받는 문자들에서도 보내는 이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까? 읽어야 할까?

오래전 학교 동기 한 친구는 나날 아침마다 정해진 시간에 예쁜 그림 속에 좋은 말들이 적힌 메시지를 보내온다. 아름다운 꽃 그림 속에 오늘도 좋은 일만 가득하시고 / 행복한 하루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 항상 건강하세요, 사랑합니다.” 그리 깍듯하지 않아도 무방한 사이이거늘 그리도 정중한 기원을 보낼까.

어느 날은 어여쁜 여인이 장구를 연주하고 있는 그림 속에 소중한 사람은 언제나 마음속에 있어요. / 처음처럼 변함없는 마음 보석처럼 빛나는 사람 오늘도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라 한다. 마치 연인에게 보내는 사랑의 메시지 같다.

또 어느 날은 한복으로 곱게 단장한 여인이 울긋불긋한 단풍을 바라보고 있는 그림 속에 가을이 점점 깊어져 갑니다. 차가운 날씨에 건강 조심하시고 익어가는 가을과 함께 기쁨 가득한 하루 보내세요.”라 했다. 고마운 말이지만, 왠지 말이 허공에 떠 있는 것 같다.

그런 말들을 받고만 있기가 멋쩍어서 한번 내 문자를 적어 보냈다. “잘 계시는지? / 나를 위해 하루도 안 빠지고 이렇게 좋은 말과 함께 기도를 다 해 주시니 정말 감사하네~!! ㅎㅎㅎ / 좋은 일 많으시게~!!”

ㅎㅎㅎ를 붙인 까닭을 알까? 그 웃음의 의미를 알아챌까. 좋은 말에 대한 기쁨의 웃음일 수도 있지만, 왠지 공허하게 느껴지는 문자들에서 오는 빈 웃음일 수도 있다. 보내오는 말들이 좋은 말이긴 하지만, 친구의 마음들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누구한테 받은 걸 그대로 나한테 무심히 전달한 것이라면 얼마나 공허한 일인가.

고교생 시절 문우로 친하게 지냈던 어느 여류 문인의 글을 50여 년 만에 어느 문학지에서 놀라움으로 대했다. 반갑고 그리운 마음에 프로필 끝에 적힌 이메일 주소를 보고 당장 편지를 보내 어렵게 연락되었다. 서로 반가운 마음으로 흘러간 옛일을 회억하면서 그간의 안부를 나누었는데, 일찍이 미국에 이민해서, 거기 한인 사회에서 문학 활동을 하다가 노경을 맞아 고국으로 돌아와 살고 있다 했다.

사는 곳이 다르고 멀어 만날 수는 없지만, 자주 연락은 하고 살자며 주로 에스엔에스로 소식과 마음을 주고받고 있다. 그렇게 마음을 나누어 가던 어느 날, 활짝 핀 해바라기 그림과 함께 늘 생각나는 사람 /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진심일 수도 있고, 남의 마음을 빌린 것일 수도 있다 싶어 정말~?!” 이라고 한마디 답장을 했더니. 함박웃음을 터뜨리는 이모티콘을 보내왔다. 그 웃음의 의미는 무엇일까.

무릇 말이란, 무슨 말이든 그에 걸맞은 의미와 함께 말하는 이의 영혼이 담겨 있어야 한다. 의미도 물론 중요하지만, 영혼이 없는 말은 한갓 소음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언어가 진정한 의사소통의 수단이 되기 위해서는 서로의 영혼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요즈음 에스엔에스에 떠도는 문자들을 보면 단순한 말장난이거나, 안 해도 좋을 말이거나, 남에게 받은 것을 다른 이에게 무의미하게 전달, 전달하는 게 대부분이다. 이런 일들이야말로 공해요, 전파 낭비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거기에 무슨 영혼을 기대할 수 있는가. 이런 매체들을 통하여 가짜뉴스가 횡행하는 것은 또 어찌 보아야 하는가. 그런 것에 어찌 영혼이 있다 할 것이며, 있다고 한다면 아주 사악한 영혼일 것이다.

하기야 영혼 없는 말로는 어찌 에스엔에스 문자뿐이랴. 일상 언어에선들 영혼 없는 말이 없을까. 특히 정치인들의 험한 말들을 보라. 그들의 말에 어찌 영혼이 있다 할 것이며, 있다면 가짜뉴스에서보다 더 사악하고 추악한 영혼이 깃들어 있을 뿐이지 않을까.

나를 돌아볼 차례다. 나는 그 누구에게 영혼 없는 문자를 보낸 적은 없는가. 소음에 지나지 않는 말을 한 적은 없는가. 영혼 없는 말이 필요치 않은 삶이 되고, 영혼 없는 말이 용납되지 않는 사회가 된다면, 한층 더 따뜻한 삶이 되고, 믿음직한 사회가 될 것이라는 상상과 기대에 젖어 본다. (2024. 11. 3)

                                                                   

 

댑싸리 전설(2)

 

댑싸리는 올가을에도 더는 붉을 수 없을 것 같은 짙붉은 물이 들었다. 아내는 올해도 그 붉은빛을 볼 수가 없다. 그런 채로 저 붉은빛은 씨를 남기면서 하얗게 바래 갈 것이다.

