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싶다

 

아내는 살고 싶어 했다. 잘 살고 싶었다. 마당 텃밭이 좁다며, 사는 집이 편하지 못하다며 마음에 안 차 했다. 왜 그리 욕심이 많은가. 상추만 길러 먹을 만한 밭이면 족하지 않은가. 집이 좀 좁고 누추하면 어떤가. 얼마나 오래 살 거라고 그리 힘을 들이려 할까. 아내의 욕심에 나는 가끔 딴죽을 피우기도 했다.

어디 남의 쉬고 있는 땅이라도 있으면 찾아가 그 땅을 쪼아 무어라도 심고 갈았다. 잘 가꾸든 못 가꾸든, 푸성귀가 자라든 풀이 무성하든 그저 심고 갈고 싶어 했다. 벽돌로만 얇게 쌓아 지은 집 말고, 콘크리트 옹벽에 철근을 넣어 집을 지어볼 수 없을까. 추위도 더위도 걱정 없는 집, 마당 넓은 집에서 살아볼 수 없을까. 그런 집을 짓고 싶어 했다.

드디어 아내의 꿈이 눈앞에 이르렀다. 대출도 좀 내고, 아이들 도움도 받아 가며 전답 하나를 손에 넣었다. 마침 동네를 흐르는 강에서 하상河床 준설 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거기서 나온 모래며 자갈을 받고, 주문한 흙으로 땅을 돋우어 반쪽은 밭으로, 반쪽은 대지로 만들었다.

밭에는 깨며, 들깨, 콩 들을 심고, 대지에는 아내가 원하는 대로 두꺼운 옹벽 집을 짓기 시작했다. 밤낮이 바뀌기를 거듭하는 사이에 밭에는 작물들이 자라고, 대지에는 철근 옹벽이 서기 시작했다. 이삼 년이 경과하면서 밭은 무성해지고 집은 제 형체를 이루어 갔다.

그런 것들에 비해 아내의 몸은 자꾸 쇠약해져 갔다. 일에 힘이 들기도 했겠지만, 평소에 가끔씩 앓아누울 정도로 건강 상태가 그리 튼실하지 못했다. 거기다가 자기가 하는 일을 내가 잘 이해해 주지 못한다고, 내가 하는 일을 아내가 그리 반기지 않는다고 가끔씩 다투기도 한 것이 마음의 짐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아내는 점점 잦아드는 듯한 건강 때문에 오히려 괜찮은 경작지며 쓸모 있는 집을 가지려 했음이 분명하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가지게 되면 건강도 좋아질 거라는 막연한 믿음을 가졌던 같다. 그래서 일에 더욱 열성을 부렸는지도 모른다. 아내는 잘 살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혼자서, 때로는 나와 같이 지역에서 무슨 진료를 잘한다는 병원 의원들을 들락거리기도 하고, 아이들이 사는 대도시의 큰 병원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한의든 양의든 가리지 않고 진료를 받고, 한약이든 양약이든 그 처방을 마다하지 않았다. 아내는 살고 싶었다.

그런데 병원의 의사며 기계들은 아내의 병통을 분명하게 짚어 내지 못했다. 내가 속을 너무 썩여 얻은 심통心痛 때문에 병명도 명확히 잡을 수 없는 환우에 빠진 건 아닐까. 마침내 아내는 아이들 집으로 거처를 옮겨 긴 와병에 들어가야 했다.

아내는 나와 함께 반세기 가까운 세월을 살아오는 사이에 갖은 고초를 참 많이 겪었다. 아이들 키우랴, 살림살이 건사하랴 하는 일들은 남들이 다 하는 일이라 치더라도 나와 아내의 잘 맞지 않는 상념들 때문에 다투기도 많이 했던 고통이 가장 컸을지도 모른다. 순전히 나 때문에 내가 그 병통을 앓고 있는 것 같았다.

아이들 집에서 병원을 오가며 병과 싸우고 있던 아내는, 그러기를 달포가 되어 가던 어느 날부터 집의 무슨 열쇠며 통장은 어디에 있고, 무슨 문서는 어디에 갈무리해 두었다며 잘 찾아 챙기라는 말들을 자주 했다. 나는, 당신이 나아서 오면 될 일을 그런 걸 왜 나에게 말하느냐고 했다.

또 어느 날은 전화하여 자기가 어떻게 되면 아이들에게는 무엇을 어떻게 해주고, 무슨 일은 어떻게 처리하라는 말들을 했다. 문득 겁이 났다. 아내는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걸까. 빨리 나아서 돌아와야지 무슨 말을 하느냐며 소리를 높였다.

당신이 돌아오기만 하면 내 이 세상에서 가장 착한 사람이 되어 당신 말을 아주 존중하겠다며 어서 낫기만 하라 했다. 아내도 나아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몸이 자꾸 말을 안 들으니 어찌하면 좋으냐며 목메어 했다. 참 살고 싶다 했다.

나는 죽고 싶었다. 아내를 사경에 이르게 한 내가 어찌 살아 있으랴 싶기도 했지만, 아내 없이 사는 내 모습이 도무지 상상되지 않았다. 그건 다른 곳, 어디 먼 나라 사람 일일지는 몰라도 전혀 나의 일일 수는 없다. 하루를 먼저 가도 내가 먼저 가야지, 아내가 먼저 가다니, 그게 될 말인가. 아내가 세상을 바꾸기 전에 내가 꼭 먼저 가야 한다.

아이들의 손길을 부여잡고 누운 지 두 달이 되어 가던 어느 날, 아내는 아이들의 손길도 이 세상의 줄도 느닷없이 놓고 말았다. 내가 달려갔을 때 아내는 체온이 이미 다 빠져나간 뒤였다. 눈을 감은 아내의 손에 좋아하는 포도가 들려 있었다고 했다. 아내는 끝까지 명줄을 놓으려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죽어야 할 일이었다. 아내는 자기가 심은 들깨가 무럭무럭 자라 무성하게 우거져 있는 밭도 뒤로 하고, 도색만 하면 짓기도 끝나는 집에 한 번 누워 보지도 못하고 눈을 감았다. 아내가 그리 원하던 걸 내가 보고 있을 일이 아니었다. 아내 대신 내가 한 항아리의 재가 될 일었다. 무참히도 내가 살아남고 말았다.

아내의 살고 싶음은 무엇인가. ‘죽어 감이었다. 그렇기에 죽음을 물리치려고, 살아보려고 그토록 애를 썼던 게 아니었을까. 나의 죽고 싶음은 무엇인가. ‘살아 있음이다. 살아 있기에 죽고 싶은 게 아닌가. 살고 싶은 사람은 그리 애처롭게 죽어 가고, 죽고 싶은 사람은 이리 서럽게 살아남았다.

살고 싶음의 아내여! 그쪽 세상에서 그 삶 잘 이어가고 있는지? ‘죽고 싶음의 나는 왜 이리 아프게 살아 있는지? 살고 싶음의 죽어 감이여, 죽고 싶음의 살아 있음이여~!(2023.9.1.)

                                                                      

 

혼자 돌아왔다

 

돌아와 달라고 애절하게 빌었건만, 오히려 나를 불렀다. 달려갔던 나는 혼자 돌아오고야 말았다. 돌아와 주기만 하면 내가 아주 딴사람이 되어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나의 애끊는 호소는 허공중에 무참히 흩어져 버렸다.

바쁜 일이 있더라도 아이들 전화는 잘 받아 달라던 부탁이 나에게 한 마지막 말이 될 줄이야. 당장 당신에게 달려가고 싶다고 했지만, 그러지는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 말만 믿고 나는 내 볼일을 천연하게 보고 있었다.

당신의 부탁대로 아이들의 전화를 잘 받았지. 그런데 이게 무슨 산산조각 깨어져 내려앉는 하늘 같은 일이란 말인가. 내가 달려갔을 때 당신 체온은 이미 빠져나가 버리고, 감은 눈에 앞니 하얀 끝자락만 살포시 보여주고 있었지. 오랜만에 만나는 나에게 짓는 미소였던가.

아이들 곁으로 가서 아이들 손길을 부여잡으면서 세상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애쓴 지 두 달이 가까운 어느 날, 그렇게 세상의 끈도 아이들의 손길도 모두 놓아버렸네. 그동안 내가 한 일은 어서 돌아오라고, 잘 나아 돌아와 달라고 비는 일뿐이었던 것이 야속했을 것이네.

야속한 일이 어디 한두 가지일까. 돌아보면 평안을 주고 사랑을 안겼던 일은 별로 한 게 없이, 살이의 모든 짐을 지우고 속만 끓게 하였으니 얼마나 답답하고 원망스러웠을까. 병원의 기계들조차 집어내지 못하던 그 병통은 모두 내가 만든 것만 같으니 어찌하면 좋은가.

엄마, 엄마~!’ 피 끓는 목소리로 당신을 부르며 자지러질 듯 당신 품에 엎어져 통곡하는 남매 아이들의 울음소리도 모두 내 탓인 것만 같아 나는 차라리 눈물을 욱여넣어야만 했네. 우리 살아오는 동안 당신 향한 내 가슴과 손길이 조금만 더 따뜻했어도 아이들 이리 목놓아야 할까.

숱한 원망을 품고 갔을 당신, 나에게 남은 회한은 어찌하면 좋은가. 꽃 장식에 싸인 당신은 관으로 들고, 관 위에 장례지도사가 무어라 한 마디 적으라 하데. 가슴에 엉긴 말을 어찌 다 풀어 놓을까. ‘미안하오, 편히 가시오이렇게밖에 적을 수가 없었네.

그 시답잖은 한마디 말로 당신 가슴의 응어리가 어찌 다 풀어질 수 있을까. 그래도 관 속에 들 때 당신 얼굴은 주름살 하나 없이 입술연지를 빛내고 있었지. 속은 나에게 대한 원망으로 끓고 있었겠지만, 남은 붙이들을 위해 마지막 선물로 주고 간 것인가.

그렇게 염습, 발인제를 거쳐 한 항아리의 재가 되어 납골에 삼우제, 성분제라는 세상의 절차를 거쳐 당신은 떠나갔지. 그 몇 절차로 당신은 홀연 떠났지만, 아이들과 내가 헤쳐가야 할 숱한 이 세상의 절차는 또 어찌해야 하는가. 그 절차 어떻게 헤쳐가며 살아야 하지?

당신의 절차를 다 끝내고 조문객들의 위로와 당부를 잔뜩 안고 나는 돌아왔네, 혼자서 돌아왔네. 모든 것이 그대로인 집에 나 혼자 돌아왔네. 밤이 되어 잠을 자고 아침이 오고 일어났네. 그 아침도 어김없이 나에게 오데. 야속하게 오데.

연전에 친구 부인이 친구를 두고 급작스레 떠났을 때, ‘장자(莊子)는 노자(老子)가 죽어 문상 간 진일(秦佚)의 이야기를 앞세워, 죽음도 삶도 자연현상에 불과한 것이니 죽음 앞에서 울고불고할 것 없이 편안히 여겨 자연의 도리에 따르면, 기쁨이나 슬픔 같은 감정이 끼어들 수가 없다고 했다.’라는 말과 글로 친구를 위로해 준 적이 있다.

이 얼마나 허망한 말이었던가. 위로랍시고 하는 내 말을 친구가 어떻게 들었을까를 생각하니 얼굴에 화기가 솟는다. 친구여, 사과한다. 친구의 아내, 내 아내의 죽음이 무슨 자연현상이란 말인가. 불시에 간 친구 아내며, 병통 애통 속을 떠난 아내가 과연 자연현상인가.

그게 자연현상이라면 얼마나 원망스러운 자연이고, 얼마나 한탄스러운 현상인가. 진리며 명언이란 겪어보지 않고 당해보지 않은 사람들, 그런 한가한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것인가. 그저 머리로만 짜낸 허언으로 중생들을 현혹하는 것은 아닐까.

장자가 처의 주검을 앞에 두고 동이를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다고? 그게 사람으로 할 짓인가. ‘하늘과 땅이란 거대한 방 속에서 편안히 잠들고 있는 것을 축복하는 것이라고? 그게 무슨 축복이고 달관이란 말인가. 허망하고도 서럽다.

지금쯤 아내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내가 있는 곳은 슬픔도 괴로움도 없는 곳이겠지. 애탐도 속 끓임도 없는 곳이겠지. 누가 있어야, 무엇을 볼 수 있어야 괴로워하든 속을 끓이든 할 게 아닌가. 그저 편안하게만 있을까. 아내는 그 편안한 세상을 찾아간 걸까.

그래서 성인은 당신 아내의 죽음을 두고, 세상 천지간에 편안히 잠들었다.’ 한 건가. 그걸 두고 자연의 도리요, 자연현상이라 한 건가. 그랬구나. 아내는 그 도리 속으로 갔구나. 아무도 없고, 무엇도 안 봐도 되어 속 끓일 일도 없는 편안한 곳으로 훌쩍 떠났구나.

그렇게 아내는 속 끓일 사람 없는 편안한 곳으로 떠났다. 서러운 이승의 집에 나 혼자, 혼자만 돌아왔다.(2023.8.20.)

                                                                      

 

가요무대』를 보며

 

가요무대는 많은 시청자로부터 사랑을 받아오고 있는 아주 오래된 정통 가요 프로그램이다. 무대를 통해 방송하는 가요들은 애틋한 추억에도 빠져들게 하고, 가슴 뭉클한 향수에도 젖게 하고, 사무치는 그리움에 에어지게도 하고, 또 어떨 때는 어깨 절로 들썩이게 하는 흥겨운 가락으로 시름을 씻어주기도 한다.

그런 가요를 들으며 사람들은 흘러간 날의 추억과 사람, 그 그리움에 젖어 보기도 하고, 마치 그리운 사람을 마주하고 있는 듯한 환영에 싸여 보기도 한다. 학창시절로 돌아가 풋풋한 친구들과의 우정 놀이에 빠져 보기도 하고, 첫사랑의 그림자에 아늑히 안겨 보기도 한다. 손뼉으로 함께 흥을 맞추며 살이의 고달픔을 잊어 보기도 한다.

가요무대는 그런 노래만 고른다. 그렇게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면서 잊고 살던 아름다운 일들을 떠올리게도 하고, 우울에 잠겨 있던 마음을 은근하고도 흥겨운 가락으로 달래주기도 하고, 다가올 날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품게도 해준다. 그런 노래들을 모아 들려주려고 하는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가요무대가 오늘은 왜 이리 부담스럽기만 한가. 어떤 노래가 나와도 아름다운 추억을 떠올려 주는 것이 아니라 잘못 산 날들의 굴절된 기억을 긁어내는 것 같고, 위안을 주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산산조각으로 무너뜨리는 것 같고, 흥을 돋우어 주는 것이 아니라 어지러운 심정을 더 어지럽게 비트는 것 같기만 하다.

아무리 아름답고 흥겨운 가락도 저들만의 한바탕 걸판진 놀이일 뿐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 같고, 템포가 빠르거나 느리거나 가락이 애절하거나 흥에 겹거나 나는 그런 것에서 점점 소외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이런 노래들을 내가 왜 듣고 있어야 하는가. 꺼버린다. 눈을 감는다. 더욱 깊숙이 따돌려지는 것 같다.

아내가 집을 떠난 지 달포가 넘은 어느 월요일 밤, 누워서 가요무대를 보다가 몇 곡 못 들어서 꺼버렸다. ‘전국 가요 기행을 한다고? 그래서 서울 대전 대구 부산을 찍고 임을 찾아간다고.? 서울 종로에다 사과나무를 심는다고? 거리마다 푸른 꿈이 넘친다고.? 아내는 지금 병상에 있는데, 무슨 꿈이 넘친다는 말인가!

장충단 공원 안개 속으로 누구를 찾아와? 신사동 그 사람이 어떻다고? 아이들의 손길을 힘들게 부여잡고 환우 속을 헤매고 있는 아내를 저들이 알까. 알면서 이런 노래들을 부를 수 있을까. 그렇구나. 세상은, 그 속의 인심은 나와는 아무 상관 없이 돌아가고 있구나. 이 노래들이 이렇게 사람을 고단하게 하는구나.

병원의 기계들은 아내의 환부를 딱 잘라 짚어내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아내는 자꾸 여위어져 가고 있다. 몸도 마음도 움직임이 점점 어려워져 간단다. 모두 내 탓이다. 우리는 서로 보듬기 어려운 삶을 살아온 것 같다. 내가 가진 세계를 아내는 껴안기가 어려웠고, 아내의 심사를 받아들이는 일에 나는 적극적이지 못했다.

오늘도 아내는 남매 아이들의 손길 속에 누워 있다. 내가 아내에게 좀 더 따뜻하게 손과 가슴을 내밀었더라면, 아내가 아이들의 손길을 받고 있어야 할까. 나는 지금까지 아수라도의 세상을 살아온 것 같다. 아니, 내가 아내를 아수라도 속을 살게 한 것 같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그 고통이 아내의 병통이 되게 한 것 같다.

이제부터는 오직 당신만을 바라보며, 당신의 마음 모두를 내 마음으로 만들며 살겠노라는 내 간곡한 말은 지옥도, 축생도에서 지르는 내 애절한 비명일지도 모르겠다. 나의 이기적인 집착과 무정이 아수라의 세계, 지옥의 세계를 만들고, 내가 만든 그 세계에 아내도 빠져 아귀도 같은 삶을 살아온 건 아닐지 모르겠다.

가요무대가 무슨 죄랴. 내가 만든 세계가 마음을 아수라로, 지옥으로 빠뜨리니, 그 아름다운 노래들조차 비명처럼, 비소처럼 들렸을 뿐인 것을-. 나는 지금 이승에서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 나는 삼악도三惡道 속을 헤매고 있는가. 그 속을 어찌하면 벗어날 수 있을까.

아내여, 마음 편해 해주오. 때늦긴 하오만은 내 모든 집착과 이기를 버리고 청정해지려 하오. 청정해질 것이요. 돌아오시오. 와서 보아야 청정해지려 애쓰는, 청정해진 내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 아니오? 지금 나는 당신이 비워 놓은 자리를 닦고 있소. 있는 힘을 다해 정결히 닦고 있소. 내 마음도 함께 자성을 다해 닦고 있소. 부디 속히 돌아오시오.

돌아와 즐거운 가요무대함께 들읍시다. 같이 손뼉도 쳐봅시다. (2023.8.6)

                                                                

 

나를 버린 자리로

 

고적한 한촌 생활 속에서 일주일에 한 번 금요일 나들이는 적막을 활기롭게 넘어설 수 있는 아늑한 기쁨이요, 힘줄 돋는 활력소가 되고 있다.

나의 금요일은 만남의 날이다. 오전에 집을 나서 버스를 타고 구미로 가서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도서관 수필반 회원들을 만난다. 희로애락의 사연들을 담은 수필을 함께 읽으며 문학과 삶을 이야기하며 한껏 희열에 젖는다.

그 시간이 끝나면 다시 시외버스를 타고 대구로 간다. 친구들과 정겨운 술잔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아니면 수시 연락을 통해 만나는 친구들은 먼 곳에 사는 나를 배려하여 그 만남의 약속을 나에게 맞추어 준다.

오늘도 공부를 끝내고 터미널로 나와 대구행 버스를 기다린다. 버스를 타는 재미도 쏠쏠하다. 일단 차를 타면 그 차 속은 잠을 자든 책을 읽든 사색에 들든 나의 무한 자유 공간이다. 음주 운전의 위험도 전혀 없다. 얼마나 편하고도 편리한 행보인가.

내가 기다리는 차는 청주에서부터 출발하여 온다는 5시 차다. 구미에서 시발하는 520분 차도 있지만, 잠시라도 빨리 친구들을 만나고 싶어 늘 5시 표를 산다. 이 무슨 변고인가. 5시면 구미에서 출발해야 할 차가 도중에 사고가 있어서 30분 정도 연착한단다.

속이 상했다. 차라리 520분 표를 사기보다 못하지 않은가. 먼 데서 오는 차라 몇 분쯤 연착할 때는 있었지만, 무려 반 시간이나 연착한다는 것은 용납할 수가 없다. 다가오는 약속 시각이 초조를 회오리치게 한다. 차가 도착하면 기사에게 따져 보기라도 해야 할까.

드디어 차가 도착했다. 내가 타면 앞서 탄 승객이 기사에게 따지고 있을 것이다. 차를 탔다. 잠잠했다. 무어라 하는 사람이 이상하게도 아무도 없다. 정시에 타고 예사롭게 가는 승객들처럼 모두가 묵묵했다. 속을 상해했던 내가 오히려 이상한 건가.

그랬구나, 모두 기사의 사정을 이해들 하고 있구나. 기사인들 연착하고 싶어 했을까. 불가항력적이다 보니 그리되었을 것이다. 아니, 기다리는 승객을 생각하면 기사도 마음이 편안했을까. 그 마음조차 사람들이 잘 헤아리고 있는 모양이다.

요즘 세계 일도, 나랏일도, 사회 일도 참 시끄럽다. 서로의 사정은 내쳐버린 채 전쟁을 일으키고, 정쟁을 일삼고, 살벌하게 다투고 있다. 이 모든 일이 남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모두 내가 탄 버스 승객들의 마음 같다면 이런 일들이 일어날까.

