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간직될 나의 책
-
나무는 흐른다출판기념회를 마치고

 

문학도 하나의 사회적 활동이라고 볼 때, 출판기념회가 열리는 것은 반갑고 축복할 일이라 했다. 어떠한 이유에서든 리추얼ritual이 점차 붕괴되어 가고 있는 요즈음의 추세가 안타깝게 느껴지던 터라서 더욱 환영할 만하다 했다. 오늘의 출판기념회를 열게 한 내 수필집에 작품론을 쓴 교수님의 말씀이다.

책을 내는 것은 나를 위한 일인가, 남을 위한 일인가, 아니면 무엇을 위해 내는가에 관한 물음에 대한 답을 쉽사리 얻을 수 없어 쌓여만 가는 작품을 두고도 책 내기를 망설이고만 있었다. 그 물음에 자신 있는 답을 얻을 수는 없었지만, 쌓이고 쌓여 중압감까지 들게 하는 글과 삶의 무게를 어디에 조금이라도 부려 놓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마침 어찌어찌하여 한국예술인복지재단으로부터 창작지원금을 받게 되어 용기를 내었다.

드디어 나무와 산을 주제로 한 수필집 나무는 흐른다가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첫 책을 낸 지 이십 년 만이다. 책이 나오던 날 갖은 감회가 나를 설레게도 하고 조금은 달뜨게도 했지만, 주위 사람들도 나 못지않게 반가워하고 기뻐해 주었다. 오랜 세월 시 낭송이며 수필 공부를 나와 함께해온 사람들은 모처럼 나온 내 책을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다고들 했다.

두 단체가 주최를 맡아 출판기념회를 준비해 나갔다.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 고마운 마음들이 넘어서기 힘든 장애물 앞에서 주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코로나 대유행 때문이다. 기념의 뜻을 곱게 새기고 싶은 마음들은 그 고약한 유행 앞에서 일단 주저앉아야 했다. 좋은 날을 기다리기로 했다. 책은 밀폐된 상자 안에서 답답한 잠을 이루어 갔다.

곡절을 거쳐 겨우 장소와 시간을 잡아 기념회를 열기로 한 날,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는데 그 괴팍스러운 유행은 거리를 두고 띄엄띄엄 앉아 밥을 먹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못 하게 했다. 그리하는 것으로 어찌 모처럼의 출간을 뜻깊게 기릴 수 있단 말인가. 나보다 주최 단체 임원들이 더 발을 굴렀다. 부랴부랴 수소문하여 소략하게나마 기념회를 열 수 있는 곳을 얻어냈다. 지역 도서관 강의실이었다. 예정된 장소에서 멀지 않아 다행이었다. 모두 바쁜 걸음으로 옮겨갔다.

호사다마일까, 이 시국에 그러한 일을 하려 한 게 잘못이었을까. 그런 상황 속에서도 책의 출간을 기려 주려는 회원들의 의기가 눈자위를 뜨겁게 했다. 내가 복이 많은 걸까, 회원들의 마음이 아름다운 걸까. 겨우 현수막 하나만 걸고 마이크도 없는 조촐한 기념회를 진행해 나가야 했지만, 마음은 준비해온 색색 아리따운 장식품들이며 우렁찬 음향 기기 속을 유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사회자가 먼저 주최자인 문학회 회장을 소개했다. 회장께서는 나와 같은 시기에 함께 울릉도를 산 인연을 가지고 있고, 섬 살이의 정경을 담아서 낸 내 첫 수필집에 서평을 쓰기도 했다. 보잘것없는 내 문학적 이력을 먼저 소개한 후, 첫 책에 얽힌 사연과 함께 오늘 두 번째 책을 내기까지의 역정을 그려나가면서 더욱 건필하기 바라는 것으로 축복해주었다.

내 책의 작품론을 쓴 문학평론가 교수께서 연단에 섰다. 어려운 여건을 무릅쓰고 이런 기념회를 연다는 것부터가 감동이라며 나의 작품 세계를 풀어냈다. 자연 귀의를 통한 진정한 귀향은 인간 본성을 회복하기 위한 자기 수행이고 구도의 길이라며 이 책의 저자는 지금 그 구도의 길을 무던히 걷고 있다고 했다. 내가 정말 그렇게 살고 있는가 돌아보려는데, 교수께서는 앞으로 자연 생태 문제에도 관심을 가져 달라고 당부하며 말씀을 맺었다.