지난해 초여름 가료를 위해 아이들 집에 가 있던 아내가 당부한 말을 따라 그렇게 심었던 대로 올 초여름에도 어린 댑싸리를 문간 어름에 한 줄로 나란히 심었다. 그 댑싸리가 여름을 보내고 가을이 흘러가는 사이에 연두색에서 초록으로 빛을 바꾸어 가며 무럭무럭 자라다가 이제 그 푸른 고비도 넘어 새빨갛게 물이 들었다.

아내는 자기가 씨 뿌려서 난 모종을 한 줄로 보기 좋게 심어 달라 해놓고 초록으로 제법 북슬북슬한 자태를 이룬 한여름 어느 날, 그 모습을 영영 볼 수 없는 나라로 가버렸다. 지금처럼 가을이 이슥해져 그 붉게 타는 모습을 나 혼자 보아야만 했다. 그 빛깔은 내 안으로 들어와 타고 있었다.

그렇게 혼자서만 댑싸리를 지켜보며 지내던 작년 어느 겨울날, 그 댑싸리가 한살이를 마치고 씨를 흩뿌리고 거두어질 무렵이었다. 오직 혼자뿐인 방안에서 쓰러진 채 잠시 내 생애에서 완전히 지워진 혼절의 시간을 맞아야 했다. 119에 겨우 실려 어느 병원 응급실로 갔다가 아이들이 사는 대처의 큰 병원에 누워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119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 전화번호를 보고 위치 추적을 할 수 없었다면, 어느 땐가 백골이 되어서야 발견될지도 모를 일이었었다.

진단 결과는 체내에 있어야 할 무슨 무슨 요소가 결핍되어 쓰러지면서 그 충격으로 척추 한 부분에 골절이 났다는 것이다. 그 댑싸리를 홀로 보면서 지내온 시간들이 내 몸에 해찰을 부린 모양이었다. 평생 처음 홀로된 삶을 겪다 보니 그 시간들이 나를 만만하게 본 것 같다. 두어 주일 후에 온전치 못한 육신을 끌고 겨우 집으로 돌아왔지만, 나에게 안긴 건 이지러져 가는 몸과 빈방뿐이었다.

막막하고 캄캄했다. 절대 희망도 없듯 절대 절망도 있지 않은 것 같았다. 나라에서 알고 내 생애를 도와줄 사람을 보내주었다. 나에게로 온 그 사람은 나라에서 보내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서 보내준 사람 같았다. 먹고 입고 치유하며 지내야 하는 몸뿐만 아니라 의지하고 위안받고 싶은 마음까지도 채워주기에 애썼다.

그런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파릇파릇 돋아나는 모든 것 속에 댑싸리 파란 싹도 앙증맞은 얼굴을 내밀었다. 저들이 돋아나기를 바라며 씨를 뿌린 적도 없건만, 겨울 들머리에서 마른 것들이 남기고 간 씨앗에서 돋아난 것이다. 아내가 몰래 와서 뿌리고 간 것 같기도 했다. 그때도 아내는 나에게 말도 없이 씨를 뿌렸었다.

그래, 그 씨 뿌려놓고 간 아내가 저들 솟은 것을 솎아 한 줄로 심어 달라고 했지. 아내 말대로 한 줄로 옮겨 심었지. 그 봄이 흘러갔다. 댑싸리는 내 속을 알고 있기라고 하는 듯 잘 자라 주었다. 그중에는 자리기를 꾸물대는 것도 있었지만, 다들 아내가 기대했을 복슬복슬 탐스러운 모습으로 자라 주었다.

저것 좀 봐요, 참 이쁘지 않아요?”

아내가 아닌, 내 생애를 도와주는 분에게 말했다.

그러네요.”

짧은 말을 했다. 그는 알 리가 없다. 저걸 내가 왜 한 줄로 저렇게 심었는지를. 내가 왜 이쁘다고 하는지를-. 조금은 쓸쓸한 심사가 속을 쓸어내리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는 내가 세상을 견뎌 나가는 일을 위해서 스스로 할 일을 찾아 성심을 다해주고 있는 분이다.

점점 더 복스러워지면서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다. 크기는 달라도 자랄 대로 다 자란 것 같다. 가을 소슬한 바람에 흔들리면서 푸른빛이 붉은빛으로 바뀌어 갔다. 어느새 온통 붉은빛이 되었다. 아내가 씨를 뿌려놓고, 그 싹을 집 문간 고샅에 그렇게 옮겨 심으라 해놓고 자기는 못 보았던 빛깔이다.

지난겨울에 얻은 병의 뒤가 아직도 남아, 병원 길을 나서던 날에도 댑싸리는 붉게 타고 있었다.

도와주는 분은 내 길 채비를 도와주면서 문간 배웅을 나왔다.

빛깔이 참 곱지요?”

불타는 것 같네요.”