지금 아내는 병고 속을 힘겹게 헤매고 있다. 반세기 가까운 생애를 함께 살아오는 사이에 아내 속을 참 많이 썩였다. 지금 아내의 병이 모두 나 때문에 생긴 것 같다. 아내의 마음을 잘 안아주고 보듬어 주었더라면, 아내가 이런 고통을 겪을까.

아내와 나는 상념의 세계가 너무 다른 것 같았다. 이상이 맞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서로 그려지는 세계가 다르기에 십상이었고, 다정하게 대화하기보다는 다투기가 쉬웠다. 그게 오랜 세월 쌓여 오는 사이에 화가 되고 병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차를 타고 가며 아내를 생각한다. 왜 한발 물러서지를 못했던가. 왜 먼저 포용의 가슴을 내밀지 않았던가. 왜 욕심을 줄이지 못했던가. 물러선 발길 속에, 내민 가슴 속에, 줄인 욕심 속에 왜 아내를 담지 못했던가.

내가 모르고 살던 것을, 아니 알려 애써보기도 별로 하지 않았던 것을 이 차 안에서 새삼스럽게 발견한다. 그리 연착된 차 시각도 이해하면 아무렇지도 않게 되는 것을, 마음을 열어버리면 속에 다 들어오게 되는 것을.

기사에게도 제힘으로써는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듯, 아내에게도 자기만의 세계가 있고, 어찌할 수 없는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 아내를 이 승객들 마음으로 대했다면, 그렇게 안아주었다면 아내 가슴 속에 그리 화가 맺혔을까. 그리 병이 되었을까.

아내여, 어서 일상으로 돌아오오. 이제 모든 것을 품으리다. 당신의 모든 것을 받아 안으리다. 그동안은 내가 너무 편협하고 옹졸했소, 이 때늦은 뉘우침이 당신을 돌아오게 하는 데 무슨 도움이 되겠소만, 이 정은 내치지 말아주오.

자기를 버리기에 자기가 있게 되니, 사사로움이 없기에 나를 능히 이룰 수 있지 않으랴. 外其身而身存 非以其無私邪 故能成其私(老子 道德經7)라는 말은 읽으면서도 얄팍한 가슴으로만 읽었던 이 올곧잖은 일을 너그러이 품어주기를 간곡히 바라오.

차는 지급 계속 달리고 있소, 자기 속을 버린 그 묵묵한 승객들과 함께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소, 좀 있으면 목적지에 도착할 것이요, 어쩌면 나를 비운 사람이 되어 내릴 나의 목적지일지도 모르겠소. 나를 버린 곳에 앉힐 당신이 자리-.

그곳으로 당신 어서 오오. 간절히 기다리겠소-.(2023.7.23.)

                                                                      

 

소원이 있다면

 

오늘도 산을 오른다. 푸르고 싱그러운 나무를 본다. 살 만큼 살다가 강대나무가 되고 고사목이 되어 쓰러져 누운 것도 보이지만, 산은 푸르고 울창하다. 하늘 향해 한껏 잎을 떨치고 있는 이 나무들이 있기 때문이다.

저 나무들의 소원은 무엇일까. 오직 하늘을 향하는 일이다. 하늘이 내려주는 빛을 타고 하늘에게 좀 더 가까이 오르는 것이 나무들의 가장 큰 소원일 것이다. 그 소원을 부여안고 열정을 태우다가 그 원이 다했다 싶을 때 서서히 내려앉는다.

나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가. 나에게도 소원이 있는가. 어떤 소원이 얼마나 있는가. 한때는 바라는 것이 크고도 많았고, 해내고 이루고 싶은 것도 적지 않았다.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기도 하고, 바라기만 하다가 말고 하는 사이에 세월이 흘러갔다.

황혼을 껴안고 있는 세월 앞에까지 왔다. 이 세월이라고 바라고 이루고 싶은 것이 어찌 없으랴만, 예전 같지 않다. 소원으로 담을 것들이 그리 많지 않다. 이루고 싶은 것이 쌓이는 세월에 반비례라도 하듯 점차 줄어들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무가 하늘을 향하는 소원이 다 했다 싶을 때는 내려앉는 것처럼 나도 세상에서 내려서야 할 때가 다 되어간단 말인가. 누구는 이런 상념에 젖는 나를 보고, 얼마나 살았다고 그러느냐 할지 모를 일이지만, 사람마다 타고난 명줄의 행보야 누가 아는가.

나무는 제 하늘을 누릴 만큼 누렸다 싶거나, 제가 누릴 수 있는 하늘이 별로 없다 싶을 때 서서히 숨을 거두어 간다. 그건 체념이나 절망 같은 것이 아니라 하늘의 뜻, 자연의 이치를 따르는 것일 뿐이다. 숨 달린 모든 것은 무릇 그 뜻과 이치를 어찌 벗어날 수 있으랴.

지금 나에게 절박한 소원이 하나 있다. 병약한 아내가 건강을 회복하여 하루빨리 일상으로 돌아오는 일이다. 또 하나 품고 싶은 소원이 있다면, 그건 바로 멀지 않은 날에 자연사를 성취하는 일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소원일지 모른다.

내 힘으로 이루기 어렵거나 이룰 수 없는 소원을 감히 품고 있다. 아내의 건강에 대한 소원도 그렇지만, ‘자연사라는 게 자연이 할 일이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던가. ‘멀지 않은 날을 바라는 것도 오로지 나의 원일 뿐이다. 내가 정할 수 있는 날도 아니지 않은가.

좋은 날 편안한 때에 깊이 든 밤잠을 이어가듯 그렇게 가면 좋겠다. 장관까지 지낸 어느 명사도, 한 생애를 찬란히 풍미하던 인기를 누리며 만인의 심금을 울렸던 어느 예인도 그렇게 가지 않았던가. 그들처럼 살지도 못한 주제에 그런 종언을 바란다는 게 민망은 하지만.

왜 그 멀지 않은 날을 바라는가. 타고난 내 생애에서 내가 걸머져야 할 일은 거의 다 한 것 같다. 내 힘이 미칠 수 없는 일은 비워내야 한다. 욕심을 내봤자 더 나은 일을 할 수도 없다. 지금부터의 삶은 덤에 지나지 않은 것 같다. 덤이란 지나쳐서는 안 된다.

멀지 않은 날의 내포에는 이런 상념도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아내보다 먼저 가고 싶다는 것이다. 옹졸한 이기심일지 모르지만, 이 배고 한이 서려 있을 유흔을 내가 정리하고 있는 모습이란 상상하기조차 끔찍한 일이다. 내가 무엇을 어떻게 갊을 수 있으랴.

또 하나 소이연이 있다면 아내를 너무 힘들게 했다는 것이다. 아내는 지금 나와 함께한 생애로 인해 병구를 이끌어 가고 있다. 때늦은 내 뉘우침으로 치유될 수 있을까. 그러기를 바라며 심정을 다 모으고 있지만, 짐을 덜어주는 것도 치유의 한 방편이 되지는 않을지.

부질없다. 하나도 내 힘과 뜻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일을 이리 소망하고 있다니-. 내 심정이 아내를 치유케 해줄 수 있을 것이며, 누가 멀지 않은 그 날을 나에게 가져다줄 것이며, 영원히 깨지 않을 그 편안한 잠을 이루게 해줄 수 있단 말인가. 허공을 젓고 있다.

나무는 하늘 바라기로 살고, 사람은 소원, 소망으로 살지 않는가. 마지막일 듯한 이 소원을 위해 간절히 기구를 모으며 살아 보련다. 간절하다 보면 이루어질 수도 있지 않으랴. 이 소원마저 내가 버리거나, 소원이 나를 버린다면 내 숨줄을 내가 다스리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내 속에는 그럴 힘과 용기가 있는 것 같지도 않다. 다른 무엇이, 누가 내 소원을 이루어 주기를 바라며 산다는 것이 채신없고 체면 모르는 일일지 모르지만, 이 소원 아니면 무엇을 잡고 살아야 하랴. 그래도 아내의 건강 회복을 다시 빌어 본다. 무엇을 더해야 할까.

고즈넉이 누워있는 마른 나무와 더불어 소망을 보듬으며 산을 내린다.(2023.7.14.)

                                                                    

 

공수거를 바라며

 

오늘도 산을 오른다. 숲이 한창 우거지고 있다. 엊그제만 해도 가냘픈 가지에 연록 잎을 내밀고 있던 것이 오늘은 튼실해진 가지에 우거진 녹음이 되어 오르는 길을 문득 막아서기도 한다. 나무가 이렇게 우거지다가는 산이 어떻게 될까.

산이 온통 풀과 나무 천지가 되어 내가 발을 들여놓을 틈도 없을 뿐만 아니라, 나무 아니면 아무것도 들 수 없고 마침내는 나무들도 설 자리, 살 자리가 없어 결국이 숲이 망하고, 산이 황폐해지지 않을까.

물론 기우다. 나무는 작은 씨앗으로 땅에 떨어져서 움이 나고 자라 잎을 돋우고 꽃을 피우면서 살아간다. 나무는 안다. 철을 맞이할 때마다 무엇을 달리해야 하고 얼마를 자라야 하는지를 안다. 그렇게 철을 거듭하려면 무엇을 가꾸어야 하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도 안다.

그리하면서도 무한정 살려 하지는 않는다. 살 만큼 살았다 싶으면 선 자리에서 그대로 숨줄을 놓는다. 하얗게 강대나무가 되어 가다가 불어오는 바람결을 지고 그 자리에 눕는다. 비바람 세월에 몸을 녹여 제 태어난 흙으로 든다.

그냥 흙으로 드는 게 아니다. 살아서도 갖은 생명체들의 쉴 곳이 되어주던 나무는 숨줄을 저세상에 준 뒤에도 뭇 짐승이며 미물, 팡이실에까지 아늑한 보금자리가 되어 마지막 한 세포까지 다 빼주고는 소리 없이 흙이 된다. 말 그대로 공수래공수거다.

젊을 때 원양어선을 타면서 번 돈으로 건설회사를 세우고, 평생을 두고 열심히 일하여 부를 일군 어느 사업가가 만년에 이르러 가진 재산 대부분을 모교에 기부했다고 한다. ‘수의에는 호주머니가 없다.’라며 그리했다 한다.

기부를 받은 사람들에 의하면, 점퍼 차림으로 산책하듯이 찾아와서 선뜻 거액의 수표를 건네는 모습이 기부가 취미인 것처럼 편안해 보이더라 했다. 재산만 내놓은 게 아니라 살면서 가져온 갖은 사심까지도 다 내놓은 모양이다. 공수래공수거를 몸으로 보여준 것 같다.

공수래공수거 空手來空手去라는 말을 다시 돌아본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그 빈손이란 무엇이 비어 있다는 말인가. 그 말의 함의含意는 지극히 물질적인 것에만 매몰되어 있는 것 같다. 태어날 때도 아무 재물, 재화를 가져오지 않았고, 죽을 때도 그런 걸 못 가지고 간다는 말이 아닌가.

우리는 아무것도 안 가지고 태어나는가. 아니다. 몸과 마음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는가. 처음에는 매우 여린 몸, 아주 작은 마음을 가지고 세상에 나왔지만. 살아가면서 몸은 커지고 마음에도 많은 것들이 들어찬다.

그 몸으로 세상을 살기 위한 온갖 일들을 감당해내고, 그 마음에 세상살이의 희비 고락이며, 갖은 허실의 욕망과 애증의 번뇌를 다 담는다. 그러는 사이에 몸에는 온갖 풍파와 싸워 온 병마들이 채워지고, 마음은 삶의 고뇌에 치이면서 다단하고 번다해져 간다.

가야 할 순간이 다가온다. 그 몸과 마음을 다 두고 진실로 빈손으로 갈 수 있을 것인가. 그걸 다 두고 가는 이야말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조용히 눈을 감는 득도한 고승과 같을지도 모른다. 모든 이가 다 그런 고승이 될 수 있을까.

많은 이들은 생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이며, 아름답고 애틋한 정과 그 기억을 내려놓지 못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속진의 삶에서 얻는 울분과 분노를 마지막 순간까지도 삭히지 못해, 그걸 안고 가느라 눈도 옳게 감을 수가 없는 이도 있을 것이고, 심지어는 이를 갈면서 억지로 눈을 감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조금 가져와서는 많이도 가져가는 셈이다.

이렇게 많은 것을 안고 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많은 것 내려놓고 아주 가볍게 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며 대부분 재산을 좋은 일에 기부한 사람이 바로 그런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일 수도 있다. 그는 욕심도 번뇌도 가져갈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무를 다시 본다. 애초에 아주 작은 씨앗을 얻어 태어나 천지자연의 힘을 입어 조금씩 자라나고 커진다. 자연으로 나고 커지니 욕심이 있을 수가 없다. 커지면서도 잎이며 가지를 떨어뜨려 제 바탕으로 돌린다. 명이 다했다 싶으면 소용이 될 수 있는 곳에 모든 것을 다 주어버린다. 그래서 숲은 언제나 푸를 수 있지 않은가.

나는 무엇을 가져가게 될까. 내려놓지 못한 것이 많아 두렵다. 안고 가야 할 병마도 두렵지만, 자랑거리나 잘한 일은 별로 없이 살아오면서 저지른 허물과 잘못만 잔뜩 안고 가야할 것 같아 두렵다. 호오며 애증이든 공과든 모든 걸 씻고 빈손으로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편안히 누워 있는 마른나무를 보며 산을 내린다. 저에게도 울울창창한 시절이며 비바람 고행 세월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모든 걸 다 떨치고 저리 누워서 줄 것 다 주고 내려놓을 것 다 내려놓고 흙으로 공수거할 것이다.

죽어 다시 태어난다면 나무로 나고 싶다. 저 공수거를 바라며.(2023.6.18.)

                                                                      

 

나이 드니 참 좋다

 

오늘도 산을 오른다. 나날이 오르는 산이지만 빛깔이며 모습은 한결같은 날이 없다. 무엇이 달라도 다르다. 푸나무의 크기라든지, 나뭇잎 빛깔이라든지, 꽃이 피고 지는 거라든지, 열매가 맺고 떨어지는 거라든지 하루도 그 모양 그대로 있지 않다.

시간의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이 나무, 이 산빛에서 시간을 본다. 흘러가고 있는 시간의 얼굴이며 몸체를 본다. 맨살의 가지에서 꽃이 피고 잎이 나고 꽃이 지고 잎이 자라고 잎의 빛깔이 달라지다 내려앉고, 열매가 맺었다가 떨어지는 모습들 속을 시간이 흐르고 있다.

저들이 저리 변해 가는데, 나는 가만히 있는가. 아니다. 저들이 시간을 안고 변모를 거듭해 가듯 나도 나날이 달라져 간다. 나무가 나이테를 더해가는 것처럼, 나도 하루 이틀 시간을 더해가고 한 해 두 해 나이를 더해가고 있다.

저 잎이며 꽃들에게 흐르는 시간은 어떤 것일까. 나에게 하루하루 더해지는 시간들은 참으로 아늑하다. 그 덕분에 노도의 시간들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고, 격정으로 끓게 했던 삶의 함정에서도 헤쳐나올 수 있지 않았는가.

그때는 그리해야 하는 줄 알았다. 분노해야 하고 투쟁해야 하는 줄 알았다. 세월이 흘러가자 봄날의 눈발처럼 나도 모르게 잦아드는 것들이었다. 그 잦아든 자리에 고이는 것은 평온이 아니었던가. 돌이켜보면 모두가 시행착오요, 욕심의 덩어리들이었던 것을.

그런 것들이야 혈기 방장할 때의 일이라고 하더라도, 시간의 흐름을 따라 내 어깨에 등에 걸고 짊고 있던 짐들도 하나둘씩 내려져 갔다. 무엇이 그렇게 한 것인가. 나를 그렇게 평온으로 주저앉히고 있는 힘이 나이라는 시간의 선물이 아니고 무엇인가.

지금 나는 생애 최대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 앞으로 나에게 어떤 자유가 더 주어질지는 알 수 없지만, 내 자유는 지금 삶에도 죽음에도 별로 구애받고 싶지 않은 데까지 와 있다. 아무리 백세시대라지만 망팔쇠년도 한참을 지난 시간 속을 살고 있음에야 적잖이 살지 않았는가.

유엔이 정한 연령 기준*에 의하면 아직 나는 중년(middle-aged)이라 할 수 있지만, 노년(senior)이 그리 멀지만도 않다. 이쯤이면 삶에 그리 욕심내지 않아도 될 것 같지 않은가. 설령 지금 좀 욕심이 남아 있다 할지라도 나달이 가는 사이에 사그라들 욕심 아닌가.

당해 봐야 알 일이라 하더라도, 나에게 난치병 불치병이라도 와서 말기적 증세가 나를 거두려 한다면, 곱게 내 숨줄을 내어주고 싶다. 그래서 수년 전에 사전연명의료의향서라는 것도 국립 기관에 등록해 놓고 있는 터다.

다만, 나를 돌보는 이에게 빌고 싶은 게 있다면 진통제는 좀 고급으로 써 달라는 거다. 어느 명사, 어떤 예인의 마지막처럼 할 일, 즐길 일 다 치른 이튿날 아침, 밤잠 이어가듯 곱게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그게 아니면 의약의 힘을 빌려서라도 편안히 가고 싶은 게 내 마지막 욕심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내가 마치 탈속이라 한 듯 모든 욕심을 다 내려놓은 것은 아니다. 여윳돈이 있으면 적금이라도 조금 들고 싶다. 세상의 명암을 달리하는 그 순간까지 주머니가 비어있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계 관리나 부의 축적을 위해서가 아니다.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다. 하릴없이 폐를 남기게 될지라도 그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다. 내 생애 마지막에 이르러 나를 거두어야 할 이는 물론 나의 붙이들이겠지만, 살아오면서 잘해준 것도 없는 그들에게 내 행보의 짐을 어찌 고스란히 지울 것인가.

또 하나 버리지 못할 욕심이 있다면, 반평생 남아 글을 써왔다 하면서도 이렇다 할 글 한 편 제대로 못 남겨 온 것 같다. 숨줄을 저세상에 얹을 때까지라도 마음에 드는 글 하나 쓰고 가고 싶다. 세상에 남겨지기를 바라서가 아니라 내 희열을 얻고 싶어서일 뿐이다.

이렇듯 정리하지 못한 욕심도 있지만, 다른 일에는 별로 큰 미련이나 집착이 없다. 나는 지금 어깨도 가슴도 참 가볍다. 이 가벼움은 무엇이 가져다준 것인가. 그게 바로 나이가 아니던가. 박경리 소설가가 운명하기 몇 달 전에 ……늙어서 이렇게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라 했다는 말이 공연히 한 말이 아니라는 걸 알겠다.

나에게 주어진 세상이 다하는 날까지는 나는 계속 나이가 들어갈 것이다. 점점 홀가분해질 일밖에 남지 않았다. 그렇게 홀가분해지다 보면 어느 날엔가 날개가 솟아 푸른 하늘 속으로 훨훨 날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새 노래하는 푸른 시간의 얼굴을 보며 가벼운 걸음으로 산을 내린다.

나이 들어가는 것이 참 좋다.(2023.6.4.)

 

*UN이 정한 평생 연령 기준

1) 미성년자(underage) : 0~ 17, 2) 청년(youth) : 18~ 65, 3) 중년(middle-aged) : 66~ 79, 4) 노년(senior) : 80~ 99, 5) 장수 노인(longlived elderly) : 100세 이후

                                                                 

 

남은 잔은 비우고 가세

 

아침이 참 눈치 없다. 원하는 사람이든 원치 않는 사람이든 가리지 않고 무차별로 찾아온다. 아침은 정녕 그런 분별을 못 하는 걸까. 기다리는 사람에겐 기꺼이 와주고, 기다리지 않은 사람에겐 슬쩍 비켜 가 주는 체면은 없는 걸까.

세상은 꽃밭 천지만도 아니고 가시밭 천지만도 아니다. 꽃밭이다가도 문득 가시밭이 다가서 오기도 하고, 가시밭인가 싶더니 저 너머에 꽃밭이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웃다가도 울고 울다가도 웃는 것이 삶이라 했던가.

꽃밭을 살 때는 내일이면 또 어떤 꽃이 필까 싶어 밝은 아침이 어서 오기를 설렘으로 바라기도 하겠지만, 가시밭만 이어진다 싶을 때는 아침이 나의 것이 되지 않기를, 그래서 고난의 한세상이 다른 세상으로 바뀌어주기를 간곡히 비는 이들도 없지 않을 것이다.

아침은 꽃밭 속을 사는 사람이고, 가시밭을 헤매는 사람이고를 가리지 않는다. 무지막지하게 온다. 꽃밭을 사는 사람이라고 더 고운 햇살을 뿌려주지도 않고 가시밭에서 신음하는 사람이라고 포근한 햇볕을 내려 쓰다듬어 주지도 않는다.

아침은 제 맘대로 와서는 제 할 짓 다 하고서 제 신명대로 떠나버린다. 익은 햇살로 세상을 내리쬐면서 한참 천지를 가지고 놀다가 짙붉은 노을이나 남겨 놓고, 바라보는 세상 사람들이야 무얼 어떻게 여기든 훌쩍 떠나가 버리곤 한다.