책을 내는 나의 소회를 이야기할 차례다. 출판사 대표와 두 주최 단체 회장께서 안겨주는 꽃다발과 함께 앞에 섰다. 오랜 망설임 끝에 책을 낸 연유를 말하고, 가수는 안 해도 노래는 부르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던 어느 무명 가수의 심정을 빌어 글을 결코 떠날 수 없었던 심사를 털어놓았다. 나무와 산을 쓰기 위해 산골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산골을 살다 보니 나무와 산 그리고 꽃이 보이더라 했다. 그것들을 통해서 보고자 했던 것은 결국 사람 살이의 모습이라 했다. 내가 기리기를 애썼던 노자 장자는 세상을 떠나 자연에 은거했던 이들이 아니라 세상을 자연으로 살려 했던 사람들이라 여겨진다 했다. 내 소망도 자연으로 살다가 자연으로 죽는 일이라며, 그 상념을 이 책에 담았다고 했다. 기념회를 마련해준 여러 회원님에 대한 고마움은 두고두고 새겨 나가겠다며 말을 마무리했다. 축복의 박수 소리가 아늑하게 안겨 왔다.

회원들이 준비한 축하 공연 순서가 이어진다. 첫 순서로 낭송협회 회장께서 나의 글 산의 가슴을 정감 깊은 목소리로 낭독했다. “나는 오늘도 해거름 산을 오른다. 그 가슴을 찾아 오른다. 그 가슴을 안으려, 그 가슴에 안기려 오른다. 당신 품에 안겨 당신이 될 그 가슴에-.”라 맺으며 낭독 판을 접을 때 객석에서는 박수가 터졌지만, 나는 오히려 가슴이 먹먹했다.

다음 순서가 진행되려 하는데 교육감께서 막 도착했다. 일과 후 바로 달려오는 길이라 했다. 아무리 바빠도 이 뜻깊은 자리에 오지 않을 수 없었다며 오래오래 좋은 글로 독자의 심금을 울려주십사 하며 건강과 건필을 기원해 주었다. 내가 뭐라고 이리 애써주실까.

전문 낭송가이신 낭송협회 전 회장께서 음악 회원의 기타 연주와 노래에 맞추어 정두리의 시 그대를 축시로 낭송한다. 회장님의 목소리는 언제나 청옥 빛이다. “네가 깨끗한 얼굴로 내게로 되돌아오는 길 / 그대와 나는 내리내리 사랑하는 일만 / 남겨두어야 합니다.” 그랬다. 우리는 모두 내리내리 사랑하며 살아갈 일이다.

문학회 국장께서 나의 글 나무의 행복을 맑고도 차분한 목소리로 읊어낸다. 이 자리의 모든 사람이 저 나무처럼 행복하면 좋겠다. 나는 행복하다. 이 많은 이들이 내 책을 기려 주고 있는 이 자리가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는가. 박수 소리가 마냥 행복하게 일고 있다.

마지막 순서다. 낭송가이며 가수인 윤 여사, 곡절 많았던 삶의 역정을 내가 글로 썼고, 오늘의 책에도 실렸다. 윤 여사의 그 생애를 두고 내가 지은 노랫말에 음악 회원이 곡을 붙인 노래가 있다. 그 노래를 부른다. 기타 반주에 맞추어 신이 난 듯 부른다. 나를 향한 축하의 몸짓이다. 그의 생애는 파란이 많았지만, 그 노래는 오늘의 축가가 되어 울려 퍼지고 있다.

기념회의 모든 순서가 끝났다. 모두 앞으로 나와 기념사진을 찍는다. 마스크로 얼굴을 덮은 채 카메라를 바라보아야 했지만, 그 속에는 봉곳한 꽃들을 피우고 있을 것이다. 그 미소의 꽃들이 내 동공 속으로 들고 있다. 모두 고마운 미소들이다. 그 미소는 나를 다시 일깨우는 정 깊은 죽비일지도 모른다.

나무는 흐르고 있다. 흐르는 흔적을 제 몸에 둥근 금으로 새기며 끊임없이 흘러간다. 오늘 나에게 새겨지는 금은 어느 때보다 더 새뜻하고 도렷할 것이다. 다사롭고도 아늑할 것이다. 나무는 또 흐른다. 이제 오늘 같은 책을 다시 낼 수 없을지라도 오늘의 사연만으로도 나는 수많은 책을 가슴에 품을 수 있다. 영원히 간직될 따뜻한 나의 책이 될 것이다.(2022.3.23.)

                                                                       

      게시판 편지쓰기 방명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