내 년에도 또 저렇게 가꾸어야겠어요.”

내 속도 타오르는 것 같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잘 다녀오시라며 손을 흔들었다.

아내가 못 본 것까지 내가 보고 보리라 속을 여미며 병원 길 차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2024.10.23.)

                                                                     

 

세월의 자국을 넘어서

 

커다란 거울이 터미널 화장실 입구 옆벽을 가득 채우고 있다. 화장실을 가도 무심히 그냥 지나칠 수도 있고, 차에 오를 시각이 임박하여 급히 가다 보면 눈 돌릴 겨를이 없어 거울을 지나치기도 한다.

어느 날 차 탈 대비로 화장실을 들면서 우연히 거울 쪽을 곁눈질하게 되었다. 허리 구부정한 웬 늙은이 하나가 중절모를 쓰고 한 손에는 가방을 들고 화장실로 들어가는 모습이 언뜻 눈에 들어온다. 누군가 싶어 다시 고개를 돌려보니, 바로 나였다.

낯선 모습이다. 내 언제 저리 허리가 굽어졌으며, 모자 아래로 드러나 있는 머리카락은 왜 저리 허옇게 보이는가. 집에서 반듯하게 서서 거울을 볼 때와는 영 딴판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저런 모습이 되어 있었구나.

점점 늙어가는 줄이야 모를 리 없다. 기력도 날로 여려지는 것 같고, 몸 기능들도 제 노릇 해내기에 조금씩 힘들어한다는 것을 느끼곤 한다. 볕 쨍쨍한 한낮보다, 불그레하게 물들어가는 석양이 더 정답게 느껴지는 것은 마음도 늙어가기 때문일 것이다.

내 늙은 모습이 저런 모습일 줄이야. 허리가 좀 쑤실 때가 있긴 해도 걸을 때는 바로 설 수 있다고 여겼었다. 아니, 별생각이 없이 서 있거나 걷곤 했다는 게 옳은 말일 것 같다. 어찌하였건 저런 모습이 내 모습일 줄은 몰랐다.

무엇이 나를 저렇게 만들었을까. 그렇지, 그것이 그랬구나. 그것이 저리 해찰을 부렸구나. 세월이다. 세월이란 무심히 흘러가는 것 같지만 강물처럼 유유하고 유장하게 흘러가지는 않는 것 같다. 제 자국을 꼭 남긴다.

물론 세월은 사람에게서만 흘러가는 것이 아니다. 나무며 풀이며 꽃이며 길짐승, 날짐승이며 미물에게까지도 다 흘러간다. 그 방법도 껴안든지 무얼 잡아끌든지 채찍질하든지 때에 따라 대상에 따라 다 다른 흔적을 남기며 흘러갈 수 있다.

나의 세월은 나를 어떻게 채근해 왔던가. 돌아볼수록 나에게는 별로 살갑거나 자비롭게 대해 준 것 같지는 않다. 내 탓이 클 것이다. 내가 세월과 잘 친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모두가 제 할 탓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어찌하였든 나의 세월이란 나를 따뜻하게 품어주거나, 다정히 손을 잡아주기보다는 나를 떠밀려 했고, 힐책하려 했고, 그러다가 자빠지게도 하고, 그래서 몸과 마음에 생채기를 남겨주기도 하면서 나를 살아오게 한 것 같다.

나에겐들 아늑하고 온기 어린 세월이 왜 없었을까만,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혹은 맑은 물은 흘러가고 자갈만 강에 처져 남듯 그런 기억은 묻히거나 흘러가 버리고 세월의 상반傷瘢들만 남이 있는 것 같아 사는 일이 허허로워지기도 한다.

그뿐이랴, 그 세월의 뒷자락에 나에게 남은 일은 사람이든 무엇이든 모두 나에게서 떠나갈 일밖에 없는 것 같다. 주위 사람들도 이미 떠났거나 떠나려 하고 있고, 내 몸도 나에게서 조금씩 떠나고 있다. 내 손때 묻은 것들도 차츰 사라져가고 있다.

돌아보면 허전하고, 둘러보면 뭔가 자꾸 비어가는 것 같아 고적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 고적의 끝자락엔 뭐가 기다리고 있을까를 돌아보는 순간, 체념이랄지 항심抗心이랄지 상념의 반전이 불현듯 일기도 한다. 다 빌 때까지 그냥 살아보자고-.

인디언의 방식으로 세상을 사는 법에 이런 말이 나오는 걸 봤다.

한 번에 하루 치의 삶을 살라. 그럼으로써 모든 날을 잘 쓰라. 정성을 다해 채소를 기르듯 영적인 밭을 일구라.”

그래, 하루 치씩 하루하루 살아가는 거다. 지난날이야 어찌할 수도 없고, 오지 않는 날이야 어차피 나의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냥 하루하루를 사는 거다. 채소를 가꾸듯 하루하루를 살다 보면 영적인 밭도 일구어져 가겠지.

지금 내 몸과 마음에는 수많은 세월의 자국들로 점철되어 있다. 이 구부정해진 허리도 물론 그 자국에 하나일 것이다. 이 굽은 허리가 지금까지 나를 살려온지도 모르겠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내게 찍혀 있는 모든 세월의 자국들과 함께.