그 사이에 가시밭길을 가던 사람이 꽃밭으로 들어서게 되기도 하고, 꽃밭이 가시밭으로 뒤집혀 쑥대밭이 되기도 한다. 아침이 가져온 일들일까. 아니다. 그것은 그렇게 무엇을 뒤집어 바꿀 능력이 있는 것 같지도 않다. 아니, 그런 것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아침은 나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내가 기쁠 때도 오고 슬플 때도 온다. 내 심사하고는 아무런 상관 없이 밝고 맑은 햇살을 가져오기도 하고, 잔뜩 찌푸린 상판으로 내리기도 하고, 청승맞은 눈물을 흘리며 다가서기도 한다. 그것은 저를 바라는 이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내가 환희로울 때 밝은 얼굴로 찾아와 흥에 겨운 춤이라도 춰 주면 좋겠지. 그렇지만, 내가 쉬어 가고 싶을 때 슬쩍 좀 물러나 주고, 내가 우울할 때 같이 좀 울어도 주고, 그것은 그런 기미를 전혀 차릴 줄 모른다.

살다 보면 환히 밝은 세상에서 넓게 편 가슴으로 청량한 하늘 정기를 받게 해주기를 바라고 싶을 때도 있고, 어떨 때는 제발 나를 찾아오지 말고 이 밤 이 잠 이대로 영원히 두어 주기를 바라고 싶을 때도 없지 않다.

그래, 필요한 사람한테나 실컷 찾아가 주고, 그래서 희망도 주고 위무도 해주고 하지, 왜 바라지 않는 사람한테 구태여 찾아 이 하루를 또 고달피 살게 만드는가, 원망스러울 수도 있다. 편안하게 평화롭게 잘 살게 만들지도 못하면서 왜 꾸역꾸역 찾아오는가.

실없이 찾아와 하루를 또 살게 만든다. 저는 아무런 생각 없이 찾아올지 몰라도 저 때문에 또 하루를 겨워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들이 있다는 걸 도무지 헤아리지 않는다. 헤아리고, 않고 하는 그런 뜻을 전혀 갖고 있지도 않은 것 같다.

이젠 나도 지쳤다. 나를 전혀 돌아보지 않는 저를 바라서 무얼 어찌하랴. 나도 저를 잊어버리거나 무시해 버리는 수밖에 없다. 저야 오든 가든 내가 눕고 싶을 때 눕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주저앉고 싶을 때는 주저앉고-.

아침아, 네가 나를 모르는 체하는데, 난들 너를 알아 무엇하랴. 마음대로 오고 가거라. 나도 너랑 상관없이 가고 오련다. 살고 싶을 때 살고, 쉬고 싶을 때 쉬련다. 그런 상념 속을 비집고 이런 노래가 왜 폐부를 파고드는 걸까.

늙은 산 노을 업고 힘들어하네 / 벌겋게 힘들어하네 / 세월 베고 길게 누운 구름 한 조각 / 하얀 구름 한 조각 / 여보게 우리 쉬었다 가세 / 남은 잔은 비우고 가세”(나훈아, 세월 베고 길게 누운 구름 한 조각)

노래 한 곡이 눈치 없는 너보다 훨씬 낫다. 아무런 생각 없이 와 놓고는, 그래서 사람들을 울고 웃게 만들어 놓고는, 또 아무 거리낌 없이 가버리는 너보다는 이 노래 한 곡이 오히려 아늑한 위안거리다. 너보다 세월을 베고 길게 누운 구름 한 조각이 훨씬 고즈넉하다.

노래는 또 이렇게 이어진다.

가면 어때 저 세월 / 가면 어때 이 청춘 / 저녁 깔린 뒷마당에 쉬었다 가세 / 여보게 쉬었다 가세

그 쉼이란 잠시라도 좋고 영원이라도 좋다. 너야 마음대로 오고 가거라. 이 노래는 위안이라도 주고 있지 않은가. 아침아, 너는 무엇을 할 줄 아느냐?. 기쁨에 찬 사람에게 희열을 주어봤느냐?. 고뇌에 겨운 이에게 술 한잔 권해 봤느냐?.

너와는 모른 체하고 살련다. 그냥 살련다. 억지로 하려는 일도 없이, 안 하는 일도 없이 그냥 살면서 남은 잔이나 비우고 가련다. 야속한 아침아-.(2023.5.21.)

                                                                      

 

춘서春序

 

다른 나무는 한 달 전쯤에 꽃을 다 내려 앉히고 잎이 돋기 시작하여 벌써 무성한 녹음을 이루고 있는데, 아직도 꽃을 피워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벚나무가 있다. 그 나무 앞에 서면 꽃을 피워내기 위해 용을 쓰는 소리가 쟁쟁히 들릴 것도 같다.

강둑에 줄지어 선 벚나무는 마을의 큰 자랑거리다. 봄이 오면 어느 나무 할 것 없이 일매지게 꽃을 터뜨려 화사하고도 해사한 꽃 천지를 이룬다. 작년부터는 나무 아래 조명등을 설치하여 꽃이 피어 있는 동안은 밤낮으로 화려한 꽃 잔치를 벌인다.

꽃잎이 지고도 붉은색 꽃받침이 남아 또 한 번 꽃을 피우듯 온통 붉은 꽃 세상이 된다. 강둑을 다시 장식하면서 강물에 꽃 그림자를 드리운다. 꽃받침이 떨어진 자리에 뾰족뾰족 잎눈을 틔우다가 이내 풋풋하고 싱그러운 푸른 잎 세상을 만든다.

그렇게 다른 나무는 신록을 자랑하는 시절을 누리고 있음에도 아직 꽃을 피우고 있는 저 나무-. 둑을 새로 쌓는 공사를 하고 난 빈자리에 지난해 가을 새로 심은 어린나무 중 한 그루다. 이 애송이 나무들도 봄이 오면 꽃이 피고 잎을 돋우어 낼까.

봄이 왔다. 피우고 돋우어 냈다. 앙증맞은 꽃을 피워내고 꽃 지자 연록의 잎들을 솟구쳐냈다. 그런데 유독 한 그루만 봄을 까마득히 잊은 듯 꽃이며 잎 소식이 감감하다. 옆 나무는 벌써 푸른 잎이 돋고 있는데-. 뿌리를 내리지 못해 명을 거두어버린 것일까.

어라! 딴 나무 꽃들이 다 지고 난 두어 주일쯤 지난 뒤, 망울이 한두 개씩 부푸는가 싶더니 그 망울에서 꽃을 피워내기 시작했다. 한꺼번에 피워내는 것이 아니라 날을 두고 이 가지 저 가지에 한두 송이씩 어렵게 피워내는 것이다.

아무리 더디더라도, 철모르고 늦더라도 기어이 꽃을 피워내고야 말겠다는 듯, 다른 나무야 녹음이 우거지든 어쨌든 꽃을 먼저 피워내고서야 잎을 돋우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보이는 듯도 했다. 그것이 제가 지킬 질서라는 듯, 보고 있노라면 비장미가 솟기도 했다.

춘서春序라는 말이 있다. 봄을 맞아 여러 가지 꽃이 차례로 피어나는 걸 두고 이르는 말이다. ‘이십사번화신풍二十四番花信風이라는 말도 있다. 소한에서 곡우까지 이십사후二十四候 사이에 닷새마다 새로운 꽃이 피는 것을 알려 주는 봄바람이라는 뜻이다.

봄이 되면 모든 꽃이 일제히 피어나는 듯하지만, “봄기운에 정원의 매화가 가장 먼저 피어나고, 뒤이어 앵두, 살구, 복사꽃, 오얏꽃이 차례로 핀다. 春風先發苑中梅 櫻杏挑李次第開”(白樂天, 春風)라 하듯 피는 데도, 이렇듯 춘서가 있는 것이다.

봄이 오면 나무류에 따라 어떤 것은 꽃을 먼저 피운 후에 잎을 돋우어 내고, 또 어떤 것은 피워 낸 잎 사이로 꽃을 돋우어 내는 저마다의 질서를 가지고 있다. 봄을 서둘러 피는 것일수록 꽃을 먼저 피워낸다. 이것도 모두 저들의 생리요, 춘서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봄의 이런 질서가 자꾸 문란해지고 있다. 철없이 꽃들이 피어나기도 하고, 차례 없이 여러 꽃이 한꺼번에 피었다가 지기도 한다. 4월 초순을 넘어서서 피던 마을 강둑의 벚꽃도 해마다 꽃 피는 시기를 조금씩 앞당기는가 싶더니 올해는 3월 말에 피워냈다.

지금은 마치 성하盛夏라도 된 듯 무성한 녹음이 어우러지고 있다. 그런데도 저 나무는 지금 한창 꽃을 피워내려고 애쓰고 있다. 어차피 꽃 철은 지났으니 다른 나무들처럼 잎 먼저 피워내어 그 수액을 갈무리했다가 내년에 제대로 된 순서를 찾으면 되지 않을까.

그게 안 되는 모양이다. 미련하다 할까, 우직하다 할까. 지켜야 할 차례는 기어이 지켜내야 하는 모양이다. 그게 저의 생체적 질서라 믿는 것 같다. 정직하다 할까, 순진하다 할까. 차례를 모르고 사는 이들을 보면, 저가 오히려 미련하고 부정하다 할지 모를 일이다.

세상에는 질서를 짓이기고 사는 미련이며 부정이 얼마나 횡행하고 있는가. 오직 저만의 안일과 안전을 위하여 법질서를 마음대로 주무르고, 저들만의 이해타산을 위하여 오직 저들만을 위한 법을 만들어내어 세상을 농락하는 군상들이 활개를 치고 있지 않은가.

춘서春序가 무너지고 있는 건 지구온난화 현상 등의 이상 기후 탓이라 한다. 그런 현상이 모두 사람 탓이 크다 한다. 이렇듯 질서가 무너져 가다 보면, 세상에 어떤 재앙으로 돌아올지도 모르겠다. 제 몸을 제가 옥죄고 있는 격이다.

오직 제 한 몸 보전을 위해, 정파 이득만을 위해 세상을 쥐락펴락하다 보면, 그래서 질서고 법이고 저들 편리한 대로만 탐하다 보면 큰 화가 되어 세상을 나락에 빠뜨리지 않을지 모르겠다. 제 무덤과 함께 애먼 무덤까지 파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강둑을 걸으며 저 우직한 벚나무를 다시 본다. 옮겨온 뿌리를 낯선 땅에서 거두기가 버거워 올해는 꽃 피우기가 힘들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다른 것들보다 살이를 조금 느리게 가꾸어 가고 있을지라도 기어이 꽃을 피워내면서 제 활기를 찾고 있다.

그 순리를 몰각했다면 뿌리조차 내리뻗을 수 없었을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힘을 얻었을 것이다. 이 땅에서 제 사는 방도를 터득해 내었을 것이다. 올해 잘 지킨 춘서며 저 순리의 질서가 힘이 되어 내년엔 제때 제 절기에 화사한 꽃을 피우고 푸르른 잎을 돋우어 낼 것이다.

저 모습에서 다른 것들과 함께 조화를 이루며 활짝 피워내고 푸르게 돋우어 낼 내일의 풋풋한 얼굴을 본다. 새 세상을 본다.(2023.5.5.)

                                                                     

 

음덕

 

집안 먼촌 할아버지뻘 되는 분이 나에게 조부님의 산소 비문을 써 달라는 청을 해왔다.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란 말을 누구한테서 듣고 부탁한다 했다. 글 쓰는 사람이긴 해도 그런 글을 써본 적 없다고 사양했지만, 같은 시조를 모시고 있고, 집안 내력도 모르지 않을 터에 자기 이야기를 들으면 쓸 수 있을 것이라며 강권했다.

살날이 그리 많이 남지 않은 것 같아 세상을 떠나기 전에 조상을 높이 기리는 일을 해놓고 싶다 했다. 장손은 아니지만, 남은 자손 중에서는 가장 맏이로서 자신이 꼭 해야 할 일 같다고 했다. 내년 윤년을 맞아 비를 세우고 싶다 했다. 권에 못 이겨 써 보겠다 했더니 족보를 들고 찾아왔다.

어느 날 풍수를 좀 아는 분과 할아버지 산소에 함께 갔었는데, 묫자리가 어떠냐 물으니 한참을 둘러보고는 이 자리 때문에 지금 당신이 있게 된 것 같소.’라고 하더라 했다. 태어나기 오래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이리 음덕을 내리시다니……. 겨를만 나면 할아버지 묘소를 찾아 제수를 차리고 지성을 다해 참배를 드리며 가꾸어 왔다고 했다.

가난하여 학교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구두닦이며 얼음과자 행상 등으로 온갖 고초를 다 겪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어찌어찌하여 기계를 수리하는 기술을 배워 섬유공장의 기사로 들어가 직기 수리 일을 하다가, 직기 몇 대를 구하여 손수 공장을 차렸다고 한다. 힘들고 어려운 일도 많았지만, 수출 길도 열면서 수십 년을 원만하게 경영해 왔다고 한다. 지금은 아들들에게 일을 맡기고 있다면서, 이 모든 것이 조상님의 음덕蔭德인 것 같다 했다. 모든 일에 정성을 다 바쳐온 그 삶의 이력이 바로 물려받은 음덕인 것 같았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는 초상 행렬에 만장 오백여 장, 말 오십여 필이 뒤따르고, 할아버지를 흠모하는 후학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이는 모두 할아버지가 인품이 높고 후덕하셨기 때문이 아니겠느냐 했다. 좀 과장이 있다 하더라도 많은 이들로부터 우러름을 받았기 때문에 전해질 수 있는 일화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할아버지의 생애에 대해 기록으로 전해진 게 있느냐 하니 다른 기록은 찾을 수 없다며 족보의 한 구절을 보여주었다. 그 내용은 구한말 왕실 궁내부주사宮內府主事 역임 사실과 함께 일찍부터 어질고 너그러운 도량과 재능을 지니고, 천성이 온후하여 사람을 대하고 사물을 접함에 있어 지극한 정성을 다했다.’라는 인품에 관한 짤막한 기록이었다. 소상한 기록이 없는 것이 안타까웠지만, 이 소략한 기록이나마 그대로 비문에 반영하기로 했다.

내가 쓴 비문 안을 메일로 몇 번 주고받기도 하고, 또 몇 번을 만나 직접 이야기를 들으면서 문안을 다듬어 나갔다. 조상의 음덕을 입어 후손들이 잘 살아가는 모습도 담고 싶었다. 금석문이라는 건 한 번 새겨 놓으면 영원히 남는 건데, 집안에 두루 보여 누구에게도 걸리는 곳이 없도록 하라 했다.

드디어 비를 세우는 날이 왔다. 윤년 윤달 어느 봄날이었다. 내가 집안사람들과 더불어 비를 세우는 산소에 도착했을 때 비는 이미 서 있었다. 그분이 몇 사람과 아침 일찍 먼저 와서 석물 업자가 가져온 비석을 맞이하여 산신제를 먼저 올리고 중장비를 동원하여 비를 세웠다고 한다. 각자刻字하면서 씌운 보호막을 벗겨내는 중이었다.

글자 보호를 위해 단단하게 붙어있는 보호막을 힘들여 벗겨내자 비문이 드러났다. 돌아가신 지 백여 년 만에 모시는 비석이다. 묘주를 새긴 전면에 이어 세 면에 걸쳐 묘주의 시조, 파조며 윗대 조상을 밝히고 가문을 빛나게 한 업적이며 인품, 그 음덕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후손의 모습과 그 덕을 기려 이 비를 세운다는 취지로 끝을 맺었다.

흰 천을 씌우고 할아버님의 숭모비를 제막하겠다며, 여러 곳에서 달려온 후손들과 함께 줄을 당겨 막을 벗기자 비가 다시 드러났다. 아들딸 손주들이 박수를 모았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는 것도 모두 이 할아버지의 은덕이며, 더욱 성실하게 살아 그 덕을 더욱 빛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하는 말로 제막의 뜻을 기렸다. 감회가 다시 깊어지는 듯 비를 쓰다듬으며 비문을 읽어나갔다.

열심히 사는 것이 할아버님의 덕을 기리는 길이라 여기며 살아오다 보니 이제야 묘의墓儀를 갖추게 되었음을 널리 헤아려 주십사 하는 축문을 낭독하고 헌작하는 것으로 석물을 갖추는 제의를 올렸다. 도포와 유건을 갖춘 복식으로 제를 올리는 그분의 모습은 정중하고도 엄숙했다. 산소를 다시 둘러보니 그동안 끊임없이 다듬고 가꾸어온 정성이 역력히 보였다.

이 정성이 어찌 조상만을 숭배하는 마음일까. 이런 정성이 가업과 가문을 잘 다스려 오게 한 것 같았다. 그 마음이 자신을 성실하게 하고 후세를 성실하게 하는 지표가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묘의를 갖추어 갈 때, 새잎이 나기 시작한 묘 주위의 나무는 연록을 더해 가고, 흰 구름이 유유히 떠가는 푸른 하늘에서는 맑은 햇살이 축복처럼 내리고 있었다.

이 모두 이 선생 덕분일세!”

모두가 할아버지의 정성이지요. 더 좋은 일 많으셔야지요.”

나도 무슨 뜻 있는 일을 이루어낸 듯한 뿌듯함이 없지 않았지만, 그분의 지극 정성이 조상을 빛나게 하고, 자신의 삶을 기름지게 한 것 같았다.

듬직한 용두를 이고 덩실하게 서 있는 비석이며 묘소를 한 바퀴 돌아 모두 가볍고도 진중한 걸음으로 산을 내려왔다. (2023.4.15.)

                                                                    

 

세월의 얼굴

 

한 달여 만에 이 선생을 다시 만났다. 전에 만났을 때부터 느껴져 온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다시 만나 한번 풀어보자 했다. 이 선생도 나도 반갑게 달려와서 만났다. 술잔을 부딪치고 기울이며 우리가 나눈 이야기의 주제는 주로 세월이었다.

전번에는 다섯이서 만났다. 어느 날 문득 이 선생의 전화가 왔다. 웬일이야! 서로 놀랐다. 이십여 년 만에 듣는 목소리였다. 보고 싶다 했다. 모두 어떻게 변했는지도 궁금하다 했다. 그래, 만나자, 만나 보자.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이야기도 한번 들어보자 했다.

사십 년이 다 되어간다. 그때 우리는 모두 한 직장에서 생활하는 젊은 직장인들이었다. 할 일에 쫓겨 힘들었지만, 퇴근길에 이따금 삼삼오오 모여 잔을 함께 기울이면서 업무의 스트레스를 풀기도 하면서 서로 주고받는 정을 나누어 갔다.

몇 해 세월이 흐르다 보니 근무지를 바꾸어야 할 처지가 되었다. 헤어져도 마음은 나누고 살자며 일곱이서 모임을 만들었다. 이름을 화연회(花緣會)’라 했다. 직장 이름의 첫머리 글자를 따서 ()’를 넣었지만, 이름처럼 꽃같이 아름다운 인연으로 살자 했다. 근무지는 달리했지만, 철 따라 그 철의 꽃이 필 무렵이면 만나 지난날을 돌이키며 추억에 젖기도 하고, 바뀐 직장 사정들을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만나면 늘 지난날의 직장에서 마주하고 있는 것만 같았고, 정도 그랬다.

그 세월 다시 몇 년이 흐르는 사이에 근무지가 계속 바뀌어져 갔고, 직장이며 가정을 사는 일도 환경도 지난날 같지 않게 되었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모임을 한두 번 빼먹게 되다가 마침내는 적조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다. 세월 탓일지언정, 누구의 탓도 아니었다. 그렇게 못 만난 지도 어느덧 이십여 년의 세월이 흘러 버렸다. 삼사십의 중년들이었던 사람들이 이제 칠팔십의 노년들이 된 것이다. 흘러간 세월이 끔찍했다.

가끔 어떻게들 살고 있을까, 살아 있기나 할까, 하는 생각으로만 지내던 어느 날 불현듯 이 선생의 전화가 온 것이다. 모임의 총무를 하던 사람이다. 연배는 좀 낮지만 일에 재바르고 아래위를 잘 알기도 했던 그였다. 몇 년 전에 정년퇴직하여 고적히 지내다 보니 지난 시절이 돌아보면서 그 시절의 사람들이 그립더라 했다. 그 젊은 이 선생도 퇴직했구나! 모두 한번 만나보자 했다. 옛날 전화번호만 남아 있지만, 어찌해서라도 수소문해 보겠다 했다.

이 선생과 통화한 두어 주일 후, 만났다. 일곱 중에 다섯이 모였다. 두 사람은 끝내 연락이 안 되더라 했다. 이게 얼마 만입니까? 참 반갑습니다. 그동안 그래, 어떻게 지내왔습니까? 그야말로 모두 무량한 감개에 젖었다. 퇴직한 지 십 년이 되어가거나 십수 년이 지난 사람도 있었다. 세월은 저만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고이 두지 않더라며 허탈한 웃음을 짓기도 했다. 젊은 시절에는 못 보던 얼굴 주름 물론이지만, 한두 가지 병들은 다 지니고 있다 했다.

