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살기' 프롤로그
검푸른 바다는 굶주린 상어떼가 되어 허연
이빨을 파도 잎사귀 켜켜이 드러내며 배를 단숨에 삼킬 듯이 달려들었고, 배는 산산조각이
날 것 같은 굉음을 내며 몸부림쳤다. 사람들은 배가 요동하는 방향을 따라 앉았던
의자에서 떨어지기도 하고 서로 엉켜 뒹굴면서 내장을 다 쏟을 듯 토악질을 해댔다.
아내는 의자에 앉은 채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시내 버스만 타도 속이 매스껍다고 하는 사람인데, 배의 그 심한 요동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깊은 기도라도 하듯 미동도 없는 고요를 유지하고 있었다. 흔들림이 심할수록 아내는 좀더 깊이 눈을 감는 듯했다.
다른 사람이 심하게 멀미하는 것을 보고 내 속도 거북해지려 했다. 내심을 향해 외쳤다. "나는 멀미 같은 건 하지 않아. 절대로 하지 않아. 어떻게 온 길인데, 이제 다른 세계의 문을 들어서면서 토악질을 하고 있을 수는 없지." 마음과 생각을 애써 다스리며 내 안으로 강력한 암시의 메시지를 보냈다. 결국 나는 그 배에서 멀미를 하지 않았다.
나는 바다를 건너 섬으로 간다. 심해선 밖의 먼 섬으로 간다. 스물 여섯 해의 교직 생활 끝에 찾아 낸 새로운 길이다. 생각해 보면 그 세월 동안 부둥켜 잡아 왔던 교과서를, 손에서 놓게 되는 일이 아쉽기도 하다. 그러나 교과서를 보람차게 놓을 날을 위하여 나는 열심히 교과서를 잡으려고 애써 왔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열심히 교과서를 잡고 사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었고, 교과서를 손에서 떼는 일은 더욱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세상은 내 새로운 삶의 문을 울릉도에서 열게 했다. 육지로부터 오백여 리나 떨어진 멀고먼 외딴 섬이다. 쾌속정이 있어 육지를 떠나 세 시간 정도면 닿을 수 있지만, 그것은 하늘이 맑고 바람도 없어 물결은 평화를 안고 있을 때이다. 네 시간이 걸릴 수도 있고 일여덟 시간이 걸릴 때도 있다. 그래도 건널 수 있으면 다행이다. 폭풍우가 치면 아예 배를 탈 수 없는 것은 물론이지만, 출발할 때는 잠잠하던 바다가 항해 도중에 거칠어지면 목적지를 눈앞에 두고서도 뱃머리를 돌려야만 하는 곳이다.
내 삶은 쾌속정을 타고 살아오지는 못했다. 그 빠른 배를 탈 수 있는 힘과 기회를 나는 갖지 못했다. 그러나 그치지는 않았다. 더러는 길이 없어 헤매기도 하고 더러는 험한 길이라 등줄기에 땀을 적시며 걷기도 하면서 내가 탈 수 있는 배를, 내가 닿을 수 있는 목적지를 찾아 나아갔다. 길이 없는 것 같았으나 걷다 보니 조그만 길이 보이기도 했고, 길인가 싶더니 너무 험하고 멀어 힘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 험로가 나를 더욱 질기게 살게 했음에야 마다 않고 걸어야 할 나의 길임이 분명했다.
그리하여 나는 바다 건너의 섬에 닿을 수 있었다. 섬, 그것은 내 새로운 삶의 깃대를 꽂아야 할 나의 대지였다. 네 시간 여의 항해 끝에 그 섬에 닿았다. 순항 때의 속도보다는 조금은 더 더딘 뱃길이었다. 어쩌면 애 쓰되 서두르지 않고 살아 온 내 삶의 속도, 그 상징일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부두로 나와 환영해 주었다. 이제 더불어 삶을 엮어 나가야 할 동료들이다. 이제부터 나는 무슨 일을 해야 할까. 우선 나를 향한 이 환영이 영원한 환영이 되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새로운 삶의 터로 향하는 섬 길을 달리며 내게 주어진 자리에 내가 있어야 할 필요가 있게 하는 것도 내가 이루어내야 할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도 잊지 않았다. 아내는 나의 그러한 일들을 위하여 기도에 몰두하느라 멀미를 잊었을는지도 모른다.