내 살아가는 하루하루에도 또 자국이 남아 가게 될 것이다. 그 자국을 더는 남길 자리가 없게 될 때가 내 세상이 끝나는 날일 것이다. 남겨지는 데까지 남겨보자. 그 자국들이 내 영혼의 밭을 더욱 걸게 해줄지 아는가.

오늘 하루도 그렇게 살아보자. 구부정한 허리 거울을 뒤로하고, 세월의 자국을 딛고 넘어서 차를 오른다. 언제 보아도 기쁘고 즐거운 사람들을 만나러 갈 차다.

삽상하게 내딛고 싶은 걸음으로 오른다. (2024.10.2)

                                                                    

 

댑싸리 전설(1)

 

담장 옆 연녹색 댑싸리가 무성하다. 크고 작은 것이 섞여 있지만, 이웃하고 있는 밭의 들깨며 고춧대를 바라보며 저도 그만큼 크고 싶었는지 성큼 자라 우거져 있다. 키만 큰 것이 아니라, 줄기에서 올라와 크고 작게 벋어나온 수많은 잔가지가 사방으로 벌어 둥그스름한 모양을 이루기도 했다.

아내가 봤다면 맑은 미소를 지으며 기뻐했을 것이다. 아내는 청초하고도 복슬복슬한 모습을 탐스럽게 여겼던지 댑싸리를 이뻐했다. 지난해 봄, 어디서 구했는지 댑싸리 씨를 가져와 골목 밭 가에 뿌렸다. 따뜻한 햇볕이 내려앉고 때로는 비가 내리기도 하는 사이에 조그만 싹이 흙을 뚫고 솟더니 소록소록 자라 올랐다.

댑싸리 싹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을 무렵 아내는 자주 자리에 눕기 시작했다. 병원을 드나들기도 했지만, 진정이 되지 않아 아이들이 살고 있는 대처로 누울 자리를 옮겼다. 전화해서 좀 어떤지를 물으면, 어디가 어떻게 편치 못하고, 어디 병원을 다녀왔다는 말끝에는 댑싸리의 안부를 묻곤 했다. 복스럽게 자라고 있다고 했다.

어느 날은 전화하여 한 곳에 몰려 있게 하지 말고, 밭 가에 몇 뿌리씩 줄을 지어 옮겨 심어달라 했다. 아내가 말한 대로 한자리에 모여 있는 어린 댑싸리를 두세 뿌리씩 골목 밭둑 옆에 한 줄로 나가면서 옮겨 심었다. 아내에게 이렇게 심었다며 사진으로 찍어 보내주고, 집에 돌아와서 자라는 모습을 보라 했다.

댑싸리는 쑥쑥 잘 자라 났다. 아내에게 댑싸리가 잘 자라고 있다며 전화하니 병원에 다녀오는 길이라 했다. 집 걱정은 하지 말고 병원에 잘 다녀서 빨리 나아서 돌아오라 했다. 댑싸리는 잘 자라나고 있는데, 아내는 병원 다니는 횟수가 잦아져 갔다. 내가 가 볼까 해도 아이들이 잘 돌봐주고 있다 했다.

아내가 집을 떠난 지 두 달이 되어가던 여름 어느 날, 씨 뿌려 나게 했던 댑싸리를 다시 볼 수 없는 세상으로 덜컥 가버리고 말았다. 댑싸리가 무엇을 알까. 무럭무럭 잘 자랐다. 큰 것은 허리를 넘어설 만큼 자라났다. 댑싸리의 그 무심無心이 시리게 아려 보이기도 했다.

계절이 바뀌어 소슬바람이 불던 어느 날부터 잔잔한 잎새며 가지들이 단풍이 들 듯 붉게 물들어갔다. 연홍으로 물들어가는가 싶더니 어느새 훨훨 솟고 있는 불길인 듯 짙붉게 타올랐다. 댑싸리의 꽃말이 오래 참는 사랑, 고백이라 했던가. 마치 참고 참아왔던 사랑의 말을 한꺼번에 불길처럼 쏟아내는 것 같았다.

나에게는 저 타는 불빛이 아내가 참고 참았던 속상한 일들을 한꺼번에 토해내는 듯이 보이기도 했다. 같이해 오는 동안 속상했던 일들이 한두 가지였을까. 조금씩은 상한 속을 풀어내기도 했었지만, 어찌 다 풀어낼 수 있었으랴. 그 답답한 속을 저 짙은 빛깔로 다 털어내는 것 같기도 했다. 이따금 고개가 숙어지면서 저 빛 같은 얼굴빛이 되어 묵연히 바라볼 뿐이었다.

그렇게 가을이 가고 겨울이 들면서 노랗고 하얀빛으로 변하며 서서히 말라 갔다. 찬 바람이 불 무렵 잎은 다 떨어지고 줄기만 앙상하게 남게 되었다. 빗자루로 묶는다는 그 줄기지만, 묶을 엄두를 못 내고 그대로 거두었다. 댑싸리는 거두어 지면서 잊지 않았다. 제 씨앗을 세상에 남기는 일을-.