김 선생은 무릎이 아파 제대로 걸을 수 없어 출입도 거의 하지 않는다며 세상일에 별 신경 안 쓰고 산다 했다. 카톡방이라도 만들어 소식은 나누고 살자 하니 그런 것도 할 줄 모른다며 구식 전화기를 보였다. 연배가 가장 높은 이 선생은 한창 시절 술도 잘 먹고 놀기도 잘했는데, 술 끊은 지가 십여 년은 되었다 했다. 몸에 가려움증이 생겨 술만 먹으면 더 심해져 먹을 수 없단다. 술 안 먹으니 사람 만날 일도 줄어들어 집에만 박혀 있는 날이 많아, 아들딸 손자들이며 지인들과 SNS 소통이나 하며 지낸다 했다. 남 선생은 잠잠히 미소만 지을 뿐, 별말이 없다. 한창때도 말수가 그리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말이 더욱 적어진 것 같다. 수년 전 사고를 당하여 머리 부분에 충격을 받은 후로는 말도 생각도 잘할 수 없노라 했다.

술잔을 들 수 있는 사람은 총무 이 선생과 나뿐, 다른 이들은 사이다 한 모금씩으로 입을 축였다. 이 선생이 그중 제일 젊고 활발한 편이다. 퇴직 후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조그만 밭을 가꾸면서, 어느 대학 학점 은행에 등록하여 불교 사상을 공부하고 있다 했다. 나는 어느 한촌 궁벽한 산중 마을에서 책이나 읽고 간혹 글도 쓰며 살고 있노라 했다. 술에 취해 가는 사람은 이 선생과 나뿐이었다.

지난날 직장살이 때의 이러저러한 기억들이며 살아온 이야기, 살아갈 이야기들을 한참 나누다가 그래, 나중에 또 봅시다.’ 하며, 언제일지도 모르는 나중을 기약하고 일어섰다. 젊은 이 선생이 잘 걷지도 못하는 김 선생을 부축하여 택시에 태워 보내고 네 사람은 지하철로 내려가 손을 흔들며 헤어졌다.

며칠 뒤 이 선생의 전화가 왔다. “그때 우리 만남이 어땠습니까?” “반가웠지, 그런데 뭔가 좀 서글펐다 할까…….” “그렇지요? 저도 반가우면서도 좀 우울했습니다. 세월 끝에는 다 그렇게 되어야 하는 건지……. 형님하고 둘이 한번 만나 다시 한번 회포를 풉시다.” “그러세~!”

둘이 만났다. “그래도 형님과 만나니 마음이 좀 편합니다. 다른 형님들은 만나자는 게 오히려 불편을 끼치는 일 같데요.” “그게 세월의 얼굴아니겠나.” “세월의 얼굴~!” “우리 얼굴도 가꾸기에 달렸듯이 세월의 얼굴도 가꾸기 나름이겠지.” “건강해야겠네요. 몸도 마음도~!” “그래, 우리 몸도 마음도 건강하기 애쓰며 사는 데까지 살아보자.” 호기롭게 잔을 부딪치다가 또 연락하자며 지하철로 내려가 손을 흔들었다.

 85세까지도 열심히 노래하던 가수 현미 씨가 KTX를 타고 대구 가서 공연하고 온 이튿날 아침에 쓰러져 편안한 모습으로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세상은 그를 두고 영원한 디바라 했다. 그 세월의 얼굴은 참 아름다울 것 같다.(2023.4.6.)

                                                                      

 

한결 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 달

 

삼월, 마침내 봄이 온다. 냉기 가득한 어둡고 긴 터널을 통과해 나온 것 같다. 아직 완전히 통과한 것은 아니다. 출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달려가면 따스한 햇살이며 맑고 푸른 하늘이 나타날 것이다.

그 터널의 출구를 제일 먼저 틔운 것은 상사화 잎 움이다. 찬 바람 불고 눈발도 날려 아직도 겨울이 제 품새을 지키려 간힘을 쓰고 있는 어느 날 그 냉기를 뚫고 꽁꽁 움츠리고 있던 알뿌리에서 움을 밀어냈다. 저 움이 자라 치렁한 잎을 피워내다가 여름 들머리에서 잎을 다 거두고 꽃대를 밀어 올릴 것이다.

봄 하늘을 가장 먼저 연 사람은 마을 농군 정태 씨다. 올해부터 벼농사를 거두고 사과 농사를 지어볼 참이라며 굴착기를 동원하여 너른 논들을 파기 시작했다. 서너 자 깊이로 골을 파서 파이프를 깔고 다시 묻었다. 사과는 물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배수로를 미리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뒤이어 다른 사람들도 논을 갈아엎기 시작했다. 논들이 비로소 부스스 겨울잠을 털어내는 듯했다.

얼고 메마른 강둑 길섶 흙이 조금씩 누글누글해지는가 싶더니 마른 풀 사이로 파란빛이 돌기 시작했다. 오밀조밀 손톱보다 작은 이파리들이 솟아났다. 꽃은 더 있어야 피울 별꽃이다. 머잖아 별 모양의 조그맣고 하얀 꽃들을 피워낼 것이다.

강물도 얼음을 다 녹여내고 맑은 낯빛을 드러내며 건너 강둑에 늘어선 벚나무 그림자를 가지런히 담아냈다. 나무에도 무언가가 꼬물거리고 있는 것 같다. 이제 한 달 후쯤이면 저 물은 아리따운 꽃 그림자를 줄 세우면서 꽃단장을 하게 될 것이다.

산을 오른다. 올봄 첫 노란 양지꽃 한 송이가 앙증스럽게 피었다. 크기는 아기 손톱만 해도 낼 빛깔은 다 낸다. 어제만 해도 한두 송이 보일까 말까 하던 생강나무꽃이며 올괴불나무꽃이 군데군데 보인다. 저들은 아무 나뭇잎들이 푸르러 그늘이 우거지기 전에 저들의 꽃을 피워 내려 서둘러 꽃피울 날을 잡은 것 같다.

엊그제 망울을 돋우어내던 진달래는 드디어 진홍빛 꽃을 터뜨렸다. 아직은 한두 송이뿐이지만 내일이나 모레쯤이면 모든 망울에 꽃이 다 터질 것 같다. 누가 먼저 피우나를 다투기라도 하는 걸까, 진달래 옆에 선 생강나무는 다른 곳보다 더 큰 꽃송이를 달았다.

다시 아침이다. 트랙터가 힘차게 갈고 있는 들판 두렁길을 걷는다. 곧 꽃을 피워낼 냉이며 꽃마리, 고들빼기, 방가지똥, 뽀리뱅이, 씀바귀 근생엽들이 마치 제 세상을 만난 것 마냥 여기저기서 뾰족이 얼굴을 내민다. 흙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봉글봉글 솟아오르고 있다.

골짜기 길로 든다. 건너편 산자락에 엊그제 안 보이던 매실 꽃이 활짝 피었다. 저리 소리소문없이 느닷없이 피면 보는 사람은 어찌 감당하란 말인가. 이쪽 언덕배기에도 모두 꽃으로 필 근생엽들이 한창 손길을 벌려 가고 있다.

이 언덕에는 보랏빛 현호색꽃이 많이 피는 곳인데, 그건 아직 철 이른 건가. 그러면 그렇지, 자세히 보니 둥글 길쭉한 잎들이 가는 잎자루 끝에 조그만 손을 내밀고 있다. 저 잎이 조금 더 벌 때면 수줍게 고개 숙인 꽃이 피어날 것이다.

삼월은 어지러우리만치 현란하다. 강둑이며 들판이며 산이며, 언제 어디를 보든 같은 모습이 아니다. 돋아나는 풀의 수효도 다를 뿐 아니라 빛깔도 모양도 어제의 그것이 아니다. 꽃은 또 어떠한가. 붉고 노랗고 흰 꽃 빛이 날마다 그 명도와 채도를 달리고 하고 있다.

삼월엔 어디 무엇을 봐도 날이면 날마다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게 없다. 인디언들도 삼월의 이런 모습을 알아채고 그리한 걸까. 늘 자연 속을 사는 인디언들은 달력을 만들 때 그들이 늘 대하는 풍경이며, 그 풍경에서 느껴지는 마음을 따라 그달 그달의 이름을 붙였는데, 아라파호 족은 삼월을 두고 한결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 달이라 했다고 한다.

정녕 삼월은 한결같은 것이 아무것도 없는 달인 것 같다. 무엇이 달라져도 시마다 날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 달라지는 모습이며 빛깔이 퇴화하고 퇴색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모습은 점점 자라 커지고 있고, 빛깔은 날로 짙어 우아해지고 있다.

그래서 삼월은 생명의 계절, 생동의 계절이라 하는가. 그리하여 사람들은 이 삼월에 삶의 의욕을 얻고 그 의욕 따라 힘줄을 세우는가. 어느 시인은 봄 들판을 두고 출렁이는 생명의 출항’(신달자, 봄의 금기 사항)이라고도 하지 않았는가.

삼월을 두고 한결같은 것이 없다.’라는 것은 무상 변전을 뜻하는 말이 아니다. 나날이 나아가고 짙어지고 세어진다는 말이다. 그렇게 삼월은 약동한다는 말이다.

삼월이다. 모든 것이 나아가고 짙어지고 세어지는 삼월이다. 이 삼월에 나는 무엇으로 나아가고 어떻게 짙어지고 얼마만큼 세어질 수 있을까.

이 삼월의 노을은 또 어떻게 아름다울까. (2023.3.12.)

                                                                     

 

당분간 끊어야겠어요

 

권 선생께서 당분간 술을 끊어야겠다고 했다. 그 말씀에 나는 절망을 안아야 했다.

생애의 한 막을 내린 지 십수 년, 조용히 살고 싶다는 막연한 동경으로 한촌 산 마을을 찾아와 발을 내렸다. 푸른 산이며 맑은 물만 보며 살면 될 줄 알았다. 얼마 동안은 그렇게 살았다. 살 만했다. 여태 어지럽기만 했던 머릿속이 소쇄해지는 듯도 했다.

그런 재미로 살아가다 보니 어느 날 문득 사람이 그리워졌다. 산도 좋고 물도 좋지만, 그 자연 속에 자연 같은 사람도 있으면 더욱 좋겠다 싶은 마음이 소록소록 피어났다. 술잔이라도 함께 들며 살아온 일이며 한세상 살아갈 일을 더불어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싶었다. 사람 들끓는 번잡한 세상을 벗어나고파 이리 살고 있으면서 이 무슨 잔망한 가탈인가.

자연으로 들어 그와 더불어 살아가는 일도 삽상한 일이지만, 사람이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생기로움도 멀리할 수 없음을 깨닫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사람이 사람과 더불어 살지 않아도 될 양이면 사랑은 왜 하고 그립고 외로운 마음은 왜 생기는가. 사회란 사람과 더불어 사는 곳이거늘 사회적 거리 두기로 우리는 얼마나 불편과 고통을 느꼈던가.

그렇게 사람을 그리워하다 보니 어찌어찌하여 권 선생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권 선생은 나보다 연장이시지만, 사람을 대하는 데 어떤 걸림도 없으셨다. 예절도 존중하지만, 마음을 여는 데도 인색하지 않으셨다. 거의 주일에 한 번쯤은 만나 막걸릿잔을 함께 나누며 술잔이 익어갈수록 우리의 소담, 환담도 무르녹아 갔다.

권 선생은 젊은 시절에는 화약 전문가로 명성을 떨치던 분이었다. 지역에 광산이 한창 가행되고 있을 때는 곳곳의 초빙을 받기에 바쁘셨다고 했다. 안전하게 장착하여 필요한 만큼 폭파되면서 터져 나오는 화려한 불꽃에 대한 기억은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눈앞에 선연하다 했다. 어쩌면 생애를 그런 불꽃같이 사신 분인 것 같았다.

청년 시절 지방 정치에 잠시 관심을 가지긴 했지만, 지금은 정치와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나라 정치를 걱정하는 마음은 우리의 걸쭉한 안주가 되기도 했다. 때로는 세계로 나아가 국제 평화에 관한 관심도 마다치 않았다. 예술가는 아니지만, 사람은 예술을 알아야 한다는 말씀과 함께 이태백과 두보를 즐겨 외기도 했다.

내가 권 선생과 만나는 일은 나무가 좋아 산을 오르는 일이며 물이 좋아 강둑을 즐겨 걷는 일과도 다르지 않았다. 자연의 또 한 모습을 보고 있는 듯했다. 우리 만남의 이름을 주막회로 하자 하니 좋다!’ 하셨다. 일주일마다 한 번은 만나 막걸릿잔을 나누자는 뜻이 아니냐며 웃으셨다. 이 이심전심의 이 마음이 자연이 아니고 무엇인가.

권 선생과 연을 맺은 지 십 년이 가까워지는 사이에 권 선생께서는 두어 해 전에 산수傘壽의 언덕을 넘어서고, 나는 희수喜壽를 눈앞에 둔 처지가 되었지만, 우리의 만남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권 선생께서는 당분간 술을 끓어야겠어요.”라 하셨다.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말씀이었다.

뭐라고요? 저는 어떡하라고요!” 절규하듯 되받았다. 지금 누가 나에게서 산과 나무, 강과 물을 빼앗아 간다면 살 수가 없듯이 권 선생과 함께 술잔 속에 담아내던 그 고담준론의 환희가 사라져 버린다면 나는 어디서 누구와 이 고단 생애를 엮어가야 한단 말인가. 천인단애 절벽 앞에 내쳐지는 듯했다.

나이 탓인지 숟가락을 들려면 손이 자꾸 떨려와 병원엘 같더니, 혈압도 높고 뇌 질환 우려도 있어 당분간 금주를 권하더라고 했다. 증세가 심하지 않을 때 조심해야 할 것이라고도 한다 했다. 오랜 시간 동안 권 선생과 나누었던 담화들을 돌아보면, 권 선생께서 살아오신 여든 남은 생애가 그리 순탄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화약 전문가가 되기까지 때로는 해외도 유랑하며 도전과 개척의 삶을 거듭하며 살아야 했고, 때로는 직무를 수행해나가다 보니 심지어는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까지 가야 했다고도 한다. 그런 고난을 엮어 살아온 세월의 잔해들이 오늘의 병력으로 나타났을지도 모를 일이라 했다. 이따금 읊조리던 두보(杜甫, 712~770) 시 한 구절이 문득 돌아 보인다.

간난(艱難)애 서리 같은 귀믿터리 어즈러우믈 심히 슬허하노니 / 늙고 사오나오매 흐린 숤 잔()을 새려 머믈웻노라 (艱難苦恨繁霜鬢 潦倒新停濁酒杯, 登高)”

세상살이의 어려움에 몰골이 늙고 사나워 좋아하는 술도 새삼 끊고 지낸다는 말이다. 두보의 모습에 권 선생의 모습이 겹쳐진다.

어쩌겠소. 우리가 좋아하는 이 막걸릿잔 주담을 좀 더 오래 즐기기 위해서라도 조섭은 좀 해야 하지 않겠소? 허허!”

허공에 흩어지는 권 선생의 웃음소리는 얼핏 습기를 머금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좀 더 오래 즐기기위해서라는 말씀에 새로운 희망을 걸고도 싶었지만, 세월이 또 우리에게 어떤 그림자를 남겨줄지 모를 일이다.

그럽시다! 건강해야 술도 잘 먹을 수 있지요. 술 잘 먹는 우리의 건강을 위하여! 하하

그렇게 우린 헤어졌지만, 다만 술과 헤어질 뿐 우리의 담론은 늘 살아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함께 지녔다. 저 솔잎이 늘 푸른 것처럼, 저 강물이 늘 흐르고 있는 것처럼. 어차피 우리 사는 것도 당분간이거늘, 그 당분간이 무엇이 그리 절망스러우랴.

권 선생님, 그래도 그 당분간이 좀 짧을 수 있도록 애써주십시오. 하루빨리 우리의 술잔이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2023.3.7.)

                                                                      

 

기다림에 대하여(5)

 

작은 기다림만 있으면 된다. 창창한 포부며, 우렁찬 이상이며, 풋풋한 희망이며, 달금한 꿈 들은 없어도 된다. 그런 것들이 새삼스레 찾아와 주지도 않겠지만, 찾아와 준대도 가볍잖은 짐이 될 것 같다.

해넘이 저녁 빛이 곱다. 저 해 저리 고운 빛을 뿌리기까지는 붉고도 푸른 꿈을 안고 지상으로 솟아올라 세상을 서서히 비추어 나가다가, 드디어 하늘 한가운데 이르러 모든 세상을 다 안아 보기도 하며 환호를 터뜨리기도 했을 것이다.

그 환희에 작약하고 있으려고만 하지 않았다. 넘어갈 줄도 알고, 질 줄도 아는 품새가 저 고운 빛을 그려 냈을지도 모른다. 이제 조금 더 있으면 저 해는 제가 만든 고운 빛 속으로 자태 곱게 들것이다.

홀가분해서 좋다. 한창때는 무거운 짐도 무거운 줄 모르고 지면서 때로는 방장한 혈기로, 때로는 종작없이 덤벙이며 살아오기도 했다. 돌아보면 우습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지만, 그런 날이 있었기에 오늘도 있지 않을까 싶어 소곳한 위안을 가져 보기도 한다.

다 벗어버리고 나니 몸이 날아갈 듯 가볍고도 가뿐하지만, 무언가 조금은 허전한 듯한 상념이 살며시 고개를 들기도 한다. 아니다. 허전할 게 없다. 그 비어 있는 듯한 자리를 고즈넉이 채워 줄 게 없지 않기 때문이다. 기다림이다.

나는 오늘도 간절히 기다린다. 그리운 사람을 기다리고, 보고 싶은 것을 기다린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라고 한 살렘 왕의 말(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에서)이 아니라도 내가 기다리는 것은 반드시 온다. 올 수 없는 걸 기다리는 일은 이미 내 의식의 구성 분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 기다림은 내게 무엇인가.

기다림은 미소다. 활짝 벌려 웃는 대소도 아니고, 떠들썩하게 웃는 홍소도 아니고, 웃음 같잖은 냉소나 비소일 리는 더더욱 없다. 입꼬리가 살포시 올라가는 작은 웃음일 뿐이다. 기다리고 있는 순간은 언제나 미소가 지어진다. 까닭이 없다. 그냥 지어지는 미소다.

기다림은 기쁨이다. 기다림의 미소는 늘 기쁨을 손잡고 온다. 미소가 그런 것처럼 넘치는 환희로 펄펄 뛸 기쁨도 아니다. 흠뻑 축배라도 들고 싶은 기쁨도 아니고, 손뼉이라도 치지 않으면 못 배길 기쁨도 아니다. 그냥 가슴이 아침 빛같이 밝아지는 기쁨이다.

기다림은 온기다. 펄펄 끓는 가마솥 온기도 아니고, 증기가 술술 오르는 열탕의 온기도 아니고, 군불 넉넉히 지핀 시골집 방 아랫목 같은 뜨끈한 온기도 아니다. 입에 머금어 음미하기 좋은 찻물 같은 온기다. 그냥 마음을 아늑하게 해주는 기운이다.

기다림은 사랑이다. 그런 미소며 기쁨이며 온기라면 사랑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한때를 불같이 태우는 젊은 연인들의 사랑도 아니고, 붙이 생각에 늘 목메는 어미의 애절한 사랑과도 다르다. 생각만으로도 심박수에 운율과 리듬을 주는 삽상한 사랑이다.

그런 기다림으로 또 하루해가 가고 달이 가고, 생애가 고운 노을빛을 향해 사붓사붓 자박자박 걸어간다.

주일이 바뀌면 매주 한 번씩 만나는 수필 가족들이 기다려진다. 모여서 울고 웃으며 사랑과 미움도, 즐거움과 괴로움도, 자랑과 부끄럼도 스스럼없이 나누는 가족들, 그게 수필이 아니냐 했다. 그 고백을 빼면 수필에 뭐가 남는가. 그러니 어찌 정이 들지 않을 수 있느냐 했다.

달이 바뀌면 달거리로 만나는 친구들과 나누는 술잔이 눈에 어린다. 그 코로나 위기 속에서도 목숨 걸고(?) 치열한 만남을 이어갔던 역전의 용사들, 그 짙은 술잔 속에 어떤 담론을 담아도 정 아닌 게 없는 친구들, 이런 친구들이 있다는 건 얼마나 황홀한 일인가.

철이 바뀌면 철 따라 피어나는 꽃들이 기다려진다. 추위 채 가시지 않는 겨울 끝에 내민 촉으로 잎을 피우다가 여름 들면서 속절없이 져간 저의 자리에 애틋한 꽃을 피워내는 상사화, 봄 익은 마을 강둑에 흐드러지는 벚꽃, 개망초 하얀 여름을 지나 가을을 아리따이 수놓는 쑥부쟁이며 둥근잎유홍초는 어떤가. 어찌 기다리지 않을 수 있는가.

명절이며 무슨 새길 날이면 한촌 늙은 아비 어미를 찾아 달려올 아이들이 기다려진다. 그저 잘 살기만을 바라는 아이들이 의젓하고 정겨운 모습을 하고 안겨 오면 어찌 살갑지 않으랴. 무슨 정성을 들고 올까. 저들의 환한 얼굴이 으뜸 치성이 아니던가.

그러구러 날이 가고 달이 가다 보면 나를 싸안을 고운 노을빛이 기다려진다. 그 빛 속으로 모든 걸 내려놓은 편안한 얼굴빛으로 곱게 들 내 모습을 그려본다. 그늘 없는 빛으로만 갈 수 있다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이 기다림들이야말로 언제나 함께하고 싶은 내 생애의 기쁨이요, 사랑이다. 무슨 포부며 희망이 더 필요하랴. 그런 것이 없이도 너끈히 살 수 있는 날을 위하여, 이 기다림만으로도 살 수 있는 생애를 위하여 내 여태 살아온 것인지도 모른다.