내가 앉아야 할 자리 앞에 섰다. 나는 여러 동료들 앞에 소개되었고, 인사말을 했다.
"…여러 선생님들과 함께 생활하게 된 것을 매우 영광스럽고 기쁘게 생각을 합니다. 저의 소임의 첫째는 선생님들을 잘 도와 드려서 교육 활동이 잘 이루어지게 하고, 그 다음은 화목한 교무실 분위기를 이루는 데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별 능력은 없습니다만 이러한 일들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여 노력하겠습니다.…"
의례적인 말일 수도 있겠지만, 새로운 세계에 들어서는 나의 솔직한 생각과 마음을 그 '의례'로밖에 표현할 수가 없었다.
조례대 위에 섰다. 앞에는 새로이 만난 사람에 대한 호기심 때문일까, 반짝이는 눈망울로 쳐다보는 아이들이 있었고, 운동장 아래로는 시리도록 푸른 바다가 출렁이는 가슴을 활짝 열고 있었다.
"…파도를 헤치고 바다를 건너 와서, 이렇게 여러분 앞에 선 나의 감격은 너무나 큽니다. …힘은 작지만 오고 싶은 학교, 공부하고 싶은 교실, 언제나 훈훈 인정이 넘치는 교정이 되게 하기 위해서 애써 노력을 하겠습니다. 저기 보이는 넓고 푸른 바다만큼 푸르고 큰 꿈을 가지고 우리 함께 사랑하며 열심히 생활할 수 있기 바랍니다.…"
이 섬이 바다 그 너머에서 찾은 내 삶의 새로운 땅임을, 내 삶을 사랑하듯 또한 내가 사랑해 나가야할 땅임을 아이들에게 고백하고 있었다.
많은 지인들이 전화로, 전보로, 서신으로 또는 꽃다발로 축하의 메시지를 보냈다.
"승진을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 멀리 가서 어떻게 지냅니까? 고생이 많겠지요?"
"…경치도 아주 좋고요, 학교도 아주 좋고요, 선생님들도 다 좋아요. 아 예, 그리고 저는 내자와 함께 왔거든요. 생활에 불편한 건 별로 없지요."
"예, 그렇다면 참 다행이군요."
나를 축하해 주는 마음 한편으로는 외딴 섬 사람이 된 것에 대해, 그 외로움과 불편함에 대해 연민의 정을 떨치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외롭지도, 불편스럽지도 않을 것이다. 외롭기에는 너무 바쁠 것이고, 불편하기에는 고마운 사람들이 너무 많을 것이겠기 때문이다. 조물주의 갖은 상상력을 다 모아 빚어 놓은 아름다운 산과 바다가 있고, 모두가 소망을 안고 이 섬을 찾아 와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동료들이 있는 곳에 내가 삶에야.
삶의 많은 바다를 건너 이 '아름다운 신비의 섬' 울릉도에 당도했다. 이제 그 아름다움과 신비도 내가 헤엄쳐 가야 할 또 하나의 바다일지도 모른다. 힘찬 몸짓으로, 때로는 정겨운 손길로 이 바다를 헤엄치리라. 나의 바다 건너기는 끝이 없을 것이다. 그 건너편에 내 삶의 의미를 다시 새롭게 할 세계가 있는 한 나의 '바다 건너기'는 영원토록 끝이 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음은 또 어떤 바다가, 어떤 섬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아내는 내가 탄 그 배에서 또 어떤 기도를 모아야 할까. 내게 건너야 할 바다가 있음은 내 살아 있음의 명확한 증거가 아니던가.
비록
쭉정이의 세월 속에서도
바다를 잊지 못하는 것은
그 파아란 꿈 때문이다
사시사철 키를 뽑는 나무 그늘 아래
어쩌다 쉬어 가는 사람들의 가슴께로
떴다 잠기는 갈매기의 섬
그 너머의 깃발을 믿기 때문이다.
-권일송 : '바다에게'에서♣