봄이 왔다. 언 땅이 녹고 따뜻한 바람이 불면서 댑싸리가 서 있던 자리에 하나둘 싹이 돋기 시작했다. 댑싸리만이 아니라 다른 풀들도 그것과 섞여 돋아났다. 아내 대신 밭을 부치는 이가 있었다. 농사를 짓는 사람은 누구라도 밭 가에 두렁에 풀이 돋는 것은 참지 못한다. 모든 풀은 없애야 한다.

가장 쉽게 없애는 방법은 제초제를 치는 일이다. 그도 두렁이며 밭 가에 제초제를 뿌려 나갔다. 한창 솟아나고 있는 댑싸리도 예외는 아니다. 어느 날 보니 밭 가의 모든 풀이 시들시들 잎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그중에는 약을 덜 맞았던지 요행으로 피할 수가 있었던지 머리를 들고 있는 것도 있었다.

성한 댑싸리만 골라냈다. 맞은편 담장 아래에 다른 풀을 뽑아내면서 한두 뿌리씩 묶어 아내가 말한 것처럼 한 줄로 옮겨 심었다. 일부러 심어놓은 걸 보면 제초제를 못 치겠지. 쑥쑥 잘 자라는 것도 있고, 좀 작은 것도 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연둣빛에서 녹색으로 빛깔을 바꾸어 가며 복슬복슬 자라났다. 아내의 맑은 미소가 보이는 듯했다.

밭 부치는 이가, 씨가 퍼지면 어쩌려고 저러느냐며 걱정했다. 내가 간직하고 있는 댑싸리 전설을 어찌 알 수 있으랴. 안 들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까. 내년에도 더 먼 날에도 아내의 말처럼 한 줄로 가꾸면 된다. 댑싸리를 보고 싶어 했던 그 마음을 가꾸면 된다.

나만이 아는 전설로 가꾸어 나가면 된다.(2024. 9. 16)

                                                                  

 

쓸쓸함에 대하여

 

누군들 쓸쓸할 때가 왜 없을까? 살기에 바빠 쓸쓸할 틈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바쁜 걸 강조해서 하는 말일 것이다. 정녕 쓸쓸할 틈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까. 아무리 바쁜 사람일지라도 문득 쓸쓸함이 밀려올 때가 어찌 없을까.

나는 덜 바빠서 그런지 쓸쓸함을 느낄 때가 더러 있다. 가끔씩 끙끙 앓기도 해야 하는 쓸쓸함에 잠길 때도 없지 않다. 바쁘게 살던 시절이 훌쩍 흘러가 버렸을 뿐만 아니라, 지금은 바쁠 수 있는 기력도 별로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 별로 없는 기력이 가끔은 쓸쓸함을 가져오기도 한다. 어쨌든 이따금 쓸쓸함이 찾아오지만, 그중에서도 혼자 읽기 아까운 시가 있어도 같이 읽거나 들려주면서 마음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없을 때 쓸쓸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심장이 / 몸 밖에 달렸더라면 / 네 마음을 더 잘 보았을 텐데…… 아니, 생각이 / 나보다 먼저 잠들기만 했어도 / 너와 더 오래 한집에 머물렀을 텐데……(정끝별, 너였던 내 모든)

이 시를 읽고 있으면 심장의 움직임이 조금씩 빨라져 가는 듯한 느낌이 드는 건 무엇 까닭일까. 설령 심장이 몸 밖에 달려 있다 해도 나에게 심장을 보여줄 사람도 없고, 내 심장을 보여줄 사람도 없다는 게 쓸쓸하다.

없다라는 말 속에는 있었다가 없어졌다.’라는 뜻도 있고, ‘처음부터 있지 않다.’라는 뜻도 있을 테지만, 나는 어느 쪽이라는 걸 굳이 말로 드러내고 싶지 않다. 말이 되어 나오는 순간 상념은 또한 쓸쓸함에 빠질 것 같기 때문이다.

나를 더욱 쓸쓸하게 하는 것은 그다음 구절이다. 너를 향한 생각이 나보다 먼저 잠들 수 있다면 나는 언제까지나 너를 안고 있을 수 있겠지만, 그 생각이 잠들어주지 않으니 너와 나 사이의 거리일지 벽일지 그런 게 자꾸 멀어지고 두꺼워지는 것 같아 점점 더 쓸쓸해진다.

이런 시를 같이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내 젖은 목소리로 들려줄 수 있는 이 누가 있다면 쓸쓸함이 쓸쓸함을 녹여줄 것도 같다. 결국은 이 시가 나를 더욱 쓸쓸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그래도 괜찮다. 내 쓸쓸함을 시가 대상代償해 줄 것 같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런 쓸쓸함보다 조금 더 짙은 쓸쓸함이 엄습해 올 때는 저녁밥을 혼자서 먹을 때다. 어찌하다 보니 삼시 세끼를 혼자서 치러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현실과 더불어 고단하게 사는 처지 속으로 병고까지 찾아왔다.