무슨 기다림이 더 소용 있을까. 작지만 소담스러운 그 기다림으로 또 하루에게 은근한 손을 흔든다. 오늘도 중천을 내리는 해가 고운 노을빛을 뿌리고 있다.(2023.2.20.)

                                                                   

 

불의지병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머리가 빙 돈다. 정신이 어지럽다. 나도 모르게 자리에 털썩 쓰러졌다. 방이 빙빙 돈다. 몸도 마구 구른다. 일찍이 겪어 보지 못했던 일이다. 한참 동안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일어서려는데 몸을 바로 세울 수 없다.

서가를 잡고 의지해 겨우 일어섰다. 벽을 짚으며 쓰러질 듯이 화장실로 가서 양치하고 나와 물을 두어 잔 들이켰다. 맨손 체조했다. 정신이 약간 수습되는 듯했다. 세수하고 책상에 앉았다. 조금 진정되는 듯하여 잠시 책을 읽었다.

아침이면 늘 하는 대로 산책길을 나섰다. 두렁길 지나 마을공원에서 체조하고 강둑을 걸었다. 술 취한 사람처럼 걸음이 비틀거린다. 중심 잡기가 어렵다. 이대로 주저앉아 땅속으로 빨려들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이튿날, 그 이튿날도 같은 증세가 반복되었다. 친구의 의사 자제에게 무슨 과에 해당하는 이상이냐 물었더니 이비인후과나 신경과에 해당하는 증세일 것 같다 했다. 달팽이관이나 뇌를 검사해봐야 할 것이라 했다. 병원 길을 나섰다.

어떤 결과를 받게 될까. 온갖 생각이 다 떠오른다. 이 증상이 계속된다면 몸의 중심 잡기뿐만 아니라 언어가 끊기고 기억 활동이 마비되는 증상이 올지도 모른다. 그렇게 될 바엔 세상과 작별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일찍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증명을 받아 놓긴 했지만, 대비할 일이 그뿐이랴.

다행히도 나에겐 걸려 있는 일이 별로 없다. 이를테면 생계를 책임져야 할 사람이라든지, 갚아야 할 채무 같은 것도 없다. 아이들이야 저마다 살 도리며 가정을 지니고 있으니 말할 것도 없고, 아내도 나 없이 살아가는 데 별 불편이 있을 것 같지 않다. 한동안 생각날지는 몰라도, 살 만큼 살다 간 사람이라 곧 잊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남겨놓은 책들이며 여러 가지 집물들이야 하늘로 날려 보내면 되지 않으랴.

걸리는 게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달거리로 어김없이 만나 술잔에 정을 띄우던 친구들이며, 이리저리 따뜻한 관계를 맺어 왔던 사람들을 두고 떠나기가 아릿하다. 그중에서도 수필 공부를 함께했던 사람들이 더욱 아리게 걸린다. 수필이란 원래 자기 고백의 문학이 아니던가. 기쁨도 슬픔도, 사랑도 미움도, 자랑도 부끄러움도 그대로 털어놓으며 함께 울고 웃던 사람들, 내 늘그막 생애에 따뜻한 무늬를 새겨 주던 사람들이다.

이렇게 구업(口業), 신업(身業)이 삭고, 의업(意業)을 끝으로 조용히 피안으로 갈 수 있을 것인가. 어디서 어떻게 쓰러질지는 몰라도 따뜻했던 사람들의 기억은 안고 갈 것이다. 별 걸림이 없는 데다가 따뜻하게 안고 갈 것도 있으니 불안하고 두려울 건 없지만, 고통을 줄여 도피안 하고 싶을 뿐이다.

먼저 이비인후과로 갔다. 어지럼증 때문에 왔다 하고 차례를 기다려 진료를 받았다. 설문지를 주면서 작성하라 한다. 언제부터 어떻게 일어난 증상이며. 현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이십여 개 항목으로 물었다. 의사가 보더니 고개를 갸우뚱하며 검사해 보자 한다.

앞이 캄캄한 두꺼운 안경을 씌우더니, 눈을 크게 뜨고 보이는 점을 따라 눈동자를 굴려 보라 했다. 안경을 씌운 채 누우라 하더니 목에 힘을 빼라 하고 이리저리 돌렸다. 일어나 직선으로 걸어보라 했다. 잘 걷다가 돌아서는 순간 넘어질 듯 주춤했다.

검사 결과 이석증에 의한 어지럼증은 아닌 것 같고 중추성 어지럼증이 의심된다고 했다. 이석증보다 더 중증일 수 있고. 뇌졸중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다 했다. 신경과에 가보라며 소견서를 써주었다. 뇌졸중으로 꼬박 한 해를 고생하다가 돌아가신 어머니가 떠올랐다. 올 것이 오는가. 두렵다. 죽음이 아니라 병고가 공포감을 느끼게 한다.

신경외과로 갔다. 소견서를 보여주니 MRI 촬영을 해 보자 했다. 똑바로 누워 기계 안으로 들어갔다. 죽은 듯 눈을 감고 있으니 연속적인 기계음과 점점이 끊어진 음이 반복적으로 고막을 때린다. 자기장으로 고주파를 발생시켜 그 반응을 통해 인체의 필요한 부분을 영상화시키는 장치라 했다.

검사가 끝나고 진료실로 오니 영상화된 뇌의 이모저모를 살펴보던 의사가 별 이상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왜 이런 증상이 오느냐 하니 일시적인 충격이 원인일 수 있다며 뇌에 충격을 가하거나 머리 안마 같은 건 하지 말라 했다.

머리 안마~!’ 비명을 지를 뻔했다. 내가 말하지도 않은 일을 의사가 짚어낸다. 어이가 없었다. 늙은 아비의 건강을 위해 안마 의자를 마련해 준 아들을 기특히 여기며 머리를 비롯한 전신 안마를 즐긴 것이 병통이 될 줄이야! 누구도 원망할 수도 없는 내 어리석은 소치다. 아들을 탓할 일은 더욱이 아니다.

자동차가 그렇듯이, 문명의 이기라는 게 사람을 편하고 편리하게 하면서도 폐해를 일으킬 수도 있는 것임을 몰랐던 것은 아니다. 그 폐해를 내가 이리 당할 줄을 미처 몰랐다. 그렇구나. 문명의 편의를 누리려 하기 전에 살펴 삼가기를 마다하지 않았어야 할 일이다. 분별없이 따르는 문명의 종이 될 것이 아니라 문명의 슬기로운 주인이 되어야 할 일이다.

병원을 나서는 걸음은 여전히 취한 듯 흔들거린다. 별 이상이 없다고 하니 곧 회복되겠지만, 내 걷는 걸음이 다시 돌아 보인다. 이기의 유혹 앞에서 나를 먼저 돌아보는 슬기가 나에게 있는가, 내 삶의 주인이 된 걸음으로 나를 걷고 있는가를 이 불의지병(不意之病)으로 다시 돌이켜 본다. 피안은 스스로 가꾸어가야 할 일 아닌가.(2023.2.5.)

                                                                   

 

내가 남겨 놓은 것들

 

어느 날 아침, 날이 밝아와 눈을 떠보니 내가 죽었다. 날마다 해거름이면 아늑히 오르는 산을 올라 숲을 걷고 나무를 보며 상념에 젖다가 내려왔다. 몸을 씻고 이따금 즐겨 마시는 막걸리 한잔하고 잠이 들었다. 그 길로 길고 깊은 잠이 든 것 같다.

다양한 사회 경륜과 함께 장관도 지내고 테니스를 좋아했던 어떤 분은 어느 날 오전에 한 게임 하고 집에 돌아와 샤워한 다음 와인 한잔하고 잠들었다가 그대로 영면했다 한다. 향년 88세였다 한다. 조용헌 명리학자는 그 죽음을 두고 거의 신선급죽음이라 했다.

나는 이렇다 할 경륜도 없고, 그분만큼 오래 살지는 못했지만, 이만하면 괜찮은 죽음이라 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딴은 산전수전 겪다가 물러나 산수 좋은 곳을 찾아와 살면서 이리 가니, 아쉬움은 별로 가지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내가 무엇을 어떻게 어찌하며 살다가 이리 떠나왔는가를 둘러보고 돌아보니, 안 남겨도 될 것을 너무 많이 남겨두고 온 것 같아 그게 걸린다. 남아 있는 사람들의 몸과 마음에 무겁고 아린 짐을 준 것 같아 유체일망정 마음이 가볍지 않다.

저 책들은 다 무엇인가. 내가 살아있을 적에는 읽으면서 지식과 정서를 얻게 해 주는 것으로 충분히 소용이 있는 것이었다. 서가에 꽂아 두고 있는 것만으로도 나름대로 의의가 있는 거라고 여기기도 한 것이지만, 이제 누가 나와 같은 그 소용과 의의를 가져줄 것인가.

내가 글을 써온 사람이라고 따로 마련해 놓은 저 책장, 내가 낸 책이거나 내 글을 발표한 책들을 모아둔 것이다. 가끔 한 번씩 빼보며 내 삶의 자취를 되새김질해 보기도 하면서 마치 나의 작은 분신들처럼 여기지 않았던가. 그렇듯 보듬어 줄 사람이 있기나 할까.

이제 내 몸도 곧 재가 되어 자연으로 돌아갈 것이듯, 저것들도 재로 만들어 나와 함께 세상을 떠나 올 수 있도록 해 주고 올 걸 그랬구나. 내가 참 어리석었다. 저 책들과 더불어 오래도록 갈 줄만 알고 껴안고 있었구나. 부질없는 일인 것을.

책들만 아니다. 내가 입고 쓰던 옷가지며 집물들이 좀 많은가. 하릴없다. 손도 발도 없는 내가 어찌할 수 있을 것인가. 미안하고 무렴하지만 남은 사람들에게 처리를 미룰 수밖에 없다. 쓰고 못 쓰고를 가릴 것 없이 모두 재로 살라 주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도 홀가분히 느껴지지 않는 건 무엇이 더 남아 있기 때문인가. 저것들이야 누가 치워줄 수도 있겠지만, 내 가슴속의 짐들은 누가 치워주고 씻어 줄 수 있을 것인가. 살았을 적의 일들을 돌아보면 쉬 잊히지 않을 무거운 짐들이 한둘이 아니다.

태어나 살아오는 동안 부모님의 몸과 마음에 너무 많은 아픔과 짐을 지워 드렸다. 그 짐을 미처 덜어드리지 못해서 돌아가시어 고스란히 내 마음의 짐으로 옮겨 왔다. 돌아가시고 난 뒤에는 그저 가슴만 아파하다가 그냥 나는 죽었다.

부모님의 그 업과 덕으로 내 업이라는 걸 갖게 되었지만, 나는 모든 일에 덩둘했다. 잘한다고 하는 일이 해놓고 보면 시행착오투성이였다. 무슨 의기, 혈기였던지 함께하는 사람들과 다투기는 왜 했던가. 젊기 때문이었을까. 그 때문에 옳게 한 일도 빛이 바래기도 했던 걸 돌이키면 이 또한 살아서 벗지 못한 나의 짐이 아닐 수 없다.

나 같은 사람이 어찌 남 가르치는 일을 평생의 업으로 삼게 되었는지. 아는 게 별로 많지도 크지도 않으면서 모든 것을 다 아는 양하고 가르쳐 온 걸 생각하면 핏기 잃은 지금도 얼굴에 화기가 인다. 그러면서 그 귀한 인격들에게 꾸중은 왜 그리했던가.

가정을 가지게 되었다. 내 생각만이 옳고, 내가 하는 일만이 지고한 것이라 여기며 모든 걸 나에게만 따라주기를 바랐다. 그저 내 뜻대로만 하려 했다. 진실로 미안하오. 못난이 때문에 얼마나 속을 많이 끓였소? 죽어 철이 든들 뭘 하겠소.

아이들이 힘들고 어려울 때 어떻게 위로해주고 격려해 주었던가. 무얼 잘못했다고 꾸중만 하려 하지 않았던가. 아이들에겐 그래야만 하는 거라고 여기지는 않았던가. 내 꾸중 앞에서 절망감을 느꼈을 아이들아, 저승 사람이 되니 참 아프게 돌아 보이는구나.

이렇듯 후회로 점철된 생애를 살다 간다. 어떤 글을 보니 후회에는 안정 욕구를 지닌 기반성 후회, 성장과 경험 욕구를 지닌 대담성 후회, 선함 욕구를 지닌 도덕성 후회, 사랑과 친절 욕구를 지닌 관계성 후회 등이 있다던데, 나에게는 주로 관계를 잘 맺지 못한 후회가 많이 남은 것 같다.

그래도 모두 고맙다. 그러함에도 임무를 마치고 물러나 산수 좋은 곳에서 죽을 수 있어 고맙고, 고행의 바라지 덕분에 잘 살아올 수 있어 고맙고, 아이들 잘 장성하여 제 노릇 잘해주어 고맙고, 하잘것없는 삶 속에서도 그윽이 기울일 수 술잔이 있어 고마웠다.

후회의 짐들을 내려놓을 길 미처 찾지 못하고 고마움만 안고 물색없이 나는 간다. 다시 오지 못할 곳으로 간다. 윤회라는 게 있어 설령 다시 올 연이 있을지라도, 오고 싶지는 않다. 또 누구를 힘들고 아프게 할 것인가. 그래서 또 후회의 짐을 지고 떠나야 할 것인가.

이제 내 영이 묻힐 산을 오른다. 익숙한 걸음으로 발을 내딛는다. 어찌어찌하다 혹, 이승 연 다시 가지게 된다면 묵묵히 아늑한 그늘을 내리는 저 나무로 태어나고 싶다. 잎 다정히 푸른 나무가 되고 싶다. 그리 살고 싶다.

이제라도 사랑으로 오로지하고 싶은 내 만났던 모든 이들이여, 잘 살다 가게 해 준 고마운 세상이여, 모두 잘 있으오. 송구하게 살다 가오.(2023.1.19.)

                                                                     

 

그리움의 힘

 

고사목이 된 긴 소나무 하나가 누워 있다. 큰 소나무가 아니라 긴 소나무다. 길이가 네댓 길은 족히 넘을 것 같다. 굵기는 가장 밑동 부분의 지름이 고작 한 손아귀를 조금 넘어서고, 꼭대기 부분은 엄지손가락 굵기에 불과하다. 이 나무는 살아생전에 굵기는 별로 돌보지 않고 키만 죽을힘을 다해 키우려 했던 것 같다. 가지도 별로 없다.

주위에는 큰 나무들이 늠름히 서 있다. 아마도 이 나무는 큰 나무가 떨어뜨린 씨앗에서 생명을 얻어 움이 트고 싹이 솟아 나무의 모습을 이루어간 것 같다. 대부분 나무는 바람이나 무엇의 힘을 빌리더라도 자신의 종자를 멀리 보내기 위해 애를 쓴다. 어미의 발치에 나서 어미와 서로 빛과 양분을 다투어야 하는 몹쓸 짓을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이 씨앗은 불행히(?)도 어미의 그늘에 떨어진 모양이다. 씨앗이란 어디에 떨어지든 일단 흙에 닿으면 제 혼자 나고 자라고 살아야 한다. 씨앗 속에는 부모에게서 받은 삶에 관한 모든 것이 담겨 있다. 그것으로 제 삶을 오로지 이루어가야 한다. 부모가 더는 돌봐줄 일도, 돌봐주기를 바랄 일도 없다. 나무를 비롯한 모든 푸나무의 숙명이요, 운명이다.

나무는 뿌리에 흙과 물이 있고 가지에 햇빛과 바람이 와 닿기만 하면, 누가 가르쳐 주지 않고 돌봐주지 않아도 잘 자라고, 잘 살아간다. 인간이며 뭇 동물들이 할 수 없는 일을 너끈히 해내는 것이다. 그렇다고 나무에게 삶과 그 방도에 대한 고뇌가 없는 건 아니다. 나무에게도 애타게 바라는 일이 있고, 사무치는 그리움도 있다.

어차피 뿌리 박은 땅을 숙명으로 알고 살아간다 하지만, 나무에게도 개척해 나가야 할 운명이 있다. 하늘을 찾아가야 한다. 해를 쫓아야 한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하늘을 놓쳐서는 안 된다. 해를 품고 있는 하늘은 나무의 간절한 명줄이고, 그리운 고향이다.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본향이다.

어미의 발치에 떨어진 씨앗은 내리는 비와 바람을 타고 흙 속으로 들었다. 따스한 햇볕이 내리는 어느 봄날 흙이며 마른 잎을 헤치고 땅 위로 움을 틔웠다. 어미에게서 받은 기운이며 땅과 물이 주는 자양으로 줄기를 솟구쳐내고 잎눈을 하나씩 틔워갔다. 조금씩 자라는 사이에 계절이 흘러가고, 흐르는 계절에 따라 제 몸피도 조금씩 불어났다.

제 몸만 자라는 게 아니다. 주위의 큰 나무들도 가지가 늘어나고 잎도 커지고 있다. 점점 무성해지면서 그늘이 늘어가고 짙어진다. 저들이 짙어갈수록 하늘이 아득해져 가는 것 같다. 나무는 모두 하늘을 향해 태어나고, 하늘을 바라며 살아가야 한다. 경배하는 나의 하늘은 어디로 가는가.

소나무는 전나무나 주목처럼 그늘에서도 잘 견디는 음수(陰樹)가 아니라, 자작나무나 사시나무처럼 햇빛을 받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양수(陽樹)의 천성으로 태어난다. 천성은 그렇다 하더라도 하늘이 없으면 식량은 어디서 얻어야 하는가. 빛을 내려받아 뿌리에서 올라오는 물과 섞어 밥을 만들어야 하거늘, 하늘을 다 빼앗기면 어찌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하늘이 그립다. 내 하늘을 찾아가야 한다. 생존에 대한 몸부림이요, 천성에 대한 그리움이다. 내 하늘을 앗아간 저 큰 나무들이 원망스럽다. 아니다. 그 그리움은 나의 것만이 아니다. 저들 모두 그 천성과 생존의 그리움으로 살고 있지 않은가. 나의 경쟁 상대는 오직 나일 뿐이다. 나의 하늘을 찾아가야 한다. 그리움을 찾아가야 한다.

내 하늘을 열려면 하늘로 내가 다가가야 한다. 내 하늘은 내가 열어야 한다. 큰 나무가 가지 사이에 남겨놓은 틈으로, 큰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려 잠시 빛살이 드는 사이로 발꿈치를 돋우기도 하고, 허공을 향해 팔을 내쳐 뻗기도 하고, 목을 한껏 뽑아 올려 하늘을 향하기도 했다. 그 세월이 얼마나 흘렀을까.

옆도 돌아볼 겨를도 없이, 이리저리 수족을 뻗쳐 낼 여가도 없이 오직 하늘만을 향했다. 이만하면 내 하늘을 찾을 수 있을까. 이리 오르면 남부럽지 않은 하늘을 열 수 있을까. 그러다 보니 몸을 살찌울 여력도 갖지 못하고 키만 뽑아 올렸다. 그리하여 그 하늘이 주는 빛살을 조금씩 받을 수 있었지만, 그래서 키라도 세울 수 있었지만…….

그리 애절하게 하늘을 치달아도 큰 나무를 넘어설 수가 없다. 큰 나무 틈으로 드는 가녀린 빛살만으로는 숨을 쉬기가 벅차다. 그래도 삶을 놓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몸이 조여왔다. 달과 해가 바뀌기를 거듭할수록 점점 더 말라 들었다. 빛이 제 몸의 칠팔 할쯤은 감싸 주어야 숨 제대로 쉴 수 있음을 숨이 넘어갈 때쯤에야 천성이 알려주는 것 같았다.

나는 여기까지구나.’라는 상념이 숨의 빈자리로 스며든다. 그래, 몸을 그리 굵히지는 못했어도 열을 다해 살았다. 그리움의 힘으로 이만큼이라도 살았다. 하늘도 내려다보았을 것이다. 설령 못 보았다 해도 괜찮다. 이리 몸을 뽑아 올릴 수 있었던 것도 하늘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살 만큼 살았음을 어찌 모르랴. 이제 강대나무로 간다. 멀쑥한 키만 남기고 실없이 간다고 나를 웃지 말라. 나에게는 설레는 그리움의 힘이 있지 않았던가.

어느 날 내리는 비바람의 손길을 타고 그 나무는 몸을 눕혔다. 품고 있는 그리움의 힘으로 새로운 그리움을 만들어 가리라며 아늑하게 누웠다.

긴 그리움으로 보듬으며 마른 육신을 편안히 뉘었다.(2023.1.3.)

                                                                 

 

주는 마음 받는 마음

 

지하철 전동차를 탔다. 좌석은 다 찼고 서 있는 사람도 많았다. 나는 가방을 든 채 출입문 옆 손잡이를 잡고 서서 갔다. 앉아 있는 사람 중에는 젊은 사람들도 많은데, 대부분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고개를 돌리다가 건너편 좌석 중간쯤에 앉아 있는 중년 신사와 우연히 눈이 마주쳤다. 오라고 손짓했다.

다가가니 일어서면서 앉으라 했다. 곧 내릴 사람인가 보다 하고, 감사하다며 앉았다. 그 신사는 반대편 문 쪽으로 가서 섰다. 한 역, 두 역, 몇 역을 지나쳐도 내리지 않았다. 내 눈길을 의식했는지 몸을 숨기듯 서 있는 사람들 속을 파고들었다. 내가 내릴 때도 그는 내리지 않고 등을 지고 서 있었다.