마냥 죽으라는 법은 없었던지, 고마운 제도가 고마운 분이 나를 찾아오게 해주었다. 하루 두어 시간 내 사는 일을 돌봐줄 뿐이지만, 나에게는 그야말로 구세주 손길이다. 그 길지 않은 시간을 아껴가며 정성을 다해주는 마음이 신고, 심고를 잊게도 해준다.

아침 일찍 나에게로 와 내 하루를 시작하게 해주고 하루 지낼 일을 마련해 놓고 가면, 그 마련으로 하루를 지내곤 하는 날들이 이어져 갔다. 그 정성스러운 마련이 감동을 주기도 했지만, 아침밥이나마 같이 먹을 이가 있다는 것이 여간 큰 위안이 아니었다.

그 위안은 아침으로 끝나야 한다. 점심과 저녁은 혼자서 맞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맞이는 물론 아침에 마련해 놓은 것으로 해결할 수 있기에 이 또한 다행이라 할 수 있지만, 쓸쓸함은 내 몫이 되어야 하는 건 어쩔 수 없다.

점심때는 창밖으로 보이는 푸른 하늘과 녹음 짙은 산이 마음을 추스를 수 있는 위안거리가 될 수 있지만, 저녁은 어스름 황혼 빛이거나 어둠 속에서 허우적대는 전등 빛 아래에서 홀로 술을 들다가 보면 국물 맛이 눈물 맛같이 다가올 때가 있다.

이렇게 혼밥 상과 함께한 이력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건만, 왜 이리 여물어지지 못했을까. 모든 것을 혼자서 해결해야 할 때도 없지 않았는데, 도움을 주는 이가 있음에야 더욱 여물어져야 할 것이 아닌가. 모를 일이다.

그랬던 것 같다. 혼자 한 마련으로 먹고 자고 할 때는 오직 생존 일념뿐이었던 것 같다. 비록 울울한 심정으로 술을 들지언정,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돌아봐 줄 이가 아무도 없다는 긴장감, 절박감이 쓸쓸함을 조금 앞질러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지금은 잠시간이나마 함께할 수 있는 이가 있다는 것이 생존에서 벗어나 생활 속을 살고 있다 싶어 안도감을 준다. 오히려 그 안도감이 쓸쓸함을 몰고 오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침과 저녁의 처지가 같지 않은 데서 오는 쓸쓸함은 또 무엇인가.

생활이 생존보다 더 쓸쓸한 것 같다. 생존은 간혹 거부하는 이도 있지만, 누가 생활을 마다할 수 있는가. 어차피 사람은 생활 속을 살아야 할 존재라면, 쓸쓸함은 모든 사람이 원죄로 타고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쓸쓸하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

오늘 저녁도 쓸쓸한 술을 든다. 밥술을 들고 가끔은 술잔도 든다. 이 저며오는 쓸쓸함이 나의 생활이라면 도리 없는 일이다. 쓸쓸하면서 살 수밖에 없는 일인 것을 세상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을까. 쓸쓸함을 보듬기도 하면서 숨 쉬어 나가는 수밖에 없는 것임을 나만이 아는 일일까.

생활 속의 쓸쓸함이여, 쓸쓸함 속의 생활이여! (2024.9.2.)

                                                                      

 

위대한 정령

 

밭에 나는 풀이 너무도 성가시다. 베어내도 나고. 뽑아도 나고 깊숙이 캐내어도 또 난다. 난 풀들은 쑥쑥 잘도 자란다. 아침저녁이 다르고 하루하루가 놀랍다. 신기하다. 이 풀들은 누가 씨를 뿌리고 누가 가꾸는 것일까. 돌보는 이가 없다면 이토록 끈질긴 생명력으로 나고 살고 무성해질 수 있을까.

심어서 가꾸려 하는 작물은 뜻대로 잘 나지도 않고 자라지도 않는다. 잘 나라고 씨뿌리기 전에 땅에다 거름을 묻고, 나면 비료를 주고 병 들지 말라고 약을 쳐주고 해도 바라는 대로 키우기는 쉽지 않다. 원하는 결실을 거두기는 더 어렵다. 저 풀을 가꾸는 손길에 비하면 작물을 가꾸는 사람의 손길이며 그 힘이란 보잘것없는 것 같다.

누가 가꾸든 모든 식물에는 꽃이며 열매가 다 피고 열리기 마련이다. 단지 그 열매를 사람이 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차이일 뿐이다. 사람이 못 먹으면 새며 짐승이 와서 먹고 남은 것은 씨앗이 되어 또 난다. 경영은 마찬가지다. 어쩌면 야생의 초목이 더 많은 생명체를 살려 나가는지도 모른다.

야생의 이런 경영은 누가 하는 것일까. 일찍이 인디언들은 위대한 정령이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말로는 와칸 탕카(Wakȟáŋ Tȟáŋka)라고 하는 존재다. 새가 울고 꽃이 피고 비버며 들소가 뛰어다니고,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고 하는 모든 것이 와칸 탕카, 위대한 정령이 하는 일이라 했다.

인디언들에게는 성경도 없고 교회도 없다. 그렇지만 절대적인 믿음은 있다. 아침에 해가 뜨면 만물의 아버지라며 감사하고, 흙은 대지의 어머니라며 감사하고, 강물은 대지의 핏줄이라며 감사하고, 바람은 대지의 숨결이라며 감사한다. 약초를 캐면서 그 풀에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들소를 사냥하여 먹거리와 옷을 삼으며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자연의 모든 것이 경배의 대상이다.

그 모든 것이 위대한 정령이 하는 일이라 여겨 오직 감사하고 숭배하는 것으로 그들의 신앙을 삼는다. 그리하여 풀 한 이파리, 미물이며 짐승의 목숨 하나도 허투루 여기지 않는다. 필요하여 채취하거나 수렵을 할 때도 경배의 기도를 먼저 올린 후에 실행한다고 한다. 위대한 정령에게 올리는 기도다.

위대한 정령이라는 게 정녕 있기나 한 건가. 인디언들에게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고 한다. 어떤 이가 위대한 정령의 정체를 알고 싶어 보이지 않는 정령에게 말씀을 들려 달라 하니 종달새가 노래했다. 그래도 또 말씀을 들려 달라 하니 천둥을 굴러다니게 했다. 모습을 보여 달라 하니 별을 빛나게 했다. 기적을 보여 달라 하니 한 생명을 탄생시켰다. 한번 만져 달라 하니 나비를 내려앉게 했다. 사람은 나비를 쫓아 보내고 떠나버렸다고 한다. 세상 모든 것이 위대한 정령의 일임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문명한 백인들이 야만스러워 보이는 인디언의 땅을 침략했다. 백인들은 인디언들에게 그들의 교회며 학교에 다니라 하고, 살기 좋게 한다며 땅을 마구 파고 나무를 무참하게 찍어 넘기고 높은 집을 짓고, 조용하던 들판에 철로를 놓아 기차를 다니게 했다. 살기 좋아지기는커녕 온갖 공해며 질병이며 범죄가 만연해져 갔다.

그 문명인들은 자연은 정복하는 것이라 했다. 모든 것을 자신들의 뜻대로 고치려 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풀은 잡초라고 부르며 짓밟았다. 인디언들은 세상에 잡초라는 것은 없다고 여겼다. 모든 풀은 마땅히 존중되어야 할 목적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쓸모없는 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어느 쪽이 더 괜찮은 삶일까.

마을 앞에는 강이 흐르고, 강둑 위에는 정자가 놓여 있다. 정자 옆 마을 쪽에는 수백 년 묵은 느티나무 노거수가 우람하게 서 있고, 강 쪽에는 봄에는 해사한 꽃을 피우는 벚나무며 절로 난 온갖 초목이 우거져 있다. 어느 날 그 초목들이 무참히 잘려져 나갔다. 나무들이 너무 자라 강의 경관을 막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민원을 받은 관에서 한 일이다.

정자에 앉아 물 맑게 흐르는 풍경을 바라며 즐기는 것은 운치 있는 일이다. 그 운치를 위해서 나무를 베어낼 수도 있다. 관의 발주를 받은 사람들은 그걸 어떤 마음으로 베어냈을까. 강과 정자의 경관을 살릴 수 있도록 나무를 다듬는 마음으로 벤 것일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베어내라니까 아무 생각 없이 마구잡이로 쳐 없애버린 것 같다.

오래된 벚나무의 커다란 가지들도 흉물스럽게 잘라 커다란 둥치만이 처참하게 서 있게 했다. 저 끔찍한 모습이 정자의 운치를 살려 줄 수가 있을까. 인디언처럼 위대한 정령의 존재에 관한 생각은 못 한다 할지라도 모든 것이 사람과 함께 공존해야 할 생명체로 여겼다면 저리 무참히 자르지 않았을 것이다.

인디언이 들소를 잡아 고기로 양식으로 삼고 가죽으로 옷을 해 입으면서도 위대한 정령에 대한 감사의 마음은 잊지 않았듯이, 자연물을 어떻게 쓰더라도 세상을 함께 사는 다 같은 생명체라는 생각만은 잃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는 일일까.

저 푸른 산의 나무며 저 들길에 함초롬히 핀 꽃, 저 숲속을 날아가는 새들이며 저 꽃을 찾아드는 나비들은 누가 가꾸며 누가 거두는 것일까. (2024.8.19.)

                                                                 

 

기다림에 대하여(6)

 

오늘 아침에도 내 귀는 현관문 쪽을 향해 있다. 그가 여는 문소리가 곧장 들릴 것 같다. 그는 나의 요양을 도와주는 분이다. 어쩌다 보니 홀로서기가 어렵게 되었다. 곁에 아무도 없는 지경이 된 데다 질고까지 겹쳤다. 관계 기관에서 내 처지를 헤아려 보내준 분이다.