내가 서 있을 때 가까이에 앉아 있지도 않았고, 앉은 이들 가운데 어쩌면 가장 나이가 많을지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내가 자기보다 나이가 조금 많아 보였을지 모르겠지만, 그런 사람이 나를 위해 자리를 양보하고, 내가 부담스러워할까 싶어 자기 모습까지 숨기려 하다니-. 민망하고도 무안한 느낌이 들었다. 그의 등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내렸다.

집으로 오는 내내 따뜻함이 느껴지면서도 마음은 그리 가볍지 않았다. 내가 그에게 줄 수 있는 마음이 고작 고개만 잠깐 숙일 일뿐이었던가. 무렴한 일을 저지른 것 같아 얼굴에 뜬 화기가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았다.

매주 금요일이면 한 시간 반가량 차를 타고 달려 12시 반경에 터미널에 내린다. 터미널 부근 어느 식당에 들러 내가 항상 청하는 메뉴로 점심을 먹는다. 맛있게 먹고는 고맙게도 늘 마중 나오는 분의 차를 타고 회원들이 기다리고 있는 도서관 평생교육 교실로 향한다. 금요일은 나에게 항상 즐거운 날이다.

내가 늘 가는 식당 주인아주머니는 다닌 지 두어 해가 지난 어느 때부터 식대를 조금 깎아 받았다. 왜 이리 받느냐 하니, “자주 오시잖아요.” 한 마디뿐이다. 단골이라 대접을 해주는가 보다 하고 계속 맛있게 먹었다. 물가가 오름을 따라 가격표는 고쳐 쓰이기를 거듭했지만, 나의 식대는 달라지지 않았다.

언제까지나 그대로 둘 수는 없다 싶어 조금 더 받으세요.”라 해도 괜찮아요,” 또 한 마디뿐이다. 그 식당을 내가 계속 그렇게 이용하는 것이 옳은가 싶어 어느 지인에게 사정을 말하며 어찌하면 좋을까 했더니. “……글쎄요. 좀 없이 보였던 모양이죠.” 하며 웃는다.

설혹 내가 좀 없이 보인다 한들, 한두 번도 아니고 매번 그렇게 할 수 있는 일인가. 그리 없이 보이는 사람을 두고 오랫동안 그렇게 후의를 베풀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는 성자임이 틀림없을 것 같다. 변함없이 찾아주는 데 대한 사의라 하더라도 늘 그렇게 하는 것은 너무 과분하지 않은가.

어쩔까 하다가 자그만 선물 하나 마련하여 갖다 주면서 필요한 곳에 쓰시라 했다. 이런 걸 왜 주시느냐며 받지 않으려는 걸 억지로 안겼다. 그러고 나니, 음식을 더 많이 더 잘해주려 애쓴다. 요즘은 그 식당을 나설 때마다 갈등한다. 이 집을 계속 찾아야 할까, 어쩔까. 도움을 주는 걸까, 부담을 주는 것일까.

여럿이서 어느 박물관에 갔다. 해설사의 안내로 전시물을 관람하고 출구로 나오는데, 로비에서 노인 한 분이 탁자를 앞에 두고 붓글씨를 쓰고 있다. 탁자 위에는 소액 지폐 몇 장과 책 몇 권이 놓여 있었다. 누구든지 원하는 사람에게 휘호해 준다 했다.

일행 한 사람이 하나 써 달라고 하자 성씨가 무엇인지 물었다. ‘전주 이가라 하니, 시조를 말하고 조선왕조 성씨라면서 가장 영명한 임금 세종대왕이 집현전 학사들에게 내리신 교훈 중에 寬弘莊重이라는 말씀이 있다며 그 문구를 능란한 필치로 써서 낙관까지 박아 주었다. 성씨의 시조며 내력에 관한 이야기들을 훤히 꿰고 있는 것 같았다.

휘호를 받은 이가 감동했는지 5만 원짜리를 선뜻 내놓았다. 노인은 좋아서 하는 일에 돈은 안 받거니와 이리 큰돈은 더욱 받을 수 없다며 던지듯 내쳤다. 탁자 위 돈도 조금 전에 누가 억지로 두고 간 것이라 했다. 그래도 드리고 싶다며 강권하니 글씨를 담은 액자 하나와 책 한 권을 자기 선물이라며 건네주었다.

다른 사람들도 글을 청하여 받고 사례하니 사양하다가 쓴 글을 말아 책 한 권과 함께 주었다. 그렇게 해서 나도 책과 함께 고맙다며 받았다. 내가 받은 것은 태조 임금이 나라를 세우면서 남겼다는 難得而人心이라는 글귀였다. 책은 그가 펴낸 시집이었다. 나중에 그의 명함에 새겨진 누리집 주소를 찾아 들어가 보고 깜짝 놀랐다.

올해 92세로 명망 있는 서예가일 뿐만 아니라 성씨 유래와 고전 전적에 대한 상당한 조예를 가지고 있고, 등단 시인이기도 했다. 그 연치에 누리집을 운영 중인 것이 놀랍기도 했지만, 종교, 역사 등에 관한 다양한 저술 이력이 더욱 놀라웠다. 그렇게 가진 솜씨로 여러 사람에게 감동을 선물하려고 하는 그 마음이 더 큰 울림을 준다.

남에게 주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과 만남이었다. 당혹스러운 만남이기도 했다. 그런 사람들이 우리 사는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모습을 우르러만 보아왔다. 그 마음들이 나에게 이르는 장면을 대하니, 나는 마치 딴 세상 사람인 것 같았다. 그들은 내가 별로 살아 보지 못한 세상을 사는 사람들이었다.

전철을 내리고, 식당을 나오고, 박물관을 나서는 걸음이 세상을 처음 걷는 것처럼 서툴 게 느껴지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어떻게 걸어야 할까. (2022.12.13.)

                                                                      

 

황혼 녘의 소담한 열매

 

나뭇잎이 푸르고 붉었던 열정의 계절을 보내고 제자리를 찾아 내려앉고 있는 늦가을 어느 날 저물녘, 문학상 수상 대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이 날아왔다. 글과 더불어 살아온 평생에 나도 이런 상 한번 받아 보고 싶다라는 선망이 왜 없었을까만, 막상 그 일이 내 앞에 오고 보니 기쁘고 감사한 마음과 함께 주저로운 느낌이 드는 건 무슨 까닭일까.

지금 한창 의기롭게 글을 빚고 있는 젊은 문학인들도 많을 텐데, 의기와 열정의 시절을 다 떨쳐 보내고, 조용히 살 거라며 한촌 산곡에 깃들어 살고 있는 내가 껴안는 빛나는 상패와 근엄한 상장이 몸에 맞지 않은 옷 같지나 않을까 싶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오늘 수상 대상이 된 내 책이 첫 책을 낸 지 꼭 이십 년 만에 우여곡절과 더불어 낸 것이라, 그에 대한 소곳한 애착도 없지는 않았다.

백여 명의 문학인들이 모인 시상식장에 섰다. 송년문학축제 자리다. 한 해 동안 문협이 해온 일들을 오늘 다 모아 자축하자는 회장 인사와 함께 심사위원장의 심사 경과보고에 이어 시상이 진행되었다. 심사위원장이 회장을 대신해 주는 상패와 상장, 상금 증서를 받았다. 상 명칭과 내 이름이 적인 장방체 상패는 한 손으로 들기가 쉽지 않을 만큼 무거웠다. 상의 무게를 말하는 것일까, 상을 아주 무겁게 생각하고 더욱 좋은 글을 쓰라는 채근일까. 객석의 박수 소리를 타고 몇 축하객이 뛰쳐나와 축하의 말과 함께 꽃바구니며 꽃다발을 안겨주었다.

수상 소감을 발표하라며 마이크를 건넨다. 책은 자기를 위해 내는 건지, 남을 위해 내는 건지, 아니면 무엇을 위해 내는 건지에 관한 스스로에 대한 물음으로 20년을 보냈다 했다. 자기 희열을 위해 내자니 힘이 너무 들고, 남을 생각하며 내자니 남, 그 독자가 얼마나 감싸 안아줄지 알 수 없고, 아니면 우리 문학사에 단 한마디의 역사로라도 남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니 쉽사리 책 낼 용기를 얻을 수 없었다 했다.

그러함에도 무슨 천형天刑의 고질痼疾인지 글을 안 쓰고 살 수는 없어 꾸역꾸역 써나가다 보니 수백 편의 글이 쌓이게 되었다. 산중 삶으로 제2막의 삶을 엮고 있은 지 십여 년 세월에만 해도 삼백여 편이 쌓였다. 그 무게에 눌려 스스로 압사할 것만 같은 위기감(?)에 전율이 느껴지기도 하는 시간 속을 살고 있었다 했다.

그러던 중 한국예술인복지재단으로부터 예술인 인증을 받고 그와 더불어 창작지원금을 받게 되어 만용을 부려 짐을 좀 부려놓은 것이 여기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했다. 황혼 녘 생애에 거두는 소담한 열매로 삼고 싶다 했다. 객석의 박수 소리가 앞에 놓인 꽃다발을 에워쌌다.

실로 그랬다. 나에게 글이라는 게, 문학이라는 게 뭔지 떼놓고는 살 수가 없었다. 글을 안 쓰거나 못 쓰고 있을 때 느끼는 불안감보다 글을 쓰면서 겪어야 하는 노역이며 고뇌가 차라리 낫고 쉬웠다. 가수는 안 해도 노래는 안 부르고 살 수 없었다는 어느 가수의 고백이며, 스스로 병이라 한 이규보李奎報시벽詩癖이 상기되기도 했다.

영광의 자리를 마련해 준 문협 회장님과 회원들, 우리 문학사의 말석에나마 이름을 얹을 수 있도록 눈여겨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하고, 더욱 익은 고뇌를 통해 문학의 발전을 위한 잘 삭은 거름이 되기를 애쓰는 일로 여력과 여생을 다하겠다며 소감 인사를 맺었다. 시상식은 작가상, 작품상, 신인상으로 이어졌다. 박수와 꽃다발이 어우러져 나갔다.

수상자와 하객들이 어우러져 오늘의 기쁘고 감사한 일들을 기억 속에 오래 남기리라며 카메라 앞에 섰다. 나도 고마운 하객들과 함께 카메라 앞에 서서 미소를 머금었다. 오늘의 미소며 축언祝言들을 속 깊이 다져 넣었다. 나의 영혼과 글 속으로 녹아들어 정갈한 생명이 살아 숨 쉬는 문장으로 태어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과 함께 쟁였다.

시상의 모든 절차며 축제가 끝났다. 덕담 인사들을 다시 나누고 손을 흔들며 헤어졌다. 책을 못 낸 빈자리가 오늘 조금 메워진 듯한 위안감이며 모든 축언들을 곱게 싸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뒤 상금이 통장으로 들어왔다.

상금을 어떻게 쓸 것인가, 잠시 고뇌했다. 소모적인 일에 쓸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장기를 나누어주어 또 다른 생명이 되게 하는 일을 떠올렸다. 무언가 새로운 생명을 싹틔우는 일에 쓰고 싶었다. 그 마음을 정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반을 잘라 내가 창립한 수필문학회의 기금으로 보냈다. 몇 년 전 내가 받은 조그만 상의 상금을 종자 기금으로 하여 만든 문학회다. 더욱 무럭무럭 자라기를 바라며 작은 거름이나마 주고 싶었다. 반은 아내 몫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계좌에 넣어 주었다. 미소할까.

돌이켜 생각하니 문학회나 아내를 위한 일이 아니라 모두 나를 위한 일인 것 같다. 문학회도, 아내도 모두 나에게 거름을 주고 열매를 맺게 하는 존재가 아니던가. 내 통장에 자리 잡기 전에 정겨운 손을 흔들며 얼른 다 떠나보냈다.

글을 쓰기 위해 모니터 앞에 앉는다. 창밖 서녘 하늘이 곱게 물들고 있다. 채운 한 자락이 황혼 녘의 소담한 열매가 되어 내 품속으로 든다. 연간으로 내는 문학회 회지 출판기념회가 곧 열릴 것이라 한다. 문학회 회지도, 아내 미소도 내 글 밭의 거름이 되어 내 글 안으로 다시 들 것이다.

나는, 내 글은 또 누구를, 무엇을 위한 거름이 되고 열매가 될 수 있을까. (2022.12.6.)

                                                                 

 

나무의 밥벌이

 

오늘도 산을 오른다. 산을 다채로이 수놓던 나뭇잎들이 지고 있다. 어떤 나무는 벌써 드러낸 맨살로 하늘을 바라고 있다. 떨어지는 잎의 몸짓이 유장하다. 마치 일꾼이 이제는 할 일을 다 했노라며 가벼이 손을 털고 일터를 나서는 모습 같다.

가지도 한결 가볍다. 지난 철 동안 우린 열심히 살았다. 나는 물을 대어주고 너는 양식을 마련하여 먹거리를 만들고 하면서 알콩달콩 잘 지냈구나. 새 철이 오면 우리 다시 만나 또 한 번 아기자기 지내보자꾸나. 흔드는 가지의 손길이 정겹다.

가지와 잎의 정담이 귓전에 어른거린다. 저들은 결코 헤어지는 게 아니다. 어디에 있으나 한 몸이기 때문이다. 주어진 철들을 저마다의 일들로 열심히 살다가 한철 편안히 휴가에 든다. 그 휴가에서 돌아오면 다시 다시 한 몸 되어 즐거이 삶의 일로 들 것이다.

저들은 애초부터 한 몸으로 세상에 왔다. 원형질의 알갱이 속에는 세상의 삶을 여는 데 필요한 것들이 한 덩어리로 어우러져 있다. 물론 모체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이제 그것으로 삶을 이루어내는 일은 순전히 저의 몫이다.

흙을 자궁 삼아 영양소가 될 만한 주위의 것들을 부지런히 섭취하며 제 하늘 열 길을 찾아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몸에서 움이 트고 그것을 밖으로 내밀어 싹을 솟게 했다. 부는 바람과 내리는 눈비를 맞으며 몸피를 키워나갔다.

해가 뜨고 지기를 수없이 되풀이하는 사이에 싹이 줄기가 되고, 줄기에서 가지가 벌고, 가지는 잎을 솟구쳐나게 했다. 그렇게 벌고 커지는 사이에 뿌리가 끌어 올리는 물만으로는 살아가는 데 필요한 자양분들을 충분히 채울 수가 없다.

잎과 가지가 힘을 합쳐 살기 위한 밥벌이에 나서야 했다. 생업 전선에 떨쳐나서야 하는 것이다. 줄기와 잎은 해야 할 일을 나누어 공동 전선을 편다. 줄기는 물을 실어 올리고, 줄기는 햇살을 빨아들여 물과 섞어 탄수화물 밥을 짓고, 잎파랑치로 녹말이며 당도 만든다.

그러자면 가장 긴요한 게 햇살이다. 어쨌든 햇빛을 붙들어야 한다. 몸체가 다른 것들보다 헌칠하다면 햇빛을 쉽게 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큰 나무 사이로 들어오는 좁쌀 햇빛이라도 잡아야 한다. 끈질기게 매달려야만 한다.

그 빛살을 잡기 위해 줄기를 휘고 굽혀가면서 햇살이 있는 곳으로 뻗어야 하고, 키가 작을수록 잎을 크게 키워서 한 톨의 빛 알갱이라도 더 붙잡도록 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가지는 이리저리 뻗어 나가야 하고, 잎은 햇빛 바라기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리 힘든 밥벌이가 나무에게는 지겨움일까, 즐거움일까. 아니면 숙명으로 알고 그저 그렇게 하는 걸까. 어느 작가는 밥벌이의 지겨움이라는 제목의 책까지 내면서 나가서 꾸역꾸역 밥을 벌자. 무슨 도리 있겠는가. 아무 도리 없다.’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 작가는 우리들의 목표는 끝끝내 밥벌이가 아니다.’라고 했다. 무슨 목표가 따로 있다는 걸까. 우리들은 누구이고, 무엇을 하는 이들일까. 저마다 다른 목표가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누구무엇에 따라 천차만별이 될 수 있다.

나무도 다른 도리가 없어 밥벌이에 매달리고 있는 걸까. 단순히 밥벌이 자체가 목표였다면, 그리 눈부시게 싱그러운 모습들을 지어낼 수 있을까. 나무에게 밥벌이 이상의 다른 목표가 있다면, 정성을 다해 사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나무는 모두 그 정성을 타고난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어느 나무 할 것 없이 저마다의 색깔로 그리 어여쁜 꽃들을 피울 수 있을까. 어느 가지 가릴 것 없이 찬연히 푸른 잎을 피워낼 수 있을까. 모든 나무는 한결같이 사는 일에 모두 천품 정성을 다 바치고 있는 것 같다.

지난 봄여름, 열정으로 살았다. 부지런히 빛살을 찾아다니며 밥을 짓고 찬거리를 어울렀다. 잘 먹고 잘 지내면서 원 없이 푸름을 뿜어내고 피우고 싶은 꽃을 피웠다. 이제 열매를 맺으며 쉴 차례다. 붉고 노란 단장도 해가며 즐기다가 휴식에 들면 된다.

한껏 살아왔으니 인제 조용한 시간을 즐기고 싶다. 치열한 삶 뒤의 휴식이란 얼마나 단 것인가. 가지는 모든 걸 다 벗어버리고 오직 하늘을 바라며 묵상에 든다. 잎은 울긋불긋 치장했던 몸빛을 벗고 지상으로 고요히 내려앉는다. 모두 편안한 휴식에 든다.

저 나무를 보며 나의 철을 돌아본다. 나도 지금 저들처럼 타오르던 열정의 시절은 넘어선 것 같다. 나는 가지인가, 잎인가. 무엇이라도 좋다. 내가 가지라면 지난날을 돌아보며 긴 사색에 잠겨 있을 것이며, 잎이라면 지상에 터를 잡아 조용히 쉬고 있을 것이다.

내가 저들과 다른 게 있다면, 나의 사색과 휴식은 영원한 세상을 향해 내달을 것이지만, 저들은 그 묵상과 휴식을 통하여 또 다음 세상을 예비한다는 것이다. 아니다. 나에게도 다음 세상이 올 것이다. 나를 기다리는 세상이 있을 것이다.

나무도, 나도 치열한 밥벌이가 끝끝내의 목표가 아니라, 이 사색과 휴식의 시간이 마침내 맞고 싶은 지고의 목표였던지도 모르겠다. 그를 그리며 치열로 살아오지 않았던가. 그 정성스런 밥벌이 뒤에 올 아늑한 휴식을 위하여-.

오늘도 산을 오른다. 저 가지, 나뭇잎과 함께하는 사색과 휴식의 세상을 만나러 오른다.

그렇게 저들 속으로 든다.(2022.11.15.)

                                                                 

 

시를 꿈꾸는 사람들
-제10회 구미낭송가협회 시낭송콘서트를 마치고

 

열 번째의 시 낭송 콘서트가 열렸다. 이번 콘서트의 주제는 가을, 시를 꿈꾸다.’로 정하여 열 번째를 기리기로 했단다. ‘열 번째가 주는 특별한 감회 때문인지 출연자들의 감회와 각오가 유달라 보였다. 무대를 오르는 걸음걸음마다 설렘과 열정이 배어나는 것 같았다.

혼자서 열연하기보다는 윤송, 합송, 시 퍼포먼스, 시극 등 여럿이서 마음 맞추어서 하는 낭송법을 택했다. 서로 어울려 한마음으로 빚어내는 시의 아름다움을 찾아보기 위해서다. 세상 사는 일이란 함께 마음 맞추는 일이 아니던가.

짬만 나면 모이고, 모일 곳만 보이면 만났다. 이른 아침에도 모이고, 해 맑은 낮에도 만나고, 해거름 빛 속에서도 마음을 모았다. 어느 강의실에서도 목소리를 가다듬고, 공원 야외 공연장에서도 운율을 고르고, 어디 찻집에서도 시의 아름다움을 새겨나갔다.

콘서트를 멋지게 치러내기 위해서이지만, 그렇게 모여 마음을 나누는 것만 해도 여간 즐거운 일이 아니었다. 이러다간 어느 소설 속의 조율사처럼 조율에만 빠지는 게 아닐까도 싶었지만, 우리에게는 기다리는 관객과 무대가 있지 않으냐며 환하게들 웃곤 했다.

드디어 그날, 그 시간이 왔다. 좋은 시를 찾아 아름다운 낭송을 해보자며 뜻을 모은 지 강산이 한 번 변하는 세월을 작년에 넘겼다. 그 이력을 무대에 쏟아놓을 시간이 온 것이다. 관객 앞에 서기 전에 일찌감치 모여 무대 리허설을 하면서 결의를 다졌다.

거문고와 가야금의 고아한 이중주 선율로 무대가 열리면서 구은주 시인의 시를 꿈꾸다를 비롯한 여러 시인의 시를 네 사람이 돌아가면서 낭송하는 윤송 순서가 펼쳐진다. 이게 웬 호사다마인가. 두 사람의 마이크가 작동되지 않는다. 출연자는 흔들림 없이 목소리를 높이고, 객석은 정적에 빠졌다. 끝날 때의 박수 소리는 정적의 깊이 만큼이나 세찼다.