정해진 시각 무렵에 어김없이 문이 열린다. 밤새 안녕을 묻는 인사와 함께 나의 하루에 필요한 일들을 챙겨나간다. 이내 몇 가지 찬이 어우러진 아침상이 들어온다. 텃밭 남새로 마련한 찬과 함께 집에서 보듬어온 정성도 곁들였다.

그가 여는 문소리는 요즘 내 삶의 고즈넉한 동력이고 희망의 시그널이다. 나는 그를 편안하고도 고마운 눈길로 바라지만, 그는 나의 눈길을 여밀 틈도 없이 바쁘다. 길지 않은 시간 안에 내 하루 소용되는 일들을 다 해 놓아야 한다. 지성을 다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의 일은 나에게서 끝나지 않는다. 또 나와 처지가 같은 사람에게로 가서 나에게 하는 그 정성을 쏟는다. 워낙 몸과 마음에 밴 일이라 어디서나 손길이 익다. 나에게 와서 임무를 다하고, 자리를 옮겨 한 번 더 되풀이하는 것이 자기 생활의 리듬이 되어 있다.

내가 그 리듬을 깰 때가 있다. 주중 어느 한 요일은 나에게 질고를 뛰어넘어 생기 찬 날이 된다. 글을 좋아하는 이들과 만나 글 속에 담긴 삶의 희비와 고락을 즐겁게 나누는 날이기 때문이다. 이날에 대한 기다림이 내 한 주를 힘내어 살 수 있게 해준다.

그날이 되면 나는 활기에 넘치지만, 그는 불편을 겪어야 한다. 나의 그 즐거움 때문에 그는 자신의 생활 스케줄을 조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먼저 일과 나중 일을 바꾸어야 하는 것은 물론, 양쪽 시간대도 다시 설정해야 한다.

어느 날 그가 웃으며 했다. “그냥 가만히 계시면 안 돼요? 그러면 아무 일 없을 텐데…….” 내가 말했다. “그러면 좋을까요? 그런 날도 없이 가만히만 있다 보면, 저를 돌봐주시기가 더 힘들 수도 있지 않을까요?” 하고 나도 웃었다.

맞아요. 괜히 해본 소리예요. 기대할 게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인가요? 그 바람에 힘을 내실 수 있다면 저에게도 좋은 일이지요. 일 좀 바꾸는 게 뭐 대순가요?” 하며 환한 미소를 짓는다. “고마워요. 그 마음 때문에 저는 외로운 것도 아픈 것도 잊고 살잖아요.”

순간, 그의 눈동자에 이슬이 반짝이는 듯했다. 내게로 옮아 오는 듯도 했다. 그의 불편을 딛고 내 즐거움을 누리는 것 같아 민망스럽기도 하지만, 그렇게 안아주는 너그러움이 있기에 나는 불행 속에서나마 작은 행복을 누릴 수 있어 고마울 따름이다.

어느 공립 도서관 평생교육 과정의 하나로 수필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글 속에 깃들인 삶을 서로 나누어 온 지도 수년이 흘렀다. 그동안 많은 이들과 만나고 헤어지고 했지만, 모두 마음도 글처럼 순수하고 아름다워서인지 그들과 함께 울고 웃는 일이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이 되고 있다.

그들을 만나 들려줄 이야기며 들을 마음을 준비하면서 그날을 기다리다 보면 신고身苦도 심고心苦도 나의 것이 아니게 여겨질 때가 많다. “기다릴 게 남아 있는 사람은 / 행복한 사람이다.”(김원호, 행복한 사람)라고 한 어느 시인이 말이 돌아보인다.

저 노을처럼 저문 삶을 살고 있는 내가 무얼 더 바랄 게 있을까. 그런 가운데서도 아침마다 기다리는 희망의 문소리가 있고, 글로 함께 마음 나눌 사람들을 기다릴 수 있는 날이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참 행복한 일들이다.

시인의 말은 이어진다. “설사 그 기다림이 / 기다림으로 끝나버린다 해도 / 저문 길목에 서서 / 보고 싶은 얼굴을 기다리며 / 작은 소리 하나에도 귀를 열고 / 숨죽이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그렇다. 기다림만으로 끝나도 괜찮다. 기다리기만 하다가 세상을 바꿀지라도, 기다림은 희망을 주고 그리움을 남기지 않는가. 크지 않아도 된다. 화려하지 않아도 좋다. 소소한 기다림이면 어떤가. 어쩌면 그런 소박한 기다림이 더 소곳하고 아늑할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기다리며 살고 있는 그 기다림들은 어느 때가 되면 나를 떠나거나, 내가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 아직 오지 않은 때는 나의 것이 아니다. 나의 때도 아닌 걸 왜 미리 기다림으로 두어야 할까. 그때는 그때대로 오롯한 기다림이 있지 않으랴.

오늘 기다림은 나의 할 일이다. 나의 둘레에는 좋은 사람들이 있다. 그 기다림과 좋은 사람이 주는 희망이 있다. 임마누엘 칸트가 말했다지 않는가. ‘할 일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희망이 있다면 행복한 사람이라고.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기다림이 있으므로. (202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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