출연할 사람들은 모두 손에 땀을 쥐었다. 음향 스텝들이 더욱 분주하게 뛰는 가운데 동심의 세계를 꽃과 별에 부쳐 그려내는 동시 합송이 반짝이는 별 소품과 함께 이어져 나갔다. 할머니와 손녀, 남편과 아내 출연자로 이루어진 가족 낭송팀이 관객들의 눈과 귀를 몰아간다.

잠시 쉬어가는 시간, 테너 성악가가 나와 가곡 몇 곡을 부르면서 관객도 출연자도 숨결을 다듬는다. 이어 낭송과 연기를 함께 듣고 볼 수 있는 시 퍼포먼스를 펼쳐 낸다. 열 번째의 콘서트를 회고하는 배경 화면과 소품으로 시와 동작을 역동적 열정적으로 엮어내면서 콘서트는 절정을 치닫는다. 그 퍼포먼스에 출연했던 회장이 열 번째의 따뜻한 위안과 행복을 드리고 싶다며 관객 향해 인사했다. 갈채가 공연장에 메운다.

절정이 한고비를 넘어설 때 한 수필가가 낭송가와 짝지어 삶의 의미를 나무에 비겨 새긴 자작 수필을 낭독하며 콘서트의 의의를 돋우어나갔다. 시 낭송이 좋아 시 울림이 있는 학교를 교육 시책으로 삼고 있는 교육감님이 출연하여 정감 있는 낭송으로 무대를 더욱 뜻깊게 했다.

마지막 순서로 우리 문학사에서 서로 주고받으면서 뜻과 마음을 나눈 화답 시를 골라 극으로 엮어 나간 시극이 무대를 달게 했다. 그 시들은 출연자들 서로 나누는 마음의 화답이기도 했다. 시의詩意에 맞춘 출연자 의상이 관객들의 눈을 한곳으로 모았다.

숨 가쁘게 펼쳐온 순서들이 끝났다. 객석은 박수와 함성의 열기로 끓었다. 첫 순서의 마이크 고장이 전화위복이 된 걸까, 스텝들도 출연자도 긴장감을 드높여 끝까지 매끄럽고도 아름다운 시의 향연을 이어갔다. 그간에 쌓아온 마음과 열정을 남김없이 쏟아 냈다. 여럿이서 팀을 이루어 낭송하는 데도 누구 하나 어긋나거나 막힘이 없이 미려한 화음을 이루었다. 하나같이 한결같이 시를 꿈꾸는 사람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피날레를 장식하는 싱 얼롱 순서다.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라는 노래로 객석과 무대가 마음을 하나로 모은다. 우리의 오늘 시월은 참 멋졌다는 소곳한 뿌듯함과 함께 ‘~살아가는 이유 꿈을 꾸는 이유가 모두 너~’, ‘가 바로 시라는 걸 환희로운 목소리에 담아 나갔다. 이제 헤어질 시간, 모든 출연자가 무대에 올라 낭송협회의 노래를 합창하며 관객 향해 손을 흔든다.

…… 낭랑한 목소리에 아늑한 꿈 싣고 / 시 속에 피어오르는 오롯한 사랑 향해 / 따뜻한 삶을 위해 정겨운 세상을 위해 / 좋은 시 찾아가는 구미낭송가협회~”

갈채를 쏟아 내던 관객들이 모두 빠져나갔다. 무대에 기념 촬영하는 출연자만 남았을 뿐 객석은 텅 비었다. 빈 객석을 바라보며 허전함을 느끼던 여느 해와는 달리 객석이 비어 보이지 않았다. 무대에 쏟아 낸 꿈이 객석에서 피어나고 있는 것 같다.

무대에도 객석에도 시가 꿈이 되어 피어나고, 그 꿈이 출연자들을 더 깊은 꿈에 젖게 했다. 열 번째를 넘어 스무 번째가 되고, 서른 번째가 될 때는 어떤 모습이 되어 무대에 오를까, 환희로운 상상과 함께 비상하는 걸음으로 뒤풀이 길에 나선다.

시를 꿈꾸는 사람들의 열 번째 오늘-. (2022.10.30.)

                                                                      

 

풀숲 길이 좋다

 

오늘도 아침 산책길을 걷는다. 두렁길 지나 마을 숲에 이르러 깊은숨 들이쉬며 체조하고 강둑길에 오른다. 강둑길을 걸으며 물도 보고 풀꽃도 보다가 그 길이 끝나면 산을 파헤쳐 길을 낸 곳을 오르고 내려 골짜기로 든다. 나의 산책은 변함없지만, 걷는 길이 많이 변했다.

지난날의 강둑길이 그립다. 산이 막아서는 길 끝까지가 풀숲 길이었다. 그 길을 걷다 보면 풀잎에 맺힌 이슬에 바짓가랑이가 젖기도 하고, 도깨비바늘을 비롯한 풀씨들이 달라붙고, 칡이며 환삼덩굴이 발목을 걸어 성가시게도 했다. 그래도 그 길이 좋았다.

마을 사람들은 그걸 귀찮게 여겨 관에다 진정했다. 어느 날 갖가지 장비를 동원하여 풀숲을 걷어내고 회반죽을 들이부었다. 바짓가랑이도 안 적시고, 덩굴이 발목을 잡지도 않는 길이 되었다. 그 길로 차며 경운기가 다녔다. 심장 한쪽을 가르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어느 날 굴착기가 올라가 강둑 끝자락 산을 허물었다. 크고 작은 나무들이 맥없이 쓰러졌다. 비탈 한 자락을 평지로 만들기도 하고, 비탈을 가로질러 골짜기로 드는 길을 내기도 했다. 산주는 산림을 경영할 것이라 했다. 산림 경영은 베고 파헤치기부터 해야 하는 건가.

골짜기 길은 우거진 풀숲 사이로 사람 하나 다닐 만한 오솔길이 나 있었다. 그 골짜기 깊숙한 곳에 누가 벌통 여러 개를 갖다 놓고 조그만 집도 몇 채 지었다. 집은 개집이었다. 그 후로 아침마다 트럭이 지나다니더니 두 줄기 바퀴 길이 났다.

그래도 풀은 산다. 틈만 있으면 나고 산다. 콘크리트 틈서리에서도 벽돌 사이에서도 풀이 사는 걸 보지 않는가. 농부가 두렁풀을 아무리 치고 베어도 풀은 지치지 않고 산다. 어느 시인이 퍼렇게 벼린 낫이여, 풀은 이기지 못하느니 / 낫은 매번 이기고, 이겨서 자꾸 지고 / 언제나 풀은 지면서 이기기 때문이다.”(민병도, 낫은 풀을 이지 못한다)라기도 하지 않았던가. 그 풀들이 꽃을 피운다.

온 강둑길이 회반죽으로 덮여도 풀은 길섶을 뚫어냈다. 길 가장자리에 철이면 철마다 다른 풀들이 우거지고, 그 풀들은 색색의 철꽃을 피워낸다. 봄까치꽃, 현호색, 냉이꽃, 애기똥풀, 메꽃이며 나팔꽃, 개망초, 지칭개, 구기자, 무릇, 박주가리, 갈퀴나물, 나도송이, 둥근잎유홍초, 쑥부쟁이, 구절초……. 철을 연달아 피고 지기를 그치지 않는다.

산주가 경영을 쉬어가려는지, 뜻을 접었는지 한 해를 돌보지 않는 사이에 나무를 쓰러트리고 비탈을 가로질러 낸 길은 어느새 무성한 풀숲 길이 되었다. 아무것도 없는 흙길 돌길에 온갖 풀들이 제 세상을 만난 듯 쑥쑥 돋아났다. 그 풀들이 취나물, 물레나물, 등골나물, 짚신나물……, 갖은 나물 꽃들을 피워내기도 했다.

그 경영의 길을 오르고 내려 골짜기로 든다. 바퀴 길이 두 줄기로 철길처럼 나란히 굽이를 돈다. 바퀴 자리만 비워주고는 물봉선이며 여뀌, 사광이아재비, 고마리 들이 피울 꽃들을 피워낸다. 복판에는 차가 지나도 다치지 않을 질경이가 나지막이 앉아 잎을 흔들고 있다.

하늘 맑은 아침, 윤슬이 반짝이는 강물과 함께 강둑길을 걷는다. 길가에 늘어선 벚나무를 마구 기어오르던 칡넝쿨도 기가 꺾인 듯 잎을 늘어뜨리고, 샛노란 얼굴로 아침 길을 열어주던 달맞이꽃도 지고, 조금만 나팔을 귀엽게 벌린 다홍빛 둥근잎유홍초가 아침 인사를 한다.

쑥대 사이로 비수리가 수줍은 듯 조그만 꽃들을 벌이고, 잔잔하게 핀 노란 산국이 바람에 하늘거린다. 하얀 미국쑥부쟁이가 저도 있다며 꽃잎을 흔든다. 비록 길 가장자리로 밀려나 있을지라도 쉼 없이 피고 진다. 그 풀이 반겨주는 아침 길이 고즈넉하다.

강 건너 길 벚나무 단풍이 얼굴을 비추고 있는 강물을 보며 산 부수어 길을 낸 경영길을 오른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제집인 듯 자리 잡고 있는 풀꽃들이 어여쁘다. 철 늦은 개망초며 개쑥부쟁이가 아침 빛을 받아 반짝인다. 제멋대로 나 있는 진득찰이며 도깨비바늘들이 저들에도 꽃이 있다는 듯 바짓가랑이를 잡는다.

골짜기 길로 내린다. 트럭이 아침 일을 위해 골짜기로 든다. 차 아래 깔리는 질경이는 잠시 몸을 수그리는 듯하지만 지나자 다시 활개를 편다. 길섶에는 진분홍빛 물봉선 축제판이라도 벌이는 듯 흐드러지게 피었다. 줄기에 가시는 달았지만, 사광이아재비 작은 꽃이 연지 찍은 듯 볼이 붉다.

골짜기를 돌아 나오며 돌아보고 또 돌아본다. 어느 자리 어떤 자리를 마다치 않고 저리 꽃을 피워내는 것들은 무슨 심사를 두고 있을까. 어떤 세상이든 가리지 않고, 어떤 자리든 탓하지 않고 그저 태어나 제 피울 꽃을 열심히 피우다가 제철이 지나가면 아쉬움 두지 않고 떠나는 저 꽃들은 어떤 속내를 간직하고 있을까.

이슬 머금은 아침 풀이 바짓가랑이를 적실지라도, 풀씨가 바늘이 되어 찔러올지라도, 덩굴풀이 발목을 감아 젖힐지라도, 무얼 탓하지도 바라지도 않고 세상을 꽃 피우다 가는 저 꽃 세상이 좋다. 그 풀숲 길이 좋다. (2022.10.20.)

                                                                      

 

아름다운 예술 섬을 바라며

 

울릉문학지가 15집을 내게 되었다니 감회가 각별하다. 연간지로 내는 것이니 그만한 햇수의 세월이 쌓였다는 것이다. 언제 세월이 그리 흘렀을까. 나는 지금도 울릉도가 그립다. ‘신비의 섬그 신비가 그립다. 나의 그 그리움 속에는 소곳한 보람도 자리하고 있지만, 아릿한 기억의 희미한 그림자도 함께 어려 있다.

두 번째로 울릉도 발령을 받았을 때는 주위 사람들 모두가 천만뜻밖이라 했다. 울릉도란 승진을 위해서 가거나 승진하여 초임 발령으로 가는 곳인데, 이미 승진하여 초임도 겪은 사람이 왜 울릉도로 가는지 모르겠다며, 의문과 걱정과 위로가 함께 섞인 말씀들을 전해왔다. 나만의 비밀스런 일을 그들이 알 리가 없다.

그 몇 해 전에 울릉도로 발령받아 해포를 살다가 나왔었다. 바다와 산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기기묘묘한 풍광이며 섬사람들의 순박한 인심에 매료되었던 기억을 늘 간직하고 있었다. 육지로 나온 후에는 그 감동과 감회를 오롯이 담아 수필집으로 엮어내기도 했다. 다시 한번 그 섬을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을 안고 살았다.

그런데, 문학인들을 비롯한 여러 장르의 예술가들이 섬을 다녀오기만 하면 아름다운 예술 작품을 이루어 내는데, 섬사람들 가운데서는 예술 작품이며 예술가가 왜 나오지 않는 걸까 하는 상념이 들었다. 예술 작품을 빚어낼 정서의 샘이 없어서가 아니라 길어 올릴 두레박이 없어서일 거라는 데에 생각이 닿았다.

대수롭잖은 안목일지라도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문학을 통해, 모임이라도 만들어서 그걸 두레박 삼아 섬사람들의 예술 정서를 길어 보면 어떨까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보니 그 신비의 섬, 그 바다가 더욱 그리워졌다. 어서 달려가고 싶었다.

기회를 엿보고 있던 차에 마침 내가 가고 싶은 곳에 자리가 비었다기에 얼른 지원했다. 다시 배를 타게 되었다. 마치 첫사랑을 다시 찾아가는 것 같아 바다의 파도보다 마음의 파도가 더 거세게 일었다. 막상 섬에 닿았을 때는 초행 때와는 감동의 결이 좀 다르긴 했지만, 섬은 역시 아름다웠다.

먼저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기를 애써나가면서, 내가 해 보고 싶었던 문학회를 만드는 일에도 마음을 데워갔다. 뜻을 같이할 수 있는 사람을 알음알음으로 찾아도 보고 권유도 하여 마침내 십여 명의 회원과 더불어 마음을 모을 수 있게 되었다.

봄이 무르익어가던 오월에 섬 최초의 본격 예술 단체라는 자부심과 함께 창립총회를 열고,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작품을 나누어 읽으며 기량을 다져갔다. 섬 살이의 애환을 그린 내용이 많은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첫사랑이란 추억 속에 있을 때가 더욱 아름다운 거라 했던가. 섬사람 중엔 내가 소망하는 것과는 다른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없지 않아 때로는 마음을 가볍지 않게도 했지만, 내가 해나가는 일을 이해해 주고 격려해 주는 분들도 없지 않아 기운을 추슬러 갔다.

특히 이상인 울릉문화원장님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문화원에서 회지 출판비를 부담하기로 했다. 단비 같은 성원이었다. 그때 문화원과의 인연으로 내가 섬을 떠난 후에도 손영규 원장님, 현재 최수영 원장님에 이르기까지 문화원과 울릉문학회는 한마음이 되어 울릉문화를 함께 일구어 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회가 창립된 지 한 해가 지날 무렵 드디어 회지 창간호를 내게 되었다. 녹음이 짙어갈 무렵 모든 회원을 비롯한 지역의 각계 인사들과 함께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그때 나는 개척민의 심정으로라는 제목의 창간사를 썼었다. 지역의 유수한 분들이 울릉문학과 울릉문화의 앞날을 격려하고 축복해 주었다. 함께한 이들은 섬의 역사, 문화, 문학의 새로운 꽃을 피울 것이라는 기대와 긍지가 넘쳐났다.

그렇게 문학회를 만들어 회지 창간호를 내어놓고 전근이 되어 육지로 떠나왔다. 울릉문학의 시간만큼 세월이 흘렀다. 그 세월 속에서 나는 섬사람들에게 잊혔을지 몰라도, 회지는 해를 거르지 않고 매년 나오고 있고, 회원들도 활동을 잘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섬의 역사 한 부분을 개척했다는 자긍심이 남몰래 느껴지기도 했다.

지금 나는 생애의 황혼 녘을 살고 있다. 울릉도를 떠나와 두어 해를 현직에 더 머물다가 정년 퇴임을 하고, 세상의 번다를 다 잊어보리라 하고 산 좋고 물 정한 곳을 찾아 문경 어느 산골짝에 터를 잡아 조용히 살고 있다. 그렇게 산중 사람이 된 지도 어느덧 강산이 바뀌는 세월이 흘러갔다.

삶의 연륜을 쌓아가다 보니 지난 세월이 돌아보일 때가 있다. 돌아보노라면 내 삶은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그때는 최선의 일이라고 팔을 걷어붙였던 것이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실수요, 만용에 지나지 않았던 것 같아 스스로 민망해질 때가 있다.

생애의 그런 애환과 고락 속에서도 다소곳이 핀 잉걸불처럼 따스하게 안겨 오는 기억 중의 하나가 울릉문학회를 만든 일이다. 울릉문화의 작은 싹이나마 틔우게 한 것 같아 소곳한 미소가 지어지기도 한다. 근래에 들려 오는 소식에 의하면 울릉문학회를 비롯한 섬 안의 26개 예술 단체가 모여 울릉군 문화예술단체 연합회를 결성했다고 한다. 울릉문학회를 기폭제 삼아 울릉문화가 한층 빛을 더해가고 있는 것 같아 미소가 홍소로 번져 나기도 한다.

거기에 보태어 보듬고 싶은 소망이 있다면, 울릉문학회에서도 더 넓은 문단에 등장하는 문학인들이 많이 나와 한국문인협회 울릉지부울릉문인협회로 발돋움하는 것이다. 지금 같은 열정들이면 머잖아 그런 때가 오리라 믿는다. 그리하여 울릉도가 섬의 풍광만 아름다울 뿐 아니라 아름다운 예술로도 가득한 섬이 되기를 빌어 본다.

그리운 섬 울릉도, 울릉문학회 그리고 울릉 문학인들이시여, 더욱 아름다운 예술 섬의 찬연한 등대가 되기를-!

                                                                    

 

나무의 숙명

오늘도 산을 오른다. 오르며 묻는다. 나는 왜 지금 이 산을 오르고 있는가. 어디에서부터 와서, 어떠한 길을 걸어 이 산에 이르렀는가. 어디는 어떻게 얻은 것이고, 은 또 어떻게 이어져 왔는가. 얼마나 많은 세월의 테를 감으며 여기까지 왔는가.

나는 지금 나무를 보러 오르고 있다. 나무는 나의 거울이다. 나는 태어난 곳에서부터 왔다. 태어나보니 태어난 곳이었다. 아득한 길을 걸어 여기까지 왔다. 순로가 손잡아 끌기도 했지만, 험로가 밀쳐내기도 하는 길을 힘겹게 걷기도 했다.

나무를 본다. 저도 이곳을 가려서 태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바람에 불리다가, 혹은 어느 새의 부리를 타고, 또는 뉘 몸에 의지해서 땅에 떨어지고, 그 자리가 제자리 되어 싹이 트고 자랐을 것이다. 그 자리가 바로 평생의 자리가 되었을 것이다.

나무는 태어난 자리가 클 자리고, 살 자리고, 죽을 자리다. 옴짝달싹할 수 없는 나무의 숙명이다. 나는 태어난 자리나 클 자리는 가릴 수 없었지만, 살 자리는 가리기를 거듭해 왔고, 지금도 가려서 가고 있다. 죽을 자리도 가려서 가지게 될 것이다.

태어나 자라고 살아오면서 나에게 주어지는 건 모두가 선택이었다. 무엇을 어떻게 선택할까 하는 것은 내 능력과 의지에 달린 일일 뿐이었다. 누가 나에게 조언을 해줄 수는 있을지언정 결정해줄 수는 없었다. 그 고독한 결정 속을 고단하게 살아야 했다.

나무는 평생을 두고 전혀 가릴 수 없는 저의 자리를 한탄하고 원망할까. 그렇게 몸부림치다가 말라 들기도 하고, 그 속을 못 이기어 자진이라도 할까. 그런 나무가 있다는 말은 들은 일이 없다. 나무는 오직 저의 자리에서 주어진 삶을 가꾸어 나갈 뿐이다.

사람은 자리를 가릴 수 있어 자유롭고 행복한가. 그런 사람도 있기는 하겠지만, 많은 사람은 그 가림으로부터 쟁투를 시작해야 한다. 더 편한 자리, 호화로운 자리, 명예로운 자리를 차지할 일에 매몰하며 때로는 남을 매몰차게 짓이겨야 한다.

나무는 한살이가 힘은 들지언정 저의 자리가 있어 행복하다. 평지면, 비탈이면, 바위틈이면 어떤가. 나면서부터 얻은 제자리가 아닌가. 하늘, , 바람으로부터 부여받은 제 터전이 아닌가. 누가 뺏을 수도 없는 저의 영토가 아니던가.

나무는 그 영토에서 묵묵히 살아간다. 볕살이 내리면 볕살을 받고, 바람이 불면 바람을 안으면서, 좀 힘들면 힘든 대로 상처가 지면 지는 대로, 흐르는 세월을 안으로 감으면서 모든 것이 저를 태어나게 한 하늘의 일이라 여기며 그저 살아간다.

사람이 지고 나는 숙명은 행복할 수도 있고 불행할 수도 있지만, 나무의 숙명은 행복하다. 사람은 제 숙명에 따라 잘 살 수도 있고, 힘들게 살 수도 있고, 못 살 수도 있지만, 나무는 제 자리가 행복이다. 저 푸른 잎들을 보고, 저 빛깔 고운 꽃들을 보라. 행복하지 않은가.

같은 나무라 해서 모두 같은 성질과 모습으로 사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제 사는 자리에 따라 어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없지 않다. 물이 푼푼치 않은 땅이면 뿌리의 길이를 달리해야 하고, 볕살이 너그럽지 않은 곳이면 가지의 방향과 잎의 크기를 바꾸어야 한다.

뿌리는 물이 있는 곳을 찾아 뻗어 내려가야 하고, 잎과 가지는 햇살이 좋은 곳을 따라 펼치고 뻗어가야 한다. 다른 것들보다 더 길고 많은 뿌리가 자라게 해야 하고. 더 넓은 잎이며 더 많은 잔가지를 달아야 한다. 숙명을 넘어서는 운명이라 해야 할까.

숙명은 타고난 것이라 바꿀 수가 없지만, 운명은 명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던가. 숙명을 덧채우기 위해 운명을 부릴 수도 있다. 그것은 제 일일 뿐이다. 남의 것을 앗아 제 명을 보태는 것이 아니라, 제가 저를 위해 쓰는 애로 제 운명을 늘려나갈 뿐이다.

칡넝쿨처럼 고약하게 남의 몸을 감아 올라 제살이를 지키려는 것도 있지만, 그런 걸 만나면 그 잎보다 제 잎을 더 높이 세우려 할 뿐이다. 그것도 제 숙명이라 여기는 까닭일까. 그런 모습들을 보고 나무를 견인주의자라 했던가.

사람은 숙명보다는 운명을 부려 사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운명은 공들여 개척해 나갈 만한 일이라 할지라도, 그 과정에서 다른 이와 다투기 마련이다. 다투면 이겨야 하고, 지면 품격을 말살당하든지 아니면 죽기까지 해야 한다. 치열한 다툼일수록 더욱 그렇다.

저 어디 정치판을 보라. 다른 무리를 향해서든, 저들끼리든 서로 물고 뜯기다. 죽기 아니면 살기다. 그 판은 싸움 그칠 날이 없다. 그 판만이랴. 남을 받아들이는 일은 쉽지 않아도 물리치고 탓하는 일은 어렵지 않고, 참기는 어려워도 화를 돋우기는 쉽다.

나무는 설령 숙명을 이기고 싶다 할지라도 남과 싸울 일은 없다. 저들 사이에도 경쟁이란 왜 없을까. 옆에 큰 키가 있으면 더 크려 하고, 다른 것보다 먼저 햇빛을 차지하고 싶은 생리야 왜 모를까. 그래도 그러기 위해 남을 짓밟으려 하는 나무는 없다.

나무는 다른 것과 다툴지라도 그저 저의 일로 할 뿐이다. 이를테면 선의의 경쟁이다. 사람도 왕왕 그런 경쟁을 말하지만, 정녕 선의로써 경쟁하며 사는 이는 누구인가. 그 거룩한 현자는 어디에 있는가. 나무는 제 숙명을 아름답게 만들어 가는 현자요, 인자다.

오늘도 산을 오른다. 다소곳한 숙명을 만나러 오른다. 그 거울을 보러 오른다.

사람아, 지고 있는 숙명에 겨울 때는 산으로 가자. 나무를 만나러 가자. (2022.10.1.)

                                                                  

 

나무의 무소유

오늘도 산을 오른다. 나무를 보러 오른다. 나무는 내가 보려 하는 그 자리에 언제나 서 있어 아늑하게 한다. 늘 생기로운 모습으로 서 있어 더욱 아늑함을 준다. 막 잎이 날 때든 한껏 푸르러질 때든, 심지어 잎 다 지우고 맨몸으로 서 있을 때조차도 고즈넉한 생기가 전류처럼 느껴져 온다.

나무는 눈을 틔워 잎을 피워내던 시절을 거치면 푸름의 철을 맞이하게 된다. 잎이 자랄 대로 자라 푸를 대로 푸르러진다. 그즈음에 이르기까지 딴은 몹시 분주했을 것이다. 물을 빨아올리고, 햇볕을 조아려 받아 생체 조직을 작동시켜 엽록소의 빛깔로 드러내기까지 얼마나 분망했을까.

나무에게 욕망의 철이 있다면 바로 이 시절이 아닐까. 푸름에 대한 욕심, 생장에 대한 푸른 욕심이다. 나무의 그 욕심은 여기까지다. 누구의 무엇도 탐내지 않고 스스로 한껏 푸르러질 수 있는 데까지다. 제살이 한철의 절정을 구가할 수 있는 이 모습까지다. 나무는 제철을 넘어서는 욕심을 모른다.

다음 철에 이른다 싶으면 그 풋풋했던 푸름의 빛깔을 미련 없이 벗는다. 그 빛깔을 벗고 나면 지닌 품성을 따라 노란빛, 붉은빛, 갈색빛 들을 띠게도 되지만, 어쩌면 그런 빛들이 타고난 제빛인지도 모른다. 제빛을 찾아 푸름의 싱그러운 여행을 했던지도 모른다. 그 여행길의 끝에서 제빛과 만나는 것이다.

이 빛깔들에도 마냥 머물지는 않는다. 갈 것은 가야 올 것이 온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바람의 철도 바뀌어 부는 품새가 산산해진다 싶으면 제 태어났던 자리로 내려앉는다. 익숙한 몸짓으로 기꺼이 내린다. 가지도 이미 떨켜로 잎과의 작별을 예고한 터였다. 보내는 것이 곧 돌아오게 하는 것임을 또한 모르지 않는다.

어떤 나무들, 이를테면 감태나무며 떡갈나무 중의 어떤 것은 끝끝내 마른 잎을 붙들고 있기도 한다. 가기 싫고 보내고 싶지 않은 속된 욕망 때문일까. 아니다. 다음에 날 것의 자리를 지켜주기 위해 고한의 계절을 인내로 견뎌내는 것이다. 눈물겨운 모성의 자력이라 할까.

이제 나무는 모든 것을 모든 것을 벗어버렸다. 그 왕성했던 갈맷빛 청춘도, 농익은 장년의 빛깔들도 모두 내려놓았다. 아무것도 갖지 않았던 처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더 많은 것을 채울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더 많은 것이란 소유욕이 아니라 세상을 맑히기 위한 무소유의 다른 마음일 뿐이다.

나무의 허심은 잎을 떨어뜨리는 것에만 있지 않다. 가지도 떨어뜨린다. 나무는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수많은 가지를 뻗어내지만, 그것들을 생애 끝까지 다 품지는 않는다. 나무는 떨어뜨릴 건 떨어뜨려야 새로운 것을 키워낼 수 있음을 알고 있음은 물론이다. 키 큰 나무들을 보라. 줄기에서 밑동에 이를수록 가지가 없거나 드물다. 성장해가면서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산을 오르다 보면 마른 나뭇가지들이 떨어져 있거나 툭 하고 떨어지는 모습을 어렵잖게 볼 수 있다. 저들이 성장해 나가는 방식이기도 하지만, 소유에 욕심을 두지 않는 까닭이다. 그렇게 정리하지 않는다면, 그 많은 것을 품고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산을 걷는 이들은 산과 나무를 보면서 감명과 위안을 얻는 일 말고 또 하나 해야 할 일이 있다. 걷는 발 앞에 떨어져 있는 가지를 치워 길을 트는 일이다. 비바람이라도 심하게 치고 난 다음이라면 톱 하나쯤 들고 오르는 일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들어서 치울 수 없는 건 잘라서라도 치워야 하기 때문이다.

불평 삼을 일은 아니다. 나무의 삶과 그 속내를 안다면 불평할 거리가 아님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가지를 그리 버리지 않는다면 그 존재가 얼마나 힘들 것이며, 그로 인해 나무가 생기를 잃는다면 산을 올라 무엇에서 감동과 위안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길을 막고 있는 마른 가지들은 편한 자리로 옮겨주면 된다. 함께 사는 일이 아닌가.

나무가 내려놓는 것은 잎과 가지뿐만이 아니다. 마침내는 그 몸을 다 내려놓는다. 나무는 명이 다하면 선 자리에서 그대로 생애를 내려놓으면서 강대나무가 된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살아있을 때도 그러했지만, 내려놓은 생애로는 뭇 짐승들이며 온갖 미물들의 더욱 아늑한 보금자리가 되어준다.

거센 바람 부는 어느 날 선 자리에서 쓰러지게 되어도 온갖 것들의 보금자리가 되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그러면서 비에 젖고 바람을 맞으며 시나브로 흙이 되어간다. 어느 세월에일지 한 줌 흙으로 돌아가 있다가 하늘이 주는 씨를 받아 다시 태어날 것이다. 다시 오랜 세월을 감으며 무소유의 생애를 또 시작할 것이다.

나무의 무소유란 지지불태知止不殆에 대한 깨달음이요 그 실현이라 할까. 그 아리따운 꽃도 풋풋한 푸름도 세월을 이겨낸 붉고 노란 빛깔들도 내내 가져가려 하지 않는다. 놓을 때 놓을 줄 알고 질 때 질 줄을 안다. 그 마음 그 뜻이 산을 오르는 내 걸음을 이리 아늑하게 하고 있음을 나무가 내려놓은 가지를 옮기며 다시 돌아본다.

그 나무를 보면서, 내려놓은 가지를 들어 옮기면서 나는 또 세사의 무엇을 욕심내고 있는가. 무엇에 마음을 졸여 심사를 어지럽히고 있는가.(2022.9.15.)

                                                                    

글 쓰는 병
-이규보의 '詩癖을 보며

 

마을 사람들이나 아내의 눈에 비친 나는 종일을 한가롭게 빈둥거리다가 해거름이면 산에나 오르고 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아내나 남들처럼 무얼 정성 들여 심거나 땀 흘려 흙을 쪼는 건 어쩌다 부름을 받아서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번다했던 생의 한 막을 거두면서 이 한촌을 찾아올 때는 그저 조용히 살고 싶어서였다. 텃밭 가꾸기는 흙을 좋아하는 아내의 몫으로 미루었다. 아내도 위하고 나도 위한다는 변명과 함께 그 신념(?)을 십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잘 준수하고 있다.

그렇지만, 남들이 그리 보는 것처럼 마냥 시간만 탕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침 강둑을 거닐며 물이며 풀꽃, 해거름 산을 오르며 나무와 숲을 보면서 느꺼워해야 하고, 신문으로 뉴스로 세상 소식도 보고 들어야 하고, 읽고 싶은 것도 읽어야 하고, 글도 써야 하고…….

하루하루 흘려보내는 시간 속에 빈틈은 별로 없다. 딴은 이리 분주스럽게 살고 있음에도 늘 빈둥거리는 사람으로 화인 찍히는 건 좀 억울하지만, 그 일에 대한 내 분망을 헤아려 너그러이 받아줄 이도 만만치 않아 민연할 때가 없지 않다.

그 일들 속에서 나를 가장 곤혹스럽게 하는 것은 글쓰기다. 어쩌다 내가 글과 연분을 짓게 되었는지, 글이 나를 찾아온 후로는 쓰든 안 쓰든 하루도 글 생각을 떠나 본 적이 없다. 쓸 때는 써서 생각하고, 못 쓸 때는 못 써서 생각한다.

한동안 글을 안 쓰거나 못 쓰고 있으면 공연한 불안감이 무슨 해충처럼 내 속을 스멀스멀 기어 다니는 것 같다. 한동안이라는 것이 조금 길어지기라도 할 양이면, 이러다간 영영 못 쓰게 되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에 전율마저 느끼기도 한다.

누가 나를 글 안 쓴다고 윽박지르는 것도 아니다. 경향 지지紙誌들이 청탁을 빈번히 해오는 것도 아니다. 그리 널리 알아주는 내 문명文名도 아니다. 그러면서도 글을 안 쓰거나 못 쓰고 있으면 왜 그리 좌불안석하는 걸까.

어쩌면 안 들어야 할 습벽이 든 까닭인지도, 안 걸려야 할 병에 걸린 탓인지도 모르겠다. 그 불안에서 조금이라도 멀어지고 싶어, 멀어지는 만큼 마음의 평안을 들이고 싶어 모니터 앞에 앉는다. 기억들을 뒤적거리기 시작한다.

시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시 쓰는 병[詩癖]’이라 하여 이를 시로 쓴 고려 문인 이규보(李奎報 1168~1241)가 떠오른다. 그 시에서 한 번 붙어 떨어질 줄 모르는 이 병은 / 마침내 나를 이 모양 만들었네. / 낮이나 밤이나 심간을 도려내 / 몇 편의 시를 짜내고 있네.(一着不暫捨 使我至於斯 日月剝心肝 汁出幾篇詩)”라 했다.

나도 이규보처럼 글을 향해 밤낮으로 심간을 도려내듯이 하지만, 나의 글은 그의 시처럼 한꺼번에 몇 편씩 써낼 수 있는 건 아니다. 한 달에 한 편을 쓸지언정 글을 잡고 있기는 나도 밤낮을 가리지 않는다. 몇 마디, 몇 줄을 쓰든 못 쓰고 있을 때보다는 마음이 가볍다.

그러다 보니 잠을 잘 때도, 길을 걸을 때도 머릿속에서는 늘 글을 쓰기도 지우기도 하고, 고치기도 다듬기도 한다. 강둑을 걷거나 해거름 산을 오를 때가 나에게는 생각을 정리하기에도, 글을 다듬기에도 거침새 없이 편안한 시간이 된다.

그렇게 때와 곳을 가리지 않고 마음을 쓰고 애를 태운 끝에 나온 글은 어떤 글일까. 아침마다 보는 강물처럼 유려하게 흘러가는 걸림 없는 문장일까. 해거름마다 오르며 보는 넉넉한 산 같고 풋풋한 나무 같은 글일까.

아니다. 무엇이 맺혀있어 돌부리 많은 길 같기도 하고, 길 못 찾아 헤매고 있는 미아의 겁먹은 눈길 같기도 하고, 무슨 맛인지 모를 풋과실 같기도 해서 누구에겐지 모를 부끄러움으로 얼굴을 붉히기도 한다.

딴은 공들여 썼다 하면서도, 이걸 글이라도 썼단 말인가 하고 돌아보는 내 모습이 너무나 작고 초라해 보여 헛웃음이 나올 때가 있다. 당대의 대문장가인 이규보마저도 이런 심정에 잠길 때가 있음에야 어쭙잖은 내 글이야 오죽할까.

그는 온몸에 기름이 마르고/ 이제는 살점마저 남아 있지 않을(滋膏與脂液 不復留膚肌)’ 만큼 고심한 끝에 쓴 시를 두고도 그렇다고 놀랄 만한 시를 지어서 / 천추에 남길 만한 것도 되지 못하니 / 손바닥을 비비며 홀로 크게 웃다가 / 웃음을 그치고는 다시 읊조려 본다,(亦無驚人語 足爲千載貽 撫掌自大笑 笑罷復吟之)”라 했다.

온 마음을 다 바쳐 쓴 시를 보니 하도 같지 않아 스스로 비소誹笑를 지으며 허탈에 빠지다가 그 웃음 그치고 나면 다시 시를 읊조리게 되니, 그야말로 시 짓는 병을 고질로 앓고 있는 것 같다.

나 역시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수십 년 글을 써오면서 쓴 글을 다시 돌아보면, 마음을 가든히 다잡게 해주는 글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이런 글을 쓰기 위해 밤낮을 두고 그리 앓아야 했던가. 그렇게 앓아도 이렇게밖에 쓸 수 없단 말인가.

허탈하고 허전하여, 이제는 글을 쓰지 않으리라, 않으리라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모니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들기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문득 놀라곤 하는 건 무슨 까닭인가. 나도 저 백운거사처럼 고치지 못할 병을 심히 앓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글 쓰는 병이라 할까.

도리가 없다.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어차피 병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법, 병을 대책 없이 내치려 할 것이 아니라 얼러 친하는 수밖에. 구슬려 옆에 두고 즐기는 수밖에.

나를 한가로이 빈둥거리는 사람이 되게 하는 내 글 쓰는 병이여-.(2022.8.21.)

                                                                        

 

쓰러진 그리움

 

굽은 소나무가 있다. 속을 들여다보면 나이테가 수십 줄은 처져 있을 것 같은 이 나무의 굽은 모양이 예사롭지 않다.”라며 시작하는 나의 글이 있다. 삼 년 전에 썼던 나무의 그리움(경북문단36)이라는 글이다.

그 나무는 뿌리 박은 땅에서 자라 올라가다가 무슨 까닭에선지 거의 직각이라 할 만한 굽이로 몸이 굽어져 버렸다. 굽어진 그대로 살아갈 수는 없었다. 몸을 조금씩 들어 올리다가 다시 직각도 더 넘게 고개를 쳐들었다.

하루 이틀에 그리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수많은 세월을 안고 그렇게 추슬러 나갔을 것이다. 그렇게 곧추서서 한참을 올라가다가 다시 앞쪽으로 조금 굽어졌지만, 다시 몸을 세워 바로 올라갔다. 오직 한곳을 바라면서-.

다 커서 그렇게 굽어진 건지, 굽어지면서 그렇게 자란 건지는 알 수 없지만, 그렇게 굽고 휘어지면서도 오직 향한 곳은 어디였을까. 하늘이었다. 제 태어난 하늘이었다. 씨를 주고 움을 주었던 하늘, 그 하늘을 애타게 그리면서 그렇게 안간힘을 다한 것이다.

그걸 두고 나는 나무의 그리움이라 했다. 모든 나무는 하늘을 향하여 솟고 그 가지들을 뻗는다. 오직 하늘을 향해서만 산다. 그 소나무는 하늘을 바로 바라보기 어려운 몸이었기에 하늘이 더욱 간절했을 것이다. 하늘 향한 그리움이 더욱더 애절했을 것이다.

그 나무가 쓰러졌다. 온몸이 땅으로 내려앉아 버렸다. 그리움이 주저앉아 버렸다. 이제 저 나무는 강대나무가 되어 땅속으로 들 것이다. 오직 하늘 향해 모든 열정을 살랐던 기억들을 안고 흙이 되어 갈 것이다. 언젠가는 그 하늘 다시 우러를 수 있을까.

그 나무는 굽고 휘어진 몸을 하고서, 그럴수록 하늘이 더욱 그리워 지성을 바쳐 하늘 향해 솟구쳐 올랐지만, 다른 나무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잎 넓은 나무들의 그늘에 묻혀야 했다. 제가 하늘을 그리워하듯, 하늘 향해 오르려는 다른 것들을 또 어찌 탓할 수 있으랴.

몸에 칠팔 할 이상의 볕을 받지 못하면 살아내기 어렵다는 소나무들의 속성을 전들 어찌 이겨낼 수 있었으랴. 잎이 말라 들더니 잔가지 큰 가지 마침내 둥치까지 말라 들어 뿌리조차 힘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속성이야 어떨지언정 그리운 하늘, 가린 하늘에 애간장이 더욱 녹아들었을지도 모른다. 하늘을, 하늘을 봐야 하는데, 그 그리운 모습을 눈에 담고 몸에 안아야 하는데 마음대로 볼 수 없고 닿을 수 없어 애를 태우다 몸조차 타들어 간 게 아닐까.

딴 나무는 선 채로 강대나무가 되고서도 수십 년은 가는데, 왜 이리 쉬 쓰러지고 말았는가. 굽고 굽어지면서도 오직 하늘 향해 오르다 보니 한쪽으로만 쏠려 있는 제 몸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뿌리조차도 힘을 잃으니 이 마른 몸은 내려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움 쪽으로만 향해 있던 몸이 쓰러졌다. 그리움밖에 모르던 육신이 쓰러졌다. 그리움이 쓰러졌다. 아니다. 그리움은 쓰러지지 않았다. 결코 지지 않았다. 저 마른 육신 속에 그리움은 송이송이 피어 있을 것이다.

어느 시인은 너의 허락도 없이 / 너에게 너무 많은 마음을 / 주어버리고 / 너에게 너무 많은 마음을 / 뺏겨버리고 / 그 마음을 거두어들이지 못하고 / 바람 부는 들판 끝에 서서 / 나는 오늘도 이렇게 슬퍼하고 있다 / 나무 되어 울고 있다”(나태주, 나무)고 했다.

저 나무도 하늘의 허락도 없이, 하늘에게 너무 많은 마음을 주어버린 걸까. 하늘에게 거두어들이지 못할 마음을 너무 많이 뺏겨버린 걸까. 시인의 나무는 뺏겨버린 마음이 애달파 바람 부는 들판 끝에 서서 울고 있지만, 저 나무는 슬퍼할 겨를도 없었던 것 같다.

애간장이 다 녹아 재가 되듯 말라 들다가 그리움 모두 그러안은 채 저리 쓰러지고 말았다. 이제 저 나무가 가야 할 곳은 오직 흙이 되는 길뿐이다. 그 그리움 곱다시 안은 채로 부는 바람 내리는 비와 더불어 세월 속으로 흙 속으로 들어야 할 뿐이다.

저 나무는 제 태어난 흙, 언제나 그렇게 해 주었던 흙을 믿는다. 땅속으로 들어 흙에 섞여 흙이 되다가 어느 날 다시 새순, 새 얼굴로 세상에 나오게 될 날을, 흙이 그렇게 해줄 날을 믿는다. 그리하여 세상에 다시 나와 새 마음 새 그리움으로 새 하늘 향할 날을 믿는다.

그날은 다시 하늘 향해 가슴 활짝 열고 전생에서 못다 푼 그리움을 다 풀 수가 있겠지. 올 올 한 올도 남김없이 다 사를 수가 있겠지. 저 나무는 쓰러진 채로 앙가슴을 보듬고 여미며 꿈을 꾸고 있다. 언젠가는 다시 필 그리움을 새기고 있다.

쓰러진 그리움, 다시 태어날 그리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